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의 제자들과 학파
소크라테스의 제자들 가운데 가장 이름난 사람 일곱을 들면, 안티스테네스, 아리스티포스, 에우클리데스, 파이돈, 플라톤, 아이스키네스, 크세노폰 등이다.
안티스테네스는 견유 학파라고 알려진 키니코스 학파를 세웠고, 아리스티포스는 키레네 학파를, 에우클리데스는 메가라 학파를, 파이돈은 엘리스 학파를 세웠다. 이들은 보통 ‘소(小) 소크라테스’라 칭하기도 한다.
○ 키니코스(견유) 학파 – 안티스테네스
이 학파의 가장 유명한 대표자들을 들자면, 안티스테네스와 디오게네스, 크라테스, 메트로클레스, 히라르키아 등이다.
견유 학파 사람들은 자유란 영혼의 지고선이며, 자급 자족을 통해서만 얻어지는 것으로 보았다. 그러므로 진짜 견유 학파 사람이라면 자신의 육체적, 감정적 욕구에 노예가 되지 않아야했다.
정신적 가치야말로 이 세상에서 중요하고 유일한 가치라고 생각한 견유 학파는 전통적 가치에 부정적일 수 밖에 없었다.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을 극한까지 몰고 간 일종의 극단주의자라고 할 수 있겠는데, 그들에게 현실은 최소한의 수준으로 축소되고, 현상은 참을 수 없는 대상으로 치부되고 만다.
견유 학파는 일종의 생활 양식에 더 가까운 듯이 보인다. 물질적 욕구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기에, 견유 학파의 철학자들은 정치, 물리학 등 윤리학을 제외한 모든 철학적 사변에 몰두할 수 있었다.
○ 키레네 학파 – 아리스트포스
키니코스 학파와 키레네 학파는 극과 극을 이룬다. 견유학파가 ‘자유’를 쾌락의 노예가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최소한의 생활에 만족하는 상태로 본 반면, 키레네 학파에서는 어떠한 것에도 치우치지 않은 채 인생의 쾌락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세로 보았다.
소크라테스의 제자들 가운데 최초의 이데올로기적 균열은 아리스티포스에 의해 비롯된다. 인지 가능한 세계에 대한 앎에 확고히 뿌리를 내린 아리스티포스의 쾌락주의, 개인주의가 갈등을 일으킨 것이다.
‘개인의 자유란 무엇인가?’라는 문제에 아리스티포스는 평정심을 갖는 것이라 말했다. 평정심만 잃지 않으면, 부와 권력과 성욕의 유혹이 아무리 강해도 그에 완전히 빠질 위험은 없다는 것이다.
아리스티포스의 중심 사상은 ‘덧없는 이 순간’을 ‘어떻게 하면 충실히 사느냐’는데 모아진다.
“쾌락이 부드러운 미풍과 같고, 고통이 휘몰아치는 강풍과 같은 것이라면 매일매일의 삶은 고요한 바다에 비유할 수 있다.” 아리스키포스가 이 비유를 통해 말하는 것은, 일상의 항해에서 쾌락의 미풍을 받아 고통을 헤쳐나가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는 것이다.
○ 메가라 학파 – 에우클리데스
에우클리데스는 소크라테스의 제자들 중 가장 나이가 많았다. 대략 BC 435년에서 365년 사이에 생존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철학을 공부했는데, 처음에는 주로 파르메니데스의 저작을 연구하다가 후에 소크라테스를 만난 뒤부터는, 소크라테스와 파르메니데스의 학설을 조화시키는 일에 일생 동안 매달렸다. 에우클리데스를 추종했던 사람들을 가리켜 메가라 학파, 또는 문답법에 의해 토론을 이끌어가는 그들의 토론 방식에서 따와 변증론자들이라고 불렀다.
에우클리데스는, 모든 사물은 ‘존재’라고 불리는 내재적 성질을 지니며, 동시에 ‘비존재’라는 외부적 현상의 종합이라는 사실을 파르메니데스로부터 배웠다. 인간이 어떤 목표를 지향할 때는 반드시 그 욕망의 대상이 단순한 ‘현상’이 아닌 진정한 ‘실재’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소크라테스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지식을 성취하고 덕을 이루는 것이라고 했다. 에우클리데스는 스승의 이론과 파르메니데스의 이론을 조화시켜, 신을 ‘존재’, 또는 영원하고 나뉠 수 없는 ‘일자’와 동일시하고, 그 외 나머지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전혀 중요치 않다고 결론을 내렸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