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폭력에 맞서 :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에 맞서
자끄 엘륄 / 대장간 / 2012.5.1
그리스도인에게 합법적인 폭력은 ‘사랑의 폭력’ 뿐이다. 이 폭력은 급진적이고 비타협적이고 내면적일 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을 희생하는 것이며, 선으로 악을 극복하는 전투이다. 따라서 사랑의 폭력은 물리적이거나 심리적인 어떤 폭력에도 호소하지 않는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 할 수 없다. 폭력을 통해서 자유를 얻을 수도 없고, 폭력으로는 진정한 억압도 할 수 없다. 폭력에는 종속화만 있을 뿐이다. 엘륄은 기독교인들이 정당화하는 모든 폭력을 부정한다. 정당한 전쟁은 없다. 폭력은 우리의 삶이 펼쳐지는 사회의 토대로 인정해야 하지만, 그것은 정당한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사랑과 반대된다는 것 또한 인정해야 한다.
○ 목차
역자 서문
편집자 서문
들어가는 글
제1장 전통적인 견해들
| 타협 | 비폭력 | 폭력 | 수렴과 확산 |
제2장 폭력에 우호적인 그리스도인들
| 가난한 사람을 선택함 | 폭력 | 근본적인 전제들 | 세 가지 가능한 입장들 | 그리스도인의 폭력 참여의 성격들 | 신학적 성찰들 |
제3장 폭력 앞에 선 기독교 현실주의
| 필연성으로서의 폭력 | 폭력의 법칙 | 폭력은 두 종류인가? | 이상주의들을 거절함 |
제4장 믿음의 싸움
| 필연성과 정당성 | 기독교 급진주의 | 사랑의 폭력 |
요약
엘륄의 저서-연대기순
○ 저자소개 : 자끄 엘륄 (Jacques Ellul, 1912 ~ 1994)
“사고는 세계적으로 행동은 지역적으로”라는 지성인의 행동강령을 말한 프랑스 지성으로, 마르크스의 사회경제학적 접근과 기독교의 가치관을 조화시킨 4개의 박사학위를 가진 학자이자 실천가이다. 1912년 1월 6일 프랑스 보르도에서 태어났다. 1937년 스트라스부르 대학교의 연구부장으로 지명되었으나 비시 프랑스 (Vichy France) 정부에 의해 해임되었다. 1936~1939년 사이에 프랑스 정계에 투신하여 활동하였고, 1940~1944년에는 레지스탕스 운동에 열렬히 가담했다. 1953년부터는 프랑스 개혁교회의 총회 임원으로 일하였다.
법학박사인 그는 다수의 책을 저술하여 사회학자, 신학자, 철학자로서 널리 알려졌다. 보르도대학에서 오랫동안 교수로 근무하였으며 ‘신앙과 삶’의 편집주간으로 활동하였다. 사후인 2002년 이스라엘의 얏 바셈 (Yad Vashem)재단에 의해 나치 치하의 유대인 가족들을 위험을 무릎쓰고 도와준 것이 밝혀져 “열방가운데 의인”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기술 (technique)에 대한 개념으로 현대사회를 설명하였으며, 법과 제도, 자유에 대한 탁월한 식견을 보였다. 또한 기독교인으로서의 다양한 저서를 집필하였는데, 한국에는 『세상속의 그리스도인』 (1990), 『뒤틀려진 기독교』(1991), 『하나님이냐 돈이냐』(1992) ,『의심을 거친 믿음』, 『머리 둘 곳 없던 예수』 등 주로 신학관련 서적이 소개되었다. 최근에는 기술체계, 마르크스와 예수 등 사회와 역사 분야의 서적이 소개되고 있으며, 특히 『이슬람과 기독교』(2009)는 엘륄의 유작으로 영미권보다 한국어로 먼저 번역 소개된 바 있다.
– 역자 : 이창헌
1970년 생. 연세대 신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스트라스부루 제2대학에서 신학석사학위를 받았다. 카리스마틱 공동체들이 유럽에서 발흥하는 것을 목격하였으며, 귀국해서는 교파를 초월한 부르심에 응답하여 지금은 작가로서 글을 쓰며 프랑스어 번역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에세이 『십자가의 신비』, 소설 『천국의 파편』, 『셀레네 키아네스와 오래된 도시』 등이 있다.
○ 책 속으로
엘륄이 이 책에서 반대하는 것은 단지 폭력 뿐만은 아니다. 엘륄이 궁극적으로 주장하는 것이 단순히 비폭력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나 단순화된 생각일 뿐이다. 물론 제목이 말하는 대로 엘륄은 물리적으로만 보자면 절대적인 비폭력을 주장한다. 그러나 그것이 다가 아니다. 엘륄은 또한 “영적인 폭력”을 주장하는데 이것이 이 책에서 궁극적으로 하고자 하는 말이다. 그것은 다른 말로 하면 “사랑의 폭력”으로서 적극적으로 이 땅에 기독교적 사랑을 실천에 옮기고 사람들에게 그것을 강요하는 것이다. 폭력은 강요하지도 않고 강요당하지도 않지만 사랑은 감히 강요하고 강요당하겠다는 것이다. 그것은 “남에게 폐만 끼치지 않고 살면 그만”인 이웃 어느 나라의 윤리와는 다른 것으로 남에게 적극적으로 사랑의 폐를 끼치겠다는 것이다. 남의 삶에 간섭하겠다는 것이자 이웃과 세상에 간섭하겠다는 것이다. 감히 기독교적 윤리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말이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결코 물리적 폭력으로는 가능하지 않지만, 사랑의 폭력으로는 가능하다는 것이다. — 「서문」 중에서
○ 출판사 서평
그리스도인에게 합법적인 폭력은 ‘사랑의 폭력’ 뿐이다.
이 폭력은 급진적이고 비타협적이고 내면적일 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을 희생하는 것이며, 선으로 악을 극복하는 전투이다. 따라서 사랑의 폭력은 물리적이거나 심리적인 어떤 폭력에도 호소하지 않는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 할 수 없다.
폭력을 통해서 자유를 얻을 수도 없고, 폭력으로는 진정한 억압도 할 수 없다. 폭력에는 종속화만 있을 뿐이다.
엘륄은 기독교인들이 정당화하는 모든 폭력을 부정한다.
정당한 전쟁은 없다.
폭력은 우리의 삶이 펼쳐지는 사회의 토대로 인정해야 하지만, 그것은 정당한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사랑과 반대된다는 것 또한 인정해야 한다.
엘륄이 이 책에서 반대하는 것은 단지 폭력 뿐만은 아니다. 엘륄이 궁극적으로 주장하는 것이 단순히 비폭력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나 단순화된 생각일 뿐이다. 물론 제목이 말하는 대로 엘륄은 물리적으로만 보자면 절대적인 비폭력을 주장한다. 그러나 그것이 다가 아니다. 엘륄은 또한 “영적인 폭력”을 주장하는데 이것이 이 책에서 궁극적으로 하고자 하는 말이다. 그것은 다른 말로 하면 “사랑의 폭력”으로서 적극적으로 이 땅에 기독교적 사랑을 실천에 옮기고 사람들에게 그것을 강요하는 것이다. 폭력은 강요하지도 않고 강요당하지도 않지만 사랑은 감히 강요하고 강요당하겠다는 것이다. 그것은 “남에게 폐만 끼치지 않고 살면 그만”인 이웃 어느 나라의 윤리와는 다른 것으로 남에게 적극적으로 사랑의 폐를 끼치겠다는 것이다. 남의 삶에 간섭하겠다는 것이자 이웃과 세상에 간섭하겠다는 것이다. 감히 기독교적 윤리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말이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결코 물리적 폭력으로는 가능하지 않지만, 사랑의 폭력으로는 가능하다는 것이다. – 역자 서문 중에서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