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피고석의 하나님
C. S. 루이스 / 홍성사 / 2020.3.23
– 다양한 사람, 다양한 질문과 소통한 C. S. 루이스의 탁월한 글 모음집
20세기에 가장 많이 읽히고 인용되는 기독교 변증가 C. S. 루이스. 그의 에세이집 ‘피고석의 하나님’은 루이스의 변증 주제를 광범위하게 볼 수 있는 책으로, 신학적, 윤리적 질문들로 구성된 48편의 글을 모은 것이다. 루이스는 하나님이 왜 고통을 허락하시는지, 왜 기독교가 참된 종교인지, 기적은 있는지, 있다면 어떤 목적이 있는지 등 사람들이 묻는 질문들을 먼저 자신에게 던져 보았다. 1931년 회심한 루이스는 강연 요청이나 원고 청탁을 거의 거절하지 않았고, 다양한 사람들에게 기독교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를 가졌다. 동료 교수, 노동자, 공군 장병, 대학생들에게 루이스는 기독교를 이야기하고 논쟁했다.
이런 경험에 힘입은 그는 신학자들이 기독교를 쉽게 전달하지 못하는 이유를 깨달았다. 일반 사람들의 질문에 대답하기 어렵다면 그것은 “그 견해를 철저히, 끝까지, ‘완전히 끝장을 볼 때까지’ 생각해 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일상어로 복음을 ‘번역하는’ 임무를 자임한 루이스는 재치와 위트가 번득이는 현대 산문으로 기독교를 뛰어나게 표현했다.
다양한 매체에 실렸던 이 글들은 다양한 사람들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쓰였으며, 다각도에서 기독교를 바라볼 기회를 제공한다. 신문에 기고한 대중적인 글부터 기독교 신앙을 체계적으로 옹호하며 쓴 글까지, 난이도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피고석의 하나님’은 루이스의 정직성과 현실성, 통찰력과 확신, 무엇보다 철저한 기독교 신앙이 잘 드러나 있다.
○ 목차
1부
1. 악과 하나님 / 2. 기적 / 3. 교리와 우주 / 4. 기독교에 대한 질문과 답변 / 5. 신화가 사실이 되었다 / 6. 무서운 빨간 약 / 7. 종교와 과학 / 8. 자연법칙 / 9. 장엄한 기적 / 10. 기독교 변증론 / 11. 노동과 기도 / 12. 인간인가 토끼인가? / 13. 기독교의 전수에 대하여 / 14. ‘비참한 범죄자’ / 15. 소크라테스클럽의 설립 / 16. 교리 없는 종교? / 17. 몇 가지 생각 / 18. ‘그 사람’의 문제 / 19.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 20. 동물의 고통 / 21. 유신론이 중요한가? / 22. 피텐저 박사에 대한 답변 / 23. 우리의 하나님 상을 버려야 할까? /
2부
1. 국가적 회개의 위험 / 2. 자아를 다루는 두 가지 방법 / 3. 제3계명에 대한 묵상 / 4. 옛날 책의 독서에 대하여 / 5. 두 강연 / 6. 공구실에서 한 생각 / 7. 단편들 / 8. 종교의 쇠퇴 / 9. 생체 해부 / 10. 현대어 번역 성경 / 11. 교회에 여사제? / 12. 피고석의 하나님 / 13. 무대 뒤쪽 / 14. 부흥인가 쇠퇴인가? / 15. 의사소통의 전제 조건 / 16. 질의응답
3부
1. ‘불버주의’ / 2. 우선적인 것들과 부차적인 것들 / 3. 설교와 점심 식사 / 4. 인본주의 형벌론 / 5. X마스와 크리스마스 / 6. 크리스마스는 내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 7. 눈 속의 비행 청소년들 / 8. 진보는 가능한가? / 9. 우리는 ‘행복할 권리’가 없다
4부
편지 모음
편집자의 글 / 옮긴이의 글 / 찾아보기
○ 저자소개 : C. S. 루이스 (Clive Staples Lewis, 1898~1963)
1898년 아일랜드 벨파스트 출생으로,1925년부터 1954년까지 옥스퍼드의 모들린 칼리지에서 강의하다가, 1954년 케임브리지의 모들린 칼리지 교수로 부임하여 중세 및 르네상스 문학을 가르쳤다.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신앙을 버리고 완고한 무신론자가 되었던 루이스는 1929년 회심한 후, 치밀하고도 논리적인 변증과 명료하고 문학적인 문체로 뛰어난 저작들을 남겼다. 1963년 작고했다.
지성적이며 논리적인 신학자로 개신교, 성공회, 로마 가톨릭 등 기독교 교파를 초월한 기독교의 교리를 설명하였다. 그리고 판타지 소설 나니아 연대기로 영국 3대 판타지 소설가로 꼽히는 유명한 작가이다. 그는 확고한 무신론자였다가 로마 가톨릭 신자이자 소설가인 톨킨과 다른 친구들의 영향으로 30세 때인 1929년 성공회 신앙을 받아들여 성공회 홀리 트리니티 교회에서 평생 신앙생활을 하였다.
가까운 친구들 사이에선 “잭 Jack”이라 불린 그의 본명은 클리브 스태플스 루이스 Clive Staples Lewis이다. 1898년 11월 29일 아일랜드 벨파스트에서 태어났다. (3년 먼저 태어난 형 워런 Warren은 역사학자였고 그의 평생에 걸친 절친한 친구였다.) 9살 때 어머니 플로라 Flora 여사를 암으로 여읜 루이스는 기숙사가 딸린 학교들 몇 군데를 전전하다가, 커크패트릭 W. T. Kirkpatrick이라는 가정 교사에게로 보내졌는데, 엄격한 이성주의적 무신론자였던 그에게서 엄밀한 논리적 사고 훈련을 받았으며, 본래 성공회 배경을 가졌던 루이스는 이 무렵 확고한 무신론자가 된다.
어린 루이스는 사람을 닮은 동물을 매우 좋아했고, 비트릭 포터 이야기에 빠지기도 했으며, 때로는 자신이 직접 동물 이야기를 상상해서 글로 쓰기도 하였다. 루이스는 형 워니와 함께 동물들이 다스리는 ‘복센 세계’를 창작하기도 했다. 그는 독서를 매우 좋아하였다. 루이스의 아버지 집에는 많은 책들이 있었는데, 루이스가 읽지 않은 책 한권 찾기는 풀밭에서 바늘을 찾는 것만큼 어렵다고 하였다.
루이스가 십대 소년일 때, ‘노던니스 (Northernness)’라는 스칸디나비아 고전 문학의 시나 전설에 크게 감명을 받았다. 이러한 전설에 대한 관심이 커져서, 루이스는 ‘기쁨 (joy)’이라고까지 표현하였다. 루이스는 자연에 대한 애정도 컸다. 루이스에게 자연의 아름다움은 곧 북쪽 (the North) 이야기였고, 북쪽 이야기는 곧 자연의 아름다움이었다. 십대 때 쓴 글은 복센 이야기로부터 멀어졌고, 북유럽 신화나 자연 세상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담은 서사시나 오페라 같은 다른 형식으로 쓰기 시작했다. 루이스는 커크패트릭에게 배우면서 그리스 문학과 신화에 점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논쟁과 추론 능력을 발달시킬 수 있었다.
1916년 옥스포드 대학교의 유니버시티 칼리지에서 장학금을 받고, 이듬해 1차 세계대전에 영국군으로 자원입대하였다. 19번째 생일날 프랑스의 섬므 밸리의 최전선에 나가 참호전을 겪었으며, 서머셋 보병 연대 서드 배탈리온에서 장교로 복역하였다. 엉덩이에 영국군 포탄의 파편 조각이 박히는 부상을 입어 요양캠프에서 치료를 받다가 전쟁이 끝나자 다시 옥스퍼드로 돌아와 학업을 계속한다. 루이스는 장교훈련 기간 중 알게 된 패디 Paddy라는 친구가 전사하자, 약속한 대로 그의 어머니 무어 부인 Mrs. Moore을 자신이 평생 보살폈다.
옥스포드 대학교에서 문학과 철학 동아리인 잉클링스의 멤버였던 그는 1923년 옥스퍼드를 세 부문 최우등으로 졸업하고 유니버시티 칼리지 (University College)에서 잠시 철학을 강의했으며, 1925년부터 모들린 대학 (Magdalen College)에서 30여 년간 영어와 문학을 가르친다. 1954년부터는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중세와 르네상스 문학 교수로 재직했는데, 이 무렵 『실락원 서문 : A Preface to “Paradise Lost”』 『사랑의 알레고리 : The Allegory of Love』 등 뛰어난 영문학 학술서적들을 여러 권 저술한다.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접근을 늘 의식하고 있던 루이스는, 1929년 어느 날 밤 마침내 신 앞에 항복하게 된다. 그런데 이 날의 회심은 ‘복음적 신앙’으로의 회심이라기보다는 단순히 ‘유신론’으로의 회심이었고, 그로부터 2년 뒤인 1931년 어느 가을 밤, 옥스퍼드의 동료 교수이자 가톨릭 신자인 톨킨 J. R. R. Tolkien과 성서와 신화를 주제로 나누었던 긴 대화를 통해 마침내 기독교 신앙의 핵인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믿음에 이르게 된다.
그리스도인이 된 후 루이스는 자신의 소명은 교회 밖 (언저리) 사람들에게 기독교의 핵심 진리를 설명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정 교파에 국한되는 교리가 아니라, 모든 시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공통적으로 믿어 온 기독교의 정수 “순전한 기독교 (mere Christianity)”를, 전문 신학 용어가 아닌 현대인의 피부에 와 닿을 수 있는 생생한 언어로 표현해내고자 노력했고, 그러한 분투는 결국 그에게 “회의자를 위한 사도”라는 별명을 안겨준다.
루이스의 삶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은, 루이스보다 열여섯 살 연하였던 조이 (Joy Gresham)이다. 그는 여러 권의 시집과 소설들을 발표한 미국 작가로서, 애초 무신론자이자 마르크스주의자였으나 그의 저술들에서 많은 도움을 받고 기독교로 회심하게 되었다. 시인이며, 재치와 지성미를 갖춘 여인으로, 평생을 독신으로 지내던 루이스는 58세에 그녀에게 떿국 시민권을 얻게 해주기 위해 조이와 결혼을 한다. 이때 조이는 이미 불치의 골수암에 걸린 상태였음이 뒤늦게 알려지고, 죽음의 신이 연적이 된 상황에서 조이에 대한 루이스의 사랑은 급속히 깊어졌다. 1957년 3월 조이의 병실에서 성공회 (Anglican) 혼인예식에 맞게 결혼식을 올렸으나 4년만에 결국 사별로 끝나고만 이 아름답고 가슴아픈 사랑 이야기는 훗날 연극으로 만들어졌고, 또 그 연극 대본을 기초로 하여 영화 ‘섀도랜드 (Shadowlands)’가 제작된다.
루이스가 아내를 잃은 슬픔을 이기기 위해 일기 형식으로 적었던 글인 『A Grief Observed』는 그가 세상을 떠나기 2년 전 가명으로 출판된다. 1963년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당했던 같은 날, 루이스는 자택에서 조용히 숨을 거둔다.
홍성사가 역간한 루이스의 저작으로는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순전한 기독교』, 『고통의 문제』, 『예기치 못한 기쁨』, 『천국과 지옥의 이혼』, 『헤아려 본 슬픔』, 『시편 사색』, 『네 가지 사랑』, 『인간 폐지』, 『우리가 얼굴을 찾을 때까지』, 『개인 기도』, 『기적』, 『영광의 무게』, 『루이스가 메리에게』, 『피고석의 하나님』, 『루이스가 나니아의 아이들에게』, 『기독교적 숙고』, 『당신의 벗, 루이스』, 『순례자의 귀향』, 『세상의 마지막 밤』, 『실낙원 서문』, 『오독』, 『침묵의 행성 밖에서』, 『페렐란드라』, 『그 가공할 힘』이 있다.
– 역자 : 홍종락
서울대학교에서 언어학과를 졸업하고, 한국해비타트에서 간사로 일했다. 2001년 후반부터 현재까지 아내와 한 팀을 이루어 번역가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는 『오리지널 에필로그』, 『나니아 나라를 찾아서』가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당신의 벗, 루이스』, 『순례자의 귀향』, 『피고석의 하나님』, 『세상의 마지막 밤』, 『개인 기도』, 『실낙원 서문』, 『오독』, 『이야기에 관하여』 『세이빙 다빈치』, 『사랑과 정의』, 『덕과 성품』, 『영광의 무게』, 『폐기된 이미지』(이상 루이스 저서), 『C. S. 루이스와 기독교 세계로』, 『C. S. 루이스의 순전한 기독교 전기』, 『본향으로의 여정』(이상 루이스 해설서), 『C. S. LEWIS 루이스』, 『C. S. LEWIS』『올 댓 바이블, 『루이스와 잭』, 『루이스와 톨킨』(이상 루이스 전기), 그리고 루이스가 편집한 『조지 맥도널드 선집』과 루이스의 글을 엮어 펴낸 『C. S. 루이스, 기쁨의 하루』 등이 있다. 학생신앙운동(SFC) 총동문회에서 발행하는 〈개혁신앙〉에 ‘루이스의 문학 세계’를 연재 중이다. 2009년 ‘CTK(크리스채너티투데이 한국판) 번역가 대상’과 2014년 한국기독교출판협회 선정 ‘올해의 역자상’을 수상했다.
○ 책 속으로
P.132
우리는 사건들을 일으키는 방법 두 가지, 즉 노동과 기도를 허락받았습니다. 노동과 기도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이 ‘알아서’ 제공하심을 합당하게 여기지 않으신 (적어도 아직까지는) 사태들을 일으키려 노력합니다. 이 점에서 둘은 동일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노동은 기도다laborare est orare”라는 오래된 속담은 새로운 의미를 띱니다. 밭의 잡초를 뽑을 때와 풍작을 달라고 기도할 때 우리가 하는 일은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중요한 차이점이 하나 있습니다. _ ‘1부 11. 노동과 기도’에서
P.290
제가 말했습니다. “구체적인 일을 놓고 기도하는 건 말이지 하나님께 세상을 어떻게 운영하시라고 조언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하나님이 가장 좋은 일을 아신다고 생각하는 게 더 지혜롭지 않을까?”
친구가 말했습니다. “그 원리를 따르자면, 자네는 식탁에서 옆 사람에게 소금을 달라고도 하지 않겠구만. 하나님은 자네에게 소금이 있어야 하는지 아닌지 가장 잘 아실 것 아닌가. 자네는 우산도 쓰고 나가지 않겠구만 그래. 자네의 몸이 젖어야 할지 말라야 할지 하나님이 가장 잘 아실 테니 말일세.”
“그건 전혀 다르지.” 제가 항의했습니다.
친구가 말했습니다. “뭐가 다르다는 건지 모르겠군. 이상한 점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사건들의 경로에 영향을 미치도록 허용하셨다는 사실이야. 그런데 하나님이 한 가지 방식으로 그 일을 허락하셨다면 다른 방식으로 그 일을 허용하셔서는 안 되는지 나는 이유를 모르겠네.” _ ‘2부 7. 단편들’에서
P.328
우리의 문제는 종종 단순한 번역 문제입니다. 목사 안수 시험에는 표준적인 신학 서적의 한 구절을 일상어로 번역하는 문제가 포함되어야 합니다. 힘이 많이 들겠지만 금세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입니다. 우리가 믿는 교리들을 일상어로 번역하다 보면 우리 자신이 그 교리들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 알게 됩니다. 번역이 잘 안 된다면, 그 이유가 일상어에 무지하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훨씬 많은 경우, 그것은 우리가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말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_ ‘2부 12. 피고석의 하나님’에서
P.348
그런데 지적인 기계공이나 진지한 호기심이 있지만 겉으로는 상당히 불경해 보이는 학생에게 자신의 그 견해를 설명하려고 해보십시오. (식자들 사이에서는 결코 나오지 않을) 유치한 질문들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검술의 첫 번째 원칙조차 모르는 상대의 칼에 어이없이 꿰뚫린 능숙한 검객의 신세가 됩니다. 상대의 유치한 질문은 치명적인 한 방이 됩니다. 우리는 자신이 그렇게 오랫동안 주장했던 내용을 실제로는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음을 알게 됩니다. 그 견해를 철저히, 끝까지, ‘완전히 끝장을 볼 때까지’ 생각해 보지 않았음을 깨닫게 됩니다. _ ‘2부 15. 의사소통의 전제 조건’에서
P.386
존슨 박사가 말한 것처럼, 가르침은 매우 진실(게다가 대단히 유익)하면서도 실행은 대단히 불완전할 수 있습니다. 바보가 아니라면, 의사가 술을 많이 마신다고 해도 알코올 중독에 대한 그의 경고를 가볍게 여기지는 않을 것입니다. 제가 염려했던 것은 그 목사님이 가정생활은 만만치 않고 삶의 모든 영역과 마찬가지로 나름의 고유한 유혹과 부패가 따른다는 얘기를 전혀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는 계속 ‘가정’이 행복과 미덕을 낳을 수밖에 없는 만병통치약, 마법의 주문인 양 말합니다. 그가 진실하지 않다는 게 아니라, 바보라는 게 문제입니다. 그는 자신의 가정생활의 경험을 바탕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감상적인 전통을 기계적으로 되풀이할 따름입니다. 그런데 하필 그것이 잘못된 전통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인들이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게 된 것입니다. _ ‘3부 3. 설교와 점심 식사’에서
○ 출판사 서평
– 20세기에 가장 많이 읽히고 인용되는 기독교 변증가 C. S. 루이스의 에세이집
루이스의 변증 주제를 광범위하게 볼 수 있는 책으로, 신학적, 윤리적 질문들로 구성된 48편의 글을 모은 것이다. 루이스는 하나님이 왜 고통을 허락하시는지, 왜 기독교가 참된 종교인지, 기적은 있는지, 있다면 어떤 목적이 있는지 등 사람들이 묻는 질문들을 먼저 자신에게 던져 보았다.
1931년 회심한 루이스는 강연 요청이나 원고 청탁을 거의 거절하지 않았고, 다양한 사람들에게 기독교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를 가졌다. 동료 교수, 노동자, 공군 장병, 대학생들에게 루이스는 기독교를 이야기하고 논쟁했다. 이런 경험에 힘입은 그는 신학자들이 기독교를 쉽게 전달하지 못하는 이유를 깨달았다. 일반 사람들의 질문에 대답하기 어렵다면 그것은 “그 견해를 철저히, 끝까지, ‘완전히 끝장을 볼 때까지’ 생각해 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일상어로 복음을 ‘번역하는’ 임무를 자임한 루이스는 재치와 위트가 번득이는 현대 산문으로 기독교를 뛰어나게 표현했다.
– 새 디자인으로 선보이는 정본 C. S. 루이스 클래식
영국 C. S. 루이스 협회와 정식 저작권 계약을 맺고 국내에 루이스 읽기의 즐거움을 선사한 ‘정본 C. S. 루이스 클래식’. 빼어난 번역과 정치한 편집으로 정본의 기준을 마련한 루이스 클래식이 새로운 표지로 갈아입는다. 20세기 최고의 기독교 변증가이자 영문학자였던 C. S. 루이스의 저작을 ‘변증’, ‘소설’, ‘고백’, ‘에세이’, ‘산문 및 서간’ 총 다섯 갈래로 나누어 루이스 사상의 전모를 보다 직관적으로 파악하도록 돕는다.
변증 _ 《순전한 기독교》《고통의 문제》《기적》 《인간 폐지》
소설 _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천국과 지옥의 이혼》《우리가 얼굴을 찾을 때까지》《순례자의 귀향》《침묵의 행성 밖에서》《페렐란드라》《그 가공할 힘》
고백 _ 《예기치 못한 기쁨》《헤아려 본 슬픔》
에세이 _ 《세상의 마지막 밤》《영광의 무게》 《기독교적 숙고》《피고석의 하나님》《오독》 《실낙원 서문》
산문 및 서간 _ 《시편 사색》《네 가지 사랑》《개인 기도》《당신의 벗, 루이스》
○ 언론소개
C.S.루이스 “인간은 재판장, 하나님은 피고석…”
‘변호사’ C.S.루이스의 ‘피고석의 하나님’ (C. S. 루이스, 홍성사)
“고대인은 피고인이 재판장에게 가듯이 하나님께 (또는 신들에게) 나아갔습니다. 현대인의 경우엔 그 역할이 뒤바뀌었습니다. 인간이 재판장이고, 하나님은 피고석에 계십니다.”
우리 시대 가장 뛰어난 기독교 변증가 C.S.루이스가 ‘피고석의 하나님’을 변호하기 위해 나섰다. ‘변호사’ 루이스는 ‘피고석의 하나님’ (홍성사)에서 날카로운 통찰과 번뜩이는 재치로 하나님을 피고석에 앉혀버린 현대인들에게 다가간다.
그는 책에서 신학적·윤리적 질문들로 구성된 48편의 에세이 중 ‘피고석의 하나님’에서 현대 불신자들에게 기독교 신앙을 전하려 할 때 부딪치는 어려움에 대해 “청중의 머릿속에서 죄의식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이라며 “이는 우리가 처한 새로운 상황”이라고 토로한다. 초기 기독교 설교자들은 듣는 이들이 유대인이건 이교도이건 모두 죄책감이 있다고 가정했고, 따라서 당시 메시지는 너무나 분명한 에반겔리움 (Evangelium), 즉 복음 (福音)이었다.
루이스는 하나님이 피고석에 앉아 계시고, 인간이 재판장이 된 ‘현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간은 상당히 이해심 많은 재판장입니다. 하나님이 전쟁, 가난, 질병을 허용하신 일에 대해 조리에 맞는 항변을 내놓으시면 귀 기울일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재판은 하나님의 무죄 방면으로 끝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인간이 판사석에 앉아 있고 하나님은 피고석에 계시다는 겁니다.” 아이러니한 상황에 대한 위트 넘치는 반격이다.
현대인이 성경을 믿지 않는 주요 이유 중 하나가 ‘기적’임에 대해서는 뭐라고 할까. “우리의 선입견은 기적이 정말 일어난다 해도 기적을 감지하지 못하게 막을 수 있고, 반대로 일어나지도 않은 기적을 상상하도록 이끌 수도 있습니다. 우리 선조들이 자연법칙을 몰랐기 때문에 기적을 믿은 게 아니라, 초자연현상을 당연하게 받아들였고 기적을 보고 싶어 안달했기 때문에 실제 기적이 아니었던 사건들을 기적적으로 읽어낸 것입니다.”
그리곤 기적이라는 단어를 멋지게 정리한다. “사실 기적이란 전 세계에 너무나 큰 글씨로 적혀 있어 일부 사람들은 보지 못하는 이야기를 작은 글씨로 다시 들려주는 일입니다.” 사람들은 모든 자연의 운행법칙의 이유를 알 수도 없으면서, 마치 거기서 벗어나면 자기모순이라고 착각한다.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를 알 수 없다면, 그와 달리 되어선 안될 이유도 알 수 없습니다.” 사실, 보기에 따라서는 세상 모든 것이 ‘기적’일 수 있지 않은가 말이다.
‘변호사’보다는 ‘과학자’가 불신자들에게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해석도 내놓았다. “우리는 사람들이 기독교적 관점에 30분 정도 귀를 기울이게 할 수 있지만 강연장을 나서는 순간, 우리의 글을 내려놓는 순간 그들은 그 반대 입장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세계로 곧장 되돌아갑니다. 그런 상황이 계속되는 한 광범위한 성공은 애초부터 불가능합니다. 기독교를 소개하는 소책자들이 더 필요한 게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이 기독교적 전제로 다른 학과들을 다룬 소책자들이 더 필요합니다.”
우리 신앙이 힌두교에 대한 서적 때문에 흔들릴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지질학·식물학·정치학·천문학 입문서를 읽을 때마다 그 책들이 힌두교 사상을 함축하고 있다면 흔들릴 수 있다. 같은 차원에서 현대인을 유물론자로 만드는 것은 유물론을 직접 변호하는 책들이 아니라, 다른 모든 책들 안에 깔린 유물론적 가정이다. 마찬가지로 유물론자들이 기독교에 대한 책들 때문에 정말 고민하지는 않지만, 어떤 과학 분야에 대한 저렴한 대중적 개론서를 원할 때마다 시장에 나온 최고의 책이 어김없이 그리스도인의 작품이라면 고민할 것이다.
“이 나라의 재회심으로 가는 첫번째 단계는 그리스도인들이 저마다 잘 아는 주제에 대해 <펭귄문고>나 <사상가 총서>를 압도할 만한 총서를 내는 것입니다. 그 총서의 기독교적 전제는 드러나지 않게 숨겨져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물론 그 과학은 완전히 정직해야 합니다. 변증을 위한 왜곡된 과학은 죄악이자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리고 변증가라면, 앞의 ‘기적’에서 언급했듯 맨 처음부터 초자연주의를 지지하는 주장을 솔직하게 펼쳐야 한다. “기독교에 물을 타려 하지 마십시오. 초자연적인 요소를 빼버려도 기독교가 살아남을 수 있는 척 가장할 수 없습니다. 제가 아는 한 기독교는 기적적인 요소와 분리할 수 없는 유일한 종교입니다.”
불신자들에게 지속적으로 ‘지적인 공략’을 해 온 루이스는, 그렇다고 ‘감정적인 공략’을 과소평가한 것 아니라고 강조한다. 단지 ‘그 측면’을 논할 만한 은사를 받지 못한 터라 조언할 수 없을 뿐이다. “그러나 그런 은사가 있는 사람이라면 ‘예수님게 나오십시오’ 식의 직접적인 복음전도가 100년 전 못지 않게 오늘날에도 강력한 호소력을 발휘할 수 있음을 힘주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신앙 영화를 먼저 상영한 후 찬송가 반주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그런 직접적인 초청이 이뤄졌을 때 아주 놀라운 결과가 나타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선교팀은 논증을 펼치는 사람과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짝이 되는 경우다. “논증을 맡은 사람이 먼저 나서서 청중의 지적 편견을 허물어뜨립니다. 그리고 본래 전도자가 복음을 선포하기 시작합니다. 저는 이러한 접근법이 커다란 성공을 거두는 것을 보았습니다.” ‘지성과 영성의 만남’을 말하는 듯 하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