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찰리 채플린, 나의 자서전
찰리 채플린 / 김영사 / 2007.12.14
“실망과 근심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절망에 빠지지 않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탈출구는 철학이나 유머에 의지하는 것이다 – 찰리 채플린
찰리 채플린의 『나의 자서전』의 완역판. 이 책은 이전 판본들과는 달리 방대한 분량의 원문을 그대로 실어 두어 독자들이 찰리 채플린의 전모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빈민구호소를 전전하던 가난을 딛고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희극배우가 되기까지 만인의 연인 찰리 채플린의 그의 삶과 예술 이야기를 생생한 육성으로 담았다. 찰리 채플린의 일, 연기, 사랑, 우정, 철학, 그가 연루됐던 여러 재판들 그리고 미국을 향한 적대감과 관련한 흥미롭고 진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이 책에서 저자 찰리 채플린은 서머싯 몸, 아인슈타인, 버나드, 처칠 등의 인물에 대한 날카로운 묘사와 그들에 얽힌 재미있는 일화들을 들려주었다. 찰리 채플린의 『나의 자서전』은 예술가들의 기행과 열정, 그리고 정치가들의 사생활과 탁월한 언변을 엿볼 수 있는 귀한 자료가 된다.
배우로 태어나서 배우로 죽은 찰리 채플린. 익살 연기의 대가이면서 각본,감독,주연,음악 등 영화의 모든 분야를 아우르는 다재다능한 예술가인 그의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채플린 자신의 삶과 시대에 대한 진중한 성찰과 회고라는 측면에서, 이 책은 탁월한 자서전 중 하나라고 평가받을 수 있다.
○ 목차
들어가는 말 – 내 인생의 서막
- 엇갈린 운명의 무대
- 가난 그리고 가족이라는 이름
- 여덟 살 꼬마 배우
- 아버지의 죽음
- 희극배우가 되다
- 나의 사춘기 시절
- 청춘이라는 무대
- 미국으로 가는 길
- 정든 희극무대를 떠나다
- 뜨내기의 탄생
- 내 이름은 찰리!
- 꿈에 그리던 백만장자가 되다
- 할리우드에서 만난 세기의 거장들
- 내 연기론과 영화론
- 유나이티드 아티스트 영화사 설립
- 〈키드〉의 시절
- 십 년 만의 영국방문
- 어머니의 죽음
- 유나이티드 아티스트 시절
- 나의 ‘황금광 시대’
- 무성영화의 황혼기
- 두 번째 영국 방문
- 나의 동방견문록
- 나의세기, 〈모던타임스〉
- 2차 세계대전 그리고 〈위대한 독재자〉의 탄생
- 정치의 소용돌이
- 우나를 만나다
- 〈무슈베르두〉
- 공산주의자로 몰리다
- 할리우드여 안녕!
- 은막은 내리지 않는다
옮긴이의 말 – 익살 연기에 녹아든 시대 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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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소개 : 찰리 채플린 (Charlie Chaplin)
1889년 런던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다재다능한 보드빌 배우였지만 술 때문에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떴으며, 어머니 또한 유능한 뮤직홀 배우였지만 배우로서는 치명적인 목소리에 이상이 생겨 무대 인생을 접어야 했다.
어린 시절 찰스 디킨스의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들처럼 빈민구호소를 전전했으며, 아역 배우로 일하면서 하루를 벌어 하루를 연명했다.
5세 때 첫 무대에 섰고 10세에 극단에 들어가 연기 경험을 쌓았다.
17세 무렵 당시 영국 최고의 인기 희극극단 프레드카노극단 단원이 되었다.
1912년 카노극단이 미국 순회공연을 할 때 영화제작자 M. 세네트는 그를 할리우드로 초청한다.
1914년 그의 첫 영화가 개봉되었고, 그 후 키스턴·에사네·뮤추얼 등의 회사에서 1917년까지 수십 편의 단편영화를 자신이 감독, 주연, 각본, 음악을 겸하면서 제작하였다.
그는 작품 속에서 콧수염, 헐렁한 바지, 커다란 구두, 지팡이, 중산모 등을 이용한 거지 신사의 분장과 연기로 그의 독특한 개성을 창조하여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다.
눈물과 웃음, 유머와 페이소스가 당시 그의 희극에 대한 대명사였으나, 《어깨 총 Shoulder Arms》(1918) 무렵부터 인간적 성장의 자취가 작품에 투영되어 사회적 풍자와 비판이 곁들여졌으며 《황금광 시대 Gold Rush》(1925)와 같은 걸작이 나오게 되었다.
또한 《파리의 연인 A Woman of Paris》(1923)은 그가 감독만 한 비련 (悲戀)의 운명 드라마로 뛰어난 심리묘사를 보여주었다.
유성영화시대에 접어들면서도 그는 《시티라이츠 City Lights》(1931)와 현대문명의 기계만능주의와 인간 소외를 날카롭게 풍자한 《모던 타임스 Modern Times》(1936)를 무성영화로 제작하였으나 1940년의 《위대한 독재자 The Great Dictator》에서 유성영화로 전환하여 히틀러와 그의 파시즘을 세계 인류의 적으로 과감히 탄핵하였다.
그러나 찰리 채플린은 2차 세계대전 중 ‘러시아 전쟁구제 미국위원회’로부터 소련 지지 연설을 부탁 받게 되고, 이후 그 자신의 정치적 견해는 그에게 공산주의자라는 오명을 덧씌운다.
계속되는 재판과 언론의 비난을 견딜 수 없었던 채플린은 미국을 떠날 결심을 하고, 그때 할리우드는 그에게 철저히 등을 돌린다.
결국 그는 미국을 떠나 스위스에 정착한다.
그 후 《뉴욕의 왕 A King in New York》(1957) 《홍콩의 백작부인 The Countess from Hong Kong》(1966) 등을 발표하였다.
1972년 그는 할리우드에서 아카데미 특별상을 수상하였고, 같은 해 제33회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였다.
1975년 엘리자베스 여왕으로부터 나이트 작위를 받았고, 방이 15개 있는 스위스 저택 마노아 드 반에서 자손들과 여생을 보내다 1977년 12월 25일 수면 중 사망한다.
– 역자 : 이현
충남대학교와 서강대학교 대학원에서 정치학을 공부했다. 졸업 후 시민단체에서 일했으며, 지금은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육식의 성 정치》《서구 마르크스주의 읽기》《사이버-맑스》《실현 가능한 사회주의의 미래》 등이 있다.
○ 책 속으로
우리는 유머를 통해 합리적인 것처럼 보이는 행동에서 불합리한 것을 본다. 또 중요한 것처럼 보이는 것에서 중요하지 않은 것을 본다. 한편 유머는 우리가 살아 있다는 느낌을 고양하고, 우리가 제정신이라는 것을 반증한다. 유머 덕분에 우리는 인생의 부침을 견뎌낼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균형 감각을 잃지 않도록 도와주며, 엄숙함이라는 것이 얼마나 부조리한 것인지 드러낸다. — p.443
나는 아인슈타인 박사 부부를 우리 집에 초대했다. 저녁식사를 하면서 아인슈타인 부인은 박사가 상대성 이론을 착상하던 날 아침에 있었던 일화를 들려주었다.
“남편은 평상시처럼 실내복 차림으로 아침을 먹으러 내려왔어요. 그런데 그날따라 아무것도 손을 대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뭔가 일이 잘 안 풀리는구나 생각했죠. 그래서 무슨 고민이 있느냐고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여보, 나 굉장한 생각이 떠올랐어’라고 대답하는 거예요. 그리고 커피를 마신 뒤에 피아노 쪽으로 가더니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피아노 치는 것을 멈추고 노트에 뭔가를 적는가 싶더니 ‘정말 굉장한 생각이야. 정말 놀라워’라고 계속 중얼거리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말했죠. ‘뭐가 그렇게 굉장하고 놀라운지 말씀 좀 해주세요. 궁금해서 미치겠어요.’”
“그러자 이렇게 대답하는 거예요. ‘뭐라고 아직 말하기는 일러. 좀 더 연구를 해야 해.’”
아인슈타인 부인은 박사가 그렇게 30분 동안 피아노를 치며 메모하는 일을 반복하더니 방해하지 말하는 말만 남기고 연구실로 올라가더라고 말했다. 그리고 2주일 동안 박사는 두문불출하고 연구에 매달렸다. 그녀는 이렇게 말을 이었다. “매일 식사도 날라다 줬어요. 저녁에 잠깐 바람 쐬러 나오는 것 외에 바깥출입은 일체 하지 않았습니다. 바람 쐬고 돌아와도 바로 연구실로 올라가 연구에 몰두했지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결국 창백한 몰골을 하고 연구실에서 내려왔어요. 그리고 기력이 다했는지 탁자에 종이쪽지 두 장을 힘없이 내려놓으면서 ‘이거야’라고 말하더군요. 그게 바로 상대성 이론이었습니다”라고 말했다. — pp.682~683
차트웰에 머물면서 무엇보다 즐거웠던 것은 식사 시간이었다. 왜냐하면 윈스턴 처칠 경은 식탁에서 자주 정치적 열변을 토로했는데, 가족들은 그의 이런 열변을 별로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렸다. 워낙 자주 있는 일이다보니 가족들 모두 이미 익숙해져 있었던 것이다.
나는 처칠 경의 차트웰 저택의 검소하고 엄격한 생활 방식에 상당한 매력을 느꼈다. 처칠 경의 침실은 서재와 겸하고 있어서 사방 벽이 모두 책으로 들어차 있었다. 한쪽 벽면에는 영국 의회 의사록이 빼곡히 꽂혀 있었다. 나폴레옹에 관한 책도 여러 권 있었다. 내가 나폴레옹 책에 관심을 보이자 그가 이렇게 말했다. “그렇습니다. 저는 나폴레옹 숭배자입니다. 나폴레옹을 영화화하는데 관심이 있다고 들은 적이 있소만. 한번 만들어 봐요. 나폴레옹에 관해서는 재미있는 일화들이 많습니다. 나폴레옹이 하루는 목욕을 하고 있는데 동생 제롬이 금몰이 달린 제복을 갖춰 입고 갑자기 들이닥친 거예요. 나폴레옹을 당황하게 만들어 자신이 요구하는 것을 순순히 들어주도록 할 작정이었던 건데, 나폴레옹이 호락호락 넘어갈 위인이 아니죠. 순간 나폴레옹이 탕 속으로 쏙 들어가더니 휙 튕겨져 나오면서 동생 제복에 물을 튕깁니다. 동생은 물에 빠진 고양이 신세가 됐죠. 나폴레옹이 당장 나가라고 소리치자 그는 꼬리를 내리고 그냥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재미있는 장면 아닌가요. — pp.722~723
나는 먼저 목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말문을 열었다. “저는 자유를 갈망하고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인도에 대해 진심으로 공감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다소 혼란스러운 것은 당신이 기계를 몹시 싫어한다는 것입니다.”
마하트마 간디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나는 계속했다. “여하튼 기계를 이타적 의미에서 세상을 이롭게 하기위해 사용한다면, 인간이 노예 상태에서 해방되고, 노동 시간을 단축하고 그리고 그 시간에 정신을 함양하거나 삶을 향유하는 데 사용할 수 있다고 보는데요.”
“저도 이해합니다.” 그가 차분히 이야기 했다. “그러나 인도가 그런 목표를 달성하기 전에 우선 인도는 영국의 지배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과거에 인도는 기계 때문에 영국에 종속되었습니다. 인도가 이런 종속관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기계가 만든 모든 제품을 불매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모든 인도인이 자신이 직접 실을 잣고 옷을 손수 만들어 입는 것을 애국적 의무로 삼은 것입니다. 이것이 영국과 같은 강대국에 맞서 우리가 선택한 공격 방식입니다. 물론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인도는 영국과 다른 기후 풍도를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습관이나 필요로 하는 것도 다릅니다. 영국은 날씨가 춥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복잡한 산업과 경제가 필요했습니다. 당신 같은 영국인은 부엌세간을 만드는 산업이 필요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손을 사용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다른 모든 차이의 골간입니다.”
나는 간디와 이야기를 나누며 인도가 자유와 독립을 위해 어떤 전술로 싸우고 있는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나는 다소 역설적이지만 인도의 자유와 독립을 꼭 달성하겠다는 강인한 의지를 담고 있는 현실적이면서도 다소 비현실적으로 생각되는 이런 구상과 방식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 pp.726~727
피카소는 장난기 가득한 얼굴이 화가보다는 곡예사나 광대가 더 잘 어울릴 것 같았다. 그날 저녁, 모임이 끝나자 피카소는 우리를 데리고 그가 아직도 사용하고 있다는 레프트 뱅크 스튜디오로 갔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는데 그의 스튜디오 아래층에 있는 아파트 문에 이런 메모가 붙어 있었다. ‘피카소의 스튜디오가 아닙니다. 한 층 더 올라가세요.’
그의 스튜디오는 오랫동안 치우지 않고 살았는지 너저분하고 휑뎅그렁하니 마치 헛간 같았다. 비유가 그렇기는 하지만, 토머스 채터턴(영국 태생의 시인. 1752~1770)조차 그런 곳에서는 자살하고 싶어 하지 않았을 것이다. 전구 하나가 서까래에 박혀 있는 못에 매달려 있었고, 그 사이로 낡은 철재 침대와 고장 난 난로가 눈에 들어왔다. 벽 쪽으로 먼지가 수북한 캔버스가 쌓여 있었다. 그가 그중 한 점을 들어 올렸다. 폴 세잔느(프랑스 태생의 화가. 1839~1906)가 그린 그림이었다. 그것도 가장 아름다운 작품이었다. 그는 한 점씩 우리에게 보여줬다. 그렇게 한 50점을 구경했던 것 같다. 나는 그에게 쓰레기를 내다버리는 샘 치고 가격을 후하게 쳐줄 테니 내게 팔라고 말하고 싶었다. — pp.1002-1003
○ 출판사 서평
찰리 채플린의 《나의 자서전》 완역판이 나왔다. 그의 자서전은 이전에 이미 출간된 바 있다. 하지만 이전 판본들은 역자나 편집자의 편의에 따라 원문이 뭉텅이로 잘려나간 반쪽짜리었던데다, 그마저 이미 절판되어 찾아볼 수 없는 실정이다. 1,0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에는 ‘허름한 바지에 짧은 콧수염을 하고 전 세계인을 웃음과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이 희극 배우가 누구인지’ ‘런던에서 온 보잘것없는 청년이 어떻게 전 세계를 한 순간에 사로잡을 수 있었는지’ ‘그가 창조해 세인의 사랑을 독차지한 뜨내기와 그가 만든 위대한 작품들의 이면에는 무엇이 있는지’ 등 찰리 채플린의 일, 연기, 사랑, 우정, 철학, 그가 연루됐던 여러 재판들 그리고 미국을 향한 적대감과 관련한 흥미롭고 진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이 책은 당대 유명인사의 인터뷰집을 방불케도 한다. 서머싯 몸·아인슈타인·버나드 쇼·윈스턴 처칠·간디·사르트르·피카소·프랭클린 루즈벨트·저우언라이 등이 그들이다. 이 책에서 찰리 채플린은 이들 인물에 대한 날카로운 묘사와 그들에 얽힌 재미있는 일화들을 들려준다. 이들과의 교류는 찰리 채플린의 성격과 인생을 살펴볼 수 있는 한 방편이지만, 더불어 독자들의 영혼을 풍요롭게 하는 자양분이 되기도 한다. 채플린은 이름만 들으면 금방 알 수 있는 이런 인물들을 한데 모아놓음으로써 독자들에게 풍성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독자들은 예술가들의 기행과 열정에서는 웃음과 감탄을, 정치가들의 사생활과 탁월한 언변에서는 흥분을 맛보게 될 것이다.
각본·감독·주연·음악 등 영화의 모든 분야를 아우르는 다재다능함과 언어와 시대를 초월해 관객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천부의 연기력, 단지 코미디로 그치지 않았던 인간의 보편적 삶에 대한 진지한 접근, 산업의 기계화와 대공황기의 인간성 상실을 남달리 섬세히 포착했던 감수성. 찰리 채플린은 독보적인 영화인이자 20세기 최초의 대중적 슈퍼스타이면서도, 무엇보다 열정적인 휴머니스트였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라는 그의 통찰은 득의 양양해 보이는 신자유주의의 물결 아래 인간성의 황폐화를 경험하는 모든 현대인에게 커다란 위로와 자극이 될 것이다. 채플린 자신의 삶과 시대에 대한 진중한 성찰과 회고라는 측면에서, 《나의 자서전》은 20세기를 통틀어 더 없이 탁월한 자서전의 반열에 올려놓기에 손색이 없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