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푸코의 진자 (1, 2, 3)
움베르토 에코 / 열린책들 / 2007.1
주인공들이 만들어 낸 엄청난 (가짜)비밀은 결국 푸코의 진자에 그 열쇠가 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야코포 벨보는 점점 광증과 흡사한 증상을 보이며 자신이 만들어 낸 가짜 음모에 몰입하기 시작하고, 디오탈레비는 암으로 사망한다. 그리고 세 사람이 만들어 낸 “가짜 음모론”을 정말로 믿어버린 음모론자들이, 이 비밀을 독점하기 위해 야코포 벨보를 납치, 그 비밀을 알기 위해 그를 협박하지만 벨보는 이를 거부하고 목매달려 살해당한다. 그 현장에 숨어 있다가 벨보의 마지막을 목격한 주인공 또한 음모론자들에게 쫓기게 되며 작품의 막이 내린다.
음모론의 비판이라는 관점에서 철학적으로 보자면, ‘과연 사유가 실체(또는 현상)으로써 작용할 수 있는가’ 라는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작품 속 내내 진행되어 왔던 성전기사단 전설은 결국 까소봉, 벨보, 디오탈레비가 장난스럽게 만들어 낸 장난에 불과했지만(사유), 이 장난을 믿어 버린 음모론자들은 이를 그대로 실체화시켜 결국 주인공들 역시 실체화된 죽음의 위기로 몰아가는 것이다. 따라서 에코의 주장은 “제아무리 인간의 망상일지라도 실체화될 위험성이 있기 때문에 음모론은 함부로 주장되어서는 안 된다”로 볼 수도 있는 것이다.
푸코의 진자를 중요한 상징으로 채택한 이유는, 그 자체가 인류의 지성과 이성을 상징하는 구조물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의 목적인 지구의 움직임(자전) 자체는 진자 하나만으로는 완벽히 규명해 낼 수 없는 신비한 것임을 의미한다고 한다. 즉 이성적인 현대인들이 어째서 신비주의와 미신에 몰입하는 지에 대한 의문을 던지는 알레고리라고 할 수 있다.
– 목차
[1편]
케테르
호흐마
비나
헤세드
[2편]
게부라
티페렛
[3편]
티페렛
네짜
호드
예소드
말후트
– 저자소개 : 움베르토 에코 (Umberto Eco)
기호학자인 동시에 철학자, 역사학자, 미학자로 활동하고 있는 볼로냐대학교의 교수이다. 1932년 이탈리아 서북부의 피에몬테주 알레산드리아에서 태어났다. 변호사가 되길 원했던 아버지의 뜻에 따라 토리노 대학교에 입학하였으나, 중세 철학과 문학으로 전공을 선회, 1954년 토마스 아퀴나스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 학위논문을 발간함으로써 문학비평 및 기호학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1962년 토리노대학교와 밀라노대학교에서 미학 강의를 시작했으며, 최초의 주요 저서인 『열린 작품 Opera apertas』(1962)을 발간해 현대미학의 새로운 해석방법을 제시했다. 이어 『제임스 조이스의 시학 Le poetiche di James Joyce』(1965), 『예술의 정의 La definizione dell’arte』(1968) 등 새로운 이론서를 발표해 문학비평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1966년 상파울루대학교와 피렌체대학교에서 시각커뮤니케이션을 강의했으며, 1967년 『시각커뮤니케이션 기호학을 위한 노트』를 출간했다.
1968년 인간의 사고와 문화행위, 이념구성 등에 다양하게 관련되어 있는 기호를 개념, 유형, 의미론, 이데올로기 등으로 명쾌하게 분석 정리한 『텅빈 구조 La struttura assente』를 발간했으며, 이어서 『내용의 형식 Le forme del contenuto』(1971)을 발간한 후 이 두 저서의 내용을 증보해 영문판 『기호학이론 A Theory of Semiotics』(1976)을 발간함으로써 세계적인 기호학자로서 명성을 얻었다. 그는 Visio 문화, 즉 읽는 문화가 아니라 보는 문화의 전형적인 사례인 중세 미학과 러시아 형식주의, 그리고 아방가르드 문화로부터 출발했으며, 퍼스의 철학적 기호론을 통해 독특한 기호학 체계를 구축, 프랑스 중심의 언어학적 기호학이나 구조주의와 철저하게 맞대결하는 한편 프랑크푸르트 학파류의 마르크스주의와도 완연히 다른 예술 이해와 미학관을 보여주었다. 1971년 볼로냐대학교의 기호학 조교수로 임명되었으며, 세계 최초의 국제기호학 잡지 『베르수스』의 책임자로 활동했다. 1974년 밀라노에서 제1회 국제기호학 회의를 주관했으며, 1975년 볼로냐대학교의 기호학 정교수 및 커뮤니케이션·연극학 연구소장으로 임명되었다.
기호학과 미학의 세계에 열중하던 중 우연한 기회에 출판사에 근무하는 여자친구의 권유로 소설을 집필하게 되었다. 당시 원자핵의 확산과 환경오염 등으로 인한 세기말적인 위기를 문학으로 표현해보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그는 2년 반에 걸쳐 집필을 완료해 1980년 첫번째 장편소설 『장미의 이름 Il nome della rosa』을 발표했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의 논리학,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의 경험주의 철학과 자신의 기호학 이론을 유감없이 발휘한 이 소설은 출간되자마자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어 1988년 두 번째 장편소설 『푸코의 진자 Il pendolo di Foucauilt』를 발표해 프랑크푸르트 북페어에서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받았으며, 1994년 자전적 작품인 세 번째 장편소설 『전날의 섬 L’isola del giornoprima』을 발표해 작가로서의 재능을 다시 한번 확인시켰다. 에코는 문학은 죽는 방법까지 가르쳐 준다고 말할 정도로 문학에 절대적인 신뢰를 보내고 있다. 그는 『움베르토 에코의 문학 강의』라는 책에서 문학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그리고 문학이 개인적 삶과 사회적 삶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를 웅변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문학의 몇 가지 기능에 대해’에서 시작하여 마르크스, 단테, 네르발, 와일드, 조이스, 보르헤스 등의 작품에 대한 비평과 문체, 상징, 형식, 아이러니 등 문학 이론의 핵심적인 개념들에 대한 기호학적 분석 등을 담고 있다.
움베르토 에코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철학에서 퍼스널컴퓨터에 이르기까지 기호학·철학·역사학·미학 등 다방면에 걸쳐 전문적 지식을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모국어인 이탈리아어를 비롯해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라틴어, 그리스어, 러시아어, 에스파냐어까지 통달한 언어의 천재이다. 이러한 이유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이래 최고의 르네상스적 인물이라는 칭호를 얻고 있다. 그의 기호학이론은 오늘날 세계 학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문학이론으로 평가받고 있다.
2005년 Prospect/Foreign Policy 공동 조사에게 움베르토 에코는 노엄 촘스키에 이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지식인> 2위에 이름을 올렸다. 3위는 리처드 도킨스였다.
작품으로 장편소설『장미의 이름』(1980) 과『푸코의 진자』(1988),『전날의 섬』(1994), 동화『폭탄과 장군』(1988),『세 우주 비행사』(1988), 이론서『토마스 아퀴나스의 미학의 문제』,『열린 작품』, 『대중의 슈퍼맨(대중문화의 이데올로기)』, 『논문 잘 쓰는 방법』 등이 있다.
2016년 2월 19일 향년 84세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밀라노 자택에서 타계했다.
– 역자 : 이윤기 (Lee Yoon-ki, 李潤基)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이자 탁월한 번역가 이윤기. 1947년 경북 군위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성장하였다. 중학교 2학년 때 학비를 위해서 도서관에서 일하게 되면서 책의 세계로 빠져들었고 인문학에 심취하게 되었다. 경북중학교, 성결교신학대 기독교학과를 수료하였다. 국군 나팔수로 있다가 베트남전에 참가하기도 했었다. 그리스·로마신화를 비롯해 오랫동안 번역가로 활동하면서 자신의 영역을 구축한 뒤 신화에 관한 저서를 내 크게 성공했다.
1976년 첫 번역서 『카라카스의 아침』을 펴냈고 그 이듬해 197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하얀 헬리콥터」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1991년부터 1996년까지 미국 미시간주립대학교 종교학 초빙 연구원으로 재직했다.
번역을 생업으로 삼아 『장미의 이름』, 『푸코의 진자』, 『그리스인 조르바』, 『변신 이야기』 , 『신화의 힘』, 『세계 풍속사』등 200여 권의 책을 우리말로 옮기며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번역가로 자리매김했다. 2000년에 한국번역가상을 수상했다. 1999년 번역문학 연감 『미메시스』에서 시행한 설문조사에서 이윤기는 한국 최고의 번역가로, 『장미의 이름』은 해방 이후 가장 번역이 잘 된 작품으로 선정됐다.
2000년 첫 권이 출간된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시리즈(전 5권)는 ‘21세기 문화 지형도를 바꾼 책’이라는 찬사와 함께 신화 열풍을 일으키며 200만 명 이상의 독자와 만났다.
번역과 동시에 작품활동도 이어갔다. 1994년 장편소설 『하늘의 문』을 출간하며 문단으로 돌아온 그는 중단편과 장편을 가리지 않고 활발한 창작 활동을 했다. 1998년 중편소설 「숨은 그림 찾기」로 동인문학상을, 2000년 소설집 『두물머리』로 대산문학상을 수상했다. 그의 소설은 풍부한 교양과 적절한 유머, 지혜와 교훈을 두루 갖추고 있어 ‘어른의 소설’ 또는 ‘지성의 소설’로 평가받았다.
장편소설 『하늘의 문』, 『뿌리와 날개』, 『내 시대의 초상』 등과 소설집 『하얀 헬리콥터』, 『두물머리』, 『나비 넥타이』 등을 펴냈고, 그 밖에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등의 교양서와 『어른의 학교』, 『꽃아 꽃아 문 열어라』 등의 산문집을 펴냈다. 2010년 8월 27일, 심장마비로 별세했다.
– 책 속으로
[1권]
오로지 포도밭 사이에서만 잘 자라는 노란 복숭아 나무가 있다. 복숭아를 깨물면 껍질의 부드러운 감촉이 혀에서 사타구니로 전해지기도 한다. 한때는, 공룡이 놀던 곳이다. 그런데 다른 표면이 그 위를 덮은 것이다. 트럼펫을 불던 때의 벨보처럼, 나도 복숭아를 깨무는 순간에 <하느님의 왕국>을 이해하고 그것과 일체가 되었던 것이다. 그것은 공룡과 복숭아사이의 간극을 설명하기 위해 무수한 사람들이 해온 짓이기도 하다. 나는 이해했다. 더이상 이해할 것이 없다는 확신이 섰으니 나는 평화로워야 마땅하다. 승리에 도취되어야 옳다. 그러나 나는 여기에 있고 <그들>은, 내가 저희들이 목마르게 찾고 있는 어떤 열쇠를 가지고 잇는 줄 알고 나를 뒤쫓고 있다. 내가 만일 저들에게, <지도>같은 것은 없다고 하면 할수록, <지도>를 손에 넣고 싶다는 저들의 욕망은 그만큼 더 뜨거워진다. 벨보가 옳다. 내가 어떻게 이렇게 어리석을 수 있는가. 나를 죽이고 싶어? 그럼, 죽여. 죽여도 <지도>같은 것은 없다는 말은 하지 않겠다. 네놈들 손으로는 못 찾아? 찾든 말든 내 알 바 아니지.— pp.1184-1185
나는, 안경을 쓴 청년과 유감스럽게도 안경을 쓰지 않은 처녀가 나누는 무신경한 이야기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푸코의 진자라고 하는 것이야. 첫 실험은 1851년 지하실에서 있었고, 그 다음에는 옵세르바뚜아에서 선보였다가 빵떼옹의 궁륭 천장 밑에서 다시 공개되었지. 당시 실험에는 길이 67미터자리 철선과 무게 28킬로그램짜리 구체가 쓰였대. 그러다 1855년부터는 축소형으로 제작해서 이렇게 늑재 한가운데 구멍을 뚫고 거기에 매달아 놓은 거라.」
청년의 말이었다.
「이게 어쨌다는 거야? 그저 매달아 둔 거야?」
「지구가 자전하고 있다는 걸 증명하는 거지. 지점은 움직이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왜 안 움직여?」
「응, 저 점…… 중심점 말이야, 그러니까 저기 보이는 저 중심에 있는 점이 바로…… 기하학적인 점이라는 건데 보이지는 않을 거야. 기하학적인 점에는 용적이 없으니까. 용적이 없는 것은 좌우로든 상하로든 움직이지 못해. 따라서 지구와 함께 돌지 않는 것지. 알아듣겠어? 자체가 공전할 수도 없어. <자체>라는 게 아예 없으니까.」
「지구는 돌잖아?」
「지구는 돌지. 그러나 저 점은 안 돌아. 묘한 거지. 내 말 믿어도 돼.」
「그거야 진자의 사정일 테지.」 — pp.20-21
’36명의 기사들이 여섯 군데에 있으니까 도합 216이 되는 셈입니다. 이 수를 구성하는 숫자의 합은 <9>가 되는군요. 성당 기사단이래 6세기가 흘렀지요? 216 곱하기 6…1296이 됩니다. 1296이라는 수를 구성하는 숫자의 합은 18, 혹은 3 곱하기 6, 혹은 666이 되는군요.’ 벨보가, 장난이 심한 아들을 흘기는 듯한 어머니의 눈을 하지 않았더라면 디오탈레비는 전세계를 숫자 놀이로 재구(再構)했을 터였다. 그러나 대령은 그 말을 듣고는 디오탈레비야 말로 머리가 깬 사람으로 본 모양이었다. — p.266-267
[2권]
나흘 동안의 파리 여행 결제가 났다. 나흘이면, 고문서관을 모조리 뒤질 만한 시간이 못 되었다. 리아가 동행했다. 우리는 목요일에 파리에 도착했다. 월요일 야간 열차표를 예약하고, 월요일 낮에 국립 공예원 박물관에 가기로 예정을 잡았는데, 이건 내 실수였다. 나는 그 박물관이 월요일에 문을 닫는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었다. 우리는 낙심한 채 공예원 박물관은 구경도 못하고 밀라노로 돌아가야 했다.
벨보는 우리가 공예원 박물관을 놓친 것을 몹시 아까워했다. 그러나 다른 데서 모은 자료가 꽤 되었기 때문에 함께 가라몬드 시에게 보이러 갔다. 가라몬드 씨는 대부분이 컬러로 되어 있는 복제화를 들여다본 뒤, 내 청구서를 보고는 휘파람 소리를 내었다. — p.477
[3권]
예소드
음모… 만일에 음모라는 것이 있다면 이것은 비밀에 붙여져야 한다. 우리가 그 전모를 알게 될 경우, 비밀이라는 것은 우리를 낭패감에서 해방시켜 주고, 필경은 우리를 구원해 준다. 비밀이 구원하지 못한다면, 비밀을 안다는 것 자체가 벌써 구원이다. 자, 이렇게 굉장한 비밀이 정말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일까? 있다. 절대로 밝혀질 수 없는 비밀이라면 그런 비밀 노릇을 할 수 있다. 비밀이라는 것은, 전모를 알게 되면, 실망밖에는 안겨주는 것이 없다. — p.1149
먼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만을 꼽아 보기로 했다. 디오탈레비가 세상을 떠났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구드룬이 그렇게 말했기 때문이다.구드룬은 우리 이야기에 끼여들지도 않았거니와, 끼어 들었다고 했어도 알아듣지 못했을 터이니, 우리에게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구드룬밖에 엇다고 할 수 있다. 가라몬드 사장이 밀라노에 있지 않다는 구드룬의 진술. 다른 곳에 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그가 밀라노에 있지 않다는 것과, 지난 며칠 동안 밀라노에 나타난 적이 없다는 것은, 그가 파리에 있었다는 것, 내가 파리에서 그를 본 것이 사실임을 암시한다. — pp.1143-1144
라비 아키바의 문하에 있을 당시, 라비 메이르는 항용 잉크에다 황산을 섞어서 썼네만 스승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하지만 라비 메이르로부터, 자기가 한 일이 옳은지 그른지 질문을 받고서야 스승은 이렇게 대답하지…<옳다. 글을 쓸 때는 독을 다루듯이 조심을 다하여야 하니, 이것이 곧 하느님의 정하신 이치인 까닭이다. 한 자를 빼먹어도 안 되고, 한 자를 더 써넣어도 안 된다…… 그러면 온 세상이 무너진다>. 그런데 우리는 [토라]를 다시 쓰려고 했어. 쓰면서도 더 써넣는지 빼먹는지 도무지 신경 쓸 줄을 몰랐어. — p.1045
– 출판사 서평
1990년 열린책들에서 출간되었던 움베르토 에코의 두 번째 소설 『푸코의 추』가 『푸코의 진자』로 이름을 바꾸며 새로 번역 출간되었다. 이 책은 초판본의 오류와 잘못된 번역을 바로잡고,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4백여 개의 각주를 새로이 첨부하였다.
이번 개역판은 몇몇 오자나 오역을 수정한 것이 아니다. 지난 1992년 개역 출간된 『장미의 이름』과 마찬가지로 『푸코의 진자』라는 소설 전체를 처음부터 다시, 첫번째 번역이라는 생각으로 역자 이윤기 씨가 심혈을 기울인 또 다른 <작품>이다. 새 번역판에서는 확실하지 않았던 인명이나 지명, 저서들, 사건, 인용된 신화들에 대해 철저히 고증했다. 특히 4백여 개에 달하는 역자의 각주를 첨부함으로 에코답다는 탄식 아닌 탄식을 불러일으킨 『푸코의 진자』를 좀 더 편안하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초판에서 <추>라고 번역했던 Pendulum을 단순히 고정점에 매달려 흔들리는 <추>가 아니라 일정한 주기를 가지고 운동하는 <진자>라고 옮김으로써 지구의 자전을 비롯한 지구의 모든 신비를 상징하려던 에코의 의도를 더 강조하였다.
이 소설의 작가 에코는 현재 볼로냐 대학의 교수이며 세계적인 기호학자, 역사학자, 철학자, 미학자로 평가받고 있다. 『푸코의 진자』는 『장미의 이름』에 이은 에코의 두 번째 소설로 작자의 해박한 지식과 서양의 각종 비교(秘敎) 집단의 생생한 묘사가 돋보이는 지적 소설이다.
이탈리아에서 1988년 첫 출간된 이 소설은 출간되자마자 독자들의 뜨거운 찬사와, 신성 모독이며 냉소적이라는 교황청의 비난을 한몸에 받은 현대의 고전이다. 또한 미국에서도 발간 6주 만에 30여만 부가 팔렸으며 권위 있는 서평지인 뉴욕 타임즈 북리뷰가 80년대를 마감하는 특집호에서 이 작품을 <89년 최고의 책>가운데 하나로 선정한 사실은 이 소설의 뛰어난 작품성을 대변한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푸코의 진자>란 19세기 과학자 장 베르나르 레옹 푸코가 지구의 자전을 증명하기 위해 고안해 낸 장치로, 현재 파리의 한 과학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에코는 <우리 시대의 문명이 갖고 있는 본질을 캐려는 진지한 관심이 『푸코의 진자』를 쓰게 된 동기였다>고 밝히고 있다. 때로 그의 작품의 난해성이 독자들로부터 불평을 유발하기도 하지만 독특한 <에코적> 서술은 독자들에게 다채롭고 흥미진진한 지적 체험을 가능케 한다. 또한 중세 이래 번성해 온 유럽의 비교(秘敎)에 관한 완벽한 안내서 역할을 하기도 한다. 작가로서 에코의 집념은 영원히 살아남을 또하나의 훌륭한 작품을 탄생시킨 것이다.
– 추천평
지구의 자전을 나타내주는 대형 추. 지구의 극에서 단진자(單振子)를 자유롭게 진동시키면 진동면은 우주공간에 대해서 정지하고 있는데도 지구가 자전하고 있으므로 지구에서 보면 진자의 진동면은 지구의 자전방향과 역방향으로 약 1일(23시간 56분 4.091초)에 일주한다. 위도 Ø인 점에서는 23시간 56분 4.091초/sinØ 동안 일주한다. 1851년 프랑스의 물리학자 J. B. L. 푸코의 실험으로 밝혀졌다.
1851년에 푸코가 파리의 판테온 성당 천장에 매단 진자를 흔들어 진자의 진동 방향이 시계 방향으로 회전하는 것을 보여 준 실험. 이 실험을 통하여 지구의 자전을 입증하였다. 푸코 진자는 프랑스 물리학자 푸코가 지구의 자전을 증명하기 위하여 고안해 낸 것이다. 지구는 자전하므로 지구상에 매달아 놓은 진자의 진동면은 지구상에서 관측하는 사람에게는 지구의 자전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돌고 있는 것과 같이 보인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