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인문학교실 제2차 인문학여행 (4)
스토아 철학을 중심한 고대 로마의 철학과 철학자들에 대하여
○ 서론
이 발제에서 로마철학 스토아 학파를 중심으로 스토아 학파의 사상과 영향을 살펴보고, 또한 로마 철학 하면 빼 놓을 수 없는 철학자 마르크스 툴리우스 키케로와 여러 스토아 학파 철학자들 중 세네카 그리고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 이 두 사람의 생애와 사상을 요약해서 정리해 보았다.
스토아 학파 (Stoicism)는 그리스 로마 철학의 한 학파이다. 스토아 (στοά)란 원래 전방을 기둥으로, 후방을 벽으로 둘러싼 고대 그리스 여러 도시에 있어서의 일종의 공공건축 (公共建築)을 의미하는데 이 학파의 창시자 제논이 아테네의 한 ‘주랑 (柱廊)’ (스토아)에서 강의를 한 데서 연유하여 이 말이 학파 전체를 나타내는 명칭으로 쓰이게 되었다.
– 스토아 학파 사상
스토아 철학자들은 건강한 인간은 스스로 이성적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이성을 훈련함으로써 자신의 “오이케이오시스”, 곧 “지향” 혹은 “소속감”으로 번역되는 이 감각을 채울 수 있다. 이성을 사용함으로써, 우리는 왜 더 나은 삶을 위해 서로 협력해야 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공동체와 공적 의무가 가진 가치와 덕에 헌신하는 것 – 는 바로 선한 일이며 우주를 지배하는 이성 혹은 “로고스”의 질서를 반영하는 일이었다.
스토아 학파에게는 감정이 바로 그 기준이 되었다. 우리가 이성에서 벗어날수록 우리는 잘못된 판단을 내리게 된다. 예를 들어 탐욕은 돈과 소유물이 가진 고유한 가치에 대한 잘못된 판단이다. 분노와 질투는 인간관계에 대한 잘못된 판단이다.
– 영향
스토아의 사상은 고대말기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철학·종교·문학 분야에서 커다란 영향을 끼치고 있다. 가령 플로티노스는 플라톤을 스토아의 관점에서 해석함으로써 이른바 신플라톤주의의 기초를 확립하였고,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나 오리게네스도 그리스도교를 신학으로 체계화하는 데 있어서 스토아의 입장을 원용하고 있다. 자연사상의 성립이나 브루노, 스피노자의 사상 등 근세에 있어서도 신과 자연을 동일시하려는 스토아의 관점이 커다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또 후기 스토아의 윤리 사상은 몽테뉴 등의 모랄리스트들에게 일종의 처세훈으로 애독되었다. 현대에 있어서는 논리학 분야에서 말과 말의 관계가 아니라, 명제 상호의 관련을 문제 삼으려는 스토아의 논리학이 재평가되고 있다.
○ 스토아 학파 철학자들
키티온의 제논 (스토아 학파의 창시자), 디오도토스 (키케로의 스승), 두키우스 아나이우스 세네카 (로마 제국 네로 황제의 스승), 메픽토스 (노예출신),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로마제국 제16대 황제) 등이 있다.
1.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
– 키케로의 생애
키케로는 기원전 106년 1월 3일 이탈리아 아르피늄에서 태어난다. 문인이자 철학자이자 정치가이자 웅변가이다. 31세의 젊은 나이에 재무관으로 공직을 시작했고, 5년 후에는 안찰관이 되었다. 그로부터 4년 후 법무관에 선출되었고 후에 로마 최고의 관직인 집정관에 오르면서 정치적으로도 최고의 명성을 얻었다. 원로원 중심의 공화정체제 옹호하며 카이사르의 독재정치에 반대하다 사유지가 있는 시골로 물러나 (노년에 관하여)를 집필한다.
기원전 44년에 카이사르가 암살됨에 다라 다시 정계로 복귀하지만 기원전 43년에 안토니우스가 보낸 병사들에 의하여 가이에타에서 암살되고 이에 따라 로마 공화정도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린다.
– 키케로의 사상과 저서
헬레니즘 시기에 사상적 흐름을 형성했던 에피쿠로스파, 스토아파, 아카데미아파의 논객들이 모여 “최고의 선, 즉 도덕적 완성으로서의 ‘선이란 무엇인가’”라는 문제를 놓고 벌이는 치열한 논쟁을 생생하게 수록한 책으로 BC 45년 무렵에 저술되었다.
원래 5권의 전집으로 기획된 이 책은 최고선이라는 윤리적 문제를 통해 당시의 다양한 철학 사상을 소개하고 있다. 당시 로마의 절충주의 입장의 대표적 인물인 키케로는 언제나 철학의 근본적인 두 축이 되어왔던 ‘절대주의’와 ‘상대주의’ 또는 ‘회의주의’의 대립을 극복하고 구체적인 실천의 영역에서 양자의 입장을 조화시키려는 의도를 이 저서에서 보이고 있다.
키케로 당시의 주도적인 철학 사상은 에피쿠로스학파, 스토아학파, 그리고 아카데미아 학파 등이었다. 키케로는 이 학파들의 주장과 학설을 대화의 형식을 통해 소개하고 비판하는 방식으로 논의를 전개한다. 철학적으로는 스토아 학파와 신 아카데미아 학파 양쪽의 절충론자이다.
저서로는 의무론, 최고선악론, 우정에 관하여, 노년에 관하여, 수사학, 국가론 등이 있다.
– 키케로의 영향
당대 최고의 문필가 중 한 명이었으며 라틴어를 공부하는 입장에서는 역사적 공적에 관계없이 반드시 이름을 아는 사람이기도 하다. 키케로를 상고 라틴어와 고전 라틴어를 나누는 기준으로 치고 고전 라틴어의 기준을 키케로의 저작으로 정했다.
또한 현대법의 근간이 되는 로마법을 공부하다보면 필연적으로 들어보는 이름이기도 하다.
후세에도 그의 저작은 여러 고대 그리스, 로마의 문헌 중에서도 고전으로서의 가치를 특히 인정받고 있다. 천병희 교수도 플라톤 전집을 완간한 후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다음으로 번역이 나와야 할 그리스, 로마 원전’으로 주저없이 키케로를 꼽은 바 있다.
2. 세네카 (네로 황제의 스승)
세네카는 네로 황제의 가정교사로 기원전 4년 스페인의 유력한 가문에서 태어나 로마에서 성장했다. 서기 54년 네로 황제가 등극하자 세네카는 최측근이 되어 네로 황제를 보좌한다.
– 세네카의 생애
BC 4년, 지금의 스페인의 수도 코르두바에서 귀족 마르크스 루키우스 안나이루스 세네가카와 헬비아 사이 둘째로 태어났다. 65년에 세네카의 적들의 음모에 의해 자살을 명령받고 침착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 세네카의 사상
그는 플라톤, 퀴닉학파, 에피쿠로스 등의 영향을 많이 받아 영혼과 육체의 구별을 강조하면서 “현자는 삶을 갖는 동안만 산다고 생각하지 않고 삶이 필요한 동안만 산다고 생각한다”고 말하였다. 또한 “인간의 육체에 구속되어 있지만 올바른 이성에 의해 인간답게 살아가며 죽음으로써 노예상태 (육체로 구속 되어있는 상태)로부터 벗어난다. 철학이란 바로 이와 같은 선을 추구하는 처세의 학문이다”고 주장했다.
그의 저작은 주로 철학적 · 윤리적, 때로는 자연과학적 에세이집과 그리고 비극으로 대표되는 문학작품 등으로 대별된다. 에세이집에는 <노여움에 대해서>, <행복론> 등이 있고 비극작품으로는 9편이 있으며, 이것들이 현존하는 로마 작품의 전부이다. <헤라클레스>, <트로이아의 여인들>, <메데이아>, <히폴리토스> 등 에우리피데스의 작품을 모방한 것과 <오이디푸스>, <오이타의 헤라클레스>와 같은 소포클레스의 작품을 모방한 것, 그리고 아이스킬로스의 <아가멤논>의 라틴어극도 있으며, 그 밖의 2편도 그리스 비극의 테마를 편성하여 만들어져 있다.
3.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나의 도시와 나의 조국은 안토니누스로서의 나에게는 로마이고, 인간으로서의 나에게는 우주이다.” 라는 말을 남겼다. 그는 흔히 철인 황제로 많이 불리는 네르바 안토니누스 왕조의 5대 황제이자 로마 제국 16대 황제다.
– 생애
121년 로마제국에서 부유하고 망명 높기로 유명한 귀족 가문에서 마르크스 안나우스 베루스 (친부)와 도미티아 루킬라의 아들로 태어났다. 1세기 중반부터 3세기 초까지 대단한 역사를 가진 가문이었다. 양부인 안토니누스 피우스가 161년 3월 6일 로마 근교에서 사망하자 그의 나이 40세에 황제 즉위를 요청받고 31세 된 동생 르키우스와 같이 공동 황제 즉위를 요청하여 원로원이 이를 받아들여 동생과 나란히 공동 황제에 올랐다.
180년 3월 17일 전염병에 걸려 자신이 설치한 병영기지 (오늘날의 오스트리아변)에서 사망했다.
– 사상
스토아 철학자로서 마르쿠스는 이성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겼다. 고대 사회에서 철학은 오늘날처럼 특별한 과목이 아니었다. 철학은 곧 지식과 지혜에 대한 열정을 의미했다.
우리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고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은 바로 자기반성과 심사숙고이다. 철학을 통해 우리는 더 나은 시민, 친구, 형제, 부모, 연인이 될 수 있다.
마르쿠스는 이렇게 썼다. “이성적 존재의 선이란 바로 공동체이다. 우리가 공동체를 위해 태어났음은 아주 오래 전부터 알려진 사실이다.”
로마 제국의 지도자들은 종종 평화로운 시기에 탐욕과 교만에 빠졌다. 우리는 탐욕적인 네로 황제를 불행한 지도자로, 마르쿠스를 위대한 지도자로 생각한다. 마르쿠스가 모범적인 통치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 중에는 선한 사고를 위한 그의 노력이 있었다.
○ 나가는 말
먼저, 이 발제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홍길복 교수님께 감사를 드린다. 이를 준비하면서 로마 철학 스토아 학파를 아는데 개인적으로 많은 도움이 되었고, 스토아 학파 철학이 인간의 생각 즉 선한 마음을 갖게 하는데 많은 영향을 끼쳤음을 알게 되었다. 어느 시대나 이처럼 법 질서, 도덕, 윤리를 목소리 높여 강조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막강한 힘을 가지고 로마가 유럽을 통치하는 로마제국 시대에 이와 같은 스토아 철학사상이 로마 철학의 사상으로 자리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 새삼 안도의 숨을 쉬어 본다. 이제 곧 방문하게 될 로마에서 스토아 철학의 그림자를 찾아 확인하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결국 철학이, 인문학이 인간의 선한 마음을 이끌어 내어 보다 인간다움의 나라, 사회 그리고 공동체를 살아가는데 그 영향력이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고 또, 내가 소속되어 있는 시드니 인문학 교실이 시드니에서, 호주에서 그리고 한국 커뮤니티에서 그 선한 영향력을 감당하게 되기를 소망해 본다.
김클라라 (시드니인문학교실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