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펄벅의 ‘대지’ 3부작 : 대지 · 아들들 · 분열된 일가
펄 S. 벅 (Pearl Sydenstricker Buck) / 길산 / 2014.5.27
펄 벅의 대지는 세계 각국 언어로 번역이 되었으며, 퓰리쳐상과 1938년 노벨 문학상까지 수상하게 됐다.
왕룽 일가를 통해 중국인의 삶과 농민들의 소박한 모습을 감동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가난한 농부인 왕룽은 부잣집 종이었던 오란과 결혼을 하면서 살림을 일구어 나간다. 그러나 홍수와 가뭄 등 천재지변의 시련을 겪으면서 남방지역으로 이주를 하게 되고 그곳에서 뜻하지 않게 횡재를 하여 고향으로 돌아와 돈을 모아 부호가 된다. 그 과정에서 렌화라는 여인을 첩으로 들이고 모아놓은 재산을 많이 허비한다. 부인인 오란과 아버지의 죽음, 그리고 자식들의 성장과 결혼, 작은아버지와 작은어머니의 부양 등 땅과 흙에 대한 왕룽의 깊은 애정, 남편의 뜻을 따라 땀 흘려 일하는 아내 오란, 그리고 아버지와는 다른 생각을 가진 아들들의 모습이 대지 1-3부가 중국의 넓은 대륙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 제1부 ‘대지’ (The Good Earth, 1931년작) 상편
비옥한 땅의 가치와 근면한 노동, 검소함, 책임감 등이 인간에게 얼마나 보편적인 미덕인가를 제시하고 있다.
가난하게 살지만, 성실한 농부인 주인공 왕룽은 성 안에서 가장 부자인 황씨댁 여종 오란을 아내로 맞이한다. 오란은 외모는 보잘 것 없지만 알뜰하고 강직한, 전형적인 농부의 아내 감이었다. 선천적으로 부지런한 농부인 왕룽과 오란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해서 생활에 점점 여유가 생기자 황씨댁 전답을 사들이기도 한다. 그들 사이에 네 번째 아이가 태어날 무렵, 큰 가뭄이 들어 무서운 굶주림이 시작되자 왕룽 일가는 오란의 의견에 따라 남방으로 떠난다.
끼니를 잇기도 어려운 객지 생활에서 벗어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기만을 바라며 남쪽 대도시에서 하루하루를 연명하지만 희망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던 중 주변 빈민들이 들고 일어나 부잣집을 습격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왕룽과 오란은 군중 틈에 끼어 부잣집에 들어갔다가 뜻밖에도 많은 돈과 보석을 손에 넣게 되고, 고향으로 돌아와 황씨댁의 남은 땅을 모두 사들여 큰 부자가 된다. 그러나 왕룽은 재산을 불리고 땅을 많이 구입해 소작인들을 부리면서 자식들을 교육시키고 성내 찻집의 렌화라는 기생을 첩으로 맞아들이는 등 농사일에서 점점 멀어져간다. 렌화는 왕룽의 둘째 아내로 시집오면서 몸종 겸 식모로 두쥐엔도 데려오는데, 이는 렌화를 첩으로 들인 것보다도 더 왕룽의 집안에 불화를 일으키게 된다. 렌화는 오란에게 생판 모르는 남이었지만, 두쥐엔은 오란이 황씨집에서 종살이하던 시절 황씨집 주인영감의 총애를 등에 업고 오란에게 횡포를 부린 경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란은 남편이 젊고 예쁜 첩을 맞이한 사실을 알고 가슴앓이하며 나날을 보냈고, 극도로 쇠약해진 오란이 끝내 고생스러웠던 한평생을 마치자 그제야 왕룽은 오란이 이 집에서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지를 깨닫는다.
왕룽은 첫째 아들의 제안에 따라 이제는 셋집이 된 황씨댁 저택으로 집을 옮기고, 넓은 저택에서 지난날을 회상하며 고독 속에서 지내다가 결국은 젊고 어여쁜 종 리화를 첩으로 삼고 외로움을 달랜다. 리화는 왕룽의 둘째 아내 렌화의 시중을 드는 종이었고 흉년에 아버지가 은 20냥에 왕룽에게 팔았는데, 난봉꾼인 왕룽의 사촌 아우에게 희롱당할 위기에서 구해 왕룽 곁에 잠시 두었다. 사실 리화는 왕룽에게 첩이라기보다 양딸 같은 존재이다. 리화 역시 아버지한테 하는 것처럼 왕룽에게 매달렸다. 큰 아들은 그의 뒤를 이어 대지주가 되고, 둘째 아들은 거대한 상인이 되며, 막내아들은 집을 뛰쳐나가 남방의 군벌에 입대해 군인이 된다. 어느 날, 훌륭한 관을 준비해놓고 죽을 날을 기다리던 왕룽은 두 아들이 토지를 팔려고 의논하는 것을 듣고 크게 노한다. 그러나 두 아들은 비웃음만 흘릴 뿐이다. 아버지 앞에서는 안 판다고 얼버무리고 뒤로는 서로 눈을 마주치며 싱긋 웃는다.
… 왕룽은 울먹이며 띄엄띄엄 말했다.
“우리는 땅에서 나왔고, 다시 땅으로 돌아가야 해. 아무도 너희한테서 땅을 빼앗지 목해”
왕룽은 두 뺨에 흐르는 눈물을 그냥 내버려 두었다. 그는 허리를 숙여 흙을 한 줌 쥐고 중얼거렸다.
“땅을 팔면 그걸로 끝장이야!”
두 아들은 양쪽에서 아버지를 부축했다.
왕룽은 따스하고 부드러운 흙을 손에 꼭 쥐고 있었다.
두 아들은 아버지를 안심시키느라 거듭 말했다.
“아버지, 안심하세요. 절대로 땅은 팔지 않을 테니까요.”
하지만 늙은 아버지의 머리 위에서 두 아들은 서로 쳐다보며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 제2부 ‘아들들’ (Sons, 1933년작) 중편
2부는 왕릉의 아들들의 이야기다.
아버지 왕룽이 세상을 뜨자 첫 아들 왕따와 둘째 아들 왕얼은 장례식과 유산 분배 문제로 분주하게 움직인다. 이 무렵 두 형제의 사이는 크게 벌어져 있었다. 첫째 왕따는 사치스러운 생활에 젖어 아버지의 재산을 물 쓰듯 했고, 반면 수전노인 둘째 왕얼은 허영심만 가진 형에게 잇속을 챙길 줄 모른다고 비난한다.
본격적인 장례가 시작되자, 집을 뛰쳐나갔던 셋째 아들 왕싼까지 집으로 돌아온다. 10년간 소식 없던 셋째가 군인이 되어 돌아오자 집안 식구들은 놀라움과 두려움에 휩싸인다. 왕싼은 자신의 유산 분배 차례가 되자 ‘땅 같은 건 필요 없으니 군대를 키울 군자금으로 쓸 돈을 분배해달라’고 요구한다. 집을 떠나 남쪽 지방에서 활동하는 반란군에 들어간 그는 일찍이 용맹한 인물로 주목 받아 ‘희고 긴 치아’를 가졌다는 의미의 ‘왕후’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다. 또한 자신이 따랐던 노장군이 향락에 젖어 타락하자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뜻 맞는 100명의 군사들과 독립적으로 군벌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품고 있었다. 그는 형들과 담판을 벌여 자신의 땅을 판 돈을 조달받을 수 있도록 조치하고, 이 군자금으로 본격적인 세력 확대에 들어서게 된다.
한편 왕후는 반드시 군벌로서 성공하겠다는 야심 넘치는 군인인 동시에, 가난한 백성들에게 깊은 애정과 연민을 지닌 자비로운 지도자이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군대에서는 다른 군대와 다른 규칙을 지켜야 한다고 공표한다. 가난한 이들의 편에 서겠다는 결심을 저버리고 타락한 기존 군벌들이나 노략질을 일삼는 화적떼를 쫓아내되, 이들이 다스리던 마을의 성을 차지한다고 해도 부녀자나 백성들을 농락하고 노략하는 일을 엄하게 다스리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의 부하들 또한 상벌이 엄격한 왕후를 두려워하고 존경했다.
또한 그는 집을 떠나면서 두 형들에게 크게 출세시켜주겠다고 장담하며 각각의 형들에게서 조카 둘을 데려가지만, 심성 약한 큰 조카가 전장의 공포를 이기지 못해 목을 매고 죽는다. 반면 하나 남은 작은 조카 곰보는 삼촌 왕후를 도와 여러 활약을 해내며 군인으로 성장한다.
여러 고난을 거쳐 점차 세력을 넓혀갈 무렵, 왕후의 앞에 한 여인이 나타난다. 왕후가 직접 목숨을 거둔 어느 장군의 아름다운 아내로, 그녀는 끝내 왕후에게 마음을 열려 하지 않는다. 아버지의 첩이 된 이화를 남몰래 연모하면서 받은 상처로 그간 여자에게는 관심을 두지 않던 그가 여자에게 사랑을 느끼게 된 것이다. 갑자기 찾아온 무모한 열정에 사로잡힌 그는 ‘적의 여자’라는 주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녀와 결혼하지만, 얼마 안 가 그녀가 화적떼의 두목 노릇을 하며 그를 배반하려 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여자의 목을 베어버린다.
이 일로 깊은 상처를 입은 왕후는 형 왕따와 왕얼에게 고향에서 아주 평범한 여인을 골라 아내로 보내줄 것을 부탁한다. 두 형은 각각 여인 한 명씩을 왕후에게 보내는데, 왕후는 그중에 둘째 아내로부터 외아들 왕위안을 얻고 마음의 평정을 되찾는다.
한편 왕후의 큰형 왕따는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재산으로 흥청망청하고 땅을 팔 궁리만 하는 데다 소작인들에게는 가혹한 세금을 매겨 악독한 지주로 불리고 있었다. 게다가 그의 자식들도 아버지를 본 따 바깥으로만 맴돈다. 둘째 형 왕얼 역시 아버지가 물려받은 재산을 고리대금업에 투자하고 형에게도 땅을 팔아 자신에게 투자할 것을 종용하는 등자비심 없는 수전노로 살아간다.
형들의 삶을 경멸하며 대의에 나선 왕후는 앞으로 일어날 전국적인 내란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선점하겠다는 야망을 가지지만, 동시에 이제는 세력을 넓히는 것에만 몰두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자신의 명예나 부유함보다는 아들을 위대한 장군으로 키우겠다는 일념이 더 중요하다고 느낀 것이다.
반면 아들 왕위안은 야심이 큰 아버지와 거리를 두고 조용한 소년으로 자라나지만, 왕후는 아들이 군인이 되기에는 사려 깊고 다정한 성격임을 인정하지 않는다. 게다가 아들이 군대보다는 작은 마을의 땅과 농부들에 더 큰 관심과 애정을 가지는 것 또한 마땅치 않다.
그렇게 왕후가 아들의 미래를 설계하고 있던 와중, 다시 한 번 대기근이 닥친다. 전장에 나가보지도 못한 채 굶주림에 시달리는 군사들 사이에 서서히 반란의 조짐이 퍼져나가자, 왕후는 어쩔 수 없이 다시 두 형들에게 도움을 청하게 된다. 또한 혼란스러운 정국에서 남쪽에서 이상한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는 정보를 듣게 된다. 군벌들의 전쟁이 아닌, 군벌을 타파하기 위한 평민들의 폭동이라는 것이다. 왕후는 이 모든 상황에 불안을 느끼고, 그 불안은 얼마 안 가 현실로 일어난다.
아들 위안이 열다섯 살 되던 해, 왕후는 농업학교에 입학해 농사를 배우고 싶다는 아들을 몰아부쳐 사관학교에 입학시킨 뒤, 아들이 그의 뒤를 물려받을 수 있도록 준비를 해나간다. 그리고, 그로부터 4년 뒤 겨울밤, 그의 꿈은 깨져나간다. 갑자기 돌아온 아들이 있고 있는 곳은 장군의 옷이 아닌 혁명부대의 제복이었다. 아들까지도 그의 적이 된 것이다!
하지만 아들은 아버지를 적으로 돌리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 아니었다. 사관학교에서 혁명군에 포섭되었지만, 아버지를 배신할 수 없다는 판단에 그곳을 도망쳐 돌아온 것이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추격자들을 피해 할아버지인 왕룽의 고향 움막에 몸을 숨기겠다고 말하고, 왕후는 자신의 모든 꿈이 물거품이 되었음을 깨닫고 눈물을 참는다.

– 제3부 ‘분열된 일가’ (A House Divided, 1933년작) 하편
3부는 왕룽의 손자들이 주인공으로 나온다. 고향에서는 농민들이 폭동을 일으키는 바람에 일가의 기반이었던 농토를 모두 다 잃는다.
첫째 왕이의 집안은 아들 하나가 상하이에서 가장 큰 은행의 부은행장이 되어 있어서 상하이로 이주하고, 둘째 왕얼의 집안은 2부에서 삼촌 왕싼 밑에 들어간 아들 하나가 부유한 상업도시 하나를 지배하고 있어서 그쪽으로 도망간다. 문제는 셋째 왕싼인데, 왕싼은 농민들에게 몰매를 맞아 그 후유증으로 앓다가 유학에서 돌아온 아들 왕옌을 만나고 죽는다.
애초에 농민들이 반란을 일으킬 수 있었던 배경은 왕얼에게 있었다. 왕싼이 아들의 유학 자금이나 군자금 등으로 왕이에게 돈을 빌려 썼는데, 왕얼은 동생에게 가차 없이 이자와 대부 원금을 상환 받았다.
이 비용 부담 때문에 한때 2만의 정예부대를 가지고 있던 왕싼의 군대는 건달패 백여 명밖에 남지 않을 정도로 쪼그라들었고, 조카인 왕얼의 아들조차 자기 지배구역에서 걷는 세금을 삼촌에게 바치지 않을 정도였다. 가문의 배경인 왕싼의 군대가 없어지자 왕얼의 착취를 참고 참던 농민들이 일시에 봉기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군벌의 보호를 받는 유력자들이 그들에게 자금 지원을 해 주면서 상부상조한다는 걸 감안해 보면 왕얼은 결국 그 탐욕스러운 본성을 못 버려서 동생에게 자금 지원은 못해 줄망정 철저히 잇속만 따지다가 결국 화를 자초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왕싼의 봉기 초기부터 보면 왕얼이 돈을 안 받고 넘어간 건 왕싼이 늘어난 군대를 무장시킬 총을 구입했을 때밖에 없었다. 그나마도 무사히 수령한 2천 정 정도에 대한 대금은 전부 받았고, 소실된 1천 정가량에 대한 대금만 왕싼이 못 받은 것에 대해선 지불할 수 없다고 나와 어쩔 수 없이 안 받고 넘어간 것에 불과했다.
한편 그 시기, 왕이의 두 아들은 혁명군에서 중책을 맡아 공직에 종사하고 있었고, 옌을 혁명군에 끌어들이려고 했던 그의 군사학 가정교사는 고위직에 올라 있었다. 옌의 이복동생 아이란은 부유하지만 여자 관련으로 소문이 좋지 않은 연애 소설가와 결혼했으며, 옌은 의붓동생 메이린과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고,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것으로 3부가 종료된다.

○ 저자소개 : 펄 S. 벅 (Pearl Sydenstricker Buck, 1892 ∼ 1973)
펄 S. 벅 (Pearl Sydenstricker Buck, 1892년 6월 26일 ∼ 1973년 3월 6일)은 미국에서 태어난 지 수개월 만에 선교사였던 부모를 따라 중국에서 10여 년간 어머니와 왕 (王) 노파의 감화 속에서 자랐다. 그 후 미국으로 건너가 우등으로 대학을 마친 그녀는 다시 중국으로 돌아와 남경대학의 교수가 되었다. 1917년 중국의 농업기술박사인 John L. Buck과 중국에서 결혼하여 정신지체인 딸을 낳았는데, 그 딸에 대한 사랑과 연민은 그녀가 작가가 된 중요한 동기였다. 1950년作 [자라지 않는 아이]는 그 딸에 대해 쓴 작품이었다. 그 외에도 중국을 배경으로 한 다수의 작품이 있다. 1931년作 [대지 : 大地]로 1938년 미국의 여류 작가로서는 처음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1964년 ‘출생으로 인해 고통 받는 아동들을 위한 비영리 국제기구’ 펄벅인터내셔널을 창시했고, 국내에서는 부천에 보호자가 없는 혼혈 아동과 일반 아동을 위한 복지시설 ‘소사 희망원’을 건립한 바 있다.
인간의 삶과 숙명적 굴레를 리얼리즘 서사로 표현하였으며, 중국인보다 중국을 더 사랑했던 사람이다. 그녀는 미국 여성작가 최초로 노벨상과 동시에 퓰리쳐상을 수상하였으며, 인도주의적인 부분에서도 큰 업적을 남겼다. 세계 평화를 이루기 위한 한 방편으로 인종간의 이해를 위한 가교 형성에 헌신해 왔다.
1892년 미국 웨스트버지니아에서 태어나 생후 3개월 만에 장로회 선교사인 부모를 따라 중국으로 건너가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는 전도사업에만 열중했기 때문에 집안 일은 어머니가 도맡았다. 펄 벅은 1910년 대학을 다니기 위해 미국으로 갔다가, 1914년 랜돌프 매콘 여자대학을 졸업하고 중국으로 돌아갔다. 열여덟 살 때까지 중국에서 자란 펄 벅에게는 중국이야말로 가장 현실적인 고향이요, 미국은 바다 저편에 있는 꿈의 나라에 지나지 않았다.
1917년, 뒤에 중국농업연구의 세계적 권위자가 된 존 로싱 벅 (John Lossing Buck) 박사와 결혼을 하였다. 이때 성이 “Buck”이 된 것이다. 그들 사이에는 두 딸이 있었는데, 큰 딸은 극도의 정신박약아였다. 자서전에서 펄 벅은 큰 딸이 자신을 작가로 만든 동기 중 하나라고 밝혔다 (백치 딸은 『대지』에 왕룽의 딸로 그려져 있다).
중국에서 사는 동안 겪었던 역사적인 사건과 중국인 유모에게서 들은 많은 이야기들이 미국인인 그녀가 중국의 영혼을 이해한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정확하고 예리한 작품을 그려내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국공내전의 와중에서 1927년 국민당 정부군의 난징 (南京) 공격때 온 가족이 몰살당할 뻔했던 위기를 체험하여 피치 못할 균열을 깊이 자각한 일도 그녀로 하여금 창작활동을 시작하게 한 동기였다. 이 균열은 작품의 바닥에 숨겨진 테마로 흐르고 있다. 그녀는 이 균열을, 자기가 미국인이라는 입장에 서서 제2의 조국 중국에 대한 애착서 평생을 두고 어떻게 해서라도 메워 보려고 애썼다.
1930년 중국에서 동/서양 문명의 갈등을 다룬 장편 데뷔작 『동풍 서풍』을 출판하였는데, 출판사의 예상을 뒤엎고 1년이 채 안 되어 3판을 거듭하였다. 이어 빈농으로부터 입신하여 대지주가 되는 왕룽 (王龍)을 중심으로 그 처와 아들들 일가의 역사를 그린 장편 『대지』 (1931년)를 출판하여 작가로서의 명성을 남겼다. 이는 『아들들』 (1932년), 『분열된 일가』 (1935년)과 함께 3부작을 구성한다.
1934년 이후로 그녀의 저서들을 출판해 온 J.데이 출판사의 사장 R.J.월시와 재혼, 미국에 정착하였다. 1938년에는 미국의 여류작가로서는 처음으로 노벨 문학상이 『대지』 3부작에 수여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후에도 평화를 위한 집필을 계속하였는데, 중국에서 내란이 일어나 공산 정권이 들어서자 본의 아닌 귀국을 할 수밖에 없었던 펄 벅은 전후의 황폐한 사회에 내던져진 전쟁고아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녀가 전쟁고아와 혼혈 사생아들을 위하여 펄 벅 재단을 설립하고 전쟁 중 미군으로 인해 아시아 여러 국가에서 태어난 사생아 입양 알선사업을 벌이는 등 직접 봉사 활동에 나선 것도 이 무렵부터의 일이다.
2차 대전으로 미국의 OSS에 중국 담당으로 들어오면서 한국과의 인연을 맺게 되었으며, 유한양행 창업주인 유일한과 중국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한국에 호감을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후에, 한국을 방문하였을 때 스스로 박진주 (朴眞珠)라는 한국어 이름도 지었다.
한국 전쟁 후에 한국의 수난사를 그린 『갈대는 바람에 시달려도』 (1963년)와 한국의 혼혈아를 소재로 한 소설 『새해』 (1968년) 등 한국 관련 소설을 쓰기도 했으며, 1965년에는 다문화아동 복지기관인 펄벅재단 한국지부를 설립하였다. 1967년 경기도 부천군 소사읍 심곡리 (현 부천시 소사구 심곡본동)에 ‘소사희망원’을 세워 10여 년 동안 한국의 다문화아동들을 위한 복지활동을 펼쳤다.
그 밖의 작품으로는 무명의 어머니를 통해서 영원한 모성상을 그린 『어머니』 (1934), 아버지의 전기인 『싸우는 천사들 : Fighting Angels』 (1936), 어머니의 전기인 『어머니의 초상 : The Exile』 (1936)과 『애국자 : Patriots』, 『서태후 : Imperial Woman』 (1956), 자서전인 『나의 가지가지 세계 : My Several Worlds』 (1954) 등이 있다.
펄 벅은 일생동안 소설과 수필, 평론, 아동서적에 이르기까지 80여 권의 책을 집필하였으며, 5개의 장편소설만 존 세지스라는 필명으로 출간하였다. 또한 전 세계 다문화아동들을 위한 차별없는 사랑을 몸소 실천하다 1973년 3월 6일 81세로 사랑하는 아이들의 곁을 떠나 생가가 있는 그린힐즈 농장에 묻혔다.

○ 책 속으로
– 옮긴이의 말
“사랑이 없으면 공포만 있을 뿐” _ 장영희
펄 S. 벅은 1892년 6월 26일 미국 웨스트버지니아 주 (州) 힐즈보로에서 태어났다. 부친 앤드류 사이덴스트리커 (Andrew Sydenstricker)는 일곱 형제 중 여섯이 목사가 된 독실한 기독교 가문 출신으로서 중국에 파견된 선교사였다. 앤드류의 집안은 또한 언어적 재능이 뛰어나서 그 자신도 선교 활동을 하는 한편 중국어는 물론이고 한학에도 일가견을 갖고 있었고, 희랍어로 된 신약성경을 중국어로 번역하기도 하였다. 그는 오랫동안 중국에 살면서 펄이 태어나기 이전에 이미 세 자녀를 잃었으며, 그의 아내도 콜레라에 걸렸다가 겨우 회복은 되었으나 건강이 좋지 않아 의사의 지시에 따라 휴가를 얻어서 잠시 본국에 돌아와 있는 동안에 펄이 태어난 것이다. 그러나 생후 3개월 만에 펄의 부모는 다시 그녀를 데리고 중국으로 돌아갔다.
당시 중국은 청조말기 (淸朝末期)로서, 안으로는 관료들의 부패가 심하고 사회의 불안이 극심하였고, 밖으로는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으로 국토는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등 근대 자본주의국가들의 세력권으로 나누어져 착취를 당하고 있었다. 이 사태에 반발한 서태후 (西太后)는 펄이 여덟 살 되던 해인 1900년에 의화단 (義和團)을 육성하여 각지에서 백인들을 살해케 하였다. 그 당시 펄의 가족은 중국인 이웃들이 숨겨 주어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중략)
1926년에 북경 소재의 군벌 정권은 남쪽의 혁명가들과 민중들의 노여움을 샀고, 드디어 손문 (孫文)의 유지를 이어받았다는 장개석 (蔣介石)이 이끄는 북벌군이 중국 본토를 석권하였다. 그러나 소련 정부와 중국 공산주의의 이면공작 역시 더욱 치열해지고 있었다. 다음해 봄에 남경을 점령한 혁명군은 중국에 대한 압제와 착취를 일삼는 백인들에게 대학살을 감행하였다. 미국은 예외였는데도 불구하고, 모든 백인들이 무차별한 방화, 학살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펄의 가족은 1900년의 의화단 사건에 이어 두 번째로 친한 중국인의 도움으로 간신히 죽음의 위기를 모면하고 일본으로 피난을 가지만, 이듬해 남경의 군벌 정치를 타도한 장개석이 이끄는 국민당 정부가 서방 국가들과 협조체제를 이루는 정책을 취하자 다시 남경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딸을 미국의 전문적인 정신박약아 학교에 맡기기 위해 잠시 동안 귀국한 그녀는 4년 전 미국 가는 배 안에서 썼던 처녀작 [동풍 서풍 : East Wind, West Wind]이 뉴욕 시의 존 데이 출판사에 의해 출판 채택되었다는 기별을 받으며, 후에 재혼하게 되는 그 출판사의 사장 리처드 월시와 처음으로 만나게 된다.
딸을 미국에 남겨두고 남경에 홀로 돌아온 후에 펄 벅은 마음이 허전하였다. 대학 강의를 계속하면서, 틈틈이 두 번째 작품을 쓰기로 결심하게 되고, 그녀의 대표작 [대지]를 쓴 경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어느 날 아침 나는 다락방을 치우고 커다란 중국식 책상 앞에 앉았다. 창 밖에 낙타 등처럼 생긴 산이 내다보였다. 그 후 나는 그곳에서 매일 아침 청소를 마치고 나면 타이프로 [대지]의 원고를 쳤다. 내가 쓰려는 스토리는 벌써 오래전에 내가 겪은 다양한 사건들을 통해 내 머리 속에 뚜렷하게 형성되어 있었다. 나의 모든 에너지는 내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중국의 농민과 일반 대중 편에 서서 느꼈던 분노로 인해서 용솟음치고 있었다. 나는 소설의 배경으로 화북의 시골을 택했고, 작중에 나오는 남쪽의 부유한 대도시는 바로 남경이다. 그러므로 나의 소재는 나에게 익숙한 것들이었고, 등장인물도 내가 나 자신처럼 잘 아는 사람들이었다…”
두 번 타이프를 쳐서 삼 개월 만에 탈고한 [대지]의 원고 뭉치는 뉴욕으로 보내졌다. 그리고 그 채택 여부를 기다리지도 않고 그녀는 [세 남매의 어머니 : The Mother], [젊은 혁명가 : The Young Revolutionist] 등의 장편을 계속 썼고, 또 이와는 별도로 향후 만 4년이 걸린 방대한 [수호전]의 영역에도 착수했다. 1931년에 존 데이 사에 의해 출판된 [대지]는 미국에서 퓰리처상을 받았고, 그 해에만 200만부 가깝게 팔렸으며, 30여 개국 국어로 번역되었다. 그리고 여전히 1930년대 전반기의 세계 최고 베스트셀러로 기록되어 있다.

○ 줄거리
– 대지 (상) 대지 : The Good Earth
성 밖에서 홀로 늙은 아버지를 봉양하며 살던 가난한 젊은 농부 왕룽에게도 어느 날 아내가 생긴다. 성 안의 부자 황 대인의 여종인 오란과 부부의 연을 맺게 된 것이다. 예쁜 여자는 쓸모없다는 아버지의 말처럼, 오란은 외모나 성격은 그저 투박한 시골 여인에 불과했지만 큰 소리 없이 성실하고 묵묵하게 살림을 돌봐가는 보기 드문 여인이었다.
왕룽은 비록 아름답지는 않으나 삶의 동반자로서 미덕을 갖춘 오란과 성실히 살림을 일구는 동안 서서히 그녀에게 정을 느끼게 된다.
두 사람은 쉴 틈 없이 일하고 재산을 불려가며, 건강한 첫아들까지 얻게 된다. 그 와중, 일생에 두 번 오지 않을 기회가 찾아온다. 오란이 종으로 있던 황 대인의 가세가 기울자 황 대인의 땅을 사들일 기회가 생긴 것이다.
왕룽이 그간 아껴 모아놓은 은전으로 황 대인의 땅을 사들이면서, 가난한 왕룽 가족의 삶에도 행운이 찾아드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매년 열심히 일해 땅을 넓혀갈 생각에 마음이 한없이 들뜬다.
하지만 갑작스레 북부에 가뭄과 대기근이 몰아닥치고, 이 천재지변은 양식으로 넘쳐나던 왕룽 가족의 집 안에도 검은 그림자를 드리운다. 그간 자식은 셋으로 늘고 아버지까지 공양해야 하는 왕룽 부부는 하루하루 먹고살 길이 막막하다. 게다가 그를 질투하며 그에게 재산을 빼앗으려 드는 삼촌 부부의 모함으로 왕룽 가족은 마을 사람들의 습격을 받고, 그 일을 계기로 무작정 남쪽 도시로 길을 떠난다.
기적처럼 도착한 남쪽 도시에서의 삶도 만만치는 않다. 거적 여섯 장으로 지은 움막 안에서 왕룽 가족은 하루하루 구걸과 인력거 노동일로 간신히 목숨을 부지한다. 비참한 삶이지만 다시 고향에 돌아가 땅을 일구겠다는 결심만이 오직 이들을 붙들어주는 힘이다.
그때, 또 한 번 생각지도 못한 행운이 왕룽 일가를 구원한다. 전쟁의 검은 그림자가 다가오는 가운데,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들을 습격하는 사건이 벌어지고, 그 물결에 떠밀려 부잣집 안으로 들어선 왕룽과 오란도 우연찮게 많은 금전과 보석을 얻게 된다.
큰돈을 가지고 귀향한 왕룽 일가의 앞날은 밝기만 하다. 왕룽은 죽을 고비로 얻게 된 자신의 전 재산을 땅을 사들이는 데 쓴다. 내전과 도적, 기근 같은 어떤 변고도 그로부터 땅 만큼은 빼앗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약 7년 뒤, 왕룽은 성 안의 부자 황 대인보다 더 큰 부자가 되어 부자들이 기거하는 성 안으로 이사한다. 그러나 너무 많은 재산은 그로부터 농부로서의 자부심을 앗아가 버린다. 땅은 알아서 그의 재산을 불려주고, 마음이 들뜬 그는 기녀들의 찻집에 드나들다가 연영이라는 기녀에게 마음을 빼앗겨 그녀를 첩으로 들이고, 동고동락했던 조강지처 오란을 푸대접하기에 이른다. 게다가 그가 연영에게 푹 빠져 세월을 보내는 동안, 큰아들은 부잣집 도련님 행세를 하며 허영심만 키워가고, 둘째 아들은 셈에 밝은 약삭빠른 장사꾼으로 자라난다. 게다가 일평생 집안과 남편을 위해 살았던 아내 오란은 병을 얻어 손쓸 새도 없이 죽고 만다.
오란을 잃은 뒤 왕룽은 깊은 후회를 하지만, 벌어진 일을 돌이킬 수는 없었다. 게다가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버리자, 이제 왕룽은 자신도 늙고 힘없는 노인이 되어가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첩으로 들인 연영은 점차 탐욕스러운 본성을 드러내고, 아들들마저도 아버지의 재산을 어떻게 나눠 가질지 모의하는 데 열심이다. 그중에 그에게 진심을 주는 이는 단 하나, 연영의 몸종으로 들어왔다가 그의 또 다른 첩이 된 다정하고 사려 깊은 이화뿐이다. 그러나 이 일로 또 하나의 생각지 못한 일이 벌어진다. 왕룽의 셋째 아들이 남몰래 이화를 연모하다가 그녀가 아버지의 첩이 되자 집을 뛰쳐나간 것이다. 결국 그가 뼈와 살을 바쳐 키웠던 세 아들도 그의 바람대로 자라주지 않았다.
왕룽은 자신에게 죽음이 다가오고 있음을 깨닫고, 이화를 데리고 휘황한 성 안의 집을 떠나 성 밖의 초라한 움막집으로 돌아온다. 그가 가난한 농부였던 시절에 오란과 살았던 그 집이다. 그는 이곳에서 마지막 삶의 시기를 정리하며 죽음을 준비하는 그는 땅과 함께 살아온 자신의 삶을 회한한다. 동시에 그는 자신이 죽은 뒤를 걱정하며 두 아들에게 땅만은 절대로 팔지 말라고 거듭 부탁하지만, 아들들은 그저 의미심장한 눈길을 나눌 뿐이다.

– 대지 (중) 아들들 : Sons
아버지 왕룽이 세상을 뜨자 첫 아들 왕따와 둘째 아들 왕얼은 장례식과 유산 분배 문제로 분주하게 움직인다. 이 무렵 두 형제의 사이는 크게 벌어져 있었다. 첫째 왕따는 사치스러운 생활에 젖어 아버지의 재산을 물 쓰듯 했고, 반면 수전노인 둘째 왕얼은 허영심만 가진 형에게 잇속을 챙길 줄 모른다고 비난한다.
본격적인 장례가 시작되자, 집을 뛰쳐나갔던 셋째 아들 왕싼까지 집으로 돌아온다. 10년간 소식 없던 셋째가 군인이 되어 돌아오자 집안 식구들은 놀라움과 두려움에 휩싸인다. 왕싼은 자신의 유산 분배 차례가 되자 ‘땅 같은 건 필요 없으니 군대를 키울 군자금으로 쓸 돈을 분배해달라’고 요구한다. 집을 떠나 남쪽 지방에서 활동하는 반란군에 들어간 그는 일찍이 용맹한 인물로 주목 받아 ‘희고 긴 치아’를 가졌다는 의미의 ‘왕후’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다. 또한 자신이 따랐던 노장군이 향락에 젖어 타락하자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뜻 맞는 100명의 군사들과 독립적으로 군벌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품고 있었다. 그는 형들과 담판을 벌여 자신의 땅을 판 돈을 조달받을 수 있도록 조치하고, 이 군자금으로 본격적인 세력 확대에 들어서게 된다.
한편 왕후는 반드시 군벌로서 성공하겠다는 야심 넘치는 군인인 동시에, 가난한 백성들에게 깊은 애정과 연민을 지닌 자비로운 지도자이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군대에서는 다른 군대와 다른 규칙을 지켜야 한다고 공표한다. 가난한 이들의 편에 서겠다는 결심을 저버리고 타락한 기존 군벌들이나 노략질을 일삼는 화적떼를 쫓아내되, 이들이 다스리던 마을의 성을 차지한다고 해도 부녀자나 백성들을 농락하고 노략하는 일을 엄하게 다스리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의 부하들 또한 상벌이 엄격한 왕후를 두려워하고 존경했다.
또한 그는 집을 떠나면서 두 형들에게 크게 출세시켜주겠다고 장담하며 각각의 형들에게서 조카 둘을 데려가지만, 심성 약한 큰 조카가 전장의 공포를 이기지 못해 목을 매고 죽는다. 반면 하나 남은 작은 조카 곰보는 삼촌 왕후를 도와 여러 활약을 해내며 군인으로 성장한다.
여러 고난을 거쳐 점차 세력을 넓혀갈 무렵, 왕후의 앞에 한 여인이 나타난다. 왕후가 직접 목숨을 거둔 어느 장군의 아름다운 아내로, 그녀는 끝내 왕후에게 마음을 열려 하지 않는다. 아버지의 첩이 된 이화를 남몰래 연모하면서 받은 상처로 그간 여자에게는 관심을 두지 않던 그가 여자에게 사랑을 느끼게 된 것이다. 갑자기 찾아온 무모한 열정에 사로잡힌 그는 ‘적의 여자’라는 주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녀와 결혼하지만, 얼마 안 가 그녀가 화적떼의 두목 노릇을 하며 그를 배반하려 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여자의 목을 베어버린다.
이 일로 깊은 상처를 입은 왕후는 형 왕따와 왕얼에게 고향에서 아주 평범한 여인을 골라 아내로 보내줄 것을 부탁한다. 두 형은 각각 여인 한 명씩을 왕후에게 보내는데, 왕후는 그중에 둘째 아내로부터 외아들 왕위안을 얻고 마음의 평정을 되찾는다.
한편 왕후의 큰형 왕따는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재산으로 흥청망청하고 땅을 팔 궁리만 하는 데다 소작인들에게는 가혹한 세금을 매겨 악독한 지주로 불리고 있었다. 게다가 그의 자식들도 아버지를 본 따 바깥으로만 맴돈다. 둘째 형 왕얼 역시 아버지가 물려받은 재산을 고리대금업에 투자하고 형에게도 땅을 팔아 자신에게 투자할 것을 종용하는 등자비심 없는 수전노로 살아간다.
형들의 삶을 경멸하며 대의에 나선 왕후는 앞으로 일어날 전국적인 내란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선점하겠다는 야망을 가지지만, 동시에 이제는 세력을 넓히는 것에만 몰두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자신의 명예나 부유함보다는 아들을 위대한 장군으로 키우겠다는 일념이 더 중요하다고 느낀 것이다.
반면 아들 왕위안은 야심이 큰 아버지와 거리를 두고 조용한 소년으로 자라나지만, 왕후는 아들이 군인이 되기에는 사려 깊고 다정한 성격임을 인정하지 않는다. 게다가 아들이 군대보다는 작은 마을의 땅과 농부들에 더 큰 관심과 애정을 가지는 것 또한 마땅치 않다.
그렇게 왕후가 아들의 미래를 설계하고 있던 와중, 다시 한 번 대기근이 닥친다. 전장에 나가보지도 못한 채 굶주림에 시달리는 군사들 사이에 서서히 반란의 조짐이 퍼져나가자, 왕후는 어쩔 수 없이 다시 두 형들에게 도움을 청하게 된다. 또한 혼란스러운 정국에서 남쪽에서 이상한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는 정보를 듣게 된다. 군벌들의 전쟁이 아닌, 군벌을 타파하기 위한 평민들의 폭동이라는 것이다. 왕후는 이 모든 상황에 불안을 느끼고, 그 불안은 얼마 안 가 현실로 일어난다.
아들 위안이 열다섯 살 되던 해, 왕후는 농업학교에 입학해 농사를 배우고 싶다는 아들을 몰아부쳐 사관학교에 입학시킨 뒤, 아들이 그의 뒤를 물려받을 수 있도록 준비를 해나간다. 그리고, 그로부터 4년 뒤 겨울밤, 그의 꿈은 깨져나간다. 갑자기 돌아온 아들이 있고 있는 곳은 장군의 옷이 아닌 혁명부대의 제복이었다. 아들까지도 그의 적이 된 것이다!
하지만 아들은 아버지를 적으로 돌리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 아니었다. 사관학교에서 혁명군에 포섭되었지만, 아버지를 배신할 수 없다는 판단에 그곳을 도망쳐 돌아온 것이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추격자들을 피해 할아버지인 왕룽의 고향 움막에 몸을 숨기겠다고 말하고, 왕후는 자신의 모든 꿈이 물거품이 되었음을 깨닫고 눈물을 참는다.
펄 벅은 이 작품에서 각기 다른 세 아들의 삶을 조명함으로써, 시대가 바뀌고 그 시대의 주인이 바뀌면 그 변화 속에서 새로운 인간상이 탄생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나아가 자식의 미래를 좌지우지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만 왕후의 슬픔은, 모든 자식은 아비를 밟고 일어서며, 그럼에도 그들 역시 아비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유한성’이라는 감옥에 갇힌 수인임을 통렬하게 보여준다.
– 대지 (하) 분열된 일가 : A House Divided
혁명 군대에서 도망쳐 왕룽의 움막으로 피신한 위안은 홀로 고독한 시간을 보내며 목가적인 정취에 젖어든다. 하지만 흉흉한 세태 속에서 그를 바라보는 고향 농부들의 시선에는 불안과 의심이 가득하다. 얼마간은 고향 땅과 산수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던 위완도 서서히 농부들의 삶은 언제 닥쳐올지 모를 고통과 불안의 연속임을 깨닫는다.
그 와중 어머니가 움막에 찾아온다. 아버지의 병환이 중하니 어서 돌아가라는 것이다. 아버지가 사경을 헤맨다는 이야기에 놀란 위안은 서둘러 아버지에게 돌아가지만, 아버지는 멀쩡한 모습으로 그를 맞는다. 그를 돌아오게 한 이유는 다름 아닌 결혼을 시키기 위해서였다. 아버지와 떨어져 있는 동안 신식 교육에 익숙해진 위안으로서는 아버지의 명령을 이해할 수 없다. 그는 아버지에게 얼굴도 모르는 여자와 결혼할 수는 없다고 단호하게 선언하고, 이복 여동생과 아버지의 첫째 부인이 살고 있는 화려한 항구 도시로 도망치듯 떠난다.
아버지의 첫째 부인인 노부인은 위안을 자신의 배로 낳은 아들처럼 따뜻하게 맞이한다. 또한 몰라볼 만큼 세련되고 예쁘게 자란 이복 여동생 아이린도 위안과의 재회를 기뻐한다. 그녀는 위안을 ‘구식’이라고 놀려대면서도 그를 다양한 파티에 데리고 다니며 신식 문물을 소개해준다. 군벌 아버지 밑에서 엄격한 교육을 받고 자란 왕위안에게 이 모든 것은 새롭고 신기하기만 하다. 잘 차려입은 부자들이 넘치는 거리와 자유롭게 모습을 드러내는 외국인들, 화려한 상점들과 거리들….
그러나 그의 마음 한켠에는 언제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그를 자신의 소유물로 여기는 아버지에 대한 적대감, 화려한 거리 이면에 펼쳐진 가난한 사람들의 비참한 삶에 대한 연민과 두려움으로 마음은 답답하고 복잡하기만 하다. 그럼에도 젊음의 빛 속에서 머무는 청년답게 위안은 새로운 미래를 설계하고, 잠시 지냈던 고향 움막이 그리워지면 학교 실습지 농장에서 밭을 일구며 마음을 달랜다.
얼마 안 가 그는 사촌인 솅과 멩과도 가까워진다. 솅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탐미주의자, 멩은 이 항구 도시에까지 불어 닥친 혁명의 바람 속에서 은밀히 혁명 활동에 가담하고 있는 혁명당원이다. 멩은 위안에게 혁명 활동을 권하지만, 위안은 혁명당원들의 사상과 신념이 지나치게 교조적이라고 생각해 거절한다.
그 무렵 위안은 역시 혁명당원인 한 여학생과 친밀한 관계가 된다. 그녀와 사랑이라 하기에는 부족하고, 우정이라고 하기에는 미묘한 관계를 유지하던 무렵, 또 하나의 소식이 전달된다. 아버지 왕후가 그의 결혼식을 강행하기로 했다는 소식이었다. 분개한 위안은 일종의 반항심으로 혁명 조직에 가입하지만, 그로 인해 오히려 자유를 잃는다. 그를 사랑하는 여학생이 혁명 사업을 핑계로 그를 옭아맸기 때문이다. 어느 날, 그녀로부터 사랑한다는 고백을 받은 위안은 그 사랑을 거절한다.
이 거절은 큰 후환으로 자란다. 갑작스러운 검거 열풍으로 끌려간 여학생이 복수심과 분노로 위안의 이름을 고발한 것이다. 이로 인해 위안은 곧 붙잡혀 처형당할 위기에 처하지만, 아들의 위험을 전해들은 아버지가 자신의 전 재산을 그의 목숨 값으로 지불하면서 위안은 죽음 직전에서 구출되어 미국으로 보내진다.
그렇게 6년간의 유학 생활이 시작된다. 그는 여전히 농사에 대한 꿈을 접지 않고 이곳에서도 농사를 공부하면서 외롭고 고독한 유학 생활 와중 이역만리에서 자신을 친절하게 돌봐주는 노교수 가족과도 가깝게 지낸다. 특히 위안은 두 사람의 딸인 메리와 사랑에 가까운 감정을 느끼지만 관계는 순탄하지만은 않다. 처음에는 호감으로 시작했던 이 가족과의 관계는 중국에서 일어난 백인 살해 사건을 계기로 깨지게 된다.
다시 혼자가 된 위안은 고국으로 귀국한다. 6년이 흐른 이 무렵, 중국은 청 말기의 혼란상에서 길을 잃고 있었다. 깊은 고민 속에 빠져 있던 그에게, 한 줄기 빛이 나타난다. 노부인이 양녀로 입양한 메이링을 보고 사랑에 빠진 것이다.
그는 메이링에 대한 사랑에 마음을 앓고 그 사랑을 노부인에게 고백하지만, 노부인은 메이링이 원해야만 결혼할 수 있다고 단언한다. 한편 메이링은 자신은 의사가 되기 위해 아직 해야 할 공부와 일이 많고, 아직은 결혼 생각을 하지 않는다며 그의 청혼을 거절한다.
실망감에 괴로워하던 위안은 때마침 도착한 멩의 편지를 받고 혁명을 도모하고 있는 멩이 있는 곳으로 떠난다. 하지만 그곳에서 만난 혁명군들에게 현실적인 이념과 사상을 찾아볼 수 없다고 판단한 그는 군인이 되는 대신 대학에서 교편을 잡는다. 비록 적은 월급이지만 열성을 다해 젊은이들을 가르치고, 사랑하는 메이링에게도 꾸준히 편지를 쓴다. 이제 그는 혁명은 총칼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정성을 다해 땅을 갈고 씨를 뿌리는 농부의 성실함에도 있다고 믿게 된 것이다. 또한 불안 속에서도 메이링과의 사랑도 천천히 뿌리를 내려간다.
그 와중 아버지의 성에 분개한 소작인들과 화적떼가 들이닥쳐 모든 것을 약탈하고 폐허로 만든다. 그가 다급히 고향으로 돌아갔을 때, 아버지는 모든 것을 잃고 죽음을 앞둔 상황이었다. 천하를 호령했던 군벌이었던 그이지만, 숨을 거둘 때는 그 아버지인 왕룽과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없이 작은 움막집에서 눈을 감은 것이다. 위안은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현실의 삶을 돌이켜본다. 외국 문물이 들어오고 나라는 시끄러우며 혁명은 퇴색했고 민중들은 여전히 비참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는 새로운 길을 찾아야 했다. 지금껏 입고 있던 서양식 옷을 벗고 농부들의 무명옷으로 갈아입고 아버지의 장례를 치른다. 모든 허영과 가식을 벗고 진정 중국이 나아가야 할 길을 고민하게 된 셈이다. 더불어 메이링도 앞으로 그와 함께 하겠다는 뜻을 밝혀오고, 두 사람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미래로 전진할 것을 약속한다.
여기서 대작 「대지」는 흙집으로 다시 돌아감으로써, 인간과 역사의 덧없는 변전 속에서도 묵묵히 영원을 살아가는 ‘대지’를 암시적으로 그린다. 영원한 대지와 농업기술을 익힌 옌, 새 의술을 익힌 새 시대의 여성 메이린, 새 중국의 탄생, 구 군벌의 붕괴, 사양의 길을 걷는 옛 특권계급, 복잡한 양상을 보이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 어렴풋이 희미하게 밝아오는 새로운 중국 안에서도 ― 대지의 불멸을 믿고, 옌과 메이린의 미래를 암시하며 이 거작은 장대한 막을 내린다

○ 출판사 서평
– 대지 (상) 대지 : The Good Earth
농부 왕룽, 그가 진정으로 사랑했던 유일한 것은 오직 땅뿐이었다
‘푸른 눈의 중국인’이라고 불릴 정도로 중국과 가까웠던 펄 벅은 평생에 걸쳐 작품 속에 중국에 대한 섬세한 이해와 애정을 풍부하게 담아낸 작가이다. [대지]는 1931년 퓰리처상 수상작이자 펄 벅에게 노벨문학상의 영예를 안겨준 대표작으로서, 땅과 더불어 살다간 가난한 농부 왕룽의 삶을 웅대하고 감동적인 일대기로 그려내고 있다.
작품 속에서 왕룽은 흙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우직한 농부의 전형이자, 넘치는 부를 얻게 되자 사치와 허영에 물드는 타락의 화신, 동시에 천재지변과 시대적 혼란 속에서도 가족과 땅을 지켜내기 위해 분투하는 의지의 인간상으로 그려진다. 그리고, 한 줌의 흙에서 시작한 그의 삶은 비통한 시련과 온갖 부귀영화를 두루 거친 뒤 결국은 땅으로 돌아간다.
온갖 환란과 덧없는 인간사에도 오직 땅만은 변하지 않고 영원을 누린다는 이 결말은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고전적인 질문을 재차 돌이키게 하는 동시에 땅의 영원불멸성에 비해 너무나 유한한 우리의 짧은 생을 환기시킨다.
– 대지 (중) 아들들 : Sons
3부작의 두 번째 이야기, 덧없는 인간의 삶에 대한 치밀한 몽타주.
가난한 농부에서 대지주가 된 왕룽의 세 아들은 변하지 않는 것은 흙뿐이라고 믿었던 아버지와는 전혀 다른 신념으로 살아간다.
돈으로 살 수 있는 향락과 즐거움만이 인생의 전부라고 믿는 첫째 왕따.
막대한 재산을 소유했음에도 끝까지 ‘부의 축적’을 인생의 구원으로 여기는 둘째 왕얼.
그리고 두 형과 달리 높은 이상을 쫒아 끊임없이 진격하던 셋째 왕후마저도 이상을 현실로 구축하는 일에는 예기치 못한 덫과 상처가 기다리고 있음을 절감한다.
펄 벅의 ‘대지 (大地)’는 ‘대지 (The Good Earth, 1931)’, ‘아들들 (Sons, 1932)’, ‘분열된 일가 (A House Divided, 1935)’, 3부작으로 이루어져 있다. 땅을 사랑하는 가난한 농부 왕룽과 그 아들들, 손자들로 이어지는 3대에 걸친 이야기이다. ‘대지’는 1931년 출판되자마자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아들들’과 ‘분열된 일가’는 그 속편으로 발표된 것이다.
펄 벅의 중국 국토와 인간에 대한 깊은 지식은 독보적이며, ‘대지’를 제외한 다른 많은 작품 또한 그 이해와 통찰은 서양인 작가로서는 최고의 수준이다. 이것은 그녀의 긴 세월에 걸친 중국생활의 체험이 모두 그 원천이 된 것이다.
1938년 노벨문학상 선고위원회의 추천문에는 ‘중국 농부의 생활을 풍부하게, 서사시적으로 묘사한 매우 뛰어난 훌륭한 작품이다’라고 쓰여 있다. 노벨문학상은 ‘대지’를 필두로 하는 중국을 소재로 한 일련의 문학 업적에 수여된 것이지만, ‘대지’ 하나만으로도 노벨문학상을 수상할 만하다는 느낌을 주는 것은, ‘대지’가 그녀의 부동의 걸작이라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
– 대지 (하) 분열된 일가 : A House Divided
새 시대를 밝히는 희망의 빛 ‘분열된 집안’은 왕후의 외아들 왕옌이 주인공이다. 장래의 대장군으로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옌은 아버지 왕후로부터 엄격한 교육을 받지만, 본인은 군인생활을 싫어한다. 그의 마음의 고향은 드넓은 하늘 아래 상쾌한 대지에서의 생활이며, 시인 기질의 그는 평화로운 땅에서 영원한 행복의 경지를 추구한다.
아버지의 압력에 견디지 못한 옌은 말다툼 끝에 아버지의 관저를 뛰쳐나와 남쪽 해안의 대도시로 간다. 그곳에는 의붓어머니인 아버지의 본처가 아름답게 성장한 이복여동생 아이란과 함께 살고 있다. 친아들처럼 맞아준 의붓어머니는 응석받이로 자라 진중하지 못하고 경솔한 딸에 대한 기대를 포기하고, 성실한 청년 옌에게 큰 기대를 건다. 옌은 외국에서 6년 동안 농업을 공부하면서, 은사의 딸 메리와 사랑을 나누는 관계가 된다. 그러나 자신은 오랜 역사를 지닌 중국의 아들임을 떠올리고 물보다 피가 진함을 깨달으며 메리를 떠나 마침내 귀국한다. 귀국을 재촉한 것은 조국의 격렬한 배외운동과, 새 중국의 탄생이었다.
의붓어머니의 양녀 메이린은 의학을 공부하며 어머니를 도와 고아원 일에 전념한다. 그 부지런하고 청순한 모습에 옌은 깊은 사랑을 느끼지만, 메이린은 연구에만 전념하며 옌의 사랑을 물리친다. 그런데 마지막 몸부림을 치던 군벌 대항자들이 성 안으로 들이닥친다. 왕 일가의 저택은 잿더미로 돌아가고, 왕후는 그가 태어나 자라고 큰 성공의 기초를 다졌던 흙집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처지가 된다. 패배한 군벌의 모습 그대로 늙어버린 왕후는 임종의 병상에 눕고, 옌은 머리맡에서 마지막 효도를 다한다. 그 자리에 달려온 사람은 의붓어머니와 메이린이었다.
여기서 대작「대지」는 흙집으로 다시 돌아감으로써, 인간과 역사의 덧없는 변전 속에서도 묵묵히 영원을 살아가는 ‘대지’를 암시적으로 그린다. 영원한 대지와 농업기술을 익힌 옌, 새 의술을 익힌 새 시대의 여성 메이린, 새 중국의 탄생, 구 군벌의 붕괴, 사양의 길을 걷는 옛 특권계급, 복잡한 양상을 보이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 어렴풋이 희미하게 밝아오는 새로운 중국 안에서도 ― 대지의 불멸을 믿고, 옌과 메이린의 미래를 암시하며 이 거작은 장대한 막을 내린다

– 문화적 우월주의나 선교 제국주의 배격, 꼼꼼한 고증과 조사의 기록으로 평가
중국의 왕룽이라는 한 농부의 삶을 그리고 있는 이 작품은 중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작가의 독특한 이력 덕분에 중국인들의 생활상과 습성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또한 주인공의 흙과 땅에 대한 집착과 사랑은 우리 농민들의 정서와도 닮아 있어 더욱 애잔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거칠고 가난하지만 흙에 단단히 뿌리를 내린 중국 농민들의 삶이 강인한 생명력으로 다가와 건강한 자극이 되어 준다.
작가인 펄 벅은 선교사였으나, 기독교를 중국과 아시아에게 강요하고 기독교를 우월하게 보며 비기독교인을 얕보는 제국주의적인 면을 무척 비난한 개념적인 위인이기도 하다. 그 덕분에 미국 기독교회들은 그를 엄청나게 비난했다. 더불어 이 작품이나 ‘북경에서 온 편지’ 등 그의 소설을 보면 아시아에 대하여 고증도 철저히 하고 여러모로 꼼꼼하게 조사하여 쓴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대지가 중국을 비하하는 백인우월주의 및 제국주의적 관점으로 쓰여진 작품이라는 주장은 출간 직후부터 나왔다. 중국 근현대사를 대표하는 문호 루쉰이 이렇게 주장했고, 오랜 기간 중국에서 펄 벅과 대지가 저평가 받은 것이 바로 루쉰의 영향력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다. 그런데, 루쉰이 이처럼 대지를 저평가가 이유가 번역이 엉망으로 된 중역판을 읽었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한편 1부 ‘대지’에 이어 2부 ‘아들들’, 3부 ‘분열된 일가’라는 두 편의 후속작은 1부에 비해 2-3부는 인지도가 1부만 못하다. 세계 문학 전집 류의 대작 시리즈로 나올 때는 1-3부를 함께 묶어서 내놓는 경우가 있지만 축약본이나 1부만 요약해서 출판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2부 ‘아들들’과 3부 ‘분열된 일가’ 역시 함께 읽을 때 연속성이 높은 작품이라 별개의 작품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펄 벅은 ‘붉은 대지’라는 4부 격의 소설을 집필하다가 병으로 세상을 떠난다. 그래서 이 작품은 영원히 미완성으로 남게 된다. 이 붉은 대지는 왕룽의 손자들이 공산화된 중국에서 겪는 이야기를 다룰 예정이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