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인문학교실 2차 인문학여행 (29)
오죽헌과 신사임당에 대하여
강릉 오죽헌 (江陵 烏竹軒)은 강원도 특별자치도 강릉시에 있는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 (栗谷 李珥)의 생가이다.
검은 대나무인 오죽에서 유래된 죽헌동
강원도 강릉시 죽헌동은 검은 대나무인 오죽 (烏竹)이 많이 자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원래 강릉군 정동면이었다가 1938년 경포면이 되었다가 1955년 강릉시가 되었다.
오죽헌은 신사임당 (1504∼1551)과 율곡 이이 (1536∼1584)가 태어난 유서 깊은 집이다. 우리나라 주택 건축물 중에서 비교적 오래된 건물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율곡 이이의 이종사촌인 권처균 (權處均)이 자신의 저택 뒤뜰에 까마귀처럼 검은 대나무인 오죽이 자라고 있어서 오죽헌이라는 호를 지었고, 오죽헌이라는 이름 또한 여기서 유래된 이름이다.
사임당은 어려서부터 기억력이 뛰어났고, 다른 자매들보다도 일찍 글을 깨우쳤다고 한다. 아버지 신명화는 딸들에게도 성리학과 글씨, 그림 그리는 법을 가르쳤다. 딸들 중에서도 그의 재능을 높이 본 아버지 신명화는 특히 그를 각별히 아꼈다.
사임당 신씨 (師任堂申氏, 1504년 음력 10월 29일 ~ 1551년 5월 17일)는 조선 시대 중기의 문인이자 유학자, 화가, 작가, 시인이다. 조선시대 중기의 성리학자 겸 정치인 율곡 이이, 화가 이매창의 어머니다. 강원도 강릉 출신으로 본관은 평산 (平山)이다.
본명은 신인선 (申仁善)이라고도 하나 확실하지 않으며 사임당은 그의 당호 (堂號)이다. 사임당 신씨는 현모양처의 본보기가 되는 인물이며, 신씨의 아들 율곡 이이는 조선 시대에 퇴계 이황과 쌍벽을 이루는 훌륭한 학자였다.
오죽헌은 조선 시대 문신이었던 최치운 (1390 ∼ 1440)이 지었고, 단종 시대에 병조 참판과 대사헌을 역임했던 최응현의 고택으로 사용되었다. 최응현은 훗날 신사임당의 외할아버지인 이사온 (李思溫)에게 자신의 저택을 물려주게 된다.
오죽헌 바깥쪽에 위치한 외삼문 (外三門)인 자경문 (自警門)은 율곡 이이가 20세 시절에 지은 자경문 (自警文)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본가에는 호해정사 (湖海精舍)라고 불린 사랑채가 있다. 그 외에 신사임당이 율곡 이이를 낳은 별당인 몽룡실 (夢龍室)이 있는데, 이는 신사임당이 율곡 이이를 낳을 때 검은 용이 나타났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몽룡실 오른쪽에는 신사임당이 율곡 이이를 낳았던 온돌방이 있고, 왼쪽에는 율곡 이이가 6세 시절까지 공부했던 마루방이 있다. 현재는 신사임당의 영정이 보관되어 있다.
가부장적 사회인 조선시대 대부분 여성들에게 이름을 붙인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다. 남성들에게는 아명과 아호 그리고 호 등 다양하게 이름을 썼지만, 여성들에게는 친정집 지역 이름을 따 강릉댁, 청산댁, 내당댁 등으로 불렀다. 하지만 시대적 상황에서도 ‘신사임당’이라는 이름을 신사임당이 직접 지었다는 것이다. 신사임당의 ‘사임’은 중국 문왕의 어머니인 태임을 스승으로 삼겠다는 뜻이다.
당호 (堂號)란 성명 대신에 그 사람이 머무는 거처의 이름으로써 인명을 대신하여 부르는 호칭이다. 예컨대 신사임당에서 “사임당”이나 여유당 정약용에서 “여유당”은 당호이다.
신사임당은 성리학을 기반으로 한 유교 교육을 통해 여성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했다. 당시 여성들은 대부분 가사에만 종사하는 한정된 역할을 가지고 있었지만, 신사임당은 여성 교육을 통해 그들의 역량을 개발하고 사회적 영향력을 키울 수 있도록 노력했다. 그녀의 예술세계와 태교 때부터의 인성교육 등은 오늘의 21세기 현대교육에서도 시사한 바가 크다.
그는 남편 이원수와의 슬하에 4남 3녀 (7남매)를 두었는데, 늘 부모에게 효도와 형제간의 우애를 강조했다.
신사임당은 ‘녹봉 (鹿峰)’이라는 여성 학당을 설립하여 여성들에게 유교 교육을 제공했으며, 그녀의 가르침은 많은 여성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또한, 신사임당은 자신의 학문적 업적을 남기기 위해 시를 지은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 중에서도 사친 (思親) 이라는 시를 보면 그녀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사친 (思親)
천 리라 먼 고향 만 겹 봉우리
꿈에도 안 잊히는 가고픈 마음
한송정 위아래엔 두 바퀴의 달
경포대 앞을 부는 한 떼의 바람
모래톱 갈매기는 뫼락 흩으락
물결 위 고깃배는 동으로 서로
언제나 다시 강릉 길 밟아
색동옷 입고 어머니 슬하에서 바느질할꼬.
(작품 설명)
평생을 어머니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을 안고 살았던 사임당이 고향과 어머니에 대한 간절한 심정을 잘 표현한 작품이다.
자신의 운명적 삶에 대한 한 (恨)과 함께 어머니에 대한 지극한 효심이 잘 나타나 있는 한시로, 작자의 의식의 흐름이 현실과 환몽, 그리고 현재와 과거의 경계를 넘나들며 전개되고 있어, 작자 내면에 자리한 간절한 그리움의 정서를 더욱 절실하게 드러내고 있다.
사임당의 삶이 이 글에 나타난 바와 같이 어머니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이나 효심이 평생 한결같았다는 점에서 더욱 감동을 준다.
김혜옥 회원 (시드니인문학교실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