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태양을 만드는 사람들 : 토카막으로 만드는 핵융합 무한 에너지
나용수 / 계단 / 2024.1.30
- 태양을 만들려는 인간의 꿈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상용화에 한 걸음 바짝 다가간 핵융합, 자석에 가둔 태양, 토카막이 밝혀줄 에너지의 새로운 미래
태양은 어떻게 빛을 내는가?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그 비밀을 알고 싶었다. 어제도, 오늘도, 몇십 년, 몇백 년, 몇천 년 동안 태양은 뜨겁게 반짝이고 있다. 핵융합은 바로 꺼지지 않는 태양 에너지의 근원을 밝히는 데서 시작했다. 19세기 말 방사선이 등장하면서 원자의 문이 열렸고, 20세기 전반은 핵물리학과 양자역학의 전성기였다. 핵이 어떻게 쪼개지는지 조금씩 알게 되면서, 핵이 하나둘 합쳐지는 과정도 알고 싶었다. 수소가 합쳐져 헬륨이 되었고, 그때 줄어든 질량이 에너지로 바뀌면서 빛을 내고 있었다. 여러 과학자의 어깨 위에서 한스 베테가 이 별빛의 비밀을 밝혔다. 많은 사람이 모여 원자를 쪼개 원자폭탄을 만들었다. 그리고 원자를 합쳐 수소폭탄을 만들었다. 이제 거대한 수소폭탄의 에너지로 집과 공장에 불을 밝히고 싶었다. 소련의 과학자들이 작은 태양을 자석에 가두는 방법을 찾아냈다. ‘토카막Tokamak’이라는 핵융합로가 태어난 것이다.
토카막의 플라스마에는 악마가 여럿 살았다. 막대한 태양의 에너지를 마음대로 쓰고 싶었지만, 악마들은 그 문을 쉽게 열어주지 않았다. 그중 불안정성과 난류는 특히 길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도 이제 거의 손에 들어왔다. 지금 만들고 있는 국제핵융합로(ITER)와 세계 각국의 연구소, 그리고 최근 몇 년 사이 앞다퉈 성과를 내놓고 있는 젊은 스타트업의 노력과 도전이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다. 핵융합산업협회Fusion Industry Association가 내놓은 2023년 서베이 자료(https://www.fusionindustryassociation.org/fusion-industry-reports/)를 보면, 막연한 관심의 수준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7조 원 이상이 이들 기업에 투자되고 있다. 곧 기대 이상의 실적을 내놓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핵융합 연구를 시작한 지 채 오십 년이 되지 않은 우리나라는 지난 이십여 년간 실력 있는 연구자들과 꾸준한 투자로 초전도 핵융합로인 KSTAR를 만들었다. 이제는 KSTAR에서 전 세계가 주목하는 놀라운 실험 결과를 연달아 내놓고 있다. 이 책에서는 이런 우리나라 핵융합 연구의 발자취와 앞으로의 미래까지 빠짐없이 살펴본다.
이 책의 1부에서는 한스 베테와 함께 태양이 밝게 빛나는 이유를 찾아 나서며 핵융합의 원리를 소개한다. 이어 엔리코 페르미를 통해 맨해튼 프로젝트와 수소폭탄 개발에 얽힌 이야기를 펼친다. 2부에서는 실제로 존재했던 구소련의 비밀연구소를 배경으로 ‘사고의 용광로’라는 가상의 프로젝트를 통해 핵융합을 실현할 장치인 ‘토카막’을 만들고 완성해 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곳에서 독자들은 단순히 프로젝트의 관찰자가 아니라 실제 연구원의 한 사람으로 당대의 구소련 과학자들과 그들의 문제를 풀어 볼 것이다. 3부는 독일의 막스플랑크 연구소와 ITER를 비롯해 전 세계의 주요 핵융합 연구소를 돌아보며 토카막의 발전 과정을 살펴볼 것이다. 이어 4부에서는 토카막에서 전기를 생산하는 과정과 핵융합 에너지 상용화에 남아 있는 여러 난제를 들여다볼 것이다. 5부는 KSTAR를 중심으로 우리나라의 핵융합 연구의 역사를 되짚어 볼 것이다.

○ 목차
들어가며
프롤로그
솟아오른 또 하나의 태양
1부 별이 빛나는 이유
한 물리학자의 부고 | 두 얼굴의 뮌헨 | 별이 간직한 비밀 | 우리는 태양을 무엇이라고 생각했을까
아인슈타인의 E = mc2 | 질량은 어떻게 에너지로 바뀌는가 | 태양의 심장을 갖고 싶다 | 쿨롱 반발력을 넘어서려면 | 밝혀진 별의 비밀 | 태양과 별의 운명 | 페르미가 알아낸 E = mc2의 암시
핵분열 현상의 발견 | 핵분열의 두뇌는 미국으로 | 화성인이 시작한 원자폭탄 | 죽음의 태양 | 파괴를 넘어 홍익으로 | 저무는 거인들의 시대 | 인공 핵융합의 꿈
2부 토카막의 탄생
지구에 태양을 만들다 | 소련의 비밀연구소
첫 번째 문제: 태양을 만들 연료를 찾아라 | 태양의 핵융합 반응을 이용한다고 | 다양한 핵융합 반응 | 수소를 이용한 핵융합 | 중수소-삼중수소 반응을 이용한 핵융합 | 더욱 청정한 핵융합 연료를 찾아서
두 번째 문제: 태양을 어떻게 가둘 것인가 | 다르지만 서로 같은 문제 | 물질의 첫 번째 상태, 플라즈마 | 태양이 우주 공간에 뭉쳐 있는 이유 | 플라즈마 입자를 길들이는 몇 가지 방법 | 최초의 핵융합
가둬 놓을 수만 있다면 | 레이저로 만든 태양 | 전기장으로 가둔 태양 | 번개가 준 선물 | 시작도 끝도 없는 도넛 | 오로라를 만들어 보자 | 페르미는 알고 있었다 | 사각 지대에 빠지다 | 미국에서 온 소식
원인은 불안정성 | 사라진 평형 | 휴가를 떠나자 꼬인 밧줄이 보였다 | 영국을 방문한 소련 원자폭탄의 아버지 | 마법의 튜브
마침내 탐과 사하로프가 | 마법의 끝 | 스위스에 걸린 슬로건 | 주목받지 못한 탄생 | 정체된 태양 | 다시 한번 재 보자 | 태양의 패턴 | 누가 감히 토카막에 견줄 것인가 | 토카막 열병
3부 인공 태양으로 가는 길
꿈은 여기까지인가 | 독일에서 나온 돌파구 | H-모드의 발견 | H-모드는 어떻게 얻어졌을까 | H-모드는 어떻게 생겨나는 것일까 | 맥주통이 열렸다
1억 도를 향하여 | 진격의 거대 장치들 | 발상의 전환과 토카막 업그레이드 | 유럽연합과 미국의 총성 없는 전쟁 | 핵융합 에너지 시대로 가는 지름길 – ITER
4부 핵융합 발전이 가능하려면
핵융합로에서 전기를 꺼내는 방법 | 블랭킷은 핵융합 공학의 꽃 | 핵융합로의 조건
아직 풀지 못한 문제들 | 플라즈마의 불안정성 제어 | 경계면 불안정성 | 플라즈마 붕괴 | 고성능 플라즈마의 장시간 운전 기술 | 핵융합 극한 재료
5부 우리나라의 핵융합
핵융합 상용화를 향한 세계 각국의 발걸음
우리나라 핵융합 연구의 발자취
.SNUT-79와 핵융합 연구의 태동 | – KT-1, 핵융합 에너지 개발의 토대 | – 카이스트-토카막
.한빛 자기 거울 장치 | – 우리나라 최초의 구형 토카막, VEST
.한국의 별, KSTAR
초전도 토카막의 등장과 핵융합 세계 질서의 재편 | 한국의 ITER 가입 | 핵융합 상용화를 향한 우리나라의 발걸음
에필로그
이 책에 나오는 주요 인물들
참고문헌 찾아보기
○ 저자소개 : 나용수
초등학생 시절 과학대사전에서 레이저 핵융합을 보고 핵융합에 빠져 들었다. 서울대 원자핵공학과에서 공부할 때 방문한 영국과 독일의 핵융합 연구소가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렇게 독일로 건너가 뮌헨 공과대학과 막스플랑크 플라즈마 물리 연구소에서 핵융합을 연구해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에서 연구했고, 서울대 원자핵공학과에 부임해서는 핵융합 에너지 상용화를 한시라도 앞당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학생들과 함께 KSTAR에서 하이브리드 고성능 시나리오를 개발하고 FIRE 모드를 찾아내 1억 도의 플라즈마를 달성하였다. 토카막 플라즈마에 새로운 전류가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했고, 핵융합로 설계 코드인 TRIASSIC을 개발하였다. 국제 핵융합 실험로(ITER)의 통합운전 시나리오 국제전문가 그룹 의장을 지냈고, 현재는 ITER의 국제 과학기술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학생들을 가르치고 실험과 연구를 하는 틈틈이 핵융합을 널리 알리기 위한 강연 활동도 열심히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창의성도 연습이 된다고》가 있다.

○ 책 속으로
이런 문제에 당면했을 때에는, ‘왜 그럴까?’라는 과학자의 이론이나 수학자의 계산보다 ‘어떻게 문제를 해결하지?’라는 공학적 접근이 필요했던 것이다. 아니면 예술가의 육감이라던지.
“혹시 모스크바 전력 기술 연구소에서 발전소 설계와 건설에 경험이 많은 나탄 야블린스키는 어떨까요?”
아르치모비치는 야블린스키에게 장치의 제작을 맡겼다. 야블린스키는 우리와 밀접하게 교류하며 장치 설계를 시작했다. 골로빈과 야블린스키는 토러스 축 방향의 자기장 세기가 둘레 방향의 자기장보다 크도록 설계의 방향을 잡았다. 이렇게 1958년에 첫 번째 토카막 장치가 완성되었다. 이름은 T-1이었다. _218쪽
ZETA의 존재와 중성자 검출 소식이 조금씩 언론에 새어 나가기 시작했다. 공식적인 대응이 필요했다. 1958년 1월 25일, 소너맨은 《네이처》에 ZETA의 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검출된 중성자에 대해서는 매우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ZETA의 실험 결과에 언론은 대대적인 관심을 보였고, 하웰을 이끌던 콕크로프트가 기자 회견을 열었다. 그러나 그는 회견 도중 기자들의 유도 질문에 휘말려 ZETA에서 검출된 중성자가 핵융합에서 얻어진 것임을 확신한다는 부주의한 발언을 하고 말았다. 이 소식은 곧 우리에게도 전해졌다. 아르치모비치를 비롯한 우리는 ZETA의 결과에 의문을 품었다. 5000만 도에서 핵융합 반응을 일으키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이었다. 미국의 스피처 또한 같은 의 견이었다. (……) 이 사건을 계기로 안타깝게도 ZETA 에 대한 지원은 중단되고 말았다._221~222쪽
1957년 7월 29일에 IAEA가 결성되었고, 이듬 해인 1958년 9월 1일부터 13일까지 스위스 제네바에서 제2회 원자력 에너지의 평화적인 이용을 위한 UN 국제 학회가 열렸다. 여기에는 핵융합이 학회의 주요 의제 중 하나로 채택되었다. ZETA 결과가 《네이처》에 발표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 아르치모비치는 소련 과학 아카데미의 대표로 나와 발표를 진행했다. (……) 두 번째로는 토러스 장치를 소개했다. 안정적인 플라즈마를 얻기 위해서는 토러스의 축 방향 자기장이 둘레 방향 자기장보다 커야 한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보였고, 0.2밀리미터 두께의 스테인리스강으로 만든 ‘실험 장치(Experimental Arrangement)’로 이를 검증했다고 덧붙였다. 이 장치의 토러스 평균 지름은 1.25미터, 토러스 단면 지름은 0.5미터였다. 플라즈마 전류는 40만 암페어였고, 축 방향 자기장은 1.2테슬라였다. 전자의 온도는 아직 15만에서 25만 도에 불과했다. 아르치모비치는 온도가 높지 않은 원인을 플라즈마의 불안정성과 플라즈마를 가두고 있는 벽에서 나온 불순물에서 찾았다. 이 ‘실험 장치’가 바로 토카막이었다._224쪽
아직 토카막을 완전하게 믿지 못하고 있던 아르치모비치는 학회에서 ‘토카막’이라는 이름을 언급하지 않은 채, ‘실험 장치’라고 소개했다. 소련은 스위스에서 토카막의 홍보보다는 당시 소련의 자랑이던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의 선전에 집중하고 있었다. 프린스턴의 스피처도 플라즈마의 온도를 측정하는 장치가 없던 토카막의 결과에 크게 주목하지 않았다. 당시에는 소련의 ‘실험 장치’가 훗날 핵융합의 판도를 바꾸리라는 걸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_228쪽
제2회 IAEA 핵융합 학회는 1965 년 영국 컬햄에서 열렸고, 4년 후인 1968 년 제3 회 IAEA 핵융합 학회는 소련에서 주최했는데, 철의 장막 가장 깊숙한 곳 시베리아의 노보시비르스크에서 열렸다. 노보시비르스크는 러시아 제3의 도시로, 인구로는 시베리아 제1의 도시다. (……) 학회에서 아르치모비치 소장은 우리가 그동안 성취한 결과를 발표했다.
“우리 토카막에서는 전자 온도 1000만 도, 에너지 가둠 시간 0.01초를 얻었습니다. 기존에 알려진 장치의 2 배에서 10배 정도 좋은 성능이 나옵니다.”
아르치모비치의 발표는 즉시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일단 사람들은 이 놀라운 결과를 믿지 않았다._244쪽
학회 내내 아르치모비치와 우리들에게 수많은 질문이 쏟아졌고 끝도 없는 논쟁이 이어졌다. 직접 보지 않고는 믿을 수 없을 것 같아, 아르치모비치는 영국 컬햄 핵융합 에너지 연구소(Culham Centre for Fusion Energy)의 소장 서배스천 피스에게 흥미로운 제안을 건넸다. 토카막의 결과를 영국이 검증해 보라는 것이었다. 당시 영국에서는 ZETA 이후로 새로운 진단 장치 개발에 온힘을 쏟고 있었고, 그 중 하나로 톰슨 산란을 이용해 레이저로 전자의 온도를 정확하게 측정하는 방법을 완성한 상태였다. (……) 냉전이 한창이던 1968년 12월, 모스크바 행 파키스탄 국제항공에 5톤의 장비를 싣고 영국의 신사들이 탑승했다. 소위 ‘컬햄 5인방(The Culham Five)’이라 불린 그들은 소련 핵폭탄 연구의 본거지인 쿠르차토프 연구소에 머물며 실험을 진행할 예정이었다._245쪽
영국에서 가져온 레이저 산란기를 장착한 T-3 장치는 이듬해 8월까지 총 88회에 걸쳐 플라즈마 실험을 수행했다. 몇번의 실패 끝에 이 장치로 토카막의 플라즈마 온도를 측정할 수 있었다. 측정값은 1000만 도였다. 아르치모비치가 일 년 전 선언했던 것과 같은 결과였다. 누구도 의심할 수 없는 단단한 증거였다. 인류가 달에 첫 발걸음을 내딛고, 콩코드 여객기가 초음속 비행에 성공했던 1969년에, 철의 장막을 뚫고 세계로 전해진 T-3의 소식은 핵융합 연구의 흐름을 바꿔 놓았다._246쪽
컬햄 5인방이 영국으로 돌아가자 컬햄 연구소의 스텔라레이터 장치 proto-CLEO는 토카막으로 전환을 시도했다. 스텔라레이터의 요람 미국의 프린스턴도 예외는 아니었다. 전 세계의 핵융합 장치들이 토카막으로 대변신을 감행했다. ‘소련 침공’, 소위 ‘토카막 열병(Tokamak Fever)’의 시작이었고, ‘토카막주의자(Tokamakist)’의 탄생이었다. 이후로 전 세계에는 ‘토카막의, 토카막에 의한, 토카막을 위한’ 연구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토카막은 훗날 국제 핵융합 실험로(ITER · International Thermonuclear Experimental Reactor)의 방식으로 채택되어 핵융합 상용화를 위한 1세대 방식으로 발전하게 된다._249쪽
이는 스텔라레이터의 입장에서는 크나큰 악재였다. 당시 독일의 막스플랑크 플라즈마 물리 연구소에 있던 스텔라레이터 방식의 벤델슈타인 II-A에서는 사상 처음으로 플라즈마 가둠이 이론적으로 예측한 값과 동일한 결과를 보여주고 있었다. 기존의 모든 장치들은 실험 결과가 이론적인 예측값을 한참 밑돌고 있던 때 였다. 과학자들은 이를 ‘뮌헨의 수수께끼’라고 불렀다. (……) 역사를 말하며 ‘만약’이라는 가정은 큰 의미가 없지만, 그래도 만약 스텔라레이터 연구가 계속되었더라면 어쩌면 ITER는 토카막이 아닌 스텔라레이터 방식으로 대체되었을지도 모른다._212쪽
카를 라크너 교수가 웃으며 말했다.
“프리츠, 또 풍선 타령이군. 한 마디로 플라즈마를 토카막 안에 자기장으로 가두고 싶은데, 압력은 가능한 높게 유지하면서 안정 적으로 오래 가두고 싶다는 거죠?”
막스플랑크 플라즈마 물리 연구소의 이론부장인 라크너 교수였다. 그의 말대로 풍선은 토카막의 자기장을, 풍선 안의 공기는 플라즈마를 의미했다._259쪽
1982년 9월 미국 볼티모어에서 열린 IAEA 핵융합 학회. 바그너 교수가 막스플랑크 플라즈마 물리 연구소를 대표해 연단에 올랐다. 그는 1968년 아르치모비치가 전 세계 핵융합 연구에 큰 파장을 일으켰던 것처럼 놀랄 만한 선언을 한다.
“우리는 토카막에서 플라즈마 수송이 크게 줄어, 가둠 성능이 획기적으로 좋아진 새로운 플라즈마 상태를 발견했습니다. 이 플라즈마는 기존 플라즈마에 비해 압력이 두 배 가까이나 높습니다. 에너지 가둠 시간도 두 배 이상 깁니다.”
‘H -모드’의 발견을 선언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1980년에 운전을 시작한 막스플랑크 플라즈마 물리 연구소의 아스덱스 토카막 장치에서 얻은 결과였다. 바그너 교수는 기존 플라즈마 상태를 ‘L-모드(Low confinement mode)’, 즉 낮은 가둠 방식이라 부르고, 새로운 플라즈마 상태를 ‘H-모드(High confinement mode)’, 즉 높은 가둠 방식이라고 이름 붙였다. 에너지 가둠이 좋다는 말은 보온병에 뜨거운 물을 넣었을 때처럼 일반 물병에 넣었을 때보다 고온의 상태를 더 오래 유지할 수 있다는 의미다. 보통은 용기를 바꿔 보온성을 높이는데 이번에는 달랐다. 동일한 토카막 장치에서 실험 조건만 바꾸었는데 보온성이 더 좋은 플라즈마를 얻었던 것이다.
H -모드의 발견은 핵융합계를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다. 전 세계 모든 토카막 장치가 H-모드를 구현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곧 미국의 PDX 와 Doublet III, 유럽연합의 JET, 일본의 JT-60에서 H-모드가 재현되었다. (……) 아스덱스 토카막을 이끌던 바그너 교수는 1989년 스텔라레이터 장치인 벤델슈타인 7-AS의 책임자로 자리를 옮겨 스텔라레이터 연구를 이어갔다. (……) 1992년에는 벤델슈타인 7-AS에서도 H-모드가 발견되었다. 이로써 H-모드가 토러스 형태의 자기장 핵융합 장치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것이 증명되었고, 그러면서 H-모드는 토카막 장치가 제대로 작동한다는 일종의 ‘통과 의례’가 되었다._263~264쪽
1971년 유럽공동체(EC · European Community)는 유럽을 대표할 거대 핵융합 장치 개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우선 프랑스 출신의 폴-앙리 레뷰를 수장으로 1973년부터 설계를 시작해 1975년 계획서를 완성하고, 당시 기준으로 세계 최대의 토카막 장치인 JET(Joint European Torus)의 건설을 제안했다. (……) JET 프로젝트가 제안되자 이를 유치하기 위해 유럽 국가 간 경쟁이 시작되었다. 영국의 컬햄, 독일의 가르힝, 프랑스의 카다라쉬, 이탈리아의 이스프라, 벨기에의 몰이라는 다섯 개의 부지가 후보 로 올랐다. 곧 이 다섯 개의 후보지는 영국 원자력 연구소가 있는 컬햄과 막스플랑크 플라즈마 물리 연구소가 있는 독일의 가르힝으로 좁혀 졌고, 두 나라 간에 한 치의 양보도 없는 경쟁이 펼쳐졌다._230쪽
1977년 10월 13일, 지중해 한가운데 있는 스페인의 마요르카 섬. 독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휴양지 중 하나인 이곳에서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다. 마요르카의 수도인 팔마를 떠나 프랑크푸르트로 향하던 루프트한자 여객기 181 편이 이륙 30 분 만에 마르세유 상 공에서 납치된 것이다. (……) 10월 18일, 자정이 막 지난 시간, 서독 정부는 란츠후트를 되찾기 위해 연방경찰 제 9 국경 경비대(GSG 9)를 동원했다. GSG 9는 대테러 특수부대로, 1972년 뮌헨 올림픽 당시 검은 9월단에 의해 인질로 잡혔던 11명의 이스라엘 올림픽 참가자가 무참히 살해당한 참사를 계기로 창설된 부대였다. (……) 납치범 3 명을 사살하고 1명을 생포해 사건 발생 5일 만에 86명의 인질을 구출하는 데 성공했다. 당시 영국 정부는 최초의 현대전 대테러 부대인 SAS 부대원을 파견하고 특수 무기까지 제공하여 독일이 테러를 성공적으로 진압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_287쪽
1977년, 이런 우여곡절 끝에 JET는 영국 옥스퍼드 근처의 컬햄에 건설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총 건설 비용으로 1 억 UC의 예산이 JET에 투입되었다. (……) 1 억 UC는 대략 5000억 원에 해당한다. 결과적으로 제트기jet 사건이 JET를 영국에 선물하게 된 셈이었다._287쪽
유럽연합의 JET, 미국의 TFTR, 소련의 T-15, 일본의 JT-60 등 거대 토카막 장치가 핵융합 상용화를 향해 진격을 시작하면서 핵융합 연구는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고 나라 간 치열한 경쟁에 돌입하게 되었다.
_294쪽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중수소와 삼중수소를 핵융합 연료로 사용하는 유럽연합의 JET와 미국 프린스턴 플라즈마 물리 연구소의 TFTR은 한치도 양보할 수 없는 경쟁에 돌입하고 있었다. 누가 먼저 Q = 1 을 달성하느냐였다. (……) 1988 년 유고슬라비아(현재는 크로아티아)에서 열린 유럽 물리 학회에서 미국과 유럽을 대표하는 두 학자의 내기가 벌어졌다. TFTR의 로버트 골드스톤과 JET의 장 자키노가 ‘TFTR 과 JET 중 누가 먼저 핵융합 파워 10메가와트를 1초 이상 유지할 것인가’를 두고 내기를 한 것이었다. TFTR이 이기면 자키노가 TFTR 팀 전원에게 프랑스식 저녁 식사를 제공하고, JET 가 이기면 골드스톤이 JET 팀 전원에게 맥도날드 햄버거를 보낸다는 것이었다._296쪽
하지만 승부는 플라즈마 단면 모양에서 판가름 났다. JET는 디버터를 설치하여 플라즈마가 불순물에 오염되는 것을 막아 성능을 크게 높일 수 있었다. 게다가 아르치모비치와 샤프라노프의 연구를 참고해 플라즈마의 단면 모양을 원형이 아닌 알파벳 D의 형상에 가깝게 만들면서 플라즈마의 안정성도 대폭 향상시켰다. 반면 TFTR은 디버터가 없는 원형 플라즈마였다. (……) 1997년 JET는 플라즈마에 24메가와트를 투입하여 16메가와트의 핵융합 파워를 얻었다, 핵융합 에너지 증폭률은 0.67이었다. 경계면 불안정성이 없는 H- 모드에서 0.1초 남짓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세계 신기록이었다. TFTR은 이 기록을 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지만, 결국 이 산을 넘지 못했다. 전쟁에서 패한 TFTR은 15년의 운전을 뒤로 한 채 1997년 장엄한 막을 내렸다. 대신 프린스턴에서는 TFTR의 뒤를 이어 일반 토카막보다 주반경과 부반경의 비율이 작은 구형(spherical) 토카막 장치인 NSTXNational Spherical Torus Experiment)를 건설하고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_297쪽

○ 출판사 서평
- 핵융합에 투자가 몰리고 있다, 누구나 된다고 말할 땐 이미 늦었다, 실현 가능한지 자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하라
2013년에 생긴 미국의 스타트업 헬리온에너지 (Helion Energy)에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고 있다. 챗GPT를 만든 오픈에이아이 (Open AI)의 경영자 샘 올트먼이 이 회사에 5억 달러 이상의 투자를 주도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부터다. 2023년에는 마이크로소프트가 헬리온과 전력 공급 계약을 맺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핵융합에 대한 관심은 이제 단순한 기대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엄청난 수익을 올리고 있는 영민한 투자자와 기업들이 핵융합 스타트업에 앞다투어 거액을 투자하고 있다. 대화형 인공지능에 쏟아 넣은 투자가 실적으로 가시화되면서, 막연하기만 했던 양자컴퓨터와 핵융합 기업에 대한 투자가 지난 몇 년 새 크게 늘었다고 한다.
실제로도 핵융합 스타트업은 2018년 이후 그 수가 빠르게 늘고 있다. 미국과 영국에서는 1990년대 말 2000년대 초부터 이들 기업이 나타났고, 그동안 이들은 다양한 시제품과 실험 결과를 내놓으면서 대담한 에너지 공급 계획을 발표해 왔다. 핵융합산업협회 (Fusion Industry Association)가 내놓은 2023년 서베이 자료(https://www.fusionindustryassociation.org/fusion-industry-reports/)를 보면, 핵융합 연구에서 가장 앞선 미국과 영국에서도 많은 스타트업이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중국과 일본에서도 ENN 그룹과 교토퓨저니어링이 민간 자본으로 핵융합 상용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상황이다.
국가 차원의 연구소에서 주도하던 핵융합 기술 개발과 상용화 연구가 ITER라는 전 세계적인 규모의 핵융합로를 건설하며 한 단계 도약하고 있다면, 이제 비즈니스 전망을 확신한 실력 있는 젊은 연구자들이 비전을 제시하고, 그 가능성을 믿은 기업가들이 그들에게 현실화의 장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컴퓨터에서 시뮬레이션하고, 실험실과 연구소에서 돌아가던 핵융합이 이제 전력망에 전기를 내놓고 공장에 에너지를 공급하며 우리 생활과 산업에 적극적으로 뛰어들 채비를 마친 것이다.
- 땅 위에 만든 작은 태양, 1억 도의 불꽃을 감싸안은 핵융합로가 바로 ‘토카막’
‘토카막’이라는 말은 낯설다. 서울 마포에는 무쇠막이라는 곳이 있다. “무쇠솥이나 농기구를 만들어 팔거나 국가에 바치는 공장이 많이 있던 곳”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막’이라는 게 ‘물건을 만드는 막사나 장소’를 의미하는 우리말이라는데, 토카막도 처음 들었을 때는 이런 의미인 줄 알았다. 도대체 이게 뭘까? 뭔가 신비한 이름 같은데, 잘 알려져 있지는 않은 말. 토카막은 바로 그런 말이다. 일본에는 토카막이라는 연주곡도 있고, 프랑스에는 같은 이름의 록밴드도 있다. 토카막은 사실 러시아어 торои дальная камера с магнитными катушками의 머리글자를 딴 것이다. 우리말로 옮기면 ‘자기장 코일이 감긴 토러스 형태의 용기’다. 즉 자석으로 감싼 튜브라는 말이다. 핵융합은 바로 이 튜브 안에서 일어난다. 이 낯선 러시아어가 핵융합 분야에서는 보통명사처럼 쓰인다. 핵융합 장치 중에서 상용화 가능성이 가장 큰 것이 바로 자기장 가둠 방식이고, 그 대표 주자가 바로 토카막이다.
- 소련의 탁월한 과학자들, 그들은 왜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았을까
안드레이 사하로프, 이고리 탐, 이고리 쿠르차토프, 레프 아르치모비치. 소련의 과학자들은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소련과 러시아에도 수많은 훌륭한 과학자와 수학자, 공학자들이 있었지만, 미국과 유럽 출신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감춰져 있다. 언뜻 떠올려 봐도 몇 명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들의 수준이 낮았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20세기 중반에는 미국보다 인공위성을 먼저 쏘아 올렸고, 원자폭탄이나 수소폭탄도 빠르게 독자적으로 만들었다. 물론 히틀러를 피해 간 독일 과학자들의 역할도 있었고, 스파이가 가져다준 정보도 한몫 크게 했지만, 어쨌거나 결과물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세계 공용어가 된 영어가 아닌 러시아어라는 한계도 있을 테고, 지난 백여 년의 이념 대립도 일정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토카막이라는 핵융합로를 처음 만든 사람은 바로 소련인이다. 쿠르차토프 연구소의 안드레이 사하로프와 이고리 탐을 비롯한 물리학자와 공학자들이었다. 이들이 미국과 영국의 과학자들과 경쟁하며 토카막을 만들어 냈다.
- 플레밍의 왼손 법칙, 원리는 참 간단하다
중학교 2학년 때 처음 나온다. 다른 나라에서는 언제 배우는지 모르겠지만, 아마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자기장이 있는 곳에 전하를 띤 입자가 지나가면 힘을 받는다. 이 세 요소의 방향을 손가락 세 개에 대응시켜 그 방향을 찾아내는 방법이다. 이 책의 핵심이며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2부 ‘토카막의 탄생’이다. 여기에 ‘플레밍의 왼손 법칙’이 나온다. 그 뒤의 거의 모든 이야기는 바로 이 세 요소를 어떻게 마음먹은 대로 제어할 것인가에 관한 것이다.
피뢰침이 왜 찌그러지는지, 오로라는 왜 극지에 생기는지, 기름 위에 물을 아무리 살살 부어도 조금만 흔들리면 물이 기름 아래로 내려가는 건 왜 그런지를 통해, 이들 세 요소를 길들이기 위해 사람들이 얼마나 교묘하고 영리하게 장치를 고안하고 절차를 만들어 냈는지 하나하나 알려 준다. 중학교나 고등학교 물리 시험 때 손가락을 이래저래 돌려가면 방향을 찾던 기억만 살아 있다면, 토카막에서 핵융합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는 자연스레 알 수 있을 것이다. 수식도 거의 없고, 계산도 없다.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한네스 알벤이 자주 했다는, ‘내가 입자라면’이라는 가정만 할 수 있다면, 직관적인 그림과 알기 쉬운 설명이 나머지는 다 알아서 해줄 것이다.
‘수소 원자가 융합해 헬륨이 될 때 나오는 에너지’라는 핵융합 설명을 조금만 더 깊이 듣고 싶다면, 이 책에서 말하는 ‘사고의 용광로’에 한번 빠져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에세이를 읽으며 글쓴이의 부드럽지만 날카로운 생각에 가슴을 찔려 마음을 깨치고 공감했다면, 과학책을 읽는 것은 설명서를 보며 레고 조각을 이리저리 돌리며 맞추다 보니, 어느새 에펠탑과 우주왕복선을 눈앞에 갖게 된 뿌듯함을 느끼는 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조각을 모아 깎거나 합쳐 멋진 돌도끼를 만들어 내는 과정은 역사든, 과학이든, 경제학이든, 재테크든, 감성과 이성을 함께 쓰는 모든 활동에 마찬가지다. 젠가를 할 때면 어떤 블록을 빼야 나무블록 탑이 무너지지 않을지 머리를 긁적이며 탑 주위를 이리저리 둘러본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책이다.
- 우리나라의 핵융합 연구 불모지에서 피워 올린 파란 불꽃
처음 봤을 땐 일제 강점기 때 사진인 줄 알았다. 1979년이면 아직 채 오십 년이 지나지 않은 과거지만, 당시 공릉동에 있던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5호관에서 실험을 하고 있는 교수와 대학원생의 모습이 꼭 그랬다. 사진 아래에 찍은 날짜와 장소가 붙어 있어도, 이게 맞나 싶었다. 진짜 그 정도로 열악한 풍경이었다.
이 책의 5부는 한국의 핵융합 연구를 다룬다. 1979년 한국 최초의 핵융합로 SNUT-79를 만들며, 일일이 손으로 갈고 닦고 조이던 모습을 생생한 사진으로 실었다. 그간 여러 대학과 연구소에서 만들고 테스트했던 각종 핵융합로를 갖가지 사연과 함께 상세한 특징과 실험 결과는 물론 그 모습까지 모두 담았다. 현재 한국의 핵융합 연구를 이끌고 있는 KSTAR에 관해서는 저자가 직접 설계 과정에 참여하며 겪었던 구체적인 이야기를 넣었다. 부족한 인력, 일천한 경험, IMF라는 초유의 난관을 헤쳐나온 과정이 하나하나 녹아 있다. 1960년대 러시아 연구소에서 만들었던 토카막의 원리가 2000년대 한국에서 최첨단 초전도 자석을 결합해 어떻게 태어났는지 생생하게 비교해 볼 수 있다.
- 에너지의 미래, 어디에서 찾을까
굳이 말 하나를 덧붙인다면, 아마도 ‘전자가 움직이며’ “빛이 있으라 하니”라고 할 수 있을까? 전자가 움직이며 내는 전자기파가 빛이 될테니 말이다. 그럼 이 밝은 빛은 어떻게 낼 것인가? 이제껏 사람들은 나무를 때고, 석탄을 달구고, 석유를 태워 불을 밝혔다. 높은 곳에서 물을 떨어뜨리고, 파도도 이용하고, 햇빛을 반도체에 쬐기도 했다. 그리고 방사성 물질을 쪼개 에너지를 얻었다. 그러다 지구에 문제가 생겼고, 이제는 화석연료를 줄이기로 했다. 석탄과 석유를 적게 쓰고, 대신 다른 에너지를 찾기로 했다. 정답이 무엇인지는 누구도 모른다. 수많은 사람들이 답을 찾거나 만들고 있다. 그런데 그런 와중에도 모든 사람들이 동의하는 사실 한 가지가 있다. 바로 그 답을 찾는 것을 더이상은 미룰 수 없다는 사실이다.
핵융합 발전은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수십 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엄청나게 노력하고 막대한 돈을 투자했지만, 핵융합 에너지를 상용화하지 못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핵융합이 이제는 ‘진짜로 가능하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핵융합의 상용화는 언제 가능할까? 답은 아직 이르지만, 우리는 이런 과학적 물음 외에 이런 측면도 살펴 봐야 한다. 1950~60년대에는 나라마다 자신들의 연구 결과를 감추고 비밀리에 연구했다. 하지만 그런 냉전의 시기에도 토카막 연구와 검증은 철의 장막을 넘나들며 이루어졌다. 그리고 지금은 국제핵융합로를 통해 전 세계적인 지식과 통찰이 축적되고 공유되며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그런데 세상 일이 대부분 이렇지 않나 싶다. 목표는 있지만 성과가 뚜렷하지 않을 때, 그럴 때는 서로 “으쌰으쌰”가 잘 된다. 마음도 잘 맞고, 서로 돕고, 하나라도 더 만들려고 노력한다. 문제는 성과가 가시권에 들어오면서부터다. 내가, 내 팀이 무엇을 차지할지 마음 속으로 계산하기 시작한다. 국제 사회도 마찬가지다. 가능성이 낮을 땐 벽이 없지만, 뭔가 될 듯하자 회사가 만들어지고, 특허로 감추고, 나라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는 일이 생긴다. 핵융합 연구라고 왜 다르겠는가? 투자자와 기업들이 앞다퉈 투자하는데, 그들이 인류애와 박애 정신만으로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 대한 대비 또한 역시 우리의 에너지 문제다.

○ 추천사
유석재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 원장) : 영화나 소설에서 만나는 핵융합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듯 멋지고 대단하지만, 그 실체를 조금이라도 알려고 들면 낯설고 어려워 가까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저자는 핵융합의 원리와 구현 방법을 기초부터 하나씩 누구라도 이해할 수 있게 알려 줍니다. 핵융합의 원리를 발견하고 핵융합 장치를 개발하는 과정을 소설적 구성에 녹여내 역사 속 과학자들의 현장감 있는 목소리가 생생하게 살아 있습니다. 과학과 예술을 종횡무진 오가며 이야기에 재미를 불어 넣었고, 핵융합 개발 과정에 숨어 있던 놀라운 일화들을 끄집어내 흥미를 한층 높였습니다. 이렇게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핵융합 전문가가 된 기분까지 느낄 수 있습니다.
주한규 (한국원자력연구원 원장,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 : 핵융합 이론과 시뮬레이션 분야의 전문가인 저자는 픽션 형식을 빌려 핵융합의 원리와 구현 방법, 개발 이력과 남아있는 문제까지 재미있고 박진감 있게 풀어냅니다. 핵융합은 이미 1950년대에 수소폭탄으로 그 막대한 에너지 발생 능력을 입증한 바 있지만, 일정한 출력을 지속적으로 내놓는 현실적 에너지원이 되기에는 아직 극복해야 할 난제가 남아 있습니다.
인공지능과 탄소중립이 산업의 중심에 서게 될 2050년대에는 현재의 세 배 이상 되는 전력이 필요할 것으로 예측됩니다. 이렇게 크게 늘어날 전력 수요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방안은 현재로서는 고밀도 핵 에너지를 이용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입니다. 한동안은 핵분열 반응을 이용하는 원자력 발전이 일정한 역할을 하겠지만, 이후에는 핵융합 발전이 그 뒤를 이어야 할 것입니다. 이 책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핵융합에 관심과 애정을 갖게 되길 바랍니다.
이우일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부의장, 서울대 기계공학부 교수) : 인류의 에너지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있을까요? 아인슈타인이 E=mc2을 끄집어내자, 사람들은 수소 원자가 융합해 헬륨 원자가 되면서 막대한 에너지를 내놓는다는 사실을 찾아냈습니다. 태양을 비롯해 수많은 별이 밝은 빛을 내놓는 이유가 무엇인지 비로소 알게 된 것입니다.
인류는 이런 핵융합의 원리를 이미 오래전에 지구상에 실현했습니다. 바로 무시무시한 수소폭탄입니다. 문제는 그 엄청난 에너지를 통제할 수가 없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무한 에너지를 제어하기 위해 애를 썼지만 해결은 쉽지 않았습니다. 쉽게 얻을 수 있는 화석연료가 있는데, 언제 될지 알 수도 없는 어려운 일에 도전하기가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크게 바뀌었습니다. 화석연료가 한계를 보이는 데다, 이제는 우리의 생존과 미래까지 직접적으로 위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핵융합 기술은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 상용화를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핵융합은 미래의 훌륭한 에너지 대안으로, 우리는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시간이 흐르고 보니, 이런 물음이 자연스레 생깁니다. 핵융합을 제어 가능한 형태로 만드는 것은 왜 그렇게 어려울까? 우리는 핵융합의 성공에 얼마나 가까이 와 있는 것일까? 도대체 핵융합 발전은 어떻게 하는 걸까?
바로 이 책에 핵융합에 대해 궁금했던 모든 질문의 답이 있습니다. 이 책은 우리가 왜 핵융합의 실현에 온 힘을 쏟아야 하는지, 그리고 지난 핵융합 개발의 역사를 통해 넘어야 할 난관은 무엇인지 알려줍니다. 또한 현재 우리나라와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핵융합 기술의 완성을 위한 불꽃 튀는 노력도 생생하게 전해줍니다.
이경수 (퓨전 스타트업 EnableFusion 창업자, 전 KSTAR 프로젝트 총괄 책임자, 전 국가핵융합연구소(현 한국핵융합) : 핵융합(fusion)은 오래전부터 깨끗하고 무한한 에너지로 불리며, 기후위기의 해결사 역할을 할 것으로 큰 기대를 모았습니다. 하지만 20세기 초 한스 베테가 “모두 저기로부터 시작했지요. 바로 저 태양으로부터”라고 외치며 태양이 어떻게 빛을 내는지 알아낸 이후 한 세기가 흐른 지금까지도 인류는 바로 그 물질 ‘플라즈마’를 길들이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챗GPT의 샘 올트먼,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 등이 핵융합 상용화 스타트업에 7조 원 이상을 투자했다는 뉴스가 나오면서 ‘퓨전’이 다시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이번에 KSTAR의 설계 작업에 참여했고, ITER에서도 함께 일했던 저자가 ‘인공 태양 만들기’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알기 쉽게 쓴 책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1995년 시작한 우리의 핵융합 도전이 KSTAR와 ITER, 핵융합 발전 상용화로 눈앞에 다가온 지금, 이 책은 곧 시작될 “퓨전의 시대”를 먼저 보여주고 안내하는 친절한 길잡이가 될 것입니다.
박현거 (, 울산과학기술원(UNIST) 물리학과 교수, 프린스턴 플라즈마 물리 연구소 연구원, 전 KSTAR 연구 센터장) : 인류의 핵융합은 창조자에 대한 위대한 도전입니다. 핵융합 에너지를 개발하려는 꿈은 지난 반세기 동안 끝없는 실패와 진전을 거듭했고, 지금에 와서야 ‘점화(ignition)’의 가능성을 테스트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이런 도전의 역사를 일목요연하고 흥미진진하게 엮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습니다. 아인슈타인을 비롯해 20세기 물리학에 한 획을 그은 익숙한 이름들이 핵융합에 도전했던 역사적 사실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어 한눈에 파악할 수 있고, 지난 반세기에 걸쳐 전 세계에서 개발한 핵융합 장치의 기발한 원리와 작동 방식은 물론 그 한계까지 시대별로 알 수 있습니다. 특히 핵융합 연구의 핵심인 자기장 가둠에 기반한 “토카막”과 “스텔라레이터”의 원리와 기술 진화 과정을 제대로 살펴볼 수 있다는 것은 이 책의 큰 장점입니다. 핵융합의 불모지였던 한국에서 뒤늦게 시작한 핵융합 연구와 개발이 지금 어디까지 와있는지 잘 쓰여 있어 일반인은 물론 물리학을 공부하는 사람에게도 좋은 자료가 될 것입니다.
노승정 (한국핵융합대학협의회 회장, 한국가속기및플라즈마연구협회 회장, 단국대학교 물리학과 교수) : 저자는 세계적인 핵융합 전문가로, 이 책에서 핵융합 에너지의 기본 원리와 구현 장치를 알기 쉽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핵융합 발전에 관심이 있는 일반인이라면 큰 어려움 없이 접근할 수 있게 짜여 있어 한번 읽어볼 것을 적극 추천합니다.
권오남 (한국여성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장, 서울대 수학교육과 교수) : 이 책은 핵융합의 과학적 원리를 알기 쉽게 설명하고, 핵융합을 실제로 구현하는 데 필요한 공학과 기술을 명쾌하게 보여줍니다. 또한 우리 시대가 당면한 에너지 문제의 대안으로 핵융합 발전을 제시하면서, 핵융합 연구의 역사와 현황은 물론 그 중요성까지 심도 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핵융합의 과학적 원리와 기술적 발전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 소중한 길잡이가 될 것입니다.
권기균 ((사)과학관과문화 대표, 《세상을 바꾼 과학 이야기》 《박물관이 살아있다》 저자) : 저자는 핵융합 전문가입니다. 그런 그가 일반인이 읽을 수 있는 핵융합에 관한 책을 직접 썼습니다. 그동안 핵융합의 기본 원리와 최신 동향을 간결 명료하면서도 깊이 있게 설명해 주는 책은 국내에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은 다릅니다. 미래 에너지인 핵융합의 개념을 명확하게 정리하고 구체적인 장치 설명과 함께 앞으로의 발전 방향까지 믿음직한 로드맵을 제시합니다. 읽으면서 저자의 핵심을 꿰뚫는 통찰력과 개념 정리에 계속 감탄사가 나왔습니다. 핵물리와 핵융합에 관심 있는 사람은 꼭 읽어볼 것을 권합니다.
함택수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 전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 선행기술연구센터장) : 핵융합은 세상을 파괴할 수 있는 위력이 있지만, 동시에 인류에게 꿈의 에너지를 선사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이런 핵융합의 원리를 이해하기 쉽게 설명합니다. 핵융합 에너지를 실제로 이용하기 위해 해결해야 할 공학적 이슈를 문제점과 해결 방안, 현황과 전망까지 꼼꼼히 짚어줍니다. 핵융합 연구의 지난 백 년을 돌아보며 이제껏 알려지지 않았던 수많은 역사적 사건을 발굴해 선사한 현장감 가득한 경험 또한 이 책을 읽는 또 하나의 재미입니다. 핵융합의 원리와 구현 방법을 알고 싶은 독자, 핵융합이 선사할 미래에 관심이 있는 모든 독자들에게 적극적으로 추천합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