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중국철학의 정신 : 신원도
펑유란 / 서광사 / 1993.4.30
– 중국 철학의 정신적 토대인 공자부터 현대에 이르는 주요 사상을 함축한철학사 연구서
중국 철학의 흐름을 초월성과 일상성에 초점을 두고 상술하였다. 원제는 ‘신원도'(新原道).
○ 목차
01. 공자와 맹자
02. 양주와 묵적
03. 변론의 철학
04. 노자와 장자
05. 역전과 중용
06. 한대 철학
07. 위진 현학
08. 선종
09. 도학
10. 새로운 체계
○ 저자소개 : 펑유란
20세기 중국을 대표하는 철학자로서 1895년 하남성 당하현에서 태어났다. 1918년 베이징(北京) 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존 듀이 문하에서 수학하며 1924년 논문 「인생 이상의 비교 연구」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47년 프린스턴 대학 200주년 개교기념일에 명예문학박사 학위를 받기도 하였다. 이후 중국으로 돌아와 칭화(淸華) 대학교와 베이징 대학교에서 철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1933년에는 영국의 초청으로 영국의 각 대학에서 중국철학을 강의하기도 하였다.
1934년 그의 저명한 『중국철학사』 상?하권을 상무인서관에서 출간하였으며 1938년부터 이른바 ‘정원육서’라고 하는 『신리학』(1938), 『신사론』(1940), 『신세훈』(1940), 신원인』(1943), 『신원도』(1945), 『신지언』(1946)을 발표하여 자신의 철학체계를 수립하였다. 또한 1946년에는 본서의 영문판『간명한 중국철학사』를 출간하였다. 대륙이 공산화된 뒤에는 마르크스-레닌주의로 전향하였고, 1962년 마르크스-레닌주의와 마오쩌둥(毛澤東) 사상 입장에서 고쳐 쓴 『중국철학사신론』을 발간하였다. 문화대혁명(1966~1976) 기간 동안 ‘자아비판’을 거치는 등 온갖 시련을 겪어낸 뒤 1982년부터 1990년, 9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중국철학사 신편』(전 7권)을 완성하였다. 이 중 7책이『중국현대철학사』라는 이름으로 홍콩에서 1992년 출간되었다(역자 번역 국내 출간됨). 그 밖의 저서로는『인생철학』(1926),『중국철학논문집』 (1958),『40년의 회고』(1959) 등이 있다.
○ 역자 칼럼
– 풍우란의 [중국철학의 정신-新原道]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007년 ‘월간 에세이’에서 풍우란(馮友蘭 1895-1990)의 ‘중국철학사’를 읽고 힘겨웠던 시절 마음의 평화를 되찾았다고 했었다. 대학시절에 전자공학도였던 그가 시련기에 그 방대한 분량에 내용도 난해한 철학사를 독파했다는 것도 반가왔고, 지난 6월 말 그 책의 저자가 큰 스승으로 인정받는 나라에 국빈자격으로 방문하게 되자 나라 안팎에서, 특히 중국의 지도자와 국민들의 이를 거론하면서 호들갑에 가까운 각별한 호의를 보였다고 하니 그가 그 책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했는지의 여부를 떠나 외교적인 측면에 있어서도 국격(國格)이 한층 높아진 듯한 흐뭇한 느낌을 갖게 되었다.
철학도였던 나는 숭실대학교 2년 때인 1974년 봄에 풍우란이 쓰고 후즈(E.R. Hughes)가 번역한 ‘The Spirit of Chinese Philosophy’라는 책가 이 책의 중국어판 [신원도]를 구하여 읽게 되었다. 그 시절에는 중국철학사에 대한 도서가 김능근 교수의 [중국철학사]와 정인재 선생이 번역한 풍우란의 [중국철학사](간편본)가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교재 겸 참고도서였다. 상하권으로 된 [중국철학사]는 원서로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박성규에 의한 번역본은 1999년에야 나왔다. 그런데 나는 우연한 기회에 지금은 고인이 되신 조요한, 최명관 교수님으로부터 1964년경 철학연구회가 발족하고 나서 회원들이 고 이상은 교수님의 주도하에 [신원도]를 윤독했다는 것과 그 모임에 참가하여 많은 자극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두 분 선생님은 그리스 철학과 미학, 프랑스철학과 근대철학을 전공하셨음에도 동아시아철학에 마음을 활짝 열고 계셨던 일면을 보여주셨으며, 훗날 나의 동아시아철학 전공의 길을 격려하시고 모교에서의 교수직을 마련해주시기도 하셨다.
나는 영어판을 도서관에서, 중국어본을 1966년 대만상무인서관판을 시내의 중국서점, 지금은 없어진 알타이하우스에서 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책으로부터 당시 교만과 실의, 나태와 좌절 등에 힘들어하던 내 영혼을 깨우는 찬비와 같은 자극을 받고 마음과 몸을 앓았다. [신원도]는 절반 가까운 분량이 사서오경을 넘어 13경의 유가경전과 그 밖의 제자서, 나아가 생소하기 짝이 없는 다양한 서명의 중국고전에서의 인용문으로 채워져 있었다. 이를 읽어 이해하겠다고 하는 결심은 사실 무모 그 자체였다. 내심 한문 공부와 중국철학사 독파라는 두 목표를 일거에 달성할 수 있다는 동기도 작용했고, 초등학교 시절부터 틈틈이 익힌 한문이 다른 학우들보다 탁월(?)했다는 오만도 바탕에 있었지만 그러한 동기와 오만도 [신원도]를 읽어내기에는 턱없이 힘에 부쳤다. 다행인 것은 이 책의 원문에 비교적 충실한 영어판이 있었기에 서로 참고하면서 끝내 포기하지 않고 읽어낼 수 있었다. 어쨌든 그때 읽은 이 책은 훗날 육군사관학교 철학과에서 교관생활을 하면서 틈나는 시간을 아껴 번역을 하는 데까지 나아갔고, 이는 전역 후 3년이 경과한 1985년에 [중국철학의 정신-新原道-]로 숭실대 출판부에서, 그리고 같은 이름으로 개정판을 1993년 서광사에서 출간하기에 이르렀다. 무엇이 나로 하여금 학부시절에 그 힘든 책을 읽어내게 했고 이후 동아시아 철학을 전공하는 길로 나서게 했던가?
신원도는 풍우란이 항일전쟁 막바지인 1938년 쿤밍에 있을 때 베이징의 국립편역관으로부터 간단한 중국철학사 원고를 부탁받고 쓴 책이다. 그는 이 시기에 이미 [신리학(新理學)] [시세론(新世論)] [신사론(新事論)] 신원인([新原人)] 등 몇 권의 중국철학사와 관련한 시리즈의 책을 썼고, 그 후에 [신지언(新知言)]을 내어 이른바 정원육서(貞元六書)라고 부르는 책의 한 부분을 이룬다. 앞의 책들은 저자의 자발적 동기에 의하여 쓰였다면 [신원도]는 정부로부터 철학사를 써달라는 요청을 받아 저술에 착수한 것이라서 앞에 쓴 책들의 내용을 기반으로 하였고, 여기에 [중용]에 나오는 ‘지극히 높은 지혜에 도달하되 일상의 도리를 실천한다’라는 뜻의 ‘極高明而道中庸’을 기준으로 삼아 중국철학의 발전추이를 설명해나갔다. 그 때 책 제목을 [신원도]라고 하고 부제를 [중국철학의 정신]이라고 했다. [신원도]라는 말은 일찍이 한유가 쓴 [원도 (原道)], 곧 ‘도의 근원을 탐구한다’는 것의 의미를 취한 것이며 새롭게 도의 근원을 탐구한다는 뜻이다. 풍우란의 중국어 원고는 베이징의 편역관이 이의를 제기하는 바람에 사적으로 1945년 상무인서관에서 [신원도]라는 이름으로 출판되었고, 영어원고는 1947년 [중국철학의 정신]이라는 제목으로 런던에서 출판되었다.
애초에 풍우란은 작은 분량의 중국철학사를 염두에 두고 쓴 책이었기에 이 책은 압축된 중국철학사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는 10개의 장으로 구성한 이 책에서 매 장마다 시대와 대표적 유파를 내걸고 그 나름의 독특한 개념으로 철학사의 추이를 정리하며 기준에의 접근 정도를 평가했다. 전편에는 당시 일본과의 전쟁, 그리고 아편전쟁이래로 서구 열강에 유린당함으로써 천하(天下) 중화(中華)의 상처난 자존심을 염두에 두고 중국철학 정신의 부활을 꿈꾸면서 써 내려갔기에 이 책에는 바람을 일으켜 불길을 크게 번지게 하려는 기운이 들어있었다. 이 책에서 그는 고명(高明)이라고 하는 초월적 가치와 중용(中庸)이라고 하는 일상적 가치를 간극 없이 조화하려는 것에 철학의 목표가 있다는 주장과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매거하고 있는 풍부하고 심오한 논거들은 그 내용의 난삽함에도 불구하고 나를 감탄을 거듭하게 하곤 했으며 도전의 의욕을 돋우었다.
[신원도]의 내용과 제시는 시골 교회의 목사 아들로 성장하면서 교회 안팎에서 보고 겪었던 교리와 전통적 가치와의 의미 없어 보이는 대결, 교회지도자들의 위선, 비판의 의식도 없고 저항의 시도조차 못하는 채로 맹종하려하는 신도들과 또 그것을 믿음의 이름으로 독려하면서 진리에 애써 외면하는 듯한 지도자들의 행태에서 나름대로 깊은 상처를 받았던 나에게 빛과 같고 출구와 같은 극진한 위로가 되었다. 또한 70년대, 제대로 학기를 마친 때가 없었던, 군대와 경찰이 교정에 진주하고 최루탄과 깨진 보도블럭이 교문 위로 교차하며 날아다니던 그 시절, 강의실 안에 기관원이 들어와 있고 학우가 프락치노릇의 유혹에 넘어가고 마는 상황에서 밖으로 내뿜던 분노와 저항의 몸짓에 점차 절망감이 스며들 무렵 새로 열린 의미의 세계로 매진할 수 있는 동력의 상당 부분을 제공하고 이후 동아시아철학연구에로 삶의 행로를 이끌어간 주된 요인이었다. _ 곽신환(숭실대학교 철학과 교수)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