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인문학교실 2차 인문학여행
인문학 여행의 목적과 2차 인문학여행의 주제
인문학 여행의 목적 – 우리는 왜 인문학여행을 하는가?
물론 여기에는 우리가 여행을 하는 일반적 이유도 포함되지만 특별히 인문학교실에서 함께하는 여행에는 어떤 이유나 목표가 있는지를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누구든지 무조건 여행을 많이 한다고 해서 견문이 넓어지거나, 생각이 깊어지거나, 인문학적 소양이 더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여행 자체가 우리를 철학자가 되게 하거나 인문학적 소양을 더해 주지는 않습니다. 마치 성지순례를 많이 했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신앙심이 높아지거나 영적으로 성숙해지지는 않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우리가 인문학여행을 함께 하려고하는 데는 다음과 같은 몇가지 이유들이 있다고 봅니다.
첫째, 인문학여행은 ‘자기를 찿아가는 여정’입니다. 여행은 밖을 보면서 안에 있는 자아를 찿게 해 줍니다. 여행 자체는 자연과 역사를 포함하여 바깥 세상을 살펴보는 공부이지만 동시에 자기가 자기 내면의 세계를 찿아가는 인생공부입니다. 여행이란 그동안 잊혀졌던 자신을 찿아가는 자기 공부입니다. 물론 여행은 세상을 보는 눈을 넓혀줍니다. 세상의 다양성에 눈을 뜨게해 주고 지난날 무심코 지나쳤던 것으로부터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게해 줍니다. 그러나 그 무엇 보다도 여행은 우리로 하여금 자기 자신을 생각해 보고 돌아보게 해 줍니다. 우리가 이 인문학여행길에서 마지막으로 만나기를 기대하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여행은 잊혀졌던 자아, 희미하게 알았거나 부정확하게 알았던 자기를 발견하고 좀 더 확실하고 분명하게 자신을 성찰하도록 도와줍니다. 종교적 표현으로하면 여행은 ‘거듭나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여행을 통하여 ‘내 몸과 마음이 새로와 졌습니다’고 말합니다. 여행의 종착역에서 우리는 외소하고 부족하고 심지어는 ‘아무 것도 아닌 자아’를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여행은 우리를 ‘감사’와 ‘겸손’으로 인도하고 인생의 참된 의미와 가치를 생각해 보게 해 줍니다.
둘째, 인문학여행은 미지의 세계를 향한 탐험입니다. 모든 여행은 숨겨진 세계와 감추어진 신비를 찿아가는 발걸음입니다. 여행이란 이미 갔던 곳이라 하더라도 전에는 미쳐 알지 못했던 것을 다시 보게 해 줍니다. 여행은 신과 인간, 자연과 역사, 예술과 신화, 하늘과 땅, 몰랐던 진실과 숨겨진 보물을 발견하게 해 줍니다. 여행은 보물찻기와 비슷합니다. 여행을 통하여 우리는 투탕카멘과 파라오와 라암셋스를 만나게 되고 카르낰과 룩소르 신전과 멤논의 거상 앞에서는 수천년전의 조상들을 보게 되며 그들이 전해준 옛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여행 중에 우리는 케이사르와 키케로, 예수와 베드로, 메디치와 단테, 그리고 미켈란절로와 레오 나르드 다빈치의 얼굴을 보게 됩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우리는 ‘아 인간이란 무엇이고 나라고하는 존재는 무엇인가?’라는 질문 앞에 다시 서게 됩니다. 히말라야를 여러번 오른 알피니스트는 말합니다. ‘히말라야는 오를 때 마다 처음 오르는 산입니다’ 어떤 예술가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바티칸에 갈 때마다 피에타를 보지만 한번도 똑같은 피에타를 본 적은 없습니다’ 모든 여행은 다 <처음 여행>이이어야하고 또 <새로운 여행>이어야만 합니다.
셋째, 여행은 종합적 건강검진입니다. 꼭 병원에 가서 건강 검진을 받지 않아도 여행을 해 보면 자신의 육체적, 정신적 건강이 어느 정도인지가 드러납니다. 여행은 그 사람의 생각은 어느 정도나 깊은지, 영혼은 얼마나 맑은지, 체력은 얼마나 강한지를 알게 해 줍니다. 그래서 여행은 한 사람의 혼과 영과 육의 총체적이며 종합적인 건강검진을 하는 것과 흡사합니다. 이런 점들은 혼자하는 여행에서도 드러나지만, 같이 떠나는 여행에서는 더 잘 나타납니다. 평소에는 잘 몰랐던 타인에 대한 배려, 협동심, 친절, 이해심은 물론이고 자기 통제력, 인내심, 다듬어진 말씨와 행동, 그리고 무엇 보다도 자기 자신의 정신적, 육체적 건강 상태가 어느 정도인지를 점검해 볼 수 있습니다. 여행은 인생의 종합 비타민입니다. 우리는 여행을 통하여 노출되 자심의 연약한 부분에 비타민과 영양소를 공급해 주게 됩니다. 여행은 일종의 보약이고 정신적 양약입니다. 여행은 우리의 영과 혼과 육의 취약점을 찿아주고 동시에 그 연약한 부분에 꼭 필요한 약이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알려줍니다.
넷째, 여행은 치유 (Healing)와 회복 (Recovery)입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오면서 육체적 피로와 더불어 정신적, 심적 아픔을 수도 없이 많이 받곤 합니다. 그런데 여행은 우리가 그 동안 일상에서 얻고 또 쌓아왔던 온갖 아픔과 상처를 치유해 주고 우리의정신과 몸을 다시 회복시켜 줍니다. ‘여기서’ 얻은 상처를 ‘거기서’ 털어버리게 해 주는 것이 여행입니다. 피곤한 몸, 지친 마음, 상처로 얼룩진 인생은 반드시 그 어디에선가 치유 받아야만 회복 될 수 있고, 그래야만 우리는 내일의 삶을 계속 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우리가 경험한 바에 의하면 우리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에게 내 속 마음을 털어놓았다가 상처를 받는 경우가 참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행은 낯선 땅, 우리가 모르는 사람, 우리를 모르는 환경을 통하여 오히려 우리를 위로해 주고 치유해 주는 힘이 있습니다. 헨리 데이빗 소로의 ‘월든’ (Walden)에서 읽은 귀절입니다. ‘지혜로운 의사는 자기를 찿아온 환자에게 약만 주는 것이 아니라 생활의 환경을 바꿔 보라고 권유합니다.’ 여행은 인생의 환경을 바꾸어 보는 연습입니다. 환경을 바꿔보면 대부분의 병은 낫게 됩니다. 여행을 다녀왔는데도 불구하고 지친 몸과 아픈 마음이 치유되지 못했다면 그는 여행이 주는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한 셈이 됩니다.
다섯째, 여행은 세상과 인생의 궁금증을 풀어주고, 그 답을 알려줍니다. 우리는 여행을 통하여 우주와 역사에 대한 궁금증들을 풀어 볼 수 있습니다. 세상의 본질, 우주의 아르케 (Arche)는 무엇인지, 옛 사람들은 무엇이 궁금했고 거기에 대해서 어떤 설명을 했는지, 여행은 우리들에게 이런 질문에 동참하게 하고 더 나아가 그런 질문들과 씨름해 보도록 이끌어 줍니다. 또한 여행은 집에 있는 동안 늘 나를 괴롭혀왔던 내 자신의 문제와 숙제들을 해결하도록 도와 주기도 합니다. 여행은 정말 우연히, 생각지도 못했던 순간, 나를 억누르고 얽어맺던 고뇌와 갈등에 대한 그 어떤 답을 발견하게 해 줍니다. 여행은 단순히 스트레스를 해소시키는 정도가 아니라, 차원 높은 감사와 겸손의 길로 우리를 이끌어 줌으로 인생의 궁극적 길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도록 안내해 줍니다.
여섯째, 역시 여행이란 노는 것입니다. 노는 것은 절대로 도덕적으로 나쁘거나 시간을 허비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인생이란 그 자체가 하나의 놀이입니다. ‘호모 루덴스’ (Homo ludens) – 인간은 놀이하는 동물이다 – 호이징어에게서 이미 배웠던 이야기입니다. 잘 노는 사람이 일도 잘하고 공부도 잘하고 인생을 잘 사는 사람입니다. 놀줄 모르는 사람은 일 할 줄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놀 때는 놀고 일 할 때는 일 할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서양 사람들은 흔히 왜 그렇게 열심히 일하느냐고 물으면 ‘Holiday’를 위해서’ 라고 대답합니다. 놀기 위해서 일하고, 일한 후에는 다시 놀아야 합니다. 이는 우리 모두가 아이 때 소꿉장난 시절 부터 배워온 인생살이의 방식입니다. 노는 데는 반드시 규칙이 있습니다. 옛날의 놀이를 발전시킨 현대 스포츠에서는 노는 시간, 노는 범위, 노는 때와 장소, 노는 사람들의 숫자, 규칙, 반칙, 퇴장, 상, 벌칙 등등, 더 아름답고 신나는 놀이를 위한 여러가지 규정들을 정해놓고 있습니다. 우리 인문학 여행도 정말 신나고 즐겁고 아름다운 놀이가 되게하기 위해서는 이런 놀이의 규칙들을 잘 지켜야 하겠습니다.
마지막, 인문학여행은 그동안 우리 교실이 추구해 왔던 인문학의 목표와 맞닿아 있습니다. 우리는 이 여행을 통하여 자아를 성찰하고, 인간과 역사와 자연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가고, 세상의 다양성을 발견하여, 피차 마음의 빗장들을 거두어내고, 포용성을 확장하고 겸손한 사람이 되어 평화로운 세상, 아름다운 인간애를 찿아가리라 다짐하려고 합니다.
제 2차 인문학 여행의 주제 – <아는 만큼 보인다>
‘시드니인문학 교실에서는 여행을 떠나기에 앞서 함께 공부하는 시간을 갖게 됩니다. 그 이유는 한가지 입니다. <모든 여행이란 아는 것 만큼만 보여지기> 때문입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원래 미술사학자인 유홍준교수가 그의 책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제 1권의 서문에 썻던 말입니다만 사실 이 귀절은 정조 시대의 문인 兪漢寯 (유한준)이 했던 글에서 옮겨온 것입니다. 원문은 이렇습니다. <知即爲眞愛 愛即爲眞看 看即蓄之而非從蓄也> – 지즉위진애 애즉위진간 간즉축지이비종축야 – 우리 말로 풀어보면 이렇게 됩니다.<알게 되면 참으로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마침내 보이게 되고, 볼줄 알게 되면 그 때 부터는 그걸 모으게 되나니, 그렇게 해서 모으는 것은 그져 단순히 모으는 것이 아니니라> 이 긴 문장을 축약한 것이 바로 우리 여행의 주제 입니다. <知即爲眞看> <지즉위진간 !> <알아야 참으로 보게된다 !> 그렇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 !> 영어로는 이렇게 표기해 볼수도 있습니다. I can see as much as I know. 혹은 You can see as much as you know, 미리 공부하지 않고는 가서 보아도, 그곳에 가서 보아도 그곳이 어디인지를 모르고, 또 그것이 무엇을 가르키는지를 모르게 되고, 아무리 설명을 해 주어도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 수가 없습니다. 공부하지 않고 떠나는 여행이란 한국의 속담 처럼 그야말로 ‘개 바위 갔다 오는 격’이 됩니다.
그런데 우리 같은 단체여행에서의 공부는 어떤 한 사람이 혼자 준비하여 일방적으로 알려 주는 것 보다는 서로, 함께, 같이 지식과 정보를 탐색하고 준비하여 나눔으로 더 심도있게 알수 있을 뿐만이 아니라, 보다 높은 참여도와 친구의식이 만들어진다고 봅니다. 우리교실의 모든 참가자들은 홍길복이 준비한 인문학의 목표와 인문학여행의 목적 이외의 다른 모든 분야들, 즉 이탈리아와 이집트에 대한 General Information을 비롯하여 여행의 정보와 지식에 유익하다고 여겨지는 여러가지 다양한 분야에 걸쳐서는 가능한한 참가자들이 고루 세부적으로 나누어서 준비하여 가이드 북을 만들고어 미리 공부하려고 합니다.
홍길복 목사
(호주연합교회와 해외한인장로교회 은퇴목사)
홍길복 목사는 황해도 황주 출생 (1944)으로 연세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한 목회자다. 1980년 호주로 건너와 40여년 간 이민목회를 하는 동안 시드니제일교회와 시드니우리교회를 섬겼고, 호주연합교단과 해외한인장로교회의 여러 기관에서 일했다.
2010년 6월 은퇴 후에는 후학들과 대화를 나누며 길벗들과 여행하는 자유를 만끽하는 중이다. 자신이 경험한 이민, 특히 이민한 기독교인들의 삶을 보편적인 이야기로 풀어내는 글쓰기를 바탕으로 ‘동양인 예수’, ‘내 백성을 위로하라’, ‘성경에 나타난 이민자 이야기’, ‘이민자 예수’ 등의 책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