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항우와 유방 1 ~ 3
시바 료타로 / 달궁 / 2002.10
동양 역사소설가 시바료타로가 복원해 낸 ‘항우와 유방’. 중국 역사상 가장 극명하게 대비된다는 두 영웅의 치열한 쟁탈전을 통해, 대업을 위해 비굴함도 마다하지 않았던 철저한 현실주의자 ‘유방’과, 기개와 힘을 갖춘 대장부의 전형 ‘항우’의 두 면면을 살필 수 있다.

[1]
BC 3세기 말, 진시황제 (秦始皇帝)는 중국사상 최초의 통일제국을 건설하며 전국시대에 종지부를 찍는다. 그러나 그가 세상을 떠나자 진승 (陳勝)ㆍ오광 (吳廣)의 반란이 일어나고 천하는 다시 혼란의 시대로 접어든다. 초의 명장, 항연의 자손이자, 역발산기개세 (力拔山氣蓋世)의 항우와 패 (沛)의 건달 출신 유방 (劉邦)이 천하를 놓고 초한쟁패 (楚漢爭覇)를 시작한다.
[2]
숙부 항량 (項梁)의 전사 후, 반란군의 전권을 장악한 항우는 거록 (鉅鹿)의 전투에서 장한 (章邯) 장군이 이끄는 진의 주력군을 격파한다. 한편 별동대를 이끄는 유방은 진의 중심지 관중 (關中)으로 들어가 함곡관 (函谷關)을 막아버린다. 거기에 격노한 항우는 일거에 관중으로 치고들어가 유방을 홍문 (鴻門)에서 죽이려 한다.
[3]
천하를 두고 벌이는 초한 (楚漢)의 싸움은 승부가 나지 않는다. 압도적인 힘을 자랑하는 항우군에 대해 곡창이 있는 산에 진지를 구축하고 대치하는 유방군. 이윽고 유방군은 화친조약을 맺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항우군을 추격한다. 결국 항우는 해하 (垓下)에서 유방에게 포위된다. 어느 날 밤, 포위군 속에서 초나라 노래 소리가 울려퍼지자, 항우는 초나라 사람이 모두 한 (漢)에 항복했다고 탄식하며 하늘이 자신을 버렸음을 깨닫는다.
○ 목차
[1]
시황제, 새벽별로 지다
항량, 강남에서 몸을 일으키다
패현의 건달, 유방
유방의 거병
진승,오광의 난
항량군, 장강을 건너 중원으로
영웅의 허무한 죽음
항우, 팽성에서 전군을 장악하다
거록에서의 첫 승리
장한의 항복과 신안 사건

[2]
유방, 장자방을 얻다
관중을 점령한 유방
홍문의 연회와 유방의 구사일생
명장 한신의 결단
초한쟁패의 서박
도망치는 유방
구강왕 경포의 도박
항우, 진평의 독으로 범증을 잃다
가짜 유방, 기신
[3]
한신, 배수의 진으로 조를 격파하다
역생의 변설과 한신의 무용
한신, 제왕이 되다
항우와 우희
변사 후공과 괴통
항우와 유방, 광무산에서 천하를 나누다
영웅의 덕은 허공과 같은 것
오강의 최후
석 자의 칼로 천하를 얻다
저자 후기,역자 후기
항우 연보
유방 연보

○ 저자소개 : 시바 료타로 (Ryotaro Shiba, しば りょうたろう, 司馬 遼太郞)
오사카 외국어대학 몽골어과를 졸업했다. 학도병으로 전차부대에 들어가 도치기 현 사노 (佐野)에서 종전을 맞았다. 신일본신문사 (新日本新聞社)를 거쳐 산케이 신문사 (産經新聞社)에서 근무했다. 신문사 재직 중에 데라우치 오요시 (寺內大吉) 등과 동인지 ‘근대설화’를 창간했으며, ‘올빼미의 성’ (1959)으로 나오키 상을 수상했다. ‘풍신의 문’ (1961~1962) 등 전기성 (傳奇性)이 강한 작품을 많이 썼지만, 그 후 ‘료마가 간다’ (1962~1966), ‘성채 (‘풍운의 성채’로 번역되었음)’ (1969~1971) 등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여 현대적인 해석을 가한 역사소설의 새 분야를 개척했다. 그 외에 메이지 유신 (明治維新)기 정치가인 에토 신페이 (江藤新平)의 비극을 다룬 ‘세월’ (1968~1969), 오무라 마스지로 (大村益次郞)의 생애를 그린 ‘화신’ (1969~1971), 아키야마 사네유키 (秋山眞之)와 마사오카 시키 (正岡子規) 등의 인간 군상을 통해 메이지 시대 일본의 여명을 그린 ‘언덕 위의 구름’ (1968~1973) 등의 역작이 있다. 1976년 일본 예술원상을 수상했고, 예술원 회원을 지냈다.
살아생전 60종의 소설과 50종의 평론, 에세이, 대담집 등을 발간했으며, 그 중 베스트셀러가 12종, 1백만 부 이상 판매된 작품만 10종이 넘는 일본의 정신적 지주, 시바 료타로. 국가, 종교, 환경 등 전 분야에 걸친 깊이 있는 학문적 견해들 뿐 아니라, 역사소설을 통해 2차 세계대전 후 이른바 일본의 단카이 (團塊) 세대 (60년대 학생 운동과 70년대 석유 파동으로 대표되는 혼란기를 살았으며, 7,80년대 경제 고도성장의 주역이 된 세대)들에게 일본이 나아갈 길과 일본인의 원형을 제시해준 인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역사 소설를 집필할 때마다 ‘트럭 하나 분의 자료를 가지고 글을 쓴다’고 할 정도로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그의 소설들은, 다이카 개신에서부터 근대의 메이지 유신에 이르는 일본의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이 녹아있어, 박진감 넘치는 일본사의 한 장면들을 들여다보게 한다. 역사의 큰 흐름을 주도한 인물들에 대한 뛰어난 통찰력과 묘사도 시바의 작품이 사랑받는 중요한 요인. 그의 업적을 기려 1998년에 문예, 학예, 저널리즘 분야에서 창조적 활동으로 주목을 끈 사람에게 수여되는 ‘시바 료타로 상’이 제정되었다. 역대 수상자로는 일본의 석학 ‘다치바나 다카시’,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 애니메이션 계의 대부 ‘미야자키 하야오’ 등이 있다.
– 표지 및 차례 한자 : 강행원 (姜幸遠)
1947년 전남 무안에서 태어나 동국대학교 대학원 미술과를 졸업했다. 1987~1993 국립현대미술관 초대출품되었고, 1990, 1996년도 대한 민국 미술대전 심사위원을 역임했다. 한국불교미술인연합회 회장, 미술자정 NGO 상임 공동 대표로 있으며 단국대학교 예술대학 교수로 출강하고 있다. 개인전 9회, 국내외 그룹 및 초대전 약 200여 회를 가졌다.
– 역자 : 양억관 (梁億寬)
1956년 울산에서 태어나 경희대 국문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역서로, 『나의 스승 공자』,『타나토스』,『야망?패자』,『냉정과 열정 사이』,『공생충』,『언더그라운드』,『교코』,『달콤한 악마가 내 안으로 들어왔다』,『코인로커 베이비스』,『달빛의 강』 등이 있다.

○ 책 속으로
[1]
항우는 잠시 멍하니 있었다. 항우도 송의의 입에서 나오는 충성과 애국의 현란한 말에 미혹되어 그에 대한 불만을 공공연히 드러내지 못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사적인 목적 때문이란 말이지.”
항우는 격정을 누르기 위해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가 천천히 뱉어내면서 “송의는 오로지 개인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고 있다. 지금까지 송의가 한 말은 모두 그 개인을 위한 것이었다.”고 중얼거렸다. 항우는 얼굴을 들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벽에 천이 한 장 걸려 있었다. 송의의 본영에서 온 군법서였다. 앞서 항우가 송의의 본영으로 달려가 화를 낸 그 다음날 전군에게 배부된 것으로 보건대, 송의가 항우를 염두에 두고 쓴 것임에 틀림이 없었다.
호랑이처럼 사납기만 하고 염소처럼 비뚤어져 있고 늑대처럼 탐욕스럽기만 하고 무턱대고 힘만 내세우는 그런 자들은 쓸모가 없으니 모두 목을 베어버릴 것이다. — p.284~285
“일흔 두개야.”
그 근거는 어릴 적부터 마을 사람들이 헤아려서 확인된 숫자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왜 72개의 점이 있는지 그 이유를 아느냐고 유방은 힘주어 말했다.
“적룡의 자식이기 때문이지.”
그리고 나서 유방은 천천히 옷을 입었다. 이 시대 전에 오랜 세월 전국이라는 혼란기가 있었다. 그 당시, 우주에서 인간사에 이르는 모든 것을 원리적으로 설명하는데 음양설과, 모든 물질은 ‘수화목금토’라는 다섯 가지 요소로 환원된다는 오행설이 유행하였는데, 이윽고 두 설은 하나로 통합되었다. 이 당시의 철학 또는 과학이론인 셈인데, 이 음양오행설이 역법과 결합하여 다양한 현상을 수량적으로 설명하였다. 당시의 1년은 360일이었다. 그 숫자를 오행의 5로 나누면 72, 즉 유방의 몸에 찍힌 검은 점의 수와 일치한다. 그러므로 자기는 특별한 인간이라고 유방은 주장했다. 억지 냄새가 난다. — p.82~83
[2]
그는 유방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선생” 하고 유방은 이미 진평을 신하가 아닌 타인으로 대하고 있었다.
“그때는 목동이 말을 바꾸어 타듯이 주인을 바꾸어 왔어. 마음이 너무 복잡하지 않은가?”하고 완곡하게 따졌다.
“진평의 마음은 오로지 하나뿐입니다.”
“그게 어떤 마음이냐?”
“소인의 지혜를 마음껏 발휘하고 싶은 것, 그 하나뿐입니다.”
위왕 구는 자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사로서 주인을 모시는 목적을 잃은 이상 위왕을 버릴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항왕에게 갔다고 진평은 말했다.
“항왕은 어떠했느냐?”
“항왕이란 분은 사람을 믿지 않나이다. 항왕이 신임하고 총애하는자는 항씨 일족과 그 처와 형제뿐입니다.”
분명히 맞는 말이었다. 항우는 초나라 사람답게 혈연을 과할 정도로 중시 하였다. 항우가 천하에 이름을 날리게 되자, 구 초나라 전역에서 항씨들이 개미가 가지에서 떨어진 자두에 달라붙듯이 항우 아래로 모여들어, 지혜가 있고 없고를 떠나 무조건 좋은 자리를 차지했다.— p.266~267
범증은 화가 치밀었다. 유방에 대해서가 아니었다. 그는 이미 항우가 생각을 바꾸어버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유방이 만일 위세를 부리면서 자존심을 살리고 나왔더라면, 항우의 검은 춤을 추듯이 유방의 목을 베었을 것이다. 항우는 저항하는 상대나 뻣뻣하게 고개를 들고 있는 상대에 대해서는 불을 뿜을 듯이 용맹한 기세를 보인다. 그러나 유방은 들어서자마자 바닥에 넙죽 엎드려 목숨을 구걸했다. 그걸 보고 항우는 리듬을 잃고 만 것이다. ‘교활한 유방놈이 항우의 그런 기질을 이용한 게야. 멋지게 분위기를 바꿔버렸어.’
범증은 이미 그런 사태를 예상하고 있었다. 제2단계로서, 주연을 베푸는 가운데 유방을 죽이라고 항우에게 말해두었다. 지금이 기회다, 하는 순간이 오면 자신의 허리에 찬 결을 울리면, 그것을 신호로 즉시 검사들에게 명을 내리라고 말해두었다. 이윽고 범증은 기회를 잡고 몇번 이나 결을 울렸다.그러나 항우는 커다란 입속으로 고기만 쑤셔넣으면서 그 소리를 무시해버렸다. 그날의 요리는 항우가 가장 좋아하는 돼지목살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항우가 고기를 씹느라 결이 울리는 소리를 못 들은것은 아니다. — p.104
[3]
하늘의 뜻은 그렇게 유방에게 승리와 영광을 안겨주었다. 역발산기개세의 천하 영웅이었고 초나라 백성들의 전폭적인 지지와 지원을 받았던 항우가 전권을 장악하고 패왕으로 우뚝 섰을때, 항우가 황제의 위에 올라 세상을 다스리는 시대가 열렸음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항우는 비운으로 끝을 맺었고 그 자리는 패의 보잘것 없는 건달 출신 유바의 것이 되었다. 온 천하 만물의 생사여 탈권을 한 손에 쥐고, 말 한 마디로 모든 것을 움직이고 이룰 수 있는 천하 주인의 자리란, 기실 사람이 만들지 못하고 하늘이 내는 것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하겠다. — p.295~296
‘아마도 전면 결전을 택할 것이다.’ 한신으로서는 그런 결전이 가장 바람직하다. 결전을 선택하게 하기 위해서는 용저를 자만하게 해야 한다.즉 한신을 깔보게 만들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 한신은 대금을 투자하여 많은 첩자를 유수 안쪽으로 내보냈다.
“초나라 군대는 백전백승의 강군이다. 그에 비해 한군은 조 · 연 · 대의 병사와 제나라의 항복병이 마구 뒤섞인 잡군이다.”
그런말을 퍼뜨리게 했다. 그것은 궤변이 아니었다. 만인이 인정하는 사실이었다.
“한신은 원래 백면서생에 지나지 않는다. 회음 성하에서 장검을 질질 끌면서 어슬렁거리던 겁쟁이로 유명했고, 푸줏간 남자의 가랑이 사이를 기어갈 정도로 비겁한 놈이다.”
그것도 사실이었다. 사실만큼 선전하기 좋은 건 없다. — p.98

○ 출판사 서평
•역사상 가장 극명한 성격의 두 인물, 항우와 유방
세계 역사상 가장 극명하게 대비되고, 가장 첨예하게 경쟁했던 두 영웅을 들라면 당연 ‘항우와 유방’일 것이다. 기개와 힘을 갖춘 대장부의 전형인 항우와 목적한 바 대업을 위해서 비굴함도 마다하지 않았던 철저한 현실주의자 유방. 이 두 영웅이 펼치는 치열한 쟁탈전을 읽노라면 영웅의 전형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철저한 역사적 고증으로 태어난 최초의 초한지
일본의 정신적 스승으로 불리는 이 책의 저자 시바료타로는 서재에 한 트럭분의 자료를 쌓아 놓고 집필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철저한 준비를 한다. ‘항우와 유방’을 집필할 때에는 사마천의 ‘사기’를 비롯한 여러 권의 책을 읽고도 모자라, 풍부한 사료를 찾기 위해 직접 중국의 여러 곳을 둘러보고, 낙양의 곡물 저장창고에 직접 들어가는 등 눈으로 보고, 듣는 작업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래서 ‘소설 초한지’를 썼던 국내 유수의 작가들 대부분이 참고 및 인용 텍스트로 이 책을 활용했다. 중국 초기 시대인 주, 은 시대의 실상과 풍습까지 세밀하게 묘사한 역사 고전이다.
•탁월한 인물 묘사와 깔끔한 문장으로 재창조된 “항우와 유방”
이 책은 중국 역사의 사실성과 객관성, 작품의 완결성을 위해 2년이라는 기획기간과 1억여 원이 넘는 제작비를 들여 제작됐다. 역자인 양억관씨가 인명, 지명 등의 정확한 표현을 위해 곳곳의 사료와 역사학자들의 고증을 참고로 하였고 등장인물의 사실적 묘사를 위해 성인제씨가 총 8컷의 인물을 모두 붓으로 그렸다. 본문 중 중요 사건에는 총 20개의 일러스트를 넣었고 책 표지와 차례 바탕 한자는 한국불교미술인연합회 회장이자 미술자정 NGO 상임 공동 대표인 允山 강행원 선생이 썼다. 또한 중국 역사의 사실적인 설명을 위해 여러 자료를 참고로 하여 통일 진나라 시대, 진시황 순행도, 항우와 유방의 격전도, 초한 대치도 (BC 206~BC 202년), 통일 한나라 시대 지도를 세세한 수작업을 거쳐 그려 넣었으며, 부록으로 항우와 유방의 약사를 연대 순으로 담았다.
•삼국지를 뛰어넘는 동양 최고의 역사소설 ‘항우와 유방’
저자는 사마천의 혼이 되어 유방과 항우가 뛰놀던 시절의 풍경과 사람들의 모습을 재구성하여 소설화하고 있다. 시바료타로의 소설들을 읽어보면, 때로 직관에 의한 비약이 느껴질 때가 있으면서도 풍경과 인물의 모습이 가슴에 선명히 와 닿고, 그 행위들을 쉽게 납득하게 되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한편의 글을 쓰기까지 그가 연구하고 사색하는 과정을 생각하면 무척 치열한 혼의 소유자임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다.(역자의 말 중에서)

○ 참고사항
•항우 (項羽, BC 232~BC 202)
의리와 순정으로 똘똘 뭉친 비운의 영웅. 이름은 적 (籍). 임치군 (臨淮郡) 하상현 (下相縣)에서 초나라 최후의 명장이었던 항연 (項燕)의 손자로 태어났다. 항연은 BC 209년 진승 (陳勝) • 오광 (吳廣)이 반란을 일으키면서 깃발에 자신들의 이름 대신 진나라 태자와 함께 그의 이름을 사칭할 정도로 유명한 장수였다. 항우는 키가 8척이나 되었고, 단순히 힘만 센 것이 아니라 민첩하고 직관력이 뛰어나 어릴 적부터 영웅의 기질을 보였다. 역발산기개세 (力拔山氣蓋世: 산을 뽑을 듯한 힘과 세상을 덮는 기세)라는 말은 바로 그를 두고 하는 말이다. 진승과 오광의 난 이후에 그는 숙부 항량 (項梁)과 함께 거병하였다.
그는 진나라를 토벌하던 중 항량이 죽자 진왕 자영을 죽이고 함양 (咸陽)을 함락하여 진나라를 멸망시켰다. 그리고 팽성 (彭城)으로 도읍을 정한 뒤 유방 (劉邦)을 포함한 18명을 왕으로 봉하고 스스로를 서초패왕 (西楚覇王)이라 칭하였다. 그러자 유방을 비롯한 불만세력들이 규합하여 항우에게 도전한다. 그 후 약 5년간 한초쟁패 (漢楚爭覇)가 펼쳐진다. 영양성에서 대치 중에 유방의 부하인 진평의 계략에 속아 군사인 범증을 잃고 마침내 BC 203년 유방과 천하를 양분하는 데 합의하고 만다. 그러나 약속을 파기한 유방에 의해 기습공격을 받고, 후방에는 한신, 팽월군에 의해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된다. 해하 (垓下)에서 포위되어 사면초가 (四面楚歌)의 위기를 맞은 그는 죽음을 예견하고 애첩 우미인 (虞美人)과 주연을 베푼 다음 눈물을 흘리며 그녀와 마지막 작별을 한다. 한군 (漢軍)에 의해 오강 (烏江)까지 쫓기자, 피신시켜 주겠다는 뱃사공의 말을 듣지 않고 끝까지 저항하다가 스스로 자결했다.
•유방 (劉邦, BC 247~BC 195)
대업을 위해서라면 비굴도 마다 않는 현실주의자. 중국 한 (漢)나라의 초대 황제 (재위 BC 202~BC 195). 유씨 집안은 평범한 농가였다. 게다가 ‘유 (劉)’라는 성만 있을 뿐, 원래 그 집안에는 이름다운 이름이 없었다. 그의 이름 방 (邦) 또한 원래 형 또는 언니를 부를 때 사용하는 방언의 일종이다. 따라서 유방이라는 이름은 ‘유 형님’정도의 뜻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결국 그 이름이 중국사에서 가장 유명한 이름이 되었다. 유방은 서민 출신이었으나 성격이 대범하여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랐다. 패 (沛)현 중양리에서 출생한 그는 농가에서 태어났으나, 가업을 돌보지 않고 유협 (遊俠)의 무리와 교류하였다. 사람의 의견을 잘 들어주는 것이 그의 장점이었다. 그의 놀라운 포용력은 때로 항우의 능력을 훨씬 넘어설 때도 있었다. 그것으로 인해 장량, 소하, 한신, 번쾌 등 수많은 영웅들이 그를 따랐고 통일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는 패현에서 하급관리로 일할 때 진승, 오광의 난이 일자 부로들의 추대를 받아 봉기하였다. 항우의 군대가 동쪽에서 진군 (秦軍)의 주력부대와 결전을 벌이는 사이, 그는 남쪽으로 관중 (關中)을 향해 진격을 계속하여 항우보다 앞서 수도 함양 (咸陽)을 함락시키고, 진왕 (秦王) 자영으로부터 항복을 받았다. 또 진나라의 가혹한 법률을 폐지하고 약법삼장 (略法三章)으로 인심을 수습하였다. 약 1개월 늦게 함양에 도착한 항우가 그를 살해할 목적으로 홍문 (鴻門)에서 대연회를 베풀었으나 (鴻門의 會), 장량 (張良)과 번쾌 (樊?)의 도움으로 무사히 빠져나온다. 진나라가 멸망하자 항우에 의해 한왕 (漢王)으로 봉해졌다. 그 뒤 5년여에 걸친 항우와의 쟁패전에서 백전백패 (百戰百敗)하였으나 소하 (蕭何), 조참 (曹參), 장량 (張良), 한신 (韓信) 등의 도움으로 살아남았다. 뒤이은 해하 (垓下)의 결전에서 항우를 대파하고 천하통일의 대업을 실현시켰다. BC 202년 유방은 황제에 오르고 수도를 장안 (長安)으로 정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