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크라튈로스 (Kratylos)
플라톤 / 김인곤 역 / EJB / 2007.7.6

‘있는 것들’ 각각에는 ‘이름’의 올바름이 자연적으로 있는가, 아니면 합의나 관습에 따라 있는가. 이름에 관한 이 흥미로운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크라튈로스’는 언어에 대해 논한 현존하는 최고 (最古)의 문헌들 중 하나로 간주된다. 이름의 올바름에 관한 이 논의는 대화편 말미에 이르러 사물에 대한 앎을 얻는 가장 올바른 방법은 사물들의 이름을 통해 아는 것인가, 아니면 사물들 자체를 통해 아는 것인가 하는 인식론적인 문제로까지 넘어간다.
이 대화편을 연구하는 몇몇 학자들은 이 대화편에 드러난 주된 관심이 이름의 올바름에 관한 문제보다 인식론적 문제에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름의 올바름에 관한 문제가 과연 부수적인 관심사였는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플라톤이 인식론적 문제에 큰 관심을 가졌다는 사실만은 분명히 확일할 수 있다. 그는 이 문제에서 자신에게 철학적 영향을 주었던 두 스승, 즉 크라튈로스와 소크라테스를 첨예하게 대립시키고, 결국 소크라테스의 신념을 택한다.
이처럼 ‘크라튈로스’에서 우리는 언어철학적 문제뿐 아니라, 인식론적 문제, 존재론적 문제, 언어학의 문제까지 아우르고 있는 플라톤의 사상을 두루 접해 볼 수 있다.
○ 목차
‘정암학당 플라톤 전집’을 펴내며
작품해설
작품개요
등장인물
본문과 주석
부록
옮긴이의 글
참고 문헌
찾아보기

○ 저자소개 : 플라톤(Platon)
플라톤은 그 유명한 펠로폰네소스전쟁이 시작된 지 4년째 되는 해, 그리스 아테나이에서 태어났다. 전쟁은 기원전 404년 아테나이의 패배로 끝났으므로 전쟁 속에서 태어나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성장했다. 플라톤 집안은 비교적 상류계급이었고 그러한 배경의 귀족 출신 젊은이답게 정계 진출을 꿈꾸었지만, 믿고 따르던 스승 소크라테스의 죽음에 정치적인 배경이 있음을 알고 철학을 통해 사회의 병폐를 극복하기로 결심한다. 자주 외국 여행길에 올라 이집트·남이탈리아·시칠리아 등지로 떠났던 플라톤은 기원전 4세기 초 아테나이로 돌아와 서양 대학교의 원조라 할 아카데메이아 학원을 열고 철학의 공동 연구, 교육, 강의를 시작했다. 그곳을 통해 뛰어난 수학자와 높은 교양을 갖춘 정치적 인재들,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철학자들을 배출하며 집필활동에 전념한다. 주로 스승 소크라테스가 등장해 대화를 주도하는 철학적 대화편을 집필하는데, 그러한 대화편이 무려 25편에 달한다. 『소크라테스의 변론』 『크리톤』 『이온』 『프로타고라스』 『메논』 『파이돈』 『파이드로스』 『국가』 『향연』 『필레보스』 『소피스트』 『정치가』 『티마이오스』 『법률』 등을 남겼다.
– 역자 : 김인곤
성균관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 철학과에서 플라톤에 관한 연구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선임연구원을 역임하였고, 현재 외국어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으며, 정암학당 연구실장으로 그리스 고전 철학 원전 강독과 번역을 주로 하고 있다. 논문으로는 〈플라톤의 ‘파르메니데스’에서 가설적 방법〉(1997), 〈아낙시만드로스의 아페이론〉(2002) 등이 있으며, 번역서로는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2005, 공역)이 있다.
– 역자 : 이기백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같은 대학 인문과학연구소 선임연구원과 정암학당 상임연구원을 역임했다. 또한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의사학과 연구강사로 재직하면서 고대 그리스의 의학과 철학에 대해 연구를 했고, 현재 성균관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플라톤 철학과 그 영향』(2001, 공저)이 있고, 번역서로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2005, 공역)이 있다. 그리고 논문으로는 “『필레보스』편을 통해 본 플라톤의 혼화사상(混和思想)”(1995, 학위논문), “필롤라오스의 세 가지 근본 원리와 수”(2002), “고대 헬라스 의학과 연관해서 본 플라톤의 건강 개념과 자연관”(2004), “고대 헬라스에서 철학과 의학의 관계”(2005) 등이 있다.

○ 출판사 서평
“소크라테스 선생님, 이 친구 크라튈로스는 이렇게 주장합니다. ‘있는 것들 각각에는 저마다 올바른 이름이 본래 자연적으로 있다. 그리고 이름이란 사람들이 자신들의 언어로 어떤 것의 이름을 부를 때, 그렇게 부르기로 합의하고 부르는 언어의 조각이 아니다. 오히려 이름을 붙이는 올바른 규칙은 본래 있는 것이며, 그것은 그리스 사람이든 이민족 사람이든 누구에게나 똑같다’라고요. (…) 이름의 올바름이 합의나 동의가 아닌 다른 무엇인가에 근거한다는 주장은 저로서는 납득할 수가 없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누군가가 어떤 것에 무슨 이름을 붙이든 그것이 올바른 이름인 것 같습니다. 설령 다른 사람이 그 이름을 다시 다른 이름으로 바꾸어서, 더 이상 그 이름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나중 것이 이전 것 못지않게 올바르다는 것이죠. 우리가 집안 노예들의 이름을 바꿀 때 바뀐 것이 전에 붙인 것 못지않게 올바른 것처럼 말입니다. 어떤 이름도 각 사물에 본래 자연적으로 있는 것이 아니고 관습을 확립하고 이름을 붙이는 사람들의 규칙과 관습에 따라서 있는 것이니까요.”
.정암학당 플라톤 전집 네 번째 권, ‘크라튈로스’
‘있는 것들’ 각각에는 ‘이름’의 올바름이 자연적으로 있는가, 아니면 합의나 관습에 따라 있는가. 이름에 관한 이 흥미로운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크라튈로스’는 언어에 대해 논한 현존하는 최고 (最古)의 문헌들 중 하나로 간주된다.
‘이름’과 그 이름이 지시하는 대상, 즉 ‘있는 것들’ 사이에 어떤 필연이 자연적으로 존재한다는 것, 즉 ‘올바름’이 자연적으로 존재한다는 크라튈로스와 그 올바름이라는 것은 합의나 관습에 따라 생겨난다는 헤르모게네스 사이에서, 소크라테스는 이들의 견해에 때로는 동조하고 때로는 반박하며 (이 책의 부제에 잘 드러나 있는 것처럼) ‘이름의 올바름에 관하여’ 이야기한다. 그러나 ‘크라튈로스’가 이름의 올바름에 관한 이 중요한 논의에 본문의 상당 부분을 할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대화편을 연구하는 몇몇 학자들은 이 대화편이 ‘인식론적 문제’라는, 더 나아간 철학적 문제에 주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름의 올바름에 관한 문제와 인식론적인 문제의 관계를 어떻게 보는가는 대화편 전체의 논의 흐름이나 논의 구조를 이해하는 데 영향을 준다. 인식론적인 문제를 궁극적인 문제로 본다면, 이름의 올바름에 관한 문제는 그 문제에 종속된 것이 될 것이다. 이 경우 이를테면 어원 설명 부분은 단순히 언어학적 논의가 아니라 사물에 대한 앎을 얻는 한 방식에 관한 것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두 문제의 관계를 달리 본다면, 그에 따라 어원 설명 부분을 비롯해 대화편 전체에 대한 이해 방식도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름의 올바름에 관한 문제가 과연 부수적인 관심사였는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이 대화편을 통해 플라톤이 ‘인식론적 문제’에까지 큰 관심을 가졌다는 사실만은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이 문제를 통해 그는 자신에게 철학적 영향을 주었던 두 스승, 즉 크라튈로스와 소크라테스를 첨예하게 대립시킨다. 그 대립에서,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신념을 택하고 있다. 언어철학적 문제뿐 아니라, 인식론적 문제, 존재론적 문제, 언어학의 문제까지 아우르고 있는 플라톤의 사상을 두루 접해 볼 수 있는 대화편이 바로 이 ‘크라튈로스’인 셈이다.

○ 내용
“아가멤논은 덕(탁월함)으로 말미암아 열심히 노력하고 견디면서 마음먹은 일을 끝까지 이루어 낼 수 있는 그런 사람인 것 같으니까. 그의 군대가 트로이아에 장기간 머물며 끈질기게 버텼던 일이 그 증거라네. 그렇다면 ‘아가멤논’이라는 이름은 이 사람이 참고 견디는 데는 경탄할 만한 자임을 뜻하네. 아마도 ‘아트레우스’(Atreus)역시 올바른 이름일 것이네. 그가 크뤼십포스를 살해한 것이나 튀에스테스에게 저지른 잔인한 일들은 모두 덕에는 해롭고 파멸적(ate-ra)이기 때문이지. `그런데 뜻이 약간 왜곡되고 가려져 있어서 이름이 그 사람의 본성을 누구에게나 표현해 주지 못하는 것이네. 그렇지만 이름에 관해 잘 아는 사람들에게 ‘아트레우스’가 무슨 뜻인지를 표현하기에는 충분하네. ‘아테이레스’에서 따왔든, ‘아트레스톤’에서 따왔든, ‘아테로스’에서 따왔든, 어떤 식이든 간에 그의 이름은 올바르게 붙여졌기 때문이지. 내가 보기에는 펠롭스에게도 이름이 적절하게 붙여진 것 같네. 이 이름은 ‘가까운 것만 보는 자’를 뜻하니까.”
이 논의를 이끌어가는 이들은 소크라테스를 비롯해, 헤라클리트학파의 크라튈로스와 헤르모게네스다. 크라튈로스는 5세기 말엽에 살았던 사람으로 플라톤의 첫 제자들 중 한 명이었고, 크라튈로스의 대화 상대로 등장하는 헤르모게네스는, ‘파이돈’에 따르면 소크라테스의 임종을 지켜보았던 제자들 중 한 사람이었다.
이 세 사람은 대화를 통해 각기 다른 자신의 견해들을 관철시키려고 한다. ‘이름’과 그 이름이 지시하는 대상, 즉 ‘있는 것들’ 사이에 어떤 필연이 자연적으로 존재한다는 것, 즉 ‘올바름’이 자연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이 크라튈로스의 견해이고, 그 올바름이라는 것은 합의나 관습에 따라 생겨난다는 것이 헤르모게네스의 견해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크라튈로스는 이름으로 번역되곤 하는 ‘오노마(onoma)’에는 원래부터 올바름의 속성이 부여되어 있어서 이름으로부터 사물의 참된 존재를 추정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반면, 헤르모게네스는 명칭과 사물의 관계가 계약이나 관습에 의해 이루어져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아름다운 것은 배우기 어렵다는 옛 격언에 빗대 “이름에 관한 올바름 또한 결코 사소한 공부거리가 아님”을 주장하던 소크라테스는, 먼저 헤르모게네스의 ‘규약주의’적 견해를 논박하고, 다음으로 크라튈로스의 ‘자연주의’적 견해를 논박한다. 즉, 소크라테스는 어원 설명을 통해서 이름들이 결코 아무렇게나 붙여지는 것이 아니고 어떤 올바름을 가진다고 주장하면서도 “이름을 아는 사람은 사물도 안다”는 크라튈로스의 주장에 대해서는, 사물들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가장 올바른 방법은 ‘사물들 자체를 통한’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름들 간에 내분이 일어나서 어떤 이름들은 자신들이 진리와 닮았다고 주장하고, 다른 이름들은 자신들이야말로 그렇다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이제 어떻게 판정해야 하며 무엇에 의지해야 할까? 이것들과는 다른 제삼의 이름들에 의지할 수는 없네. 그런 것은 없으니까. 오히려 이름들 말고 다른 무엇인가를 찾아야 하는 것은 분명하네. 이름들에 의지하지 않아도 우리에게 어느 쪽의 이름들이 참인지를 밝혀 줄, 그래서 있는 것들의 진리를 드러내 줄 그런 것을 말이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