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오늘
1620년 12월 21일, 필그림 파더스 (Pilgrim Fathers)가 플리머스 바위에 상륙
‘필그림 파더스’ (Pilgrim Fathers) 또는 ‘필그림스’ (Pilgrims)는 1620년 9월 16일 출항, 미국으로 건너가 플리머스 식민지에 초기에 정착한 영국의 분리주의자들이다. 그들을 이끄는 이들은 영국 성공회를 반대하는 비국교도이며, 잉글랜드에서 네덜란드를 거쳐 미국으로 건너가게 된다.
1620년 11월 9일 육지가 보였다. 약 65일 동안 열악한 환경을 인내해온 승객들은 윌리엄 브루스터의 주도로 감사의 기도로서 ‘찬송가 100장’을 불렀다. 그것은 뉴잉글랜드 영토 내 웨스튼이 추천한 케이프코드로 확정되었다. 허드슨 강을 향해 곶 주변에 배를 항해하려는 시도를 했다. 그것도 뉴잉글랜드의 허락받은 지역 내였지만, 모래톱이 있었고, 말라바 (오늘 날의 모노모이 근처의 땅) 주변의 험한 해류를 마주치게 되었다. 결국 우회하기로 하고, 11월 21일(율리우스력 11월 11일)경에 그 배는 오늘 날의 프라빈스타운 항으로 알려진 곳에 닻을 내렸다. 하지만 그 지역의 소형 탐사 배 해체로 인해 2주 이상 상륙이 지연되었다. 12월 경에는 선원과 승무원 모두 병이 들어 심하게 기침을 했다. 많은 이들이 괴혈병의 영향으로 고통받고 있었다. 이미 얼음과 눈이 쌓여 탐사를 방해하고 있었다. 그렇게 첫 겨울에 그들 중 절반이 사망을 했다.
서쪽으로 계속 탐사를 하다가 작은 배의 돛과 키가 폭풍에 파손되고, 선원이 실종되었다. 안전하게 배를 저어 가다가 현재의 덕스베리와 플리머스 절벽 해안에 의해 형성된 항구를 찾아 어둠 속에서 상륙을 하게 된다. 그들은 이곳(클락스 아일랜드)에 회복과 장비수선을 위해 이틀을 머물렀다.
탐사는 1620년 12월 21일 월요일에 재개되었으며, 탐사대는 본토를 가로 질러 결국 정착지가 될 곳을 조사하게 된다. 메사추세츠에서는 이 탐사기념일을 ‘선조의 날’ (Forefathers’ Day)로 지정하여 기념하고 있으며, 전통적으로 ‘플리머스 바위’ (Plymouth Rock) 상륙의 전설과 관련되어 있다.
플리머스 바위 (Plymouth Rock)는 필그림 파더스가 1620년 12월 21일에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플리머스 (현재의 매사추세츠주 동해안)에 상륙했을 때, 최초로 밟았다고 전해지는 바위이다. 미합중국에 대한 저서로 잘 알려진 알렉시 드 토크빌도 이 바위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1741년 장로 토마스 혼스라는 노인은 “플리머스 락”이 순례자가 가장 먼저 디딘 바위라고 증언했다. 당시 94세였던 그는 플리머스 식민지의 초기 세대의 사람이었던 것과 주변에 그런 바위가 많지 않았던 이유로 그의 증언은 상당히 높은 신뢰성을 가지고 있었다.
미국 독립 전쟁이 발발하기 직전인 1774년, 바닷가에 돌출되어 있던 이 바위를 시내 광장으로 옮겨 설치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무리한 힘을 가해 당겼던 바위의 상단부가 깨져 버렸기 때문에, 그 상단부만 시 광장에 두기로 했다. 이후 1834년에 바위는 “필그림 홀”로 이전하였고 1880년에는 다시 해안으로 되돌려졌다. 이 때 “1620”이라는 숫자가 진하게 새겨지게 되었다.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