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카인
원제 : Caim (2009년)
주제 사라마구 / 해냄 / 2015.12.25
하나님이 자신보다 동생 아벨을 더 사랑한다고 믿은 나머지, 동생을 죽이고 하나님으로부터 도망친 카인은 놋 땅으로 간 뒤 어떤 삶을 살았을까? 정말 하나님은 카인은 저버리고 아벨만 좋아하신 걸까?
주제 사라마구의 장편소설 <카인>은 구약성경 창세기 4장에서 동생 아벨을 죽인 죄로 하나님에 의해 이마에 낙인찍힌 이후 성경에는 더 이상 비중 있게 등장하지는 않지만, 21세기를 사는 지금까지 인간의 죄와 회개를 촉구하는 데 거론되는 ‘죄 지은 자’ 카인의 눈을 통해 신의 존재와 역할에 의문을 제기하고 인간 세상을 되돌아본 작품으로, 2009년 작가가 포르투갈어로 처음 발표한 이후 27개국에 소개되며 전 세계 독자들을 감동시키고 의식을 환기해 왔다.
사라마구는 카인이 10여 년 동안 떠돌면서 창세기 속 사건을 곁에서 보고 느끼며 직접 경험하는 이야기 형식을 빌려 소설을 전개한다. 이 작품의 영어판 출간 시 「퍼블리셔스 위클리」는 “숨막힐 듯 놀라운 상상력을 가진, 199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포르투갈의 작가 주제 사라마구는 마지막 소설을 위해 성서적인 주제를 한껏 즐겼다”라 평하였고, 「뉴요커」에서는 “불경스럽게도 구약성경을 개작하면서도 장난스럽고 수다스러운 작가 특유의 서술로 구약성경 속 하나님의 논리에 허를 찌른다”라고 극찬했다.
○ 저자소개 : 주제 사라마구 (José de Sousa Saramago, 1922 ~ 2010)
주제 드 소자 사라마구 (포: José de Sousa Saramago, 1922년 11월 16일 ~ 2010년 6월 18일)는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포르투갈의 소설가이자 언론인이다. 우화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그의 작품들은, 대개 현재의 체제를 전복시키는 역사적 사건을 조명함으로써 인간의 본성을 역설하였다. 1998년 95번째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였으며, 2010년 지병으로 인한 다발성 장기 부전으로 세상을 떠났다.
1922년 포르투갈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용접공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사라마구는 1947년 『죄악의 땅』을 발표하면서 창작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 후 19년간 단 한 편의 소설도 쓰지 않고 공산당 활동에만 전념하다가, 1968년 시집 『가능한 시』를 펴낸 후에야 문단의 주목을 받는다. 사라마구 문학의 전성기를 연 작품은 1982년작 『수도원의 비망록』으로, 그는 이 작품으로 유럽 최고의 작가로 떠올랐으며 1998년에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20세기 세계문학의 거장으로 꼽히는 사라마구는 환상적 리얼리즘 안에서도 개인과 역사, 현실과 허구를 가로지르며 우화적 비유와 신랄한 풍자, 경계 없는 상상력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문학세계를 구축해왔다. 왕성한 창작 활동으로 세계의 수많은 작가를 고무하고 독자를 매료시키며 작가 정신의 살아 있는 표본으로 불리던 그는 2010년 여든일곱의 나이로 타계했다.
– 역자: 정영목
서울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전문번역가로 활동하며 현재 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 교수로 재직중이다. 지은 책으로 『완전한 번역에서 완전한 언어로』 『소설이 국경을 건너는 방법』이 있고, 옮긴 책으로 『클레이의 다리』 『바르도의 링컨』 『로드』 『말 한 마리가 술집에 들어왔다』 『새버스의 극장』 『미국의 목가』 『에브리맨』 『울분』 『포트노이의 불평』 『바다』 『하느님 이 아이를 도우소서』 『달려라, 토끼』 등이 있다. 『로드』로 제3회 유영번역상을, 『유럽 문화사』로 제53회 한국출판문화상(번역 부문)을 수상했다. 접기
○ 책 속으로
둘째로, 여호와가 앞날을 보는 데 개탄할 만큼 둔했다는 것인데, 만일 정말로 그들이 그 열매를 먹는 것을 그가 바라지 않았다면 그냥 그 나무를 심지 않거나 다른 곳에 두거나 철조망으로 둘러싸면 될 일이었기 때문이다. (p.14)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니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너는 네가 나온 흙으로 다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을 것이다, 가엾은 아담,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 여호와는 그렇게 말하고 난 뒤 허공에서 동물 가죽 두 개를 끄집어내 아담과 하와의 벗은 몸을 가려주었으나, 두 사람은 서로 한쪽 눈을 찡긋했다. 두 사람은 첫날부터 벗은 것을 알았고 그것을 한껏 이용해 왔기 때문이다. 이윽고 여호와가 말했다,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하나님같이 되었으니, 네가 생명나무 열매도 따 먹는다면 영생을 할 것이다, 그다음에는 어찌 될지 몰라도 어쨌든 우주에 하나님이 둘이 되는 셈이므로 너와 네 아내를 에덴동산에서 쫓아내는 것이다, 동산 입구에는 불 칼로 무장한 천사를 두어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겠다, 이제 가라, 떠나라, 너희를 다시 보고 싶지 않구나. 냄새 나는 동물 가죽을 입고 휘청거리는 다리로 비틀거리며 걷는 아담과 하와는 처음으로 직립한 오랑우탄 두 마리와 비슷해 보였다. 에덴동산 밖의 땅은 황량한 불모지였다. 여호와가 가시와 엉겅퀴로 아담을 협박한 것이 과장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가 제대로 말했듯이, 이제 편한 생활은 끝난 것이다. P. 20~21
네 아우가 어디 있느냐, 여호와가 묻자 카인은 질문으로 대답했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입니까. 네가 네 아우를 죽였구나. 네, 죽였습니다, 하지만 진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주이십니다, 주가 내 생명을 파괴하지 않았다면 나는 아우를 위해 내 생명이라도 주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너를 시험하는 문제였다. 주께서 직접 창조한 것을 왜 시험한단 말입니까. 나는 만물의 주권자인 여호와기 때문이다. 다른 모든 존재에 관해서 말씀하시는 것은 좋지만, 저와 내 자유에 관해서는 말씀하지 마십시오. 뭐, 죽이는 자유 말이냐. 주에게 내가 아벨을 죽이는 것을 막을 자유가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주께서 얼마든지 하실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p.39)
저곳을 덮은 피는 내가 흐르게 한 것이 아니며, 너는 선과 악 사이에서 선택을 할 수 있었지만 악을 택했으니 대가를 치러야 한다. 망을 봐주려고 자리를 뜨지 않은 사람도 실제로 포도밭에 들어가는 자와 마찬가지로 도둑입니다, 카인은 말했다. (p.40)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말 또한 그 나름의 이유와 원인이 있다. 어떤 말은 마치 대단한 일을 할 운명인 것처럼 엄숙하게, 오만하게, 우리를 부르지만 결국에는 너무 가벼워 풍차의 날개 하나 움직이지 못하는 바람에 불과하다는 것이 드러나고, 반면 평범하고 습관적인 말, 매일 사용하는 말이 결국 누구도 감히 예측할 수 없었던 결과를 낳아, 그런 목적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지만 세계를 흔들기도 한다. 감독은, 안으로, 하고 말했고, 그것은, 안으로 들어가서 진흙을 밟고 일용할 양식을 벌어, 하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몇 주 뒤 릴리스가 이름이 아벨이라고 들은 남자를 불러 똑같은 말, 글자 하나 다르지 않고 똑같은 말, 안으로, 라는 말을 하게 된다.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일에서는 아주 신속하다는 평판을 얻고 있는 여자가 침실 문을 여는 데 몇 주나 걸렸다는 것은 아주 이상해 보일지 모르지만, 여기에도 이유가 있는 것이고 그 점은 곧 분명해질 것이다. P. 61~62
카인은 아벨이었고 지금은 카인입니다, 또 카인을 죽이려고 잠복시켰던 자들도 목숨을 빼앗으시지요. 카인은 어디 있나, 이제 그게 그자 이름이라니 그렇게 불러야겠지. 내 침실에 안전하게 있습니다. 정적이 손에 만져질 듯했다. 이윽고 노아가 말했다, 나는 당신이 일어났다고 말하는 일과 아무런 관련이 없네. 조심하세요, 노아, 거짓말은 비겁한 짓 가운데도 최악이에요. 하지만 거짓말이 아니야. 겁쟁이에다 거짓말까지, 그 노예한테 뭘 하라고, 어디서 어떻게 하라고 말한 건 당신이에요, 아마 바로 그 노예한테 내 행동을 훔쳐보고 보고하라고도 했겠지요, 나는 뭘 하든 다 공개적으로 하니까 필요 없는 일이었는데도. 나는 당신 남편이니 존경받을 자격이 있어. 네, 그 말이 맞을지도 몰라요, 사실 존경해야죠. 그런데 뭘 기다리는 거야, 노아는 말하며 전혀 느껴지지도 않는 노여움을 흉내 냈다. 여전히 그녀의 비난으로 떨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 아무것도 기다리지 않아요, 그냥 당신을 존경하지 않을 뿐이죠. P. 81
그들이 그렇게 올라가는 동안, 여호와가 신뢰할 존재가 아니라는 추가의 증거로, 이 모든 일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알아두는 것이 좋겠다. -p. 94
아브라함은 여호와만큼이나 대단한 개자식일뿐 아니라 갈라진 혀로 누구라도 속일 준비가 되어 있는 유능한 거짓말쟁이였는데, 이 경우 이것른 이 이야기의 서술자가 가지고 있는 개인적인 사전에 따르면 불충하다, 불성실하가, 거짓되다, 의리 없다 등등과 기타 비슷하게 훌륭하기 짝이 없는 자질을 의미한다. -p. 95
이삭이 물었다, 아버지, 제가 아버지한테 무슨 짓을 했기에 아버지는 저를, 아버지의 독자를 죽이고 싶어 하셨나요. 너는 잘못한 게 하나도 없다, 이삭. 그런데 왜 마치 제가 어린 양이라도 되는 것처럼 제 목을 따고 싶어 하셨나요, 아들이 물었다, 만일 그 사람, 여호와께서 그 사람을 축복하시기를, 그 사람이 나타나 아버지의 팔을 잡지 않았다면, 아버지는 지금 시체를 안고 집에 가시는 중일 겁니다. 그건 여호와의 생각이었다, 시험을 해보시려는 거였지. 무엇을 시험하는데요. 나의 믿음과 나의 복종을. 도대체 무슨 하나님이 아버지더러 자기 아들을 죽이라고 명령합니까. (p.97-98)
사람들은 사전이나 통역의 도움을 받지 못한 채,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바스크어로 말하고 있었고, 일부는 라틴어와 그리스어, 심지어, 누가 생각이냐 했겠냐만, 포르투갈어로 말하고 있었다. 왜 이런 부조화가 일어난 겁니까, 카인이 묻자 남자는 대답했다, 우리는 동쪽에서 이곳에 정착하러 왔지요, 모두 같은 언어를 사용했어요. 그 언어는 뭐라고 불렀나요, 카인이 물었다. 그거 하나뿐이었기 때문에 이름이 필요 없었습니다, 그냥 언어였죠. (p.102-103)
롯의 아내는 뒤돌아보지 말라는 명령을 어기는 바람에 소금 기둥이 되었다. 하지만 누구도 왜 그녀가 그런 벌을 받아야 했는지 그 이후로 아무도 설명하지 못했다. 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고 싶은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기 때문이다. 여호와가 호기심을 치명적인 죄로서 벌하고 싶어한 것일 수도 있지만, 만일 그렇다면 우리는 그의 지능을 다시 보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 벌어진 일도 마찬가지다. 만일 하와가 아담에게 그 열매를 먹으라고 주지 않았다면, 하와 자신이 그것을 먹지 않았다면, 그들은 여전히 에덴동산에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인데 우리는 그 생활이 얼마나 지루할지 잘 알고 있다. (p.116-117)
돌아오는 길에 그들은 우연히 아브라함이 여호와와 이야기를 했던 곳에서 잠깐 발을 멈추었고, 그때 카인이 말했다,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생각이 있습니다. 그게 뭐요, 아브라함이 물었다. 불에 타버린 소돔과 다른 도시들에도 틀림없이 죄 없는 사람이 있었을 겁니다. 그랬다면 여호와가 그들의 목숨을 구해주겠다고 내게 하신 약속을 지켰겠지요. 아이들은 어떻습니까, 카인이 물었다, 아이들은 틀림없이 죄가 없었을 텐데요. 맙소사, 아브라함이 중얼거렸다. 그의 목소리는 신음 같았다. 그래요, 노인장의 하나님일지는 모르나 그 사람들의 하나님은 아닌 거지요. (p.117)
모세는 선언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각각 허리에 칼을 차고 야영장 이 문에서 저 문까지 왕래하며 각 사람이 그 형제를, 각 사람이 자기의 친구를, 각 사람이 자기의 이웃을 죽이라 하셨다. 이런 식으로 거의 삼천 명이 죽었다. 땅에서 솟아 나온 큰물처럼 천막들 사이로 피가 흘러, 마치 땅 자체가 피를 흘리고 있는 것 같았다. 어디에나 목이 베었거나 창자가 밖으로 늘어진 채 둘로 갈라진 몸통이 늘어져 있었으며, 부녀자들의 비명은 너무 커서 여호와가 복수를 기뻐하고 있을 시나이 산 꼭대기에도 이르렀을 것이다. 카인은 눈에 보이는 광경을 믿을 수가 없었다. 소돔과 고모라를 잿더미로 만드는 것도 여호와에게는 충분하지 않았던 것이 분명했으니, 여기, 시나이 산 아래 그의 사악함을 명백하고 논란의 여지없이 보여주는 증거가 있었던 것이다. 단지 황금 송아지를 만든 것에, 그런 경쟁자로 여겨지는 존재를 만든 것에 여호와가 분노했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한 삼천 명이 있었던 것이다. (p.121-122)
카인은 릴리스에게 여호와로부터 아들을 희생으로 바치라는 명령을 받은 아브라함 이라는 사람, 또 하늘에 닿기를 바라던 사람들이 지은 거대한 탑과 그것을 여호와가 허리케인으로 땅에 쓰러뜨린 사건, 또 남자들이 다른 남자들과 동침하는 것을 더 좋아하는 도시와 여호와가 미래에 무엇을 바라게 될지 알지도 못하는 아이들은 생각하지도 않고 그들 위에 벌로 불과 유황을 내린 사건, 또 시나이라고 부르는 산의 기슭에 모인 엄청난 사람들과 그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겼다가 그 죄로 죽임을 당한 사건, 이스라엘 백성이라고 알려진 군대에 속한 서른여섯 명을 감히 죽인 도시와 마지막 어린아이까지 완전히 사라져버린 그 주민, 또 여리고라고 부르는 다른 도시와 그 성벽이 숫양의 뿔로 만든 나팔 몇 개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로 무너지고 안에 있던 모든 것, 남녀, 노소, 심지어 소, 양, 나귀까지 다 죽은 사건에 관해 이야기하였다. (p.153-154)
미래는 이미 적혀 있어요, 우리가 그것이 적힌 페이지를 읽는 법을 모를 뿐입니다, 카인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자신이 어디에서 이런 혁명적인 생각을 발견했는지 의아했다. 너는 왜 네가 그런 경험을 할 사람으로 선택받았다고 생각하는 거야. 글쎄요, 내가 선택받은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배웠어요. 그게 뭔데. 우리 하나님, 하늘과 땅의 창조자는 완전히 미쳤다는 것. 감히 여호와 하나님이 미쳤다고 말하는 거야. 오직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 모르는 미친 자만이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이 자신의 직접적임 책임이라고 이정하고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할 겁니다, 물론 진짜, 진정한 광기에 사로잡힌 경우가 아니라 진짜 단순한 악에 불과하다면 이야기가 다르지만. 하나님은 절대 악할 수가 없어, 악하다면 하나님이 아니지, 악은 악마에게나 해당하는 거야. 하나님이라 해도 단지 믿음을 시험하기 위해 아버지에게 자식을 죽여 장작 위에 올려놓고 태우라고 명령하는 건 옳을 수가 없어요, 가장 사악한 악마라도 어떤 사람한테 그런 걸 명령하지는 않을 겁니다. (p.154-155)
당신도 내가 본 것을 보았다면 같은 여자일 수가 없을 겁니다, 하늘의 불로 타서 재가 되어버린 소돔의 아이들을 보았다면. 소돔이 어디야. 남자가 여자보다 남자를 좋아하는 도시지요. 그래서 모두 죽임을 당한 거야. 모두, 한 사람도 탈출하지 못했어요, 생존자는 없었어요. 그 남자들이 냉대한 여자들도, 릴리스가 다시 물었다. 여자들도. 여자란 게 그래, 비에 당하지 않으면 바람에 당하지. 어쨌든 이제 죄 없는 사람들은 죄인의 대가를 치르는 데 익숙해졌어요. 여호와는 정의 관념이 아주 이상한 모양이군. 네, 인간의 정의가 어때야 하는지 조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자의 관념입니다. (p.155)
내가 제대로 이해한 거라면 여호와와 사탄이 내기를 했는데, 이 욥이라는 사람은 자기를 두고 하나님과 악마라는 두 도박사가 협정을 맺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거네요. 그렇지, 두 천사가 목소리를 합하여 소리를 질렀다. 여호와가 그렇게 하는 건 공정하지 않은 것 같은데요, 카인이 말했다. 만일 내가 들은 대로 욥이 그 모든 부에도 불구하고 선하고 정직한 사람이 맞고 또 신앙도 깊다면 그 사람은 죄를 짓지 않았다는 것인데, 그런데 아무런 이유도 없이 돈과 소유를 모두 잃는 벌을 받을 참이라니, 다른 많은 사람들은 여호와가 의롭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나는 그렇다고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으니 아브라함에게 일어났던 일이 떠오르는군요, 여호와는 아브라함을 시험하기 위해 아들 이삭을 죽이라고 명령했지요, 여호와가 자신을 믿는 사람들을 신뢰하지 않는데, 왜 그 사람들이 여호와를 신뢰해야 하는지 나는 정말 모르겠습니다. (p.162-163)
카인은 인간의 표현을 사용하자면 동지애와 우정의 유대라고 묘사할 수 있는 관계를 확립한 천사 둘에게, 정말로 지금 인류를 멸하고나면, 그다음에 나오는 인류는 똑같은 오류, 똑같은 유혹, 똑같은 어리석음과 범죄에 빠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들은 대답했다, 우리는 천사에 불과해, 우리는 네가 인간 본성이라고 부르는 이 불가해한 그림자극에 관해 아는 게 거의 없어, 하지만 정말 솔직히 말해서, 우리도 어떻게 두 번째 실험이 첫 번째보다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어, 첫 번째 실험은 우리가 지금 눈앞에 보고 있는 일련의 긴 참사들로 끝이 났는데 말이야, 간단히 말해서, 천사로서 우리의 솔직한 의견으로는, 모든 증거를 볼 때, 우리는 인간이 삶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믿지 않아. 정말로 인간이 살 자격이 없다고 믿나요, 충격을 받은 카인이 물었다. 우리는 그렇게 말한 게 아니야, 우리가 한 말은, 반복하지만, 오랜 세월에 걸쳐 인간의 행동을 살펴볼 때 그 많은 어두운 면, 그 모든 아름다움, 웅장함, 장엄함이 있는 삶을 받을 자격이 없다는 거야, 한 천사가 대답했다. (p.189-190)
모든 것이 가능하다. 그래, 모든 것이 가능하다. 심지어 목숨을 며칠 더 부지할 수 있게 열매 몇 개만 따 올 테니 에덴동산에 좀 들어가게 해달라고 천사에게 부탁해 보자는 하와의 범상치 않은 생각조차 가능하다. 여느 남자와 마찬가지로 아담은 무엇이 되었건 여자의 뇌에서 태어난 기획이라면 그 성공 가능성에 회의적이었기에 하와더러 실망할 각오를 하고 혼자 가라고 말했다. (…) 미쳤군. 심약한 것보다는 미치는 게 나아. 나한테 불손하게 굴지 마, 아담은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다, 게다가 나는 심약하지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아. 그건 나도 마찬가지니 그럼 우리는 비긴 거네, 더 할 말 없어. 좋아, 하지만 여기서는 내가 명령을 내리는 사람이라는 걸 잊지 마. 여호와도 그렇게 말했지, 하와는 그렇게 동의는 했지만 표정만 보면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사람 같았다. (24,25쪽)
그들을 에덴동산에 들이지 말라는 임무를 맡은 천사 경비원 아자엘은 기독교인 같은 태도로 그들을 환영하고, 먹을 것을 주었으며, 무엇보다도 평생 도움이 될 몇 가지 귀중한 아이디어를 전해주었는데, 이것이야말로 몸, 따라서 영혼의 구원을 위한 진정한 길이었다. 이 부부는 그에게 아무리 감사해도 모자랄 지경이었으니, 심지어 하와는 아자엘을 끌어안고 눈물을 몇 방울 흘리기도 했다. 이런 애정 표시에 그녀의 남편은 몹시 불쾌하여, 나중에 목구멍에서 튀어나오는 그 질문을 누를 수가 없었다, 혹시 그자에게 대가로 뭘 준 거 아냐. 누구한테 뭘 줘, 하와는 남편이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알면서 그렇게 물었다. 누구라고 생각해, 그자에게, 아자엘에게 말이야, 아담은 조심스럽게 두 가지 질문 내용 가운데 한 가지는 빼고 말했다. 그분은 천사야, 그룹 중의 하나라고, 하와는 대답했고, 더 말할 필요도 없다고 느꼈다. 어떤 사람들은 이날 진짜로 성의 전쟁이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32,33쪽)
정 그러고 싶다면 노예를 시키세요. 아니, 노예를 보내 죽일 만큼 노아를 경멸하지는 않아. 하지만 나는 노예인데 내가 노아를 죽이기를 바라잖습니까. 그건 다르지, 내 침대에 누운 남자는 노예가 아니야, 아니, 노예일지도 모르지만, 나와 내 몸에만 노예일 뿐이야. 왜 직접 죽이지 않나요, 카인이 물었다. 왜냐하면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럴 능력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야. 남자는 여자를 매일 죽이는데요, 누가 알아요, 노아를 죽여서 부인이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낼지. (83,84쪽)
하지만 이해해야 한다, 내 아들아, 너한테는 선택권이 없어, 그리고 이제 부탁을 한 가지 해야겠구나, 작은 부탁이다. 뭔데요. 여기에서 일어난 일은 잊자꾸나. 글쎄요, 그럴 수 있을지 자신이 없네요, 지금도 제가 묶인 채 장작더미 위에 올라가 있고, 아버지가 팔을 들어 올리고, 칼날이 번쩍이는 게 눈에 보여요. 그건 내가 아니었다, 나는 제정신일 때는 절대 그런 일을 하지 않아. 여호와가 사람들을 미치게 만든다는 뜻인가요, 이삭이 물었다. 그래, 자주 그러지, 거의 언제나 그러지, 아브라함이 대답했다. 그게 사실이라 해도 손에 칼을 쥔 사람이 아버지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어요. 여호와는 모든 걸 짜놓으시지, 마지막 순간에 개입하셨을 거야, 실제로 너도 천사를 보았잖느냐. (…) 아버지, 제가 죽었느냐 안 죽었느냐가 핵심이 아니고, 물론 저한테는 그것도 아주 중요한 문제인 게 분명하지만, 우리가 그런 여호와, 바알만큼 잔인한 여호와, 자신의 자식들을 집어삼키는 여호와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 핵심이에요. (99,100쪽)
카인은 살인자일지는 모르나 기본적으로 정직한 사람이며, 릴리스를 만나 여자의 기쁨을 만끽한 방탕한 세월조차, 부르주아의 눈에는 괘씸해 보일지 몰라도, 그의 타고난 도덕적 감각을 바꾸어놓지는 못했다. 그가 용감하게 하나님과 맞서는 모습만 보아도 그것을 알 수 있다. 솔직히 말해, 아직 따뜻한 아벨의 시신을 두고 둘이 토론을 벌였음에도, 여호와는 아직 카인의 그런 태도를 눈치채지 못했지만. (173,174쪽)
카인의 협력은 점점 더 중요해졌는데, 그럼에도 카인이 먼저 움직이고 싶어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자 노아는 그와 남자 대 남자로서 이야기를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 노아가 말하며 카인에게 다 알지 않느냐는 듯이 한쪽 눈을 찡긋했다. 어르신의 부인까지 포함한다는 건가요, 카인이 물었다. 그래, 꼭 그렇게 해주게. 그 여자는 내 아내니까 내 마음대로 해도 되거든. 게다가 이건 명분도 있으니까요, 카인이 말했다. 신성한 명분이지, 여호와라는 명분일세, 노아도 상황에 어울리는 엄숙한 말투로 동의했다. (202쪽)
너는 진실로 카인, 아우를 죽인 그 비열하고 악한 자로구나. 당신만큼 비열하고 악하지는 않습니다, 소돔의 아이들을 잊지 마십시오. 크나큰 정적이 흘렀다. (206쪽)
○ 출판사 서평
『예수복음』을 신약성서에 더하고 『눈먼 자들의 도시』로 묵시록을 재해석한 주제 사라마구, 『카인』으로 구약성서를 가로지르다!
– 독특한 내레이션 방식, 우화적 수법, 환상적 요소의 도입으로 구약성서를 재해석한 주제 사라마구 불후의 작품
하나님이 자신보다 동생 아벨을 더 사랑한다고 믿은 나머지, 동생을 죽이고 하나님으로부터 도망친 카인은 놋 땅으로 간 뒤 어떤 삶을 살았을까? 정말 하나님은 카인은 저버리고 아벨만 좋아하신 걸까?
주제 사라마구의 최신간 장편소설 『카인』은 구약성경 창세기 4장에서 동생 아벨을 죽인 죄로 하나님에 의해 이마에 낙인찍힌 이후 성경에는 더 이상 비중 있게 등장하지는 않지만, 21세기를 사는 지금까지 인간의 죄와 회개를 촉구하는 데 거론되는 ‘죄 지은 자’ 카인의 눈을 통해 신의 존재와 역할에 의문을 제기하고 인간 세상을 되돌아본 작품으로, 2009년 작가가 포르투갈어로 처음 발표한 이후 27개국에 소개되며 전 세계 독자들을 감동시키고 의식을 환기해 왔다.
사라마구는 카인이 10여 년 동안 떠돌면서 창세기 속 사건을 곁에서 보고 느끼며 직접 경험하는 이야기 형식을 빌려 소설을 전개한다. 카인에게 비춰지는 하나님의 형상은 결코 너그럽지도 자애롭지도 않다. 아들을 희생으로 바치라는 여호와의 명령을 아브라함이 받는 모습, 하늘에 닿고자 거대한 탑을 짓는 사람들을 향해 여호와가 허리케인으로 한 일, 여호와가 미래에 무엇을 바라게 될지 알지도 못하는 아이들은 생각하지도 않고 그들 위에 벌로 불과 유황을 내리는 광경, 시나이라고 불리는 산의 기슭에 모인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겼다가 그 죄로 죽임을 당하는 사건, 이스라엘이라고 알려진 군대에 속한 병사 서른여섯 명을 감히 죽인 도시와 마지막 어린 아이까지 완전히 사라져 버린 그 주민, 또 여리고라고 부르는 다른 도시와 그 성벽이 숫양의 뿔로 만든 나팔 몇 개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로 무너지고 안에 있던 모든 것-남녀, 노소, 심지어 소, 양, 나귀까지 다 죽은 사건 등을 직접 경험하는 카인은 계속해서 하나님의 존재를 되묻기에 이른다.
이 작품의 영어판 출간 시 《퍼블리셔스 위클리》는 “숨막힐 듯 놀라운 상상력을 가진, 199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포르투갈의 작가 주제 사라마구는 마지막 소설을 위해 성서적인 주제를 한껏 즐겼다”라 평하였고, 《뉴요커》에서는 “불경스럽게도 구약성경을 개작하면서도 장난스럽고 수다스러운 작가 특유의 서술로 구약성경 속 하나님의 논리에 허를 찌른다”라고 극찬했다.
하나님께 내쫓기고 나서 신의 본질에 의문을 제기하는 카인의 모습은 하나님의 엄격한 기준으로 잰다면 매일매일 죄를 짓고 살아가는 우리 인간과 같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시간을 부여받는 이때, 묵은 죄를 반성하고 새 희망을 꿈꾸는 시기에 만나는 주제 사라마구의 장편소설 『카인』은 신과 인간의 관계 속에서 인간의 방향성에 대해 다시금 곱씹어보게 한다는 점에서 꼭 읽어봐야 할 명작이다.
주제 사라마구의 [인간의 조건 3부작] 『눈먼 자들의 도시』 『동굴』 『도플갱어』와 함께 『돌뗏목』 『리스본 쟁탈전』, 그리고 『눈뜬 자들의 도시』 『이름 없는 자들의 도시』 『수도원의 비망록』 『예수복음』 등으로 심도 있는 작품에 목말라하는 독자들의 욕구를 꾸준히 충족시켜 온 (주)해냄은 앞으로 신작 『코끼리의 죽음』(가제)과 초기작 『바닥에서 일어서서』『히카르두 헤이스가 죽은 해』 등을 계속 출간하며 ‘주제 사라마구가 펼쳐내는 알레고리의 세계’로 독자들을 인도할 계획이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