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지리
밀레토스 (Miletus)에 대해서 / 밀레도
밀레토스 (그리스어: Μίλητος)는 아나톨리아 서부 해안에 있던 고대 그리스 이오니아의 도시의 이름으로, 터키 서부 해안의 최대 휴양지인 쿠사다시 항구 인근의 고대 도시로 현재는 터키에 속하는 지역이다. 이곳은 서양 최초의 철학자 탈레스가 살았던 도시이며, 이오니아에서 가장 영향력이 컸던 곳이었다. 지금은 해안선에서 9㎞ 떨어진 내륙에 있지만 고대에는 중요한 항구도시였고, 해상 무역이 번성했던 곳이었고, 교역에 매우 유리한 지리적 입지조건과 상당한 수의 인구를 부양하기에 충분한 공급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이곳 밀레토스는 좋은 항구를 4개나 보유했고 에게해와 흑해, 그리고 이집트를 연결하는 주요 항로의 중심에 위치했다.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 의하면 이 도시를 세운 사람은 도시의 이름과 같은 밀레토스였다고 한다. 그는 아폴로와 디오네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크레타 미노아왕의 부하로 있었고, 나이가든 미노아는 왕의 자리에서 밀려날까봐 주변인들을 의혹의 눈초리로 보고 있었다. 이런 낌새를 알게 된 밀레토스는 고향을 떠나 배로 아이가이아 바다를 건너 아시아 당으로 건너가 도시를 세웠는데 그곳이 바로 밀레토스다. 시민이 주도하는 민주주의가 밀레토스에서 탄생했다고 한다.
탈레스, 아낙시만드로스, 아낙시메네스 같은 유명한 철학자들을 배출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또한 Haiga Sophia을 설계한 Isidore of Miletus를 배출했다.
밀레토스학파 (Milesians)
그리스 최초의 철학 학파로서 BC 6세기에 소아시아에 있는 이오니아족의 상업 도시인 밀레토스에서 활동한 탈레스와 그의 후계자인 아낙시만드로스, 아낙시메네스가 그 대표자이다. 그들은 당면한 가상(事象)을 그것 자체의 원리로부터 탐구한 사상 최초의 이론적이며 과학적인 학자들이며 게다가 이와 같은 질문방법으로 세계 전체의 원리, 원인을 탐구하였던 점에서 그 후 서양철학의 시조라고 할 수 있다. 탈레스는 일체의 근본 원리를 ‘물’이라고 하였으며 그의 제자는 이것을 ‘무한한 것’, 또한 이들의 제자들은 이것을 ‘공기’라고 하였고, 이러한 것들이 스스로 운동하고 변화하여 다른 모든 것으로 전화(轉化)된다고 하였다(물활론). 철학이 발달하며 자연에 대한 관심에서 뻗어 나온 질문이 ‘이 세상 모든 것의 근원은 무엇일까?’였다. 그리스인들은 근원을 ‘아르케’ (arche)라 부르며 이는 시간적인 시원이자 만물의 원리이자 모든 경험적 사물이 이곳으로부터 생겨나오고 또 이곳으로 되돌아간다고 생각했다.
탈레스

탈레스 (Θαλής, Thales, BC 6세기, 대략 BC 625·624년경~대략 BC 547·546년경)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로, 밀레토스 학파의 창시자로 여겨진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탈레스를 “철학의 아버지”라고 칭했다. 그리고 현재의 사람들한테 탈레스는 최초의 철학자, 최초의 수학자, 최초의 고대 그리스 7대 현인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하다. 확실하진 않지만, 탈레스가 피타고라스의 스승이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운동 경기 관람 중에 탈수증으로 사망했다고 알려져 있다(사망지는 알려지지 않음).
탈레스의 생애에 관해서는 별로 알려진 것이 없지만, 믿을 만한 고대 저술가들의 이야기를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탈레스는 소아시아 이오니아 지방의 밀레토스라는 도시 출신이며, 여러 분야에서 학식이 넓었다고 한다. 탈레스는 이집트 여행의 영향으로, 수학과 천문학을 좋아하게 되었다고 한다. 수학과 천문학에 관련된 업적들이 아주 많은데, 대표적인 업적으로는 천문학을 이용해서 BC 585년에 일어나는 일식을 예언한 것이 있다. 또한, 수학의 기하학적 방법을 빌어서 이집트에서도 가장 큰 피라미드라고 알려져 있는 쿠푸 왕의 대피라미드의 높이를 측정한 업적도 유명하다. 그는 세상의 이치에도 탁월한 깨달음이 있었던 사람이었다. 세계 최초의 매점매석으로 돈을 번 사람이었던 거다. 바로 이런 우화가 전해진다.
어느 해 탈레스는 올리브가 풍작이 될 것으로 예측했다. 그리곤 시중에 있는 올리브기름을 짜는 압착기 사용권을 모두 사들였다. 그의 예상대로 올리브는 풍작을 이뤘고 그의 허가에 의하지 않고는 아무도 올리브 기름을 짜낼 수가 없었다. 결국 많은 돈을 벌었고 그 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줬다는 이야기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에 따르면, 탈레스는 만물의 근원을 “물”이라고 주장했으며, 따라서 만물이 모두 물로 되어 있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그리고 땅도 물 위에 떠 있다고 주장하였다고 한다. 탈레스에 관해서 그의 견해를 체계적으로 세워보기에는 알려진 바가 너무나 적다고 한다. 그러나 그 외에도 밀레토스 학파에 대해서는 더 많은 바가 알려져 있다. 그의 생각은 아낙시만드로스가 이어받아, “가장 1차적인 만물의 근원”을 찾으려 했으며, 아낙시만드로스의 친구인 아낙시메네스는 만물의 근원을 “공기”라고 주장하게 된다. 한편,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는 탈레스가 직접 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또한, 전기 발생 실험을 최초로 행한 사람이 바로 탈레스라고 한다.
– 탈레스의 정리 : 탈레스가 발견한 것으로 알려진 기하학의 정리 5가지가 있는데, 이것을 믿을 수 있는 저술가들의 글을 통해서 추측해 보면 다음과 같다. ▷임의의 원은 지름에 의해서 이등분 된다. ▷두 직선이 수직으로 만나면 같은 각을 이룬다. ▷반원에 대한 원주각은 항상 직각이다. ▷삼각형의 한 변과 양 끝의 각이 다른 삼각형의 그것과 같으면 두 삼각형은 합동이다(흔히, ASA 합동 정리라고 말한다). ▷이등변삼각형의 두 밑각은 서로 같다.
아낙시만드로스
아낙시만드로스(고대 그리스어: Ἀναξίμανδρος, BC 610년~546년)는 탈레스, 아낙시메네스와 함께 밀레토스 학파의 철학자이다. 그는 탈레스의 젊은 제자였는데, 탈레스가 아무런 저서를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그리스인들 중 최초로 자연에 관한 논문을 집필한 철학자가 되었다. 동시에 그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지역을 서판에 그리려는 시도를 감행한 최초의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독자적인 사상을 구축함으로써 그리스 시대의 철학, 특히 만물관과 천문학 분야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는데, 그의 독자적인 사상은 자신의 스승인 탈레스에 대한 반박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 만물관 : 아낙시만드로스 또한 스승 탈레스의 영향을 받아 ‘세계를 구성하는 근본 재료가 존재한다’는 명제에는 동의를 하였다. 하지만 탈레스가 만물의 단일한 근본 재료가 ‘물’ 이라고 한 것에 반해, 그는 만물을 구성하는 더욱 근본적이고 1차적인 재료가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그가 물이 만물의 근원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 까닭은 물의 성질이 규정적이었기 때문이다. 습함이라는 규정적인 성질을 가진 물이 건조한 물질의 재료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만물의 근원이 되는 존재는 성격이 무규정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동시에 세상의 모든 것을 이루어야 하므로 무한정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무규정적이고 무한정한 존재를 결여 뜻하는 접두어 ‘a-‘와 경계 혹은 한도 뜻하는 ‘peras’의 결합어인 ’apeiron (아페이론)‘이라고 불렀다. apeiron은 영원하고, 늙지 않으며, 모든 세계를 둘러싸는데, 이것으로부터 모든 것이 생겨나며 소멸하여 이것으로 돌아간다. 따라서 세상에서 크고 작은 생성과 소멸이 발생할 때 부분들은 변화를 겪지만, 전체로는 변화가 없다. 그래서 이것은 신적인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아낙시만드로스가 현대에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은 그가 최초로 만물의 근원이 되는 존재가 어떻게 개별적인 사물로 변하는지를 제시한 철학자이기 때문이다. 그의 스승인 탈레스는 만물이 물로 이루어져 있다고는 하였으나, 물이 어떤 과정을 통해 개별적 사물로 변하는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아낙시만드로스는 영원한 운동으로 인해 하나인 아페이론으로부터 원초적인 대립자들이 분리되어 나온다고 보았다. 이 원초적인 대립자들은 ‘뜨거운 것’ (thermon), ‘차가운 것’ (psychron) 그리고 ‘건조한 것’ (xēron)과 ‘축축한 것’ (hygron) 등의, 원소들의 성질들이 아니라 원소들 혹은 최초의 물질들 그 자체이다. 이 원소들은 곧 각각 불 (pyr), 공기 (aēr), 물 (hydor), 흙 (gē)에 해당하는데, 이 불, 공기, 물, 흙의 결합을 통해 만물이 생겨난다고 그는 말한다. 서로 반대되는 힘들 (뜨거움 – 차가움, 건조함 – 습함)이 만물이 형태를 이루게 되는데, 이때 한 가지 힘이 지나치게 커질 경우, 이 힘은 반대되는 힘에 의해 자신의 불의에 대한 벌을 받음으로써 소멸되어 apeiron으로 돌아가게 된다.
– 우주론 : 아낙시만드로스는 우주의 모양과 크기를 상상하고 설명하는 데 건축학적, 기하학적 방법론을 차용했다. 그 이유는 아마 당시에 믿을 만한 천문학적 이론이나 장비 등이 전혀 갖추어져 있지 않았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그는 우주가 완전한 원통형이라고 보았다. 이때 이 원기둥의 높이는 지름의 1/3이다. 그리고 이 원기둥을 세 개의 불의 바퀴가 둘러싸고 있는데, 이것들은 바깥에서부터 각각 태양, 달, 별이며 바퀴의 둘레는 각각 지구의 27배, 18배, 9배에 해당한다. 이것들은 위에서 보았을 때 여러 개의 크기가 다른 동심원들이 중첩되어 있는 것과 같은 형태이다.
이 바퀴에 대해 아낙시만드로스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우주가 탄생하던 시점에 뜨거움과 차가움의 기원 (germ)이 영원한 물질 (apeiron)으로부터 분리되었는데, 이것에서 나온 구형의 불꽃이, 마치 나무껍질이 나무를 둘러싸듯이 지구를 둘러싸는 증기가 된다. 그리고 이 불꽃이 부서져서 [부서진 조각들이] 하나의 바퀴의 모양을 하게 되는데, 이것이 곧 태양과 달, 별이다. 태양과 달, 별의 바퀴에 있는 날숨을 위한 관 모양의 통로를 통해 우리가 태양, 달, 별을 관측할 수 있는데, 이 통로가 차단될 때 식(蝕)들이 생긴다는 것이 그의 이론이었다.
그렇다면 왜 하필이면 불의 바퀴일까? 여기에는 당시 그리스 물리학의 기본이 되던 원리가 개입되어 있다. 바로 “가벼운 것은 위로, 무거운 것은 아래로”라는 원리인데, 아낙시만드로스는 흙이 4개 원소(불, 공기, 물, 흙) 중 흙이 가장 무겁고, 불이 가장 가볍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가장 무거운 흙이 우주의 중심이 되는 땅을 이루고, 가장 가벼운 불이 천체를 이룬다고 본 것이다.
당시 물리학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고 나름 합리적인 방식으로 우주의 모습을 설명했다는 점, 그리고 태양을 거대한 크기의 물질로 보고 이것과 지구 사이의 거리를 따져본 최초의 천문학자였다는 점에서 그는 천문학적으로 매우 높은 평가를 받는다. Jonathan Barnes는 당시 밀레토스의 상황을 “한편에 대부분의 천문가 그룹이 있고 다른 한편에 홀로 아낙시만드로스가 있었다”고 하여 아낙시만드로스의 위상을 크게 묘사하기도 하였다.
– 인류의 기원 : 아낙시만드로스는 인류의 기원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첫 번째 동물은 본래 바다에서 살았다. 즉, 습기에서 태어났다. 또한 가시 돋친 외피로 둘러 싸여 물고기의 형태를 하고 있었는데, 그들이 땅 위로 올라오면서 태양의 온기로 인해 습한 요소가 증발하면서 외피가 벗겨지고 성년이 된, 다시 말해 살아남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 그로부터 나왔다고 한다. 이것은 다른 동물들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스스로 삶을 꾸려가는 데 반해 인간은 오랜 기간 양육을 필요로 함에도 불구하고, 최초의 인간이 살아남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기 전 시기에 죽지 않고 생명을 유지한 것을 설명해내기 위한 나름의 시도였다고 볼 수 있다.
– 기상론 : 아낙시만드로스는 현재의 세계는 처음 세계가 생겨날 때와 동일한 힘들과 과정들의 지속적인 작용으로 인해 현재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는 ‘지속성의 원리’로써 기상 현상을 설명한다. 이런 설명은 특히 바람에 대한 설명에서 잘 드러난다. 그는 물이 땅에서 분리되고 난 후, 태양이 물을 증발시켜서 대기를 형성하도록 했다고 보았다. 이것은 다시, ‘분리되어 나오기’가 계속 되고 있을 때, 건조한 ‘더 가벼운 것’과 습한 ‘더 무거운 것’으로 나뉘었다. 건조한 더 가벼운 것은 바람처럼 움직이며, 습한 더 무거운 것은 비처럼 쏟아진다. 이 과정은 계속 반복된다.
이때 이 ‘더 가벼운 것’과 ‘더 무거운 것’의 작용으로 천둥과 번개를 설명할 수 있다. ‘더 가벼운 것‘인 바람이 ’더 무거운 것‘인 짙은 구름으로 에워싸여 압축되었다가 미세함과 가벼움으로 인해 에워싼 구름을 비집고 터져 나올 때, 그 터짐이 요란한 소리를 내는 한편, 터진곳은 구름의 검은 성질과 대비되어 번쩍임의 분출을 만들어 낸다. 요란한 소리가 곧 천둥이고, 번쩍임의 분출이 곧 번개이다.
아낙시메네스
아낙시메네스(그리스어: Αναξιμένης, 영어: Anaximenes, 대략 B.C 585~525)는 밀레토스 학파의 철학자였으며, 아낙시만드로스의 친구였다. 아낙시메네스는 유한하고 제한적인 사물들의 다양함에 ‘무한함’이 사물의 근원이라고 답했던 아낙시만드로스의 해법을 이해할 수 있었지만, 그것이 너무나도 모호하고 임의적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아낙시메네스는 새로운 ‘만물의 근원’을 찾고자 했는데, 그가 내린 결론은 바로 ‘공기’였다.
아낙시메네스가 생각하기에 공기는 아낙시만드로스가 생각한 ‘지속적인 운동을 하는 무한한 실체’에 적합했다. 실제로 공기는 끊임없는 운동을 지속하며 어디에서나 발견할 수 있기 때문에 무한함의 개념에도 들어맞았다. 또한 모든 사람은 공기를 통해서만 호흡할 수 있다. 게다가 아낙시만드로스가 주장한 무한한 실체와는 조금 다를 수도 있지만, 적어도 구체적이고 감각할 수 있다.
아낙시메네스는 공기가 실체로 변하는 원리를 설명하는 데 있어 ‘희박’과 ‘농후’의 개념을 사용한다. 그에 앞서 그는 질적인 차이는 양적인 차이가 결정한다는 획기적인 주장을 한다. 공기는 팽창하면서 희박해지는데, 희박은 온기를 불러들여 불이 된다. 하지만 공기는 수축하면 농후해지는데, 이것은 바람을 만들고 더 지속되면 물, 그 다음엔 땅이 되며 그 마지막 형태는 암석이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아낙시메네스는 탈레스와 아낙시만드로스보다 훨씬 구체적으로 운동 원리를 설명하는 데 성공한다. 아낙시메네스는 지구가 평평한 모습이라고 생각했으며, 태양 따위의 천체들은 지구 주위를 맴돈다고 보았다.
밀레토스 유적 – 밀레토스 극장

밀레토스 반원형 극장은 평지한가운데 있는 작은 언덕에 의지하여 극장을 조성했다. 많은 벽돌을 쌓고 대리석을 깎아 무대와 관중석을 만들었고 엄청난 비용을 소비했을 것이다. 이곳은 글래디 에이터들의 경기장으로 주로 썼을 것이라 하고, 평지에 건설하였기 때문에 관중석 뒤편에 공간이 있어서 관중들이 뒤편의 통로를 통해 출입을 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곳 밀레토스의 유적들은 기나긴 세월을 지나는 동안 많이 파괴됐고 신전과 도시의 흔적들이 물에 잠겼다. 밀레투스에는 이 극장 말고도 아고라와 경기장, 항구, 목욕탕 등의 유적이 주변에 흩어져 있다.
※ 밀레토스(성경지명은 ‘밀레도’ 딤후 4:20)는 터키 서부 해안의 최대 휴양지인 쿠사다시 항구 인근의 고대 도시이다. 지금은 해안선에서 9㎞ 떨어진 내륙에 있지만 고대에는 중요한 항구도시였다. 밀레토스는 고대 이오니아 지방의 중심 도시국가로서 해상 무역이 번성했던 곳이다. 교역에 매우 유리한 지리적 입지조건과 상당한 수의 인구를 부양하기에 충분한 공급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성경에서 밀레토스는 사도 바울과 밀접한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 사도행전을 살펴보면, 성령이 강림한 오순절 날에 베드로 사도의 설교를 경청했던 사람들 가운데 크레타 사람들이 있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크레타 섬에서 선교 활동의 새로운 장을 펼쳤던 것이다. 그리고 디도에게 크레타 섬 선교 임무를 맡기고, 그곳을 떠나 자신의 선교 활동을 계속했다. 그곳에서 그는 고린토로 갔으며, 고린토에 에라스도를 남겨놓았다. 그 후 밀레토스로 갔다. 그곳에는 에베소 사람 드로비모가 앓아 누워있었다. “에라스도는 고린도에 머물러 있고 드로비모는 병이 들어 밀레도에 두고 왔다.” (디모데후서 4:20). _ 편집자 주
박혜경 (시드니인문학교실 회원)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