서적소개
종이학
엘리너 코어 / 바다어린이 / 2004.5.24
전쟁 중에 터진 원자 폭탄의 후유증으로 죽어간 사다코 사사키의 실제이야긴 이 책은 우리 어린이뿐만 아닌 어른들에게 전쟁에 대해, 핵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며 평화의 마음을 고취시키고 있다. 테러로부터 세계 국민들을 지키고, 독재정권에서 이라크 국민들을 해방시킨다는 거창한 명분 아래 시작한 이라크 전쟁은 그 시작부터 명분을 잃었었다. 결국 지금 남은 것은 굶주림과 폭탄 아래 떨고 있는 아이들이고, 힘없는 노약자들의 두려움뿐이다. 현재 우리나라도 이라크 파병을 눈앞에 두고 있다. 그렇기에 과연 평화란 무엇일까? 무기를 들고 싸우면 평화가 올 것인가? 한 번 생각해 볼 좋은 기회이다.
폭발이 있을 당시 사다코 사사키는 2살이었다. 할머니는 폭발 당시에 돌아가셨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다코는 달리기를 좋아하는 평범하고 건강한 소녀에 불과했다. 10년이 지난 1955년 사다코는 별안간 쓰러지고 만다. 2살에 방사능에 노출된 후유증으로 백혈병에 걸린 것이다. 다시금 달리고 싶었던 사다코에게 단짝 친구 치즈코는 종이학을 접으며, 천 년을 산다는 학을 천 마리 접으면 신도 감동해서 소원을 들어준다는 일본 전설을 들려준다. 그날부터 사다코는 천 마리 종이학을 접어나갔지만 결국 천 마리를 모두 접지 못한 채 1955년 10월 25일 세상을 떠나게 된다.
○ 저자소개 : 엘리너 코어
1949년 엘리너 코어는 첫 번째로 일본을 방문했다. 전쟁 후의 모습을 기록하여 저널을 쓰기 위해서였다. 일본에 머무르고 여행을 다니며 원자폭탄 여파의 참상에 쇼크를 받았다. 그녀는 신문기사를 쓰고 아이들을 위한 책을 펴냈다. 엘리너 코어가 60세가 되어 다시 일본으로 돌아왔을 때 사다코 사사키의 동상이 세워진 평화기념공원을 비롯하여 히로시마가 완전히 다시 건설되어진 것을 보고 놀랐다. 그녀는 특히 평화 기념공원에 세워진 사다코 사사키 동상과 ‘코케시’라는 책을 보고 영감을 얻어 사다코와 종이학 천 마리를 썼다. 1977년 첫 출판된 ‘사다코와 천 마리 종이학’은 세계 여러 곳에서 출판되었고, 1985년에는 에드영의 그림이 더해지고, 이야기를 줄여 ‘사다코’라는 그림책으로 엮어냈다.
– 그림: 에드 영
– 역자: 강무홍
○ 출판사 서평
- 『종이학』이 궁극적으로 말하는 것은 반전 반핵이다
전쟁의 끝에 터진 핵이 남긴 상처가 어떠했는지 보여주는 가장 감동적인 언어이다. 엘리너 코어는 “내가 히로시마에 원자 폭탄이 떨어져서 20만 명이 죽었다고 말하는 것보다 이 한 소녀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더 강렬한 메시지를 전해 줄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숫자에 의한 피상적인 전쟁의 상처를 알려주는 것보다 마음을 움직이는 이야기 한 편이 사람들에게 더 큰 의미로 다가올 것이라고…. 그렇다. 사다코의 이야기는 출판된 시점부터 사람들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노래, 연극, 영화, 무용, 애니메이션 (특히 미국에서 만들어진 애니메이션은 미국도서관협회 뿐 아니라 여러 곳에서 우수 작품으로 선정되며 아이들을 위한 평화 교육에 우선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등 다양한 형태로 다시 만들어졌으며 수많은 나라에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1945년 8월 6일 세계는 제2차 세계대전 중이었다. 이 날 아침 미국 폭격기 B-29가 일본 히로시마 상공을 날며 폭탄 하나를 떨어뜨리고 돌아갔다. 그 폭탄의 이름은 ‘리틀 보이’, 리틀 보이는 투하된 뒤 몇 초 만에 폭발지점을 찾았고, 정확히 8시15분에 폭발했다. 뒤이어 히로시마는 지독한 구름에 가려졌고, 잠시 뒤 매우 뜨거운 바람과 열기가 온 도시를 감싸며, 히로시마는 하루아침에 지옥으로 변했다. 폭발이 일어난 지점에서 1.5km 반경 안의 집과 빌딩들이 대부분 파괴되었고, 사람들을 불태웠으며, 많은 사람들이 그 자리에서, 혹은 폭발이 일어 난지 하루 만에, 한 달 안에, 1년 안에 죽어갔다. 그 당시에 멀쩡했던 사람들도 핵폭발의 방사능으로 인해 유전자 문제를 일으켰다. 기형아가 태어나기도 했으며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어머니도 속출했다. 또한 사다코처럼 원자폭탄 질병인 백혈병에 걸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계속적으로 죽어갔다. 그들은 도시의 학생, 군인, 공장으로 일하러 온 한국인을 포함한 도시인들이었다. 원자 폭탄에 의해 죽어간 사람들의 총 숫자는 200,000만 명 정도 될 것으로 추정한다.
사다코는 죽는 그 순간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죽을 때까지 계속해서 종이학을 접어 나갔다. 사다코의 힘과 용기에 감동을 받은 친구들은 못다 접은 종이학 356마리를 마저 접어 그녀의 무덤에 묻어주고, 그녀가 친구들에게 보낸 편지를 모아 ‘코케시’라는 이름으로 출판했다. 또한 사다코와 원자 폭탄으로 죽어간 모든 아이들을 위해 기념비를 세우는 꿈을 갖고 돈을 모았다. 그 결실로 1958년 종이학을 높이 쳐들고 있는 사다코의 모습이 히로시마 평화공원에 세워졌다. 또한 1990년에는 시애틀 평화공원에 사다코 어린이 상이 프로이드 쉬모에 박사에 의해 세워졌다. 사다코의 이야기는 노래로 다시 태어나기도 했고, 종이학 모임 클럽, 평화 합창단을 탄생시켰다. 사다코는 세계에 평화의 상징이 되었다. 종이학을 접으면서 병에 용감하게 맞서 싸운 모습은 온 세계에 평화를 기원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희망을 보여주었다.
- 칼데콧 수상작가 에드 영의 그림과 다시 만난 사다코 이야기
이 책 『종이학』은 1977년 엘리너 코어가 쓴 ‘사다코와 종이학 천마리’을 그림책에 맞도록 알맞게 개작한 작품이다. 중심내용 위주로 텍스트는 필요한 길이만큼 적절하게 수정하고 여기에 칼데콧 수상작 가 에드 영의 그림을 더해 멋진 작품으로 탄생시킨 것이다. 에드 영은 사다코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위한 직접 히로시마를 여행하며 날아오를 듯한 역동적 인 파스텔화들을 수 백장 탄생시켰다. 이 책은 그 중 단 몇 컷을 골라 사용한 것이다.
에드 영은 중국인으로 중국 회화에 그 기초를 두고, 환상성과 사실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작가이다. 그러나 에드 영은 어떤 형태이든 진실함을 기반을 둔 그림만이 독자를 사로잡는다고 믿고 있다. 때문인지 이번 그림은 감상적인 표현보다는 사실의 이야기를 날카롭게 강조하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어찌 보면 그림 속에 조금은 두려운 느낌이 드는 것도 이 때문인지 모르겠다. 또한 독자들이 그림 안에서 어떤 상징과 진실을 찾아내기를 격려하는 것이기도 할 게다. 사다코의 그림 표지만 해도 눈 미간에 슬며시 학이 솟아오르고 있다. 세상의 평화를 바라는 눈에 대한 상징이다.
그리고 다양한 강약의 그림은 사실적인 그림으로 인해 자칫 지루해 질 수 있는 그림에 대한 우려를 씻어주었다. 포괄적인 넓은 전경 속에 작은 이미지들이 상호작용하고, 확대된 대상들의 형태를 보여주고, 환상적인 꿈같은 이미지들을 형상화하기도 하였다. 또한 그림의 반 정도의 하얀 여백은 공간의 풍부함을 부여하고 우리들에게 상상의 여지를 만들어 준다.
에드 영은“그림과 글은 상호보완적이다. 어떤 것은 그림이 표현 할 수 없는 것을 글이 말할 수 있고, 마찬가지로 글이 묘사할 수 없는 것을 이미지는 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 덕분에 우리는 『종이학』을 통해 ‘사다코와 종이학 천 마리’에서 글만으로 전해 줄 수 없었던, 사다코의 삶에 대한 희망과 평화에 대한 갈구함을 더욱 느낄 수 있게 된 것이다.
미국의 Publishers Weekly는 ‘주요 내용의 적절한 텍스트와 철학적 미술작업은 성공적이다’라고 평하였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