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현대미술의 상실
톰 울프 / 아트북스 / 2003.4.10
화가들은 현대미술이 단지 형태와 색채에만 정력적으로 매진하여, 눈앞에 있는 오브제를 감상하게 이끈다고 말해왔지만, 그리고 그 말에 우리 모두 속아왔지만 여기 단 한 사람 진리를 깨우친 이가 있다. 현대미술에서는 ‘아는 것이 보는 것이다!’라고 말한 최초의 사람, 톰 울프다.
신문을 보던 어느날 아침, 그는 다음과 같은 문장을 발견한다.
“미술작품의 지적 소통이 지니는 본성에 비추어볼 때 설득력 있는 이론의 결핍은 결정적인 요소–개별 작품들에 대한 우리의 체험을 작품들의 가치에 대한 이해와 결합시키는 수단–가 결핍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었다. 그토록 그림 감상이 알쏭달쏭했던 이유는. 톰 울프는 통렬한 풍자와 야유로 현대미술의 이론적 결핍을 지적한다. 단지 보는 것이 다는 아니다, 아는 것이 보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새로운 유파, 새로운 예술 운동에 대중이 쉽게 매료되는 이유로 그들이 뿜어내는 탈부르주아의 이미지를 꼽았다.
보헤미안 (책에서는 보헤미안을 의미하는 20세기 미국 속어, ‘보호 boho’를 쓰고 있다. 철자를 조금 바꾸면 보호는 ‘부랑자’를 뜻하는 호보 hobo가 된다) 같은 예술가들. 대중들은 그들의 일상에 끼고 싶어 안달이고, 화실을 구경하고 싶어 후원을 자처한다. 그러나 톰 울프가 보기에 대중은 또 속고 있다. 왜냐하면, 성공만 하면 이 보헤미안들은 곧 물감이 덕지덕지 묻은 작업복을 벗어던지고 비단 셔츠를 사입을 것이기 때문이다–대표적인 이가 피카소다.
톰 울프의 글은 적나라할지언정 과장은 아니다. 현대미술과 그 창작자들이 어떻게 우리를 속여왔는지, 그로서 스스로 잃은 것은 무엇인지를 에두르지 않고 말한다. 1975년에 초판이 발행되었다는데, 예술계에서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짐작이 간다 (호들갑스런 상찬, 더러는 분노. 안쓰럽게도, 톰 울프의 말을 전면 부정하지는 못 했겠지?).

- 1975년 미국현대미술 최전성기에 발표되어 미국 미술계에 커다란 파문을 던졌던 문제작
저자 톰 울프는 모더니즘 이론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미술은 더 이상 눈에 보이는 것에 얽매이지 않고, 색과 형태만을 표현하도록 진화한다’는 주장을 정면에서 공격한다. 그에 따르면 소수의 ‘문화적인’ 부르주아들이 다른 ‘속물’ 부르주아들과 달라 보이기 위한 욕구를 채워 주는 것이 아방가르드의 상징인 현대 추상 미술이며, 현대 미술가는 한발은 예술가 동네에, 한발은 후원가들의 동네에 각각 걸쳐 놓고 있는 고도의 처세가이다.
따라서 더이상 그림 자체는 중요하지 않고 무언가 의미있는 듯한, 그러나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미술이론이 전면에 부상했으며, 이 새로운 이론에 얼마나 잘 부합되는 그림을 그리느냐가 화가의 성공 여부를 결정짓게 되었다. 모더니즘 비평의 총아 그린버그나 로젠버그가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 것도 다 이에 따른 것. ‘태초에 말씀 (이론)이 있었다’ 가 현대 추상 미술계를 묘사하는 가장 적절한 문장이 된 셈이다.
25년이 지난 현재, 특히 매우 다양한 현대미술운동이 혼재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그의 주장의 맞고 그름을 논한다는 것은 크게 의미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은연중에 서양미술사의 절대진리처럼 여겨지는 모더니즘 미술사의 계보를 한번쯤 거꾸로 생각해 보는 것은 현대 미술을 보는 시각을 훌쩍 넓혀 줄 것임에 틀림없다. 여기에 더해 톰 울프의 문체와 위트는 풍자적인 비평서의 모범을 보여줄 만큼 빼어나기에 처음부터 끝까지 유쾌하게, 한달음에 읽어내려갈 수 있다.
○ 목차
프롤로그
아파치 댄스
대중은 언제나 불청객
입체파의 말을 탄 뉴욕
그린버그와 로젠버그 그리고 평면
스타인버그의 등장
현대미술의 종착지
에필로그
작품 목록

○ 저자소개 : 톰 울프
1931년 미국 버지니아주 리치먼드에서 태어나 예일 대학교에서 미국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56년 《스프링필트 유니온》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한 울프는, 1960년대에 《워싱턴 포스트》 라틴 아메리카 통신원으로 일하던 시절에 쿠바 관련 보도로 워싱턴 신문협회 외신기자상을 받았다. 이후 《헤럴드 트리뷴》 기자 시절에 《뉴욕 매거진》과 《에스콰이어》에 기고한 플랑부아 양식에 관한 소논문 형식의 기사 모음집을 계기로, 논픽션 부문의 선도적인 저자로 떠올랐다. 이후 저널리스트 특유의 현장감 넘치는 입담과 명쾌한 통찰력, 위트 넘치는 문체로 펴내는 논픽션마다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그중 1975년에 발표한 역작『현대미술의 상실』은 미술계에 대단한 논쟁을 불러일으키며 화제가 된 바 있다.
한편 소설을 쓰고 싶어 했던 그는 1984년 6월부터 1985년 8월까지 27회에 걸쳐 《롤링 스톤》에 미국 사회를 폭넓게 관찰한 소설을 연재하게 되었고, 2년 후인 1987년에 단행본 『허영의 불꽃』으로 출간했다. 그 외에 『한 남자의 모든 것』(1998), 『내 이름은 샬럿 시먼스』(2004), 『귀향』(2010) 등의 소설을 발표했으며, 2010년 현재 가족들과 함께 뉴욕에서 살고 있다.
– 역자: 박순철
1942년 인천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1967년부터 1975년까지 『동아일보』 기자를 지냈다. 이후 산업연구원 개도권 연구실장, 유엔 캄보디아 난민지원기구 (UNBRO) 특별사업조정관, 『시사저널』 편집국장, 『문화일보』 논설위원을 지냈다. 역서로 『현대미술의 상실』 『초현실주의』 『막스 에른스트』 『프란시스코 고야』, 저서로 『도덕이라는 이름의 자본』 『시간의 춤』 『생명의 틈새』 등이 있다.
○ 책 속으로
이 멍청이야. ‘보는 것이 곧 아는 것’이 아니고 ‘아는 것이 곧 보는 것 Believing is Seeing’이야! 왜냐하면 ‘현대미술은 완전히 문예적 성격을 띠게 되었으며, 그림이나 다른 작품은 오직 문의 (文意)를 예시하기 위해서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p.12 중에서)

○ 출판사 서평
현대미술은 ‘어렵다’거나 ‘이론으로 무장되어 있지 않으면 제대로 감상할 수가 없다’고 한다.
그것은 현대미술에 복무하는 작가들이 가슴이 아닌 머리로 작업하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사람들이 현대미술의 역사적인 맥락에 무지하기 때문이다.
『현대미술의 상실』은 이런 관람자들을 위한 유익한 길라잡이로 손색이 없다.
저널리스트 특유의 현장감 넘치는 입담과 사태의 핵심을 간파해내는 명쾌한 통찰력, 그리고 위트 넘치는 문체는 독서의 재미를 더해준다.
- 아는 것이 보는 것이다!
현대미술이 지닌 맹점을 누구보다 먼저 날카롭게 짚어낸, 톰 울프의 이 책은 1945년부터 75년까지 미국 현대미술의 동향을 다루고 있다. 지은이는 미국 사회의 예리한 관찰자이자 저널리스트로서 현장에서 체험한 현대미술의 흐름을 생중계하듯이 일목요연하게 들려준다.
지은이는 책머리에서 현대미술을 ‘보는 것이 곧 아는 것’이 아니라 ‘아는 것이 곧 보는 것’라는 관점으로 풀어간다.
이른바 모더니즘의 세례를 받은 현대미술은 인상파 이전의 미술처럼 그림 속에 이야기가 들어 있어서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 내용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현대미술은 눈으로 봐서는 알 수가 없다. 타 장르는 차치하고 회화만 하더라도 회화가 자기만의 고유성을 확보하기 위해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독자적인 길을 걷는다. 회화를 문학적인 요소(이야기)와 3차원의 환형을 불러일으키는 조각적 요소(입체감)의 결합으로 보고 이들 각 요소를 분리하여, 마침내 순순하게 회화적인 것(평면성)만을 추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캔버스는 가식적으로 감상 가능한 이미지가 표백된 완전한 평면으로 변하고 만다. 이는 한 시대의 담론을 생산하며 미술의 흐름을 좌우해온 미술평론가들의 ‘이론’을 화가들이 작품에서 그대로 실천한 결과였다. 이론이 곧 회화가 된 것이다. 이로써 미술 작품은, 뭔가를 알아야만 감상할 수 있는 이론의 시대가 열린다.

- 현대미술의 3대 지휘자 : 그린버그, 로젠버그, 스타인버그
지은이는 이렇게 히화가 변질되는 과정을 가까이서 지켜보면서 생생한 필치로 예리하게 추적한다. 여기에는 미국 현대미술이 태동하고 정착하기까지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지은이의 예리한 통찰과 시니컬한 입담으로 흥미롭게 녹아 있다. 미술의 중심이 유럽에서 미국으로 넘어오기까지의 과정, 이론에 대한 화가들의 과도한 집착, 당시 뉴욕 소호거리의 화가들의 생활상, 이론가들을 중심으로 한 화가들의 모임, 잭슨 폴록 같은 무명의 화가가 평론가들의 지원사격에 힘입어 성공하기까지의 과정 등등. 당시 이론을 주도한 이들은 이른바 ‘버그 삼인방’. 그들은 추상 표현주의를 탄생시킨 클레멘트 그린버그, 액션 페인팅에 무게를 실어준 헤롤드 로젠버그, 그리고 팝아트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해준 레오 스타인버그이다. 이들이 이론으로 미술계를 지휘하면 화가들은 그에 맞춰 일사불란하게 작품을 생산한 것이다.
- 이론에 의한, 이론을 위한, 이론의 시대
지은이는 그린버그나 로젠버그의 독특한 논증은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 공리 또는 선험적인 명제로 인식하여, ‘말씀이 그려진 회화’라 단언한다. 또한 레오 스타인버그의 등장으로, 추상 표현주의가 끝나고 팝아트가 대두해도 “미술이론”자체는 또 다시 멋지고, 귀하고, 아름다운, ‘미술의 승리를 거둔다. 그런 과정이 팝아트를 거쳐 개념미술로 접어들 때, 이론은 더욱 기고만장해진다. 그래서 지은이는 이 책의 말미에서 기발한 예언도 서슴지 않는다.
- 한국 모더니즈 미술 계열의 교과서
이는 다분히 냉소적인 진술이지만 당시의 상황을 이만큼 정확하게 지적한 예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런 말씀의 시대가 우리나라에서도 7, 80년대의 모더니즘 계열 회화를 점화시켰고, 모더니즘 회화 관련 이론서가 흔치 않았던 시대에 이 책은 현대미술에 투신한 화가들의 교과서 역할을 한다. 지금 중견화가들의 이론적인 토대에는 톰 울프라는 이름과 이 책은 진한 흔적으로 남기고 있다. 80년대 이후 우리 미술의 상황이 이전과는 현저히 달라졌다고는 하나 미술학도들이 현대미술의 실체를 일목요연하게 공부하기에는 이만큼 작지만 알찬 길라잡이도 없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