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인문학교실 : 홍길복 목사의 이집트·이탈리아·한국 여행일기
홍길복 목사의 제2차 인문학여행 일기
2023. 10. 11 (수) 서울 · 인천 : 대체로 맑고 Fresh한 편이다.
꼭 두주일전 9월 27일 수요일에 이곳 서울에 온 우리는 그동안 우리 식구들과 같이 우리 인생 어쩌면 처임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소중한 시간을 보냈다. 먼저 온 현철이, 현명이, 밀리, 그리고 그 다음날에 들어온 지은이, Eve, 데비, 지혜, 남제, Chloe, Ollie, Ellie,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난 주일, 8일에 LA에서 온 은주엄마. 우리는 이 여러 피붙이들과 같이 추억을 만들고, 사랑을 나누고, 삶을 이야기 했다. 날은 다르지만 아이들은 거의 다 시드니로 돌아가 학교와 직장, 일상의 삶으로 잘 돌아갔다. 우리 부부와 은주엄마, 그리고 현명이, 우리 넷은 오늘부터 <시드니인문학교실> 33명의 Member들과 같이 또 다른 인생여행길을 걷게 된다.
오전엔 인사동 거리에서 shopping을 했다. 나도 잃어버린 모자를 대신해서 새것을 사고, 낡은 허리띠도 새 것으로 갈았다.
강남면옥에서 냉면과 만두를 먹고, 쌍화차를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오후엔 일찍 공항으로 나왔다. 우리를 태워준 Taxi 기사는 힘든 한국생활에 대하여 진실하게 이야기하면서, 그리고 긍정적 삶의 자세를 지니며, 올려다보기 보다는 자기보다 훨씬 더 어렵게 사는 사람들의 케이스를 이야기 하면서 내려다보며 힘을 낸다고 이야기 했다. 참 아름다운 택시운전사의 이야기였다.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공항에 와서 현명이도 다시 만나고, 몽골에서 막 도착한 김충석 선교사 내외분도 반갑게 만나 문안하고 인사했다.
드디어 시드니에서 출발한 우리 팀은 정시, 7시 경에 인천공항에 무사히 도착했다. 그러나 입국심사대에서 시간이 아주 많이 걸려, 거의 9시 경에나 우리 모두가 만날 수 있었다. 최진 대표 내외분을 위시하여 주경식 교수 내외분 등 모두가 잘 도착하였다. Brisbane에서 오신 분들까지 착오없이 만나 공항 근처에 있는 좋은 Hotel, Best Western에 여장을 풀었다. 갈릴리여행사 대표께서 나와서 친절하게 가이드를 하고 정보를 제공해 주셨다. 그리고 밀라노에서 보도록 계획했던, 아니 우리가 제안했던 <최후의 만찬>은 못 보게 된 것에 대해서도 사과와 변명을 했다.
일단 그것은 여기서 마무리하고 더 이상 문제삼지 않기도 했다. 나로서는 대단히 중요한 여행의 핵심중 하나였는데 참 많이 서운했다. Hotel 옆에 있는 식당에서 늦은 저녁, 김치찌개로 식사를 하고 방에 들어오니 11시가 되었다.
지금은 아침 6시다. 10월 12일 목요일이다. 5시도 되기 전에 눈을 떴다. 어제의 일기를 쓰면서 제일 크게 마음에 와 닿는 것은 감사다. 모든 것이 다 감사하다. 물론 보이지 않게는 하느님께 감사하지만, 보이게는 사람들에게 감사한다. 이분들 때문에, 바로 그 한사람, 한사람 때문에 어제도 행복하게 살았다. 보이게, 혹은 보이지 않게 우릴 도와주고, 사랑해주고, 곁에 있어 주는 이들 – 식당 아줌마, 거리의 장삿꾼, 택시운전사, 사랑하는 가족들, 인문학 친구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타인들 때문에 나는 존재한다.
그래서 나는 이번에도 제2차 인문학여행에 함께하는 <감사한 친구들의 이름>을 여기 다시한번 써 봄으로 그 이름들을 외우기도 하고, 기억하기도 하며, 혹은 남겨 놓아야 한다고도 보아서 오는 첫날, 첫 여행일기에 이분들의 이름을 남겨놓는다.
최 진 / 김신영
계응준 / 박혜경
김용강 / 김선희
한준수 / 이행숙
최혜순 / 김영윤
임운규 / 강성현
임현명 / 이길선
김클라라 / 이순희
김마리아 / 송금옥
송미영 / 김영애
김충석 / 조혜옥
류경희 / 홍부곤
고근순 / 임종광
한부희 / 윤경호
김동훈
주경식 / 김동숙
그리고, 끝으로 이길남 / 홍길복이다.
2023. 10. 12 (목) 서울 : 맑고 신성한 하늘 / 로마 (밤) : 맑고 신선하다.
인천공항 근처, Bus로 5분 정도 밖에 않걸리는 자리에 위치한 Best Western Hotel에서 아침을 먹었다. 서양식 뷔페이다. 간단하지만 서로 이야기하며 사귈 수 있는 좋은 아침 식탁이었다.
참 오랜만에 동훈이와 같이 식탁에 앉았다. 그동안 인문학 여행 준비 모임에 조장으로써 동훈이가 잘 않나와서 섭섭도 했고 걱정도 되었었는데, 이해하게 되었고 좋은 교제도 되었다. 내가 인문학의 역사에 대하여 간단히 이야기해 주었다.
아침 9시 30분에 모여 Bus를 탔다. 내가 첫날, 첫 출발이어서 간단히 기도를 드렸다. 기독교인이 아닌 분들도 몇 분은 계시지만 양해를 구하고 한 1분 정도 짧은 감사와 기원을 담아 기도 드렸다. 공항에 도착하여 기념사진을 찍고 임운규 목사의 생신 축하노래를 부르고 박수로 축복했다. 각자가 Check in을 하고 개인적으로 공항 안에서 이곳저곳을 둘러보거나, 걸으면서 시간을 때웠다. 은주엄마와 우리는 공항 <기도실>에 감간 들렸다. 삼삼오오 모여서 서로 사귈 수 있는 좋은 시간이 되었다.
드디어 12시, 정오가 되어 Asiana는 인천을 출발했다. 서쪽으로, 서쪽으로 꼭 12시간을 날아갔다. 우리를 포함하여 많은 분들이 힘들고 지루했고, 그래서 많이 지쳤다. 비행기 안에서는 영화를 보고 책도 읽고, 짧게 눈을 붙이기도 하며 그럭저럭 이곳 로마시간 저녁 6시에 여기 <레오나르도 다빈치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개인의 이름을 따라 공항이름을 명명한 곳이 많이 있다. 김일성공항으로부터 NY이나 영국에도 있고 세계 곳곳에 적지 않으나 이렇듯 16세기 뛰어난 세계적 화가의 이름을 붙인 이곳이 퍽 부럽다. 비교적 쉽고, 빨리 공항을 나섰다. 기다리던 로마 안내인이 우릴 맞아주었다.
공항을 나오다가 김신영 선생이 바닥에서 넘어졌다. 크게 다치지는 않은 것 같아 다행이지만 큰일이 날 뻔했다. 우리 모두를 대표한 <대표적 액땜>이라고 농담을 던졌다.
지금은 이곳 시간, 10월 13일, 금요일 새벽 2시다. 한 3시간 정도 눈을 붙인 것 같다. 김신영 선생을 위해서 기도한다. 모두의 두고 온 가정에 평화를 간구한다. 이제 막 출발하여 드디어 오늘부터 본격적인 걸음이 될 우리 인문학 여행과 그 팀원들을 떠올리면서 하느님의 은총을 간구한다. 창문을 열어보니 밖은 캄캄하고 고요하다. 우린 조용히 각자의 일을 한다. 이길남은 성경을 읽고, 기도를 드린다. 나는 스마트 폰이나 면도기를 충전하고, 일기를 쓴다. Diary를 펴놓고 시간에 따른 어제의 일정을 메모하고, 팀원들의 얼굴을 떠올려 본다. 모든 인간은 이해받아야 하고, 이해 받으면 사랑 받을 수 있다. 나를 새벽을 참 좋아하고 사랑한다. 나도 젊은 시절엔 새벽기도가 무척 힘들고 어려웠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오랜 목회기간을 통하여 아침형, 새벽형 인간으로 삶의 패턴이 변했다. 새벽에 나는 하느님도 만나고, 사람도 만난다. 그들이 나를 어떻게 대해 주던, 그것과는 상관없이 나는 내가 아는 사람들, 지금 함께하는 사람들과 더불어 진솔한 만남을 갖게 된다. 그리고 그 어떠한 사람도, 그 어떤 말과 행동을 한다 하더라도 이해하고 사랑하리라 새벽마다 다시 다짐하며 결국은 나 자신과 조우하게 된다.
2023. 10. 13 (금) Roma & Cairo : 모두 말고 기온이 약간 높다.
절대수면이 부족하다. 몸을 가누기가 힘이 든다. 지금은 14일, 토요일 새벽 5시다. Cairo의 좋은 Hotel Radisson Blu 604호실이다. 지난 밤 카이로 시간 11시 30분경에 이곳 북부 Africa 이집트의 수도 Cairo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Roma와 시간차는 한 시간이다. 로마에서 6시 30분에 출발했다. 4시간은 비행한 셈이다. 친절한 가이드가 우리를 맞아주었다. 그리고 Hotel로 데려와 방을 배정받고 잠자리에 든 것이 거의 두시가 되어서다. 지금은 14일, 토요일, 새벽 5시 30분, 잠을 깨우는 알람이 울린다. 벌써 우린 꼭 한 시간 전에 잠이 깼다. 한 3시간 가까이 잔 셈이다. 그나마 다행이다.
13일, 금요일 아침, 우리는 가이드의 인도에 따라 성 씨스티나 대성당과 박물관에 들어가기 위해서 6시부터 줄을 섰다. 긴 줄 끝에 9시 반쯤 입장했다. 그동안 우리 일행은 줄을 선 근처의 Cafe에서 커피를 마시고 연결된 가이드 리모콘을 귀에 꽂고 로마, 그리스의 문명, 역사에 대한 긴 설명을 잘 들었다. 참 친절하고, 자상한 가이드다. 재치도 있으면서 설명을 잘해 주어서 모두에게 유익한 아침공부가 되었다. 하여튼 로마에서의 우리 가이드는 성공적이었다. 여성분인데 이곳 로마에 20 수년을 있으면서 공부도하고, 일을 해온 준전문가라고 할 수 있었다.
우리는 이에 따로 따로, 혹은 자리를 함께 하며 자료를 찾아 공부했던 씨스티나 성당과 라파엘로,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여기에서 다시 만났다. 거의 두 시간 가까이, 12시 반까지 오전 시간을 여기 로마 가톨릭 교회의 교황들과 교권, 인간의 타락과 각성, 예술의 본질과 종교에 맞닥트릴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을 했다. 여행을 짧게 쓰는 여행일기에서는 도저히 다 describe 할 수 없는 수많은 생각들을 씨스티나 Chapel과 성 베드로 성당 등 Vatican을 걸으면서 다시 맞닥트렸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하느님은 과연 어떤 존재인가? 인간들은 왜, 무엇 때문에, 무슨 목적이 있어서, 신을 만들고, 신을 찬양하고, 신을 신 되게 하면서 인간 내부에 있는 또 다른 인간의 기대와 탐욕, 희망과 좌절을 만들어 가는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자신의 내적 성찰 속에서 인문학도들의 길을 다시 걸어간다. 벌써 3차례나 찾아온 성 베드로 성당과 제단, 피에타, 돔, 하늘을 향한 인간의 기도, 나는 오늘도 참 소중한 나 자신의 모습 앞에서 부끄럽고, 부끄러운 내 모습을 다시 본다. 인간은 끝없는 탐욕의 노예다. 그 탐욕이 아주 많은 경우, 우리의 이성과 신앙, 우리의 희망과 기대를 참 비참하게 만들며, 그렇게 만든 것들을 조롱 할 때도 참 많이 있다. 이것이 역사다. 역사 – 희망과 슬픔, 거룩함과 추함, 진실됨과 거짓을 서로 엮어 하나님 것처럼 만들어 내는 것이 바로 인간이요, 종교요, 예술이요, 하느님이다.
12시가 넘어 Vatican을 나선 우리는 이태리 피자로 점심을 먹고, 로마의 뒷골목을 걸은 후, 로마시내를 bus에서 들러보며 가까이에 있는 Domitilla Catacombe에 도착했다. 1500년전 기독교인들의 무덤 – 그 무덤 속에는 죽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생명도 있었고, 그 무덤 속에서는 십자가만 있는 것이 아니라 꿈과 희망도 함께 있었다.
전에 로마에서 보았던 Catacombe 만큼 규모가 큰 것은 아니었지만, 규모를 떠나, 여기서 우린 죽음 – 그 너머를 다시 바라본다. 여기와 거기를, 삶과 죽음과 존재와 비존재를, 역사와 신비를 1500년 전의 죽음에서 볼 수 있다. 카타콤베 안에 있는 작은 Chapel에서 짧은 기도를 받치면서 나는 영원을 보았다. 순간을 넘어서는 영생을 다시 발견한다. 모두들 그렇게 와서, 그렇게 살다가 또한 그렇게 그렇게 가는 인생길이 지난, 그 짧은 인생 속에서 인간의 언어와 감성을 넘어서는 초월의 세계가 있다. 아마도 그래서 나는 종교인인가 보다. 10월의 로마는 참 따뜻하고 햇살은 빛이 나고, 우릴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가 다 거룩하다. 공항에 일찍 나와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다가 늦은 시간이 되어 Egypt Air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2023. 10. 14 (토) Cairo : 구름–흐리다. Alexandria : 구름–흐리다.
10월 15일, 주일 아침 4시 반이다. 어제의 일정을 뒤돌아본다. 아침 8시쯤 이곳 Radisson Blu Hotel을 출발한 우리 전용 Bus는 거의 3시간을 달려 고대의 또 다른 운명과 정치와 종교를 주름잡았던 지중해 해안가 도시 Alexandria에 도착했다. 20여년 전 Egypt에 왔을 때 곡 와보고 싶었지만 일정에 쫓겨 와보지 못했던 도시였다. 창밖으로 보이는 Nile강 Delta 지역을 바라보면서 카이로에서 북서쪽으로 220km를 달려왔다.
아풀사! 그러나 그렇게 그리던 고대 Alexandria 도서관터와 그곳에 새롭게 건축한 현대 Alexandria 도서관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그냥 밖에서 기념사진만 찍고 발걸음을 되돌렸다. 정확히는 못 들었지만 아마도 대단히 높은 지위에 있는 어떤 인사가 지금 이 도서관을 방문중 이어서 들어가 볼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시드니에서 여기가지 왔는데… 내 어찌 Cleopatra의 흔적만 보려고 여기에 왔었겠는가? 많이 섭섭하고 아쉬웠다. Alexandria의 옛 역사와 함께 선전과 오벨리스크와 해안 성벽 등을 들러보고, 맛있는 점심을 나누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다시 Cairo로 돌아왔다. 우리 Guide 이 선생은 친절하고, 박학한 분이시다. 특히 역사와 신화에 대한 이야기를 아주 재미있게 잘 풀어서 해 주셨다. Alexandria에서 이번에 의미 깊게 찾아본 것은 Coptic 기독교와 마가기념교회를 방문한 것이다. 신화와 전설과 빈약한 자료를 근거로 한 것이지만 이집트를 중심한 Coptic 기독교, 신자의 숫자만 해도 1천만쯤은 되리라고 여겨지는 <동양 이집트 정교회>의 다른 모습을 둘러본 것이 퍽 커다란 의미를 준다. 마가복음서의 저자요, 베드로의 동역자였던 마가가 AD 60여년 이곳에 와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고 순교한 터라고 알려진 자리를 찾아보았다.
그후 칼케돈 공의회와 Coptic교회를 이단으로 처리했지만, 사실 그 실상은 교리 문제라고 보기엔 문제가 있다. 보라! 마가 복음서를! 어디 마가가 예수의 인성을 부인한 적이 있나! 오히려 마가 복음서는 예수님 자신이 스스로를 늘 人子, 사람의 아들, Son of Man이라고 부르면서, 사람이 되신 θ, θ의 인성을 다른 어떤 복음서보다 더 많이 강조하지 않았던가? <마가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의 자칭어로서의 人子 사상> 이라고 규정하며 쫓아내었던가? 모든 것이 교회의 주도권 싸움, 권력싸움 – 이제는 박해시대가 끝나고, 강력한 정치권력을 등에 업고 세속적 권력까지 손아귀에 잡으려는 더러운 교리싸움의 한 모습이 아닌가?
로마에서 본 Vatican과 성 베드로 성당의 무시무시한 위용과 Alexandria에서 찾아간 마가 기념교회의 초라한 현장을 비교해 보면서, 모든 역사의 승자와 패자는 이렇게 나누어진다는 것을 가슴 아프게 절감했다. 정말로, 결코, Coptic 교회는 예수의 단성론자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인성을 부인하고, 신성만 강조한 이단이 아니었다. 당시 Gnostic 같은 영지주의자들과는 구분되어야할 교회였다. 마가 복음서에서 강조하는 <인자 예수, 사람의 아들 예수>가 그것을 확실히 말해준다.
역사적으로도 훗날 Coptic 교회는 신인양성을 인정, 확인했고, 단지 신성이 인성보다 우위에 있으며, 예수의 신성이 인성을 내표한다고 말했을 뿐이다. 하지만 역사를 뒤돌아보면 이들 이집트의 Coptic 교회는 한없이 이어지는 교리전쟁 보다는 오히려 사막에서의 수도원 운동과 영성운동을 통하여 동방정교회와 함께 로마 가톨릭과는 대비되는 또 다른 기독교의 세계를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겠다.
늦은 저녁 초죽음이 된 몸을 이끌고 Hotel에 도착하니 밤 9시다. 오늘은 좀 많이 잘 수 있겠다 싶었다. 그리고 실제 주일 새벽 4시 반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 6시간은 푹 잤다. 몸이 많이 가볍다. 아침에 어제의 여행 일기를 정리하고, 기도를 드린 후, 오늘의 일정을 미리 살펴본다.
모든 것이, 순간순간, 감사하다. 좋은 사람들 때문에 삶이 아름답고, 풍성해 진다.
2023. 10. 15 (주일) Cairo : 하늘은 맑고 날씨는 많이 덥다.
간밤은 그래도 많이 잔셈이다. 한 다섯 시간 정도는 잤다. 새벽 4시에 눈이 떠졌다. 씼고 어제의 일기를 정리하고, Hotel 식당에서 뷔페로 식사를 했다. 아침에 시드니우리교회 주일예배를 켜놓고 기도, 찬송, 성경봉독까지 했다. 시간에 쫓겨 오늘이 주일인데도 예배를 다 드리지는 못했다. 여행중엔 인터넷으로라도 예배를 드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그리 여의치는 못했다. 8시에 Hotel을 출발하여 Giza에 있는 Pyramid에 도착했다. 날씨는 덥고, 길은 쉽지 않다. 늙어서인가? 20여년과는 많이 다르다. 쿠푸왕과 그의 아버지, 그리고 그의 아들의 무덤이라고 알려진 세계7대 불가사의 중 하나를 다시 둘러보고 일행은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 후엔 스핑크스를 둘러보았다. 영원, 영생, 사후를 생각해 본 인류의 긴 역사중 하나인 피라미드는 인간의 신앙을 표현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권력자들만이 지닐 수 있는 특권을 보게 해준다.
그 다음 우리는 파피러스 전시장을 둘러보았다. 이곳은 내가 여행을 기획하고, 기본 스케줄을 짤 때 넣어 달라고 부탁한 곳이다, 우리 가이드는 파피러스 나무로부터 종이를 만들고 글씨와 그림을 그리는 과정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모두가 고대의 각종 문서와 특히 양피지 두루마리와는 또 다른 파피러스 종이로 기록된 토라와 70인역을 생각해 보게 해 주었다.
몇몇 분들은 파피러스로 된 그림을 사기도 했고, 우리 교실에서는 백지 파피러스를 한 장 구입하여 이번 인문학 여행팀의 명단과 사인을 받아 한글사랑 도서관에 보관, 전시하기로 했다.
카이로에서의 점심식사는 참 좋았다. Nile 강변에 있는 고급식당에서 맛있게 점심을 나눈 후, Nile 강에서 범선을 타고 약 30분 정도 유람을 했다. 이것도 사실 별것이 아닌 듯하지만, 나는 꼭 모세가 던짐을 받았다고 하는 Nile 강에서 배를 한번 타고 돌아보고 싶었다. 그전에는 해보지 못했던 것을 이번에는 해 볼 수 있었다. Cairo 시내에서 Nail 강에서 옛날 범선을 타고 유유히 흐르는 Nile을 따라 30분이라도 돌아보며 상상의 날개를 펼칠 수 있었던 것이 참 좋았다.
이집트에 있는 <고고학 박물관>은 방문할 수가 없었다. 새로 박물관을 건축하여 유물들을 옮기는 과정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 옛날 이집트 고고학 박물관에서 투탕카멘의 미이라를 비롯하여 그가 남긴 많은 유물들을 볼 수 있어서 참 좋았는데 이번에는 그러질 못했다.
그러나 그 대신 한 10여년 전에 새로 지은 이집트 문명사 박물관, Egypt Museum of Civilization을 찾아갔다. 깨끗하게 잘 정리, 정돈된 유물들이 마치 이집트를 새롭게 하는 듯하다. 이집트 대학의 <피라미드 학과>가 점점 자리를 잡아가고, 이집트 정부가 Unesco를 비롯한 영국, 독일, 미국, 프랑스 등에 있는 유수한 대학의 지원을 받아 그들의 수 만년 역사를 다시 정리, 정돈 하듯이, 이 나라라도 지금 발버둥을 치면서 그들의 찬란했던 문명과 역사를 가다듬고 있다. 참 다행이다.
해질 무렵이 가까이 되어 우리는 소위 쓰레기 마을이라고 불리우는 모카탐 마을과 그 마을 깊숙한 곳에 수백년 전부터 자리잡아온 동굴교회 두 곳을 방문했다. 이곳은 말은 들었지만, 그동안 한 번도 찾아오지 못했다가 이번에 우리 팀과 같이 방문할 수 있었다. 과장하여 3만 석이라도 하는 이곳의 두 Coptic교회는 신화와 전설을 지닌 특별한 교회다. 아직도 계속해서 짓고, 확장하는 곳이지만 내가 보기에 이 예배당은 이집트의 사막 수도원과 더불어 세계 교회사에서 넉넉히 또 다른 주님의 교회를 보게 해주는 역사의 현장이요, 처해있는 자리까지도, 쓰레기를 모으고, 쓰레기를 정리, 정돈하여 팔아가면서 생활을 위지하는 가난한 민중, 가난한 현대적 갈릴리 현장 속에서 예수님의 모습을 발견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넓은 교회당에서 각자 기도를 받치고, 작은 헌금을 모아 드리고, 가난한 예수, 가난한 마가, 가난한 구두수선공의 교회를 떠나 한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저녁을 먹었다.
많이 피곤하고 지친다.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다. 아침 일찍부터 피라미드, 스핑크스, 파피러스 공장, 나일강에서의 배타기, 박물관 방문, 그리고 쓰레기 마을에서의 충격과 동국 교회에서의 기도에 이르기 까지 하루의 일정이 빡빡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너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고, 너무 많은 충격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의 이 여행일지도 16일, 월요일, Luxor 방문을 다 마치고 Luxor 공항에서 카이로로 가는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면서 정리하는 것이다.
아는 만큼 보게 되고, 보는 것만큼 생각하게 되고, 또 생각하고 생각할수록 사랑과 이해는 더욱더 깊어진다. 사랑하는 인문학 친구들이 참 고맙다. 이렇게 사상, 이해, 그리고 생각을 깊이 하는 친구들이 더해질수록 세상엔 희생과 가능성이 더해지리라 생각한다.
2023. 10. 16 (월) Luxor : 많이 덥다. 1년에 10mm 정도 비가 오는 도시다. 인구 50만, 도시전체가 문화유산이다.
어제 저녁 9시경, 우리는 혼잡하고 지저분한 Cairo 중앙역에서 Luxor행 야간 Sleeping Train을 탔다. 20여년 전에는 기차가 깨끗하고 한적했는데 시간이 흐르는 동안 객실은 낡았고, 지저분해졌다.
물도 잘 않나오고, 화장실도 사용하기가 아주 많이 불편했다. 한 칸에 두 명이 잘 수 있는 2층 침대였으나, 우리 부부 뿐만이 아니라, 모두들 고생 꾀나 했으리라. 그래도 이 또한 인생이고, 여행이고, 추억이고, 시간이 지나면 아름답게 남게 될 것이다. 아침 7시 경에 Luxor역에 도착했다.
6시 경에 기차에서 도시락으로 아침식사를 제공해 주었다. 창밖은 조금씩 밝아 오고, 나일강을 따라 양쪽으로 이어지는 선로의 좌우편은 사탕수수를 비롯한 여러 가지 농작물들이 잘 자라고 있었다.
기차에서 내린 우리는 먼저 멤논의 거상 앞에 이르렀다. Luxor는 어딜 가나 도시 자체가 하나의 박물관이요, 역사의 유물터이다, 왕들의 무덤이 즐비한 King’s Valley에 이르렀다. 많이 더웠다. 그래도 우리는 합세수트 여왕을 비롯한 장제전들과 왕들의 옛 고분터에 들어갔다. 우리 부부는 너무 힘들어서 두 곳만 들어갔다. 다른 일행들 중에는 3곳을 다 방문한 분들도 있었다. 특히 우리는 그 유명한 합세수트 여왕의 장제전의 외부와 내부에서 인간, 역사, 권력, 죽음, 영생, 그리고 그들이 넘겨놓은 유물의 의미에 대하여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왕들의 계곡 가까운 곳에 있는 오래된 Hotel 식당야외에서 점심을 나누었다. 1930년대라면, Howar Carter가 투탕카멘의 무덤을 발견하고, 열심히 이 지역을 발굴할 때 였을텐데 그 무렵에 세워진 분위기 있는 Hotel에서의 점심식사는 의미도 있었고, 분위기도 좋았다. 오후에 함께 Coffee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던 Ara Car Hotel도 마찬가지로 Luxor에서의 뜨거운 태양열 가운데 진행된 우리들의 강행군을 많이 식혀주었다.
오후에 우리는 그 유명한 Karnak 신전터를 찾아 좀 긴 거리를 돌며, 긴 시간을 보냈다. Luxor 신전터도 가까운 거리에 있어서 연이어 찾아갔다. 입이 딱 벌어진다. 특히 카르낙 신전은 인류가 가지고 있는 종교유산 중 가장 큰 규모의 신전자리이다. 우리는 여기서 고대 이집트의 아몬신과 그에 대한 제사가 고대 이스라엘의 유대교와 레위기에 나타난 축소된 제사의식의 관계에 대한 생각을 다시하게 되었다. 온갖 종류의 수많은 신들, 특히 수많은 태양신들이 널리 퍼져있었던 시대, 그 후 유대인들은 야훼 숭배에 있어서 어떤 부분에 그들로부터 영향을 받았고, 또 카르낙으로 부터 어떤 형태를 변형시켰는지를 연구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멤논의 거대한 석상, 이곳저곳에 널려있는 왕족들과 귀족들의 무덤들과 그들을 지켜주는 장제전과 그 문지기 신들, 합세수트, 유명한 어린 왕 투탕카멘 – 사실 여기엔 최소 며칠이라도 머물면서 영국과 독일의 고고학자들이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어떻게 현대 고고학의 기틀을 만들어 왔는지를 공부했으면 좋겠다. 나는 이게 나이가 들어 점점 늙어가지만, 우리 일행 중 젊은이들은 이런 꿈을 좀 키워나갔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하다.
이집트에서는 이집트 식당에 자주 가게 된다. 그것도 좋은 추억이다. 시드니에서 먹었던 이집트 음식과는 또 다른 이집트의 냄새를 맡게 된다. 우리는 저녁식사 또한 이집트 음식으로 함께 나누고, 늦은 시간 천천히 Cairo행 비행기를 탔다. 공항은 복잡하고 비행기는 Delay 되고, 우리는 덥고 지친 몸을 이끌고 새벽 1시가 넘어 Cairo에 도착했다. Bus운전사는 도저히 길을 아는지 모르는지 깊은 밤 33명이나 되는 우리를 태우고 돌고 돌아 새벽 2시경에 Hotel에 도착했다. Shower를 할 겨를도 없이 녹초가 되어 쓰러졌다. 그리고 17일, 화요일 새벽 5시 우리는 다시 일어난 Milano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아픈 눈을 비볐다. 젊은 사람들은 좀 나을 것 같지만 60이 넘은 어른들은 그야말로 녹초가 되었다.
인생이란 여행이다. 인생이란 구경이다. 왔으면 가는 것이고, 보고난 뒤에는 잊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아름답고 성스런 길이다.
2023. 10. 17 (화) Cairo : 덥고, 뜨겁다. Milano : 시원하고, 맑고 기분이 상쾌한 날씨다.
새벽 2시경에 Hotel에 와사 check in을 한 다음 객실에 드니 2시 반이었다. 그리고 다시 새벽 5시 반에 check out을 했다. 모두가 수면이 부족하다. 이러다 병이 들거나 사고가 나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든다. 실제로 몇몇 분들은 이미 녹초가 되어 지칠 대로 지쳤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오늘 발생했다. 새벽 5시 반, 아직도 컴컴한 가운데 도시락 하나씩을 받아들고 Hotlel Tolip을 나선 우리는 그만 Cairo 공항에서 패닉에 빠졌다. 버스운전사와 이집트 가이드가 우리를 잘못된 Terminal에 내려놓고 가버린 것이다. 어제까지 수고 많이 했고, 아주 친절했던 우리 한국인 가이드, 이 선생은 오늘 아침 공항에 나오질 않았다. 이미 새벽 2시경, 헤어지면서 모두가 다 작별인사를 하며 감사의 박수를 보냈던 터였다. 우리 33명이나 되는 큰 Team을 잘못된 Terminal에서 Check in을 했다가, 다시 나와서 기다리며 초조한 시간을 보낸 후 다시 Bus를 타고 한 20여분이나 떨어져있는 다른 터미널로 와서, 다시 check in 하고, 검색을 받고, 겨우 Milano 行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모두들 당황했고, 짧은 시간이긴 했지만 불안했고, 혼잡스러웠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인생이란 늘 그렇다. 개인도, 집단도, 늘 생각지 못했던 우연과 우발적 사고들이 우리를 힘들게도 만들고, 계획했던 일들을 꼬이게도 한다. 오늘 우리가 겪었던 일은 다행이도 잘 수습이 되어 별다른 사고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인생길에는 우연이 필연을 이기고, 비정상이 정상을 조롱하는 경우도 자주 일어난다. 우리 팀의 실무적 가이드나 책임을 지고 있는 주경식 교수도 많이 당황했을 것이다. 그래도 침착하게 일하고, 또 옆에서 임현명, 김동훈 같은 젊은 친구들이 잘 도와주어서 별다른 사고나 지연으로 이어지지 않아서 참 다행이었다.
참, 어제는 주경식 목사가 그동안 여러 해에 걸쳐 준비하고, 연구하고 써왔던 Calvin의 칭의론 논문이 Ph.D에서 통과되어 학위를 받게 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져서 모두가 기쁜 마음으로 축하를 보냈다. 자축 케익크를 나누고 박수를 치고, 노래를 불러 함께 축하하고, 그동안의 노고를 격려했다. 주 교수 말대로 나도 그동안 선배로써 작은 Ment라도 하면서 함께해 온 것이 너무 기쁘고 감사했다.
자, 하여튼 우리 일행은 다행히도, 감사하게도 무사히 Cairo를 떠나 Milano에 도착했다. 한 4시간에 걸친 비행 후에 지중해를 건너 Alps를 위에 둔 문화와 역사, 특히 예술과 Fashion의 도시 Milano에 도착했다. 그러나 이것은 꼭 다시 여행일기에 기록으로 남겨 놓아야 하겠다.
처음 이번 제2차 인문학 여행의 기본 틀을 짤 때, 내가 Milano를 넣은 것은 3가지를 꼭 보고 싶어서였다. 첫째는 이곳 수도원에 있는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그 유명한 Last Super를 보고 싶은 꿈이 컸었다. 둘째는 오늘날 유럽 오페라의 시초이며 뿌리가 만들어진 스칼라극장의 내부를 한번 보고 싶었다. 그리고 세 번째는 두오모성당이었다. 그러나 위에 두 가지, 최후의 만찬과 스칼라극장의 내부는 그만 볼 수 없게 되었다. 특히 The last super는 6개월 전부터 여행사를 통하여 예약을 하고, 여권 사본을 보내고, 철저하게 공부하고, 마음의 준비도 하고, 우리 Term원들에게 설득도 하고, 설명도 했던 것인데 그만 출발 2주전에 와서야 그것이 불가능하게 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아쉬움을 지난 괴씸한 마음이 드는 일이었다. 정말 보상이라도 받고 싶은 심정이다.
오늘 우리는 Milano에서 우리의 친절하고, 자상한 여자 가이드의 도움을 받아 Milano, Paris, 이태리에 대한 설명을 잘 들으면서 Fashion과 예술의 도시를 둘러보았다. 특히 Brera 미술관에는 르네상스 이후의 귀한 그림들 몇 개를 직접 볼 수 있어서 참 좋았다. 우리는 이내 최진 선생님이 준비해서 보여주셨던 그림 중 일부를 다시보고 이해할 수 있어서 퍽 유익한 자리였다. 특히 우리는 이곳 Brera 미술관에서 카라바조의 <엠마오의 저녁식사>를 볼 수 있어서 아주 다행이었고, 그것이 그나마 나를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에 대한 섭섭한 마음을 많이 위로해 주었다.
지친 우리는 오늘 일정을 좀 일직 마무리하고 쉴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어ᅟᅩᆻ다. 일찍 맛있는 이태리 스파게티와 Wine을 곁들여 저녁을 든 후 이곳 Best Western Falek Village에 들어와 녹초가 된 채 자리에 누웠다. 저녁 9시 반경이어다. 그리고 눈을 뜨니 18일, 수요일, 새벽 4시가 되었다. 또 다른 하루를 기대하며 새벽에 쓰는 여행일지를 마무리 한다.
2023. 10. 18 (수) Milano : 흐리다. / Venecia : 흐리고 이슬비가 내리다. 기온이 내려가 쌀쌀하다.
Fashion과 금융, 산업과 예술의 도시 Milano를 떠난 시간은 아침 8시 반이다. 우리를 태운 관광전세버스는 동남부를 향하여 거의 4시간이나 달렸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참 아름답다. 고속도로도 시원하게 잘 닦여있다. 평야기대는 푸른 나무들이 우거져 있고 멀리 약간 높은 산언덕엔 거의가 교회당이나 수도원 건물이 자리를 잡고 있다. 점심때가 되어 우리는 Venecia에 도착했다. 조촐한 이태리 식당이었다. 다시 우리는 버스를 타고 Venecia의 본섬근처로 이동한 후, 거기에선 전세로 빌린 배를 타고 약 20분을 달렸다.
늘 사진과 그림으로만 보던 Venecia! 110여개의 섬으로 만들어진 Venecia,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 비발디의 Four Season 으로만 알고 있던 이 섬들의 나라, 섬들의 고대 도시에 발을 들여놓았다. 마가 요한의 유해가 안장되어 있다고 하는 산마르코 성당 앞 광장에 들어섰다. 사진을 찍고, 주변을 둘러보고, 다시 한 30여분 Gondola를 타고 수로로 연결된 섬 사이를 돌았다 날씨는 춥고, 이슬비는 내리고 어슬어슬 했다 한 작은 Cafe에 들어가 Hot Chocolate를 마시고 몸을 녹였다. 개인적 자유시간이 주어졌지만 이미 로마와 말라노, 카이로와 알렉산드리아, 그리고 룩소를 둘러보고 온간 눈호강을 다한 우리들 눈에는 들어오는 것이 별로일 정도였다. 그래도 우린 13, 14세기 때부터 유태인들이 들어와 터를 잡고, 수상도시를 건설하기 시작한 이후 지난 6-700년 동안, 어떻게, 무슨 기술로, 무슨 과학으로, 무슨 이론으로, 그리고 무슨 정신력으로 이런 수상도시를 만들고, 유지, 보수, 개선해 왔는지 정말 상상이 않되는 Venecia의 모습에 감탄을 거듭했다.
우리 일행은 주로 산마르코 광장을 중심으로 이곳저곳 가게들과 인파들 사이를 헤매다가 4시 30분경 다같이 모여 사상 Taxi를 타고, 이 물의 도시를 빠져 나왔다. 한 40분 정도 물결을 헤치며 Taxi는 멋지게 달렸다. 물위에서의 Taxi 타기! 날씨는 흐리고 비가 뿌리며, 쌀쌀했지만 참좋은 관광을 했다. 우리 일행은 마침내 오랜만에 한국식당에 들려 비빔밥을 먹었다. 그에 앞서 함께 붙어있는 기념품 가게에 들려 상품소개를 받고, 몇 분은 이것저것 작은 기념품이나 선물을 사셨다.
다시 우리는 어두움 밤 남쪽을 향하여 한 1시간 정도를 더 내려왔다. 아마 내일의 이동시간을 좀 줄이기 위함인 것 같았다. 우린 아주 고색창연한 낡은 Hotel에 들었다. 이도 Best Western Villa로써 Chain인 것 같다. 낡고 오래되고 삐걱거리는 마룻바닥에 Air Con도 잘 작동하지 않는 옛날식 Hotel이다. 그래도 좋았다.
이 Villa식 Hotel은 1600년대 초 Gucczzo Baretta라는 한 부자가 400에이커나 되는 넓은 농토위에 세운 개인주택이었는데, 지금은 Hotel로 개조된 것이다. 정말 고색 찬란한 역사의 현장에서 하룻밤을 잘 지냈다.
9시가 좀 넘어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19일, 목요일 새벽 4시에 눈이 떠졌다. 어제를 정리하고, 세면하고, 일기장을 펼치고 하루의 일정을 되새겨본다.
모든 것은 만남의 결과다. 하늘과 땅, 땅과 물이 만나 세상을 이루어냈다. 빛과 어두움, 여기와 제기가 서로 맞대어 역사를 만들어 냈다. 하나님은 사람을 만났고, 사람은 하나님을 만났다. 남자는 여자를, 여자는 도 남자를 만났다. 모든 역사는 서로 다른 것들이 만나, 균형과 조화를 창조한 결과이다. 잘 만나야 한다. 하나님은 사람을 잘 만나야 하나님이 될 수 있고, 사람도 하나님을 잘 만나야 진정으로 행복한 인생이 될 수 있다. 물은 땅을 만나고, 땅은 또 물을 만나 Venecia 같이 아름답고 신비한 공간을 만들어 내듯이, 모든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을 한결같이 서로 만남을 통하여 신비와 성스러움과 아름다움을 만들어 간다. 절대로 혼자서는 아무것도 존재하지도 않고, 창조해 내지도 못하는 것이 신의 세계나 인간의 세계이다. 그리고 그 만남에는 때로 충돌도 있고, 빗나감도 있기는 하지만, 결국은 타협, 조정, 이해, 양보, 사랑을 통한 균형과 조화가 그 모든 도덕적 진선미를 포함한 과학적이며 합리적인 세상을 이루어 나가는 열쇠가 된다고 믿는다.
여행을 통하여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짧은 시간, 모두들 많은 이야기, 진지한 자기표현, 정직한 사람을 충분히 나누지는 못해도, 그래도 우리 마음속에는 만남에 대한 감사, 만남에 대한 행복과 즐거움이 더해진다. 아마도 이런 것이 단순히 어디 어디 가서, 무슨무슨 것들을 보고 온 것을 넘어서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부딪침이 안겨주는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또 다른 날, 또 다른 만남, 또 다른 생각과 사랑과 감사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감사한 마음으로 여행의 막바지를 향하여 오늘도 달려가야 하겠다.
2023. 10. 19 (목) 베네치아 · 친퀜테레 · 몬테까티니 : 북중부의 이태리에는 계속 비가 내리다. 우기에 접어들었나 보다.
아침 8시 30분, 우리는 Villa 형태로 지어진 옛날식이지만 또한 현대식인, 옛것과 새것이 잘 어우러진 Best Western Villa Tacchi를 출발하였다. 우중에 잠간 내다본 그 지역의 땅과 실내장식이 참 고색찬연 하였다. 추천할 만한 좋은 숙박지였다. 비는 계속 내리고, 김충석 목사의 기도대로 운전사와 가이드의 수고에 감사하는 마음을 지니고 먼 길을 떠났다. 거의 5시간이나 걸려 <라 스페찌아 La Spezia>에 도착했다. 여기는 중부 이탈리아의 서해안에 자리하고 있는 관광도시이다. 일본과 중국식이 혼합되어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나누었다.
비는 계속 내리는데 우리는 우산을 사서들고, 비옷을 챙겨 입고서 기차역까지 20여분을 걸어갔다. <라 스페찌아>에서 다섯 개의 마을이라는 뜻을 지닌 <친퀜 테레 Cinque Terre>를 기차로 다녀오는 짧은 관광이다. 우리는 그 5개의 마을 <친퀜 테레> 중에서 <리오 마지오레 Riomaggiore>와 <마나롤라 Manarola>라는 두 개의 해안가, 절벽 곁에 만들어진 작은 동네를 구경했다. 이곳 5개의 마을 <친퀜 테레>는 모두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유산에 속한다. 물론 시드니에서 동부해안가를 따라 울릉공과 카이아마에 이르는 해안 도로와 곳곳에 있는 크고 작은 동네들도 참 아름답기도 하지만 여기는 또 다른 경관이 눈에 띈다. 특히 절벽 위, 높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달동네, 산간마을에서 사는 이들은 도대체 어떻게 저곳을 오르내릴까? 보는 사람들은 놀랍고 신기하지만, 사는 사람들은 하루하루가 얼마나 힘들고 고생스러울까?
인간도, 사회도, 자연도, 역사도, 형이상학도, 형이하학도, 일체 모든 것은 보여지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모든 사물과 경험, 모든 사유와 판단은 다분히 이중적이다. 그런데 심리학에서는 이 Double Character를 결코 이상한 것,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는 모두가 지극히 정상적인 현상이라고 보는 것이다. 문제는 사물과 사유의 이중성이 아니라, 사실은 다중성이다. Double Character가 문제가 아니라, Multiple Character가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인간은 이중적이다. 사회도 이중적이다. 역사도 이중적이다. 그리고 사실은 하나님도 이중적이다>라는 말은 틀린 관찰이 아니라는 것이다. 심각하게 생각해야할 부분은 이중성을 넘어서는 <다중적 징후>라는 것이다.
친퀜 테레 – 참 아름답다. 그러나 그 뒤에 더러운 곳이 있다. 멋진 경관 뒤에는 슬픈 삶이 웅크리고 있을 것이다. 관광을 하면서 우리는, 겉만 보질 않는다. 속도 본다. 우리는 아름다운 모습만 볼 수가 없다. 그 아름다운 겉모습을 만들기 위해, 더럽고 추하게 타협하고, 야합한 인간 세상의 이면 또한 보게 된다.
긴 버스 여행중 우리 가이드는 참 친절하게 지식과 정보를 제공해 준다. 간간히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신화 이야기들도 참 재미있고 재치있게 각색해 준다. 그러나 모든 신들의 이야기는 모든 인간들의 이야기이고, 또한 나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는 스토리이기도 하다. 남의 이야기를 하고, 남의 이야기라고만 들을 때는 그냥 웃으면서 지나가는데, 막상 그것이 내 속내, 내 생각과 마음을 들키는 현상과 맞닥트릴 때 우리는 모두가 당황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다. 그래서 옛이야기는 지금의 이야기이고, 신들의 이야기는 사람들의 이야기요, 또한 나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탈리아나 한국이나 원래 반도 민족이 지닌 민족적 성격이 비슷한 것이 많이 있다는 이야길 읽은 적이 있다. 불친절하고, 화 잘내고, 큰소리치고, 접시 막 던지는 스타일이 이탈리아만 그런가? 한국 사람들도 어떤가?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저녁 늦게, 8시가 넘어서야 우리는 이곳 <몬타까티니>에 있는 Tuscany라는 여인숙 같은 호텔에 도착했다. 운전사도, 가이드도, 그리고 우리 일행 모두 수고 많이 한 하루였다. 특히 연세 높으신 분들은 일일이 <친퀘 테레>를 다 따라다니지도 못할 정도로 힘든 하루였다. 그래도 큰 사고없이 하루의 일정을 마쳤다.
그런데 이곳 Tuscany 여인숙은 참 불친절했다. 음식도 너무나 부실했다. 우리 중에는 식사를 전혀 못한 일행도 있다. 거기다가 Water들은 마치 전쟁하는 병사들처럼 손님을 대했다. 깜짝 놀랬다. 우리들의 가이드는 참 지혜롭고 똑똑하다. 그런데 오늘은 Bus 운전기사와 크게 말싸움을 했다. <먹고 산다>는 것이 쉬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인생이란, 사실 <누가 누가 더 잘 참나? 참기 내기 시합이다> 꼭 잘 참아서 인생길에 승리하길 빌어본다.
오늘의 여행만이 여행이 아니요, 인생길 자체가 여행길이기에 우리는 모두 잘 알고 있다. 개인날도 있고, 흐리고, 비 오고, 바람 부는 날도 있다는 것을! 선하고 착한 사람들도 많이 만나지만, 간혹은 쓰리꾼도 있고 강도도 있다는 것을 어찌 우리가 모르겠는가? 그래서 인생은 재미있으면서도 슬프고, 아름다우면서도 추하고, 사랑스러우면서도 슬픈 것이 아니겠는가?
2023. 10. 20 (금) Firenze · Roma : 흐리고 비가 계속된다.
몬테까티니의 유서깊은 옛날 여인숙 Tuscany Inn을 떠나 두어 시간을 달려 Firenze에 도착했다. 먼저 그 유명한 우피치 미술관을 찾았다. 현존하는 세계 미술관 중에서 소장품의 숫자로만 친다면 세계에서 가장 큰 미술관이다. 4층으로 이루어진 그 방대한 미술관을 다 둘러 볼 수는 없었지만 우리는 거의 두어 시간에 걸쳐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우피치 미술관에서 시간을 보냈다.
성 십자가 성당 – 싼타 크로체 성당은 내부까지 들어갈 볼 수 있었다. 시간이 많이 부족했다. 그러나 이 싼타 크로체 성당 내부를 돌아볼 수 있어서 참 다행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부족하여서 꽃의 도시 Florens를 상징하는 곳인 성모 마리아성당은 밖에서 밖에는 볼 수 없었다. 그 앞에는 미켈란젤로가 조각했다고 전해지는 <천국의 문> 동상이 있었다. 그 외에도 우리는 단테의 생가와 무덤, 시뇨리아 광장과 베끼오 궁전 등 여러 역사적 현장들을 찾아보며 눈도장이라도 찍었다. 우리는 좋고, 멋진 이태리 식당에서 맛있게 점심을 나누었다.
오늘도 작은 사고는 있었다. 처음은 우피치 미술관에서 윤경호 선생을 잃어버려서 찾아다느니라 그 부인 되시는 한덕희 선생까지 잃어버리고, 거의 30-40분 정도는 기다리며 초조한 시간을 보냈다. 그래도 사실은 길을 잃은 것이 아니라 서로 어긋난 것이어서 다행히 다함께 만나 서로를 다독거리며 위기를 넘긴 것이다. 둘째는 로마로 가는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로 인하여 자동차길이 한 시간 이상이나 지체된 것이다.
우리는 저녁 늦게 한국식당에 도착하여 오랜만에 한식으로 저녁을 나누고 첫날 로마에 도착했던 때 머물렀던 숙소 Ergife Palce Hotel에 도착하여 이탈리아에서의 마지막 밤을 지냈다.
나도 오늘 어디서 잃어 버렸는지 보청기 왼쪽 것을 잃어버렸다. 이곳저곳을 찾아보았으나 끝내 찾질 못했다. 오른쪽 것은 그대로 있는데, 주머니에서 떨어져 나간 것 같다. 벌써 좀 오래된 것이어서 새로 마련해야 한다는 뜻인지, 아니면 이제부터는 온갖 곳에서 들려오는 소리란 일종의 Noise이니까 가능한 한 적게 듣고, 적게 반응하라는 뜻인지 생각을 다시 해 보게 된다.
이젠 로마에서의 하루만 남겨놓았다. 그동안 우리 일행의 여행을 되돌아본다. 이집트에서의 여행 – Alexandria, 카이트베이와 오벨리스크, 마가기념교회당과 구두수선공 출신의 주교, Alexandria 도서관과 점점 개방되어 가는 이집트 여대생들의 모습과 이집트와 모슬림의 미래 등 오고가는 고속도로에서 바라본 이집트, 나일강, 삼각주지대, 변모되는 모습, 그리고 카이로, 기자의 피라미드, 스핑크스, 파피루스 제조과정, 나일강에서의 펠루카 탑승, 특히 모카람 동굴교회와 쓰레기 마을의 모습과 역사, 룩소르로 가는 야간 침대열차 등 정말 많은 추억과 기쁨, 슬픔과 희망 등이 교체되는 여행길었다. 룩소르는 어떤가? 멤논의 거상, 합세수트 장제전과 왕들의 골짜기에서 찾아낸 역사의 흔적과 복원, 그리고 거기에 따른 현대 고고학의 발전과 이집트 박물관, 런던박물관, 루블박물관 등이 소장하고 있는 인류문화의 유산들은 우리로 하여금 카르낙신전 앞에서 입이 딱 벌어지게 만들었다. 고대의 신, 신화, 신전, 제의의식, 그리고 더 나아가 그것이 라암세스 2세 시대를 전후하여 고대 유대교와 모세 등에게 준 영향에 대해서 생각하게 한 것이었다.
우리는 밀라노에서 브레라 미술관을 방문하고, 그 웅장한 두오모 성당을 마주한 것은 잊을 수가 없을 것이다. 문화, 예술, Fashion 거기에다 현대 이탈리아 산업 발전에 까지 밀라노가 끼친 영향은 얼마나 큰가? 처음 방문해 본 베네치아에서의 곤돌라타기, 수상택시타기, 그리고 산마르코성당과 마가의 시신을 안치해 두었다고 하는 역사 이야기, 두칼레 궁전의 모습, 비내리는 날씨 속에서도 우린 모두 잊을 수 없는 베네치아를 뒤로하고, 다음날은 친퀘 테레 마을을 돌아보았다. 아름다움과 추함, 부와 가난, 구경꾼들과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 overlap이 된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역사의 현장 속에서 인간의 과거를 발견하면서, 감사와 동시에 미안함, 황홀함과 동시에 슬픔을 되찾게 된다.
사람들이 살아온 역사란 거의가 비슷하면서도 다르고, 또 다르면서도 비슷하다. 역사는 반복적이면서도 새롭고, 새로운 것 같으면서도 늘 비슷한 것을 되돌이 하는 것이다. 그것은 나, 홍길복이라는 인간의 지난 삶도 비슷하다. 끊임없이 회개하고, 반성하며, 다짐하는듯 하지만 그래도 한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고 늘 제자리걸음만 해온 것이 아닌가. 참 씁쓸할 때가 너무 많다.
나는 그에게서 배우고, 그는 나를 쉬임없이 깨우쳐주지만, 나는 늘 슬픈 제자리걸음만 계속하고 있다.
2023. 10. 21 (토) Roma : 아침에는 흐리다가 오후에는 맑아졌다.
사실은 그이들이 나를 돕고, 이끌어주고, 다시 다시 깨닫게 해준다. 내가, 나 같은 것이 무엇인데, 소위 인문학교실이 하면서 그분들을 가르칠 수가 있다는 말인가? 로마를 끝으로 지난 10일간 함께해 온 여러분들은 인격적으로나, 지성적으로나, 심지어는 신앙적인 면에서 까지도 나의 스승들이다. 예전에는 내가 그들을 가르쳤지만 지금은 그들이 나를 가르치고, 예전에는 내가 그이들의 교수였지만, 지금은 그들이 나의 스승이요, 교수님들이다. 인간은 결코 교만해서는 않된다.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영원히 나를 낮추고, 겸허하게 자신을 돌아보면서 일체의 모든 것에 대하여 감사할 수 있는 삶을 사는 것이다.
로마 –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모든 길은 로마에서 시작되고, 로마에서 마무리 된다. 2000년 전 그들이 로마에서부터 브린디시까지, 이 사도 바울이 타고 왔던 배가 멈추어 섰던 자리에서 여기 콜로세움까지 아피아가도를 만들었던 그들은, 모든 도로는 거대한 돌로 깔아 마차와 전차가 달리게 했다. 포로 로마노에서, 대전차 경주장에서, 그리고 콜로세움에서 우리는 로마의 길을 본다. 보이는 길 뿐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세계의 도로를 발견한다.
그들은 어떻게, 도대체 무슨 안목이 있었기에 메소포타미아문명, 페르시아문명, 그리고 그리스와 아테네의 문명을 흡수도 하고, 이어도 받으면서 Greco-Roman 사회를 만들었을까?
모든 탐욕은 다 나쁘거나 부정될 것만도 아니다. 개인적 탐욕과 이기주의, 자기중심주의에는 분명히 인간심성의 죄성이 자리잡고 있지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한 시대의 정신적 힘과 문명의 창조로 나타날 수도 있음을 로마는 우리에게 다시 설명해 주고 있다.
트레비 열주 앞에서 우리는 우수개로 서울의 Lotte World에도 똑같은 것이 있다고 말하지만, 우리는 지금 한 나라와 민족, 역사와 문화,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해온 정신의 세계를 다시 보게 된다.
로마에서 우리는 우리가 시드니에서 맛보고 즐겼던 아이스크림이나 커피, Wine이나 스파게티의 한계를 넘어서는 무서운 역사를 다시 보게 된다. 역사는 무섭다. 전통은 우리를 전율하게 만든다. 우리는 그동안 몇 번이나 방문하고 찾아보았던 콜로세움 앞에서 숙연해진다. 거기에는 과학과 기술, 정치와 권력, 죽임과 살림, 그리고 민족, 역사, 파괴, 창조를 다시 보게 된다.
우리는 좀 일찍 레오나드로 다빈치 비행장으로 나왔다. 오늘 하루도 친절하고 자상하게 안내하고 가이드해준 분과 그동안 닷새 동안이나 우리 버스를 운전해준 기사에게 감사를 드린다. 비행기는 예정된 시간에 출발하여, 거의 12시간을 날아 주일 오후 3시경 서울에 도착했다. 일행 중 김충석 목사님 내외, 한준수 선생님 내외분, 한부희 선생님 내외분은 우리와 공항에서 헤어졌다. 몽골로, 시드니로, 그리고 한국에 있는 친척들을 찾아가셨다. 그 대신 우리는 천옥영 권사와 그이의 친구 최상순 선생과 함께하여 한국여행을 하게 되었다.
Bye Bye Roma! Bye Bye Italia!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는 날이 올까? 이 나이에 말이다!
2023. 10. 22 (주일) 서울 · 양양 : 흐리고 구름이 끼다.
토요일 저녁 8시경 로마의 레오나르드 다빈치 공항을 출발한 아시아나 비행기는 주일 오후 3시경 인천공항에 무사히 도착했다. 한 두어 시간은 졸다, 자다했지만 잠이 많이 부족했다. 비행기는 여행객이 넘쳐 만석이었다. 식사는 좋았다. 영화도 보고, 단편물도 보면서 음악을 듣기도 했다. 그래도 많이 지루했다. 인천공항에 내리고 나니, 잡자기 날씨가 서늘해졌다. 예약해둔 Bus가 우리를 태우고 강원도 양양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중간에 있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저녁을 먹었다. 오랜만에 육개장을 먹었다.
일행 중 3가정은 다른 일정을 따라 우리 일행과 동행하지 않고 각기 자기들의 일을 따라 헤어졌다. 그리고 그 대신 두 사람이 여기에서 우리와 함께 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7시경 양양에 있는 Dignity Hotel에 도착했다. 정해준 방에 들어왔다. 녹초가 되었다. 우리는 현명이와 은주엄마랑 같이 Apt식 두 개의 침실로 된 곳에서 이틀을 묵게 되었다. 그래도 고국에 돌아오니 이제 반쯤은 시드니로 돌아온 느낌이다.
여행 일기를 쓰는 것도 예전 같질 않다. 기억력도 떨어지고 낮에 갔던 곳이 이름도 잘 기억하지 못한다. 체력만 힘이 부치는 것이 아니라 정신력도 자꾸만 쇠퇴해진다. 그럴수록 겸손해야 한다. 아는척 하거나 잘난척 하다가는 큰코 다칠 수가 있다. 늘 순간순간 <나는 부족하다> <나는 잘 못한다> <나는 잘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2023. 10. 23 (월) 양양 · 강릉 · 속초 : 모두 양간구름, 좋은 가을날이다.
가을빛이 여기저기서 눈과 마음을 끌어당기는 양양에서 약 1시간은 내려와 강릉 오죽헌에 들렸다. 신사임당이 율곡 이이를 잉태하고 출산한 신사임당의 친정집이다. 이미 책에서 읽고, 사진으로 본 곳이었으나, 한국이 낳은 조선시대의 한 뛰어난 여성 지도자를 만났다.
다른 모든 역사의 흔적들과 마찬가지로 지금 우리가 여기에서 만나게 되는 <그때 그곳>이라는 곳도, 사실은 훗날 역사가들의 손길이 다듬어 놓은 곳이요. 건축가들이 꾸며놓은 곳임을 내 어찌 모르리요 만은, 그래도 여기에 오면 거기가 있고, 지금 속에서 그 옛날을 만나게 된다. <신사임당> – 비록 그의 아들이 율곡이 아니라하더라도 그래도 그녀는 한 시대 뛰어난 여성 Elite요, 어둠을 물리친 빛이요, 절망을 이겨낸 희망의 상징이었다. 신사임당이나 허난설헌은 우리 조국이 결코 노예들의 나라나, 미래와 야만의 땅만은 아니었음을 증언해 주는 증인들이다. 여권을 그렇게도 강조하고, 여성들을 격려하고 남성들을 참회의 길로 이끌려고 노력했던 우리 시드니인문학교실의 맴버들이 여기 강릉의 오죽헌과 허난설헌의 생가에 와서, 다듬어 놓은 역사의 흔적들을 볼 때 과연 무슨 생각을 할까? 아직도 갈 길은 멀고도 멀다. 아직도 회개하고 자복해야할 일들은 첩첩산중이다. 이원론,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힌두교, 불교, 유교 – 모든 철학적 이데올로기와 종교적 교리는 지금도 힘 있고, 돈 있고, 폭력적인 남성들에 의해서 Orient 되고 있다. 오늘 나는 신사임당과 허난설헌 앞에서 부끄럽고, 미안하여 감히 얼굴을 들고 똑똑하게 그들의 얼굴 초상과 그들이 남긴 글을 바라 볼 수 없었다. 그리고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이 폭력적 악인인 남성중 하나인 나 자신에 대하여 부끄럽게 생각한다. 회개나 참회의 기도는 사실 나타난 행위, 드러난 모습에서 출발되는 것이 아니라, 존재자체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남성이라는 존재는 여성이라는 존재에 대하여 영원히 사죄하고, 사죄하고, 또 사죄해도 모자랄 죄인들이다. 신사임당님, 허난설헌님, 용서하시옵소서. 당신들의 글과 시와 그림 속에서 당신들은 결코 말하지 않지만, 그래도 나는 압니다. 나또한 남성이라는 존재자체로써 그것이 죄요, 폭력이었음을 인정합니다.
경포대에 갔다. 거의 50년 전, 장신대 졸업반 때 이곳 경포대 해변가에서 한청하 목사님이 차려주셨던 <갈릴리 해변에서의 성찬식>이 회상되었다. 강릉, 경포대, 5개의 달 – 하늘에 떠오르는 달, 동해안에 비쳐진 달, 경포대 호수에서 비치는 달, 그리고 당신의 얼굴에 그려진 달, 내 마음속에서 다시 빛나는 달, 나는 그 다섯 개의 달을 그려보면서, 경포대에 들려 저 아래 호수를 바라보며 50년 전의 친구들을 생각해 보았다.
우리 버스는 설악산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냥 낙산사 해변가에서 마차를 타고 해변가를 한 바퀴 돌았다. 마차를 모는 아저씨는 사진을 찍어주었다. 그것도 다른 추억이 될 것 같다.
우리는 낙산사 해변가에 있는 한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다. 카페를 운영하는 주인아저씨는 자신이 읽은 책들, 또 읽지는 못했어도 읽고 싶은 책들을 카페의 한쪽 벽면에 꽂아 놓고 있었다. 거의가 인문학 책들이었다. 어떤 배경을 지닌 분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런 강원도 변방에서 찻집을 운영하는 분이 그냥 대수롭게만 보이지는 않았다. 짧은 인사를 나누고 이메일이 담긴 명함을 받았다. 사귀고 싶은 사람이었다. 커피, 독서, 인간, 생각, 그리고 오고가는 인간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관찰하는 철학적 태도가 퍽 귀하게 생각되었다.
우리들의 한국여행을 꾸려온 주경식 교수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준비가 많이 부족했다. 호텔도, 식사도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불성실한 Bus 기사와 여행사가 우릴 설악산으로 인도하지 못한 것이다. 물론 이곳을 찾아온 목표는 오죽헌과 허난설헌, 경포대와 낙산사이기도 하지만 우리 멤버들은 설악산에 대한 기대가 적지 않았는데 그만 그 기대가 좌절되고 말았다. 우리는 Traffic Jam이 심해서 접근하기 어렵다는 Bus Driver의 말에 아무 항거도 하지 못하고, 여기까지 온 또하나의 작은 기대에 금이 가고 말았다.
저녁 늦은 시간, 우리 중 몇몇은 Dignity Hotle의 식당에서 Wine을 나누면서 서로를 격려하고 위로하고 감사하면서 꾀 긴 시간 서로의 생각과 마음을 나누었다. 육체의 피곤은 아직 온전히 가시지 않았지만, 그래도 마음엔 조금씩 여유가 묻어나기 시작했다.
2023. 10. 24 (화) 강릉, 남양주, 서울 : 약간구름, 아름다운 가을날씨, 참좋다.
아침을 먹고 난 우리 일행은 짐을 채기고 버스에 몸을 실었다. 9시에 양양을 떠난 우리는 11시경에 경기도 남양주, 두물목, 양수리에 있는 정약용 생가에 도착했다. 다산을 잉태하고 낳은 여유당 앞에서 사진을 찍고, 문화해설사의 자상한 설명을 들었다. 뒷동산에 있는 다산 부부의 묘소를 둘러보고, 실학박물관에 들렸다. 볼 것이 많은 곳은 아니지만 생각할 것은 결코 적지 않은 200년 전의 역사 속으로 들어갔다 나왔다.
이곳으로 오는 버스에서 우리는 내가 <제2차 인문학여행 가이드북>에다 쓴 <다산 정약용의 생애, 사상, 대표적 저서>에 대한 글을 다시 읽어드렸다. 그리고 최근에 내가 읽은 책 응우옌의 소설 <동조자>에서 옮겨 놓은 잡기장도 읽어드렸다. 내가 감동받고 내가 배운 것이 적지 않은 글들이니까, 들은 사람들 역시 깨우친 것이 적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특히 다산은 혁명적 행동을 한 사람은 아니지만 혁명적 사상을 지닌 선각자임은 확실하다. 그의 경제관, 법에 대한 이해,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간에 대한 이해와 정치지도자의 생각과 태도에 대한 주장은 그 시대적 배경을 생각해 본다면 가히 혁명적이라고 까지 말할 수 있으리라. 토지개혁, 토지의 공개념, 상하계급의식의 철폐, 지도자의 생각과 자세, 백성들의 자각 등에 대해서는 감히 혁명적이라고 볼 수 있겠다. 실학 – 한국의 Pragmatism의 문을 연 다산 정약용을 생각해 보면, 오늘 21세기 한국의 정치와 사회는 오히려 뒷걸음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Bus에서 읽어드린 비엣 응우옌의 <동조자 Sympathizer> 역시도 많은 것을 생각해 보도록 이끌어준다. 특히 우리 같은 아시아 이민자들이 이 서구문화와 서구적 사고구조의 땅에서는,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걱정하고 염려하며, 어떻게 삶을 영위해 나가야 할지를 생각해 보도록 유인하고 있다. In-Between, In-Both, 그리고 In-Beyond 사이에서 이중간첩으로, 문화적 튀기로, 이것과 저것 사이에서, 이것도 저것도 아닌 또 다른 제3의 인종으로 살아가야할 자신을 객관화 해보도록 자극해주고 있다.
모든 대상들, 듣는 사람들, 읽는 사람들, 만나는 사람들에게 평안과 안식을 주려는 종교적 접근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로 하여금 내말을 들을 때는 화가 나고, 슬퍼지고, 불안해지고, 불편해지도록 하는 것이 인문학이요, 한 시대의 창조적 지성인의 사명이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된다. 정말 응우옌의 말대로 인간들은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중적이며, 동시에 다중적인 존재이다. 우리는 결코 단순하지 않다. 우리 속에는 수많은 分人들이 있고, 수많은 양심과 수많은 교양과 수많은 상식들이 제각기 다른 전통과 모습으로 교차하며, 대립하면서 공존하고 있다.
오후 늦은 시간 우리는 드디어 두 주만에 서울로 돌아왔다. 인사동에서 내린 우리는 IBIS Hotel에다 짐을 놓고 Check in을 한 다음 가까이에 있는 한국 천도교중앙교당으로 향했다. 다른 일행들은 인사동거리를 거닐어보고 4시경 다 같이 천도교 중앙본부에 들어가 약속된 분이 나와서 천도교, 동학, 3.1운동, 어린이운동 등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을 들었다. 시드니인문학교실이 이렇듯 두 번에 걸쳐 튀르키예, 그리스, 이탈리아, 이집트 같은 지중해 연안국가를 방문하고 기원전 6세기 이후 서구사상의 흔적과 뿌리를 둘러보면서, 동시에 다산과 퇴계, 율곡과 천도교를 돌아보는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간단하다. <남>을 보면서 동시에 <나>를 찾고자함이요, <그들>을 둘러본 다음엔 꼭 <내 모습>을 그려보고자 함이다. 그런 각도에서 우리가 최재우와 손병희를 비롯한 동양의 학문, 동학과 그 전통위에서 뒤를 이어온 천도교를 찾아온 이유는, 우리의 최적 목적지는 바로 <나>요, <우리>요, 그 <나>와 <우리>가 있어야만 <그>와 <그들>이 제대로 보여지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우리 여행팀원들은 우리가 왜, 무엇을 위하여 이곳 <천도교당>을 찾아왔는지 의아해 할지도 모르겠으나, 그러나 지금 우리는 종교로써의 <천도교>가 아니라 <사유>와 <생각>으로써의 천도교를 찾아와 여기서 한울님이 곧 사람이고, 사람이 또한 한울님임을 다시 깨닫게 되었다.
2023. 10. 25 (수) 서울 : 따뜻한 가을
어제 우리는 천도교중앙교당을 방문하여 듣고, 읽고, 생각하면서 이해의 폭을 넓힌 후, 저녁을 함께한 다음 아쉬운 석별을 하였다. 나와 이길남, 이길선은 서소문에서 저녁을 먹은 후, 걸어서 여기 인사동 IBIS Hotel까지 왔다. 한 40여 분은 잘 걸었다. 걸을만했고, 그것도 참 좋았다. 우리는 초죽음이 되었지만 씻고, TV를 켜고, 일기를 쓰고, 짐을 정리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수요일 아침, 우리는 느긋하게 일어나 밀린 일들을 정리하고, 세탁소에 가서 빨래를 했다. 그리고 11시에 우리는 4년 만에 구미정 교수와 새로 결혼한 남편과 최광열 목사, 지강유철 선생, 천옥영 권사, 주경식 목사 내외 등과 같이 이곳 인사동에서 만나 점심과 차를 나누면서 3시간 반이나 교제의 시간을 가졌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많은 배움도 있고, 깨우침도 있었다. 아름다운 이야기, 아름다운 교제의 시간이었다. 풍부하고 다양한 경험을 지닌 사람들은 언제나 생각의 폭도 넓고, 깊이도 아주 깊다. 모든 인간은 결코 객관적일 수가 없다. 객관적, 객관적이라고 말하는 사람일수록 더욱더 주관적이고, 폐쇄적일 경우가 많이 있다. 많은 지식과 정보를 얻은 사람일수록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고 자신이 얼마나 무식하고 편견된 존재인지를 깨닫게 된다. 그래서 인간은 나이를 더해가고, 경험이 더해질수록 겸손해 질 수밖에 없다. 지강유철 선생은 자신이 새롭게 가다듬어 쓴 <장기려 평전>을 주었다. 750여 쪽이나 되는 꾀 두꺼운 책이었다. 최광열 목사는 그의 아버지 최동원 장로의 삼을 다룬 <염소몰이, 통일몰이>를 한권씩 나누어 주었다. 모두가 다 참 심혈을 기울여 쓴 책이다. 그리고 두 분 다 아름답게 인생을 살다간 분들이다. 하지만 이제 나는 어슴프레나마 알게 되었다. 모든 아름다움의 뒷면에는 꼭 추함이 있고, 모든 거룩함 속에는 속됨도 있으며, 모든 진실된 것같이 보이는 이면에는 허위, 위선, 과장 또한 분명히 함께 있다는 사실 말이다. 긴 시간 여러 가지 이야길 나누다가 아쉬운 이별을 했다.
저녁 무렵 우리 셋 – 홍길복, 이길남, 이길선은 익선동을 걷고, 종로를 걸었다. 우린 종로 4가에 있는 광장시장에 갔다. Eve 한복을 사고, 아이들 작은 선물도 샀다. 그리고 정말 오랜만에 함경도 가자미 식혜를 사서 들고 와 밥과 라면과 함께 맛있게 먹었다. 옛날 어머니가 집에서 만들어 주셨던 그 맛이다. 가자미, 무우, 조밥 그리고 알맞은 양념, 그리 맵지 않은 고춧가루 – 참 좋았다. 강릉과 속초에서도 맛보지 못했던 것을 서울에 와서 광장시장에서 맛볼 수 있어서 참으로 좋았다.
밤은 깊어가고, 생각은 더 깊어가고, 감사는 이것들을 합한 것보다 더더욱 깊어간다. 내 마음에는 평안이 자리를 잡고, 내 영혼은 감사와 기쁨이 더해진다. 우린 이제 행복과 불행을 초월하고, 사실과 허위를 떠나고, 있음과 없음, 사는 것과 죽는 것, 그리고 당신과 나를 하나로 묶어서 볼 수 있는 나이가 되어간다. 그래서 인생의 연륜은 조금씩이나마 자신의 현존을 초월한다. 오늘 지강유철 선생이나 최광열 목사, 구미정 목사 내외를 만나 이야기 하면서, 이야기를 들으면서 더욱더 “알 수 없는 인간” “신비에 가려져 있는 인간” “그래서 이 인간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하고, 글 쓰고, 설명하고 나면 결국은 실수하게 되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오늘도 우린 서로서로를 들켰다. 들킨 줄을 모르고 헤어지는 사람은 아직도 갈 길이 퍽 먼 사람들이다. 나는 사실 날마다 놀라고, 순간마다 아찔하고, 하루하루가 부끄럽다.
저녁 늦게까지 혼자서 멍하니 밖을 내다보면서 상념에 잠긴다. 속상했다가는 혼자서 자신을 다독거린다. “괜찮다. 그 정도면 괜찮은 거야”하면서 내가 나를 위로한다. 괜찮은 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괜찮은 것이라고 다독거리는 내가 참 불쌍하다.
이제 두 번째 인문학여행은 거의 다 마무리 되었다. 앞으로 평가회와 보고회만 하면 될 것이다. 일정, 경비, 잘한 것, 잘못한 것, 다음에 3번째로 떠날 인문학여행에 대한 의견을 듣고 모아 보는 것 정도가 남아있다. 그러나 더 큰 숙제가 남아있다.
“이번 여행에서 나는 나를 만났는가?”
“이번 여행에서 나는 나를 떨쳐버렸는가?”
홍길복 목사
(호주연합교회와 해외한인장로교회 은퇴목사)
홍길복 목사는 황해도 황주 출생 (1944)으로 연세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한 목회자다. 1980년 호주로 건너와 40여년 간 이민목회를 하는 동안 시드니제일교회와 시드니우리교회를 섬겼고, 호주연합교단과 해외한인장로교회의 여러 기관에서 일했다.
2010년 6월 은퇴 후에는 후학들과 대화를 나누며 길벗들과 여행하는 자유를 만끽하는 중이다. 자신이 경험한 이민, 특히 이민한 기독교인들의 삶을 보편적인 이야기로 풀어내는 글쓰기를 바탕으로 ‘동양인 예수’, ‘내 백성을 위로하라’, ‘성경에 나타난 이민자 이야기’, ‘이민자 예수’ 등의 책을 펴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