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 말레이시아 방문기 (5)
아시아의 한인디아스포라교회가 사명을 자각하고 건강한 교회로 세워져 하나님나라 확장에 동참을 지향하는 ‘2023 한인디아스포라포럼 in 쿠알라룸푸르 (Korean Diaspora Forum in KL)’가 Korean Diaspora Forum (KDF) 주최로 2023년 2월 14일(화)부터 17일(금)까지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소재의 호텔과 열린연합한인교회에서 “COVID19 이후 디아스포라 한인교회의 방향과 다음세대 교육”이란 주제로 열려 성료했다. 호주 시드니에서 싱가포르 창이 공항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을 거쳐 도착한 현지에서 드는 첫 생각은 매우 습했다는 것이며, 겨울임에도 시드니 여름 이상의 더위로 낮보다 저녁이 더 번화했다. 잠시 머물며 일정을 가졌던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를 생각하며 방문기를 나눈다 _ 편집자 주.
말레이시아 (Malaysia)
말레이시아 (Malaysia)는 말레이반도 남부와 보르네오섬 북부에 걸쳐 있으며, 해안선의 길이가 4,675㎞에 달한다. 영연방의 하나로, 반도의 11개 주는 서말레이시아, 보르네오섬 북부의 2개 주는 동말레이시아라 불린다. 면적은 32만 9847㎢, 인구는 3357만여명 (2021년 현재), 수도는 쿠알라룸푸르 (Kuala Lumpur)이다.
종족구성은 말레이인 58%, 중국인 25%, 인도파키스탄인 7% 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민족은 제각기 전통적 문화·종교·언어·사회관습 등을 고집하고 있다. 공용어는 말레이어이며 영어·중국어·타밀어도 쓰인다. 국교는 이슬람교로 60%를 점유하나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 불교 19%, 기독교 9%, 힌두교 6.3%의 비율을 보인다.
기후는 말레이반도와 보르네오섬 모두 고온다습한 열대성기후이며, 주요 자원은 생산량 세계 1위의 천연고무를 비롯하여 야자유·주석·원목·원유 등이 있고, 이러한 1차산품의 수출이 총 수출의 약 70%를 점하는 전형적 단일재배경제를 이루고 있다. 그 결과 해외시장의 여건변동에 지대한 영향을 받는 취약점이 있고, 주요 기간산업에 있어서 외국자본의 비중이 높다.
정체는 입헌국주제의 의원내각제이며, 의회는 양원제로, 임기 3년의 상원(69석)과 임기 5년의 하원(219석)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요 정당은 국민전선, 민주행동당, 이슬람당 등이다.

– 행정 구역
.반도 말레이시아 (서말레이시아)
조호르 (Johor)
믈라카 (Melaka)
느그리슴빌란 (Negeri Sembilan)
슬랑오르 (Selangor)
페락 (Perak)
페낭 (Pulau Pinang)
크다 (Kedah)
프를리스 (Perlis)
클란탄 (Kelantan)
파항 (Pahang)
트렝가누 (Terengganu)
쿠알라룸푸르 연방 직할구 (Wilayah Persekutuan Kuala Lumpur)
푸트라자야 연방 직할구 (Wilayah Persekutuan Putrajaya)
.동말레이시아
사라왁 (Sarawak)
사바 (Sabah)
라부안 연방 직할구 (Wilayah Persekutuan Labuan)

○ 약사
말레이반도 부분과 싱가포르를 합쳐서 보통 말라야 (Malaya)라고 부르는데 역사적으로 보아 말라야와 보르네오섬의 사라와크주와 사바주 사이에는 관계가 거의 없었다. 말레이반도에 최초로 생긴 왕국은 4, 5세기경에 발흥했던 북부의 란카수카왕국 (말레이인의 불교국)이고, 9세기가 되면서 수마트라의 스리비자야왕국 (불교국)이 반도 전역을 지배하였다.
또 13세기에는 수마트라에서 건너 온 말레이인의 일족이 싱가포르에 투마세크왕국을 건설하였고, 14세기에는 사바의 마자파히트왕국 (힌두교)이 말라야 전체를 지배하였다. 이 무렵 아랍 상인에 의하여 이슬람교가 전해지고, 1405년 투마세크왕국의 후예가 세운 말라카왕국은 말라야의 여러 토후국 외에 말라카해협을 넘어 수마트라의 동부까지도 지배하였다.
그러나 1511년 포르투갈인의 침공으로 말라카왕국이 멸망하고, 이후 1641년 네덜란드의 말라카 점령을 거쳐, 1786년 영국의 페낭 점령에 이르고, 드디어 영국의 주도권이 확립되었다. 영국은 20세기 초까지 말라야의 여러 토후국과 전략상의 요충을 모두 지배, 식민지경영을 진척시켰다. 중국인·인도인 노동자를 끌어들여 행한 고무·주석 산업의 개발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태평양전쟁 때에는 일본에 점령되어 (1942∼1945), 중국인을 중심으로 많은 주민이 살해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다시 영국의 보호하에 들어갔으나, 1957년 8월 31일 싱가포르를 제외한 11주가 통합되어 말라야연방으로 독립을 이루었다. 1963년 9월에는 헌법을 제정하고, 싱가포르 · 사바 · 사라와크를 합쳐서 말레이시아가 성립되었으나, 2년 뒤 싱가포르가 탈퇴 (축출), 독립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사바와 사라와크는 15세기경부터 브루나이왕국의 일부였는데 사바는 18세기 초에 술루 (필리핀)의 술탄 (Sultan)에게 할양된 후, 18세기 후반에 영국의 북부보르네오특허회사의 소유지가 되었다. 사라와크는 19세기 중엽부터 60년에 걸쳐 영국인 브루크가 브루나이의 술탄에게서 할양받은 지역 (브루크왕국)이었다. 사바와 사라와크는 모두 1942년부터 3년간 일본에 점령당하였고, 종전 후 1946년부터 영국의 직할식민지가 되고 1963년에는 말레이시아연방에 가맹하였다.
대외적으로는 우경중립의 입장을 취하고 있으며, 1957년 유엔에, 1970년에 비동맹회의에 가입하였다. 1970년 9월의 비동맹수뇌회의에서는 동남아중립화안을 제의한 바 있다. 복잡한 민족 구성과 이에 따르는 민족 사이의 경제활동 차이는 오늘날 말레이시아 국내의 정치·경제·사회 등 모든 면에서 중대한 문제를 야기하고 있으며, 거의 모든 정당이 민족적 기반위에 설립되고 제각기 자기민족의 이익옹호를 기치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효과가 없는 것이 많았다. 반면에 외국자본과 결탁한 화교 자본은 두드러지게 발전하였다. 이러한 사태는 말레이인의 불만을 제고하여, 1969년 5월에는 대대적인 반 (反) 화교폭동이 발생하였다. 외교정책에 있어서 이 나라는 비동맹·중립외교노선을 견지하고 있으며, 동남아국가연합 (ASEAN)을 중심으로 한 지역협력강화 및 이슬람제국과의 유대강화를 기조로 삼고 있다. 또한 공산제국과의 우호관계 유지에도 노력하고 있다.

○ 프랜시스 라이트 제독, 말레이시아 페낭에 영국 식민지 건설
1786년 영국 동인도 회사가 페낭의 주도 조지타운에 기지를 설치하면서 신설되었으며 영국의 식민지였던 해협 식민지의 중심 도시로 성장했다.
해협 식민지 (Straits Settlements)는 동남아시아의 말레이 반도 및 부속도서에 위치하던 대영제국의 식민지였다. 1826년 동남아시아 지역에 있던 영국의 4개 식민지, 페낭, 싱가포르, 말라카, 딘딩을 합하여 구성했으며 1886년에는 크리스마스섬과 코코스 제도도 포함하게 되었다.
1786년 8월 11일, 프랜시스 라이트 제독이 말레이시아 페낭에 영국 식민지 건설을 시작했다. 페낭 (Penang)은 해협 지역의 첫 영국 식민지로서 1786년에 점령된 페낭섬에서 시작하여 이후 1800년대초부터 가까운 본토 지역 (세베랑 페라이)까지 영토를 확장하기 시작하였다. 본토 지역 (세베랑 페라이)은 당시 웰즐리 주(Province Wellesley)로 명명되었고 크다의 술탄에게서 지배권을 할양받았다.
말레이시아 피낭주 (말: Pulau Pinang) 또는 페낭주 (Penang)는 말레이시아를 구성하는 13개의 주 가운데 하나로, 프를리스주 다음으로 말레이시아에서 두 번째로 면적이 작은 주이며 말레이시아에서 여덟 번째로 인구가 많은 주이다. 주도는 조지타운이며 인구는 1,520,143명(2010년 기준), 면적은 1,048km2, 인구밀도는 1,450.5명/km2이다.
주도 조지타운 (George Town, 喬治市)은 말레이시아 풀라우피낭 주의 주도로 면적은 약 150km2, 인구는 157,743명 (2010년 기준)이다. 도시 이름은 영국의 조지 3세 국왕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1786년 영국 동인도 회사가 이 곳에 기지를 설치하면서 신설되었으며 영국의 식민지였던 해협 식민지의 중심 도시로 성장했다. 2008년 7월 8일 믈라카와 함께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유산으로 선정되었다. 페낭 항의 돌제부두 하나가 이곳에 있다.

- 해협식민지 (Straits Settlements)
해협 식민지 (Straits Settlements)는 동남아시아의 말레이 반도 및 부속도서에 위치하던 대영제국의 식민지였다. 1826년 동남아시아 지역에 있던 영국의 4개 식민지, 페낭, 싱가포르, 말라카, 딘딩을 합하여 구성했으며 1886년에는 크리스마스섬과 코코스 제도도 포함하게 되었다.
1826년에 말레이 지역의 4개 식민지를 합하여 공식적으로 성립한 뒤 영국 동인도 회사가 관리하기 시작했고 1858년 인도 제국의 관할 하에 들어갔다가 1867년 4월부터는 왕령식민지로서 영국의 직할 하에 두어지게 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일본 제국의 침공을 받아 1942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의 점령 하에 놓여 있었다. 전후 1946년 싱가포르를 시작으로 각 지역이 별도의 식민지로 분리되거나 말라야 연합에 흡수되면서 해협식민지는 해체되었다.
- 정착지들
.페낭
페낭(Penang)은 해협 지역의 첫 영국 식민지로서 1786년에 점령된 페낭섬에서 시작하여 이후 1800년대초부터 가까운 본토 지역(세베랑 페라이)까지 영토를 확장하기 시작하였다. 본토 지역(세베랑 페라이)은 당시 웰즐리 주(Province Wellesley)로 명명되었고 크다의 술탄에게서 지배권을 할양받았다.
.싱가포르
1819년부터 싱가포르가 스탬퍼드 래플스 등의 주도로 무역에 있어서 영국의 주요한 거점지역으로 변하기 시작하며 빠르게 개발이 이루어졌다.
.말라카
페낭, 싱가포르 등의 점령 이후 영국이 말레이 지역에서 큰 영향력을 확보하게 되었고, 이에 네덜란드는 1924년 런던 협약을 맺어 동인도 일부 지역을 할양받는 대가로 싱가포르와 말라카 지역의 지배권을 완전히 넘겨주게 되었다.
.딘딩
1874년에는 협약을 통해 페락의 술탄이 딘딩(Dinding) 지역을 영국에게 할양하였다. 다만 딘딩 지역은 얻을 수 있는 자원이 부족한 것으로 밝혀지고 다른 정착지들에 비해 적극적인 개발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 정치
말레이시아는 연방제 국가이며, 선거군주제를 기반으로 한 나라다. 현재 말레이시아의 정치 체제는 웨스트민스터 체제와 유사한데, 이는 영국 식민지의 유산이다. 국가 원수는 양디퍼르투안 아공인데, 흔히 왕으로 부른다. 왕의 임기는 5년이며, 피낭, 믈라카, 사바, 사라왁을 제외한 9개 각 주의 술탄 (Sultan) 중에서 교대로 선출된다. 현재의 왕은 2019년에 선출된 파항주의 압둘라이다. 왕은 총리와 내각을 임명할 권리와 군대 최고 사령관으로서의 통솔권 등을 갖는다. 1994년 헌법 개정 이후 왕은 대개 의례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현재 파항의 압둘라 국왕이 2019년 1월 31일 취임하여 국가를 대표하고 있으며, 실권자 안와르 빈 이브라힘 총리가 2022년 11월 24일 취임해 내각을 이끌고 있다.
2009년 4월 취임해 내각을 이끈 나집 (Najib) 전 총리는 제2대 총리 압둘 라작의 아들이며, 유력 정치 가문 출신으로 주목받았다. 취임 후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를 부분적으로 수용했는데, 예를 들어 말레이인들을 지나치게 우대했던 부미푸트라 정책의 완화를 추진해 외국인들에게 지나쳤던 차별을 대폭으로 완화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본 정책에는 손을 대지 않았으며, 종종 민주화 시위에 직면해오고 있다. 부정 선거 관행을 고치고 있지 않아, 2013년 총선에서 야권이 더 많은 지지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부정선거와 게리맨더링으로 UMNO의 재집권을 이끌었다. 한편 완화를 추진하던 부미푸트라 정책을 다시 강화해 더 강력한 인종차별과 이민제한을 추진하고 있으며, ‘악법’으로 꼽혀온 국가보안법을 폐지한 대신 새로운 법안을 추진하고 있으며, 선동처벌법 강화 등 민주주의를 억누르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야권에 대한 탄압을 강화하고 있으며, 최근 그는 말레이시아를 UMNO의 일당독재체제로 전환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어 비판을 받았다.
2015년 국영기업 1MDB와 연계된 부패 스캔들을 계기로 야권 인사들과 국민들의 큰 저항에 맞부딪치며, 8월부터 9월에 이르기까지 민주화 운동 단체 버르시 4.0 등의 시위 등, 나집 정부는 붕괴의 조짐을 보였다. 여기에 마하티르 전 총리가 동참하는 등 상황은 심각해졌다. 7월 1MDB 스캔들에 관해 해명을 요구한 관계로, 무히딘 야신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및 압둘 가니 파타일 검찰총장 등 일부 공무원들이 경질되기도 했다.
2018년 총선에서 패배하여 마하티르 빈 모하마드 7대 총리 취임으로 자리에서 물러나자마자 조세포탈 및 세금 탈세와 사기 혐의로 고소 당하여 명품가방과 자녀 가재도구 유체동산 등 가압류 가집행 처분을 받게 되어 경찰의 수사를 받은뒤 2020년 7월 28일에 말레이시아 고등법원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이어 2020년 2월 29일에 말레이시아의 양 디페르투안 아공에 의해 무히딘 야신이 8대 총리로 임명되었다. 2020년 2월 24일에 마하티르 빈 모하맛의 예기치 못한 사임 후 2020년 3월 1일에 선서했다. 야신은 2021년 8월 21일까지 총리를 역임했다.
9대 총리로 이스마일 사브리 야콥 (Dato’ Sri Ismail Sabri bin Yaakob, 1960년 1월 18일 ~ )이 2021년 8월 21일부터 2022년 11월 24일까지 역임했다. 그는 말레이시아의 정치인으로, 당적은 통일말레이국민조직 (UMNO)이다.
10대 총리는 안와르 빈 이브라힘 (Anwar bin Ibrahim, 1947년 8월 10일 ~ )으로 2022년 11월 24일부터 현직 총리이다. 당적은 인민정의당 (PKR)이다. 한때는 이슬람 운동가였으나 1982년 당시 총리 마하티르 빈 모하마드의 권유를 받고 여당인 통일말레이국민조직 (UMNO)에 입당하였다. 1993년 미국의 부통령에 해당되는 부총리직에 오르면서 권력 2인자이자 후계자로 등장하지만 5년만에 실각하여 야당인사로 변신하였다가, 제15대 말레이시아 총선거에서 그가 이끄는 야권연합인 희망동맹을 제1당으로 만든 후 국왕에 의해 제10대 총리로 지명되었다.
– 역대 총리 (대수, 이름, 임기)
1대: 툰쿠 압둘 라만 (1957.8.31 ~ 1970.9.22, UMNO)
2대: 압둘 라작 (1970.9.22 ~ 1976.1.14, UMNO)
3대: 후세인 온 (1976.1.14 ~ 1981.7.16, UMNO)
4대: 마하티르 빈 모하마드 (1981.7.16 ~ 2003.10.31, UMNO)
5대: 압둘라 아마드 바다위 (2003.10.31 ~ 2009.4.3, UMNO)
6대: 나집 라작 (2009.4.3 ~ 2018.5.10, UMNO)
7대: 마하티르 빈 모하마드 (2018.5.10~2020.2.24, PPBM)
8대: 무히딘 야신 (2020.3.1~2021.8.16, PN)
9대: 이스마일 사브리 야콥 (2021.8.21~2022.11.24, UMNO)
10대: 안와르 빈 이브라힘 (2022.11.24~, PKR)

○ 말레이시아 국왕
말레이시아는 9개 주의 술탄이 5년씩 돌아가면서 국왕을 겸한다. ‘양 디페르투안 아공’은 말레이시아의 군주다. 양 디페르투안 아공 (Yang di-Pertuan Agong)은 말레이어로 ‘주인이신 분’이라는 뜻이다. 영어로도 이 칭호를 번역하지 않고 그대로 쓴다. 말레이시아 화교들이 쓰는 중국어로는 ‘최고원수’ (最高元首)라고 한다. 한국에서는 편의상 언론 등에서 주로 “말레이시아 국왕”으로 칭해진다.
양 디페르투안 아공이라는 직책은 말레이시아가 독립한 1957년에 생겼다. 원래 말레이시아는 하나의 통합된 나라를 이루지 않고, 십여개의 나라들로 나누어져 있었다. 영국은 이들 국가를 보호국으로 만들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식으로 간접통치했다. 이 보호국들이 독립하는 과정에서 연방제를 채택, 하나의 나라로 독립한 것이 현재의 말레이시아이다.
독립한 말레이시아는 영국을 모델로 한 입헌군주제를 채택했으며, 이에 따라 양 디페르투안 아공 (Yang di-Pertuan Agong)이라는 직책을 만들고 그를 국가원수로 삼았다.
양 디페르투안 아공은 임기가 정해진 선출직인데, 스스로의 군주가 있는 9개 주의 군주들이 통치자회의 (Majlis Raja-Raja/Conference of Rulers)를 열어 자신들끼리 선출한다. 임기는 5년이며 연임은 불가능하고 중임은 가능하다. 이렇게 정해져 있기는 하나 실제로는 암묵적으로 순번이 있어 돌아가면서 한다.
왕의 임기가 5년인 데 반해 각 주의 군주는 죽을 때까지 할 수 있어 한 번 왕을 했다가 다시 순번이 돌아와 왕을 한 압둘 할림의 사례도 있다.
선거를 치러 국왕이 선출되더라도 자신의 지역의 군주 직책에서 퇴위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둘을 겸임하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실제로는 자신의 친척을 섭정으로 임명해 지역 군주로서의 권한을 대리하도록 한다.
부국왕 (Timbalan Yang di-Pertuan Agong)이라는 직책도 존재하며 마찬가지로 9명의 지방 군주들 중에 선출한다. 국왕 공석시에 새 국왕이 선출될 때까지 권한을 대행한다.
국왕은 명목상으로는 총리와 장관을 임명하고, 의회에서 통과된 법에 대한 재가 권한이나 말레이시아군 통수권, 연방대법원 판사 임명권, 상원의원 임명권, 지역 군주가 없는 사라왁과 사바, 페낭, 믈라카의 수장 (Yang di-pertuan Negeri / Governor) 임명권이 있으나 이런 권한은 총리와 내각의 권고에 따라서만 행사된다. 1994년 개헌 이후 국왕의 권한은 더 축소되었다.
2016년 12월 13일 왕위에 오른 무하맛 5세 (Muhammad V) 국왕은 클란탄 (Kelantan) 주 술탄인데, 2010년 아버지 투앙쿠 셰드 프트라로부터 왕위를 물려받았다. 현재 프트라는 살아있지만 조기에 양도한 이유는 건강 문제 때문이라고. 2019년 1월 4일, 무하맛 5세의 조기 퇴위설이 퍼지자 정부는 이를 헛소문이라며 부정했으나 불과 이틀 후인 1월 6일에 국왕이 전격적으로 퇴위하면서 왕위가 공석이 되었다. 이후 부국왕 권한대행 체제가 이어지다가 각 주의 술탄들이 모여 회의를 거듭하고 투표한 결과 1월 24일 파항 주 술탄 파항의 압둘라가 새 국왕으로 선출되었다. 추가로 부국왕도 페락 주 술탄으로 새로 뽑았다.
현 국왕은 파항의 압둘라 (Yang di-Pertuan Agong) 국왕으로 2019년 1월 31일 즉위했다.
– 국왕 목록 (대수, 이름, 지역, 임기, 비고)
1대: 투앙쿠 압둘 라만, 느그리슴빌란의 얌투안, 1957년 8월 31일 ~ 1960년 4월 1일, 재위 중 사망
2대: 히사무딘 알람 샤, 슬랑오르의 술탄, 1960년 4월 14일 ~ 1960년 9월 1일, 재위 중 사망
3대: 투앙쿠 셰드 푸트라, 프를리스의 라자, 1960년 9월 21일 ~ 1965년 9월 20일
4대: 이스마일 나시루딘, 트렝가누의 술탄, 1965년 9월 21일 ~ 1970년 9월 20일
5대: 압둘 할림, 크다의 술탄, 1970년 9월 21일 ~ 1975년 9월 20일
6대: 아흐야 프트라, 클란탄의 술탄, 1975년 9월 21일 ~ 1979년 3월 29일, 재위 중 사망
7대: 아흐맛 샤, 파항의 술탄, 1979년 4월 26일 ~ 1984년 4월 25일
8대: 이스칸다르, 조호르의 술탄, 1984년 4월 26일 ~ 1989년 4월 25일
9대: 아즐란 무히부딘 샤, 페락의 술탄, 1989년 4월 26일 ~ 1994년 4월 25일
10대: 투앙쿠 자파르, 느그리슴빌란의 얌투안, 1994년 4월 26일 ~ 1999년 4월 25일
11대: 살라후딘 압둘 아지즈 샤, 슬랑오르의 술탄, 1999년 4월 26일 ~ 2001년 11월 21일, 재위 중 사망
12대: 투앙쿠 셰드 시라주딘, 프를리스의 라자, 2001년 12월 13일 ~ 2006년 12월 12일
13대: 미잔 자이날 아비딘, 트렝가누의 술탄, 2006년 12월 13일 ~ 2011년 12월 12일
14대: 압둘 할림, 크다의 술탄, 2011년 12월 13일 ~ 2016년 12월 12일
15대: 무하맛 5세, 클란탄의 술탄, 2016년 12월 13일 ~ 2019년 1월 6일, 중도 퇴위
16대: 파항의 압둘라, 파항의 술탄, 2019년 1월 31일 ~ 재위 중

○ 종교
말레이시아 헌법에는 이슬람교를 국교로 하지만,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2010년 인구 주택 총 조사에 따르면, 민족과 종교가 꽤나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보여준다. 인구의 61.3%가 이슬람교를 믿으며, 19.8%가 불교, 9.2%가 기독교, 6.3%가 힌두교, 1.3%가 유교, 도교 등의 전통 중국 종교를 믿는다. 0.7%가 무교이며, 1.4%가 다른 종교를 믿거나 자신의 종교에 대해 밝히지 않았다. 수니파와 샤피파가 말레이시아 이슬람의 지배적인 세력이다.
말레이시아 헌법은 “말레이인”을 엄격하게 정의하고 있는데, 주로 무슬림이나, 말레이어를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사람이나, 말레이 문화를 따르거나, 브루나이, 말레이시아, 싱가포르에 살거나 그쪽의 후손인 사람들을 말레이인으로 보고 있다. 2010년 통계에 따르면 중국인의 83.6%가 불교도이고, 3.4%가 도교도, 11.1%가 기독교도이며, 풀라우피낭 주에는 휘무슬림(Hui-Muslim)이라고 불리는 중국계 이슬람교도가 소수 존재한다. 인도인의 86.2%가 힌두교도이며 6.0%는 기독교도, 4.1%는 무슬림이다. 비말레이계 부미푸트라 사이에서는 기독교도가 46.5%로 매우 두드러졌으며, 40.4%는 이슬람교를 믿는다.
무슬림들은 종교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의무적으로 샤리아 법원에 문제를 맡겨야 한다. 이슬람 판사들은 말레이시아의 주요 마다브인 샤피이슬람법학교의 규율을 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샤리아 법원의 사법권은 무슬림들의 결혼, 상속, 이혼, 배교, 개종, 양육권 등의 문제에 제한되어 있다. 기타 범죄 또는 민사위반죄 등의 사법권은 없으며, 이는 시민재판소에도 없다. 대법원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시민 법원은 종교적 문제에 대해 다루지 않는다.
무슬림들은 사회적으로 우대받으며, 같은 부미푸트라라도 무슬림 부미푸트라가 비무슬림 부미푸트라보다 더 많은 혜택을 받는다. 예를 들어, 공립 대학교에 입학할 때 무슬림들은 가산점을 받아, 성적이 비록 낮게 나오더라도 입학하거나, 시험에서 쉽게 합격할 수 있다. 문제는 이들보다 성적이 높게 나온 비무슬림들이 시험이나 입학 과정에서 탈락하여, 무슬림 혜택은 종종 종교차별이라고 비판받는다. 또한 비무슬림이 무슬림들의 비위에 거슬리는 행동을 했다고 판단되거나, 무슬림처럼 행동하는 행위(예: 꾸란이나 샤하다가 적힌 옷을 입는 것, 무슬림들에게 무슬림식 인사를 하는 것, 무슬림들에게만 허락된 행위를 하는 것)는 무슬림들의 감정을 상하게 했다고 판단하여 처벌을 받을 수 있으며, 실제로 대한민국의 가수 그룹 B1A4는 무슬림들의 허락을 받고 그들과 같이 퍼포먼스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해를 받아 처벌을 받을 뻔한 적도 있었다. 또한 무슬림들을 상대로 한 선교활동은 금물이다. 그러나 아랍 국가들에 비하면 훨씬 온건한 편이며, 오히려 이슬람 과격주의, 원리주의, 테러주의 따위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이슬람을 위한 모스크, 불교 신도를 위한 사찰, 힌두교의 힌두 사원, 그리고 교회와 성당까지 쉽게 찾아볼 수 있음은 물론 각 종교의 축제마다 타종교인들은 물론 관광객들도 함께 초대하여 즐기는 ‘오픈 하우스 (Open House)’라는 행사를 개최한다. 종교 관련 축제 시기에 말레이시아를 방문하는 여행객들은 말레이시아 특유의 성숙된 관용의 문화를 실제로 관찰할 수 있다.
그러나 이슬람교도들은 돼지고기와 술을 먹지 않지만 라마단 기간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
참고 = 위키백과, 나무위키

임운규 목사 (호주성산공동체교회 시무, 본지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