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판넨베르크의 사도신경 해설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 / 한들출판사 / 2000.6.15
기독교인들이 매 주일 예배시마다 암송하고 있는 사도신경에 대한 현대적 비판과 해석을 우리 기독교 신앙의 전통과 중재시키려는 작업의 성과물이다. 사도신경에서 거론된 신앙의 내용이 오늘의 성서비평적 관점에서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에 대한 확실한 근거를 찾고있다.
기독교 신앙 고백서인 사도신경, 예배 때 암송하는것 이상으로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이러한 물음에 대해 볼파르트 판넨베르크는 사도신경이 어떤 근원적 의미로 형성되었는지, 성서비평학과의 관계는 무엇인지, 그 신앙고백의 내용이 세계이해와 근대 인간론의 문제를 어떻게 해석하는지를 실질적으로 설명한다.

○ 목차
- 나는 믿습니다…(11)
- 하나님을….(29)
-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아버지를….(45)
- 예수 그리스도를….(65)
- 하나님의 외아들.우리의 주를….(85)
-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98)
-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받혀 …(108)
- 지옥에 내려가시고….(122)
-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하늘에 오르사(130)
- 전능하신 아버지인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계시다가….(151)
- 나는 성령을 믿습니다…(165)
- 하나의 거룩하고.보편적인 교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것(183)
- 죄를 용서해 주시는 것과….(201)
-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습니다…(213)
- 역자 후기…(224)
- 역자 주 색인….(228)

○ 저자소개 :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 (Wolfhart Pannenberg, 1928 ~ 2014)
1928년 10월 2일 독일 슈테틴 (현재 폴란드의 슈테친)에서 세무 공무원의 아들로 태어났다.
루터교에서 유아세례를 받았지만, 유년기에는 기독교에 적대적인 부모로 인해 신앙생활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18세 무렵 강한 종교적 체험을 하게 되었는데, 후에 그는 이 체험을 “빛 체험”이라 불렀다.
그는 이런 체험을 학문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철학자들과 종교 사상가들의 다양한 책을 읽었다.
고등학교 때에는 문학 교사의 권유로 기독교를 깊이 탐구하여 “지성적 회심”에 이르렀으며, 그 결과 기독교가 최선의 종교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는 어린 시절 클래식 음악에 심취하여 피아니스트나 혹은 카라얀 (Herbert von Karajan)과 같은 지휘자가 되고 싶었다.
그는 15세 때 도서관에서 니체의 ‘음악의 정신으로부터 비극의 탄생’을 읽고 큰 감동을 받았다.
그리고 청소년기에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큰 전쟁을 경험하였을 뿐만 아니라 군인으로 전쟁의 끝에 가담하게 되면서 결국 전쟁포로로 1945년 여름을 맞았다.
포로 생활 이후 헤어진 가족들을 만나 1946년 다시 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이후 1947년 베를린대학교에 입학하여 신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베를린대학교에서 3학년을 마치고 1950년 여름 하이델베르크대학교에서 계속 공부하였다.
그는 교의학과 관련된 많은 신학 서적들을 읽었으며, 성서 해석에도 큰 관심을 가졌다. 뿐만 아니라 철학에 더 많은 관심을 두었다.

그는 1953년 하이델베르크대학교에서 ‘둔스 스코투스의 예정론’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리고 1958년 부퍼탈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1958 ~ 1961)로 3년 뒤에는 마인츠대학교 (1961 ~ 1968)로 옮겨 교의학을 강의했다.
1963년 시카고 대학에 초빙되어 교환교수로만 한 학기를 머물렀다.
그리고 1968년 뮌헨대학교 교수 (1968 ~ 1994)로 초빙되어 은퇴할 때까지 강의했다.
판넨베르크의 계시 사상은 K. 바르트와 역사를 정신과 자유가 계시되는 과정이라고 보는 헤겔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그는 역사가 하나님의 자기계시라는 헤겔의 역사관을 그대로 수용하는 한편, 그리스도의 부활은 예기적 (proleptic) 사건이며 역사는 그 예기적 사건이 전개되는 과정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이런 견해는 강한 바르트적 경향에도 불구하고 신정통주의 신학자들은 물론 불트만을 지지하는 자유주의 신학자들로부터도 강한 비판을 받았다.
헤겔좌파, 마르크스와 에른스트 블로흐에게 철학적 뿌리를 가지는 몰트만도 은연중에 판텐베르크를 비판했다.
저서로서는 ‘역사로서의 계시’ (1961), ‘예수, 신과 인간’ (1964), ‘신학과 하나님의 나라’ (1969), ‘신학적 관점에서의 인간론’ (1983), ‘조직신학’ 1-3권 (1988 ~ 1993), ‘신학과 철학’ (1996), ‘유비와 계시’ (2007) 등이 있다.
– 역자 : 정용섭
1953년 서울에서 출생했다. 서울신학대학교 학부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독일 뮌스터 대학교와 계명대학교(Ph.D.)에서 공부했다.
저서로 『말씀신학과 역사신학』, 『기독교를 말한다』, 『설교란 무엇인가』, 설교비평집 『속빈설교 꽉찬설교』, 『설교와 선동 사이에서』, 『설교의 절망과 희망』, 『목사 공부』, 『마가복음을 읽는다 Ⅰ,Ⅱ』 등이 있고, 역서로 판넨베르크의 『사도신경해설』, 『신학과 철학』 등이 있다.
계명대학교, 대구대학교, 영남신학대학교에 출강했으며, 현풍제일교회와 영천성결교회 담임목사를 거친 뒤 2003년에 대구샘터교회를 개척했다. 지금은 대구샘터교회 담임목사, 대구성서아카데미 원장으로 사역 중이다.

○ 책 속으로
예수가 죽음에 머물러 있는 게 아니라 오히려 죽어 묻힌 다음에 곧 제자들에게 생생하게 나타났다는 보도의 신실성에 대해서 우리는 어떤 판단을 내릴 수 있는가? 이제 이 보도는 분명한 시간에 발생했음이 틀림없는 분명한 사건을, 즉 이미 죽어 무덤에 묻혔던 예수가 현현했으며 빈 무덤이 발견되었다는 사실을 가리킨다.
이러한 주장이 옳은지에 대한 시험은 독자적으로 그리고 배타적으로 역사 연구의 수단에 근거해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소위 한번 일어난 사건에 대한 주장을 시허할 다른 길이 없다. 역사적 연구 방법은 그와 비슷한 주장들을 시험해 보는 데서 찾아볼 수밖에 없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이러한 종류의 시험에 타당한 관점들이 역사 연구를 위한 도구적 요소로서 증명될지도 모른다. — p.143
○ 독자의 평
판넨베르크는 철저하게 ‘이성’과 ‘합리성’을 추구한다. 진리는 이성적으로 추구될 수 있으며 합리적으로 알 수 있다. 기독교의 진리는 내적인 회심을 통해 경험될 수 있을진 몰라도 내적인 회심이 있어야지만 증명될 수 있는건 아니라는게 판넨베르크의 주장이다.
본서는 이러한 판넨베르크의 특성이 짙게 배여있다. 본서를 통해 사도신경을 이해하는데 있어 낯선 접근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 예수의 음부행
판넨베르크는 예수의 음부행에 대한 논의는 사도신경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마지막으로 추가된 요소로 본다. 2세기로 소급되는 로마 공동체의 세례 고백에서는 그리스도의 음부행에 대한 언급이 발견되지 않는다. 그런데 4세기의 신앙고백문에는 예수의 묻히심과 부활 사이에 음부에 내려갔었다는 암시가 확실하게 언급되었다. 이에 대한 판넨베르크의 해석은 이것이 예수의 죽음의 운명을 보다 자세하게 묘사해 보려고 한 것이다. 즉 예수는 육체적인 차원에서만 죽임을 당한 것이 아니라, 죽음이 의미하고 있는 바의 것, 말하자면 하나님과 그의 구원으로부터 배척을 당한 것이다. 그에 의하면 하나님이 도래한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인식하고 있는 중에 그에 의해 제외된다는 사실을 고대 교의학은 음부의 고통이라고 생각했다. 하나님의 임박을 분명히 의식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하나님의 임박에서 제외되었다는 것, 바로 이것이 음부에 내려간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바르트처럼 판넨베르크도 예수의 음부행에 대한 다른 해석을 소개한다. 그것은 음부에 내려간다는 것이 예수에게 고통이라기보다는 승리를 뜻한다는 해석이다. 여기서 음부행은 승리행으로 그려진다. 기독교 미술에서는 부활하신 예수께서 음부에 내려가셔서 악마를 제압하고,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이브를 음부의 웅덩이에서 건져 내시는 그림을 자주 제시하였다. 벧전3:19이하에서 이 해석의 근거가 될 만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거기에 의하면, 그리스도는 ‘영으로 가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니라.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벧전4:6은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이는 육체로는 사람으로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을 따라 살게 하려 함이라’라고 말한다. 판넨베르크는 이것을 이렇게 해석한다. “예수를 통한 지하세계의 복음선포는 개종설교를 의미할 뿐이다. 이것은 이미 죽은 자들도 역시 기독교 복음을 듣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육체로 살았을 때 예수나 기독교 복음을 만나지 못하고 죽어 지하세계에 가 있는 이들에게도 임박한 심판 앞에서 예수를 통한 구원이 열린다.” 그에 의하면 기독교 주석학자들은 이미 고대 교회 시대에서 주장되었던 이러한 대담한 사상을 약화시켰다. 그들은 하데스에서의 예수의 설교는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서 의로운 자들만을 향했거나, 아니면 일단 육체적으로 살 때 이미 의로운 자들로 판명된 사람들만을 대상으로 했다고 하는데, 베드로 전서는 예수가 회심 설교를 행했다는 점에서 이런 주장들을 뛰어 넘는다고 하였다. 예수의 음부행에서 예수를 수난자로 해석하는 것과 승리자로 해석하는 것은 서로 배타적으로 보이지만, 판넨베르크에 의하면 서로 연관된다.
양자는 예수 죽음에 대한 해석이다. 이 안에 양자가 연관되어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으로부터 유기된 그의 죽음을 통해서 예수는 그와 연결되어 있는 모든 이들을 위해서 죽음이 의미하는 하나님의 유기를 견뎌냈기 때문이다. 예수 죽음의 대리적 의미는 죽음을 극복했다는 표상으로 표현된다. 이러한 승리의 의미는 예수의 십자가를 부활의 빛에서만 유지하게 했으며, 또한 십자가의 의미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음부행을 부활한 자의 몫으로 돌린다는 것은 함축적이었다. . . 원시 기독교가 회심설교로 행한 선교 설교의 상에서 음부에 대한 예수의 승리를 묘사하고 있는 베드로전서의 사상은 예수의 십자가에서 발생한 대리의 우주적 영향력을, 그리고 이로써 중재된 구원의 보편성을 주장하고 있다.
판넨베르크는 예수님의 음부행을 우주적 구원론과 연관시키고 있다. 우리에게 제기되는 많은 구원론적 질문들, 예를들면 예수 이전에 살았던 사람들의 구원 가능성, 복음을 접해 보지 못한 사람들의 구원가능성 또는 복음을 듣기는 들었으나 믿지 못한 사람들의 구원가능성에 대하여, 사도신경의 이 항목이 우주적 구원론적으로 답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인류를 위해 예수에게서 발생한 일은 예수와 또한 그에 관한 사신과 결코 접촉해 본적이 없는 인간들, 혹은 예수와 그의 역사의 진리성을 결코 한번도 실제적으로 깨닫지 못한 인간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수를 결코 알지 못하던 이들도 역시 그들이나 우리가 탐지할 수 없는 방식으로 인류와 인류 역사를 통해서 예수와 그리고 하나님과 관계된다. … 그리고 이러한 일련의 일들이 의미하는 바는 그들에게 구원 아니면 심판이 임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들이 구원받는다고 확실히 보장할 수 없다. 명시적으로 예수와 일치해 있는 이에게만 구원은 보증된다. 그리고 이 일치에서 예수와 더불어 죽음을 극복한다는 희망이 보증되어 있다. 그러나 모든 나머지 사람들 역시, 예수 이전에 이미 죽은 이들 역시 그에게 나타난 구원에 참여할 수 있다. 분명히 우리가 알지 못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