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25시
콘스탄틴 비르질 게오르규 / 홍신문화사 / 2012.12.26

– ’25시’, 그 누구도 구원할 수 없는 절망의 시간
주인공 요한 모리츠는 판타나 마을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순박한 농부이다.
그의 아내를 탐냈던 헌병 때문에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강제 노동 수용소로 끌려가면서부터 그의 비극은 시작되었다.
헝가리로 탈출하여 또다시 첩자의 누명을 쓰고 고초를 당해야 했다.
그러나 다행히도 독일 장교의 눈에 띄어 포로 감시병으로서 안정된 생활을 하게 되었고, 포로들의 탈주를 도우며 자신도 함께 연합군 점령지구로 도망쳤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며 그는 백여 곳의 수용소를 전전해야 했고, 체포령이 내려져 석방된 지 채 하루도 안 되어 다시 감금되고 말았다.
파란만장한 역사적 비극에 철저히 유린당하고 희생되었던 인간의 내면을 절절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독일로 망명했지만 루마니아인이라는 이윯 체포되어 비참한 수용소 생활을 해야 했던 저자의 생생한 체험이 이 소설의 바탕이 되었다.
요한 모리츠라는 평범한 인간의 비극적 인생을 통해, 약소 국가의 민족이 겪어야 했던 눈물겨운 고난을 재현했다.
’25시’는 그 누구도 구원할 수 없는 절망의 시간을 상징한다.
인간으로서의 존엄한 가치를 상실하고 일차원으로 축소되어 가는 사회를 의미하는 것이다.
○ 목차
25시
작품 해설
C. V. 게오르규 연보

○ 저자소개 : 콘스탄틴 비르질 게오르규 (Constantin Virgil Gheorghiu)
콘스탄틴 비르질 게오르규는 1916년 루마니아 라스베니에서 태어났다.
부쿠레슈티 대학과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신학과 철학을 공부한 게오르규는 재학 시절 시를 발표함으로써 문단의 주목을 받는 시인이 되었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징집영장을 받고 전장에 나갔던 그는 전쟁의 온갖 참상을 목격하고 군 생활을 마친 뒤에는 집필 생활에만 전념하게 된다.
1940년 시집’눈 위의 낙서’로 루마니아 왕국상을 받았으나 루마니아에 공산정권이 세워지자 게오르규는 독일로 망명했다.
그러나 독일도 연합군과 소련군에게 점령되고 연합군의 적성 국가인 루마니아 출신이라는 이유로 체포되어 수용소에 감금, 2년간의 비참한 포로 생활을 하게 된다.
석방된 뒤 이때의 체험을 토대로 ’25시’ 집필을 시작하였고, 독일에서의 생활도 여의치 않게 되자 1949년 프랑스로 망명, 세계를 놀라게 한 작품 ’25시’를 프랑스에서 출간하게 된다.
그 외 ‘제2의 찬스’ ‘혼자 떠도는 사내’ ’25시에서 영원의 시간으로’ 등의 작품을 발표한 그는 1992년 76세를 일기로 프랑스에서 눈을 감는다.
– 역자 : 최규남

○ 독자의 평 1
시간이 과거로 돌아가 버린 것만 같다는 뉴스를 올해처럼 많이 들었던 때가 최근 있었나 생각하다 ’25시’를 떠올렸다. 모든 구제의 시도가 무효된 시간 25시! 그러나 트라이안은 25시가 현재의 시간이라고 말한다. 인간 존중은 사라지고 오로지 기계인간으로 전락한 인간을 고발하기 위한 소설의 제목으로 25시가 딱 맞는 상징이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최근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과거로의 회귀 같은 시간이란 결국 ’25시’와 참 많이 닮은 듯 하다. 미래를 생각해야 하는데 과거로 다시 들어간 것 같은 두려움. 그러나 현실은 이미 구제의 시도가 무효가 된 시간인지도 모르겠다. 총을 겨눈 전쟁이 아니어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신음소리의 시작이 어디에서 시작되였는지를 생각해 보면 답은 간단해 보였다.
’25시’는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다. 그러나기존의 전쟁 소설과는 좀 다른 느낌을 받았다. 전쟁으로 인해 현대문명의 종말과 인류가 파멸하게 될 지 모른다는 것을 지적하기 때문이다. 기존의 전쟁 소설들 처럼 역사에 유린 당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왜 우리가 전쟁을 하게 되였는가에 대한 질문을 좀더 포괄적으로 던져 준다. 그래서일까? 전쟁을 다룬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전쟁소설로만 읽히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수많은 문제들 가장 가깝게는 생명을 전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듯한 작태들을 보면서 작가의 냉소에 가까운 지적이 소름돋게 맞아 떨어지는 느낌이다. 여기서 강조하는 것은 기술사회의 출현이다. 이것은 인간에게 편리함과 안락함을 제공했지만 결국 여러 세기에 걸쳐 창조한 것을 파괴하고 인간 멸시의 관념을 끌어 들이게 되였다는 거다. 인간을 존중하지 않으니 전쟁이란 것을 할 수 있는 것일테고, 지금의 신자유주의 시대에서는 인간을 하나의 부속품 그 이하도 이상도 아니게 생각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인간존중이 사라지는 시대로 가고 있는 시간은 ’25’시 였다.
도대체 이런 삶이 있을까 싶은 순박한 농부 요한 모리츠와 모든 것을 이미 다 알고 있어 두려웠던 작가 트라이안의 인생을 따라가면서 숨쉬기의 곤란을 수없이 느껴야만 했다. 밑줄과 한숨의 연속으로 읽었지만 문체의 흡인력은 잔인하게도 놀라워 단숨에 읽어 버렸다. 이렇게 속도감 나게 읽어도 되는 걸까 싶게… 찬찬히 다시 읽어 봐야 겠지만…시간을 좀 흘려 보내고 난 후에나 가능하겠다.
사람들은 이 사회를 논리적인 질서로써 구원하려고 하지만 결국 바로 그 질서가 이 사회를 죽이고 있는 거야.이것이 서구 기술 사회의 죄악이다.그들은 산 사람을 죽이고 인간을 이론과 추상과 계획의 희생물로 만들어버리지.그것이 바로 인간을 희생물로 바치는 현대적 형태야.(p.403)
정의와 자유에 대한 인간의 갈망을 광기라고 간주하는 그 순간부터 인간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p.446)

○ 독자의 평 2
’25시’는 루마니아 출신의 작가 게오르규가 2차 세계대전과 연합국의 적국인 루마니아 사람이라는 이유로 2년 동안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경험을 토대로 쓰인 소설이다. 책은 요한 모리츠라는 인물을 등장시켜 작가의 경험을 좀 더 극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 내용은 정말 아찔하다 못해 끔찍할 정도이다.
간단한 줄거리는 이렇다. 주인공인 요한 모리츠는 돈을 벌기 위해 미국으로 가고자 한다. 하지만 여자친구인 스잔나과 임신을 하자 어쩔 수없이 미국행을 포기하고 그녀와 결혼하게 된다. 이후에는 평범하고 행복한 삶이 계속 되면 좋으련만 아내를 탐하고자 하는 군인에 의해서 그는 강제로 징집 당하게 된다. 명목은 유대인. 하지만 요한은 유대인이 아니다. 뭔가 잘못된 거야 하고 억울해 하면서도 곧 풀려나겠지, 하고 생각한 그의 삶은 더욱 꼬이기만 한다. 며칠이겠거니 했던 가족과의 이별은 6개월 이상 흘러가고. 당시 2차 세계대전의 혼란함 속에서 그는 계속 다른 수용소로 가게 된다.
소설이니까 가능한 일이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만약 내가 주인공이라면 어떻게 행동 할 수 있을까. 있는 그대로의 ‘나’를 그들에게 증명할 수 있을까. 국가 또는 집단의 정당성(?)을 유지하기 위해 개인을 희생시킨다면. 그 희생양이 어떤 이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 되어버린다면, 우리는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니 소설 속 주인공처럼 신에게 살기 위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죽여 달라고 기도할지도 모를 것이다.
지나간 역사를 통해 배운다고 하지만. ’25시’와 같은 비슷한 상황이 닥쳤을 때 우리는 행동할 수 있을까. 아니 그러한 가정을 하기 보다는 그런 상황이 오지 않도록 우리 주변의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서 한번쯤은 의문을 가져야 할 것이다.

○ 독자의 평 3
그는 1916년 루마니아의 동부 지방인 몰다비아 지방의 작은 산마을에서 라스뵈니 넴츠(Rasboenei Neamitz)에서 그리스 정교 사제인 아버지의 6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당시 루마니아는 5백여 년에 걸친 오스만제국(터키)의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 왕국이 되었으나, 프랑스와 영국이 옹립한 왕이 통치하면서 백성들은 외세의 지배를 받던 시대와 별로 다를 바 없는 생활이었다. 발칸 반도에 있는 루마니아는 풍부한 지하자원을 가졌으나, 소수의 지배계급에 의한 억압과 착취로 백성들의 생활은 매우 궁핍했다.
그러나 가난하게 살았던 어린 시절에 게오르규의 눈에 비친 아버지는 그리스 정교의 성화에 나오는 성인 같은 인물이어서 그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서 신부가 되려고 했다. 또, 그는 어머니로부터는 아름다움에 대한 사랑과 시인으로서의 자질을 물려받았다.
결국 불행한 조국 루마니아, 아버지와 어머니 등 세 스승으로부터 받은 영향이 그의 인격 형성에 큰 영향을 끼쳐서 그는 인간을 소중한 ‘개인’으로 보았다. 그것은 개인 한 사람이 아니라 인간 전체의 실상으로 이어지는 것이어서 그는 한 인간의 생명을 빼앗는 자는 전 세계를 파괴하는 것과 같고, 한 인간의 생명을 구제하는 자의 공로는 전 세계를 구제하는 자의 그것과 같다고 생각했다.
이슬람 국가인 오스만제국이 오랫동안 루마니아를 통치하면서 루마니아인의 그리스 정교 신앙을 꺾을 수 없음을 알게 되자, 루마니아인에게 신앙 대신 자식을 국가에 바치라는 가혹한 요구를 했다. 그래서 루마니아인들은 신앙을 위해 자녀들을 대신 바치는 이른바 ‘피의 조공’을 5세기 동안 겪었는데, 어른들은 자식에 대한 출생을 비밀로 하는 풍습이 남아 있어서 그의 아버지는 게오르규의 출생신고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가 9살이 되었을 때 학비가 없어서 신학교에 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아버지를 따라 신부가 되려고 생각했던 그는 큰 좌절과 함께 학비와 기숙사비를 제공하는 군사예비학교인 왕립 키시네프 중학교에 입학했다.
게오르규에게 군관학교 진학은 영혼의 죽음을 의미하는 고통이었는데, 그런 느낌은 먼 훗날 그의 작품‘키알레싸의 학살’에서 교사 아포스톨이 수염이 안 나서 신학교를 그만두어야 했을 때의 절망으로 나타났다.
중학교 졸업 후 그는 고학하며 부쿠레슈티와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신학과 철학 공부를 했는데, 틈틈이 시를 써서 20세 때 이미 시인으로서의 명성을 얻었다. 그가 신문사에 시를 기고하며 부쿠레슈티 대학에 다니고 있을 때, 어느 날 아버지가 찾아왔다. 그는 20년 동안 누더기 같은 사제복을 걸친 아버지 모습이 너무 가슴 아파서 어떤 독자가 선물한 스키 구두를 아버지에게 드렸다.
그러나, 며칠 후 페트로다바는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스키 구두를 신고 떠나는 아버지를 역에서 전송한 것이 아버지와의 마지막이 되었다.
대학 시절에 게오르규는 부쿠레슈티에서 명문가의 딸 예카테리나 부르비아와 사랑하게 되었는데, 전쟁이 일어나기 닷새 전인 1939년 8월 24일 두 사람은 결혼했다.
그녀는 국회의장의 딸로 어머니는 신문사 사장이었으며, 그녀 자신은 루마니아에서는 보기 드문 여자 변호사였다. 전쟁은 가난한 시인과 변호사인 그들이 결혼하게 했고, 풍요한 환경에서 자란 에카레리나와의 결혼은 이질적인 두 세계의 결합을 의미했다.
그들이 결혼할 때 루마니아는 영불 양국의 영향이 크게 미쳤는데, 전쟁에서 독일이 우세해지자 루마니아에는 친 파시스트인 철위단의 횡포가 나날이 심해졌다. 3주일 만에 수상 아르만드 칼리네스코가 친 파시스트들의 손에 암살당하고 민주정권도 무너지자, 23세의 젊은 시인 게오르규는 파시스트들의 만행과 폭력을 고발하는 ‘칼리네스코에게 바치는 저항시’를 출판했다.
암살자들이 장악하고 있는 지역에서 저항시를 출판한다는 것은 사실상 목숨을 건 행위였는데, 친 파시스트 정권의 혁명이 일어나던 날 그는 죽을 각오를 하고 집을 나섰다가 파시스트에게 붙잡혔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으나 그의 책들은 모두 불살라지고, 1944년 8월 루마니아에 공산정권이 세워지자 그는 부인과 함께 루마니아를 탈출했다.
그러나 독일에 주둔하고 있던 미군은 그가 적성국인 루마니아인이라는 이유로 그들 부부를 2년간이나 감금했다. 석방된 후에도 그들은 주거증명이 없어서 취직할 수 없어서 자선단체의 구호를 받으며, 미국·캐나다·남미 등으로 이민 가려고 노력했지만 실패하자 33세 때인 1948년 프랑스로 망명했다.
파리에서 거주하면서 작품도 프랑스어로 발표했는데, 1949년‘25시’가 파리에서 발표되면서 그는 일약 세계적인 작가가 되었다.
소설 ‘25시’에서 주인공 요한 모리츠는 판타나의 초원처럼 자연이 준 모습을 그대로 지닌 소박한 성품의 농부는 어느 날 까닭 없이 징발당하여 유대인 캠프에 수용된다. 거기에서는 아무도 그를 루마니아인으로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가까스로 그는 헝가리로 탈출하지만, 헝가리에서는 그를 루마니아인이라는 이유로 고문을 한다. 헝가리 정부에 의해서 독일로 팔려 간 그는 인종학자 뮐러 대령을 만나게 되면서 이번에는 게르만 민족의 정통파인 ‘영웅족’의 표본이란 판정을 받는다.
군인이 된 그가 프랑스 포로를 구출하여 미군 진영에 이르자, 그들은 처음에는 연합군을 위한 영웅 대접을 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적성국가인이라는 이유로 수용소에 가둔다. 13년간이나 수용소에서의 수난의 날들이 계속되면서 1백여 군데의 수용소를 거친 후 어느 날 그는 체포되던 때처럼 영문도 모르게 석방된다. 그러나 석방된 지 18시간 만에 다시 동구인 이라는 이유로 억류당한다.
이렇게 파란만장한 모리츠의 비극은 그는 항상 유대인·루마니아인·동구인, 적성 국가의 국민이라는 이유로 고문당하고, 강제노동하면서 한 번도 요한 모리츠로서 대접받지 못했다는 점에 있다.
여기에 문제의 핵심이 있다.
소설 ’25시’는 인간사회에서 존재하지 않는 허무의 시간을 의미하는데, 그는 소설 ‘25시’를 통해서 자유와 개성, 신앙심과 같은 인간적인 모든 가치를 암살하고 병들게 하는 적으로 기계 문명을 지목하고, 기계 문명은 또한 기계 주의적 전체주의를 낳고 있음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그는 공산주의의 출현 또한 기계 문명의 속성인 획일성과 전체성으로부터의 산물이라고 보고 있다. 그에 의하면 나치의 등장은 기계 문명의 필연적 산물이며, 물질문명을 추구해 온 서양문화의 피할 수 없는 귀결이었다. 따라서 게오르규의 인간주의는 단순한 물질문명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잘못된 서양 역사에 대한 저항인 것이다.
’25시’는 게오르규에게 작가로서의 명예와 위치를 확고히 할 수 있었으나, 그는 ‘제2의 찬스'(1952년) ‘고독한 나그네'(1954년) ‘기적을 구걸하는 사람'(1958년) ‘가죽 채찍'(1960년) 등의 역작들을 잇달아 발표했다. 그런데, 소설 ‘제2의 찬스’를 발표하여 세계문단에서 지위를 확보할 무렵에 비극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즉 제2차대전 중에 벳사라비아에서 자행된 학살사건을 규탄한 그의 작품 ‘불붙는 드니에스터 강변’은 친독파인 반파시스트들이 친 파시스트인 철위단을 소탕하여 벳사리비아 주민의 3분의 1을 희생시킨 집단학살 사건을 고발하여 학살자의 불의를 고발했던 것이 파시스트로 몰리게 된 것이다.
프랑스 레지스탕스 계열의 문인들 시각에서 그는 분명히 파시스트의 옹호자여서 그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고 거리에 나다니는 것조차 위험했다. 전에는 파시스트가 그의 책을 불살랐듯이 이번에는 반파시스트가 그의 책을 불살랐다. 그것은 그가 전에 겪은 어느 고통보다 더 참혹한 것이었으며 차라리 감옥에 갇히는 편이 낫다고 생각할 정도였다고 작가는 고백하고 있다. 그가 우리에게 ’25시’를 통해서 던진 문제성은 아직도 25시의 상황이 끝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실제로 게오르규는 전쟁이 끝난 후 조국 루마니아로 돌아가지 않고 프랑스에 머무른 것도 루마니아가 소련의 위성 국가가 되어 공산주의화 되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작가로서의 성공은 그의 어릴 때의 꿈을 실현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어서 1963년 그리스 정교회로부터 사제 서품을 받기에 이르렀다. 또 1966년 6월에는 부쿠레슈티 성무원에서 성직자 최고의 영예가 되는 외코노므 스트라브로포르 위원에 선정되었고, 1970년에는 콘스탄티노플에 있는 전 세계 공의회의 고위성직자로 추대되기도 했다. 이로써 게오르규는 문학뿐만 아니라 종교적으로도 지도적 위치에 서게 되었는데, 특히 게오르규는 동양의 문화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유명하다. 그는 한국을 세 번이나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것으로 그의 동양에 관한 관심 그리고 강대국의 식민생활을 했던 한국에 대하여 조국 루마니아와 같은 동병상련을 느낀 것이다. 또, 그는 서양의 물질문명에 대해 그가 품고 있는 깊은 회의와 반감을 동양의 정신적 문화에서 그 해답을 찾으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