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인문학교실 2차 인문학여행 (23)
프랑스와 영국에 있는 이집트의 유물들에 대하여
프랑스와 영국은 고대 이집트의 유물들을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는 국가들 중 하나입니다.
프랑스에 있는 이집트의 유물
프랑스에서 이집트 유물이 많이 소장된 이유는 나폴레옹이 1798년부터 1801년까지 이집트를 원정하는 과정에서 많은 이집트 유물을 수집했고 이집트에서 수집한 유물을 프랑스로 가져와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되었기 때문입니다.
루브르 박물관에는5만점이 넘는 이집트 작품이 소장되어 있는데 이집트의 유물로는 이집트의 회화 및 미이라, 조각품, 거대한 규모의 미술 조각품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신전 하나를 가져온 듯한 기둥들과 여러 신들의 석상까지도 멋스럽게 전시되어 있는 곳입니다.
가장 유명한 것은 바로 대형 스핑크스입니다 기원전 2700년경 만들어진 타니스의 거대 스핑크스로 이집트 타니스 지방에서 발굴된 스핑크스가 굉장히 인기입니다.
‘쪼그려 앉아 있는 서기관’이라는 조각은 꽤 유명한 조각입니다. 당시 서기는 굉장히 높은 고위 공무원이었다고 합니다. 백대리석 석회암에 조각 및 채색되어 있는 조각상인데, 눈 부분은 수정으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이 외에도 파피루스에 기록된 사자의 서가 있는데요. 고대 이집트 미라와 함께 매장한 사후세계의 안내서 역할을 하는 두루마리 책자입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사후세계의 시작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런 사자의 서가 필요했습니다.
파피루스는 이집트 특산의 카야츠리그사 과의 식물을 재료로 해서 만든 종이, 혹은 그 문서를 뜻하는데요 반만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잘 보존되고 있는 인류 최초의 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외에도 거대 조각상 등이 많이 전시되어 있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구경할 수 있는 곳이 바로 루브르박물관의 이집트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국에 있는 이집트의 유물
영국의 대영박물관에는 약 14만 점의 이집트 유물이 전시되어 있으며 대영박물관에는 이집트 전시관이 있어 로제타스톤이나 파라오 흉상, 비석, 그리고 이집트 생활용품이나 비석들이 가득 있습니다. 또한 이집트 미이라는 전시관이 하나 따로 있을 만큼 다양한 미이라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대영박물관의 이집트 유물 중 가장 유명한 것은 투탕카멘 왕의 무덤에서 발견된 유물들입니다.
투탕카멘 왕의 무덤은 1922년 11월 4일, 영국의 고고학자 하워드 카터와 그의 후원자 카나본 경이 이집트의 왕가의 계곡에서 발견했습니다. 무덤은 거의 도굴되지 않은 상태로 발견되었고, 그 안에는 금, 보석, 가구 등 수많은 유물이 담겨 있었습니다.
투탕카멘 왕의 무덤에서 발견된 유물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황금 마스크: 무덤의 중심에 놓인 황금 마스크는 무게가 약 11kg에 달하는 순금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마스크의 얼굴은 투탕카멘 왕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으며, 눈과 코, 입은 모두 상형문자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관: 무덤의 4개의 방에는 총 3개의 관이 놓여 있었습니다. 가장 안쪽의 관은 순금으로 만들어졌으며, 무게가 약 110kg에 달합니다.
가구: 무덤에서 발견된 가구들은 모두 금, 보석, 상아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왕좌, 침대, 의자, 상자 등 다양한 가구들이 발견되었습니다.
보석: 무덤에서 발견된 보석들은 모두 고대 이집트의 장인들의 뛰어난 기술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목걸이, 귀걸이, 팔찌, 반지 등 다양한 보석들이 발견되었습니다.
무기: 무덤에서 발견된 무기들은 모두 금, 보석, 상아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검, 창, 활, 화살 등 다양한 무기들이 발견되었습니다.
음식: 무덤에서 발견된 음식들은 모두 파라오의 죽음 이후에 미라를 위해 준비된 음식들입니다. 빵, 과일, 술 등 다양한 음식들이 발견되었습니다.
투탕카멘 왕의 무덤에서 발견된 유물들은 고대 이집트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 유물들은 고대 이집트의 기술, 예술, 종교, 문화를 보여주고 있으며,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의 삶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이러한 유물들은 이집트의 고대 문명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또한, 이 유물들은 프랑스와 영국의 문화유산이기도 합니다.
이집트 정부는 프랑스와 영국에 있는 이집트의 유물들을 반환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프랑스와 영국은 이 유물들이 합법적으로 수집된 것이며, 문화유산으로 서의 가치가 높기 때문에 반환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집트와 프랑스, 영국의 이집트 유물 반환 문제는 앞으로도 계속 논란이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집트의 로제타석은 왜 영국박물관에 있게 되었는가?
1798년, 나폴레옹은 오랜 숙적인 영국의 인도 통로를 차단하기 위해 약 3만여 명의 병력을 이끌고 이집트로 향했다. 나폴레옹이 꾸린 이집트 원정군에는 특이한 점이 있었는데, 바로 167명의 학자와 예술가들이 이집트의 지리·풍토·건축·예술·역사 등을 조사하기 위해 동행 됐다는 점이다. 이는 과거 원정 전쟁에서는 유례없던 일이었다.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군은 맘루크 군대를 물리치면서 초반 전쟁에서 승리했고, 그 덕분에 학자단은 이집트에서 다양한 연구를 수행함과 동시에 엄청난 양의 고대 이집트 유물들을 수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듬해 나일 전투에서 넬슨 제독의 함대가 프랑스 함대를 격침시키면서 프랑스 원정군은 큰 타격을 입었다. 이후 프랑스는 제해권을 상실했고, 이집트에 고립될 것을 우려한 나폴레옹은 도망치듯 이집트를 빠져나와 몰래 프랑스로 돌아갔다.
앞서 말했듯이 1801년 이집트 원정에서 승리한 영국군은 프랑스로부터 대량의 이집트 유물을 인계 받았다. 당시 원정에 참가해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학문적 성과를 올렸다고 자부했던 프랑스 학자 들은 자신들의 연구 성과를 영국에 넘겨야만 하는 상황에 분개했다. 이때 영국군에 넘어간 주요 유물 중에는 그 유명한 ‘로제타석’이 포함되어 있었다. 1799년 이집트의 라시드 (혹은 로제타) 지역에서 발견된 이 거대하고 검은 석판은 당시 프랑스의 획득물들 중에서 가장 가치 있는 발견으로 평가 받았다.
그 이유는 하나의 석판에 그리스어와, 당시에는 해석이 불가능했던 이집트의 고대 민중문자 그리고 유럽인에게 가장 신비하고 주술적으로 보였던 상형문자가 같이 새겨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동일한 내용을 각기 다른 세 문자로 새긴 것으로 판명된 ‘로제타석’은 그때까지 전혀 단서가 없었던 고대 이집트 문자를 해독할 유일한 단서였기 때문에 프랑스 측은 끝까지 이 유물을 영국에 넘기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 한 방법으로 프랑스는 이 ‘로제타석’을 프랑스군의 전리품이 아닌 장교 개인의 사적 재산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영국은 프랑스군과 동행한 학자들이 프랑스 공화국 소속이고, 이집트 유물들이 프랑스로 가면 국가 재산에 귀속될 것을 알고 있었다. 프랑스 측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로제타석’을 비롯한 대부분의 유물은 결국 영국군에 넘어갔다.
1801년 알렉산드리아 전투에서 나폴레옹이 이집트에 남겨 둔 주둔군이 영국의 애버크롬비 제독에게 패하면서 프랑스군은 최종적으로 이집트에서 철수해야만 했다. 이후 알렉산드리아 조약에 따라 그동안 프랑스 학자들이 수집한 고대 이집트의 유물들은 영국군에 인계되었다.
한편 영국은 이때 얻은 대규모의 고대 이집트 유물을 영국박물관에 전시함으로써 오늘날 영국 박물관의 초석을 다질 수 있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영국이 소유하게 된 이 최초의 이집트 컬렉션이 단순히 전시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집트 컬렉션은 이미 18 세기 초부터 계속된 유럽 국가들 간의 힘겨루기 속에서 몇 차례의 전쟁을 치러 왔던 프랑스에 대한 결정적 승리의 결과물 이었다. 그동안 유럽인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고대 이집트 문명이 주는 신비감과, 영국이 전쟁의 승리를 통해 그것을 소유하고 전시했다는 것은 프랑스와 치열하게 다투는 상황에서 영국에 각별한 의미였다. 영국은 이제 자국의 힘을 시각적으로 보여 주는 상징물로서 유물의 가치를 인식하기 시작했고, 제국주의 정책에서 유물 수집을 중요한 과정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윤경호 (시드니인문학교실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