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프랑스 위그노 이야기
앨리슨 그랜트, 로날드 메이요 / 가르침 / 2018.6.1
프랑스 신교도를 통틀어 일컫는 위그노는 종교개혁 어간부터 박해와 피난을 겪으면서 지금 소수로 남기까지 자그마치 500년 동안 인고의 시간을 보냈다.
위그노가 이처럼 긴 고통의 역사 속에서 생존할 수 있었던 동력은 무엇이며, 보장된 성공과 소중한 삶터 그리고 고귀한 목숨까지 신앙을 위해 아낌없이 내버린 위그노의 정신은 무엇이었는지 알아본다.
○ 목차
일러두기 …… 7
저자의 말 …… 11
1장. 피난 …… 13
2장. 초기 위그노 …… 18
3장. 종교전쟁 …… 29
4장. 성 바돌로매 축일 …… 44
5장. 평화의 예술 …… 55
6장. 포위 그리고 항복 …… 73
7장. 박해 …… 87
8장. 낭뜨 칙령 철회, 노예 그리고 항전 …… 101
9장. 이주 …… 114
10장. 영국의 위그노들 …… 128
11장. 이야기를 마치며 …… 143
자료출처 …… 147
계보 …… 149
역자후기 …… 150
그림목록 …… 151
○ 저자소개 : 앨리슨 그랜트, 로날드 메이요
– 저자: 앨리슨 그랜트
최근작으로 <프랑스 위그노 이야기>가 있다.
– 저자: 로날드 메이요
최근작으로 <프랑스 위그노 이야기>가 있다.
– 역자: 조병수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의 前총장이며 신약학 교수이다.
독일 뮌스터 대학교에서 박사학위 (Dr. theol.)를 받았다.
독일 교민교회들과 서울 염광교회에서 목회하였고 그의나라교회를 개척하여 섬겼다.
지은이는 성경연구에 때로 어려운 신학 작업이 동반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결과는 반드시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교회와 세상에 유익이 되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 책 속으로
아믈랭은 여행 간에 마침내 프랑스의 서쪽 해안에 위치한 쌩똥스 주에 있는 쌩뜨라는 작은 마을에 도착하였다. 그는 여기에 신교교회를 세웠고 첫 목회자가 되었다. 그리나 그는 주교의 명령으로 체포되었고, 동료들의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참수형을 당하고 말았다.
신분이 낮고 파난한 다섯 사람이 아믈랭의 사역을 계속하기고 결심하고, 다른 신교 신자들과 함께 주일마다 모여, 비록 목회자는 아니지만 돌아가면서 설교를 하였다. 그러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에게 목사님이 생겼고, 어려움이 없지는 않았지만 성도가 점점 많아졌다. 그 목회자가 떠나자 세 번째 목회자가 나타났다. 성도 가운데 한 사람이 이 목사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그 가련한 사람은 마치 죄수처럼 방에 틀어박혀 있다가, 저녁때가 되면 사과를 먹는 것과 물을 마시는 것으로 식사를 대신하기 일쑤였습니다. 식탁보가 부족했기 때문에 그는 종종 자기 셔츠 위에 음식을 올려놓았습니다. 그만큼 우리 교회에 참석한 사람들 가운데는 잘사는 사람이 거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에게 사례를 드릴 방법이 없었습니다.”
박해와 가난에도 불구하고 그 도시에서 신교도들 수는 계속 증가하였고 즉시 사람들의 생활에 영향을 끼쳤다. 위의 사람은 다음과 같이 계속 글을 이어갔다.
“신교 신앙이 몇 년 새에 너무나 창성하게 꽃피어 벌써부터 놀음, 춤, 가요, 술자리, 사치스런 머리 장식, 허례허식 같은 것들이 거의 그쳤습니다. 더 이상 욕설이나 살인이 벌어지지 않습니다. 주일이 되면, 동업하는 상인들이 들과 숲과 쾌적한 장소를 거닐면서 무리를 지어 시편과 찬송가와 경건한 노래를 부르고 함께 성경을 읽으며 교육하는 것을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행복한 시기에, 그 교회의 설립자인 필리베르 아믈랭은 헛되이 사역했거나 고난을 당한 것이 아니었음을 동료들이 입을 모아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쌩뜨의 신교도들은 시편찬송을 부르며 산책하는 짓을 오래 누리지 못하였다. 박해가 다시 시작되어 그들은 어쩔 수 없이 한밤중에 비밀리에 예배를 드려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라도 할 수 있게 목숨을 부지한다면). 프랑스 전역에서, 특히 서쪽 지방과 남쪽 지방에서 아믈랭 같은 용감한 사람들이 새로운 신앙을 계속해서 퍼뜨렸고, 1560년대에 이르러는 위그노의 숫자가 백만 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톨릭교회는 큰 당혹감에 사로 잡혔고, 위그노의 확산을 막겠다는 구실로 박해를 더 일반화했다. 그 결과로 1562년에 시민전쟁이 터지고 말았다. 그 전쟁은 프랑스 국왕들이 저지할 수 없는 것인데다가, 때로는 자신들도 참전하는 전쟁이 되었다. 많은 귀족들이 자기들의 더 큰 야심을 이루기 위해 전쟁에 가담하였다. 그들은 추종자들을 얻는 가장 쉬운 길이 자신을 열렬한 가톨릭 신자나 또는 독실한 신교 신자라고 공표하는데 있다는 것을 알았다. 물론 어떤 귀족들은 실제로 독실한 가톨릭 신자거나 신교 신자였다. 마침내 이 땅에 평화를 주기 위해 오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역사상 가장 잔인한 전투들이 벌어졌다. 그것이 바로 프랑스 종교전쟁이다. _ p.26-28
○ 출판사 서평
프랑스 신교도를 통틀어 일컫는 위그노는 종교개혁 어간부터 박해와 피난을 겪으면서 지금 소수로 남기까지 자그마치 500년 동안 인고의 시간을 보냈다.
위그노가 이처럼 긴 고통의 역사 속에서 생존할 수 있었던 동력은 무엇이며, 보장된 성공과 소중한 삶터 그리고 고귀한 목숨까지 신앙을 위해 아낌없이 내버린 위그노의 정신은 무엇이었을까?
이 책은 여러 사건들과 여러 인물들을 생동감 있게 묘사하여 온갖 모진 고난에도 불구하고 신앙을 지키려 했던 위그노의 정신이 무엇이었는지 영화처럼 보여준다.
독자는 이 책으로부터 신앙을 위한 프랑스 위그노의 희생을 톡톡히 읽어낼 것이다.
믿음을 위해 흙에 쏟은 붉은 피, 박해 앞에서 공포에 찌든 마음, 기나긴 피난생활로 타버린 육체, 그리고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도 감사하던 뜨거운 눈물 말이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