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인문학교실 2차 인문학여행 (21)
수에즈 운하에 대하여
1. 개요
지중해와 홍해, 그리고 인도양을 잇는 수에즈 운하.
수에즈 운하는 아시아와 아프리카 두 대륙의 경계인 이집트 시나이반도 서쪽에 위치해 있다.
수에즈 운하의 길이는 160~193.3km, 폭은 약 205m, 깊이는 약 24m로 지중해의 포트 사이드 항구와 홍해의 수에즈 항구를 연결하고 있다.
수에즈 운하의 개통으로 영국 런던과 싱가포르를 잇는 항로는 기존보다 약 9,500km 단축됐으며 런던과 인도를 잇는 항로는 약 10,000km 단축되었다.
2. 수에즈 운하의 역사
고대 이집트 왕조 시대부터 나일강과 홍해를 이어 운하를 만들려는 흔적이 발견되었다.
BC 600년경에 재위했던 네카우 2세, 16세기 베네치아 상인, 17~18세기 프랑스 루이 14세, 18세기 말 나폴레옹 등 수많은 역사적 인물들이 운하를 건설하려다 각 나라의 견제와 방해를 받고 실패했다.
그러다 1854년 이집트의 통치자인 무함마드 사이드 파샤가 프랑스인 페르디낭 드 레셉스에게 운하를 개설할 수 있는 특허권과 수에즈 지협 조차권을 건네게 된다.
이때, 수에즈 운하 건설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페르디낭 드 레셉스는 ‘만국 수에즈 해양운하회사’ 이집트 법인을 설립하여, 이집트 법과 관습을 따른다는 전제하에 수에즈 운하를 설립한다.
1869년 11월 17일, 드디어 수에즈 운하가 완공되었다. 완공 이후에도 수많은 나라들이 수에즈 운하를 지배하려 전쟁을 벌이기도 하였다. 이제는 수에즈 운하가 국제 운하로 지정되어 이집트가 관리하지만 제3국 선박의 자유 운항권이 보장되어 안전한 해상무역이 가능해졌다.
3. 필요성
세계 지도를 보면 유럽에서 인도와 아시아로 나아가 무역을 하기 위해선 배를 타고 유럽에서 출발 → 아프리카 서부 해안을 따라 항해 → 아프리카 대륙 남쪽 끄트머리 희망봉에 도착 →인도양 도착 → 목적지 도착이라는 과정을 겪어야 하는 데, 아프리카 대륙을 돌려면 요즘 컨테이너선으로도 한 달은 걸리며 옛날 배로는 몇 개월이 필요했다.
그런데 유라시아 대륙과 아프리카 대륙이 이어지는 자리의 폭은 굉장히 협소 할 뿐 더러 북으로는 지중해로 연결되고 남으로는 홍해를 지나 인도양으로 이어진다.
즉 아프리카 대륙을 빙 둘러 가지 않고 유럽에서 바로 인도양으로 갈 수 있는 운하만 있다면 엄청난 교통의 요지가 됨이 불을 보듯 뻔하였다.
4. 영향
가. 거리 단축: 종전에 유럽에서 인도양으로 나가려면 아프리카 최남단 희망봉까지 돌아가야 했으나, 이 운하가 개통되면서 유럽에서 인도양으로 나가는 거리가 최대 9,000 km까지 단축되었다.
나. 범선 시대의 종식: 비록 기선이 등장하긴 했으나, 과거 희망봉을 돌아가야 했던 시절에는 범선은 최종 테크에 이르러 클리퍼 같은 경우 엄청난 속력을 낼 수 있었지만 기선은 아직 증기 터빈도 스크류 프로펠러도 없어 충분한 속도를 내지 못했고 석탄 등 연료를 보충할 인프라도 부족했다. 따라서 범선이 기선에 비해 결코 경쟁력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수에즈 운하가 개통된 이후 풍랑과 상관없이 일정한 속도를 낼 수 있는 기선은 운하 통과가 자유로웠던 반면, 풍랑의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던 범선은 운하 통과가 곤란하여 종전과 마찬가지로 희망봉을 돌아야 했다. 그러나 범선이 아무리 날고 기어도 수에즈 루트와 희망봉 루트의 엄청난 거리차와 그에 따른 시간차를 극복할 수 없었고, 결국 대양 항해에서 범선의 시대는 종말을 고할 수밖에 없었다.
다. 지중해의 부흥: 대항해시대가 열린 이후, 유럽의 해양 활동 중심이 대서양으로 옮겨가면서 종전의 중심인 지중해는 상대적으로 침체되어 갔다. 그러다가 수에즈 운하가 개통되면서 지중해의 경제적, 전략적 중요성이 다시 부각되기에 이른다.
고근순 회원 (시드니인문학교실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