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인문학교실, 2024년 10월 모임 실시
린필드 목요모임, 홍길복 목사 ‘플라톤 철학이 남긴 이원론과 국가론의 문제점 풀어가기1’, 독서토론모임 ‘아트인문학2:틀 밖에서 생각하는 법’ 나눠 … 다음모임은 11월 7일, 21일은 종강 및 송년모임 [10월 3일, 17일 강의 전문 포함]
리드컴 수모임은 주강사 홍길복 목사와 모임가져 … 11월 모임은 13일과 27일에
시드니인문학교실 (The Humanitas Class For the Korean Community in Sydney)은 2024년 10월 모임을 린필드와 리드컴에서 실시했다.
리드컴 수요모임은 10월 9일과 23일 (수) 오전 10시 리드컴 소재 명성교회에서 홍길복 목사 (호주연합교회와 해외한인장로교회 은퇴목사)를 주강사로 모임을 실시했다. 다음모임은 11월 13일과 27일에 모인다.
린필드 목요모임은 10월 3일과 17일 (목) 오후 7시, 린필드한글사랑도서관 (김동숙 관장, 454 Pacific Hwy, Lindfield)에서 홍길복 목사 (호주연합교회와 해외한인장로교회 은퇴목사)를 강사로 ‘플라톤 철학이 남긴 이원론과 국가론의 문제점 풀어가기1’과 독서토론모임으로 ‘아트인문학 2 : 틀 밖에서 생각하는 법 (김태진 저)’를 나눴다.
10월 3일 모임에 강사로 선 홍길복 목사는 ‘플라톤 철학이 남긴 이원론과 국가론의 문제점 풀어가기1’을 주제로 강연하며 “인문학을 하려는 사람들은 일체의 차별의식을 가져서는 않됩니다. 나와 너, 사람과 자연, 하느님과 사람, 어린이와 어른, 여자와 남자, 가진 자들과 못가진 자들, 건강한 사람과 약한 사람, 내국인과 외국인, 원주민과 이민자, 일체의 갑과 을 사이에 그려진 빗금 (칸막이/슬래쉬)을 걷어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인문학은 언제나 그 사회와 조직 속에서 약자들의 편에 섭니다.–다산 정약용 선생이 강진의 한 주모에게 내려준 당호, 사의제(四宜齊)를 기억해 둡시다. 이런 가운데서 우리 교실이 추구해 나가는 방향은 중용 (中庸)입니다. 극단을 피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해서 중용이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식으로 중도 (中道)에 서는 것은 아닙니다. 중용은 정도 (正道)를 걷는 노력입니다. 포용, 관용, 너그러움, 똘레랑스, 균형과 조화 (Harmony & Balance)입니다.”라고 서두에 언급했다.
이어 ‘플라톤은 어떤 인물인가’, ‘플라톤의 대표적 저서들’, ‘서양철학사에서 플라톤의 위치와 한계’ 등을 살핀 후 우생학이 인류사에 미친 영향을 나누었다.
강연후 질의응답의 시간을 갖으며 플라톤이 현대인들에게 주는 의미를 생각했다.
10월 17일 모임에는 독서토론모임으로 ‘아트인문학 2 : 틀 밖에서 생각하는 법’ (김태진 저)을 ’를 1장 김클라라 회원, 2장 김동숙 회원, 3장 한명숙 회원, 4장 이순희 회원, 5장 원명숙 회원이 각각 독서해 발제했다.
1장 ‘그림, 다시 평면이 되다’를 발제한 김 클라라 회원은 “상반기에 나뉘었던 <아트인문학 :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법>에서는 ‘패러다임’을 바꾸는 데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통찰을 가진 화가들의 의해서 새로운 그림의 패러다임이 열렸다. 오늘 여러분들과 함께 나눌 <아트인문학 ; 틀 밖에서 생각하는 법>에서는 ‘홈’이라는 단어를 저자 김태진은 사용하고 있다. ‘홈’은 그 세대에 가장 보편적인 것, 편안한 것, 다시 말하면 그 시대의 트렌드라고 말할 수 있겠다. 모두가 인정하는 편안한 것에서 벗어나 ‘홈’밖으로 뛰어나와 펼쳐지는 평지에 마음껏 자유롭게 자기만이 표현할 수 있는 그러한 용기를 가진 자들이 새로운 ‘홈’를 만들어 갔다고 말한다. 또 그 누군가가 틀 밖을 보는이가 나타나 새로운 예술세계를 이끌어 왔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부재가 ‘틀 밖에서 생각하는 법’이다. 오늘날 우리가 접하는 현대미술, 21세기 포스트모던의 예술세계까지 말이다. <아트인문학> 틀 밖에서 생각하는 법, 1장 그림, 다시 평면이 되다. 2장 보이는 것만이 다가 아니다. 3장 처음부터 옳았던 것은 없다. 4장 그 무엇을 가져와도 예술이 된다. 5장 결과물로서 작품은 없어도 된다. 이러한 순서로 다섯 사람이 나누어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게 될 것이다. 그러고 보니 지난해 우리가 인문학 여행을 이탈리아로 다녀오고 부터 미술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던 내가 두 권의 아트인문학 책을 읽고 조금은 눈을 뜨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어찌되었건 이러한 기회를 통해 내 자신이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 감사하다.”며 발제를 이어갔다.
2장 ‘보이는 것만이 다가 아니다 : 지각의 해체’는 김동숙 회원이 발제하며 “지각의 해체에서는 예술에서의 지각이 어떻게 해체되고 변화했는지를 다루고 있다. 이 장은 회화가 구상에서 추상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설명하며, 특히 현대 미술에서 지각의 전통적인 개념이 해체되는 과정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2 장의 내용을 각 예술가와 운동을 중심으로 정리하였다.”고 하였다.
3장 ‘처음부터 옳았던 것은 없다 : 권위 너머로’를 발제한 한명숙 회원은 마르셸 뒤샹, 다다, 앤디 워홀, 프랭크 스텔라, 백남준 등을 순서대로 나눴다.
4장 ‘그 무엇을 가져와도 예술이 된다 : 형식너머로’를 발제한 이순희 회원은 “수많은 점들, 그것들을 이은 선, 그 사이에 보이는 생성점. 다섯 갈래로 나누어 현대미술이 거쳐온 경로를 선명히 지나는 이 선들을 ‘경로선’이라 부르고, 이 책의 가이드라 불러도 좋으리라고 김태진은 말한다. 4번째 경로선이 그 무엇을 가져와도 예술이 된다. 현대미술을 단번에 알아가기는 쉽지 않다, 필자가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던 현대미술은 자신만큼이나 이해하기 어렵다. 김태진의 아트 인문학 2부는 주류 미술의 경직성을 거부하고, 규칙을 파괴하는 길, 과거에 없던 새로운 예술 형식들을 만들어내는 길, 결과물보다 착상과 예술 행위를 더 중요하게 보는 길이다. 그리고 이 모든 모험의 시작점에는 마르셀 뒤샹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레디메이드 작업으로 미술의 근간을 뒤흔들었고, 일련의 시도를 통해 망막적 미술, 제작자와 예술가와 수용자와 관람자라는 틀을 극복하고자 했다. 읽는 내내 흥미로운 소설을 읽는 듯했지만, 숙지와 이해는 조금 어려워 발제를 후회하기도 했다.”고 나눴다.
5장 ‘결과물로서 작품은 없어도 된다 : 물질 너머로’를 발제한 원명숙 회원은 “기억나는 갤러리 방문이 3번 있습니다. 한번은 공중에 공룡 비슷한 풍선이 떠 있는 현대미술전 이었던 것 같은데 설명을 요구하니 보이는 대로 느끼라는 말을 듣고는 2-3초 머물며 느껴지는 것은 그저 이해못함 임을 끝으로 15분 만에 걸어 나온 것이 처음이었고 두 번째는 호주인과 같이 갔던 아트 갤러리였습니다. 16, 17년 전인데 지금도 기억에 남는 것은 어느 가로 세로 50센티되어 보이는 그림입니다. 농가를 등지고 서 있는 그의 뒤로 아침의 해가 떠오르고 있는 그림이었습니다. 그 분은 그 아침햇살에 투명하게 옅은 핑크 빛으로 물든 그 남자의 작은 귓볼을 지적하며 흥미롭다고 했습니다.”라고 했다.
이어 “잘려 나가는 손톱크기만한 귓볼에 그러한 세세한 표현이 가능하다는 사실에 놀랬으며 그후로 사람 얼굴이 있는 그림을 볼 때면 귓불의 색갈이 어떤 지를 먼저 보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3번째가 지난 달에 갔었던 Archibald 2024 였습니다. 조경화님의 설명과 함께 본 그림들은 지금도 몇 개나 기억날 정도로 그림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이런 얄팍한 지식을 가진 제가 현대미술을 논하는 5장을 읽으며 얻은 지식과 생각을 공유하고자 합니다.”라며 발제했다.
시드니인문학교실은 “우리 시대 과연 사람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진정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하고 고민하며, 함께 그 생각과 고민을 나누고 싶어 하는 분들을 초청합니다. 현재 린필드에서는 목요일 (1, 3주 목요일 오후 7시)에, 리드컴에서는 수요일 (2, 4주 수요일 오전 10시)에 모임을 합니다”라고 취지를 밝히며 초청했다.
다음 린필드 목요모임은 11월 7일에 홍길복 목사를 강사로 10월 3일, 홍길복 목사 (호주연합교회와 해외한인장로교회 은퇴목사)를 강사로 ‘플라톤 철학이 남긴 이원론과 국가론의 문제점 풀어가기2’ 모임 후 11월 17일에는 종강 및 송년모임을 갖는다.
리드컴 수요모임은 11월 13일과 27일 (수) 오전 10시, 새벽종소리 명성교회 새신자실 (31 East St. Lidcombe)에서 홍길복 목사 (호주연합교회와 해외한인장로교회 은퇴목사)를 주강사로 모인다.
○ 시드니인문학교실 11월 모임 안내
– 린필드 목요모임
.일시: 2024년 11월 7일, 21일 (목) 오후 7시
.장소: 한글사랑도서관 (454 Pacific Hwy, Lindfield)
.강사: 11월 7일, 홍길복 목사 (호주연합교회와 해외한인장로교회 은퇴목사) – 플라톤 철학이 남긴 이원론과 국가론의 문제점 풀어가기 2 / 11월 21일, 종강 및 송년모임
(대면과 비대면 병행해 모임)
.문의: 주경식 0401 017 989, [email protected] / 임운규 0425 050 013, [email protected]
– 리드컴 수요모임
.일시: 2024년 11월 13일 / 27일 (수) 오전 10시
.장소: 새벽종소리 명성교회 새신자실 (31 East St. Lidcombe)
.강사: 홍길복 목사 (호주연합교회와 해외한인장로교회 은퇴목사)
.문의: 천옥영 0422 712 235
시드니인문학교실 10월 3일 강의 전문
플라톤 선생님, 두 가지 물어 볼 것이 있습니다
플라톤 철학이 남긴 이원론과 국가론의 문제점 풀어가기
‘시드니인문학교실’은 지난 2017년 2월 2일 이곳 Lindfield 한글사랑도서관(김동숙 관장)에서 처음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지난 시간들을 돌이켜보면서 먼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 교실에 함께 하셔서 공부해 오신 인문학 친구들 모두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뒤에서 여러 모습으로 섬겨주신 운영위원님들을 비롯하여 물질과 마음을 다해 섬겨주신 모든 분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동시에 이 곳에서 우리 교실을 널리 알려주심은 물론이고 모든 소식과 강좌를 한 번도 거르지않고 전문을 게재해주신 ‘크리스천라이프’(임운규 발행인)와 한국의 ‘나비통신’(최광열 발행인)에 대해서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이로 인하여 우리 교실에 직접 참석하지는 못하셨지만 신문을 통하여 꾸준히 읽고 배우고, 생각을 더해 가시면서 저희와 함께해주신 분들이 생각 밖으로 참 많으셨습니다. 그 모든 분들에게도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우리 강좌의 원고는 호주는 물론, 한국, 몽골, 동남아시아, 캐나다, 미국, 남미 등 여러나라에 계신 친구들 수십명에게 보내왔는데, 특히 미국 필라델피아 지역에서는 우리 강좌를 중심하여 그 지역에 계신 분들 이십여명이 김영근 선생님과 함께 ‘필라델피아 인문학교실’을 만들어서 함께 공부하시게 되었다는 소식을 주셔서 참으로 반갑고 보람을 느끼게 해 주셨습니다. 다시한번 이 모든 분들에게 고마운 인사를 드립니다.
2017년 2월 시드니인문학교실을 시작하며 플라톤 강좌를 하기전에 나눴던 강좌와 토론의 주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었습니다.
제1강 우리들은 모여서 무엇을 하자는 것인가?(인문학의 목적)
제2강 인문학이란 도대체 무엇인가?(인문학의 정의와 역사)
제3강 인문학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인문학 방법론)
제4강 생각에 대하여 생각해 봅시다(인문학의 출발점)
제5강 인문학의 주제1–사람(Saram)에 대한 서구적 이해
제6강 이웃되기의 역사학(박정신 교수)/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탈북자–이웃 환대하기(구미정 교수)
제7강 인문학의 주제2–사람에 대한 동양적 이해
제8강 인문학의 주제3–사람에 대한 통전적 이해
제9강 나의 철학 만들어 보기(철학이란 무엇인가?)
제10강 호주의 역사 이야기(한상대 교수)
제11강 내 인생의 중심개념은 무엇인가?(자연철학자들의 이야기)
제12강 해외 한인동포들 이야기(한상대 교수)
제13강 종교개혁 500주년기념:인문주의와 종교개혁의 배경(주경식 교수)
제14강 종교개혁 500주년기념:루터-종교개혁과 교회분열의 사이에서(주경식 교수)
제15강 우기지 마라! 네말도 맞고 내말도 맞다!(소피스트들 이야기)
제16강 죽음:어떻게 맞을 것인가?(소크라테스의 생각, 삶, 그리고 죽음을 보면서)
‘시드니인문학교실’은 매년 2월부터 5월까지, 또 8월부터 11월까지 8개월 동안 매월 첫째 및 셋째 목요일 저녁 7시부터 Lindfield 한글사랑도서관에서 16번에 걸쳐서 모입니다. 그런데 금년에는 첫째 목요일 저녁에는 그동안 제가 진행해 왔던 것처럼 서양철학의 역사를 중심으로 강좌와 토론의 시간을 갖겠습니다만 셋째 목요일 저녁에는 인문학과 관계된 여러가지 토픽들을 가지고 강사들을 초청하여 말씀을 듣고 함께 의견을 나누는 시간으로 계획하고 있습니다. 아직 초청 강사들이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대체로 다음과 같은 토픽들을 예상하고 있습니다.
홍길복의 강좌 – 플라톤이 남겨놓은 숙제 풀기/행복과 중용의 관계(아리스토텔레스 이야기)/헬렌이즘과 로마시대의 철학 이야기(견유학파, 스토아 학파, 에피퀴레스 학파들이 남겨놓은 인생의 교훈들 살펴보기)/중세의 시작–기독교 이야기/보편논쟁이란?/르네쌍스 이야기/아는 것이 힘이다! 배워야 산다!(우리는 어떻게 알게 되는가?)/계몽주의란 무엇인가?/칸트 철학의 3가지 중심 주제 등 근세까지의 서양철학사를 중심으로 너무 무겁지 않게 공부해 가고자 합니다.
초청 강사들로부터 듣고자 하는 토픽들 – 인문학과 정치, 혹은 인문학과 정치적 자유/인문학과 경제, 혹은 인문학과 경제적 평등/인문학과 법, 혹은 인문학과 정의/인문학과 자연과학과의 관계/인문학과 책 이야기, 혹은 인문학과 독서/인문학과 음악 이야기/인문학과 미술 이야기/인문학과 영화 이야기/인문학과 공연예술/인문학과 문학(시, 소설, 희곡 등) 이야기/인문학과 여행 이야기/기타 인문학과 종교, 죽음, 사랑, 분노, 음식, 바른 삶, 노후 등등.
오늘은 2018년 첫 시간입니다. 먼저 각자 금년에 읽어보고 싶은 도서 목록을 정리해 볼 수 있도록 아래에 빈 칸을 만들었습니다. 각자 한번 작성해 보면 좋겠습니다.
‘시드니인문학교실’은 인문학 친구들의 꾸준한 사랑과 관심 가운데 한해를 지나오면서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습니다. 새해도 이 작은 교실을 통해서 우리들의 초심이 변치 아니할 뿐만 아니라 더 성숙해 지기를 바랍니다. 새해 새롭게 시작하는 마당에 우리는 다시한번 우리 ‘시드니인문학교실’이 다짐했던 처음의 목표들을 재점검해 보겠습니다.
우리는 이 교실에서 강의, 독서, 토론을 통하여 서양에서 이어온 문사철과 동양에서 다듬어온 시서화를 살펴보면서 인문학의 전통과 역사, 목적과 내용, 방법론과 한계를 공부하고자 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하여 우리는 의심하고, 고민하고, 우리 개인과 역사 속에서 부딪히는 문제들에 대하여 진솔하고 깊이 있게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 개인적 삶의 의미와 보람을 추구해 나가는데 보탬을 얻고자 합니다.
더 나아가 우리는 이 교실을 통하여 우리가 더불어 살아가는 이 세상으로 하여금 보다 정의롭고, 사랑과 평화가 넘실거리는 사회를 지향하는데 작은 기여라도 할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위와 같은 목표를 바라보면서 독서, 강의, 토론을 할 때 우리 인문학 친구들의 지녀야 할 기본적 자세 또한 대단히 중요합니다.
첫째는 ‘자아성찰(自我省察)’입니다. 인간이란 영원히 이상한 존재이고 풀려지지 아니하는 숙제입니다. 인간에 대한 최대의 원수는 인간입니다. 인간성 속에는 이기적 유전자가 있습니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노력해도 결코 이길 수 없는 탐욕과 이기주의와 교만의 노예입니다.–북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이야기와 혜능대사의 이야기는 물론, 최근 우리가 보고 온 램브란트 특별전에서 그가 그렸던 100여개의 초상화 이야기도 늘 깊이 새겨두어야 합니다. ‘미술에 있어서는 무엇을 그릴 것인가를 결정하는 작품의 대상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그 그림을 그리는 화가 자신은 누구인가를 아는 것이다.’
둘째는 ‘절대란 절대로 없다’는 생각을 갖고 ‘세상 모든 일에는 반드시 하나의 정답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와 다른 것은 틀린 것이 아니라 오직 다를 뿐’임을 인정하는 태도입니다. 모든 것은 변합니다.–황희 정승의 이야기나 막스 프랑크 연구소에서의 빛에 대한 실험 이야기나 불트만과 후기 불트만학파 사이에서의 학문적 겸손에 대한 태도를 기억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피하거나 안만나는 것은 아주 나쁜 태도입니다. 우리 인문학 교실만해도 동과 서처럼 아주 먼 사람들이 함께 자리하여 서로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을 나눔으로 우리는 더욱 더 성숙해지게 됩니다.
셋째는 늘 ‘역시사지(易地思之)’를 생각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자세입니다. ‘그 사람이 그렇게 말하고 행동하는데는 내가 미처 알지 못하는 어떤 이유가 있게 마련입니다’–세상에는 손바닥을 얼굴보다 두배, 세배 더 크게 그리는 그림도 있습니다. 미국 동부의 한 대학 캠퍼스에서 벌어진 여학생에 대한 sexual rape 사건에 대한 대처 방법에 있어서 학교당국과 여학생들의 생각의 차이점을 기억해 둡시다.
대부분의 모든 학문이 그러하듯이 인문학도 결코 혼자서는 이루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를 인정하고 힘을 합하여 나가는 과정입니다. 우리 각자는 점묘법(點描法)–점 하나 하나를 찍어서 마침내 큰 그림을 완성해 나가는 미술 기법과, 여러개의 작은 조각들을 맞추어서 전체를 이루는 ‘모자이크’나 ‘퍼즐 맞추기’를 하는 사람들입니다. 인문학은 서로 협력하여 전체를 아우르고 함께 힘을 합하여 보다 좋은 세상을 만들어 갈려고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인문학을 하려는 사람들은 일체의 차별의식을 가져서는 않됩니다. 나와 너, 사람과 자연, 하느님과 사람, 어린이와 어른, 여자와 남자, 가진 자들과 못가진 자들, 건강한 사람과 약한 사람, 내국인과 외국인, 원주민과 이민자, 일체의 갑과 을 사이에 그려진 빗금(칸막이/슬래쉬)을 걷어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인문학은 언제나 그 사회와 조직 속에서 약자들의 편에 섭니다.–다산 정약용 선생이 강진의 한 주모에게 내려준 당호, 사의제(四宜齊)를 기억해 둡시다.
이런 가운데서 우리 교실이 추구해 나가는 방향은 중용(中庸)입니다. 극단을 피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해서 중용이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식으로 중도(中道)에 서는 것은 아닙니다. 중용은 정도(正道)를 걷는 노력입니다. 포용, 관용, 너그러움, 똘레랑스, 균형과 조화(Harmony & Balance)입니다. 그럼 플라톤을 살펴보겠습니다.
Platon[BC 427년(혹은 428, 424년)∼347년(혹은 348)]은 어떤 인물인가?
아테네의 명문 가정에서 태어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로써 소크라테스의 제자였으며 아리스토텔레스의 스승이었습니다. 21살에 소크라테스를 만나 그에게서 철학과 인생을 배움으로 정치가가 되겠다던 처음의 인생 계획을 바꾸어 철학자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평생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그의 인생과 사상이 만들어집니다. 살아생전 단 한편의 글도 남기지 아니한 소크라테스는 플라톤을 만남으로 역사 속에서 위대한 철학자로 빛을 발하게 되었고 플라톤 역시 소크라테스를 만남으로 서양철학사에서 독보적인 사상가로 남게 되었습니다. 특히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죽음으로부터 큰 감명과 영향을 받았습니다. 플라톤의 저서라고 불리우는 대부분의 책들은 소크라테스의 사상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에서 바울이나 베드로가 없이도 예수가 전해질수 있었을까라고 말하는 것처럼 플라톤이 없이도 소크라테스가 알려질 수 있었을까하는 의구심이 있습니다.
그는 소크라테스가 죽은 후 28살에 세계 최초의 고등교육기관이었으며 그리스의 4대 학원중 하나인 아카데미아(Akademia)를 세웠습니다[Athens의 4대 학원 i)Platon의 Akademia, ii)Aristoteles의 Lykeion, iii)Epikouros의 Epikouros학원, iv)Stoa학파의 Stoa학원]. 플라톤은 여기에서 주로 정치학, 윤리학, 인식론, 형이상학 등을 가르쳤으나 수학과 기하학과 천문학을 포함한 물리학도 가르쳤습니다. 번듯한 학교건물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단순히 자기집 정원에 세워진 학교였으나 그 입구에는 ‘기하학을 모르는 자는 이 문으로 들어오지 말라’는 말을 새겨 놓았습니다. 이 학교는 AD 529년 유스티아누스황제가 아카데미아를 반기독교적이라는 이유로 폐교할 때까지 거의 천여년 동안 지중해 세계 최고의 두뇌집단이었고 지식인 양성의 모체였으며 학문의 전당이었고 자유의 시험장이었습니다. 그러나 유스티아누스는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종교적 권력을 등에 업고 인류 최초의 대학을 폐쇄한 것입니다. 권력을 잡은 종교가 얼마나 억압적이고 반지성적인지를 보여주는 예화가 됩니다. 한때 플라톤은 그의 정치사상을 실현해 보기위하여 여러 곳을 방문하며 노력했으나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하고 81세에 생을 마감했습니다. 모든 이론과 현실사이에는 간격이 있습니다. 정치든, 경제든, 종교든, 원칙과 이상, 꿈과 이론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유토피아는 없습니다.
플라톤의 대표적 저서들
소크라테스를 비롯한 소크라테스의 여러 제자들과 나누는 ‘대화편’이 35개가 전해집니다. 당시 글쓰는 방법은 주로 그리스 문학의 영향으로 인하여 등장인물들이 서로 묻고 대답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희곡식 글쓰기 방식이 가장 보편적이었습니다. 책의 제목은 주로 등장인물중 주인공이라고 여겨지는 사람의 이름을 따거나 토론의 주제를 책명으로 붙였습니다. 기타 그의 편지라고 생각되는 ‘서간문’이 13개가 있는데 대화편이나 서간문에는 플라톤의 글이 아니라고 의심되는 것들도 있습니다. 신약성서나 기타 고대의 다른 문서들과 마찬가지로 여기에 대해서는 아직도 학자들 사이에 논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저작들에는 ‘소크라테스의 변명’ ‘크리톤’ ‘파이돈’ ‘향연’ ‘파르메니데스’ ‘파이드로스’ ‘프로타고라스’ ‘고르기아스’ ‘메논’ ‘국가’ ‘법률’ 등이 있습니다. 2017년 현재 플라톤의 저서는 한국어로 완역이 안된 상태입니다(일본은 이미 백여년 전에 플라톤 전집을 완역했고 70년대엔 고대 그리스원전 모두를 일본어로 번역해 냈습니다).
서양철학사에서 플라톤의 위치와 한계
그는 서양철학자들 중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철학자 중 하나입니다. 그는 서양철학을 최초로 체계화하고 그 기본 토대를 구축한 사람이라고 불리웁니다. 플라톤 이후의 서양철학은 플라톤에 대한 지지나 반대중 하나라고 할만큼 그는 철학의 중심에 서있습니다. 흔히 서양철학은 Platonism이냐, 아니면 Anti-Platonism이냐 할 정도로 플라톤철학에 대한 찬반으로 양분됩니다. Whitehead는 ‘서양철학은 플라톤 철학에 대한 각주일뿐’이라고 했고 버트란드 렛셀은 ‘서양철학은 플라톤의 방법론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플라톤의 글 중에는 취급되지 아니한 분야가 없을 정도입니다. 형이상학, 철학, 신학, 윤리학, 미학, 정치학, 법학, 기하학, 의학, 천문학, 지리학, 자연과학 등 거의 모든 영역에 손을 댔습니다. 특히 중세 초기 기독교신학은 존재론, 유일신 사상, 이원론 등에 있어서 플라톤의 사상적 영향을 크게 받았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플라톤에 대한 평가는 많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그의 ‘이데아론’에 따른 ‘이원론’은 세상만사를 지나치게 이분법적으로 갈라놓은 것으로서 양극화 논리를 초래했다는 비난을 벗어날 수 없게 되었으며 그의 ‘철인정치론’은 독재체제를 정당화하는 논리라는 비난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플라톤 역시 그 시대의 아들이었습니다. 저의 개인적 능력을 포함하여 여러가지 제한이 있음으로 우리 ‘시드니 인문학교실’에서는 플라톤의 사상 중에서 가장 핵심이 된다고 여겨지는 다음 두 부분에 대해서만 살펴보려고 합니다. 첫째는 그의 대화편들 가운데 나타난 ‘이원론’ 사상이고, 둘째는 그의 ‘국가’(Politeia)에 나타난 ‘정치철학’입니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철학사상이 지니고 있는 시대적 제한성과 문제점들을 중심으로 토론해 보고자 합니다.
플라톤 철학의 제 1 핵심사상은 이원론(二元論, Dualism)입니다. 플라톤은 자연계를 포함하여 인간과 인간들이 살아가는 사회를 둘로 나누어서 보고, 이해하고, 해석했습니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이 세상은 (1) 첫째로 현상계(現象界 Form)가 있습니다. 우리가 감각을 통해서 알 수 있는 ‘나타난 현실세계’를 말합니다. 눈으로 보거나, 귀로 듣거나, 코로 냄새를 맞거나, 입으로 맛을 보거나, 아니면 피부로 접촉해서 알게 되는 모든 현상계가 제 1차적 인식의 세계입니다. 교실, 책상, 의자, 책, 마이크, TV, 컴퓨터, 꽃병, 하늘, 해, 달, 별, 땅, 나무, 물, 새, 벌레, 소, 말, 개, 사람, 건물, 자동차 등등은 우리의 오관을 통해서 인지되는 현실계요, 나타난 사물의 세계입니다. (2) 둘째로 플라톤은 우리의 감각, 즉 눈으로 보거나 귀로 듣거나 손으로 만져지지 아니하는 현상계의 이면(裏面)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플라톤은 이 현상계 뒤에 있는 정신적 세계, 이념의 세계를 ‘이데아’(Idea), 혹은 ‘이데아의 세계’라고 불렀습니다. 이것이 그의 ‘이데아론’입니다. 그에 의하면 이 이데아의 세계는 현상계에 대한 존재의 근원이 되고 이 현상계가 가능하도록 해주는 본질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플라톤이 좋아하는 기하학에서 삼각형을 봅시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형태의 다른 모양과 다른 색깔과 다른 크기를 지닌 삼각형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다양한 삼각형들은 본래부터 사람의 ‘머리속에 그려진 이념적 삼각형’의 다양한 변형에 지나지 않습니다. 바로 기하학자에게는 ‘삼각형이란 세 개의 변이 만나서 내각의 합이 180도를 이루는 이상적 원형 삼각형’이 있다는 것입니다. 플라톤은 이 삼각형을 ‘완전한 삼각형’이라고 했습니다. 현상계의 수많은 삼각형들은 이 ‘완전한 원형 삼각형’의 변형이요, 모방으로써 ‘불완전한 삼각형’이라는 것이 플라톤의 이론입니다. 그에 의하면 이 세상에서 눈에 보이도록 그려진 모든 삼각형들은 ‘이데아 삼각형’을 본뜬 것이며(copy), 모방한 것이며(imitation), 혹은 나누어 가진 것(분유, 分有, sharing)으로써 ‘이데아의 복사 혹은 복제판’일 뿐입니다.
삼각형 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꽃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의 생각이나 이념속에 상상으로 그려진 꽃의 이데아를 모방하거나 분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책상, 의자, 소, 말, 개, 사람은 물론이고 더 나아가 사랑, 정의, 진리, 평화, 자유, 충성, 기쁨 같은 것들 까지도 다 감각적으로는 보이거나 만져지지 아니하는 원형적 이데아로부터 본떠 오거나 조금씩 나누어가진 불완전한 현상이라는 주장입니다. 우리가 열을 내면서 부르짖는 민주, 인권, 자유, 평등, 사랑, 진리 같은 것들도 이데아의 세계를 모방한 부분적 신념일 뿐이지 절대로 절대적이질 못합니다. 우리 눈앞에 나타난 현상으로써의 선이나 진리나 정의나 사랑이란 사실은 거짓된 것이라는 것이 플라톤의 주장입니다(후에 중세철학에서 다시 살펴보겠습니다만 이데아론은 보편논쟁에서 유명론과 실재론으로 연결됩니다).
이와같은 논리에 따라 플라톤은 이 세상이란 ‘이데아와 형상’ ‘본질과 모방’ ‘원인과 결과’ ‘진리와 거짓’ ‘원칙과 변화’ ‘영혼과 육체’ ‘하나와 여럿’ ‘오리지날과 카피’ ‘원본과 짝퉁’이라는 두 가지로 되어있다는 이원론을 발전시켰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는 이데아=본질=원인=진리=원칙=영혼=하나=오리지날=원본이라는 등식과, 형상=모방=결과=거짓=변화=육체=여럿=카피=짝퉁이라는 공식을 만들어냈습니다.
플라톤의 이원론에 의하면 인간(Body), 혹은 인간 존재(Whole Human Being)란 영과 육으로 되어있습니다. 인간과 인간의 Body는 Soul과 Flesh, 두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고 보았습니다. 영(Soul, Spirit, Mind는 오늘날 여러가지로 번역이 되고 분석되고 다른 의미로 풀이됩니다만 당시만 해도 하나의 개념으로 이해되었습니다)은 이데아의 세계입니다. 당연히 영은 완전하고 영원하고 아름답고 변하지 않고 죽거나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육(Flesh)은 불완전하고 일시적이며 추하고 변하고 사멸되어 없어집니다. 영은 육이 나타나기 이전부터 존재했고 육체와 함께 존재하다가 육이 없어지면 다시 자기가 있던 자리로 되돌아갑니다. 그러므로 영은 영원불멸이고 육은 잠깐입니다. 영원한 것은 완전하고 거룩하고 아름답고 참된 진리이지만 일시적인 것은 썩고 쇠하고 더럽고 거짓됩니다. 이 플라톤의 이원론 사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드린 사람이 사도 바울과 사도 요한이라고 합니다. 플라톤이 죽음을 찬양하고 죽음이란 영이 육체의 감옥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는 것이라 한 것과 그의 영혼불멸 사상은 모두 이와같은 그의 이데아론에 기초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이 이데아의 세계, 곧 절대적이고 완전하고 불변하며 영원하고 참된 세계를 알 수 있을까요? 플라톤은 이렇듯 일종의 영적이며 정신적이며 종교적 세계라고까지 말할 수 있는 이 이데아의 세계를 인식하는 길은 육체적 감각이 아니라 오직 ‘이성적 능력’이라고 주장합니다. 플라톤은 인간을 끌고가는 데는 두 가지 욕구가 있는데 하나는 ‘욕망’(慾望: Desire)이고 다른 하나는 ‘기개’(氣槪:Passion)라고 했습니다. 모든 인간들은 이 욕망과 기개라고하는 두 마리의 말이 끌고가는 데로 따라 갑니다. 그런데 플라톤은 이 쌍두마차를 몰고가는 마부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이성이라고 보았습니다. 이성이라는 마부의 지배를 받지 않는 인간과 역사는 파멸에 이르게 됩니다. 이성이 욕망을 지배할 때 인간은 인간다운 삶을 살게 되고 역사와 사회는 올바른 길로 가게 됩니다. 이성의 지배를 받는 개인이 행복한 사람이고 이성에 의해 통제되는 사회가 아름다운 사회입니다. Homo Sapience!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다!’ 이성을 최고의 자리에 앉힌 플라톤철학은 이런 기초 위에서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플라톤이 여기서 말하는 이성이란 감각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육체 속에 담겨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육체와는 떨어져있는 초월성을 지닌 인식능력으로써 일종의 ‘절대정신’ 같은 것입니다. 이렇듯 이성을 통한 절대적 이데아 인식이 결국은 플라톤 철학과 기독교를 포함한 종교적 신앙 사이에 거리를 만들게 됩니다. 헬레니즘(Hellenism)은 이성을 통한 진리의 인식을 주장하고, 헤브라이즘(Hebraism))은 믿음을 통한 구원의 길로 갈라서게 됩니다. ‘이데아란 어디엔가 있다고 무조건 믿기만 하면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생각하고 사유함으로 깨닫게 된다’는 철학의 세계와 ‘신이란 인간이 생각하고 깊이 사유한다고 해서 알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오직 믿음으로 귀의할때 만이 알 수 있다’고 하는 종교의 세계가 제각기 따로 자리를 잡게 된 것입니다. 이성적 능력을 신뢰하고 깊은 사색을 통하여 진리로 나갈 것인가, 아니면 믿음과 기도, 성령과 영적체험을 통하여 도와 진리의 세계로 나갈 것인가? – 지난 날 인류는 이 둘 사이에서 대결과 선택, 혹은 타협과 양보를 거듭 하면서 진리와 영원을 향한 순례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플라톤 선생님에게 이원론이 제기하는 문제점들에 대하여 몇가지 물어 볼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가 토론하려고 하는 제목이기도 합니다. (1) 첫째 질문입니다. 인간 세상은 플라톤의 주장대로 모든 것이 이원론적으로 나누어지는가? 영과 육, 너와 나, 본질과 형상, 참과 거짓, 빛과 어두움, 흑과 백, 선과 악, 성과 속(聖과俗), 촛불과 태극기식의 양자 대립 구도로 갈라지는 것일까요? 육체노동을 하거나 육신을 위해서 일하고 먹고 자고 노는 것은 모두 속된 일이고 정신노동을 하면서 책읽고 공부하며 기도하는 일들은 모두가 다 거룩한 일일까요? 사농공상은 천한 일이고 선비나 관료나 종교인이 되는 것은 귀한 일일까요? 성직과 속직이 따로있고 성일과 속일을 구별하는 것이 바른 태도일까요? 기독교 성도들이 성일을 지킨다고 하면서 교회예배를 중시하는 것과 일요일에도 쉬지 못하고 우리 사회의 음지에서 일하는 사람들중 누가 더 거룩한 일을 하는 것일까요? 단기선교를 가는 것은 거룩한 일이고 청소하면서 돈을 벌어 식구들을 보살피는 것은 속된 일일까요? 인간의 삶이란 두부모 짜르듯이 가를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聖 속에도 俗이 있고 俗 가운데도 聖이 있는 것은 아닐까요? 교회는 하루 빨리 聖者 제도를 폐지하고 모든 성자들을 취소해야 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원론적 구분법이 현실에서는 그대로 적용이 되지도 않고 그리된다고 해도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오늘날 기독교가 극복해내야 할 가장 큰 숙제 중 하나는 이원론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2) 둘째 질문입니다. 플라톤의 이원론은 이 세상에서의 삶을 무책임하게 만들어 놓을 가능성이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이원론에 빠지게 되면 현실을 도피하고 세상에서의 삶에 대한 책임성이 약화될 수 있습니다. 세상을 등지고 은둔, 도피 하거나 반사회적, 반문화적이 되기가 쉽다고 봅니다. 수도원적, 기도원적 삶이 미화되고 스스로를 게토화하여 종교적 울타리 안에 안주할 가능성이 커집니다. 종교인으로서의 정치적, 사회적 책임을 회피할 가능성도 높아집니다. 종교인들이라고 해서 먹고 자고 놀고 영화보고 운동하고 여행하고 정치에 참여하고 세상을 비판하고 성생활을 하는 것이 죄짓는 것은 아닌데도 불구하고 마치 이런 것들은 어딘가 잘못된 일을 하는 듯이 심리적 및 정신적 부담감을 갖게 만듭니다. 이런 태도는 결국 인간성을 부정하고 사람을 비인간화시키고 무책임한 존재로 만들게 됩니다. 이는 AD 1세기 이후 플라톤의 영향을 받은 바울이나 요한이 육신의 생각과 영의 생각, 빛과 어두움, 이 세상과 저 세상, 주인과 노예, 남자와 여자를 구별하여 기독교를 성속 이원론적 신학 위에 세운 데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3) 마지막 질문입니다. 이성과 신앙은 서로 적이요, 상극입니까? 이 둘은 피차 조화 할 수 없고, 상호 보완이 불가능한 방법론일까요? 종교개혁시대 마틴 루터까지도 ‘이성은 마귀의 매춘부요 악마의 창기’라고 했는데 오늘날의 기독교까지도 정말 이성은 신뢰할 수 없는 것이요, 종교란 무조건, 덮어놓고 믿어야만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나요? 전통적 기독교는 가능한한 교리화 되어버린 극단적 이원론을 극복해 내고 우리시대 ‘상식을 존중하고 건전한 양식과 합리성 위에서’ 종교를 받아들이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합리적 신앙의 세계로 초청하여 함께 신앙의 길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길은 없을까요?
플라톤 철학에서 우리가 두 번째로 취급하려는 핵심 사상은 그의 ‘정치철학’입니다. 플라톤의 ‘국가(원래의 그리스 말로는 ‘Politeia’인데 영어로는 흔히 ‘The Republic’ 이라고 번역했고 우리말로는 ‘국가’라고 번역했습니다만 그 둘 다 플라톤이 생각했던 의도를 제대로 옮겼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에서 그리스의 도시국가인 ‘폴리스’를 가장 이상적인 나라로 만들어 볼려고 했습니다. ‘폴리스를 폴리테이아로’ 개조해 볼려는 시도였다고 하겠습니다. 플라톤이 ‘폴리테이아’에서 시도한 것은 ‘이상적인 국가’였기 때문입니다.
‘폴리테이아’는 플라톤의 저서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입니다. 주로 소크라테스와 그의 여러 제자들이 나누는 대화체로 엮여져 있지만 플라톤 자신의 정치철학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핵심 사상이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폴리테이아’가 취급하는 처음 주제는 정의의 문제입니다. ‘정의란 무엇인가?’ 正義를 定意해 보려고 합니다. 그에 의하면 정의란 ‘디카이오시네’(dikaiosyne)입니다. 그 뜻은 ‘올바름’입니다. 정의의 문제는 최근 마이클 샌들의 ‘정의란 무엇인가?’(Justice)에 이르기까지 철학사, 특히 서양의 정치철학사에서는 가장 중요한 문제중 하나로 취급되어왔습니다. ‘착하고 선한 사람에게는 이익이 돌아가게 해 주고 악하고 나쁜 사람은 불리하게 해주는 태도와 제도’가 ‘올바른 것이요 곧 정의라는’라는 논의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제기되는 문제는 과연 ‘착하고 선한 사람과 악하고 나쁜 사람은 어떻게 알 수 있고 구별해 낼 수 있는가?’하는 문제와 좀 더 근본적으로는 착하고 선한 사람에게 이익을 얻게 해 주는 것은 정당한 일이지만 누군가가 악하고 나쁘다고 해서 그에게도 악하고 나쁜 방법으로 불이익을 주는 것이 과연 ‘올바는 태도냐?’하는 것입니다. 논리가 복잡해지면서 유명한 소피스트인 트라시마코스(Trasimacos)는 ‘정의란 강자의 이익을 옹호 해 주는 것’이라는 논리를 전개합니다. 통치자는 자기에게 유익한 것을 법이라는 이름으로 제정한 후 그 법을 지키는 것을 정의라고 하고 그 법을 지키지 못하는 것을 불의라고 하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문제의 핵심은 누가 법을 만드느냐 하는 것인데 모든 법은 결국 강자, 곧 통치자들이 만드는 것이라고 봅니다(양치기, 선장, 의사, 성직자 등은 누구를 위해서 일하는가?). 여기에서 더 나아가 글라우콘은 ‘정의란 사람들 사이에서 이해관계를 놓고 피차에 타협을 통해서 만들어내는 사회계약일 뿐이지 절대적 정의란 없다’고 봅니다. 아데아만토스는 효용성이 없는 정의란 효용성이 있는 불의보다 못한 것이라고 열을 올립니다.
‘폴리테이아’에서 취급하고 있는 둘째 주제는 ‘정의’(올바름)가 실현될 수 있는 ‘이상적 국가’란 무엇인가?입니다. ‘어떤 국가가 정의를 실현해 낼 수 있는가?’ 플라톤의 대답은 철학자가 다스리는 ‘철인국가’입니다. 그는 철학자가 통치하는 나라가 가장 이상적으로 정의, 올바름을 실현해 낼 수 있는 국가라는 주장을 펼칩니다. 플라톤은 ‘폴리테이아’ 제 8권과 9권에서 ‘한 사람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된 왕정식의 독재체제’(獨裁體制 Autocracy)를 비롯하여 군사적 무력같은 것을 이용하여 권력을 찬탈하는 참주체제(僭主政治 Tyrant)는 물론,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소수의 엘리트들이 권력을 갖고 그 권력을 그들 사이에서 이어가는 공산당이나 관료 사회 같은 과두정치(寡頭政治 Oligarchy)와 더 나아가서는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일체의 민주정치(民主政治 Democracy)까지를 통털어서 잘못된 국가체제라고 합니다. 그런 국가에서는 도저히 정의를 실현할 수가 없다는 것이 플라톤의 주장입니다. 특히 플라톤은 아테네의 민주적 정치체제가 그의 스승 소크라테스를 부당하게 죽였다고 보았습니다. 자신의 경험을 통하여 민주적 정치체제가 지닌 단점을 보았던 것입니다. 플라톤에게 있어서는 철인이 다스리는 나라인 철인통치 국가만이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이상적인 나라였습니다. 그가 주장한 철인정치는 일종의 귀족정치(貴族政治, Aristocracy)요, 엘리트 정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대적 의미에서 국가의 구성요소는 영토, 국민, 주권입니다. 플라톤에 의하면 이상적 국가에서 영토는 ‘폴리스’이고 국민과 주권은 다음의 3계층으로 이루어집니다. 한 국가의 제일 밑바닥에는 생산자로써의 서민이 있습니다. 그들은 농공상인들입니다. 그들에게 요구되는 덕목은 절제입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정욕에 붙들려서 더 잘 먹고 더 잘 입기를 바라며 사는 계층이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 위, 중간 자리에는 국가를 지키는 군인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덕목은 용기입니다. 군인에게는 기개적 결기가 있어야지 나라를 수호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플라톤에 의하면 생산계층과 군인들은 이성적 능력이 아주 빈약하거나 거의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마치 어두운 동굴 속에 갇힌 죄수와 같이 허상만 바라보면서 의미 없는 일을 반복합니다. 그들에게는 밖에서 비쳐오는 이성의 빛을 볼 수 있는 눈이 없습니다. 감정에 이끌려서 인간의 말초 신경이 요구하는 데 따라서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누군가에 의해서 지도를 받고 이끌림을 받아야 합니다. 그 역할을 하는 사람이 철학자 입니다(동굴의 비유, Allegory of the Cave). 플라톤은 제일 윗자리에다 이 두 계급을 포함하여 자기 자신들까지도 스스로를 통치하는 철인을 두었습니다. 그런데 이들 철학자에게 요구되는 덕목은 지혜입니다. 그들은 이성적이어야만 이데아를 알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플라톤이 말한 철인이란 ‘만물의 외형이 아니라 본질인 이데아’를 알고 터득한 사람입니다. 이데아의 세계를 내다보고 그 원리를 깨달아 안 철학자가 나라를 다스릴 때 비로소 그 ‘폴리스는 이상적인 폴리테이아가 된다’는 주장 입니다.
플라톤은 이들 철학자들에게는 통치자들에게 요구되는 높은 도덕적 책임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입니다. 이 말은 프랑스어로 ‘귀족성은 곧 의무성이다’라는 뜻입니다. 권력과 명성과 부에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사회적 책임이 있다는 논리입니다. 로마시대 이후 ‘노블레스 오블리주’에게는 보통 국방을 위한 병역과 남보다 훨씬 더 높은 세금과 기부행위가 포함되었습니다만 플라톤은 이미 그리스에서부터 통치자들에게는 일체의 사유재산이나 그 어떠한 개인적인 것도 결코 허락되어서는 않된다고 했습니다. 사유재산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가정까지도 가질 수 없었습니다. 모든 것은 국가의 것이요, 공동체의 것입니다. 결혼도 국가가 지정해서 해야 하고 자식도 우생학적인 검토를 받은 후 임신을 허락받아야 하고 또 그렇게 임신 후 태어난 애기들은 당연히 국가의 소유로써 출생과 동시에 부모를 떠나 공동체 속에서 양육되고 교육을 받아 국가의 통치계급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플라톤은 ‘폴리테이아’에서 소크라테스의 입을 통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양을 쳐서 젖과 고기와 가죽을 얻으려고 하는 사람은 진정한 양치기가 아니다. 선한 목자는 양에게서 아무것도 기대해서는 않된다. 그는 양 자체를 사랑해서 양을 쳐야한다. 마찬가지다. 철학자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나라를 다스리지 않는다. 그는 오직 올바름을 위해서 올바로 일을 해야 한다. 정의는 정의 자체로서 값진 것이기 때문이다. 철학자가 추구하는 정의는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정의 그 자체”를 위해서 정의로워야한다’ 하여튼 플라톤은 ‘정의가 강 같이 흐르고 공의가 물 같이 흐르는 사회’를 이상적인 국가로 여겼는데 그 이상적 국가라는 이데아를 깨닫고 이성적 지배를 받는 철학자들이 아무 사심도 없고 사리사욕도 없이 통치하는 나라라고 보았습니다.
플라톤의 철인정치에 대한 비판적 평가
현대 정치철학에서는 플라톤에 대하여 긍정적인 평가가 거의 없습니다. 아테네의 민주정과 플라톤이 주장했던 철인정치를 비교하는 사람들은 분명하게 말합니다. 플라톤은 독재정치를 지지한 사람이며, 국가주의에 함몰된 사람이고, 비합리적 사고에 젖어든 철학자였다고 평가합니다. 그가 폴리테이아에서 주장했던 철인정치이념이란 근본적으로 비민주적 제국주의, 독재주의, 경쟁주의, 이기주의, 초인주의, 불평등주의, 반사회주의를 비롯한 각종 차별주의를 조장하고 그것들을 정당화시킨 논리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는 태생적으로 그리스인 우월주의를 지닌 사람이었습니다. ‘나는 신에게 세 가지 감사거리가 있다. 첫째는 짐승이 아니라 사람으로 태어난 것을 감사한다. 둘째는 여자가 아니라 남자로 태어난 것을 감사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소크라테스 시대에 아테네의 시민으로 태어난 것을 감사한다’라고 말했을 정도입니다. 그의 철인정치는 근대 서구 제국주의 이론을 뒷받침했으며 그의 남자와 그리스인 우월주의는 근대 각종 불평등주의와 특히 히틀러의 유대인 말살정책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해 주었습니다. 15세기 이후 서구의 제국주의는 플라톤의 이론을 힘입어 다른 나라들을 식민지화하고 노예화하기 시작하였으며 현재까지도 식민주의를 정당화하는 이론적 배경이 되고 있습니다. 사실 미국을 위시한 서구는 최고의 국가적 위상을 제국주의의 완성에 두고 있습니다. 히틀러는 독일국민을 철학적 국민이라고 확신했으며 유태인들은 우생학적으로 역사에서 제거해 버려야 할 열등한 민족이라고 믿었습니다. 파시즘이 자행한 인종말살이나 생체실험은 사실 일본이나 나치에서 시작된 범죄행위가 아니라 미국과 구소련을 비롯한 서구 제국주의가 그보다 오래 전부터 해오던 일들의 연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히틀러는 미국의 아메리카 원주민 학살이나 그들을 집단적으로 이주 시킨 역사를 보면서 그것을 그대로 본받아 실행해 본 것입니다. 미국 뉴욕주의 정식 이름이 Empire State이고 그곳에 세운 최고층 건물이 Empire State Building이라는 것은 무엇을 보여주는 것일까요? 플라톤의 이론에 따른 제국의 건설이 철인정치의 최고 목표라는 생각이 미국을 비롯한 기독교적 서구 제국주의의 본색이라는 비판은 그래서 제기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플라톤 선생님에게 물어볼 두 번째 질문이 있습니다. 선생님은 시민이 그 사회의 주인이 되며 시민들이 의사를 결정하는 민주정을 왜 반대한 것입니까? 선생님은 자신의 경험을 절대화한 오류를 범한 것이 아닐까요? 철인통치란 독재정치이고 불평등한 정치체계라고 할 수 있지 않습니까? 인간 세상에는 이성이 지배하고 그 어떠한 사라사욕도 없는 정의로운 국가를 세울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보십니까?
▷ Questions & Comments
▷ Sharing(토론) – 도대체 국가란 무엇이고 가장 이상적 국가의 형태는 어떤 것일까요?
홍길복 목사
(호주연합교회와 해외한인장로교회 은퇴목사)
홍길복 목사는 황해도 황주 출생 (1944)으로 연세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한 목회자다. 1980년 호주로 건너와 40여년 간 이민목회를 하는 동안 시드니제일교회와 시드니우리교회를 섬겼고, 호주연합교단과 해외한인장로교회의 여러 기관에서 일했다.
2010년 6월 은퇴 후에는 후학들과 대화를 나누며 길벗들과 여행하는 자유를 만끽하는 중이다. 자신이 경험한 이민, 특히 이민한 기독교인들의 삶을 보편적인 이야기로 풀어내는 글쓰기를 바탕으로 ‘동양인 예수’, ‘내 백성을 위로하라’, ‘성경에 나타난 이민자 이야기’, ‘이민자 예수’ 등의 책을 펴냈다.
시드니인문학교실 10월 17일 독서발제 전문
아트인문학 : 틀 밖에서 생각하는 법
(김태진 저, 카시오페아, 2021)
1장: 그림, 다시 평면이 되다 _ 김 클라라
들어가는 말 : 상반기에 나뉘었던 <아트인문학 :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법>에서는 ‘패러다임’을 바꾸는 데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통찰을 가진 화가들의 의해서 새로운 그림의 패러다임이 열렸다.
오늘 여러분들과 함께 나눌 <아트인문학 ; 틀 밖에서 생각하는 법>에서는 ‘홈’이라는 단어를 저자 김태진은 사용하고 있다. ‘홈’은 그 세대에 가장 보편적인 것, 편안한 것, 다시 말하면 그 시대의 트렌드라고 말할 수 있겠다. 모두가 인정하는 편안한 것에서 벗어나 ‘홈’밖으로 뛰어나와 펼쳐지는 평지에 마음껏 자유롭게 자기만이 표현할 수 있는 그러한 용기를 가진 자들이 새로운 ‘홈’를 만들어 갔다고 말한다. 또 그 누군가가 틀 밖을 보는이가 나타나 새로운 예술세계를 이끌어 왔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부재가 ‘틀 밖에서 생각하는 법’이다. 오늘날 우리가 접하는 현대미술, 21세기 포스트모던의 예술세계까지 말이다.
<아트인문학> 틀 밖에서 생각하는 법, 1장 그림, 다시 평면이 되다. 2장 보이는 것만이 다가 아니다. 3장 처음부터 옳았던 것은 없다. 4장 그 무엇을 가져와도 예술이 된다. 5장 결과물로서 작품은 없어도 된다. 이러한 순서로 다섯 사람이 나누어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게 될 것이다. 그러고 보니 지난해 우리가 인문학 여행을 이탈리아로 다녀오고 부터 미술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던 내가 두 권의 아트인문학 책을 읽고 조금은 눈을 뜨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어찌되었건 이러한 기회를 통해 내 자신이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 감사하다.
본론 : 홈, 그 시대의 보편화 된 것, 모두가 그 길을 가야 완전하다고 여기는 것, 그것이 가장 완전한 홈이였고, 승리였다. 홈에서 나오면 어떻게 될까? 내가 좋아하는 일, 잘하는 일을 하는 것으로 나다움에 집중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를 해 내야 한다. 하나는 남들이 그 가치를 인정하도록 만들어야 하고 다른 하나는 남들과는 전혀 차별화를 두어야 한다. 새로운 시대는 도전하는 이들에게 무수한 기회를 제공한다. 앞으로는 상상도 못한 분야에서 성공하는 스토리의 주인공들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문제는 이들의 세계에도 다시금 홈이 파인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모두에게 꼭 필요한 역량이 하나 있다. 그것은 독창적 사고력, 즉 ‘틀 밖에서 생각하는 힘’이다. 이를 갖출 수 있다면 우리는 나다움으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차별화를 지속하기 위한 강력한 무기를 가진 셈이 될 것이다.
쉽지 않을 것을 배워야 할 때 가장 좋은 방법이 있다면 그건 아마도 멋진 성공 사례를 많이 접하는 것이리라 그렇다면 현대미술은 가장 좋은 교재임이 분명하다. 그야말로 창조의 경연장이자, ‘틀 밖에서 생각하기’의 대가들이 넘쳐나는 곳이니 말이다.
작가는 현대미술 이전의 미술이라는 제목아래 조르주 쥘 빅토르 클래랭의 <사라 베르나르의 상>이라는 그림을 책에 실려 놓았다. 이는 현대미술 이전의 미술의 놀라운 묘사 능력으로 이상적 아름다움까지 구현해내는 미술의 아름다움과 이와 반해 변할 수밖에 없었던 현대미술, 왜 그래야 했을까? 그 이유를 정확히 알게 되는 것, 그 결과에 대해 냉정히 평가해보는 것 또한 이 책의 목표중 하나가 될 것이다 라고 언급하고 있다.
예술가들을 가두고 있던 가장 깊은 홈은 ‘재현 (Representation)’이라는 이름의 홈이었다. 그것은 당연했다. 미술은 본래 무언가를 닮은 모습으로 만드는 것이니까, 그런데 놀랍게도 예술가들은 이 깊은 홈에서 빠져나왔다. 그러고는 드넓은 대지 위에서 미술을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1장 그림, 다시 평면이 되다 (공간의 붕괴)
마티스와 야수주의 : 원근법이 해체되어 캔버스 너머의 공간이 붕괴되고 완전한 평면에 이르는 여정이 시작된다. 이때 현대미술의 시작점인 야수파 미술이 등장한 것이다. 당대 미술계의 신비로운 존재였던 세잔의 작품을 접한 뒤 화풍이 완전히 달라진 앙리 마티스, 1905년 프랑스 파리에서 매년 봄에 열리는 미술 전람회(살롱도톤)에 마티스의 <모자 쓴 여인>이라는 작품이 전시된다. 기존의 틀을 깨부수고 파격적인 색감 사용으로 인해 엄청난 비난을 받게 된다. 물론 과감한 색체 구사는 당시 화가들에겐 일반적인 경향이었다. 하지만 이 작품은 넘지 말아야할 선을 넘었다는 것이다.
당시 제법 유명했던 미술 평론가 루이 보셀 (louis vauscelle)에 의해 ‘야수파’라고 불리게 된다.
또 한사람을 소개하고자 한다. 본래 고전적 스타일을 고집하던 파블로 피카소가 현대미술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된 계기는 마티스의 <삶의 기쁨>을 보고 나서다. <거트루드 스타인의 초상화>를 그리게 된다. 이것으로 자신감을 얻은 피카소는 바르셀로나의 매춘부를 그린 <아비뇽의 여인들>이다. 이 작품이 불러일으키는 당혹감과 거부감을 그만큼 시대를 앞서간 증거라고 본 것이다.
브라크와 입체주의: 브라크 역시 다른 화가들처럼 점묘화에서 야수주의로 변신하는 과정을 거쳤다.
하지만 작품 활동을 하면서도 왠지 모를 아쉬움을 느꼈다. 그러던 중 1904 년 열린 세잔의 회고전은 그에게 새로운 미술에 대한 구상을 떠올리게 해주었다. 크라크가 세잔에게서 주목한 것은 원근법에서 자유로운 지점이었다. 브라크는 원근법은 거짓된 것이므로 아예 폐기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까지 이른다.
들로네와 오르피주의 : 오르피즘은 추상미술이라는 거대한 흐름으로 나아가는 생성점이라 하겠다.
말레비치와 절대주의 : 어떤 형태를 온도로 비유해 ‘형태의 0’라고 정의했다. 그리고 이 0도가 미술의 최종 목적지이기 때문에 세잔의 입체주의를 거친 예술의 흐름은 절대주의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폴록과 액션페인팅 : 물감을 흘리고 뿌린 그림, 전문가들 역시 붓을 대지 않고 그린 그림이 탄생한 것에 열광했다. 유럽 미술의 종속에서 벗어나 미국만의 미술이 크게 성공한 첫 사례였기 때문에 미국의 미술계가 크게 환호했다.
나가는 말 : 지금까지 아트인문학 틀밖에서 보는 법에서 1장을 살펴보았다. 이처럼 예술은 끊임없이 변화해왔다. 공자의 말이 생각난다. 모든 것이 변한다. 또 그래야 한다. 변화가 필요한 이유는, 변화지 않는 ‘하나’를 위한 것이다. 그 하나를 ‘본질’이라고 한다면 이 책을 읽으면서 예술의 본질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과 함께 본질에서 벗어났지 않았나? 하는 의문점을 갖게 하는 작품도 몇 개 있었다. 이 또한 틀을 깨지 못한 나라는 한사람의 편견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더불어 인문학을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 우리 인간은 끊임없이 그 본질을 향해 가려는 노력이 곧 ‘삶’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2장 보이는 것만이 다가 아니다 : 지각의 해체 _ 김동숙
2장 보이는 것만이 다가 아니다 : 지각의 해체에서는 예술에서의 지각이 어떻게 해체되고 변화했는지를 다루고 있다. 이 장은 회화가 구상에서 추상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설명하며, 특히 현대 미술에서 지각의 전통적인 개념이 해체되는 과정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2 장의 내용을 각 예술가와 운동을 중심으로 정리하였다.
키르히너와 표현주의 : 관습을 벗어난 예술가들
독일 표현주의의 대표적인 인물인 에른스트 루드비히 키르히너는 다리파에 속한 화가로, 그의 작품은 현실주의적인 스타일에서 벗어나 내면의 감정을 강렬하게 드러낸다. 특히 어린 소녀들을 묘사한 그의 작품은 사실적인 표현을 포기하고, 감정을 전달하기 위해 형태를 왜곡하고 대담한 색채를 사용한다. 표현주의는 현실을 왜곡하여 현대 사회의 불안과 갈등을 드러내는 데 중점을 두었으며, 이는 르네상스 시대의 원근법과 사실주의적 표현에서의 중요 한 전환점이라 할 수 있다.
킨딘스키와 추상 : 혼령을 부르는 여인을 따르다
칸딘스키는 물리적 세계를 넘어서 인간의 내면과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려는 노력을 추구했다. 특히 그는 소리와 색채가 인간의 감정과 정신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 주목하며, 구상적 형태를 버리고 순수한 추상성을 탐구했다. 이는 그가 예술을 단순한 시각적 재현에서 벗어나 감각적이면서도 직관적인 경험으로 확대하려 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칸딘스키의 작품과 사상은 현대 추상미술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작용했으며, 미술을 통해 보이지 않는 세계와의 소통을 꿈꿨던 그의 철학은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브르통과 초현실주의 : 마음의 숨겨진 깊이
초현실주의의 핵심 인물인 앙드레 브르통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 영향을 받아 무의 식의 세계를 탐구하고자 했다. 초현실주의는 눈에 보이는 세계를 넘어서, 인간 지각의 신비롭고 비합리적인 부분을 드러내고자 했다. 김태진은 초현실주의가 일상적이지 않은 사물들을 병치시켜 꿈과 같은, 때로는 불합리한 현실의 이면을 표현하려 했음을 강조한다.
브르통은 예술이 논리적인 한계를 넘어야 한다고 믿었고, 무의식적인 생각과 욕망을 표현하기 위해 자동기술법을 사용했다. 이는 지각의 해체에 있어 중요한 지점을 제공하는데, 초현실주의는 의식적인 사고를 넘어서 무의식의 깊은 영역을 표현하려는 시도였기 때문이다.
뉴먼과 색면 회화 : 형태를 넘은 색채의 의미- 자기작품의 의미를 8개월 동안 생각하다
색면 회화로 잘 알려진 바넷 뉴먼은 예술에서 형태를 해체하고 색채와 공간만으로 감정을 전달하려 했다. 김태진은 뉴먼의 “지퍼” 작품들을 언급하며, 단순한 수직선으로 나뉜 넓은 색면이 깊은 의미를 전달함을 설명한다. 뉴먼의 작품은 구상적인 형상 없이도 색채 자체가 감정적, 영적 경험을 불러일으킬 수 있음을 보여준다.
뉴먼은 자신의 작품을 오랜 시간 동안 깊이 고민했으며, 이는 당시 예술가들이 자신들의 작품에 더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자 하는 경향을 반영한다. 형태가 없는 추상 작품은 관객 에게 색채와 공간 그 자체를 경험하도록 요구하며, 이는 지각의 전통적인 틀을 벗어나는 과정이다.
면도칼로 난자당하고 오줌테러를 당하다 : 뉴먼은 색 자체를 통해 감정과 영적인 경험을 표현하고자 했지만, 그의 작품은 대중에게 이해되기 어려웠고, 그 결과 일부 작품이 파손되는 극단적인 사태로 이어졌다. 이러한 사건은 당시의 예술이 얼마나 급진적이고 충격적이 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베이컨과 영국 표현주의 : 인간의 피냄새가 내 눈을 떠나지 않는다-현실의 잔혹함
프랜시스 베이컨은 영국 표현주의의 대표 화가로, 그의 작품은 인간의 신체를 왜곡하고 잔인하게 표현하여 강렬한 감정과 인간의 고통을 전달한다. 김태진은 베이컨의 유명한 말인 “인간의 피냄새가 내 눈을 떠나지 않는다”를 인용하며, 그의 작품이 인간의 존재의 불안정 함과 잔인함을 직시하게 만든다고 설명한다.
베이컨의 예술은 지각의 해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의 작품은 관객에게 인간의 실존적 고통을 강렬하게 느끼게 하며, 이는 기존의 미적 감상에서 벗어나 감정적으로 깊이 연결 되는 경험을 제공한다.
지각의 해체 : 구상에서 추상으로의 진화
김태진은 이 장에서 여러 예술 운동을 통해 지각의 전통적인 개념이 어떻게 해체되 었는지를 설명한다. 키르히너의 표현주의에서 감정이 시각적 정확성을 넘어서고, 브르통의 초현실주의에서 무의식의 깊이를 탐구하며, 뉴먼의 색면 회화에서 형상 없는 색채로 감정과 영적 경험을 전달하고, 베이컨의 표현주의에서 인간의 고통을 날것 그대로 표현한 과정을 통해, 예술이 점차 구상에서 추상으로 진화하는 과정을 볼 수 있다.
이 변화는 예술뿐만 아니라 인간의 지각과 인식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더 이상 예술은 단순히 눈으로 보이는 것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적이고 무의식적인 차원까지 아우르 는 새로운 형태의 표현으로 확장되었다.
결론 : 추상 예술의 새로운 지평
2장은 구상에서 추상으로 넘어가는 과정이 예술에서 얼마나 중요한 전환점이었는지를 강조하며 마무리된다. 김태진은 이러한 변화가 단순히 기존의 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적 가능성을 확장하는 중요한 과정임을 강조한다. 지각의 해체를 통해 예술가들은 인간 경험의 더 깊은 차원, 즉 감정, 무의식, 영적 세계를 탐구하게 되었다.
추상 예술은 관객에게도 새로운 도전을 안겨주었다. 더 이상 형태나 이야기에 의존하지 않고, 각자 자신의 지각을 통해 작품을 해석하고 경험하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은 예술 감상 자체를 보다 개인적이고 내면적인 체험으로 변화시켰다.
김태진은 이 장을 통해 현대 예술이 보이는 것 이상의 깊은 세계를 탐구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우리가 시각적으로 인식하는 것은 더 큰 현실의 시작일 뿐이며, 예술은 이러한 다층 적인 현실을 드러내는 강력한 도구임을 강조한다.
3장 처음부터 옳았던 것은 없다 : 권위 너머로 _ 한명숙
1. 마르셸 뒤샹
마르셸 뒤샹 소개: 개념미술의 창시자, 레디메이드란 개념으로 평범한 일상용품이 예술가의 선택과 의미부여로 예술품이 될 수 있다고 주장, 현대미술의 흐름을 바꿔놓았고 미술에 무한한 자유를 부여함.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 : 1912년 작품, 입체주의 작품이나 파리 앙데팡당전에 거부당하고, 뉴욕 아모리쇼에 출품해, 그가 미국에서 성공하는 시발점이 된 작품.
마르셸 뒤샹이 미국 현대 회화에 미친 영향: 당시 예술의 불모지였던 미국에 유럽의 예술을 소개하고, 현대미술에 대한 이해를 불러일으킴. 미국의 풍요로운 물질주의와 결합해 탄생한 미국적인 현대미술로 인해 세계 예술의 중심은 파리에서 뉴욕으로 옮겨옴.
레디메이드와 개념미술의 정수 <샘> : 1917년 제작되어 예술의 정의를 새로 쓰게 한 작품, 기성품 소변기에 작가가 싸인을 함으로 생겨난 새로운 존재가치의 주장은 개념미술의 정수를 보여줌.
뉴욕 다다 : 뒤샹과 만 레이가 주축이 되어 모더니즘 예술에 대한 반발로 생겨남. 정치색이 짙은 유럽 다다와는 구별됨.
2. 다다
다다이즘의 배경 : 제 1차 세계대전을 피해 스위스 취리히에 모인 예술가들에 의해 ‘캬바레 볼테르’에서 탄생. 1916년 시인 트리스탄 짜라가 사전에 나이프를 던져 나온 단어 ‘다다’는 아무 의미 없는 의성어이다.
다다이즘의 이념 : 이성과 관습을 거부하고 기존 예술의 파괴로부터 시작하는 반예술 개념으로, 철저한 파괴 위에 새로운 질서를 세우려는 운동이다. 이는 전 유럽으로 퍼져나가 취리히 다다, 독일 다다로 나뉜다.
다다이즘의 주요 인물 : 마르셸 뒤샹, 한스 아르프, 라울 하우스만등 수많은 화가들이 있다.
3. 앤디 워홀
앤디 워홀 소개 : 팝아트의 거장으로 시각주의 예술운동의 선구자, 순수미술과 상업미술의 경계를 허물었고, 그의 이념은 포스트 모더니즘의 모태가 되었다.
화면에 구현된 레디 메이드 작품 <캠벨 수프 캔>, <마릴린 몬로 완벽한 포트폴리오>
팝아트의 개념 : 대중문화적 이미지를 순수미술의 영역으로 수용한 예술로 일반에게 친숙한 만화, 광고, 상품, 유명인을 작품의 소재로 삼는다.
4. 프랭크 스텔라
프랭크 스텔라 소개 : 미국의 화가, 조각가, 판화제작자로 “당신이 보는 것이 당신이 보는 것이다.”라는 말로 미니멀리즘의 정수를 표현. 미니멀리즘과 후기 회화 추상화부문에 많은 작품을 남김.
미니멀리즘의 개념 : ‘최소한’과 ‘주의’의 합성으로 기교를 최소화했을 때 사물의 본질을 구현할 수 있다는 전제에서 시작됨. 미술에서 시작되 건축, 음악, 패션, 철학으로 확산됨.
스텔라 작품의 특징 : 규칙적이고 패턴화된 작업으로 의도된 물질성을 연출. 캔바스의 두께와 형태의 변형으로 사물로서의 느낌을 강조.
5. 백남준
백남준 소개 : 프럭서스 예술의 대가로 무대에서 바이올린이나 피아노를 부수는 퍼포먼스로 유명하다. 또한 비디오 아트의 선구자로 잘 알려진 대한민국이 낳은 세계적인 아티스트이다.
플럭서스의 개념 : ‘흐름’이라는 뜻으로 고착된 예술작품을 거부하고,삶을 예술로 만든다는 뜻으로 행위 예술이 여기에 속한다. 기존 예술의 거의 모든 것을 부정한 최강의 반예술 운동.
백남준의 플럭서스 작품 <머리를 위한 선>, <컷 피스>
4장 그 무엇을 가져와도 예술이 된다 : 형식너머로 _ 이순희
수많은 점들, 그것들을 이은 선, 그 사이에 보이는 생성점. 다섯 갈래로 나누어 현대미술이 거쳐온 경로를 선명히 지나는 이 선들을 ‘경로선’이라 부르고, 이 책의 가이드라 불러도 좋으리라고 김태진은 말한다. 4번째 경로선이 그 무엇을 가져와도 예술이 된다.
현대미술을 단번에 알아가기는 쉽지 않다, 필자가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던 현대미술은 자신만큼이나 이해하기 어렵다. 김태진의 아트 인문학 2부는 주류 미술의 경직성을 거부하고, 규칙을 파괴하는 길, 과거에 없던 새로운 예술 형식들을 만들어내는 길, 결과물보다 착상과 예술 행위를 더 중요하게 보는 길이다. 그리고 이 모든 모험의 시작점에는 마르셀 뒤샹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레디메이드 작업으로 미술의 근간을 뒤흔들었고, 일련의 시도를 통해 망막적 미술, 제작자와 예술가와 수용자와 관람자라는 틀을 극복하고자 했다. 읽는 내내 흥미로운 소설을 읽는 듯했지만, 숙지와 이해는 조금 어려워 발제를 후회하기도 했다.
피카소에게 쫓겨난 무대뽀 진상손님 타틀린
•1914년 피카소를 찾아가 구축주의 아이디어를 얻은 순간
블라드미르 타틀린, “재료 그 자체가 예술이다.”
.러시아의 화가, 조각가로 공산주의의 영향 아래서 추상미술을 시작, 피카소의 종합적 입체주의에서 출발해 여러 입체적 조형을 시도하여 독창적인 미술을 선보이며, 러시아 예술을 이끈 “오직 필요한 것만”을 사용하며, 구축주의를 이룸.
.구축주의가 건축이나 도시 설계 쪽으로 영역을 넓혀가는데, 회화와 조각이 아닌 새로운 형식을 최초로 창안했으며, 가공하지 않은 원재료 그 자체가 곧 형태가 되는 미술을 추구.
.구축주의는 절대주의와 더불어 완전한 추상에 도달한 첫번째 사례이며, 예술과 예술가를 재정의함으로 이후 미술에 대단한 영향을 미침.
.구축주의는 예술의 근간을 뒤집은 예술로 다다이즘과 아방가르드 예술로 분류된다.
타틀린의 <코너 역부조>. 1915, 역부조란 부조의 반대되는 형태로, 평면을 틀을 깨고 나와 공중에 걸리며, 전통적 부조의 특징인 볼륨이나 부피가 사라지고 재료들만 남았다는 의미는 공감과의 결합을 의미함. 엘 리시츠키 러시아의 절대주의와 구축주의 미술가로, 3 차원적인 공간 구성을 보였고, 이를 건축 디자인에 접목시킴. 유럽 주요 도시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면서 러시아의 선구적 미술을 전파함. 작품으로 <프로운 방>등.
이것은 회화도 조각도 아니다. 모리스와 미니멀리즘
• 1957년 ‘미니멀 아트’라는 이름을 낳은 합동 전시회
로버트 모리스 “이제 예술가는 구성과 제작을 하지 않는다.”
.1968년전 후 스텔라의 비회화적 추상에서 시작, 형태만 비슷한 잡동사니 같은 것이었는데, 이론을 체계적으로 정립한 사람은 도날드 저드와 로버트 모리스이다.
.미니멀리즘의 전략인 ‘해체와 결정’에서 저드와 모리스가 해체하려는 것은 예술가의 생각, 감정, 느낌이 작품에 개입하는 것, 이들 모두를 해체하고,3 차원의 구조물을 만드는 것으로, 하나이자 더 나눌 수 없는 단순한 형태로 작품을 제작.
.두 번째 전략인 ‘결정’은 예술가들은 제작하지 않고 결정한다, 작업자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결정해주면 된다.
.미니멀리즘은 수공예로서의 미술을 산업 생산물로서의 미술로 다시 태어났으며, 회화와 조각의 구분을 의미 없이 만들고, 제작자로서의 예술가 개념도 근본적으로 흔든 결과를 나음.
도날드 저드 미니멀리즘을 정립한 평론가, 예술가, 회화에서 시작해 조형으로, 말년에 거대한 스케일의 작업을 했고, 반복, 나열되는 구조물 형식으로 작업함.
.그의 저서 <특정물체>라는 책으로 자신의 이론을 전개.
로버트 모리스 미니멀리즘의 조각가, 저드와 쌍벽을 이루는 미니멀리즘의 이론가. 그의 책<조각에 대한 노트>에 자신의 이론 전개.
.사물 그 자체의 재연을 거부하고, 물질로 새로운 회화로 개척하고, 액자에서 벗어나 작품자체가 액자가 되는 구조로 입체적 그림이며, 조각에서도 미니멀리즘으로 나아갔다. 그의 작품은 오직 흰색으로만 작업하며, 조각은 좌대를 없앴다. 모리스는 공간의 개념을 시각과 연결하면서 작품은 관람자가 볼 때 완성된다는 뒤샹의 생각을 계승함.
.형태가 단순해질수록 우리의 경험은 더 풍부해진다. 앞 장에서 스텔라는 “당신이 보는 것이 당신이 보는 것이다”고 미니멀리즘을 구호가 됨
세상이 관심을 보여야 예술이다. 클랭과 신사실주의
• 1958년 엄청난 반향을 일으킨 <텅빔> 전시 오프닝
이브클랭, “예술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야 한다.”
이브 클랭,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제대로 보여주기. <텅빔>, <IKB 3>, <인체측정> 등
.150개 전시회 팜플렛 <이브회화>에, 10개의 단색작품 (모노크럼)을 소개하며, 이것이 실제 작품으로 자신이 스스로 작가에 등극. 신사실주의의 창시자로서, 획기적이고 다양한 방식의 전시를 하였음.
그의 작품 <텅빔>, 에콜 데 보자르 옆 갤러리 이리스 클래르
갤러리 입구는 짙은 청색 커튼으로 장식, 문 앞에는 공화국 수비대 두 명이 지키고, 거대한 몸집의 경호원 두 명이 표를 확인, 소방관과 경찰도 대기, 초대장을 받고 입장한 사람들, 입장을 하면 커튼색과 같은 칵테일 한잔이 제공된다. 입구부터 전시장 안까지 발 디딜 틈이 없다. 전시실에 작품이 단 한 장이 없다. 사람들이 전시 제목이 왜 <탕빔>인지 알아 차렸다. 작가로 보이는 사람은 전시를 다 봤으면 빨리 나가달라고 외친다. 갑자기 작가가 뭐라고 외치니 경호원들이 밀치고 들어와 한 남자를 연행해 간다. 이 전시회에 참석했던 알베르 카뮈는 “텅빔과 함께 권력이 가득” 이렇게 간단히 논평함.
.신사실주의는 추상미술의 현실 도피성에 회의를 느껴, 현실 그대로 반영하고 수용하려는 경향의 미술사조로 현대산업, 현실적인 삶의 형태들을 작품속에 도입하여, 미술과 현실 결합을 지향하는 예술활동으로, 실제를 자각할 수 있는 새로운 접근방식으로 현실을 내 것으로 하는 기본적이며, 제시적이고, 기계화되고, 공업화되며, 광고로 넘치는 현대의 자연을 있는 그대로 차용하면 서 제시된사조.
.사실과 거리가 멀어져 가는 현대 미술에 대응하여 사실주의로의 복귀를 주장하는 태도. 기득권화단에 저항하는 예술가들이 많았음.
.이들 작품의 특징은 대중들에게 놀라움을 주며, 대단한 볼거리를 제공함.
.클랭과 동료들은 미술을 새롭게 정의하고, 스페터클을 고심한 이들에 의해 예술은 미디어 이미지로 탈바꿈하는 계기가 됨. 회화나 조각 같은 물리적 작품은 꼭 필요하지 않게 됨.
.다양한 미디어에 어떤 모습으로 노출되는지, 사람들의 관심을 강력하게 이끌어낼 요소가 있는지가 예술 작품을 가치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을 발견하게 됨
아르망 악기를 띁어내고, 잘게 썰어 붙이고, 변형시키며, 자동차를 분해하기도 함, ‘꽉 채움’
장 탱글리 아상 블라주 : 기성제품을 수직하고 집합, 조합의 뜻- 움직이는 조형물-키네틱 작품 ‘MoMA’
세자르 발다치니 < 3톤>, <엄지손가락>
.모든 것을 찌그러 뜨리는 예술가, 작품으로 자동차를 찌그려 직육면체를 만들어 공장에서 나온 물건을 다른 면으로 보는 것<3 톤>. 뒤샹 패러디. 그의 작품 중에 엄지 손가락- 파리 라데팡스에 12m, 아래 사진의 엄지 손가락 조각은 한국 올림픽 조각공원에 전시되어 있음.
.“철의 장막’ 작품으로 베를린 장벽 설치에 항의하는 의미로, 파리의 비스콘티 거리에 240개 드럼통으로 채운 설치 작품과 개선문을 포장하거나, 미국의 계곡을 덮는 작품 등.
흙을 퍼부은 자리에 50년 뒤 찾아가보니, 스미스슨과 대지미술
• 1970년 켄트 주립대학 장작 헛간에 흙을 퍼붓던 순간
로버트 스미스슨,”저 대지가 예술의 장이다.”
.그동안 그림의 배경이기만 했던 자연이 예술 그 자체가 되며, 장소의 제약이 사라지고, 이로 인해 예술가의 상상력에도 그 한계가 없어진다. 대지미술은 궁극적이며, 기존 존재하는 미술에 반발하여, 자연을 소재로 스케일이 크고, 갤러리를 박차고 나왔으며, 아무도 소유할 수 없으며, 투자적 가치도 없는 예술 장르.
로버트 스미스슨, <반쯤 흙으로 덮인 장작 헛간>,1970, <소용돌이 방파제>, 1970 등
.관심을 기울인 주제는 ‘시간과 소멸’이었다. 그의 작품은 시간에 따른 소멸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 구상된 작품으로, 물리학 용어로 ‘엔트로피’로 표현.
.<소용돌이 방파제> 작품은 유타주 솔시티에, 길이 460M 폭 4.6M, 13 톤의 흙과 바위로 방파제를 만든 대공사.
월터 드 마리아, <수직 지구 킬로미터, 1977>, <부러진 킬로미터>, <번개치는 들판>
.대지예술의 선구자로, 미니멀리즘과 개념미술에도 활약, 깊은 성찰을 담은 작품들을 다수
발표, 독일 카셀의 프리드리히 광장에 설치된 <수직 지구 킬로미터, 1977>는 숭고함의 시각화를 보여주며, <부러진 킬로미터>로 수직 지구 킬로미터의 짝으로, 상상만으로 가늠했던 길이를 시각적으로 재현함.
낸사 홀트, <태양터널, 1976>
.미국현대미술가, 공공조각 및 설치 예술가. 스미스슨의 아내이자 동료로 대지 예술 작품 <태양터널, 1976> 유타주 사막에 설치되어 있음.
TV를 끌어안고 연주한 첼리스트 백남준과 비디오아트
• 1971년 샬럿 무어맨과의 <TV 첼로와 비디오테이프를 위한 협주곡 연주>
백남준, “앞으로 브리운관이 캔버스를 대체할 것이다.”
.1970년대 전반부터 성행한 현대 예술의 한 경향으로, 비디오, 텔레비전을 표현 매체로 하는 예술을 말함. 캔버스나 물감대신 모니터와 카메라, 스크린으로 구성되는 비디오 아트는 현대 미술의 중요한 표현 수단으로 되고 있음.
.비디오 아트는 공간과 환경의 구성과도 결부되어 있어, 움직이는 전자회화라고 할 수 있음 . 설치 비디오와 TV들, 컴퓨터 모니터등 모두가 넓은 의미의 조각적 특성이 있으며, 설치 비디오와 TV들은 입체적이며, 볼륨감과, 순간순간 변하는 리얼리티에 진행형의 작품이라 볼 수 있음.
.인터미디어로 사람과 교류하며 새로운 버전을 작품에 표시하며, 전세계와 모든 문화 교류를 시도할 수 있으며, 기존 예술에 도전과 뉴테크놀리지로 TV를 예술에 사용하여 선구적이며 새 형태의 커뮤니케이션 형태.
백남준, <오페라 섹스트로니크>, <TV 첼로와 비디오 테프를 위한 협주곡>, <TV 부처>, <다다익선>, <굿모닝 미스터 오웰> 등 다수가 있으며, 앞장에선 플럭서스 활동에도 참석.
.백남준을 표현한 미국의 미술관장은 “5백 년쯤 시간이 지나 우리 시대 가장 위대한 예술가를 단 한사람 꼽는다면 그는 백남준일 것이다. 르네상스 시대엔 다빈치였던 것처럼.” 이라 말함.
.한국태생의 세계적 비디오 아트 예술가, 작곡가, 전위 예술가이며, 그는 여러가지 먜체로 예술 활동을 함. 특히 비디오 아트라는 새로운 예술의 범주를 발전시켰다는 평가를 받는 예술가로” 로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앞으로 “브라운관이 캔버스를 대체할 것이다.” 예견했으며 그것은 사실이 됨.
.백남준의 개척기 이후 영상매체는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변화, 이에 따라 비디오 아트 역시 컴퓨터 기술의 도움으로 미디어아트로 진화하며 21세기의 주류 미술가로 자리 잡음.
김태진은 아트 인문학을 통해서 말한다. 현대미술은 ‘혁신과 창조’로, 창의성과 상상력을 필요로 하며, 벗어 던진 과거의 틀에서 사고의 도약을 통해 ‘나다움’에 집중하는 것으로 말한다. 그러나 ‘나다움’은 남들이 그 가치를 인정해야 하고, 남들과 다른 차별화를 보여 주어야 한다는 전제가 있다.
아인스타인은 “상상이 지식보다 중요하다. 진정한 예술은 창조적인 예술가의 견딜 수 없는 충동에 의해 탄생한다.” 라고 했다. 예술가의 충동 (창의성)은 기존의 틀을 깨고, 이전에 없던 새로운 방식으로, 대중의 소통과 공감을 이끌어 내며, 예술을 통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이 말은 맞게 보인다. 그러나 19C초-말 사진기가 발명되면서, 화가들도 변화의 필요성을 강하게 느낀다. 그러므로 현대미술은 시대의 변화를 따라야 했고, 평론가, 비지니스를 하는 수집가와 화상들의 필요에 의해 변화되었음도 알게 되었다. 창조적이고, 독창적이어도 예술가의 작품을, 부의 가치로 생각하지 않았다면 과연 이렇게 발달할 수 있을까 질문해 본다. 김태진의 아트 인문학을 읽고, 눈으로 보면서, 새로운 것에 얼마나 더딘 반응을 했는지 알게 되었다. 손톱만 큼이라도 현대미술을 알게 된 것이 기쁘다. 요 만큼이라도 알게 되었으니 그만큼 성장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관심이 생기면서 질문도 많아진다.
이 책을 통해서 미술작품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그림의 내용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내용을 알면 그림을 다 아는 것일까? 미술은 무엇보다 눈으로 보는 것, 그림의 스타일은 어떻게 구분 하는가를 생각하게 되었으며, 작품을 작품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왜 여자 중에는 거장 예술가가 없을까? 여성 작가와 남성 작가의 그림에는 차이가 있는가? 작가의 작품이 달라지는 조건은 무엇일까? 미술작품으로 사회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외설과 예술은 어떻게 다른가?
현대에 예술가를 충분히 이해하는가? 현대 추상예술 특히 신사실주의, 대지예술들은 소멸되므로, 후대에 감상할 수 없어도 예술의 가치를 말할 수 있는가? 예)이브 클랭의 ‘텅빔’ 아르망의 ‘꽉참’, 크리스토퍼와 잔 클로드의 포장 예술, 스미스슨의 소용돌이 방파제 등.
알타미라 동굴벽화는 18,500-14,000년 정도로 추정되는데, 근 현대 인류가 찾은 최초의 가장 오래된 예술품인데, 클랭의 “텅빔”, 스미스슨의 대지미술같이 남아 있지 않은데도 예술이라 할 수 있는가?
5장 결과물로서 작품은 없어도 된다 : 물질 너머로 _ 원명숙
기억나는 갤러리 방문이 3번 있습니다. 한번은 공중에 공룡 비슷한 풍선이 떠 있는 현대미술전 이었던 것 같은데 설명을 요구하니 보이는 대로 느끼라는 말을 듣고는 2-3초 머물며 느껴지는 것은 그저 이해못함 임을 끝으로 15분 만에 걸어 나온 것이 처음이었고 두 번째는 호주인과 같이 갔던 아트 갤러리였습니다. 16, 17년 전인데 지금도 기억에 남는 것은 어느 가로 세로 50센티되어 보이는 그림입니다. 농가를 등지고 서 있는 그의 뒤로 아침의 해가 떠오르고 있는 그림이었습니다. 그 분은 그 아침햇살에 투명하게 옅은 핑크 빛으로 물든 그 남자의 작은 귓볼을 지적하며 흥미롭다고 했습니다. 잘려 나가는 손톱크기만한 귓볼에 그러한 세세한 표현이 가능하다는 사실에 놀랬으며 그후로 사람 얼굴이 있는 그림을 볼 때면 귓불의 색갈이 어떤 지를 먼저 보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3번째가 지난 달에 갔었던 Archibald 2024 였습니다. 조경화님의 설명과 함께 본 그림들은 지금도 몇 개나 기억날 정도로 그림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이런 얄팍한 지식을 가진 제가 현대미술을 논하는 5장을 읽으며 얻은 지식과 생각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뒤상 (샘)
예술 = 착상 + 실행 ( = 작품)
예술 = 착상 ( = 실행 혹은 제작 = 작품)
다행히도 작가는 뒤상의 샘이 여전히 반감을 일으키는 작품이라고 합니다. 미술에 문외한인 저만 그렇게 느끼는 것이 아니라는 것에 조금은 안심했습니다. 뒤상에 의해 미술에 있어서 예술가의 손기술이 배제되었습니다. 그 뒤로 예술가의 아이디어를 물질적인 작품으로 남기는 것이 아닌 그의 착상대로 이루고 사라지는 공연예술 같은 형태로 발전하게 됩니다. 어떤 경우에는 예술가의 착상만 남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한가지 간절한 바램이 있었습니다. 현대미술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는 단서를 얻을 수 있기를 바랬습니다. 3장 앤디 워홀의 이야기에서 실마리를 발견하고 미소를 감추지 못했습니다. 디자이너로 시작한 앤디 워홀은 미학의 지식이 부족하여 뉴먼의 작품 해설을 들어도 이해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한동안 좌절했던 그는 생각을 바꾸게 됩니다. 따라가지 못한다면 내가 잘하는 것으로 승부하겠다. 갈고 닦은 상업미술의 기술들과 대중들이 좋아할 만한 이미지를 찾아내는 능력으로 캠벨 수프 캔을 이용한 작품과 당시의 우상인 마릴린 먼로를 작품에 사용하여 성공합니다. 저의 현대미술에 대한 이해는 이렇습니다. 예술은 사람의 내면과 생각, 감정, 억압, 두려움 등 무의식을 드러내는 도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는 상상할 수 없는 다양한 삶과 경험들이 존재하기에 그것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은 다양한 생각을 다양한 방법으로 그들이 타고나거나 발전시킨 방법으로 표현하고 싶어하고 세상은 그것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기존의 미술을 답습하는 길을 벗어난 작가들은 그들만의 특화된 방법으로 다양한 매개체를 이용하여 생각을 표현하기 시작합니다. 저는 어렵고 난해해 보이는 현대미술을 이러한 이해의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5장에서 소개하는 5명의 예술가 중 첫 번째입니다.
Allan Kaprow (1927-2006)
‘야드’ 1961
카프로는 잭슨 폴록 (1912-1956)의 물감 흘리기 작품을 보고 매료된 사람입니다. 그는 잭슨의 그림보다 그의 물감 흘리는 액션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자기만의 미술에 대한 아이디어를 떠올렸습니다. 오래전에 저도 잭슨 플록의 영화를 보고 어떻게 슬럼프에 빠져 있던 그가 물감 흘리기를 특징으로 하는 그림으로 재조명되는 지를 다루는 영화였는데 한 손엔 술병을 다른 한 손에 물감을 잔뜩 묻힌 붓을 들고 담배를 피우며 바닥의 흰 캔버스를 왔다 갔다 하던 그의 행적에 따라 바닥에 떨어져 있는 물감의 흔적을 보고 영감을 얻어 덧붙여 물감을 흘려 작품을 만들어 사람들로부터 관심을 받는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그때 잭슨과 그의 그림이 실존하는 것인지 몰랐습니다. 몇 년전 우연히 그의 물감 흘리기 작품을 보기 전까지는요.
카프로는 잭슨의 우연한 행동이 예술이되는 것을 보고 다른 걸 들고, 다른 행동을 해도 당연히 예술이 될 거라 생각하게 됩니다. 폴록이 물감을 뿌렸다면 그는 캔버스에 접착제를 잔뜩 바른 뒤 별별 물건들을 던졌으나 생각보다 만족스럽지 않았죠. 그런 뒤 야외에 쌓여 있는 폐타이어로 조각공원에 산더미처럼 쌓는 작업을 하게 되는데 믿기지 않게 여기저기서 전시 요청을 받게 되고 시내 한복판에 있는 갤러리에서도 타이어를 쌓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합니다.
그는 공연예술에 콜라주기법을 확장시켜 해프닝 ‘Happening’ 이라고 불리는 예술운동을 만들게 됩니다. 말 그대로 일어나고 사라지는 예술 공연입니다. ‘유체’ 라는 작품은 얼음 블럭으로 얼음벽을 참여를 원하는 누구나와 함께 쌓습니다. 물론 며칠 후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 ‘달콤한 벽’은 베를린장벽 옆에 시멘트 블록으로 긴 벽을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시멘트 블록을 연결하는 것은 흰 빵과 잼이었습니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이 공연은 벽이 완성된 뒤 카프로와 참여자들에 의해 무너지게 됩니다. 독일의 통일을 본다면 이 해프닝은 의미가 있다는 점에 동의합니다. 남북통일이 된다면 한국의 미술가 중 누군가는 통일을 기념하는 공연을 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개인적으로 했습니다. 어떤 창작품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할지 약간의 호기심도 생겼습니다. 그의 200회가 넘는 해프닝은 물질로서 작품을 남기지 않겠다는 그의 바람에 따라 찍은 사진외에 남아있는 것은 없습니다.
작가가 카프로를 미술사의 빛나는 한순간으로 삼은 이유는 “제작으로서의 미술”이 아닌 “실행으로서의 미술”을 처음으로 정립했다는 점입니다. 카프로에 의해 미술이 드디어 공식적으로 공연의 요소를 자신의 영역 안에 포함시킬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라고 합니다. 카프로의 공헌은 자신의 예술에서 악보나 각본, 연주자, 배우, 관객 등 공연에 필요한 모든 요소를 철저히 배제함으로 음악에도 공연에도 속하지 않는 새로운 예술 영역을 만들어낸 것이라는 점입니다.
Piero Manzoni (1933-1963)
개념미술의 선구자인 페에로 만초니는 예술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던지고 어떤 식으로든 예술가에서 비롯된 것, 즉 예술가의 손길, 지문이나 예술가의 내면의 뭔가가 어떤 사물을 예술로 만드는 것인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는 삶은 계란 70개에 자신의 지문을 찍고 예술가의 지문이 찍힌 것이므로 가치 있는 작품이 된다고 설명하고 보통의 삶은 계란보다 비싼 값에 팝니다. (공기의 몸)
이란 전시에서는 관람객들에게 풍선을 팔면서 자신이 직접 불어 만든 풍선은 예술가가 불어서 만들어주는 것이라며 몇 배의 높은 가격에 팝니다. 사람들은 만초니가 불어 준 풍선을 비싼 값에 삽니다. 급기야 ‘예술가의 똥’ 이라는 작품을 만듭니다. 자신의 똥을 넣어 만든 30그람의 캔을 1그람에 1달러 하는 금값보다 더 비싸게 35달러에 팝니다. 놀랍게도 모두 팔렸습니다. 한 소유자는 1961년에 산 만초니의 캔을 1989년에 열어 봅니다. 캔 안에는 더 작은 캔이 스펀지에 촘촘히 쌓여 들어있었으며 그 소유자는 작은 캔 안에 진짜 똥이 들어 있다고 믿고 더 이상 캔을 열지 않습니다. 계속 열어보지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만초니의 설명을 들은 사람들은 처음에는 그의 작품을 사는 것을 망설이다가 한 사람이 사기 시작하면 너도나도 경쟁하며 작품을 샀다고 합니다. 예술이 예술이 되는 것은 예술가의 무엇 때문이 아니라 철저히 공급과 수요에 의한 공식에 따른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아이돌의 땀을 닦은 손수건이 비싼 값에 팬들 사이에 거래되는 것처럼 예술 또한 그것이 가진 가치에 의해서가 아닌 돈을 기꺼이 지불하고 싶어하는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서 정의되어지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John Baldessari (1931-2020)
‘의뢰받은 그림들’ 1969, ‘리본 커팅, 휠체어에 앉은 남자, 그림들’ 1988
개념미술의 전성기를 연 발데사리는 회화 작업에 큰 회의감을 느낀 후 이사를 앞두고 제작 연도나 주제와 같은 정보만 정리해 둔 작품을 화장장을 빌려 ‘화장 프로젝트’ 라는 이름 짓고 불태워 버립니다. ‘의뢰받은 그림들’ 이란 그의 초창기 대표작은 알 헬드라는 추상표현주의 화가가 “개념미술이요? 요즘 요란하게 그거 한다고 하는 사람들 많던데. 뭐 그냥 손가락으로 가리키기만 하는 사람들이잖아요” 라는 글을 읽고 유머러스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당시 사람들의 개념미술가에 대한 보편적인 생각인 손가락으로 가리키기만 하는 사람이라는 표현을 개념미술로 만든 것입니다. 그는 손가락으로 물건을 가리키고 있는 사진을 여러 장 촬영한 뒤, 여러 화가들에게 똑같이 그려달라고 나누어주고 이를 모아 전시한 것입니다. 이 작품 전시는 개념미술이 단지 말장난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전통 미술과는 접근 방법이 다를 뿐 그 또한 대단히 의미 있는 작업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해낸 것으로 대단한 찬사를 들었다고 합니다. 손가락에 이은 점 시리즈의 작품들은 사진에서 사람의 얼굴 같은 중요한 부분을 색칠한 원이나 사각형으로 일부러 가렸습니다. 이를 통해서 발데사리가 보여주려 한 것은 우리의 보는 습관 입니 다. 우리는 모든 걸 동시에 볼 수 없고 관심가는 부분을 먼저 보게 되는데, 제가 인물화를 볼 때 사람의 귓볼에 먼저 눈이 가듯이 말입니다. 이런 것들을 의도적으로 가리므로 우리 자신의 습관을 돌아보게 만드는 것입니다.
Joseph Beuys (1921-1986)
‘7천 그루의 떡갈나무’ 1982, 현재의 카셀도시
저의 흥미를 가장 많이 끌었던 예술가입니다. 그의 철학적인 생각을 잘 보여주었던 작품 ‘나는 미국을 사랑한다. 미국도 나를 사랑한다’는 그당시 문화적인 교류가 적었던 미국에서 했던 퍼포먼스입니다. 미국공항에 도착하자 마자 펠트 담요에 둘둘 말려 구급차에 태워져 갤러리로 이동합니다. 전시장까지 가는 길에 담요 안에서 아무것도 보지 않았고 미국 땅도 밟지 않았습니다. 갤러리에는 맹수인 코요테와 함께 한 공간에서 지냅니다. 코요테는 처음에는 그를 경계하고 펠트 담요를 찢는 등 날카로운 반응을 보였지만 사흘이 지난 후에는 보이스에게 다가와 기대는 등 친근한 동작을 하기도 합니다. 모든 퍼포먼스가 끝나고 그는 코요테를 한참 동안 가만히 안고 쓰다듬어주고는 전시장에 올 때 그랬듯이 펠트 담요에 싸인 채 구급차에 실려 공항으로 갔고 그렇게 미국을 떠났습니다. 그 어떤 인터뷰도 하지 않고 그 누구와도 만나지 않은 채 오직 미국의 대자연을 상징하는 동물인 코요테와 사흘을 지내고 돌아간 보이스의 퍼포먼스는 미국인들에게 신비로움과 충격을 주었습니다. 저는 이 퍼포먼스가 (나는 미국을 사랑한다. 미국도 나를 사랑한다)의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사려깊게 계획되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상반기의 그가 퍼포먼스로 그의 예술과 사상을 보여주고 호소하였던 반면 후반기에는 사회적 조각이라는 이름아래 세상에 직접 구현하는 일에 힘썼습니다. 그는 “삶은 예술이어야 한다. 모든 사람은 예술가다” 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누구도 이해관계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예술 같은 삶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한 꿈같고 자신의 가치관이나 믿음을 지켜간다는 것은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는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보이스는 그렇게 살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했습니다. 직선제 개헌을 위한 시위현장의 선봉에 섰고 교수로서 잘못된 학생선발 관행에 맞서 자신의 수업을 개방했다가 해임되기도 했습니다. 제자들에게 성실함을 강하게 요구하지만 미술 활동에는 완벽한 자유를 보장해 주었고 생각하는 예술가가 되어야 한다며 사회문제나 철학적 주제에 대해 오랜 시간 토론하는 수업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더해 보이스는 누구나 예술가라고 생각해서 한 사람 한 사람의 생각과 행동이 모여 사회가 만들어지기 때문에 사회는 거대한 예술 작품이며 이를 사회적 조각이라고 불렀습니다. 1982년 카셀에서 5년마다 열리는 세계적인 조각 축제인 카셀 도쿠멘타에 초청된 보이스는 ‘7천 그루의 떡갈나무’ 라는 작품을 제안합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작품입니다. 카셀에는 나치 사령부가 있었기에 2차 세계대전 중 엄청난 폭격으로 폐허가 되었고 그 후 30년간 공업도시로 재건되면서 나무가 거의 없는 삭막한 도시가 되었습니다. 그는 성금과 지원자들을 모은 뒤 비석 모양의 제법 큰 현무암 뒤에 첫 떡갈나무를 심었으며 5년에 걸쳐 7천그루가 모두 심겨지도록 계획했습니다. 처음과 같이 마지막 떡갈나무를 심으려던 계획은 그가 그 전에 사망함으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그의 아들이 마지막 나무를 심었습니다. 사진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카셀에서는 떡갈나무 심기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이제는 온 도시가 푸르른 나무로 뒤덮인 생명력이 용솟음치는 모습이 되었습니다. 독일을 방문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꼭 보이스의 이 작품을 보고싶고 그 김에 도쿠멘타도 관람하고 싶은 바램이 있습니다.
Marina Abramovic (1946 ~ )
‘연인들’ 1988, ‘예술가가 자리에 있다’ 2010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는 지금도 현존하는 행위 예술가입니다. 그녀에게는 같은 행위 예술가 울라이라는 연인이 있었습니다. 어느날 마리나는 울라이와 만리장성에게 결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만리장성 끝에서 서로 걸어와서 만나 결혼식 퍼포먼스를 한다는 계획은 중국이 만리장 성에서 취침과 식사를 금지했기 때문에 이루어지지 못합니다. 5년 후 중국은 허가를 해줍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그 둘의 사랑은 끝나고 헤어짐을 준비하고 있었기에 중간에 만나는 퍼포먼스는 이별식이 됩니다. 1988년 90일간의 2,000킬로미터가 넘는 길을 걸어 드디어 만난 두 사람은 서로를 끌어안고 짧은 이야기를 나눈 후 12년간의 관계를 정리하고 그 후 22년이 지나도록 만나지 않습니다. ‘연인들’ 이라 불리는 이 프로젝트는 중국정부의 만리장성 홍보에 이용되는 등 세계의 주목을 받는 이별 퍼포먼스가 됩니다. 그 뒤 마리나는 승승장구하여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고 전 연인 울라이는 그녀와의 이별 후 슬럼프에 빠져 지내게 됩니다. 2010년 마리나는 뉴욕 현대 미술관에 회고전에서 (예술가가 자리에 있다)는 공연으로 주목을 받습니다. 마리나는 미술관 개장시간부터 폐장시간까지 자리에 눈을 감고 앉아 그녀 맞은편에 앉고 싶어하는 지원자가 오면 눈을 뜨고 그 사람을 말없이 바라보는 퍼포먼스였습니다. 첫 번째 지원자는 22년 전 만리장성에서 헤어진 울라이 였습니다. 너무나 나이가 든 할아버지의 모습으로 마주하게 된 그를 말을 하지 않는 규칙 때문에 단지 손을 잡고 울었다고 합니다. 그때 그녀는 어떤 감정이었을까? 그녀의 눈물의 의미는 무엇일까? 12년간 함께 공연을 하며 사랑했던 남자의 초라한 모습에서 무엇을 생각했는지 궁금합니다. 그녀의 공연은 행위예술이기에 필름으로만 남아 있지만 이 공연 필름을 본 지인은 그녀가 남들과 다른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으며 보통의 사람은 흉내조차 내지 못할 진심으로 온몸을 불사르는 대단한 예술가 같다고 했습니다.
발제 – 1장: 김클라라 / 2장: 김동숙 / 3장: 한명숙 / 4장: 이순희 / 5장: 원명숙 (시드니인문학교실 회원)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