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인문학교실 2차 인문학여행 (18)
고대와 현대 이집트의 역사
1) 고대 이집트
고대 이집트는 나일강을 중심으로 발달한 문명으로, 기원전 3150년경부터 기원전 30년경까지 약 3,000년 동안 지속되었습니다. 고대 이집트는 강력한 군사력과 번성한 경제를 바탕으로 주변 지역을 지배하였으며, 예술, 건축, 문학, 종교 등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겼습니다. 고대 이집트의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기자의 피라미드, 스핑크스, 카르낙 신전, 룩소르 신전 등이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랜 문명의 역사를 가진 나라 중 하나인 이집트는 유럽대륙에 속해있다고 생각하기 쉬우나 실상은 아프리카대륙에 자리잡고 있다.
동쪽으로는 이스라엘·아카바 만·홍해와 접해 있고 남쪽은 수단, 서쪽은 리비아, 북쪽은 지중해로 둘러싸여 있다.
고대 이집트의 역사는 크게 두시대로 나뉜다.
.선왕조 시대 (Predynastic Period)
왕조시대 이전의 시기로 아직 국가가 형성되어 있지 않았고 문자기록이 시작되지 않은 ‘선사 시대’를 말한다. 고대 이집트이 문명의 기본적인 요소들이 이때부터 조금씩 나타나게 된 이 선왕조 시대의 시작을 대락 기원전 7000-6000년 정도로 보고 있다.
.왕조시대 (파라오 시대, Dynastic Period, Pharonic Period) – 고대 이집트 문명의 시대
이 시기에 고대국가가 형성되고 파라오는 그 국가의 최고 통치자로 군림하게 되었으며 문자도 등장하여 다양한 종류의 기록들이 남겨지게 된다. 상 이집트는 나일강의 상류 – 즉 이집트 남쪽 지방을 , 그리고 하 이집트는 북쪽에 위치한 나일강 하류의 삼각주 지방을 의미한다.
기원전 3100년경 나르메르 (Narmer)라는 파라오가 상-하 이집트를 최초로 통일하면서 시작된다.
나미메르는 상-하이집트의 경계인 멤피스 (Memphis)에 통일 이집트의 수도를 건설하였고 수도로서의 상징성은 3000여년 내내 유지된다.
3000년에 이르는 왕조시대는 고-중-신으로 나뉘어지는 세 차례의 왕국시대와 , 그 사이에 세번의 중간기, 그리고 말기 시대와 프톨레마이오스 시대로 구분된다.
고왕국 시대는 ‘피라미드 시대’ 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기자의 세 피라미드를 비롯한 거대하고 견고한 피라미드들은 대부분 이 시대에 세워진 것 들이다.
중왕국 시대의 유적들은 많이 남아있지 않지만 이시기는 고대 이집트의 문화가 크게 융성하던 시기로 문학과 예술 등 문화전반에 걸쳐서 많은 규범과 전통들이 이 시대에 만들어진다. 그래서 연구자들 가운데는 중왕국 시대를 ‘이집트 문명의 고전기 (Classical Period)라고 칭하는 이들도 있다.
신왕국 시대는 파라오들이 등장하는 시기로 투탕카멘이나 람세스 2세, 아케나텐등이 이 시대의 파라오이다. 신왕국 시대 이후 이집트는 급격히 쇠토하였지만 이집트 문명은 그 이후로도 거의 1000년 동안 지속되었다. 쇠퇴했다는 것은 이집트가 근동 전체에서 가지고 있던 정치적-문화적 패권을 많이 상실했다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제 3 중간기의 혼란을 극복하고 다시금 통일왕조가 들어선 ‘말기 시대’는 이집트 문명이 마지막 불꽃을 가까스로 피워내던 시기였다.
기원전 3100년경에 시작된 고대 이집트문명은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마지막 파라오인 클레오파트라7세와 이집트로 망명한 로마의 장군 안토니우스의 연합 함대가 기원전 30년 오늘 악티움에서 로마함대에게 패배함으로 공식적으로는 막을 내리게 된다. 이때의 로마함대의 지휘관이 아그리파이며, 악티움 해전에서 패배이후 이집트는 로마의 황제령으로 로마제국의 영토로 편입됨으로써 독립왕조가 이집트에서 사라진 만큼 고대 이집트 문명은 막을 내렸다고 할 수 있겠지만 고대 이집트 문화가 그대로 유지되어서 로마의 황제들이 이집트의 기념물에서는 파라오로 묘사되기도 한다.
.이집트 역사에 관해서 자주 잘못 말하여 지는 상식
첫째, 피라미드는 고왕국 시대와 중왕국 시대에 세워졌고 신왕국 시대에는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사실. 즉, 투탕카멘, 람세스 2세 같은 신왕국 시대 파라오들의 무덤은 피라미드가 아니고 그들은 피라미드가 지어지던 시기보다 수백년 후의 인물들이고 그들의 무덤은 일반적으로 알굴묘 (Rock-cut tomb)형태를 취하고 있다.
둘째, 클레오파트라는 이집트의 파라오였지만 그녀는 순수한 이집트인이 아니고 프톨레마이오스 왕가 출신의 그리스인이었다는 사실. 클레오파트라가 살던 시대는 기자의 대피라미드가 지어지던 시대와는 무려 2500년 이상 차이가 난다는 사실이다.
2) 현대 이집트
현대 이집트는 1922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후 공화국을 수립했습니다.
현대 이집트는 이슬람 국가로, 수도는 카이로입니다. 현대 이집트는 석유, 천연가스, 관광 등에서 경제를 발전시키고 있으며, 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경제 대국 중 하나입니다.
현대 이집트의 대표적인 관광 명소로는 기자의 피라미드, 스핑크스, 카르낙 신전, 룩소르 신전, 아스완 하이 댐 등이 있습니다.
현대 이집트의 역사는 1922년 경, 이집트가 대영제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한 후 공화국을 세웠고, 1958년에는 시리아와 함께 아랍연합공화국을 세웠으나 불화를 견디지 못하고 1961년에 소멸하였다. 이후 20세기 후반 내내 이집트는 극심한 종교적, 정치적 혼란기를 겪었고, 1948년, 1956년, 1967년, 1973년에는 연이어 이스라엘과 무력 충돌을 반복하며 가자 지구를 강제 점령하기도 하였다.
1978년에는 캠프 데이비드 협정으로 가자 지구에서 물러났고, 이스라엘을 공인하며 평화 분위기를 북돋았다. 그러나 이집트는 현재까지도 정치적 불안정을 거듭하고 있는데, 2011년 아랍의 봄 사태나 지속된 테러 사태, 경제불황 등 지속되는 악재로 인해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계속 흔들리고 있다. 이집트는 현재 대통령제 공화국으로, 권위주의 정권이 국민들을 억압하고 있다는 평을 듣고 있으며 인권도 상대적으로 취약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억 명이 넘는 인구로 북아프리카, 중동, 아랍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국가이며 세계적으로도 13번째로 인구가 많은데. 거의 대부분의 인구는 나일강 유역에 모여 살고 있으며 대략 절반의 인구가 카이로, 알렉산드리아, 나일강 삼각지의 대도시 몰려 살고 있다.
이집트는 중동에서 경제적으로도 규모가 큰 편이며 그 재원도 다양화되어 있으며, 그 잠재력이 상당하여 21세기에는 세계적으로도 발전이 주목되는 국가로 꼽히기도 한다. 이집트는 아프리카에서 3번째로 거대한 경제규모를 보유하고 있으며, 명목 GDP로는 40번째, PPP로는 19번째로 거대한 경제를 가지고 있다. 이집트는 UN의 창립 회원국이며, 아랍연맹, 아프리카 연합, 이슬람협력기구의 창립국이기도 하다.
현대 이집트의 공식 국호는 미스르 (아랍어 Miṣr, 이집트 아랍어: Maṣr)이다. 셈어에 기원을 두고 있으며, 이집트를 일컫는 다른 셈어파의 단어와 어원이 같은데 (가령 히브리어의 מִצְרַיִם , Mitzráyim 처럼), 말 그대로 “두 개의 좁은 땅”을 뜻하는 말이었다 (이집트에 상, 하 이집트 두 왕조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낱말은 “대도시”, “문명” 또 “나라”, “변경의 땅”도 의미했다. 영어 명칭 “Egypt”는 고대 그리스어 아이굽토스 (Αίγυπτος, 에귑토스)에서 유래하여 라틴어 애급투스 (Aegyptus, 에귑투스)를 통해 전해진 말이다.
이집트는 겨울과 여름의 두 계절만 있다. 겨울은 서늘하고 온화하며, 여름은 일반적으로 무덥기 때문에 4월이 되면 무더워서 여행하는 것이 어렵다고 한다. 이집트의 종교는 이슬람교이며, 대부분이 수니파에 속한다. 또 부분적으로 자유기업을 인정하는 사회주의 경제체제를 가진 개발도상국이며, 산유국이지만 이집트 내수를 감당할 정도의 수량이다. 이 마저도 원유정제 기술이 없어 원유를 수출하고 정제유를 수입하고 있다.
한부희 회원 (시드니인문학교실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