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투탕카멘의 무덤 : 20세기 고고학의 대발견 하워드 카터의 투탕카멘 발굴기
하워드 카터 / 해냄 / 2004.4.23
투탕카멘의 무덤을 발굴한 것으로 유명한 하워드 카터의 생생한 탐험기가 담겨 있다. 특히 투탕카멘의 무덤은 이미 도굴꾼들의 손을 거쳐간 다른 왕들의 무덤과 달리 거의 원형 그대로 발굴되어,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더구나 모두들 더이상 발굴할 것이 없다며 포기하던 곳에서 엄청난 발굴 성과를 이뤄냈기에 그 성과는 더 값진 것이었다.
저자는 발굴된 유물들을 통해 이집트의 젊은 왕 (투탕카멘)의 치세 기간 동안 일어났던 많은 일들을 새로 복원해냈다. 탐험기라지만, 한 인간의 집념이 얼마만큼의 성과를 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책이기도 하다.

○ 목차
편집자 서문| 보물 사냥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1장 왕과 왕비
2장 왕들의 골짜기
3장 오늘날의 골짜기
4장 테베에서의 준비 단계
5장 투탕카멘의 무덤을 발견하다
6장 예비 조사
7장 대기실의 유물들
8장 대기실에서 유물들을 반출하다
9장 방문객들과 기자들
10장 발굴자의 역할과 임무
11장 밀봉된 문을 열다
12장 투탕카멘
13장 묘와 매장실
14장 드디어 석관을 열다
15장 의식용 전차들
16장 세 개의 관을 열다
17장 이집트 장례 풍습의 흥미로운 점들
18장 왕의 미라를 조사하다
19장 매장실 너머의 보물 창고
20장 매장실 너머에서 발견된 장례 용품들
21장 저장실로 사용된 곁방
22장 곁방에서 발견된 유물들
23장 유물들의 부식과 화학적 변화의 원인
옮긴이의 말| 20세기의 대사건

○ 저자소개 : 하워드 카터 (Howard Carter, 1874 ~ 1939)
이집트 파라오 가운데 가장 유명한 투탕카멘의 무덤을 발굴한 고고학자. 1874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나 생계를 위해 화가로 할동하던 카터는 17세 때 이집트탐사기금 소속으로 이집트 무덤 벽화를 모사하는 일을 맡기 전까지 이집트학을 연구할 만한 그 어떤 정규 교육 과정을 이수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예술가로서의 타고난 직관력과 이집트에 대한 열정은 곧 그를 이집트 고대유물국 책임감독관의 지위에 오르게 했으며, 1902년 투트모세 4세와 하트셉수트 여왕의 무덤을 발견하는 쾌거를 올렸다. 그 기록은 『투트모세 4세 (Thutmose Ⅳ)』(1904)로 펴냈다.
그가 투탕카멘을 깨우게 된 것은 1907년경 이집트 유물에 관심을 가진 고대유물 수집가 카나번 경을 만나면서부터다. 더 이상 발굴할 무덤이 없다는 주위 사람들의 만류와 비웃음에도 카터는 ‘왕들의 계곡’을 누비며 투탕카멘의 흔적을 찾아다녔고, 1922년 이집트 고고학 발굴사상 가장 완벽한 형태로 보존되고 있던 투탕카멘의 무덤을 발굴, 3,400여 점의 유물과 함께 고고학계를 뒤흔들었다. 카터는 1939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투탕카멘의 무덤 속 유물들을 복원하고 정리하는 데 여생을 바쳤다. 『투탕카멘의 무덤』은 그가 1923년부터 1933년까지 집필한 『투탕카멘의 무덤 (The Tomb of TUTANKHAMEN)』(전3권)을 한 권으로 다시 정리해 펴낸 축약본이다.
– 역자 : 김훈
고려대학교 사학과를 졸업. 198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희곡 부문 〈빈방〉으로 당선. 옮긴 책으로 《희박한 공기 속으로》《바람이 너를 지나가게 하라》《세상 끝 천 개의 얼굴》 《성난 물소 놓아주기》《그런 깨달음은 없다》《모든 것의 목격자》《켄 윌버, 진실 없는 진실의 시대》《늘 깨어나는 지금》 외 백여 권이 있다. 현재 부여에서 번역 작업을 하면서 파트타임 농부로 지속 가능한 자연생태 농업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

○ 책 속으로
우리는 투탕카멘의 짧은 생애와 치세가 정치적으로 대단히 불편하고 불안한 것이었으리라 추측하고 있다. 투탕카멘은 어느 정도나 정치·종교적인 세력들의 도구 역할을 했을까? 그 소년 왕이 어떤 정치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었을까? 그러나 이런 모든 것들을 떠나서, 우리는 그의 묘의 부장품들에 표현된 수많은 장면을 통해서 그의 취향과 성향들에 관한 꽤 많은 정보를 얻었다. 우리는 바로 그런 부장품들에서 투탕카멘이 젊은 왕비와 애정 어린 따뜻한 관계를 유지했다는 더없이 생생한 힌트들을, 그가 왕족이자 젊은이답게 사냥을 즐기고 스포츠를 좋아했다는 증거를 발견한다. 그리고 그런 증거들 덕에 그는 3,000년 전의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아주 인간적인 모습으로 다가온다. ― <12장 투탕카멘> 중에서
우리가 황금 손잡이들을 이용해서 뚜껑을 들어올리자 왕의 미라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순간 만감이 교차했다. 그 가슴 떨리는 복잡한 감정은 언어로 표현할 길이 없다. 그 황금 관에 인간의 눈길이 닿은 이래 3,000년 이상의 세월이 흘렀다. 지상에서 사라진 엄숙한 종교 의식들을 너무도 생생하게 상기시켜 주는 장관 앞에서 인생의 짧은 순간으로 가늠되는 시간 개념은 그 보편적인 의미를 상실한 듯했다. 지금까지 우리에게 이름 정도만 알려졌던 젊은 파라오의 남은 모든 자취가 마침내 우리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조심스러운 손길로 맵시 있게 만든 인상적인 모습의 미라 한 구가 그 황금 관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 미라는 오시리스를 상징하는 모습으로 제작됐다. 아주 진귀하고 아름다운 고대인의 초상이라 할 수 있는, 망치로 두드려 펴서 만든 그 황금 마스크는 때이르게 사망한 젊은이의 모습을 암시하기라도 하듯 쓸쓸하면서도 고요한 표정을 담고 있었다. ― <16장 세 개의 관을 열다> 중에서
왕의 얼굴을 싸고 있는 마지막 붕대를 벗길 때는 머리가 탄화된 상태여서 극도로 주의해야 했다. 자칫 잘못했다간 매우 약한 이목구비에 손상을 줄 우려가 있었다. 우리는 우리의 작업이 대단히 중요하며 따라서 우리가 큰 책임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하고 있었다. 검은담비 꼬리털로 만든 붓으로 살살 건드리자 부식된 마지막 몇 조각의 천이 떨어져나가면서 차분하고 평온해 보이는 표정이 드러났다. 젊은이의 얼굴 모습이. 그 얼굴은 우아하고 기품이 있어 보였으며, 이목구비는 반듯했다. 특히 입술은 윤곽이 뚜렷했다. 나는 그 얼굴이 거기 참석한 모든 이들에게 안겨준 최초의 가장 놀라운 인상을 여기에 기록해도 데리 박사와 살레 베이 함디 박사의 영역을 침범하는 일이 되지는 않으리라 믿는다. 그 얼굴이 그의 장인 아케나텐의 얼굴, 기념 건조물들에서 볼 수 있는 그 얼굴과 아주 닮았다는 것을. ― <18장 왕의 미라를 조사하다> 중에서
함 바닥에는 몇 개의 마른 과일, 그리고 왕이 살아 있을 때 사용했던, 아름답기는 하나 아주 상태가 약한 타조 깃털 부채 하나가 놓여 있었다. 이 소박하면서도 감동적인 유품은 하얀색과 진갈색 타조 털들로 만들었다. 그 손잡이는 손목을 움직여 부채질을 할 때 일어나는 힘을 배가할 수 있게끔 직각으로 구부러져 있었다.
이 아름다운 유물들은 시간을 초월한 듯하다. 보물함 속에 그 부채를 집어넣은 뒤로 많은 문명이 흥망성쇠를 거듭했다. 그렇게 희귀한, 그러나 여러 모로 친근해 뵈는 유물은 우리와 그 아득한 과거를 연결해 준다. 우리는 그 부채 덕에 젊은 투탕카멘 왕이 우리 자신과 아주 비슷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갖게 된다. ― <20장 매장실 너머에서 발견된 장례 용품들> 중에서

고대 이집트인들은 죽은 사람도 생전 그 사람과 다름없는 사람으로 여겼다. 왕은 살아 있을 때나 저승에 갔을 때를 불문하고 늘 ‘선한 신’이었다. 그들은 기나긴 왕조시대의 유명한 왕들을 신과 다름없는 이들로 여겨 ‘위대한 신들’이라 불렀으며, 그들과 그들의 신성한 가족들을 숭배했다. 사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제2의 삶을 제1의 삶의 연장으로 여겼다. 따라서 그들은 묘 속에 가재도구, 홀, 부채, 단장, 지팡이, 무기, 그밖의 일상용품들을 부장해 뒀다. 그것들은 그들의 기억 속에 여전히 살아 있는 고인에게 바치는 제물들이었으며, 우리는 그것들을 통해서 고대 세계의 모습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다. ― <22장 곁방에서 발견된 유물들> 중에서
이튿날 아침 나는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일꾼들이 일손을 멈추고 서 있고 모두가 깊은 침묵에 휩싸여 있는 것을 보고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그리고 누군가가 우리가 걷어낸 첫 오두막 밑에서 기반암을 파서 만든 계단이 발견되었다는 사실을 보고했다. 그것은 너무나 황홀한 이야기여서 좀처럼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래 나는 단이 하나하나 드러나기 시작하는, 지하로 향해 나 있는 그 계단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지켜봤다. 그것은 정말로 밀봉된 출입구임이 분명했다! 결국 오랜 세월에 걸친 우리의 노고가 드디어 보상받을 때가 왔다. 그때 일어난 첫 느낌은 왕들의 골짜기에 대해서 가졌던 내 믿음이 헛된 것이 아니었다는 것, 그리고 그 성공을 축하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 <5장 투탕카멘의 무덤을 발견하다> 중에서
수천 년 전 신관들이 닫고 밀봉해 놓은 방에 발을 들여놓을 때면 대부분의 발굴자들은 거의 당혹감에 가까운 외경심에 사로잡힐 것이다. 그 순간 인간 삶의 한 요소로서의 시간은 그 의미를 상실하고 만다. 그들이 딛고 있는 바닥에 인간의 발이 마지막으로 스치고 지나간 뒤 3,000년 또는 4,000년의 세월이 흘렀다.
곧이어 또다른 느낌들이 연이어 일어난다. 발견의 기쁨, 터질 듯한 긴장감, 호기심에 당장 봉인을 뜯고 상자 뚜껑을 열어젖히고 싶은 강력한 충동, 자신이 역사의 한 페이지를 덧보태거나 골치 아픈 어떤 연구 과제 하나를 해결했다는 생각에서 치솟아 오르는 환희, 그리고 솔직히 말해 보물 사냥꾼의 열에 들뜬 기대감도 역시 일어난다. ― <6장 예비 조사> 중에서
작은 방에서 수십 점의 유물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는데 그 하나하나가 다 보통 때라면 우리를 몹시 흥분하게 할 만한 것들이요 한 시즌 내내 일한 것에 대한 충분한 보상으로 여겨질 만한 것들이었다.
그것은 단순히 양적인 관점에서만 놀라운 발견이 아니었다. 그 묘가 속한 시대는 여러 가지 면에서 이집트 미술의 전 역사를 통틀어 가장 흥미로운 시대여서 우리가 아름다운 유물들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는 점은 미리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일부 유물들이 지닌 그 생생하고 선연한 아름다움과 접하고 보니 그저 놀랍기만 했다. 우리에게 그 유적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이집트 미술의 새로운 가능성들을 열어줬다. 우리는 대충 사전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도 그 유물들의 연구가 기존의 모든 개념을 완전히 뒤집어엎지는 못한다 해도 최소한 크게 수정하게 하는 결과를 빚기는 하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 <6장 예비 조사> 중에서
놀라운 것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우리가 선 자리에서 그 방의 모든 내용물을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묘에서 최고의 보물이라 할 만한 것이 그 작은 방 안에 있다는 것을 한눈에 알아봤다.
그 출입구의 맨 맞은편에 내가 일찍이 본 기념물들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념물 하나가 서 있었다. 그것은 너무나 빼어나게 아름다워 보는 순간 절로 찬탄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그것의 중앙부는 커다란 사당 모양의, 황금으로 완전히 둘러싸인 궤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윗부분의 처마 돌림띠는 머리로 태양 원반을 떠받친 코브라 형상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 기념물에는 보는 이들의 상상력에 강력하게 호소하는 소박한 숭고함 같은 것이 어려 있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그 기념물을 보면서 목이 울컥 메었다. ― <11장 밀봉된 문을 열다> 중에서

○ 출판사 서평
1922년 이집트 ‘왕들의 골짜기’에서는 전세계 고고학계를 뒤흔들 만한 대발견이 이루어졌다. 고대 이집트 18왕조시대의 파라오인 투탕카멘의 무덤이 전혀 손상되지 않은 채로 발견된 것이다. 더 이상 발굴할 무덤이 없다던 ‘왕들의 골짜기’에서 발견됐다는 것만으로도 사건인데다, 도굴되지 않은 원 상태의 보존도 이례적이었고, 무엇보다 3,400여 점의 호화로운 유물이 투탕카멘의 유명세를 높였다.
『투탕카멘의 무덤』은 이처럼 20세기 고고학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업적으로 평가받는 투탕카멘 무덤 발굴의 전과정을 발굴자 하워드 카터가 10년에 걸쳐 직접 기록한 책이다. 무덤 발견에서부터 유물을 발굴하고 복원하는 과정을 시간 흐름에 따라 기록한 이 책을 보면 이집트의 뛰어난 문화에 놀라고, 투탕카멘의 신비를 밝히기 위한 카터의 집념과 열정에 또 한 번 놀라게 된다.
무덤이 발굴되기 전까지만 해도 투탕카멘은 왕명표에도 제대로 등재되어 있지 않은 ‘잊혀진 파라오’였다. 열아홉 살의 어린 나이에 죽은 데다가 통치 기간에도 아이라는 장관의 섭정을 받았기 때문에 그가 역사에 남긴 영향도 극히 미약했다. 이집트 고고학자와 사학자 누구도 투탕카멘의 존재를 알지 못했고, 그의 무덤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더더욱 하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오직 한 사람 하워드 카터만이 투탕카멘의 존재에 주목했고, 그를 전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파라오로 만들었다.
이집트 벽화 모사가에서 시작해 투트모세 4세의 무덤을 발굴하는 쾌거를 올리기도 했던 카터를 운명의 길로 이끈 것은 유물 수집가 카나번 경과의 만남이었다. 당시 왕들의 골짜기에 대한 발굴권은 대부분 미국인 시어도어 데이비스가 갖고 있었다. 카터가 할 수 있는 일은 데이비스가 관심을 갖지 않는 귀족들의 분묘를 발굴하거나 데이비스가 발굴해 낸 유적들의 정보를 분석하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데이비스의 업적을 다시 조사하고 정리하던 중, 투탕카멘의 이름이 찍힌 점토제 도장과 항아리 등이 발견됐음을 알게 됐다. 데이비스는 이 사실을 간과해 버렸으나, 카터는 분명 어딘가에 이 이름 없는 왕의 무덤이 있을 거라고 믿었고 카나번 경은 이를 지원했다. 결국 1914년 데이비스가 “이제 왕들의 골짜기에는 더 이상 발굴할 것이 없다”고 손을 털고 떠나버린 후, 카터와 카나번 경은 발굴 허가권을 얻기 위해 2년간 싸우고 6년간 골짜기를 헤맨 끝에, 흙더미에 묻힌 투탕카멘의 무덤을 찾아냈던 것이다.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투탕카멘의 무덤 안에는 투탕카멘의 황금 미라와 3,400여 점의 호화로운 유물이 그득그득 쌓여 있었다. 투탕카멘 재위 시절의 이집트 미술이 화려한 전성기를 누린 때였던 만큼, 미술사학계는 노다지를 얻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또한 고대 문명사가들은 투탕카멘 사후, 고의로 역사에서 지워졌던 텔 엘 아마르나 왕들의 존재와 기록을 복원함으로써 고대 이집트 역사의 끊어진 허리를 이을 수 있었다. 투탕카멘의 무덤 문이 열리는 순간 우리 앞에 이집트의 신비와 비밀의 열쇠가 쏟아져 나왔던 것이다.
6년의 추적과 7년의 발굴 이후에도 하워드 카터는 투탕카멘의 무덤에서 발굴된 유물들을 정리, 기록, 복원하는 데 10년 이상의 여생을 모두 바쳤다. 그러나 투탕카멘 에 쏠린 세인들의 관심이 커진 만큼, 카터는 ‘투탕카멘의 저주’ 같은 근거 없는 소문과 유명세에 시달려야 했다. 때문에 카터가 이 책을 쓰게 된 이유도 투탕카멘에 대한 세상의 호기심과 의문을 밝히기 위함이었다.
이 책은 투탕카멘 발굴에 대한 믿을 만한 기록으로서 국내 고고학 전문 독자에게 갖는 의미도 크겠지만, 당시의 긴장감과 희열, 흥분을 고스란히 간직한 보물 사냥꾼의 고백, 독자가 카터와 함께 무덤 내부를 살피는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로 생동감과 박진감 넘치는 재미, ‘발굴 일지’라고 이름붙일 수 있을 정도로 세세하고 정확한 기록만으로도 고대 문명과 미지의 세계에 관심을 지닌 일반인과 학생 모두에게 좋은 읽을 거리가 될 것이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