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침묵의 뿌리
조세희 / 열화당 / 2000.9.30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78년)으로 70년 최대의 문학적 성취를 거뒀던 작가가 카메라를 들고 강원도 사북 지역에 들어가, 거기서 얻은 사진 1백 점을 산문과 곁들여 단행본 『침묵의 뿌리』를 펴냈다.
조씨의 렌즈는 실은 아마추어적인 것이다.
하지만 앵글을 결정하는 것은 손의 테크닉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일 것이다.
○ 목차
본서에는 목차가 없다. 첫 장에 이런 기록이 있다.
“지난 70년대에 나는 어떤 이의 말 그대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책 한 권을 써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그 책이다. 그때 나는 긴급하다는 한 가지 생각밖에 할 수가 없었다. 80년대에 들어와 바로 10년 전 그 생각에 사로잡혀 또 한 권의 책을 묶어낸다.”
○ 저자소개 : 조세희 (趙世熙)
소외된 도시 하층민의 삶을 다룬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통해 시대의 그림자를 밝혀온 소설가다.
1942년 경기도 가평에서 태어나 서라벌예술대학교 문예창작학과와 경희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1965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단편 「돛대 없는 장선」이 당선되어 등단했으나, 문단의 각광을 받기 시작한 것은 1975년 난장이 연작의 첫 작품인 『칼날』을 발표하면서부터이다. 1976년 난장이 연작 『뫼비우스의 띠』, 『우주공간』,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등을 발표하였으며, 1977년 역시 난장이 연작 『육교 위에서』, 『궤도회전』, 『은강 노동가족의 생계비』, 『잘못은 신에게도 있다』 등을 발표하였다.
1978년 『클라인씨의 병』,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 『에필로그』를 이전의 난장이 연작과 함께 묶어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라는 작품집을 출간하여, 문학적 성취와 상업적 성공을 함께 이룬 문제작으로 주목 받았다.
그의 난장이 연작은 1970년대 한국사회의 모순에 정면으로 접근하고 있다. 여기에서 난장이는 정상인과 화해하며 살 수 없는 대립적 존재로 등장하고 있으며, 1970년대 한국사회의 최대 과제였던 빈부와 노사의 대립을 극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소설적 접근을 통해 한국의 1970년대가 이 두 대립항의 화해를 가능케 할 만큼의 성숙에 이르지 못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또한 그는 가장 현실적인 문제를 그려내고 있는 난장이 연작에 환상적 기법을 도입함으로써, 계급적인 대립과 갈등이 마치 비논리의 세계나 동화의 세계에 존재하는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 그 결과 현실의 냉혹함은 더욱 강조된다.
연작 형식은 소설 양식의 확대를 가능하게 하면서 이야기 형식의 긴장과 이완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다. 이 같은 형식이 난장이 연작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1970년대 소설이 종래의 단편 형식으로는 현실에 적절히 대응할 수는 없으며 그렇다고 장편 양식으로 현실을 개괄할 수 있을 만큼의 성숙에는 이르지 못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 소설에서 볼 수 있는 주제와 양식과 기법에 대한 도전과 그 성과는 1970년대 문학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다.
그 밖의 작품으로는 『오늘 쓰러진 네모』 (1979), 『긴 팽이모자』 (1979), 『503호 남자의 희망공장』 (1979), 『시간여행』 (1983), 『하얀 저고리』 (1990)를 비롯하여, 소설집으로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1978), 『시간여행』 (1983)과 콩트를 사진과 함께 엮은 『침묵의 뿌리』 (1986), 희곡 『문은 하나』 (1966)가 있으며, 『잘못은 신에게도 있다』로 이상문학상을,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으로 동인문학상을 수상하였다.
‘난쏘공’ 이후에는 한 권씩의 소설집과 사진 산문집을 내놓았을 뿐 그는 글로 소통하는 대신 카메라를 들었다. 집회 현장을 빠짐없이 다니며 약자들의 투쟁을 렌즈에 담아왔으며, 언젠가 그간 찍은 사진을 정리해 후손들에게 전하는 메시지와 함께 남길 것이라고 한다. 광주 이야기를 담은 「하얀 저고리」 역시 언젠가는 세상에 내놓을 계획이다.
“’하얀 저고리’는 작품이 됐건, 안 됐건 끝내기는 할 것입니다. 한국에서 책 내서 만 명 정도 읽으면 읽을 사람은 다 읽은 거예요. ‘하얀 저고리’ 내서 만 명 정도 읽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병 걸리고 의식 잃고 하다보니 죽는 것 무섭습디다. 그렇지만 진짜 힘든 건 좋은 작품을 쓰는 거예요. 내가 이 세상에 살았다는 흔적이니까요”
○ 책 속으로
“나는 작가이다. 어떤 이의 말대로 소설 나부랑이나 쓰는 사람이기 때문에 작가는 물론 대단한 존재는 아니다. 그러나 작가인 나에게 유별난 것이 하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잘 잊는 것을 작가인 나는 좀처럼 잊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니 몇 해 전 이상 기후에 대해 내가 지금 이야기한다고 이상해 할 필요는 없다. …<중략>… 바닷가에서 아이들이 춥다는 말을 했다.
나는 작가이기 때문에 원고지 위에 농사를 지었다. 작가가 농민과 다른 점은 자기 농토가 없어도 작가는 먹고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농토가 없는 농민은 생각만 해도 가슴이 아프다. 나는 농민은 아니지만 이른 봄부터 서둘러 일을 했다. 내가 일할 때 우리 집 아이들은 숨을 죽이고 놀았다. 작은 아이가 소리를 내면 큰아이가 주의를 주었다.
“조용히 해.”
큰 아이는 형답게 말했다.
“형아, 왜 조용히 해?”
“아빠가 글을 써.”
작은 아이는 알았다는 듯 눈을 몇 번 깜박인 다음 형의 귀에 대고 이렇게 물었다.
“아빠가 글을 쓰면 또 책이 있어질 거지?”
그러나 아이들의 그해 협조는 아무 보람이 없었다.”—p.19~20
“나는 태연한 얼굴로 사진기를 메고 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내가 할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있어질 책이 없어졌지, 아빠?”
작은 아이가 나에게 물었다.
그 뒤의 나는 한 해에 한두 가지씩, 몇 가지 사실을 몇 해에 걸쳐 깨달았다. 첫 번째 해에 내가 알아낸 것은, 지구라는 우리 별 사십억 인구 가운데서 일억의 어린이들이 밤마다 배고파 칭얼대다가 잠이 든다는 것이었다. 두 번째 해에 깨달은 것은 일억의 두 배가 되는 이억의 어른이 밤마다 배고파 뒤척이며 잠을 청한다는 사실이었다.
어느 날, 전우주에 알려진 지구라는 인류의 고향 별 어느 곳에서는 그 수가 밝혀지지 않은 어린이와 어른들이 영양실조로 목숨을 잃었다.
세 번째 해에 나는 사십억 가운데서 일억의 어린이와 이억의 어른들이 날마다 과식을 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 가운데서 몇 천만 명은 혀를 즐겁게 해준 음식을 소화시키기 위해 노래하고 춤추고, 몇 백만 명은 운동을 하고, 다른 몇 십만 명은 즐거운 다음 식사 시간 전까지 먼저 먹은 것을 소화시키기 위해 소화제를 복용하고, 또 다른 몇 만 명은 치료를 받아야 할 지경이 되어 병원으로 달려갔다. 어느 날, 지구라 불리는 우리의 고향별 어떤 도시에서는 역시 그 수가 밝혀지지 않은 많은 사람들 가운데 얼마가 영양 과다 섭취에 의한 병을 얻어 싸우다 목숨을 잃었다.
지구에서는 못 일어날 일이 없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p.22~23
회의에 빠진 어떤 젊은 의사 하나는 어느 무더운 여름, 의사들의 낙원인 서울을 꿈꾸다 우연히 근무지의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의 복부에 유의하게 되었다. 배가 한쪽으로 삐져나온 사람들이 있었다. 막 부임해 간 곳에 그런 기형의 사람들이 눈에 띄는 이유가 몹시 궁금했던 그는 며칠을 보낸 끝에야 원인 규명에 성공했다. 이 이야기는 악몽으로 나에게 남아 있다. 재주 뛰어난 의사 하나가 복통을 일으키고 찾아간 주민들의 배를 덮어놓고 맹장이라는 이름으로 ‘칼 대 열었던’ 것이다. 수상한 의사들이 대개 그렇듯이 그도 뛰어난 기술을 갖고 있었다.— p. 95
그 역사가는 이렇게 썼다.
“러시아 황제는 만주에서 철병하며 코리아는 일본에게 맡겼다.” — p.121
그 결과 우리의 화려한 궁전과 교회, 거대한 공업도시가 생겨난 것이다. 그리고 경제적 위기가 있을 때는 식민지 시장이 그 타격을 완화시켜 주거나 역전시켰다. 부의 늪 속에 빠져 있는 유럽은 자기 주민들에게만 인간적 지위를 보장해 주고 있다. 우리에게 있어 인간이 된다는 것은 식민주의의 공범자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식민지 착취로 부터 이익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p.127
우리가 78년과 80년 수렁에 빠져 허위적거릴때 우리와 비슷한 시기에 출발한 다른 나라는 역사상 처음으로 저희 빈곤층이 소수가 되었다고 기뻐하고 있었다. 그들은 우리처럼 외채를 뒤집어쓰지도 않고, 또 우리땅 노동자들처럼 세계에서 제일 긴 노동시간을 기록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이루었다.—p.133
우리 시대의 희망이 한 쪽으로 몹시 기울어져 있는 일을 나는 슬퍼한다. 능력있는 사람, 많이 배운 사람, 똑똑한 사람, 힘 센 사람, 많이 가진 사람, 적당하게 가진 사람들이 협력해 우리 시대의 문제를 바로 짚기만 한다면, 우리는 그 좋은 희망이 여러 곳으로 퍼져 나가는 것을 지금 당장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국민학교에 갓 입학한 어린이까지 아는 민주주의를 더 이상 파괴하지 않으면서 고통받는 다수를 소수 쪽으로 옮겨놓는 일이다. 어려운 사람들의 생명이 지친 몸에 깃들어 있지 않게 하고도 다른 환경에 닿을 방법이 우리에게는 있을 것이다. — p.134
“1985년 3월, 나는 다시 사북에 다녀왔다.
금년은 해방 40년이 되는 해이다. 우리가 보낸 40년은 중세의 40년 또는 18,9세기의 40년이 아닌 바로 20세기의 40년이다. 나 개인에게도 1985년은 의미를 갖는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라는 소설을 쓰기 시작했던 것이 1975년인데, 어느 사이에 10년이 흘러간 것이다. 그 10년 속에 1980년이 들어 있었다.”—p.135
최근에야 나는 사진이 갖는 기능 가운데서 내가 힘 빌어야 할 한 가지를 발견했는데, 그것은 기본 과제 해결에 그렇게 열등할 수 없는 민족인 우리가 버려두고 돌보지 않는 것, 학대하는 것, 막 두들려 버리는 것, 그리고 어쩌다 지난 시절의 불행이 떠올라 몸서리치며 생각도 하기 싫어하는 것들을 다시 우리 것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즉 재소유시키는 기능이었다.— p.136
찰스 버어치라는 생물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공장에서의 생활이 비인간적이라면 개조되어야 할 것은 공장이다. 인간의 구제에는 인간이 살고 있는 세계의 구제가 포함된다.”—p.245
야스퍼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간다운 인간들 사이에는 연대감이 존재하기 때문에 개개인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잘못된 일과 불의, 특히 그 앞에서 또는 그가 알고 있는 가운데 저질러지는 범죄 행위들에 대해 책임을 지게 되는 것이다. 그것들을 저지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으면 그때 나는 그것들에 대한 책임을 같이 나누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물론 남의 말이다.
우리는 80년대에 또 어떤 진행을 맞게 될까? 당신은 아는가?—p.263
“야스퍼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간다운 인간들 사이에는 연대감이 존재하기 때문에 개개인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잘못된 일과 불의, 특히 그 앞에서 또는 그가 알고 있는 가운데 저질러지는 범죄 행위들에 대해 책임을 지게 되는 것이다. 그것들을 저지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으면 그 때 나는 그것들에 대한 책임을 같이 나누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물론 남의 말이다.
우리는 80년대에 또 어떤 진행을 맞게 될까? 당신은 아는가?”—마지막 장에서
○ 출판사 서평
소설가인 저자의 단편소설 3편과 에세이, 그리고 강원도 사북, 을숙도 등지에서 찍은 사진 100점을 모아 엮었다.
저자의 소설들은 그 구도와 표현기법이 시각적 이미지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그의 가장 호소력 있는 문장들은 영상효과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그의 쏜살 같은 문장들은 수많은 설명을 과감히 버리고, 몇 개 이미지의 징검다리만을 밟으며 앞으로 달려간다.
그렇게 달려가는 산문의 숨결은 위태위태한 조바심을 느끼게 하지만, ‘설명’을 넘어서는 영상을 독자의 상상 속에 심어 놓는다.
여기에 실린 사진은 삶의 현장에 관한 사진이지만 그 가열함을 직접적으로 노출시키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소설기법에 닿아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지난 70년대에 나는 어떤이의 말 그대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책 한권을 써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그 책이다. 그때 나는 긴급하다는 한 가지 생각밖에 할 수가 없었다. 80년대에 들어와 바로 10년 전 그 생각에 사로잡혀 또 한 권의 책을 묶어낸다. 나는 작가로서가 아니라 이땅에 사는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그 동안 우리가 지어온 죄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소설가인 조세희가 단편소설 세편과 에세이 그리고 그가 글을 쓸 수 없었던 지난 몇 년 동안 강원도 사북 (舍北)과 낙동강 하구 을숙도 (乙淑島) 등지에서 찍은 사진 백여 점을 모아 엮었다. 이 책은 죄에서 시작해서 죄의 문제로 끝난다. 그리고 그 죄는 한 개인의 사적인 죄가 아니라 사회적․집단적 불의에 책임을 지지 않는 우리 공동의 죄이다. 죄에 대한 분노와 그것의 무책임이 빚어낼 사태에 대한 경고로 응어리진 이 책은 우리의 안일한 내면 속에 깊은 감동을 일으킨다.
이 책이 갖는 특이한 면은 백여 점의 사진을 글과 함께 실었다는 점뿐만 아니라 그의 글이 그의 삶과 뒤섞여 시민으로서의 조세희와 작가 조세희가 구별없이 나타나 있다는 점이다. 이 사진과 글은 작가 조세희가 ‘슬프고 겁에 질린 이 시대’에 던지는 진실한 증언이자, 책임의식의 표현이며, 또 침묵의 외침이기도 하다. 또한 그의 호소력 있는 문장들은 영상효과에 의존하고 있어서, 수많은 설명을 과감히 버리고 몇 개의 이미지의 징검다리만을 밟으며 앞으로 달려간다. 그렇게 달려가는 그의 산문의 숨결은 ‘설명’을 넘어서는 영상을 독자의 상상속에 심어 놓는다. 이 작품집에 실린 삶의 현장에 관한 사진들도 그 가열함을 직접적으로 노출시키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소설기법과 닮아 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