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인문학교실 2차 인문학여행 (26)
기자를 중심으로 한 피라미드와 스핑크스에 대하여
<기자의 피라미드>
1. 개요 및 역사
(*고대의 추정 3D 재현도. 맨 오른쪽의 피라미드가 쿠푸의 대피라미드다.)
이집트 기자지역에서 대표되는 피라미드는 쿠푸왕, 카프레왕, 멘카우레왕 피라미드가 있다. 이들 중 대피라미드는 이집트 고왕국 제4왕조 쿠푸왕의 무덤이다. 일명 쿠푸의 피라미드, 피라미드를 대표하는 금자탑이자 기자를 대표하는 3개의 피라미드들중 가장 크기가 거대해서 대(大)피라미드라고 부른다.
기자의 대피라미드는 대략 기원전 26세기에 지어졌다. 27년이라는 세월에 걸친 대공사 끝에 완공되었는데, 이 당시만 해도 외벽이 반죽한 백색 석회암으로 덮여 있어 지금과는 달리 매끈했고 맨 꼭대기의 피라미디온 (캡스톤)은 금이어서 매우 크고 아름다웠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사람들이 건축 자재로 쓰기 위해 외벽의 석회석들을 뜯어버렸고, 현재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것은 울퉁불퉁한 내부 암석들이 그대로 드러난 포장 이전의 외벽 모습이다.
피라미드의 높이는 지어질 당시에는 146.6m였으나 외벽의 석회암 석재가 뜯겨 나가면서 높이가 138.5m 정도로 감소했다.
대부분은 석회암, 일부 화강암으로 축조되었으며 사면 경사는 약 51°50’40″이다. 바닥면의 길이는 230.33m이며 부피는 260만 세제곱미터에 달한다. 무게로만 치면 600만 톤에 달하는, 230만 개의 암석들이 피라미드를 구성하고 있으며 내부에는 3개의 방이 자리하고 있다. 왕의 방과 왕비의 방 그리고 또 하나는 피라미드 하부 기단암을 파고 만들었는데 완공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피라미드 근처에는 태양 방주를 보관하는 신전과 2개의 장제전이 있어 석조 보도로 연결되어 있었으나, 지금은 거의 대부분 파괴되고 잔해와 터만 남아있다.
피라미드의 건축 목적에 대해서는 단순한 기념비, 정교한 천문대 등 다양한 학설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학계에서는 현대 연구 결과를 토대로 쿠푸왕의 무덤이 거의 확실하다고 보고 있다.
쿠푸왕 사후 카프레, 멘카우레 등의 후계 파라오들이 그의 피라미드 곁에 자신들의 피라미드를 건설했다. 고대 이집트 피라미드 건설의 황금기였던 제4왕조가 끝난 이후, 더이상 이집트에서는 이처럼 거대한 크기의 피라미드들이 지어지지 않았다. 후대의 중왕국, 신왕국의 파라오들은 지나치게 많은 돈을 잡아먹는 피라미드 대신 왕가의 계곡에 무덤을 파서 제 관과 미라를 안치하는 방법을 택했다.
2. 내 외부 구조
(*대피라미드의 단면도)
1번은 공식 입구, 2번은 관광객들이 드나드는 도굴꾼들이 파낸 입구, 3, 4번은 정식 입구에서 들어와 내려가는 하강 통로, 5번은 지하 방, 6번은 올라가는 상승 통로, 7번은 왕비의 방과 환기구, 8번은 수평 통로, 9번은 대회랑, 10번은 왕의 방과 환기구, 11번은 석제 환기구. 단 11번 통로의 용도에 대해서는 현재도 말이 많은데, 대회랑을 돌로 막은 후 인부들이 내려갔을 통로라는 설부터 단순히 부실공사로 인한 틈이라는 설까지 다양하다.
3. 피라미드 입구
(*대피라미드의 공식 입구와 그 아래의 관광객용 입구)
피라미드 입구는 북쪽 면, 피라미드면의 중심 축에서 동쪽으로 15m 정도 벗어난 지점 13층계 정도의 높이에 있다. 2개의 거대한 석회암 쌍들이 맞대어 서있는 모습의 입구로, 원래는 거대한 암석으로 막혀 있었으나 현재는 모조리 파괴되어 달려있던 문짝을 찾아볼 수가 없다. 입구 근처에 가보면 수많은 낙서들이 가득하다.
정식 입구는 여기지만 관광객들이 들어가는 입구는 따로 있다. 관광객들은 9세기경 아바스왕조의 칼리프 알 마문이 파 놓은 통로를 통해서 들어가는데, 이 입구는 5층계 정도에 위치해 있고 너비는 상당히 좁다. 이 입구로 들어가 약간 아래로 경사진 도굴용 통로를 따라 쭉 걸어가면 정식입구를 통해 들어올 수 있었던 내부 복도와 연결된다.
4. 왕의 방
(*대피라미드 중심부에 위치한 방)
피라미드 내부의 3개의 방들 중 가장 위쪽에 있으며, 크기는 10.5m x 5.2m에 높이는 5.8m이다. 천장을 포함해 모조리 거대한 화강암 암석들로 만들어졌으며 위쪽에는 하중을 받치기 위해 층층이 쌓인 화강암들이 막대한 압력을 분산시키고 있다.
실제 왕의 방인지는 알 수 없고 임의로 붙여진 명칭이다. 석실의 북쪽과 남쪽 벽에 용도를 알 수 없는 얕은 구멍이 1개씩 나 있는데, 이를 ‘환기구’라 부른다.
왕의 방 내부에는 큼직한 화강암으로 제작된 석관이 있다. 중세 시대에 발견되었을 때 이미 모조리 도굴당한 상태라 그 어떠한 것도 발견되지 않았다. 길이는 2.28m x 0.98m x 1.05m의 사이즈에 두께는 15cm이다. 내부의 안치 공간의 크기는 1.98m x 0.68m이다. 관의 모양은 고왕국 시대의 전형적인 관의 모습으로, 현재는 사라진 위에 관뚜껑을 고정하기 위해 3개의 구멍이 뚫려 있다.
5. 대 회랑
(*관광객용 입구를 지나 상승 통로를 따라 쭉 올라가면 나타나는 거대한 규모의 회랑)
길이는 46.68m이며 높이는 8.6m에 이른다. 들어가는 기단부의 폭은 2.1m로 꽤나 넉넉하지만 위로 올라갈수록 벽이 경사지게 들어오는 모습이기 때문에 가장 위쪽 부분은 폭이 1m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대 회랑의 천장은 벽보다 약간 더 경사진 모습으로 돌들이 맞대어져 있는데, 이는 대 회랑에 가해지는 엄청난 하중을 견뎌낼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워낙 건축학적으로 잘 만들어 놓은 장소이기 때문에 학계에서는 이 대 회랑을 이집트 건축의 기념비라고 부르기까지 한다. 대 회랑을 지나면 왕의 방으로 들어갈 수 있다.
6. 왕비의 방
(*대피라미드 중심부에 위치한 방)
왕비의 방 역시 실제 왕비의 방인지는 알 수 없으며 임의로 붙여진 이름이다. 피라미드 내부의 3개의 방들 중 중간에 있으며, 크기는 5.8m x 5.2m다. 뾰족하게 경사진 천장을 가지고 있으며 그 높이는 6.3m이다. 정식 입구로 들어간 후 하강 통로를 지나 대 회랑으로 올라가지 않고 수평 통로를 따라 쭉 이동하면 그대로 왕비의 방에 들어갈 수 있다. 왕비의 방으로 들어가는 수평 통로는 폭 1m, 높이는 1.17m에서 1.68m 정도로 상당히 낮고 좁아 이동하기 불편하다.
7. 지하 방
(*지하 방)
피라미드에 있는 3개의 방들 중 유일하게 기반암을 파고 들어가 설치된 방으로 지면 27m 아래라는 가장 낮은 위치에 있다. 대략 8.4m x 14.1m 정도의 투박한 직육면체 형태의 방으로, 높이는 4m 정도로 꽤나 크다. 왕의 방이나 왕비의 왕과는 달리 확실히 미완성된 모습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방이기도 하다.
8. 태양방주
(*쿠푸왕이 하늘로 승천할 때 사용할 거대한 방주)
피라미드 동쪽에는 3개의 거대한 크기의 구덩이가 있었다. 1954년 5월에 처음으로 이 구덩이의 존재를 발견했고, 이 구덩이에서 목재 조각들이 쏟아져 나왔다.
구덩이의 모습을 보고 목재들이 배를 이루고 있었다는 것을 직감한 고고학자들은 1,224개에 달하는 목재 조각들을 일일이 짜맞추기 시작했다. 조각들은 큰 것은 23m에서부터 작은 것은 10cm까지 크기가 가지각색이었다. 학자들은 밧줄을 이용해 그 많던 조각들을 제자리에 이어 붙였고, 그 결과 14년이라는 대 작업 끝에 마침내 완벽한 배를 재조립할 수 있었다. 현재는 박물관에 완벽한 보존처리를 받은 채 전시되어 있다.
<기자의 스핑크스>
1. 개요
(*카프레의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스핑크스 하면 떠올릴 이집트의 스핑크스 조각은 <기자의 대스핑크스>로 불리는 것으로, 카프레왕의 피라미드 근처에 위치하고 있다. 카프레의 얼굴로 추정되는 사람머리와 엎드린 사자와 같은 모습으로 앉아 있다. 대 스핑크스는 몸의 길이가 73m에 높이 22m, 얼굴 폭이 4m, 귀의 길이 1.4m, 입의 길이 2.3m, 코의 길이 1.7m이다. 머리 부분이 실물보다 10배, 동체는 22배가 크다.
2. 어형
고대 이집트어로는 당연히 그리스식 표현인 스핑크스라고 칭하지 않았고 살아있는 (왕을) 닮은 형상이라는 뜻의 ‘셰세프 앙크 (Shesep ankh)’라고 불렀다. ‘스핑크스’라고 부르게 된 것은 고대 그리스 시절 이집트와 거래하던 그리스 상인들이 그리스 전설의 스핑크스의 이름을 붙인 것에서 유래했다. 원래는 그리스 상인들 사이의 은어였으나 알렉산드로스 3세가 이집트를 정복하고 마케도니아계가 이집트의 왕이 되는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들어서면서 ‘스핑크스’라는 명칭이 통용되었다. 이후 그리스 문화를 향유한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와 로마 제국이 약 천 년을 지배하면서 ‘스핑크스’라고 정착했고, 현재까지도 스핑크스라 불린다.
3. 형태
돌을 쌓아 만든 피라미드와 달리 스핑크스는 상체와 머리는 석회암 언덕을 깎아서 만들었으며 팔과 몸통 일부분은 돌을 쌓아 만들었다. 몸통은 평지를 파내서 제작했는데, 세월이 지나면 사막에 부는 모래바람 때문에 점점 모래가 차올라 몸통이 잠기므로 지속적으로 관리해줘야 한다. 원래 표면은 붉은 황토색으로 채색했다고 한다.
머리는 마치 파라오처럼 관을 쓴 형상이었다. 얼굴 부분에서 코가 부서져서 사라졌다. 코 외에도 이마에는 파라오 왕권의 상징인 코브라가 있었고 턱에는 턱수염도 달렸으나 지금은 사라졌다.
임종광 회원 (시드니인문학교실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