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흔들리는 터전
폴 틸리히 / 대한기독교서회 / 2001.5.31
시대의 변천이 새로운 사고 구조와 언어 세계를 창출해 내었기에, 오늘의 새 세대들은 전통적인 용어와 사고 방식에서 소외와 단절을 느끼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누구보다도 예리하게 직시한 변증적 신학자 틸리히는 이 시대와 상황에 여전히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해서는 “변증법적인 타입의 설교”가 필요하다고 스스로 간파함으로써 이 설교집을 내어놓았다.
우리들의 내면의 세계와 깊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이 ‘흔들리는 터전’은 우리의 실존의 위치와 문제성과 의미, 그리고 그 가능성을 유감없이 폭로해 주고 있으며, 이 ‘세속’의 한가운데서도 우리는 여전히 ‘거룩함’를 경험하고 있다는 심층적 삶의 모습을 힘차게 증언해 준다.
물론 이 설교집은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그의 신학 사상을 충실히 파악하고자 하는 신학도들을 위해서는 훌륭한 도움을 줄 것이라고 저자 자신이 자부하고 있다.
○ 목차
- 흔들리는 터전
- 우리들은 두 개의 질서 안에 산다
- 정복의 역리
- 여호와의 두 종
- 명상-시간의 신비
- 하나님으로부터의 도피
- 실존의 심연
- 생명의 허무함에 대하여
- 자연도 또한 선의 상실을 탄식한다
- 거룩함의 체험
- 종교의 멍에
- 섭리의 의미
- 사랑으로 말미암은 지식
- 진리의 실천
- 신학자
- 우리들의 영에 대한 성령의 간증
- 그리스도의 길
- 기다림
- 너를 용납하신다
- 무덤에서 탄생하다
- 죽음의 멸망
-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
역자의 후기
○ 저자소개 : 폴 틸리히 (Paul Johannes Tillich, 1886 ~ 1965)
폴 틸리히 (Paul Johannes Tillich, 1886년 8월 20일~1965년 10월 22일)는 독일의 신학자이자 루터교 목사이다.
폴 틸리히는 1886년 8월 20일 독일에서 출생해 베를린, 할레, 브레슬라우대학 등에서 수학했다. 1911년에 신학전문직학위를 취득해 대학에서 가르칠 자격을 얻었다. 제1차 세계대전 기간 중 4년간 군목으로 참전하면서 ‘터전의 흔들림’으로 표현될 만한 사상적 변화를 겪었다. 1924년에 필립대학의 부교수, 1929년에는 프랑크푸르트대학의 정교수가 되어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러나 독일에서 학자로서의 그의 삶은 나치의 등장으로 인해 끝났다. 나치는 그가 유대인 학생들을 도운 것을 문제 삼아 그의 교수직을 박탈했다. 위기에 처한 틸리히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친 것은 미국의 유니온신학교였다. 이미 40대 중반에 접어든 틸리히는 낯선 땅에서 영어를 익히면서 강의를 했다. 어설픈 영어와 독일식의 딱딱한 악센트 때문에 듣기가 쉽지 않았음에도 학생들은 그의 강의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의 강의에는 그에게 주어진 ’20세기 최대의 신학자’라는 칭호에 걸맞는 내용이 있었던 것이다. 유니온신학교에서 퇴임한 후 그는 1955년부터 1962년까지 하버드대학의 특별교수로 초빙되어 신학부 박사과정학생들을 위한 세미나를 인도하며 집필 활동을 했다. 하버드대학에서 은퇴한 후에는 다시 시카고대학으로 초빙되어 강의를 했다. 틸리히는 1965년 10월 11일 시카고 대학 신학부가 주관한 강연회에서 마지막 강의를 마친 후 심장에 고통을 느껴 입원했고, 10월 22일 아내와 함께 짧은 독일어 시를 낭송한 후 자리에 누워 숨을 거뒀다. 신학뿐 아니라 철학과 문학과 역사에 정통했던 그가 남긴 저서로는 ‘조직신학 1, 2, 3권’ (Systematic Theology), ‘그리스도교 사상사’ (A History of Christian Thought), ‘존재의 용기’ (The Courage to Be), ‘믿음의 역동성’ (Dynamics of Faith) 등 다수가 있다.
- 폴 요하네스 틸리히 (Paul Johannes Tillich)
.독일의 신학자이자 루터교 목사
.출생: 1886년 8월 20일, Province of Brandenburg
.사망: 1965년 10월 22일, 미국 일리노이 시카고
.영향을 준 인물: 쇠렌 키르케고르, 마르틴 하이데거, 프리드리히 슐라이어마허, 마르틴 부버 등
.영향 받은 인물: 코넬 웨스트, 로버트 벨라, 리처드 니부어, 도날드 A. 크로스비, 칼 E. 피터스 등
.배우자: Hannah Werner-Gottschow (1924 ~ 1965년)
.저서: 주저 ‘조직신학 1, 2, 3권’ (Systematic Theology) 외 ‘그리스도교 사상사’ (A History of Christian Thought), ‘존재의 용기’ (The Courage to Be), ‘믿음의 역동성’ (Dynamics of Faith) 등
20세기 전반기의 독일 교회에는 칼 바르트와 쌍벽을 이루는 또 한 명의 대 신학자다. 바르트와 같은 해인 1886년에 태어난 폴 틸리히는 여러 가지 점에서 바르트와 대조되는 신학자이다. 바르트가 자유주의 신학에 대항하여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과 그 온전한 계시로서의 예수 그리스도를 강조하였다면, 틸리히는 이 하나님의 계시가 인간의 구체적인 상황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탐구하였다. 이를 위해 그는 바르트처럼 하나님의 계시에서부터 신학을 시작하지 않고, 그 시대의 사람들이 던지는 질문에 귀 기울인 다음, 거기에 대답하는 형식으로 신학을 전개하였다. 즉, 바르트가 하나님 중심, 계시 중심적인 신학을 전개했다면, 틸리히는 인간 상황에서부터 출발하는 인간 중심 혹은 경험 중심적인 신학을 전개하였던 것이다.
바르트와 같은 신학의 강점은 기독교 신앙의 절대성과 궁극성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이지만, 인간 현실에 부적합해질 약점을 가지고 있다. 반면 틸리히와 같은 변증 신학은 기독교 복음의 상황적 적실성 (contextual relevance)을 가질 수는 있으나 자칫 복음을 왜곡시킬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틸리히는 전통적인 기독교의 언어로는 현대인들에게 복음을 의미 있게 소개할 길이 없다고 보았기에 부적합의 위험보다는 왜곡의 위험을 무릅쓰는 길을 택했으며, 그 가운데 교회사를 통틀어 가장 탁월하고 창조적인 신학의 하나를 남기게 되었다.
○ 독자의 평
지금, 읽고 있습니다. 그저 좋은 게 아니라, 은총 그 자체 입니다. 이 책을 읽도록 시간과 공간, 마음, 우연의 계기를 만들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한국에서는 1959.12.28에 초판 1쇄가 나왔습니다.
원저는 1947년에 뉴욕에서 처음 나왔습니다. 2차대전 종전 후, 미국은 승리에 들떠 있을 시간에 틸리히는 우리가 뿌리박고 살고 있는 이 땅의 거대한 흔들림을 감지합니다. 예언자적 감성입니다.
제가 구입한 이 책은 아마도 최근 본이겠지만, 2005.2.25의 18쇄인데, 아! 초판본 그대로입니다. 번역이 1950년대 방식입니다. vision=비쥰, 그리이스=그리시야, 이런 식입니다.
그러나 메시지는 엄청납니다. 저는 이 시대에 하나님이 보내주신 선지자인줄 알았습니다 (아마 그런지도 모릅니다. 확신에 가깝습니다).
저는 지금, 행복하게 읽고 있습니다.
○ 언론소개
– 신학으로읽는 문화산책 : 틸리히 ‘흔들리는 터전’
역사를 통해 교훈 얻는 일에 실패한 인간들 앞에 이제 그 무지를 깨우치려는 맹렬한 모습으로 오늘의 사변들이 다가오는 것일까? 온 세계가 경악한 9. 11 테러 이후 아프간전쟁 그리고 또다시 탄저병테러로 이어지는 끔찍한 소식들이 우리를 옥죄어 온다.
그 누구도 감히 예상할 수 없었던, 난공불락이라고 여겨졌던 우리 시대 최대 성취의 상징물들이 지금 계속되는 테러 앞에 휘청거리고 있다. 이름하여 ‘흔들리는 터전’은 이를 염두에 둔 이름인가…. 예언자들의 외침이 빛을 발하는 것은 그들의 헤아림이 당대의 상황에 그치지 않고 미래를 비추는 통찰로 이어지기 때문이리라.
- 시대의 예언자
서가의 한 구석에 빛바랜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었던 앞선 시대의 예언자의 목소리가 이제 우리 시대의 사변을 예견하고 너무도 분명히 이에 대한 방책을 들려주고 있는 사실은 우연을 넘어 새삼스런 경외심으로 이어진다.
폴 틸리히(Paul Tillch)가 현대 신학과 철학, 그리고 문화 일반에 끼친 심대한 영향은 재론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1886년 독일의 구벤에서 태어나 1933년 히틀러의 나치와 사상적 충돌을 일으켜 국외로 추방되기까지 그는 이미 라이프치히, 프랑크푸르트 등에서 신학과 철학을 가르치는 경력을 쌓았고, 이후 뉴욕의 유니온 신학교에서 1954년까지 철학적 신학을 가르치면서 ‘역사의 해석’, ‘존재에의 용기’, ‘사랑 권력 정의’ 등을 저술했고 이후 하버드 대학에서 가르침을 이어가면서 세상을 떠날 때(1965년)까지 ‘신앙의 역동성’, ‘문화의 신학’ 등 20여 권에 이르는 방대한 저작을 남기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찬연한 저술들 중에서도 특히 오늘 우리의 눈을 끄는 것은 1948년에 ‘흔들리는 터전(The Shaking of the Foundation)’이라는 이름으로 발표한 한 권의 설교집이다. 이후 그는 본 설교집에서 제기한 당대의 제 문제들을 수렴해 ‘새로운 존재(The New Being'(1955년)라는 제목으로 또 한권의 설교집을 세상에 내놓는다. 이 두 권의 설교집을 통해 틸리히는 그의 심원한 기독교사상을 평이한 글로써 맛을 내어 독자들에게 다가서고 있는 것이다.
‘흔들리는 터전’의 머리말에서 틸리히는 자신의 저술 동기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이 책을 출판하게 된 데에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제가) 설교하는 강단의 예배에 참석한 회중의 대부분이 엄격한 의미에 있어서 기독교 권외(圈外)에 속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전통적인 성서적 용어를 매개로 한 설교는 아무런 의미도 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성서적인 혹은 교회적인 용어가 가리키고 있는 인간적 경험을 다른 용어로써 표현할 수 있는 언어를 찾아야만 하였습니다. 이러한 상황 아래 ‘변증법(辨證法)’ 타입의 설교를 발전시키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강단을 찾아 예배에 참여하는 이들이 전통적인 기독교인이 아니라 종교와 상관없이, 그러나 종교가 주는 이상의 삶의 의미를 갈구하는 이들임을 간파하고 이들에게 소위 ‘상관관계(co-relation)’의 방법론을 통한 변증법적 설교를 시도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같은 방법론은 후에 지속적으로 그의 신학 전반을 주도하는 가장 핵심적 방법론으로 발전한다. 그에게 있어서 ‘하나님없이 하나님 앞에서’라는 본 훼퍼의 명제는 이처럼 인간의 실존적 상황에서부터 시작하는 ‘종교성없는’, 그러나 그 근원적 존재로서 ‘하나님의 궁극적 실재’에 참여하는 인간 존재의 심연에 대한 인식에 다름 아니었다.
하지만 ‘흔들리는 터전’을 오늘의 시점에서 새삼스럽게 재고하고자는 소이는 단지 이같은 틸리히의 탁월한 메시지 전달의 형식을 음미하고자 함 때문만이 아니다. 그가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22개의 설교들은 주로 지난 세기 인류의 역사에서 가장 암울한 시기 중 하나였던 세계 제2차대전의 말기에 유니온 신학교의 예배당에서 주일 혹은 평일 예배 때에 행해진 설교였다.
그는 나치의 잔혹 행위와 이탈리아와 일본에서의 파시즘과 군국주의가 맹위를 떨치면서 세기말적 종말의 어두운 그림자로 전세계가 신음할 당시, 그 흔들림의 한복판에서 세계인을 향해 전쟁과 학살, 파괴와 살상이 가지는 인류사적 의미를 계시의 빛 앞에서 심각하게 묻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성경의 예언자들의 목소리, 그리고 시인들의 목소리를 빌어 ‘세상의 시작’과 ‘영원과 시간’ 그리고 ‘참과 거짓’의 의미를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있다.
그리고 종국에 ‘보라, 내가 새일을 행하리라’는 야훼 하나님의 주권적-섭리적 간섭이 가지는 의미를 들려주고 있다. 이처럼 틸리히가 가지는 관심의 범주는 당대를 넘어서 통시대적 관심을 아우르는 그 무엇이었다.
- 오만한 인간에 대한 충고
틸리히가 바라보는 ‘터전의 흔들림’은 무엇보다도 진보와 무한한 발전, 그리고 자신들의 노력으로 세상에 평화를 이룩할 수 있다고 선전하는 ‘거짓 예언자들’의 메시지에 현혹되었던 인간의 교만 (hybris)으로 연유한다. 거짓 예언자들은 구원의 원천을 과학의 진보, 정치적 혹은 종교적 기구의 설치 등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하지만, 이제 그것들이 눈 앞에서 얼마나 허약한 것들인지 분명히 나타나 보여지고 있지 않은가!
욥은 하나님께서 큰 바람 가운데서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지니라”고 말씀하셨을 때, 잠잠할 수밖에 없었으나 현대 과학들은 자신들의 성취에 한껏 마음이 도취되어 “이제 우리가 대지의 기초가 놓이던 방법의 신비를 보여 줄 수 있다”고 선전하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인간은 절대 하나님일 수 없고 인간이 하나님과 같기를 주장할 때마다 인간은 견책을 받고 자기 파멸과 절망에 빠지는 것”이 아니었던가!
“(이사야 등의) 예언자들은 어떻게 자기들이 지식한 바의 것을 직시할 수가 있었고, 또한 이를 압도적인 권능을 가지고 선언할 수가 있었겠습니까? 그들의 힘은 다음과 같은 한 가지 사실로부터 나오고 있습니다. 즉, 알고보면 그들이 선포하고 있는 것은 대지의 기초 자체에 관해서가 아니라, 이 기초를 놓았고 또 그것을 진동시킬 수 있는 ‘분’에 관한 것입니다. …땅이 흔들리고 나라들의 모든 문화가 사멸할 때, 영원자는 그 무한 존재의 의상을 바꾸실 따름입니다. 그 분이야말로 모든 기초의 토대가 되는 기초이십니다.(p17)”
- 새로운 하나님의 질서
이들 예언자들은 이 토대의 기초가 되시는 분이 주시는 지혜로써 ‘파멸의 영역의 피안에서 구원의 영역을 보았고 또한 시간적인 것의 멸망 속에서 영원한 것의 현재(顯在)를 보는’ 혜안을 누릴 수 있었음을 틸리히는 주목하고 있다. 그리하여 ‘바벨론 강가에서 눈물을 흘리는’ 바벨론 포로들의 절망 상황이 틸리히 시대의 또 다른 의미의 ‘포로 생활’을 하는 이들에게, 아니, 그리고 또 다른 시대, 곧 새로운 세기의 벽두에서 전쟁과 테러의 참혹한 현실 앞에 자신의 무력함을 곱씹을 수 밖에 없는 이들에게 ‘역사의 질서’를 넘어서는 ‘하나님의 질서’를 상기토록 초대하고 있다.
‘역사의 질서’는 성장과 사멸의 질서, 죄와 벌의 질서, 유한성과 죄를 결합하는 질서가 지배하지만 ‘하나님의 질서’는 굳셈과 승리를 가져오는 질서인 바, 사람이 전락의 밑바닥에서 가장 약한 상태에 빠져 있을 때야말로, 달려도 피곤하지 않고 독수리와 같이 날개를 펴고 날아 올라갈 수 있는 ‘역설적’ 모습으로 인간에게 다가오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틸리히는 이제 ‘자유’, ‘국가’, ‘세속적 세계’라는 이름 등으로 ‘새로움’과 ‘흔들림 없는 터전’을 구축하려 했던 인류의 지난 세계의 제 시도들이 필연적으로 사회적-정신적 보장, 인류와 전 인류의 결합을 표현하는 상징, 그리고 종교 존립의 토대인 심각성, 생명의 무한한 신비감, 실존의 근원적 의미 파악, 기꺼이 드리는 헌신 등의 설 자리를 무시하면서 자신의 업적을 자랑했지만, 그 모습은 역시 ‘낡은 시대’의 질서를 대변하는 한계를 드러낸 이상, 이제 과감히 이들을 버리고 참 새로움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보여주신 ‘사랑’의 계명을 덧입는 일이 인류가 나아가야 할 ‘영원한’ 지혜임을 강조하고 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p.234). 그렇다!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고전 13:8)” 이 지혜를 틸리히는 다시금 우리 시대의 딜레마를 푸는 열쇠로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_ 이상훈 (기독공보)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