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이해
고린도전서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1. 저자
본서의 기자가 사도바울이라는 사실은 내증(고전1:1, 16:21)으로 보아서도 만족되며 문체나 바울이 기술한 다른 서신들, 또는 사도행전에 기록된 바울의 언사들을 비교해볼 때 사도바울로 확신된다. 또한 초대교회 시대의 각종 문헌들이 본서의 기자를 교회의 설립자이기도 하였던 바울로 명시하고 있는 외증으로도 명백히 입증된다.
2. 기록연대
바울이 주후 53년 제 3차 전도여행시 에베소에 머물면서 교회 내에 여러 오류가 발생한 고린도 교회에 디모데를 급히 파송하게 되었고(고전4:17) 급기야는 주후 55년경 본서까지 기록하게 됨)
3. 집필동기
주후 53년경 바울은 혼자서 제3차 전도여행을 떠나게 되었고(행18:23) 에베소에 도착하여 3년을 지냈다. 에베소에 있는 동안 그는 고린도에서 온 사람으로부터 고린도교회의 어려운 상황에 대한 소식을 듣게 되었고 주후 55년경 에베소에 디모데 등의 사역자를 고린도교회로 급파하는 한편 마침내 사도서한을 발송함으로 고린도교회의 오류를 시정하도록 촉구하고자 본서를 집필하게 되었다.
4. 고린도의 위치 및 문화, 역사이해
1) 고린도의 지리적 위치
고린도는 지금의 그리이스 본토와 펠로폰네소스를 연결하는 지협의 서남단에 위치하고 있다. 그리이스의 남부는 거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서쪽으로는 고린도만, 동쪽으로는 사로스만이 육지 안으로 깊이 파고들어 와 있다. 그 양쪽을 연결하는 것은 폭이 불과 4 마일밖에 안 되는 지협뿐이다.
그 좁은 목부분에 고린도가 위치해 있었다. 그러한 조건은 필연적으로 고린도가 세계의 상업과 무역의 중심지가 되게 하였다. 그 곳은 북쪽과 남쪽을 잇는 육교를 관장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동서를 뚫는 고린도운하(네로 황제에 의해 착공되었다가 곧 중단된 뒤, 1893년에 완성되었다)가 개통되기까지는 양 해로를 연결하는 요충지였다. 그리이스의 남단은 마레아곶(곳)이라고 하였는데, 당시 마레아 곶을 도는 것은 너무도 위험하였다. ‘마레아를 도는 사람은 고향을 잊어버려라.’ ‘마레아를 도는 사람은 먼저 유서를 쓰라’는 속담이 생길 정도였다. 그래서 선원들은 마래에를 도는 항로 대신에, 사로스만으로 들어가서 배가 작으면 그것을 바다로부터 끌어올려 로라 위에 싣고 지협을 횡단하여 반대편 바다(고린도만)에 내려놓은 방법을 취하였다. 그래서 이 해협을 ‘디올코스’(끌고 넘어간다)라고 불렀다. 4마일의 지협횡단으로 마레아 곳을 도는 200마일의 뱃길을 가지 않아도 되었으니 고린도의 지리적 중요성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사람들은 고린도를 그리이스의 다리, 그리이스의 사교장이라고 불렀다.
자연히 고린도의 주위에는 부유한 도시들이 생겨났다. 지협의 서단에 레기엄, 동단에 겐그레아, 약간 떨어진 곳에 쇼에노스가 있었다. 팔라는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드디어 사치품이, 문명세계의 모든 국민이 모여드는 이 시장으로 집결되었다. 아라비아의 향유, 베니게의 대추야자 열매, 리비아의 상아, 바벨론의 주단, 길리기아의 산양털, 루가오니아의 모직물, 브루기아의 노예 등등.’ 일찍이 호머는 ‘부유한 고린도’라고 말한 적이 있다.
고린도가 유명하게 된 또 다른 이유는 고린도가 지협 대 경기(Isthmian Games: 옛날 고린도 지협에서 2년에 한번씩 열렸던 경기로서 올림픽 경기와 더불어 고대 그리이스의 4대 경기중 하나였다)가 열리는 장소였기 때문이다.
2) 고린도의 문화
지리적 위치와 관련된 것이겠지만, 고린도는 악덕과 부도덕의 상징이기도 하였다. ‘Korinthiazesthai’(고론도인과 같이 생활한다)라는 말이 헬라어의 하나가 되어 타락과 방탕한 가운데사는 태도를 의미하게 되었다. 이 말은 영어에 들어와서 고린도인하면 무모하고 방탕한 생활에 빠진 부자집 탕아를 두고 한 말이 되었다. 그리이스 후기의 작가 아엘리안은 그리이스 연극에 고린도인이 등장할 때면 언제나 술취한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하였다. 고린도라는 말 자체가 타락이란 말과 동의어가 되어 버렸다.
그러나 고대 고린도에 있었던 더 큰 악의 상징은 아크로폴리스 언덕 위에 있는 사랑의 여신 아프로다일의 신전이었다. 거기에는 1천명의 여사제가 있었는데, 이들은 소위 거룩한 매춘부로서 밤이 되면 아크로폴리스 언덕을 내려와서 고린도 거리에서 몸을 팔았기 때문에 ‘여간 부자가 아니면 고린도에 갈 수 없다’는 속담까지 생겼다.
3) 고린도의 역사
이렇게 부유하고 사치와 향락을 즐기던 도시였지만 주전 146년 고린도 역사에 중요한 분기선이 그어졌다. 당시는 로마가 그리이스를 정복하려고 할 때인데, 고린도는 저항운동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리하여 로마의 장군 루시우스 뭄미우스(Lucius Mummius)가 고린도를 점령하고 약탈하고 파괴한 뒤 이 호화찬란하던 도시는 잿더미로 화하였다.
그 뒤, 그로부터 100년 후인 주전 46년 쥴리서스 씨이저가 고린도를 재건하여 고린도는 다시 일어서게 되었다. 고린도는 로마의 식민지가 되었을 뿐 아니라 그리이스 전 영토를 거의 포괄하는 아가야주의 수도가 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과정 때문에 고린도는 수많은 인종이 모여 사는 도시가 되었다. 그리이스인, 로마의 퇴역군인, 유대인, 베니게인, 브루기아인, 그밖에 동방에서 온 사람들 등 인구구성이 잡다하였다. 이러한 배경 때문에, 고린도는 뚜렷한 문화전통을 형성하지 못하고, ‘모험을 좋아하는 그리이스인, 유산계급의 로마인, 사회에 해독을 끼치는 베니게인이라는 이종, 잡종의 인구, 거기에 유대인, 군인출신, 철학자, 상인, 선원, 자유인, 노예, 소매상인, 행상인, 모든 악덕의 주동자들의 대집단’(팔라)이 모여 사는 도시가 되었다. 고린도의 문화적 상황에 관한 바울의 언급이 이것을 잘 설명해준다.
5. 고린도시(市)와 고린도교회
1) 그리스 본토와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잇는 좁은 고린도 지협의 남쪽 약 2km 지점에 위치한 도시로 이집트, 팔레스틴, 소아시아 등의 동방지역과 그리스, 로마 및 여타 서방세계를 연결시키는 해상 교통요지이다.
2) 주전 146년 로마의 장군 뭄미우스에 의해 철저히 파괴되어 1세기 가량 폐허로 방치되었다가 주전 44년 시저에 의해 재건되었고 주전 27년 아우구스투스에 의해 아가야 지방의 수도로 정비되어졌다.
3) 주전 44년에 고린도시가 재건된 이후 이 도시의 급속한 발전에 따라 로마인 뿐만 아니라 헬라의 상인들과 유대인들, 애굽인, 수리아인 등 지중해 근방의 여러 지역에서 많은 민족들이 이곳으로 몰려들었고 주후 1세기경에 고린도시는 인구 약 60만이 거주하는 로마제국의 네 번째로 큰 도시로 발전하게 되었다.
4) 고린도는 ‘방탕과 사악’이란 뜻이며 속담에 ‘고린도에서 사는 것처럼 산다’(They live as they live at corinth)란 말이 있을 정도로 학문과 사치의 중심지였다.
5) 고린도교회는 주후 50년경 사도바울이 제 2차 전도여행(주후 49-52)의 여정중에 직접 창립한 교회로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은 주로 가난하고 멸시받는 계층이었다. 그들은 고린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준비에 있어서도 실패했고 복음에 대한 용기와 확신에도 실패했다.
6. 고린도에서의 바울
바울은 에베소 다음으로 가장 오랜 기간을 고린도에서 체재하였다. 그는 생명의 위협을 받고 마케도니아를 떠나 아테네로 갔다가, 거기서는 별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고린도에 와서 1 년 반 동안 머물렀다. 이 1년 반 동안을 누가는 불과 17절(행 18:1-17)로 압축하고 있지만, 바울의 선교역사에서 대단히 긴 시간이었다. 바울의 거처는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의 집이었다. 주로 유대인의 회당에서 전도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으나, 유다인들의 적대적 태도 때문에 나중에는 회당을 떠나 회당의 이웃에 사는 유스도라는 사람의 집으로 옮겨 집회를 열었다. 바울이 개종시킨 사람들 중에 가장 특별한 인물은 회당장 그리스보이다.
주후 52년 신임총독으로 갈리오라는 로마인이 고린도에 부임하였는데, 그는 인간적인 매력과 유화적인 성격으로 유명한 인물이었다. 유대인들은 바울을 고소하여 갈리오의 재판정에 세웠으나 갈리오는 일을 공정하게 처리하여 바울을 보호하였다. 덕분에 바울은 고린도에서의 활동을 무사히 마치고 시리아로 건너갔다.
7. 바울과 고린도교회의 편지 왕래
고린도 교회가 잘 되어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바울이 여러 차례 편지를 보냈으나, 그 정확한 내용을 모두 알 수는 없다. 바울의 서신이 수집된 것이 주후 90년경인데, 이때까지 바울의 편지는 많은 교회에 파피루스의 단편으로 있었다. 고린도서의 경우도 그 단편들이 전부 발견되었을 리 없고 올바른 순서대로 편집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가능한 최대한으로 재구성해보면 이렇게 될 것이다.
1) 고린도전서보다 먼저 써 보낸 편지가 있었다(고전 5:9).
학자들 가운데는 이 편지가 완전히 없어졌다고 보는 사람도 있고, 고후 6:14-7:1까지에 삽입되었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2) 고린도 교회에 문제가 있다는 소식이 여러 갈래로 바울의 귀에 들어갔다.
(1) 글로에의 집 사람들로부터의 정보(고전 1:11).
(2) 스테파나와 포르두나도와 아카이고가 에베소를 방문하여 소식을 가져옴(고전 16:17).
(3) 고린도 교회가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하여 바울의 지도를 요청하는 편지를 보냄(고전 7:1).
이러한 상황에 대응하기 위하여 바울은 고린도전서를 써서, 디모데편에 고린도를 보냈다(고전 4:7).
3) 그러나 이 편지 때문에 사태는 더욱 악화되어, 직접적인 기록은 없지만 바울 자신이 고린도에 몸소 방문하였던 것 같다(고후 12:14; 13:1-2).
이 구절들에서 세 번째라는 말이 나오는데 두 번째가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첫째 방문 기록은 행 18:1-17에 전해지는데 두 번째에 관한 기록은 없다.
4) 그 방문도 아무런 성과가 없었고, 사태가 더욱 악화되자 바울은 매우 엄하게 책망하는 편지를 썼다(고후 2:4; 7:8).
이 편지는 어디에 남아있는가? 학자들은 고후 10-13장을 이 ‘엄한 편지’로 본다. 그 이유는 고후 1-9장과 10장 이후의 내용의 단절이다. 즉 1-9장에서는 모든 문제가 해결되어 완전히 화해를 이룬 모습을 보여주는데, 10-13장에는 가슴을 찌르는 듯한 비통한 심정으로 말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5) 바울은 이후 화해의 편지 고린도후서를 썼다.
바울은 이 편지를 보낸 후에 마음이 불안하여 기다리지 못하고 디도를 마중하러 마케도니아까지 갔다가 모든 일이 다 괜찮아졌다는 소식을 들은 뒤, 아마도 빌립보에서 화해의 편지인 고린도후서 1-9장을 썼다.
8. 고린도 교회의 문제점
1) 세례문제가 왜곡되었다(고전 1:13-17)
2) 얄팍한 인간적 지식을 가지고 교만하였다(고전 1:18-25)
3) 육신적이었다(고전 3:1)
4) 그들은 자신들의 몸을 더럽게 하였다(고전 3:17)
5) 스스로 속는 자들이었다(고전 3:18)
6) 그들은 교만하였다(고전 4:18)
7) 그들은 무서운 부도덕에 빠졌다(고전 5:1)
8) 이방법정에 서로 고소하였다(고전 6:1)
9) 결혼문제에 대해 혼선을 빚었다(고전 7:1)
10) 우상 제물을 먹는 것에 대한 문제가 있었다(8장)
11) 머리에 쓰는 문제와 성찬식 집전에 대한 문제가 있었다(11장)
12) 은사문제가 있었다(14장)
13) 부활을 부인하는 자들이 있었다(15장)
9. 고린도전서의 주제들
1) 교회는 일치(Unity)와 하나됨(Oneness)을 유지하여야 한다.
2) 교회는 절대윤리를 지향하여야 한다.
3) 성도의 몸은 곧 성전이다(구약의 성전 :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상징적 처소)
4) 결혼의 가치와 제한성
5) 은사에는 다양성과 통일성이 있다.
10. 개요 및 내용
1) 개요
(1) 1-3장 : 분쟁의 부당성에 대한 논증/복음, 전도자에 대한 잘못된 인식
(2) 4장 : 분쟁 종식에 대한 결론적 권면
(3) 5장 : 근친상간죄에 대한 책망/간음방치, 음행자의 추방
(4) 6장 : 성도간의 송사에 대한 책망
(5) 7장 : 결혼과 이혼/혼인, 독신생활, 이혼, 재혼
(6) 8장 : 우상 제물의 먹는 문제
(7) 9장 : 자유의 절제에 대한 바울의 모범
(8) 10장 : 이스라엘 역사에 나타난 방종의 위험에 대한 실례
(9) 11장 : 머리에 쓰는 문제와 성찬식 집전
(10) 12장 : 다양한 은사들/성령의 사역, 몸과 지체의 비유
(11) 13장 : 최고 절대의 은사인 사랑
(12) 14장 : 예언과 방언 은사의 비교
(13) 15장 : 부활에 관하여
(14) 16장 : 예루살렘 성도 구제를 위한 연보와 문안
2) 내용
(1) 고전 1장(고린도교회 분열문제의 지적)
① 교회관(고전 1:2-3)
② 분파에 대한 책망(고전 1:10-13)
③ 의로움, 거룩함, 구속함(고전 1:30-31)
(2) 고전 2장(성령을 통해 깨닫는 하나님의 지혜)
① 전도자의 복음전도 원칙(고전 2:1-5)
② 하나님의 지혜로 말미암은 복음(고전 2:6-16)
(3) 고전 3장(교회의 유일한 터전이신 그리스도)
① 육에 속한 자의 특징(고전 3:1-7)
② 하나님의 성전, 하나님의 밭, 하나님의 집, 교회(고전 3:9, 고전 6:19)
(4) 고전 4장(분쟁 종식에 관한 결론적 권면)
①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고전 4:1-2)
② 왕노릇(고전 4:8)
(5) 고전 5장(근친 상간죄에 대한 책망)
① 근친상간죄(고전 5:1-5)
② 누룩에 대한 교훈(고전 5:6-8)
(6) 고전 6장(성도간의 송사에 대한 책망)
① 씻음, 거룩함, 의롭다 하심(고전 6:9-11)
(7) 고전 7장(결혼과 이혼문제)
(8) 고전 9장(자유의 절제에 대한 바울의 모범)
① 운동장에서 달음질 하는 자(고전 9:24)
② 썩을 면류관, 썩지 아니할 것(고전 9:25)
(9) 고전 12장(다양한 은사들)
① 은사를 주시는 이유
② 은사의 종류
③ 가장 큰 은사, 사랑(고전 12:31)
(10) 고전 13장(최고 절대 은사인 사랑)
① 은사에 대하여(고전 13:4-7)
② 믿음, 소망, 사랑 중 제일은 사랑(고전 13:13)
(11) 고전 15장(부활에 관하여)
(12) 고전 16장(예루살렘 성도를 위한 험금과 마지막 부탁)
11. 내용구성
1) 서언(1:1-9)
2) 고린도에서 온 소식들과 관련하여(1:10-6:20)
(1) 지혜와 고린도 교회의 분열(1:10-4:21)
(2) 음행(5: 1-13; 6:12-20)
(3) 소송(6:1-11)
3) 고린도에서 온 편지와 관련하여(7:1-16:4)
(1) 결혼과 관련된 문제들(7:1-40)
(2) 우상에게 바친 제물(8:1-11:1)
(3) 그리스도인들의 집회(11:2-34)
(4) 성령의 은사들(12:1-14:40)
(5) 부활(15:1-58)
(6) 헌금(16:1-4)

임운규 목사 (호주성산공동체교회 시무, 본지 편집·발행인)
CerIII · IV, Diplom, B.Th, M,A, M.Div, M.Th, D.Th, D.Pt c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