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히틀러의 장군들 2 : 구데리안 평전
Kenneth Macksey / 좋은땅 / 2018.2.2
독일 기갑부대의 창조자로 알려진 구데리안. 그는 히틀러에게 충성하면서도 1941년 12월 부대원들의 목숨을 지키고자 히틀러의 사수 명령에 반발하여 해임되었다.
전쟁에서 승리해야 한다는 단 한 가지 목적만을 가지고 전진하는 그였으나 적절치 않은 상부의 명령에 대해서는 솔직한 반대 의견을 제기하기도 하였고, 하급자들에 대해서는 연민의 눈길도 가지고 있었다. 특히 아내 그레텔과 전장에서 주고받았던 편지에서는 가장으로서의 책임감 같은 인간적인 면모도 느낄 수 있다.
이 책은 케네스 맥시 (Kenneth Macksey)가 쓴 구데리안 평전을 한국어로 번역한 것이다.

○ 목차
서문
INTRODUCTION(저자)
TRANSLATOR’S NOTE(한역자)
본문
- 특이한 동료
- 미래를 향한 자질
- 암흑의 나날들
- 수호자를 갈망하다
- 기갑부대의 창설
- 폴란드 전역에서의 가치 입증
- 프랑스 침공
- 영웅이 될 운명
- 뢰첸으로 가는 길
- 최후의 방어전
- 마지막 저항
- 독일 최고의 장군 – 선견자, 테크니션, 귀재
한국어판·영어판 참고문헌
○ 저자소개 : Kenneth Macksey
– 역자: 정주용
공주 한일고등학교 및 성균관대학교 경제학부 통계학과를 졸업했고 통계학 학사 (2002년), 석사 학위 (2016년)를 취득했다. 롯데카드 신용관리본부와 현대카드 리스크관리본부, 컬렉션관리본부를 거쳐 현재 BNK금융지주 산하 BNK캐피탈 리스크관리본부 CSS팀장으로 재직 중이다. 통계학의 역사, 컴퓨터 언어, Database Mining, 변수 선택법, 자료들의 순위 추정 방법에 관심이 많으며, 전쟁 영화를 보는 것과 수학 문제를 푸는 것이 취미이다. 책을 덮으면 당연히 잊어버리지만, 수학 문제에 접근하면서 얻을 수 있는 논리적 사고가 업무 진행에 도움이 된다고 믿고 있다. 전쟁에서 볼 수 있는 Humanity 때문에 전쟁사보다는 전쟁을 경험한 인물들의 평전에 관심이 많다. 옮긴 책으로는 『잃어버린 승리』(만슈타인), 『히틀러의 장군들 1 : 만슈타인 평전』(브누아 르메이)이 있으며 모델, 케셀링, 카이텔 등 다른 인물들의 평전 또는 회고록을 추가로 번역하기를 희망한다.

○ 출판사 서평
오늘날 1944년 7월 20일의 음모가 성공했더라면 ―구데리안이 아무런 영향을 끼칠 수 없었던 다양한 상황이 전개되어 그 결과로 엄청나게 극적인 재앙이 뒤따랐겠지만― 전쟁이 순식간에 종결되었을 것이고, 전쟁이 조기 종결됨에 따라 1946년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International Military Tribunal at Nuremberg)에서 독일군 참모본부 고위층이 맹렬한 비난을 받으며 재판정에 서지 않았을 것이라 주장될 수도 있다.
독일군 참모본부 및 국방군(Wehrmacht) 내의 모든 인물들 중에서 가장 뛰어났고, 효율적인 유럽의 군대를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갔으며, 훈육된 독일 직업군인 사회의 보수주의를 타파했던 하인츠 빌헬름 구데리안 상급대장은 여전히 수수께끼의 인물로 남아 있다.
한편으로 참모장교에게 요구되었던 익명성을 거부하던 구데리안은 참모장교진들에게 급진적 사고방식을 대중에게 알리라고 요구함으로써 군사 영역에서도 그러했듯이 또 다른 한편으로 정치적 영역에서도 분열을 가하며 맹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킨 인물이었다.
외부적으로는 전쟁에 몰두한 외골수인 프로이센인 (Prussian)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그의 전성기 때라면― 독일 국민에게 그는 영웅이었으며 마찬가지로 독일 병사들로부터도 숭배를 받았다.
한편 국방군 내의 적들로부터 군사 계급제에 위협이 되는 존재로 간주되었던 반면에 또 다른 한편으로 군부 장교진들에게 불쾌감을 갖고 있던 나치의 유력 추종자들에게는 ―때때로 구데리안이 가진 생각의 방향이 모든 참모장교진들보다 나치 추종자들의 그것과 매우 유사했음에도 불구하고― 군부를 대표하는 인물로 간주되었던 것이다.
구데리안이 점차적으로 국가사회주의를 지지했음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처음에 그는 히틀러와 나치를 반대했으나 결국 공산당원들과 공산주의의 위협으로 인해 만일 독일이 지독한 국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유일한 차선책이 나치였다고 믿었기에 나치에 우호적으로 변했다. 구데리안은 히틀러를 강력한 국가 지도자로 보았으며, 군부가 통제할 수 있는 인물로 보았다. 구데리안은 1933년 1월 히틀러가 권력을 얻은 후 나치의 동조자들이 군부 내 고위 계급으로 임명되는 것을 용인했다. 확실히 구데리안은 새로운 정치 지도부가 그의 생각을 수용해 주기를 희망했다. 고의적으로 진실을 무시함으로써 구데리안은 ―히틀러의 꼬드김에 의해 촉발된 폭력행위와 반유대주의에 눈을 감는 와중에― 그가 갈망했던 강력한 국가 지도자인 히틀러에 대해 무한한 신뢰를 품게 되었다.
비밀리에 감금된 방을 도청한 결과, 그는 다른 고위 장교들과 함께 히틀러와 국가사회주의의 계획을 언급하였으며 ‘국가사회주의의 기본 교리는 훌륭했다’고 인정하면서 서부 연합군을 경멸했다… 구데리안의 가장 큰 실수는 그의 오만으로부터 비롯되었다. 그의 오만은 1930년대 기갑부대의 발전, 1941년 겨울의 대규모 패전의 악화 그리고 구데리안이 히틀러에게 또는 전쟁의 흐름에 아무런 군사적 영향을 끼치지 못하던 전쟁의 마지막 해를 비롯해 모든 단계에서 독일이라는 전쟁 기계의 발전을 저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헛되이 완고하고도, 오만한 채 전쟁의 마지막까지 지칠 줄 모르고 헌신했다.

○ 독자의 평 1
하인츠 구데리안, 그를 보면 많은 것들이 떠오른다. 독일의 장군이자 기갑전을 독일의 중요한 전법으로 이끈 사람, 능력있는 지휘관 등 감상문을 쓰는 필자 또한 구데리안의 이름과 그 명성은 여러가지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접했을 정도로 보통 평범한 인물이 아님임을 인지했다. 그러나 그러한 표면적인 그에 대한 인상과 평가보다도 보다 깊숙히 한 독일 장교의 내면적인 모습들과 잘 언급되지 않았던 사실들을 보고자 한다면 어떠한 시도가 필요했고, 난 이 책을 읽는 것으로 충분히 군인스러웠던 유능한 장군을 더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다.
우선 구데리안의 출생 집안이 전문 군인 집안인 것을 바탕으로 그의 진로는 확실한 방향성을 갖기에 충분했다. 장교였던 아버지를 따라 군사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우수한 성적과 탁월한 군인적 소질을 보인 구데리안은 성장하면서 자신의 인생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는 미래의 동료인 전우들을 만났고, 유대관계를 형성하면서 군 내부에서 조금씩 자신의 입지를 넓혀나갔다. 그리고 군인의 삶에 닥쳐올 시련을 버팀목으로서 지지해준 배우자 또한 만나면서 한 국가의 장교이자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성장해나간다. 그러나 일반적인 삶의 진행과정이라도 볼 수 있는 것들은 구데리안이 처한 독일과 국제사회가 불균형하게 이룬 상황에 의해 구데리안의 생에 있어서 균형을 잃지 않고 뚝심있게 자신의 길을 개척할 수 있는 발판으로 작용했다. 예전부터 아버지를 따라 엽병부대를 비롯한 전투병과에서 싸우길 희망했던, 군인으로서 한 번쯤 가져볼 전투적 본질을 뽐내길 원͗던 그였지만 세계 1차대전에서 말단 통신 장교로 활약하면서 부터 보직을 만족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진취적으로 독일군이 적을 몰아내 확고한 승리를 따지 못하고 점점 소모전과 더불어 패배의 양상이 그려지자, 분을 참지 못하며 급한 성질을 들어내길 마다치 않았다. 전장터에서 아군의 한계를 보며 부정적 감정에 쌓인 그를 달래준 것은 그의 아내 (그레텔)였고, 구데리안은 어떻게든 평점심을 가지고 이 절감되는 소모전 속 총체적인 해결의 필요를 느꼈다.
만약 그가 맹목적으로 실제로 전투를 치루는 곳에 자원하여 싸우기만을 희망했다면, 구데리안에 의해 이끌어진 기갑전은 다른 방식으로 전개되거나 혹은 그 출현이 좀 더 늦어져 훗날 2차대전에 쓰일 독일군 기갑편제나 교리 등에 충분히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 본다. 하지만 전투에서 좀 더 떨어져 다른 시선으로 현실을 바라볼 기회를 얻은 경험은 대단히 중요한 것으로, 미래 독일의 기갑사단이 강력한 힘으로 작용하도록 했다. 이와 같은 관찰과 배움의 자세로 부터 전쟁이 끝난 이후 축소된 독일 군부 내에서도 그는 차량과 관련된 업무를 도맡으며, 확고한 승리를 얻을 수 있는 기동성 있는 것에 주목하게 된다. 바로 전차(Panzer)이다. 패전국 독일은 공개적으로 전차와 같은 고급 무기를 개발할 수 없는 처지였기에, 상호간 국익을 취할 수 있었던 러시아와 비밀리 협약을 맺고 전차 개발 및 실험을 하게 된다. 이외에도 전차의 활용과 제병합동에 대한 교리 등은 영국이 우세했던 상황에 전차 전력이 전무했던 독일군의 기초부터 하인츠는 준비해나갔다. 한 때의 적국에서 진보된 기술과 교리를 받아들여 적극 활용͗고, 기갑전을 위해 통신의 중요성을 이미 알아차렸던 장교는 보다 더 강력한 기갑전력을 꾸리기 위해 전념했다. 즉 구데리안이 고안해낸 기갑 중심의 기동전의 밑바탕은 하루 아침에 일궈낸 것이 아닌 그가 다양한 부서에서 실무를 맡고 최선을 다하면서 얻어낸 값진 산물들의 총합체였다. 새로운 공화국이 들어서고 베르샤유 조약에 의해 힘이 빠진 독일군에 비관적이고 힘이 빠지는 시선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미래를 바라본 그는 뜻이 맞는 장교들과 함께 상호적인 업무 추친과 의사 교류를 해나갔다. 하인츠 구데리안은 이 속에서 기갑전의 중요성을 피력했고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기갑전력에 대한 그의 의견을 확고해졌다. 물론 이 때도 기갑사단을 따로 편제하여 준비시키고 새로운 교리를 적용시키는 것에 대한 외부적 반감과 더불어 구데리안 본인의 전투 병과에 대한 욕심과 야망은 공존했다. 하지만 초임 장교시절과 마찬가지로 완강히 개인적 욕심을 고집하기 보다 현실을 수용하여 그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그의 주변에는 그와 뜻을 같이하는 좋은 장교들(대표적으로 상관 루츠)도 있었고, 이들과 함께 차량화 업무에 매진하던 그는 훗날 기갑사단의 기초를 만들어냈다. 결국 기갑전의 아버지라고 불릴 수 있던 업적이 만들어지기까지 과정에서 그 힘의 원천은 최전선에서 싸우는 것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었던 그가 처했던 환경들에 기인했다봐도 무방할 정도로, 싫어했던 곳들의 업무는 그에게 큰 보상으로 돌아왔다.
정치적으로도 독일이 무너진 뒤 정부에 대한 불신과 이후 불안정한 독일사회에서 차기 정권의 주자가 될 국가사회주의노동자당 (NSDAP – 나치당)의 등장 등 군인이지만 관심을 갖고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던 그였으나, 군인으로서 본업을 중시한 그 답게 새로운 것에 집중했기에 기갑의 진가는 2차대전에 잘 들어날 수 있었다. 이를 보고 직업군인으로서의 그의 모습은 나에게 있어 어느정도는 익히고 싶은 매혹적인 부분이다. 자신의 욕심을 접고 목표와 이상을 가지고 현실에 맞게 적응하여 일궈낼 수있는 힘과 일에 매진하여 결과를 낼 수 있는 추진력 등은 비록 2차대전에서 나치 독일의 강인한 무기가 되어 비극적으로 인류사에 다가왔으나 엄연히 배울만한 점이다. 감상을 하는 본인 또한 구데리안 장군에 비교하면 성격이나 능력, 이 외 자세에서도 상당히 부족한 점이 많다. 이 책을 읽어나가면서 그의 행보에 점점 더 관심을 갖고 주목했고, 나는 그가 그의 과거를 통해 준는 교훈들을 통해서 큰 만족감을 얻었다. 구데리안 장군을 표면적인 기갑전의 대가로만 알고 있던 것과는 사뭇 다르게 그 명성이 어떻게 생겨났는 지 일련의 과정을 훑어가며 그의 생애를 보는 것이 충분히 시간을 들일 값어치가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 구데리안이 자주 인용한 몰드케의 명언 ‘First reckon, then risk. (우선 실행하고, 걱정하라)’은 구데리안 그 자체를 의미한다고 봐도 좋을 정도로 이 독일 장군은 또한 흥미로웠다. 반면 전에 읽었던 만슈타인 평전이나 구데리안 평전에서도 접했던 군이 나치와 엮인 전쟁범죄 문제 등 또한 구데리안이라고 해서 아무리 이러한 업적을 쌓았다고 할 지라도 그도 후일 나치 독일과 엮인 군의 장교이자 전투를 지휘한 지휘관이었고, 신 정부가 들어서고 2차대전이 진행되는 과정에 엄연히 발생했던 문제들에서 자유로울 순 없다. 세계 2차대전을 해나가면서 히틀러의 국가사회주의를 지지했던 것부터 시작해서 나치 정책에 동조한 모습은 기갑에 대한 이미지 외에도 충성이라는 단어하에 나치 독일에 크게 영향을 끼쳤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 평전을 통해 필자 본인처럼 객관적인 사실들과 주관적 의견들 외에도 감상자가 느낄 수 있는 방식이 있을 정도로 감상의 방법은 다양한 만큼 구데리안 인물 자체에 흥미가 있거나 기갑전과 2차대전에도 관심이 있는 누구라면 자신의 방식대로 한 번쯤 읽어보길 권한다. 이 책은 독자로 하여금 시간적 흐름에 따른 전개와 인물의 매 상황에 따라 어떠한 견해를 가졌는 지 보는 것, 기갑전이 독일의 핵심적으로 무기로 쓰여 전장에서 활용되는 모습을 보는 것을 통해 인간으로서의 구데리안과 군인으로서의 구데리안의 모습을 진하게 접하도록 독자들을 이끈다. 읽다보면 역사의 큰 획을 그었던 인물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새로히 혹은 재확인 하는 차원에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 독자의 평 2
하인즈 구데리안. 제2차 세계대전사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이름이다. 기갑의 아버지라는 호칭이 있는 그는 폴란드, 프랑스 그리고 러시아에서 종횡무진으로 활약을 했다. 특히 그가 이끄는 기갑부대는 기존 어떤 군대도 이루지 못한 성과를 만들어냈다. 이런 전설적인 인물의 평전을 읽는다는 건 어쩌면 나에게는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특히 평전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더욱더 호기심이 갔다. 제1차 세계대전은 현대전이라는 개념이 처음으로 등장한 전쟁이다. 인간의 상상력이 총동원된 전쟁이었다. 유럽인들은 그동안 쌓았던 지식을 마치 사람을 얼마나 더 효율적으로 죽일 수 있느냐에 맞춰 발휘했다. 과학의 발달은 군사 전략의 기본부터 뒤바꿔 놓았다. 기존의 무기들도 보다 멀리, 보다 강력하게 그리고 보다 정확하게 상대를 공격할 수 있게 되었다. 전장의 범위는 땅과 바다뿐 아니라 하늘까지 확대되면서 전쟁은 이제 입체적으로 구사해야 했다. 늘어진 적진을 뚫지 않고도 상대방의 수도에 폭격을 가할 수 있게 되었다. 대량생산이 가능해 지자 대규모 소모전도 가능해졌다. 병력의 희생 따위는 무시한 작전이 수립되었다. 통신의 발달로 장군들은 전선을 살펴보지도 않고 지도만 보고도 작전 지휘가 가능해졌다. 하지만 제1차 세계대전은 이제 막 현대전의 새로운 개념이 도입만 되었을 뿐이었다. 엄청난 희생 끝에 기존에 군사 전략으로는 새로운 시대의 무기와는 맞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전쟁을 겪은 나라에서는 새로운 무기에 맞춘 새로운 군사 전략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는 당시 패전국인 독일도 마찬가지였다. 전쟁을 겪었던 독일의 젊은 장교들은 그들의 패배를 곱씹어 보며 절치부심을 하게 된다. 그리고 새로운 전쟁을 준비하게 된다. 그런 장교 중에 무선 통신병과의 하인즈 구데리안도 있었다.제1차 세계대전 종전 후에도 독일은 여전히 전쟁 중이었다. 독일과의 단독 강화를 한 러시아는 갈라지면서 동유럽 지역의 지배력을 놓고 여전히 분쟁 중이었다. 그 분쟁의 소용돌이에는 러시아 적군, 러시아 백군, 폴란드를 비롯한 발트 3국의 군대 그리고 독일의 자유 군단이 있었다. 이런 분쟁의 소용돌이 속에 구데리안은 위대한 독일 다시 세울 수 있는 비스마르크와 같은 철혈 통치자를 원했다고 한다. 구데리안은 뤼디거 데어 폰 골츠 장군 휘하의 철의 사단에서 복무했다. 이 부대는 발트 삼국에서 전투를 벌인다. 물론 독일의 이익을 위해서였다. 라트비아를 비롯한 발트삼국의 입장으로 봤을 때는 점령군이나 다름없었다. 독일의 참전 명분은 러시아 적군과의 전투였지만 리가를 점령하며 라트비아군과도 전투를 벌였다. 이런 혼란한 전투를 통해 구데리안은 끊임없이 실전에 대해서 생각해 봤을 것이다.여담이지만 골츠 장군의 철의 사단 능력은 <디펜더즈 오브 리가>라는 영화에 나온다. 그 영화에서는 독일군은 끝판왕 급으로 나온다. 이런 다양한 전쟁 경험은 구데리안에게 새로운 경험을 불어넣었을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맺어진 자유 군단 사람들과의 관계는 향후 자유 군단에 있던 사람들이 나치에 가입하면서 계속해서 이어지게 된다. 사실 제1차 세계대전 그리고 그 후에 벌어진 발트의 분쟁에 구데리안이 참전했다는 점은 놀라운 일이었다. 통신과 같은 지원 병과에서 그가 어떻게 기갑이라는 전투 병과로 변신하게 되었는지 확실히 알았기 때문이다. 이미 이 정도에서 난 구데리안이라는 인물이 범상치 않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문득 든 생각은 이 사람은 기회주의자가 아닐까란 생각이었다. 사실 기회주의자들은 상당히 좋지 않은 어감이다. 자신의 이익을 쫓기 때문에 능력과 상관없이 언제나 주변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는다. 하지만 전쟁에 임하는 군인으로서 승리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물고 늘어져 결국 승리를 챙 취하는 건 칭찬받을 일이 아닌가 한다. 그것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아남아야 승자가 되는 전쟁이라면 더욱 그런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군사적인 경우에서만이다. 그가 보여준 정치적 행동은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계획적이다. 그 덕에 그로 인해 그는 출세할 수 있었다. 그는 전통적 군인으로 야망이 컸던 만슈타인도 못한 육군참모총장을 역임했기 때문이다. 비록 할 수 일이라고는 거의 없는 육군참모총장이었지만 말이다. 그가 육군참모총장이 되는 과정에서 그는 히틀러 암살 세력과 연관이 있었다. 하지만 적극적인 동조도 그렇다고 결사적인 반대도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그 상황을 이용하려고만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이미지가 심어지자 그가 주장한 깨끗한 국방군의 이미지는 전범으로 기소를 피하고자 했던 그의 기만적 행동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부하들을 위해서가 아닌 자신을 위해서란 생각이 들었다. 이런 측면에서 저자는 군사적으로는 구데리안을 높게 평가하지만 정치적으로 상당히 안 좋게 평가한다란 생각이 들었다. 인간적으로는 또 좋게 평가하는 부분이 있는 반면 폄하하는 부분도 있다. 이렇게 구데리안에 대한 평가가 오르락내리락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러다 문득 저자가 왜 그런가 생각해 봤다. 저자의 이력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왕립 기갑부대 복무 경력이 있다. 혹시 구데리안의 부대와 전투를 벌였던 적이 있지 않을까란 생각을 해본다. 실제로 맞섰던 적장으로서 애증이 교차하다 보니 생긴 일이 아닐까라 상상해 본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된 충격적 주장은 바로 기갑 전술의 선구자 리델 하트가 독일 기갑 전술에 실질적으로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저자는 전후 리델 하트가 독일군 장성들을 만나며 자신의 기갑 전술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독일군 기갑 전술을 세웠다고 해달라는 부탁을 하고 다녔으며 그 대상에는 독일의 기갑 총감 구데리안에게도 있었다. 실제로 구데리안의 독일어판 회고록 초판에는 어디에도 리델 하트에 대한 언급이 없었지만 이후 영어판에는 리델 하트가 언급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이와 관련된 서신도 언급하고 있다. 이게 맞는다면 독일군의 기갑 전술과 리델 하트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게 되는 것이다. 이건 내가 그동안 알고 있던 사실과 많이 틀린 부분이라 정말 충격적이었다. 영국인 (그것도 영국 기갑 부대 출신의 군인이었던)이 세계적으로 추앙받는 리델 하트의 업적을 폄하하는 진실을 밝히다니 대단한 용기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가 퍼시 호바트 장군 휘하였기 때문일 수도 있다. 영국의 별난 기갑전 선구자 퍼시 호바트 휘하에서 그에게 훈장까지 받았던 케네시 맥시는 그의 상관이었던 퍼시 호바트 장군을 존경하는 마음에 그의 평전까지도 썼다. 그런 계보로 인해 그는 리델 하트를 맘 놓고 깔 수 있었던 아닌가란 생각을 해본다. 이 책은 1975년에 나온 책으로 벌써 나온 지 45년이 다 되어간다. 하지만 역자는 이후 추가된 정보를 각주로 달 아줌으로써 45년이라는 시간을 간극을 메꿔주고 있다. 그만큼 공이 많이 들어간 책이다. 아쉬운 건 출판계에서 일하는 입장으로 조금만 더 신경을 썼으면 더 좋은 결과물이 나왔을 것이라는 점이다. 조금만 더 신경 써서 홍보하고 조금만 더 신경 써서 편집했다면 더 많은 독자들이 이 흥미로운 이야기에 더 빠져들 수 있었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말이다. 그래도 이 정도의 훌륭한 성과물이 나온 것은 역자가 그만큼 열정을 이 책에 쏟아부었기 때문일 것이다. 남은 책들은 부디 출판사에서 좀 더 신경을 써주길 바란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