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이해
느헤미야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본래는 에스라와 느헤미야 이 두 책은 한 책으로 되어 있었던 것 같다. 라틴어 번역 성경인 벌게잇에서는 에스라서를 ‘제1에스드라스’라고 하고 느헤미야서를 ‘제2에스드라스’라고 부르고 있다.
또 이 두 책은 정경상의 위치도 다르다. 즉 한글 성경에는 역대하 다음에 있는데 히브리 원전에는 성문서집 중에서 다니엘 다음에 있다 (히브리 원전 중에도 팔레스틴 계통의 원전). 전통적으로 우리는 에스라가 느헤미야보다 앞서 예루살렘에 돌아왔다고 믿고 있는데 최근의 어떤 학자들은 사실은 그 반대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1. 명칭
본래는 에스라와 느헤미야 두 책은 한 책으로 되어 있었던 것 같다. 라틴어 번역 성경인 벌게잇에서는 에스라서를 ‘제1에스드라스’라고 하고 느헤미야서를 ‘제2에스드라스’라고 부르고 있다.
또 이 두책 (에스라와 느헤미야)은 정경상의 위치도 다르다. 즉 한글 성경에는 역대하 다음에 있는데 히브리 원전에는 성문서집 중에서 다니엘 다음에 있다 (히브리 원전 중에도 팔레스틴 계통의 원전). 전통적으로 우리는 에스라가 느헤미야보다 앞서 예루살렘에 돌아왔다고 믿고 있는데 최근의 어떤 학자들은 사실은 그 반대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2. 저자 및 기록연대
느헤미야 1장에 ‘나’라는 1인칭 주어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 느헤미야 본인이 기록했다고 전해진다. 주제나 문체의 유사성 때문에 어떤 학자들은 에스라서와 본서의 저자를 동일한 인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본문의 1인칭 화법 사용과 체험적인 내용과 목격에 대한 현장감 있는 묘사로 보아서 본서의 주인공인 느헤미야가 본서의 저자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 물론 느헤미야가 느 12:26에서 ‘느헤미야의 때’를 회고하듯이 자신을 3인칭으로 묘사한 부분도 있다. 그러한 이것은 느헤미야가 동시대 인물들과 공직에서 은퇴한 후 과거의 행적을 회고하며 쓴 글인 것을 보여 주는 부분이다.
다만, 본서 후반부의 족보와 종교 운동이 에스라와 관련된 것으로 보아, 에스라가 일부 또는 전체를 기록했다는 견해도 있으며, 70인역도 본서의 저자를 에스라라 보았다.
느헤미야는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 왕 아르타 크세르크세스 1세의 술 관원이었던 유대인이다. 느헤미야는 하갈랴 (하가랴 / 하칼야)의 아들로 기록되어 있으며, ‘느헤미야’ (נחמיה)라는 이름은 “주님께 위로받는다.”는 의미이다. 나훔이라는 이름과도 관련이 있다.
비평주의적인 학자들은 본서를 에스라서의 저작 연대와 비슷한 주전 300년경으로 본다. 그것은 느 12:11, 12에 나오는 얏두아를 요세푸스의 책에 나오는 알렉산더 대왕 시절의 얏두아와 동일 인물로서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서에 나오는 사건들이 주전 444년의 제3차 포로귀환에서부터 느헤미야의 제2차 귀국 (주전 432년)까지 약 10년 사이의 기록인 것으로 보아서 본서는 느헤미야가 총독에서 은퇴한 후인 주전 420년경에 과거를 돌아보며 기록한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3. 배경
1) 역사적 배경
에스라서는 70년간의 포로생활 후에 이스라엘 조국으로 돌아오게 하리라고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하여 그들에게 하신 약속의 성취를 기록하고 있다. 세 바사 왕 (고레스, 다리오, 아닥사스다)의 보호와 도움 및 스룹바벨과 예수아, 학개, 스가랴, 에스라와 같은 위대하고 경건한 유대인들의 인도를 통하여, 예루살렘에서는 두 번째 성전이 완성되어 참된 예배가 다시 드려졌다. 1-6장까지는 고레스왕 (BC 538-530) 치세 초기의 2,3년과 다리오왕 (BC 522-486) 치세 6년 동안의 사건들을 기록하고 있으며, 나머지 7-10장은 (4:7-23 포함) 아닥사스다1세 (BC 465-424) 통치 초기의 사건들을 기록하고 있다. 바사의 아끼메니드 왕조에 있어 중요한 80년간의 기간이 에스라서의 해당 기간이지만, 바사의 두 차례 희랍 원정 실패와 에스더서의 사건들이 일어났던 주전 516-458년 사이의 58년간에 대해서 그것은 실제로 아무 것도 언급하지 않는다.
2) 바벨론 포로에서의 귀환
북왕국 이스라엘 백성은 앗수르에 포로로 끌려가서 결코 돌아올 수 없었다. 그들이 민족적 실체로서 계속 존재하지 못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다. (1) 북왕국에는 유다와는 달리 돌과 흙으로 된 것이든 마음 속에 있는 것에든 성전이 없었다. (2) 이스라엘에는 수도 사마리아가 함락된 후 왕족 생존자가 없었다. 여하튼 그들은 그 이전에 이미 다윗 혈통을 잃었으며, 이로 인하여 영원한 왕국의 보좌 위에 “다윗의 아들’이 앉을 것이라는 위대한 예언적 이상 (理想)이 말살되었다. (3) 앗수르는 대부분의 백성들을 북왕국 밖으로 몰아내고 이방인을 그 땅에 이주시켰다. 이로 인해 남아 있던 이스라엘 백성과 이방인들 사인에 잡혼이 이루어지고, 예수님 당시에도 유대인들로부터 그처럼 증오를 받던 혼혈족인 사마리아인이 나타나게 되었다. (4)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앗수르에 있던 이스라엘 포로들 중에는 그들의 종교적, 문화적 동질성을 유지할만한 계속적인 종교적 지도력이나 예배 중심지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것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고대 중동의 떠돌이 민족들 속으로 사라졌고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열 지파”가 되었다.
그러나 유다 왕국의 포로 역사는 이와 달랐다. 주전 586년에 예루살렘 도성을 마지막으로 점령하고 불사른 것은 앗수르가 아니라 바벨론이었고, 정복민에 대한 바벨론의 정책은 매우 달랐다. (1) 바벨론은 포로로 잡혀온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공동체를 이루고 거주하도록 하였다. 유대인들은 그들의 신을 섬기고, 그들 자신의 학교를 운영하며, 그들의 민족적, 종교적 동질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2) 유다도 마찬가지로 다윗의 혈통을 왕으로 삼았고 다윗의 한 후손이 백성들과 함께 포로로 잡혀갔다. 이것은 다윗의 후손이 거기에 있어 다윗 왕조의 회복에 대한 소망을 간직할 수 있었음을 의미한다. (3) 바벨론은 앗수르가 사마리아에서 행했던 것과 같이 고의로 유대의 거주민을 교체시키지는 않았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는 언제나 유대인들이 남아 있었고, 바벨론의 포로들도 거룩한 시온산 위에 폐허로 남아있는 거룩한 도성과 영광스런 성전을 결코 잊지 않았다. (4) 가장 중요한 것은 유다에서 끌려간 포로들은 율법 책을 보존하고 가르쳤던 서기관과 제사장이 있었다는 것이다. 포로에서 살아남은 백성은 “성경의 백성”이 되었고, 바벨론께서 귀환한 (주전 538년경) 해에 그들은 성경을 가르치는데에 종교생활의 중심을 두는 민족이 되었다.
4. 기록 목적과 특징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와 같은 바벨론 포로 후기 생활과 포로귀환에 대해서 다룬 성경은 우리에게 비교적 생소한 편이다. 그 중에서 느헤미야는 이스라엘 백성의 유다 땅으로의 3차 귀환과 예루살렘 성벽 중건의 역사 그리고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정착과 종교적 상황을 보여 주기 위해 그리고 선택하신 백성을 향하신 하나님의 끊임없는 사랑과 이에 대한 순종의 당위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기록하였다.
본서의 주제는 예루살렘 성벽 재건과 종교개혁을 통한 예루살렘의 실제적 회복과 영적 회복을 보여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의 회개와 부흥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본서의 특징을 3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회복의 책이라는 데 있다. 바벨론 포로로부터의 귀환과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의 재건, 언약의 갱신 등으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과의 언약 관계의 회복을 강조하고 있다.
둘째, 이스라렐 백성의 성결에 큰 비중을 둔 책이다. 본 서나 에스라서는 한결같이 여호와 신앙의 순수성을 강조하고 있는데, 특히 이방인과의 결혼을 강력하게 금지하고 있다.
셋째, 언약 백성을 보호하시고 보존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섭리를 드러내는 책이다. 이사야의 포로 생활에서의 귀환에 대한 예언 (사 10:21,22)이 하나님이 섭리하에 그대로 성취되는 사실이 본서와 에스라서에 기록되어있다. 그리고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자들은 세계 도처에 흩어져 있던 디아스포라 (Diaspora)의 수에 비하면 매우 작은 수인데, 그들이 결국 유다 땅으로 돌아온 것 자체가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5. 내용
페르시아 왕 앞에서 술 담당 관리로 있던 중 형제에게 고국 예루살렘의 처참한 광경을 전해들은 느헤미야는 근심하다가 왕에게 은혜를 입게 해달라고 기도를 한 후 왕에게 술을 진상하는데, 암울한 표정을 숨기지 못한다. 이에 왕이 슬픈 기색을 보인 느헤미야를 벌하기보다 무슨 일이길래 표정이 어둡느냐 물어보자 느헤미야는 자신이 목이 잘릴 수 있었음을 알고 두려워하면서도 자신의 조국의 수도가 처한 곤경을 얘기하며 자신이 가서 성을 재건하게 해달라고 한다. 다행히 왕은 그를 유다 총독으로 임명하고 장교들과 기병부대를 붙여주기까지 한다.
느혜미야는 성전을 복원의 초석이 될 예루살렘 성 복원을 하면서, 누가 성벽을 복원하는지 일일이 언급한다. 이 와중에 착공하자마자 정적들의 훼방과 사건들로 성벽 복구는 지연된다.
열심히 성을 다시 쌓는 와중에, 예전 앗수르의 침략으로 인해 생겨난, 이민족과의 유대인들 사이의 혼혈족인 사마리아인이 예루살렘 성벽 재건에 합류하고 싶다는 의사를 보이지만 느헤미야는 거절하는데, 이후 사마리아인 총독 산발랏과 아랍인 부족장 게셈, 해당 지역 유지 도비야가 “성을 쌓는 것은 황제에 대한 반역행위”라며 성벽 재건을 방해한다.
느헤미야는 “우리는 고레스 황제의 명령에 따라 정당하게 공사를 하는 중이니 당신들이 참견할 바가 아니다”라고 응대하고, 산발랏 일동은 그 후에도 끈질기게 느헤미야를 방해하려 한다. 편지를 보내 끌어들여 몰래 죽이려 드는가 하면, “성을 쌓는 건 왕이 되려는 속셈 아니냐? 황제한테 알려지면 난리날 테니 나와 만나 상의하자”는 등의 매도도 하고, 심지어는 느헤미야의 심복에게 뇌물을 주어 느헤미야로 하여금 범죄를 저지르게 해 명예를 훼손시키려는 시도도 한다.
거기다 외부적으로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 성벽 공사를 하는 인부들이 관리들에게 저당을 잡히거나 자식들을 빼앗기거나 하는 등의 착취 행위가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분노한 느헤미야는 나팔을 불어 관리들을 소집해 호통을 쳤고, 겁먹은 관리들은 빚, 저당잡은 밭, 집 등을 모두 반환하고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겠다는 맹세를 한다.
우여곡절 끝에 성벽은 성공적으로 완공되었고, 백성들이 에스라와 느헤미야를 필두로 둘로 갈라져 행진하며 봉헌식을 거행한다.
이후 유대인들이 계속 율법을 어기는 모습을 나열하며 이에 분노하는 느헤미야의 모습을 보여준다. 느헤미야는 이방인과 결혼한 유대인들을 때리고 머리채를 쥐어뜯기까지 한다. 느헤미야의 마지막은 하나님께 자신은 최선을 다했다며 기억해달라고 한탄하며 끝난다.
6. 느헤미야의 구속사적 의의와 구성
1) 느헤미야의 구속사적 의의
본 서는 저자인 느헤미야가 바사 제국에서의 높은 지위를 버리고 예루살렘의 회복을 위해 온갖 고난과 수모를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겪었다는 것과 ‘회복’을 위해 헌신했다는 점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본서는 에스라서에 이어 언약 백성의 귀환과 재건이라는 구속사적 의의를 지니고 있다. 또한 성벽 재건과 언약 갱신을 통해 언약에 충실하신 하나님이 선민을 보호하고 보존하시는 놀라운 섭리가 드러난다.
2) 구성
이스라엘 백성의 부흥 운동의 역사를 다룬 책이라 할 수 있는 본 서는 에스라서에 이어서 구약 역사의 마지막 부분을 소개하고 있다. 그 당시는 바사 제국의 융성기요, 그리스와 로마도 서서히 세계 무대에 등장하던 시기였다. 그러나 본서에서는 주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귀환과 상황만 언급하고 있을 뿐이다. 본서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기록되어있다.
첫 번째 부분인 1-7장은 예루살렘 귀환과 성벽 재건의 사건을 다루고 있는데, 아닥사스다 왕의 허락으로 주전 444년경에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과 성벽 재건 준비와 성벽 재건으로 나눌 수 있다.
두 번째 부분인 에스라가 주도한 언약의 갱신은 (8-10장) 율법의 낭독과 해석 그리고 언약 갱신으로 나눌 수 있다.
세 번째 부분인 언약 민족의 개혁 (11-13장)은 백성들은 재 정착과 성벽 낙성식 그리고 백성들의 부흥 운동으로 나눌 수 있다.
7. 느헤미야가 주는 의미
3차에 걸친 바벨론 포로귀환 과정에서 마지막에 해당되는 3차 귀환을 주로 다룬 느헤미야서는 구약의 역사 중 맨 마지막에 해당된다. 느헤미야서 이후 그리스도가 나타나기까지 약 400년간의 공백 기간이 있다. 그러므로 본서는 우리에게 구약 이스라엘 백성의 삶과 신앙을 보여 주고 있다. 본서는 성벽 재건과 부흥 운동을 통해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을 보여 주고 있다. 또한 우리는 여기에서 예루살렘의 현실적, 영적 회복을 통해 회복의 중재자가 되시는 예수그리스도의 예표를 볼 수 있다. 예루살렘 성벽의 재건과 백성들의 부흥 운동은 우리에게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려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열심을 보여 주며, 안일하게 신앙 생활을 하는 우리에게 좋은 귀감이 될 것이다.
8. 분해
I. 총독 느헤미야 (느1:1-7:73)
1) 느헤미야가 권세를 갖고 고국에 돌아옴 (느1:1-2:20)
2) 예루살렘 성곽 건축자들의 명단 (느3:1-32)
3) 무장을 하고 일함 (느4:1-23)
4) 대금 업자들을 꾸짖음 (느5:1-19)
5) 예루살렘 성곽을 완성함 (느6:1-19)
6) 돌아온 자들의 명단 (느7:1-73)
II. 에스라와 느헤미야 (느8:1-13:31)
1) 에스라가 율법 책을 백성에게 읽어줌 (느8:1-18)
2) 백성이 회개하고 하나님을 송축함 (느9:1-38)
3) 백성이 율법 준수를 맹서함 (느10:1-39)
4) 예루살렘 주민의 명단 (느11:1-36)
5) 각 족속의 명단과 축하 행사 (느12:1-47)
6) 느헤미야가 성전을 정화함 (느13:1-31)

임운규 목사 (호주성산공동체교회 시무, 본지 편집·발행인)
CerIII · IV, Diplom, B.Th, M,A, M.Div, M.Th, D.Th, D.Pt c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