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학문의 진보
프란시스 베이컨 / 아카넷 / 2002.2.28
– 지식의 진보가 사회의 완성을 주도한다는 베이컨 사상의 핵심을 담고 있는 근대철학의 고전
서양근대가 축적한 과학적 지식의 본성과 진보라는 개념을 심도있게 살펴볼 기회를 제공한다.
‘학문의 진보’ (Of the Proficience and Advancement of Learning, Divine and Human)는 ‘영어로 쓰여진 최초의 철학서’라 일컬어지는, 베이컨이 1605년에 출판한 저서이다. 제임스 1세에게 바치는 형식을 취하였고 학식이 높은 국왕 아래에서 행복한 치세가 가능하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베이컨은 신의 존재를 부인하지 않았고 숙달된 지식인 학문은 신의 성질과 섭리 속에 인간에게 계시된다고 하였다. 때문에 그는 자연의 최고 법칙, 즉 신(神)이 하는 업(業)에 대해서는 인간의 탐구가 거기까지 도달할 수 있는가 여부는 알 수가 없으나 모든 변화를 통하여 틀림없이 인식되는 ‘자연의 법칙’을 찾아낼 것을 염원했다.
전 2권으로 제1권에서는 학문과 지식의 훌륭함과 그것을 증진시키고 보급하는 공적이 기술되어 있고, 제2권에서는 학문의 진보를 위하여 고찰되고 시도되는 각 행위와 사업에는 어떠한 것이 있는가, 또 그 각 행위 가운데서 가려낼 수 있는 결함이나 불비점에는 어떠한 것이 있는가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러기 위하여 그는 제1권에서 신학자·정치가 또는 학자 자신이 학문의 진보를 방해하고 있는 불건강한 상태를 먼저 지적하였다. 그리고 제2권에서는 학문을 부문별 (역사·시·철학·신의 계시에 의한 학문)로 정리하여 발전과 결함을 밝혀내고, 인간의 재산목록으로서 인간이 현재 소유하고 있는 (자연 또는 기술의 작품·성과) 모든 발견을 말하고 그것으로부터 어떤 것이 아직도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는가, 혹은 발견해 내지 못하고 있는가가 명백해진다고 말하였다. 그리고 직접 현재에 도움이 되는 실험을 중하게 여길 뿐만 아니라, 다른 실험의 발견에 가장 보편적으로 중요한 실험과 원인의 발견에 가장 많은 도움을 주는 실험을 다른 무엇보다도 중시하라고 하였다.
○ 목차
신적.인간적 학문의 번영과 진보에 관한 프란시스 베이컨의 제1권 …1
신적.인간적 학문의 번영과 진보에 관한 프란시스 베이컨의 제2권 …137
해제 : 왜 다시 프란시스 베이컨인가? …497
○ 저자소개 : 프랜시스 베이컨
영국의 정치가이자 철학자로서, 데카르트와 함께 근대철학의 시조이자 영국 고전경험론의 창시자다.
엘리자베스 여왕 치세에 국새상서이던 니콜라스 베이컨 경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전통이 강했던 케임브리지 대학교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공부한 후, 스물세 살의 나이에 하원의원이 되었다.
이 해에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바치는 진언서’를 집필하기도 했으나, 여왕의 신임을 얻지는 못했다.
1603년 제임스 1세가 즉위한 후 급속히 권좌에 올라 1618년에는 대법관이 되었고, 1621년에는 세인트 올번스 자작 칭호를 얻었다.
그러나 바로 그 해 왕실과 의회의 대립이 격화되면서 왕실의 특권을 옹호했던 베이컨은 의회의 공격목표가 되었고, 마침내 소송인들로부터 뇌물을 받은 죄로 기소되어 유죄판결을 받고 영원히 공직을 떠나게 된다.
베이컨은 정치적으로는 보수적인 인물이었지만, 그의 과학정신은 당대의 그 어느 누구보다 앞서 있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를 그저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관찰하고 실험하고 연구하여 인간이 지배권을 획득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17세기부터를 근대라고 부르기로 한다면 베이컨은 근대의 문을 연 사람이고, 근대정신의 특징 가운데 하나를 과학적 접근방법이라고 한다면 베이컨의 귀납적 관찰방법은 근대 과학정신의 초석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주요 저서로는 『수필집』, 『학문의 진보』, 『신아틀란티스』, 『신기관』 등이 있다.
– 역자: 이종흡
경남대학교 역사학과 교수. 고려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서구 근대의 형성 과정을 지성사·과학사의 관점에서 조명하는 작업을 지속해왔다.
지은 책으로 『마술 과학 인문학』이 있고, 옮긴 책으로 『종교와 마술 그리고 마술의 쇠퇴 1~3』, 『학문의 진보』 등이 있다.
○ 출판사 서평
<근대성의 기원>이 뜨거운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는 현대 담론 상황에서, 한 번도 빠진 적이 없는 인물을 꼽으라면 바로 프란시스 베이컨이다. 이유는 자명하다. <근대성의 기원>에 대한 논의에서 가장 중요한 테마가 바로 <지식의 문제>이며, <아는 것이 힘>이라는 베이컨의 명제보다 근대 지식의 본성을 잘 드러내주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인류가 세계에 대한 견실한 지식을 축적하면 축적할수록 세계에 대한 통제력도 그만큼 늘려갈 수 있다는 생각은 서구의 근대를 관통해 온 진보관의 핵심이며, 이러한 서구의 진보관을 정초한 장본인이 베이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양 근대 지성사에서 이른바 이상사회를 실현해 줄 것으로 확신했던 기술문명이 <고삐풀린 망아지>, <현대판 바벨탑의 신화>라는 이름으로 신랄하게 비판받으면서, <근대의 시조> 베이컨 역시 근대 과학 문명의 부정적 결과를 책임져야 할 <선조>로 부각된다. 그러나 베이컨의 사상을 이와 같이 간단하게 평가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사상적 단초들이 있으며, 그 중심에 학문의 진보가 서 있다. 철학자, 정치가, 과학·교육 방면의 개혁가로서 베이컨이 제안한 <근대적 프로그램>의 특징들을 다각도로 검토할 수 있는 책이 바로 이 책이며, 여전히 우리에게 유효한 <근대적 정신의 이상>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고 있다. 베이컨은 <미래>를 일구는 자신의 프로그램을 <위대한 부흥>으로 명명하였고, 6부작 계획으로 자신의 청사진을 펼쳐보였다. 첫째는 과학에 대한 새로운 분류체계를 정립하는 것이고, 둘째는 새로운 논리학, 즉 자연의 해석을 위한 새로운 지침을 마련하는 것이고, 셋째는 철학의 기초를 위한 자연사와 실험의 역사를 축적하는 것이고, 넷째는 지성의 사닥다리를 구축하는 것이고, 다섯째는 새로운 철학을 위한 예비작업이고, 여섯째는 새로운 철학을 정립하는 것이었다. 이 여섯 단계에서 뒤의 세 작업은 실제로 시도된 적이 없었고, 둘째에 해당하는 신기관과 셋째의 <자연사 및 실험의 역사>를 다룬 여러 단편은 모두 미완성된 채로 남았다. 첫째 작업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학문의 진보로 , 이 책은 베이컨이 남긴 유일한 완성작이라는 점 외에도, <위대한 부흥> 전체의 밑그림을 가장 충실하게 보여주는 저작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가치가 있다.
<위대한 부흥>은 베이컨이 일생 동안 추구하고자 했던 사상적 모토였다. 본성이 타락하여 에덴의 낙원에서 추방된 인간, 그 황폐해진 땅에서 <이마의 땀>을 흘려야만 근근이 살아갈 수 있게 된 인간, 아무리 땀흘려 노력해도 원죄로 일그러진 본성과 거친 자연을 벗어날 수 없는 인간, 그래서 <운명의 수레바퀴>가 이끄는 대로 끌려갈 수밖에 없는 인간. 이 같은 원초적 굴레로부터 벗어나려는 원대한 기획이 바로 <위대한 부흥>이다. 물론, 인간본성과 자연을 아무 노력 없이 에덴의 상태로 되돌리겠다는 생각은, 헛된 꿈일 뿐만 아니라 원죄를 부인하는 불경이다. <이마의 땀>은 가장 근원적인 인간조건으로 남아 있어야만 한다. 그러나 이제 인류가 땀 흘려야 할 곳은 시지포스의 산이 아니라, 헤라클레스의 두 기둥(인간 능력의 한계)을 벗어나 끝없이 펼쳐진 망망대해이다. <지식>은 인류를 그 유한성으로부터 끌어내어 망망대해로 향하게 해줄 <구원의 범선>이다. 인류는 인간본성과 자연에 대한 지식에 힘입어 세계, 즉 사회와 자연에 대한 통제력을 높여갈 수 있다. 인간은 지식 덕택에 인간적 한계를 끊임없이 극복한다. 인간은 지식 덕택에 인간임을 초월한다. 지식과 통제력의 동시적 확장은 잃어버린 낙원을 되찾을 때까지 계속된다. 지식의 진보가 자연의 완성과 사회의 완성을 주도한다는 베이컨의 생각은 서구세계의 진보 개념에서 가장 중요한 축을 형성해 왔다. 이 책을 면밀하게 살펴보면, 고전번역의 귀감으로 평가받을 만한 역자의 번역에 대한 열정을 확인할 수 있다. 일례로 번역의 엄밀성을 위해 사소한 어구들까지도 17세기 영어의 문법과 문맥을 신중하게 고려하여 옮겨놓았으며, 번역 문체는 베이컨의 생각을 쉽고 명쾌하게 드러내주는 동시에, 베이컨의 고문체 (古文體)와 만연체를 적절히 되살려 약 4세기 전 서구 세계의 고풍스러움과 낯설음도 함께 느낄 수 있게 해주고 있다. 특히 본문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개념, 인물, 사건, 서적 등이 1,000개 남짓한 역주를 통해 풀이되면서 베이컨 자신의 생각은 물론 동시대의 지성사와 과학사를 이해하는 데 커다란 도움을 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역자해제 [왜 다시 프란시스 베이컨인가]는 베이컨의 사상적 면모를 총체적으로 조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 책을 통해 서양 근대 지성사의 핵심이념들을 새롭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