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형성기 기독교의 통일성과 다양성 (상•하)
제임스 D. G. 던 / 새물결플러스 / 2022.1.10
저명한 국제적 신약학자인 제임스 던이 오랜 시간에 걸쳐 집필한 『생성기의 기독교』 시리즈의 마지막 저작인 본서는 앞 두 권에 이어 폭넓은 지식과 현명함 및 재치를 숙성시킨 한 노학자의 면모를 여전히 보여준다. 제2성전기 유대교의 종말을 고한 기원후 70년은 유대교뿐만이 아니라 유대교의 그늘에서 발전한 초기 기독교에도 결정적인 시기였다. 저자는 그 시기부터 이레나이우스를 통해 기독교의 특성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 2세기말까지 기독교의 정체성과 관련한 문제들을 추적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 목차
[상권]
서문
제10부 새로운 시작
38장 생성기의 기독교
38.1 서론
38.2 큰 교회의 출현
38.3 기독교와 유대교
38.4 기독교의 헬라화
38.5 정체성 논쟁
39장 1세기의 자료들(신약 성경)
39.1 원자료의 다양성과 특성
39.2 정경에 속한 복음서들
39.3 나머지 신약 문헌
40장 2세기의 자료들
40.1 사도 교부
40.2 변증가들
40.3 에우세비오스와 이단 연구자들
40.4 나머지 복음서들
40.5 다른 편지들
40.6 나머지 행전들
40.7 다른 묵시록들
40.8 요약
제11부 여전히 기억되는 예수
41장 복음에서 복음서로
41.1 복음서 이전의 복음
41.2 마가복음
41.3 마태복음과 누가복음
41.4 요한복음
41.5 복음서
42장 예수 이야기 바꾸어 말하기: 마가복음, 마태복음, 누가복음
42.1 구전 전승에서 기록된 복음서로
42.2 마가복음
42.3 마태복음
42.4 누가복음과 사도행전
42.5 기억된 예수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되다
43장 예수 복음의 재구성: 요한과 도마
43.1 요한에 따른 복음
43.2 「도마복음」
43.3 요한복음과 「도마복음」 비교
43.4 「도마복음」은 복음서인가?
43.5 서로 다른 두 복음서, 서로 다른 두 가지 해석학적 전략
44장 2세기의 예수 전승
44.1 서론
44.2 2세기까지의 구전 예수 전승-사도 교부들
44.3 2세기까지의 구전 예수 전승-변증가들
44.4 예수 전승의 다른 흐름들
44.5 영지주의 복음서 1-초기 원자료의 문제
44.6 영지주의 복음서 2
44.7 내러티브 복음서
44.8 네 권의 (정경) 복음서에 대한 승인
44.9 결론
[하권]
제12부 유대 기독교와 갈림길
45장 유대 기독교
45.1 서론
45.2 야고보의 수수께끼
45.3 예루살렘 교회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45.4 신약의 유대 기독교 문헌들
45.5 2세기 기독교 문헌의 유대적인 특성
45.6 제2성전기 유대교의 유산
45.7 “미님”(minim)
45.8 예수도 추종한 유대인들
45.9 결론
46장 갈림길
46.1 이 장에서 사용할 이미지
46.2 초기의 압력과 긴장
46.3 모든 것을 바꾸어놓은 로마
46.4 유대교의 발전과 유대교 내의 여러 발전
46.5 신약 문헌들
46.6 2세기 기독교 문헌
46.7 결론
제13부 바울과 베드로의 지속적인 영향
47장 바울
47.1 서론
47.2 2세대 신약 문헌에서 묘사된 바울
47.3 2세기에서 바울 수용
47.4 전설상의 바울
47.5 “이단자들의 사도”?
47.6 바울과 이레나이우스
47.7 요약
48장 베드로
48.1 서론
48.2 베드로의 편지들
48.3 나머지 신약에서의 베드로
48.4 사도 교부들과 변증가들의 문헌 속에서의 베드로
48.5 유대 기독교의 베드로
48.6 외경상의 베드로
48.7 결론
제14부 첫 세대를 넘어
49장 요한
49.1 서론
49.2 개괄
49.3 요한을 있는 그대로 보라
49.4 요한 1, 2, 3서
49.5 요한계시록
49.6 「솔로몬의 송시」(Odes of Solomon)
49.7 영지주의 문헌상의 요한
49.8 몬타누스주의자들
49.9 결론
50장 정체성 논란
50.1 예수와 1세대 지도자들의 지속적인 영향
50.2 정의되는 과정 중의 기독교
50.3 결론
약어표
참고문헌
성경 및 고대 문헌 색인
○ 저자소개 : 제임스 D. G. 던 (James D. G. Dunn)
1939년생. 신약학자. 글래스고대학교에서 공부했고BD,MA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박사 학위Ph.D를 받았다. 1970년부터 1982년까지 노팅엄대학교에서, 1982년부터 2003년 은퇴할 때까지 더럼대학교에서 신약학을 가르쳤다. 1991년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명예 학위DD를 받았으며 2002년에는 세계신약학회Studiorum Novi Testamenti Societas 회장을 맡았고 2006년 영국학술원 회원 FBA이 되었다. 더럼대학교의 명예교수emeritus lightfoot professor of Divinity로 있었다.
E. P. 샌더스, 톰 라이트와 함께 이른바 바울로 신학의 새 관점을 제시한 학자로 꼽히며 역사적 예수, 바울로 신학, 초기 그리스도교와 유대교 역사와 관련해 다양한 저작을 남겼다.
주요 저서로 WBC 성서주석 시리즈 증 『로마서 상, 하』World Biblical Commentary 38a,b (솔로몬 역간), 『바울 신학』The Theology of Paul the Apostle (크리스천다이제스트 역간), 『예수와 기독교의 기원』Jesus Remembered (새물결플러스 역간), 『바울에 관한 새 관점』The New Perspective on Paul (에클레시아북스 역간) 등이 있다.
– 역자: 이용중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KBS 취재기자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으나, 이후 교회를 섬기는 종으로 부르심을 받고 기독교 서적 전문 번역가이자 개혁파 목사로 일하고 있다.
모순된 현실을 복음으로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예언자적인 신학에 관심이 많다.
『새 하늘과 새 땅』, 『인간의 타락과 진화』, 『초기 기독교와 축귀 사역』, 『왕이신 예수 따르기 프로젝트』(이상 새물결플러스), 『ESV 스터디 바이블』, 『개혁주의 조직신학』(이상 부흥과개혁사) 등 70여 권의 신학 서적을 번역했다.
○ 책 속으로
[상권]
70년 이후 기독교와 유대교 사이의 상호작용에서 주목해야 할 두 번째 중요한 측면은 제2성전기 말과 그 이후 유대 문헌의 대부분을 보존한 이들이 랍비들이 아니라 기독교인들이었다는 점이다. 기독교인들은 분명히 「이사야의 승천」이나 「열두 족장의 유언」과 같은 문헌들을 소중히 여기고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그러나 이런 문헌들을 원래의 “유대” 문헌을 “기독교적”으로 “편집”한 것으로 간주해야 하는가? 아니면 보다 적절하게 유대인의 자기 인식 안에서의 예수 신앙을 보여주는 유대-기독교 문헌으로 간주해야 하는가?
즉 이 문헌들이 최소한 이 문헌들을 소중히 여기는 이들에게는 그 두 길이 아직 확실히 갈라지지 않았던 시기, 즉 “유대교”와 “기독교”에 대한 정의가 여전히 진행되고 있었고, 이 문헌들을 사용하던 이들이 (마치 그 둘이 이미 명백히 구별되는 실체인 것처럼) 서로 확고한 경계선을 아직 긋지 못했던 시기를 증언하고 있는가? 여기서 그 증거와 쟁점에 더 자세히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38장 생성기의 기독교」중에서
필자는 초기 기독교 복음서 자료에 대한 검토를 두 가지 범주, 정경에 속한 복음서들 (마태, 마가, 누가, 요한)과 보통 함께 복음서로 알려진 나머지 문서들로 나눈다. 이는 주로 집필상 선호의 문제다. 복음서로 알려진 모든 문헌을 한 장에서 다룬다면 그 장은 지나치게 길어질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은 정경에 속한 복음서들에 나머지 복음서보다 큰 특권을 부여하는 것으로 간주될 수도 있지만, 사실 정경에 속한 복음서들이 나머지 복음서보다 먼저 등장했고 나머지 복음서보다 권위와 가치가 있는 것으로서 보다 높고 보다 보편적으로 간주되었던, 가장 가능성이 큰 역사적 실재를 반영한다.
교회와 공의회에 의해 내려진 초기의 결정에 구속받지 않고 관련된 모든 증거 자료를 “공평한 경쟁의 장”에서 다루기를 원하는 이상주의적인 역사주의가 존재하는 것은 이해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역사가가 진실성 있게 연구하려면, 어떤 자료는 이 초기의 수십, 수백 년 동안 특권을 부여받았음을 인정하고 그 이유를 물어야 한다. 그 결과로 나온 비판에는, 몇몇 자료를 그 특권을 박탈하거나 비판하려는 시도가 담긴 비평이 포함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1세기와 2세기의 많은 문서 가운데 어떤 것들은 다른 것들보다 더 높게 그리고 더 폭넓게 평가받았다는 점을 인정하고 그것들을 먼저 다루는 것은 역사를 왜곡하는 것이 아니다. —「39장 1세기의 자료들(신약성경)」중에서
이 문헌의 본문 자체는 저자 미상이다. 바나바를 저자로 간주하는 일은 이미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에 의해 당연시되었지만 이제는 거의 보편적으로 의문시되는데, 그 이유는 특히 이 편지가 쓰였을 법한 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편지는 1인칭 관점에서 개인적 발언으로 기록되었고 1.8과 4.9에서 (“선생으로서” 글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저자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그의 해박한 성경 지식이 역시 암시하는 대로 자신을 선생으로(1.5-6) 간주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렇다면 이 편지는 왜 바나바의 저작으로 간주되었는가? 아마도 이 편지가 레위기의 규정들에 대한 많은 관심과 지식을 보여주며(7장과 10장) 바나바가 명시적으로 레위인으로 밝혀진(행 4:36) 유일한 1세대 기독교 지도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유대 율법에 대한 이 편지의 관점은 외부인의 관점에 더 가깝다. 즉 저자는 “그들의 율법”에 대해 “신참자”와 같은 “우리”(3.6), “그들의 언약”과 “그들이 신뢰한 할례”(9.4, 6)에 대해 이야기하고, 개종한 이방인의 대표자로서 말한다(16.7?“우리가 하나님을 믿기 전에”; 참고. 14.5).
물론 기독교인이 된 유대인이 그를 배교자로 묘사하는 것이 타당할 만큼 자신의 유대인으로서의 과거에 매우 큰 불만을 느끼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그것은 바나바에게는 거의 해당되지 않는 사실이었다(갈 2:12-13). 다른 한편으로 한 이방인 기독교인이 기독교의 유대인적 전통에 대해 매력을 느끼고 유대인의 율법과 전통에 대해 정통하며 그 유산을 이방인 신자들에게 가능한 한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을 자신의 임무로 간주하게 되는 것도 전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일이다. —「40장 2세기의 자료들」중에서
요컨대 십중팔구 그렇게 보이듯이 만일 예수 전승 모음집이 바울이 그의 회심자들에게 전한 메시지의 일부였고 그가 그 위에 교회들을 세우고자애쓴 토대의 일부였다면, 바울과 그의 회심자들은 그러한 자료를 그 자체가 복음의 필수 요소이거나 최소한 복음을 보완해주는 것으로 간주했을 것이라는 결론이 가장 자연스럽게 도출된다. 우리가 사용된 단어들을 놓고 논쟁할 필요는 없지만, 바울은 십중팔구 예수에 대한 정보와 예수의 가르침을 전해주는 일을 자신이 “복음으로써”(고전 4:15) 많은 새 자녀들의 아버지가 된 과정에서 필수적인 부분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바울이 행한 일과 그가 자신의 메시지를 “복음”으로 요약하면서 발휘한 영향력의 중요성은 그가 예수의 사명과 가르침에 대한 전승을 복음에서 배제했다는 것이 아니라 그가 예수의 사명이 지닌 결정적인 복음적 의미의 핵심을 예수의 죽음과 부활로 설정했다는 데 있다. 예수의 사명에 대한 설명에 “복음”이라는 제목을 부여하는 논리적인 다음 단계를 취한 것은 바로 마가복음, 곧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서 절정에 이른 이야기로서의 복음서였다. —「41장 복음에서 복음서로」중에서
『예수와 기독교의 기원』에 나오는 공관복음서들 사이의 병행 구절들을 기록한 이에 상응하는 표들을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방금 열거한 「도마복음」과 공관복음의 병행 구절들이 마가복음/마태복음/누가복음의 같지만 다른 병행 구절들에서 나타나는 것과 똑같은 변형을 매우 많이 보여 준다는 점을 설득시킬 필요가 거의 없을 것이다. 표로 입증할 필요는 적지만 또 다른 흥미로운 특징은 「도마복음」의 형태가 「도마복음」의 (근심에 관한) 그리스도 어록인 36:1-3, 57:1-4(가라지의 비유), 63:1-3(어리석은 부자의 비유), 100:1-4(가이사에게 공물을 바치는 일에 대한 어록), 107:1-3(잃은 양의 비유)에 대한 공관복음의 병행 구절들보다 상당히 간략하다는 점이다.
이는 보다 긴 공관복음의 형태가 보다 빈약한 틀에 대한 부연 설명이라는 점을 암시할 수도 있지만, 아마도 그것은 단지 전승 자료가 주된 요점을 상실하지 않은 채 축약되거나 확대될 수 있다는 점을 상기시키는 것일 것이다. 확실히 64:1-11과 그 병행 본문들(저녁 초대 손님의 비유)은 한 이야기가 모두 같은 기본적인 요점을 강조하며 같은 구조를 사용하는 서로 다른 진술 속에서 얼마나 다양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43장 예수 복음의 재구성: 요한과 도마」중에서
「디다케」는 “열두 사도를 통해 열방/이방인에게 전해진 주님의 가르침”으로 소개된다. 이 표현 자체가 뒤이어 나올 독특한 가르침의 관점을 보여준다. 즉 그 가르침은 주님(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비롯되었고 사도들을 통해 전해져 내려왔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이미 그때까지의 다른 기독교 문헌에서 거의 지지받지 못한 어떤 이상화(열두 사도의 적극적인 역할)가 존재한다. 그러나 이 책에서 주장하고 있는 기본적인 내용을 지나치게 무시해선 안 된다. 그 주장은 우리의 예수 전승 연구에서 분명해진 사실의 많은 부분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처음부터 그들이 예수에게서 받았고 그들에게 그토록 깊은 인상을 주어 예수 전승과 같은 표현과 그것의 사용 및 확산이 자연스럽게 일어나도록 한 가르침을 종합하고 체계적으로 서술하고 정기적으로 반복하고 번역하고 전달할 책임을 떠맡은 주요 제자들(사도들)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책임이 열두 사도 모두에게 있다고 간주되며 예수 전승을 글로 옮겨 적음으로써 그 과정을 더욱 진척시킨 한두 사람 내지 그보다 많은 사람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는 점은 아마도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44장 2세기의 예수 전승」중에서
[하권]
이것은 바우어 (Bauer)가 매우 날카롭게 이의를 제기한 전통적 견해, 즉 이단은 원래의 “처녀 교회”가 나중에 부패한 것이라는 에우세비오스의 견해의 초기적인 표현이다. 헤게시푸스가 이단이 발생한 원인을 모교회의 구성원들에게서, 또는 아마도 더 정확하게는 모교회의 불만을 품은 구성원들에게서 찾는다는 점은 매우 인상적이다. 언급된 이단들은 대체로 대표적인 (주로 영지주의적인) 이단자들?시몬(마구스), 메난드로스, 마르키온, 카르포크라테스, 발렌티누스, 바실리데스, 사투르니누스?에게서 나온 이단이다. 그러나 사마리아인인 도시테우스가 유대인 이단자에 더 가까운 인물로 묘사되고 마스보테우스파도 유대인의 한 분파로 열거된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그렇다면 헤게시푸스는 유대인 분파들과 초기 영지주의 유형이나 원시 영지주의 집단들 사이에 어떤 분명한 차이점도 발견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헤게시푸스의 증언에 붙여야 할 모든 물음표에 대해 말하자면, 그러한 이야기들은 유대인의 영향이 그 이후로 단순히 영지주의 집단으로 묘사되는 집단들의 출현에 중요한 역할을 했을 가능성에 더욱 힘을 실어준다. 어쨌든 전체 교회를 하나의 주된 흐름과 그 주된 흐름의 양편에서 각기 따로따로 갈라져 나가는 “유대 기독교”의 흐름과 “영지주의”의 흐름으로 묘사한다면 이는 매우 미심쩍은 묘사일 것이다. —「45장 유대 기독교」중에서
“유대교”와 “기독교”는 앞으로 살펴볼 내용에서 주된 요소는 아니었다는 점을 처음부터 우리 스스로에게 상기시킬 필요가 있다. 이 두 용어는 우리가 살펴보는 문헌에서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유대교”는 신약(갈 1:13-14)과 이그나티오스의 글(Magn. 8.1; 10.3; Phil. 6.1)에서 겨우 두 번 등장하고 “기독교”도 이그나티오스의 글에서만 등장한다.
요점은 단순히 의미론적인 요점이자 시대착오적인 술어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요점은 우리가 기원후 처음 두 세기의 “유대교”와 “기독교”를 이미 분명하게 정의된 두 실체이자 서로 분명하게 구별된 것으로 간주하는 일을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살펴보는 시대의 대부분 기간 동안 “제2성전기 유대교”의 후예들은 로마에 대항한 세 번의 실패한 봉기의 충격으로 인해 휘청거리고 있었다. 기원후 70년의 재앙 이후 야브네에서 개최된 랍비들의 총회에서 실질적으로 시작된 랍비 유대교는 우리가 살펴보는 시대 내내 이제 겨우 스스로를 확립하고 팔레스타인 밖에 있는 유대 회당에 자신의 특성을 각인시키려는 시도를 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신생 기독교와 가장 관련성이 많은 서방 디아스포라의 “유대교”는 여전히 “헬라화된 유대교”였고 아직 온전한 랍비 유대교는 아니었으며, 제2성전기 “유대교”에 이미 반영된 디아스포라 유대교의 다양성이 염두에 있었다. 그리고 이스라엘 종교와 포로기 이후 유대 지방의 유산에 대해 이미 분명한 연속성의 선이 그어졌던 태동기의 기독교에서 그처럼 다양하게 소유권이 청구된 유산 안에서 “기독교”를 구별되는 실체로 표시할 선은 비록 때로는 대담하게 그어지기도 했지만 아직은 잠정적으로 그어지고 있었다.
랍비 유대교와 디아스포라 유대교의 관계를 정의하는 일에 관한 문제는, 기독교적인 측면에서는 특히 그러한 똑같은 유산 중에서 얼마나 많은 부분을 자기 몫으로 요구하며 그것을 어떻게 요구해야 하는가에 관한 논쟁을 포함해서 예수를 믿는 유대인 신자와 이방인 신자 사이의 관계를 정의하는 문제와 짝을 이루었다. —「46장 갈림길」중에서
우리는 이미 바울이 2세기의 그리스도를 믿는 유대인 신자 집단 사이에서 어떻게 간주되었는지 알고 있다. 에비온파는 바울을 야고보와 날카롭게 대비시키는 경향이 있었지만, 나사렛파의 경향은 바울과 가장 관련이 깊은 이방인의 확대에 대해 보다 호의적이거나 수용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45.8b).48 사도 교부 문헌 중에서 가장 유대 기독교적인 문헌인「디다케」가 바울의 영향을 가장 적게 보여주는 것은 아마도 놀랄 일이 아닐 것이다.
또한 헤르마스의 「목자서」가 그에 못지않게 바울에 대한 관심이나 바울에게서 받은 영향을 적게 보여주는 것도 아마 그리 놀랄 일이 아닐 것이다. 「목자서」의 사고의 특징은 바울과 매우 다르며 유대 전승과 야고보에게서 받은 영향은 보다 쉽게 논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곳에서 결국 보다 주류 집단이 된 집단들은 바울을 어떻게 간주했고 바울의 편지들을 어떻게 받아들였는가? —「47장 바울」중에서
베드로의 저작으로 간주된 편지들인 베드로전서와 베드로후서는 우리가 기대한 만큼 충분한 출발점을 제공해주지 않는다. 바울의 경우에는 여러 편지들, 최소한 일곱 편의 편지가 있고 이 편지들은 거의 보편적으로 바울 자신이 썼거나 그 자신의 말에서 비롯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따라서 우리는 바울의 움직임에 대한 분명한 정보와 바울의 생각에 대한 분명한 통찰을 얻는다.
야고보의 경우에는 그의 저작으로 간주된 편지가 내용과 문체 모두에 있어 그의 가르침을 정확하게 표현했을 가능성이 충분히 크므로 그 편지를 야고보가 어떻게 기억되었고 그의 가르침이 계속해서 얼마나 영향력이 있었는지에 관한 분명한 표지를 제시하는 것으로 정당하게 간주할 수 있다. 야고보라는 인물 자신과의 관계가 덜 확실하더라도 어쨌든 그 편지는 70년 이후 시기에 예수를 믿는 유대인 신자들 사이에서 영향력이 있었을 것이 분명한, 확연하게 유대적인 예수에 대한 믿음을 표현하고 있다. —「48장 베드로」중에서
요한이 특히 요한복음 서언에서 사용했지만 다른 곳에서도 사용한 지혜와 로고스의 언어와 이미지를 단순히 지적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요한이 제기한 주장은 로고스/지혜가 “육신이 되었다”는 것이었다(요 1:14). 즉 단지 신적인 행동을 묘사하는 시적인 비유 속에 나타난 것도 아니고, (필론의 글에서와 같이) 단지 이스라엘의 남녀 영웅들의 특성 속에서 상징적으로 표현된 것도 아니며, 단지 인간의 모습을 한 메시지를 전하는 천사와 같은 뜻밖의 방문객으로 나타난 것도 아니고, “육신이 되셨다”는 것, 1세기 팔레스타인에서 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삶 전체를 산 한 인간이 되셨다는 것이다.
요한은 자신이 하고 있는 주장이 얼마나 엄청난 주장인지를 잘 알고있었다. 요한은 그 주장을 골로새서 2:9에서의 바울처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방식으로 소개하지 않았다. 그는 이를 마태복음 11:2, 19에 나오는 마태의 지혜 기독론에 대해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처럼 암시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요한은 로고스를 후대의 영지주의 체계에서와 같이 하나님과 다소 동떨어진 일종의 유출로서 하나님과 구별하려 하지 않았다. 로고스는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을 뿐만 아니라 곧 하나님이었다(요 1:1). 요한은 로고스가 변해서 된 존재의 실체를 완곡하게 표현하려고 하지 않았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3:6). “육은 무익하니라”(6:63).
그러나 로고스는 그 자신과 정반대인 “육신이 되셨다.”30 요한복음 서언은 하나님이 혈과 육을 가진 인간, 죽게 될 인간이 되실 수도 있고 창조자와 피조물 사이의 무한한 간극이 그런 식으로 연결될 수도 있다는 역설을 즐긴다. 그것은 요한 당대의 사려 깊은 사람들이라면 대부분 모순적이고 말도 안 되고 상상할 수도 없는 일로 간주했을 법한 역설이었다. 헬라인들은 잠시 변장한 모습으로 지상에 나타나는 신들을 상상할 수 있었다. 그들은 반인반신, 인간을 통해 낳은 신의 자손, 또는 신격화된 인간을 상상할 수는 있었다. 그러나 신이 물질적이고 부패할 수 있는 육신인 인간이 되어 완전한 인간의 삶을 산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49장 요한」중에서
첫 번째 연구의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복음”이라는 용어에 예수의 죽음과 부활 및 그 필연적 결과에 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예수의 사명과 가르침에 대한 이야기도 포함되게 된 경위였다. “복음”에서 “복음서”로의 변화는 관심을 십자가와 부활에서 멀어지게 하지 않았다. 수난 내러티브는 기록된 복음서의 절정으로 일정하게 유지되었다. 예수는 일차적으로 선생이나 현자나 기적을 일으키는 자로 기억되지 않았다. 십자가 처형과 부활을 통한 구주로서의 예수의 사명은 여전히 복음서의 절정이었다. 예수의 가르침, 구원하는 지식 또는 지혜로서의 예수가 구원의 일차적인 수단이 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 초기 복음서 저자들은 명백히 구원을 초래하는 사건들을 수난 이전의 예수의 사명과 분리시키지 않는 것도 필수적이라고 보았다. 단순히 구원을 초래하는 죽음과 부활이 어떤 신화적인 맥락에서 발생했거나 그 역사적·지리적 요인들이 그와 무관한 어떤 시점에 발생한 한 사건으로 환원될 수 있어서가 아니었다. 구원을 초래하는 사건은 나사렛 예수의 죽음과 부활이었고 갈릴리와 유대에서의 예수의 사명은 그 사건과 분리될 수 없으며 그 사건의 필수적인 부분이었다.
특히 예수가 어떻게 그의 특정한 역사적·사회적 배경 속에서 진정으로 인간의 삶을 살았는가 하는 이야기는 명백히 하나님에 대한 신뢰의 삶을 어떻게 살 수 있고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평가되었다. 그러나 복음서에 예수의 사명에 대한 전체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다는 인식이 그 이야기가 여러 갈래로 분류되지 않도록 막아 주었으며 진정한 고난과 죽음이 가르침 및 기적 수행과 분리되지 않게 해 주었다. 또한 그러한 인식은 2세기 내내 제기된 논쟁들과 대안들을 견뎌낸 기독교 복음의 기준과 정의를 정해주었다. —「50장 정체성 경쟁」중에서
○ 출판사 서평
저명한 국제적 신약학자인 제임스 던이 오랜 시간에 걸쳐 집필한 『생성기의 기독교』 시리즈의 마지막 저작인 본서는 앞 두 권에 이어 폭넓은 지식과 현명함 및 재치를 숙성시킨 한 노학자의 면모를 여전히 보여준다. 제2성전기 유대교의 종말을 고한 기원후 70년은 유대교뿐만이 아니라 유대교의 그늘에서 발전한 초기 기독교에도 결정적인 시기였다. 저자는 그 시기부터 이레나이우스를 통해 기독교의 특성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 2세기말까지 기독교의 정체성과 관련한 문제들을 추적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기원후 70년부터 180년까지의 기독교 역사는 전통적으로 생각된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저자는 분명하게 정의된 신앙 규범과 분명하게 정의된 구조를 가진 정통 교회가 출현했다고 보기보다, 경쟁하는 사상들/신앙들/관행들 사이의 긴장과 투쟁이 있었다고 보는 것이 사실에 훨씬 더 가깝다고 한다.
특히 감독 교회 체제에서는 분명한 정체성, 즉 유대인, 유대-기독교인, 영지주의자와 대비되는 정체성을 위해 싸운 이들이 있었지만, 현실에서는 예수와의 관련성을 놓고 다양하게 스스로를 정의하는 서로 다른 집단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기독교”가 과거에 무엇이었고 무엇을 “기독교”로 간주해야 하는가에 관한 정체성은 여전히 정의되는 과정 중에 있었고 정체성에 기여하는 모든 주요 요소에 관해 논쟁이 벌어졌다.
정체성을 정의하는 이러한 과정을 추적하기 위해 저자는 훗날에 일어난 일에서 실마리를 잡지 않고, 그 시기를 정반대 방향에서 바라본다. 모든 역사적 자료를 후대에 일어나거나 성취될 일로부터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과거로부터 즉 첫 세대 그리스도인들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 보는 것이다.
베드로, 야고보, 바울은 2세기와 그 이후에 일어난 일에 대해 에우세비오스처럼 만족했을까? 그들은 “큰 교회”의 출현, 유대교와의 대립, 유대-기독교에 대한 부정, 영지주의적인 변화에 대한 규탄이 그들이 경험한 영향과 그들이 소중하게 여긴 확신의 최선의 결과라고 단언했을까? 첫 세대 동안에는 효과적이었지만 지금까지 우리 시야에서 가려진 다른 중요한 영향력(무엇보다도 요한의 영향력)이 존재했는가? 이러한 영향력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할 때 그것은 첫 세대의 다른 중요한 인물들과 그들의 영향력에 대한 평가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 초기 기독교가 탄생할 때 우리가 실제로 마주한 것은 아기 한 명인가, 쌍둥이인가, 세쌍둥이인가, 그 이상인가?
따라서 저자는 1세대 기독교를 형성한 주요 요소들이 2, 3, 4세대 속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를 질문하는 방식으로 이 세 번째 책을 구성했다. 예수 전승, 야고보(예수의 형제), 베드로, 바울은 가장 영향력 있는 특징이자 인물이었고, 그들의 사역과 가르침은 신생 기독교의 첫 세대를 형성했다. 무엇보다도 예수 전승은 기독교의 기본 틀을 형성하는 데 있어 모판과 같은 핵심 역할을 수행했다.
던은 연구에 적절하고 방대한 원자료를 검토한 후 예수와 야고보, 바울, 베드로의 영향이 2세기에 그들의 유산을 물려받았다고 주장하는 이들에게 어떻게 작용했는지를 살펴본다. 또한 요한 및 논란의 인물인 도마에게도 주의를 기울인다. 저자는 그들의 유산이 어떻게 논쟁거리가 되었는지를 요약한 뒤에 본서의 연구 결과가, 지속되어 온 기독교에 대한 관점에 어떻게 영향을 끼치는지를 숙고한다.
본서에서 다루는 시기를 연구한 출판물들이 그 이전의 역사에 대한 연구보다 훨씬 더 소수이기에, 제임스 던은 개척자의 정신으로 길을 만들어가며 자신의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저자가 수많은 다른 주제들을 다루며 평생 갈고닦았던 학자로서의 깊이와 안목과 통찰이 그의 마지막 단행본에서 오롯이 빛을 발한다. 기원후 70년 이후 기독교의 발자취를 살펴보고자 하는 이들은 이 책을 결코 지나칠 수 없을 것이다. 『생성기의 기독교』 시리즈에 속한 모든 책이 그렇듯이 본서도 20-21세기를 수놓았던 한 위대한 신약학자가 기독교의 기원과 발흥에 대한 이해와 탐구의 수준을 한 단계 올려놓았다는 평가를 받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 추천평
종교 운동은 그 생성기에 그 운동의 핵이 형성된다. 예수 운동도 예외는 아니다. 예수 운동이 어떻게 출현했고(1권), 어떻게 자리를 잡아갔으며(2권), 어떻게 세계로 퍼져나가게 되었는지를(3권) 역사적으로 고찰하는 것은 신약학에서 필수적인 일이다. 제임스 던 교수, 이분이야말로 이 책을 쓰기에 최적의 학자다. – 김동수(평택대학교 신약학 교수, 한국신약학회 회장 역임)
제임스 D. G. 던이 기독교의 형성에 관련된 또 하나의 역작을 내놓았다. 연구에는 방대한 정경 문헌은 물론이고 비정경 문헌이 광범위하게 사용되어 학문적 객관성과 균형성을 철저하게 유지하였다. 특히 본서는 초기 교부 시대에 기독교가 어떻게 그 정체성을 유지하였는지 구전의 사용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임으로써 그 가치를 획기적으로 높였다. – 김성규(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신약학 교수)
이 책은 제임스 던이 야심 차게 기획했던 초기 기독교의 기원을 다룬 3부작의 책 중 마지막 결과물이다. 이 책은 초기 기독교의 기원을 연구하는 모든 사람이 꼭 읽어야 할 필독서임이 분명하다. – 신현태(장로회신학대학교 신약학 교수)
제임스 던은 예수의 전승이 어떤 과정을 거쳐 유대교와 전혀 다른 “기독교”로 자리 잡게 되었는지 그 복잡했던 과정을 낱낱이 추적한다. 본서는 신약성서를 정확히 이해하는 데 필수 요소인 “유대교와 기독교가 소원해진 이유”를 구체적으로 해명하여 독자들의 기대를 충족시킬 뿐 아니라 군더더기 없는 설명을 제공함으로써 이 분야 의 교과서라는 학문적인 명예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 윤철원(서울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신약학 교수)
이 책은 평소 접하기 어려운 역사적 외부자료들을 보기 쉽게 정리하고 있고 상상력과 통찰력을 통해 독자들에게 어떻게 기독교가 형성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핵심자료다. – 이민규(한국성서대학교 신약학 교수)
날카로운 통찰력, 풍부한 지식, 일관성 있는 논지로 연속성 속에서 다양하게 펼쳐지는 초기 기독교의 형성기에 대하여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정리해주는 『형성기 기독교의 통일성과 다양성』은 신약학에 관심 있는 학자, 신학생, 목회자, 그리고 교회 지도자들이 꼭 읽어야 할 필독서다. – 이상일(총신대학교 신약학 교수)
이 책은 다양하게 펼쳐진 형성기 기독교의 마지막 단계에서 정체성을 다투는 그 격랑의 역사적 흐름을 단일한 “궤적”이 아니라 여러 “길” “경로”로 분기해나가면서 다시 교차하며 통합해 나간 “갈림길들”로 파악한다는 점에 역동적이고 탄력적인 통찰을 제시한다. 형성기 기독교의 발전을 신약성서 안과 밖을 아우르는 거시적인 시각에서 조망한 이 방대한 저작은 1세기 후반과 2세기에 생산된 다양한 고대 기독교 문헌의 내용들을 역사적인 맥락에서 이해하는 데도 요긴한 지적인 정보와 함께 넉넉한 도움이 된다. – 차정식(한일장신대학교 신학과 교수)
제임스 던의 “생성기 기독교”의 3부작이 비로소 국내 독자에게 완전체로 성큼 다가왔다. 값싼 복음이나 얕은 설교에 식상한 신학생과 목회자라면 제임스 던의 3부작을 손에 잡고 자신의 골방에서 “학문적 자가격리” 기간을 가지라고 권하고 싶다. 이처럼 강력한 “신약학 백신”을 국내에서도 안전하게 맞을 수 있음이 목회와 신학에 큰 선물이라는 확신 때문이다. – 허주(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신약학 교수, 한국복음주의신약학회 회장)
여기서 우리는 성숙한 일류 학자가 수십 년간 연구하여 증류한 결실을 온전히 보게 된다. 제임스 던은 상급 학자만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방대한 범위의 2차 및 1차 문헌을 살펴보며, 최고의 통찰을 종합하고, 모든 출처와 가설을 비판적으로 세심하게 평가하여 해당 주제에 대한 향후 작업의 기초가 될 박식한 걸작을 내어놓았다. – 크레이크(키너 애즈버리 신학교)
이 상당한 책을 “필자 경력의 큰 작업에 대한 작별 인사”라고 부르는 제임스 던은 기원후 70년에 예루살렘이 멸망한 이후부터 2세기 후반에 이르기까지 기독교 정체성의 발전을 설득력 있게 다룬다. 『형성기 기독교의 통일성과 다양성』의 범위가 경외심을 불러일으키고 논의를 전개해가는 과정이 장엄하다. 자신의 기술을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 올리는 독보적인 장인처럼 던은 그의 오랜 경력의 특징인 명확한 생각과 표현으로 자신의 임무를 완수한다. 이것은 전형적인 던의 감미로운 저작이자 빈틈없는 고별사다. – 브루스 롱네커(베일러 대학교)
자신의 대작을 마무리하면서 제임스 던은 최초의 예수 전통과 첫 유대인 추종자들이 그 전통을 다양하게 해석한 내용으로 인해 기원후 70년에서 200년까지 발전한 운동이 어떻게 형성되었고 또한 그 운동이 그런 내용을 어떻게 형성했는지에 대한 강력한 설명을 제공한다. 학생과 학자들 모두 공감하고 논쟁하며 배울 점을 많이 발견할 것이다. – J. R. 다니엘 커크(풀러 신학교)
참고 = 새물결플러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