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오늘
1512년 11월 1일,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가 시스티나 성당 천장의 프레스코 완성
1512년 11월 1일,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Michelangelo Buonarroti)는 1512년 11월 1일에 시스티나 성당 천장의 프레스코를 완성했다.
시스티나 성당 (라: Aedicula Sixtina)은 바티칸 시국에 있는 교황의 관저인 사도 궁전 안에 있는 성당이다. 건축 양식이 타나크에 나오는 솔로몬의 성전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전하며,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산드로 보티첼리 등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가들이 그린 프레스코 벽화가 구석구석에 그려져 있다.
그 가운데서도 미켈란젤로는 교황 율리오 2세의 후원을 받으면서 1508년에서부터 1512년 사이에 성당의 천장에 12,000점의 그림을 그렸다.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Michelangelo Buonarroti)의 본명은 ‘미켈란젤로 디 로도비코 부오나로티 시모니’ (이: Michelangelo di Lodovico Buonarroti Simoni, 1475년 3월 6일 ~ 1564년 2월 18일)로 르네상스시대 이탈리아의 대표적 조각가, 건축가, 화가, 그리고 시인이었다.
미켈란젤로는 유년 시절부터 조토와 마사치오의 작품들을 습작하며 그림에 많은 관심을 쏟아 집안에서 자주 꾸중을 들었다. 하지만 소년 미켈란젤로의 재능을 알아본 메디치 가에서 아버지를 설득한 덕분에 미켈란젤로는 미술공부를 할 수 있었다. 그가 13세 때 화가 도메니코에게서 배웠다.
○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Michelangelo Buonarroti)의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 – 프레스코, 40.5x14m, 1508~1512년,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 소장
로렌초 메디치는 엄청난 재력가로 유럽역사에서 많은 예술가들을 지원했다. 미켈란젤로도 이중에 한명으로 메디치에게 많은 지원을 받았다.
1501년 피렌체로 돌아와, 시청의 위탁으로 다비드를 3년에 걸쳐 완성하였다. 계속하여 원형 부조인 성 모자를 만들고, 원형화 성 가족을 그렸다. 1504년 피렌체 시청의 위촉으로 대회장의 벽화 카시나 수중 접전도를 그리게 되었는데, 맞은편 벽에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앙기아리 기마 접전도를 그렸으므로 경쟁을 하게 되었다.
1505년에 미켈란젤로는 새로 임명된 교황 율리오 2세의 초대로 로마로 들어왔다. 그는 교황의 묘를 짓는 일에 위촉되었고, 그 작업에는 40개의 조각과 4년 정도 걸리는 공사였다. 교황의 후원받긴 했지만, 미켈란젤로는 수많은 다른 작업으로 무덤을 완공하는데 끊임없는 방해를 받았다.
40년 동안 묘 짓는 작업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만족스럽게 끝내지 못했다. 묘는 로마에 있는 산 피에트로 인 빈콜리 성당에 위치하며 중앙에 놓인 1516년에 완공한 ‘모세’ 동상으로 가장 유명하다. 묘를 위해 만든 조각상 중에서, ‘반항하는 노예’와 ‘죽어가는 노예’로 알려진 2개의 조각은 루브르 박물관에 현재 보관되고 있다.
1508년 바티칸 사도 궁전의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를 위촉받고 허리가 꺾이는 듯한 고통에도 4년 만에 완성하였다.
1520년 메디치가 성당의 묘비를 10년에 걸쳐 조각하는 한편, 산 로렌초 성당 부속 도서관 입구를 건축하였으며, 1529년 독일 카를 5세 군의 피렌체 포위 때 방위 위원으로 뽑혀 성을 쌓았다.
후에 메디치 가의 폭군 알레산드로와 사이가 나빠져, 1534년 고향인 피렌체를 영원히 떠났다. 로마로 옮긴 그는 새로운 교황 바오로 3세로부터 시스티나 경당의 정면 대벽화를 위촉받고, 노령으로 발판 위에서 떨어져 가면서까지 혼자 꾸준히 그려 6년에 걸쳐 ‘최후의 심판’을 완성하였다.
1550년 바티칸 바오로 경당의 벽화 바오로의 회심과 십자가의 베드로를 완성하였다. 미켈란젤로는 이탈리아 여러 지역에 주거하면서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주문을 받는 고급화가였다.
또한 성 베드로 대성전의 돔, 성 베드로 대성전의 피에타, 팔레스티나의 피에타, 론다니니의 피에타 등 세 조상을 미완성으로 남긴 채 89세를 일기로, 외롭고 괴로운 긴 생애를 로마에서 마쳤다.
그의 예술은 인생의 고뇌, 사회의 부정과 대결한 분노, 신앙을 미적으로 잘 조화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벽화는 유명한데 미켈란젤로가 4년에 걸쳐 작업한 것으로 (1508-12) 콘디비 설명에 의하면, 브라만테가 산피에트로 대성당을 작업하고 있었는데, 미켈란젤로가 교황의 묘 공사에 위촉되었다는 사실에 분개하다가 교황을 설득해서 미켈란젤로가 실패하도록 그에게 생소한 과제를 주었다고 한다.
1508년 교황 율리오 2세는 미켈란젤로에게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을 그림으로 장식할 것을 명한다. 미켈란젤로는 4년 동안 발판 위에 누워서 작업을 하는 경직된 자세로 일해야 하였고, 이로 인해 관절염과 근육 경련을 얻었다.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감안료로 인해 눈병도 생겼다.
1512년 11월 1일, 마침내 작품을 완성하였다. 교회를 화려하게 수놓은 천정벽화에는 복음서에서 언급한 그리스도의 선조로 시작하여 천지창조 이야기 등 구약 성서의 네 가지 사건이 그려져 있다.
미켈란젤로는 원래 천장을 지탱해주는 삼각 궁륭에 열두 제자를 그리고 천장 중앙에 장식으로 처리하라는 위촉을 받았다.
미켈란젤로는 율리오를 설득해 재량권을 얻고, 천지창조 / 인류의 타락 / 예언자를 통한 구원의 약속 / 그리스도의 계보 등 다양한 그리고 더 정교한 작품을 제시했다. 이 작업은 가톨릭 성당의 대부분의 교리를 표현하는 그림의 일부이다.
작품은 500 평방미터의 천장전체를 아우르며, 300명 이상의 인물을 포함하고 있다. 천장 한가운데는 창세기에 나오는 9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어있고, 3개의 부분으로 나뉜다: 하나님의 지구창조; 하나님의 인간창조와 하나님 은혜 밖으로 추락한 인간, 마지막으로 노아와 그의 가족이 보여주는 인간의 상태. 천장을 지탱하는 삼각 궁륭에는 예수님의 오심을 예언하는 12명의 인간이 그려져있다; 이스라엘 예언자 7명과 고전세계에 나오는 5명의 무녀. 천정벽화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은 아담의 창조, 에덴동산의 아담과 이브, 노아의 홍수, 예언자 예레미아, 그리고 쿠메의 시뷜라이다.
특히 미켈란젤로의 ‘아담의 창조’ 이 작품은 예배당 입구에서 출발하여 구약 이야기가 전개되는 중간 지점에 그려져 있는데, 이는 인간과 신이 함께 표현되는 양식을 과감히 창조적으로 표현하면서, 자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만든 하나님의 창조적 힘과 인간이 만들어지는 감동적인 순간을 뛰어나게 형상화시킨 작품이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