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바키아 총리 피격당해 … 용의자 현장서 체포해 살인미수 기소
EU 의회 선거 앞두고 정치 테러 우려 … 세계, 폭력행위 규탄과 피초 총리에게 위로 보내
친러시아 성향의 로베르트 피초 슬로바키아 총리가 지난 5월 15일(현지시간) 총격을 당해 생명이 위독한 상태에 빠졌다고 슬로바키아 현지 매체가 보도했다.
슬로바키아 당국은 친러시아 성향의 정부에 불만을 품고 계획한 암살 시도로 보고 수사 중이다.
CNN·AP통신 등에 따르면 피초 총리는 5월 15일(현지시간) 수도 브라티슬라바에서 북동쪽으로 180㎞ 떨어진 핸들로바 마을을 찾았다. 이곳 ‘문화의 집’에서 각료 회의를 열고 지지자들과 악수하던 중 한 남성이 다가와 총을 쏜 뒤 경찰에 제압됐다. 피초 총리는 총격을 받고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됐다.
총격 직후 피초 총리의 생명이 위독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토마스 타라바 부총리는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은 아니다”고 밝혔다. 총리는 5발의 총알 중 3발을 맞았고 이 중 한 발이 복부를 관통했으나 4시간에 걸쳐 수술을 받고 회복 중이다.
토마스 타라바 슬로바키아 부총리는 BBC 방송에 “4시간 정도 수술을 진행했다.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은 아니다”라고 총리의 현재 상황을 전했다. 피초 총리는 안정된 상태이지만 부상이 심각한 만큼 중환자실에서 치료받고 있다는 것이다.
슬로바키아 경찰은 현장에서 총격범을 체포해 살인미수 혐의로 기소했다. 범인은 71세 작가로 시집 3권을 출간한 경력이 있다. ‘폭력반대운동’이라는 정치단체를 창설했고, 총기 소유 자격증도 있으며, 쇼핑몰 경비원으로 일한 경력도 있었다.
친러시아 성향을 보이는 피초 총리는 2006~2010년 첫 번째 임기에 이어 2012~2018년에 두 번 더 총리를 지냈다. 슬로바키아는 EU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일원으로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자 많은 양의 무기를 보냈다. 그런데 전쟁이 길어지자 상당수 국민이 전쟁 피로감을 호소하며 러시아와의 관계 경색을 우려했다. 그는 이를 놓치지 않고 민심을 파고들어 지난해 9월 총선에서 ‘(우크라이나에) 단 한 발의 총알도 줘선 안 된다’는 구호로 네 번째 총리직을 거머쥐었다.
피초 총리는 취임 뒤 우크라이나 지원에 반대하고 강력한 친러 정책을 추진해 EU 회원국들과 충돌해 왔다. 이 때문에 브라티슬라바에서는 매주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가 열리고 있다. 그럼에도 피초 총리 진영은 극우 유권자들의 탄탄한 지지에 힘입어 지난 4월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했다. 용의자는 슬로바키아의 이러한 ‘기울어진 운동장’ 정치 지형에 강한 분노를 느낀 것으로 보인다.
이번 로베르트 피초 총리 피격 사건을 두고 ‘슬로바키아 정치권이 화해할 수 없는 수준으로 분열됐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다음달 6~9일 유럽연합(EU) 의회 선거를 앞두고 극우 진영에서 정치인을 향한 테러 시도가 이어지는 와중에 터진 사건이라 유럽 전역에 충격이 번졌다.
유럽에서는 오는 6월 유럽의회 선거를 전후해 이같은 정치 테러가 각국으로 번져 나갈 수 있다고 우려한다. 테레사 펠런 유럽·아시아 연구소 소장은 BBC에 네덜란드의 극우 연정과 독일 극우정당 약진 등을 거론하며 “심각한 정치적 양극화가 유럽 전역에서 목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스도 “수십 년 만에 유럽 지도자에 대한 가장 심각한 공격이었다”면서 “유럽이 더욱 양극화되고 있다. 정치에 대한 견해 차이가 폭력으로 번질 수 있다는 두려움이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이런 가운데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은 성명을 내고 “끔찍한 폭력 행위를 규탄한다”고 밝혔고,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폭력은 유럽 정치권에서 용납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괴물 같은 범죄”라고 비난했다. 대한민국 외교부는 언론에 배포한 메시지에서 한덕수 국무총리 명의로 피초 총리에게 위로 서한을 보냈다고 밝혔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