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오늘
1737년 1월 29일, 미국 독립에 사상적 기초를 제공한 토머스 페인 (Thomas Paine, 1737 ~ 1809) 출생
토머스 페인 (Thomas Paine, 1737년 1월 29일 ~ 1809년 6월 8일)은 18세기 미국의 작가이자 국제적 혁명이론가로 미국 독립 전쟁과 프랑스 혁명 때 활약하였다. 1776년 1월에 출간된 ‘상식론’ (Common Sense; 아메리카 식민지 주민이 느끼지 못하는 자신의 침해 당한 권리를 알게 해서 보편적인 느낌으로 전환시킨다. 그것은 상식이 된다. 모두에게 내재되어 있다가 누군가 일깨우면 반향이 일어나며 동의하고 ‘전환’된다)으로 미국이 공화국으로 독립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독립이 가져오는 이익을 펼쳐 사람들에게 독립에 대한 열망을 불어넣어준 영향을 끼쳤다. 또한 그 책에서 봉건과 왕을 강하게 비판했다. 미국 독립 전쟁 때 ‘위기론’ (Crisis)을 간행, 시민의 전투 의지를 끌어올렸다.
– 토머스 페인 (Thomas Paine)
.출생: 1737년 2월 9일, 잉글랜드 노퍽주
.사망: 1809년 6월 8일 (72세), 미국 뉴욕주 뉴욕
.직업: 철학자
.언어: 영어
.국적: 미국
.종교: 이신론
.사조: 철저한 계몽, 이신론
.주요 작품: 상식론, 위기론
.영향 받은 인물: 볼테르, 장자크 루소, 존 로크, 퀘이커, 몽테스키외, 벤자민 프랭클린
.영향 준 인물: 토머스 제퍼슨, 윌리엄 고드윈,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피에르 베르니오, 에이브러햄 링컨, 토머스 에디슨, 죠띠라오 풀레, 몬큐어 D. 콘웨이, 버트런드 러셀, 크리스토퍼 히친스, 로버트 G. 잉거솔
토머스 페인 (Thomas Paine, 1737 ~ 1809)은 미국혁명과 프랑스혁명 시기의 사상가, 언론인, 저술가, 정치혁명가로서 미국 독립에 사상적 기초를 제공했고, 조지 워싱턴 등 미국 초기의 정치지도자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페인은 1737년 영국에서 태어났다. 열네 살에 학업을 중단하고 아버지의 직업을 이어받아 코르셋 장인이 됐다. 이후 교사, 담배업자, 하급 세무공무원 등으로 취업과 해직을 되풀이했다. 1772년에는 세무관료의 부패를 척결하는 유일한 방법으로 그들의 보수를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글을 발표했다가 세무서에서 해고당하기도 했다. 1774년 페인은 세무공무원으로 일하던 중 만난 벤저민 프랭클린의 권유로 아메리카로 갔다. 이후 <펜실베이니아 매거진>에서 일하면서 미국 독립전쟁을 지지하는 여러 편의 팸플릿을 발표했다. 그중 1776년 1월에 발표돼 15만 부나 팔린 팸플릿 《상식》은 영국에 대한 아메리카의 자주적이고 완전한 독립을 주장한 것으로 6개월 뒤 <독립선언문>이 나오는 데 직접적인 역할을 했다.
미국 독립 이후 잠시 정치에서 물러나 있던 페인은 1787년부터 영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다시 정치활동을 재개했다. 1790년 버크가 프랑스혁명을 비판하는 글을 발표하자 이에 반박해 1791년과 1792년 두 차례에 걸쳐 《인권》을 발표했다. 프랑스혁명을 옹호하고 영국인들에게 공화국을 세울 것을 호소한 이 글로 인해 페인은 영국에서 반역자로 몰려 법익을 박탈당하고 가까스로 프랑스로 탈출했다. 이후 프랑스 국민공회 의원으로 선출되는 등 혁명세력에 동참해 활동하다가, 루이 16세의 처형을 반대한 이유로 룩셈부르크 감옥에 투옥되지만 로베스피에르의 실각과 함께 석방되었다.
1802년 페인은 제퍼슨 대통령의 요청으로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너무도 급진적이고 자유로운 사상을 가졌던 그는 미국 보수주의자들의 질시를 받았다. 결국 페인은 과거 독립혁명의 영웅이 아니라 혐오스런 무신론자로 배척당하다가 1809년 빈곤과 고독 속에서 파란 많은 생을 마쳤다.
○ 생애 및 활동
영국 잉글랜드 노퍽에서 출생하여 미국 독립 전쟁과 프랑스혁명 때 활약하였다. 영국의 퀘이커교도인 코르셋 제조업자 가정에서 태어나 13세까지는 학교에 다녔으나 가난 때문에 여러 직업을 전전하면서 정치와 사회제도의 모순을 체득하였다. 런던에서 만난 벤자민 프랭클린의 소개로 1774년 10월 필라델피아로 이주, 1776년 1월 ‘상식론’ (Common Sense)을 출판하여 독립이 가져오는 이익을 펼쳐 큰 영향을 끼쳤다. 독립전쟁이 시작되자 N.그린의 부관으로 종군하는 한편, ‘위기론’ (The Crisis, 1776∼1783)을 간행, “싸움이 격렬할수록 승리는 빛난다”라고 하여 민중의 사기를 고무하였다.
1787년 프랑스로 건너가 프랑스 혁명에 영향을 주었다. 그가 쓴 책으로도 이미 영향이 컸다. 영국의 정치가 에드먼드 버크의 저서 ‘프랑스 혁명에 대한 성찰’에 대한 반박으로 1791년 ‘인간의 권리’ (Rights of Men) 제1부를 쓰고 이듬해 런던에서 제2부를 썼으나, 반란 선동이란 죄명을 쓰게 되어 프랑스로 피신하여 의원에 선출되었다.
혁명 중에 ‘이성의 시대’ (The Age of Reason) 제1부 (1794) · 제2부 (1796)를 썼다. 그 책으로 자신이 -신은 있지만 인간과 교류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계시는 가짜이고, 인간이 신을 안다고 할 수 없다- 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 드러나서, 유럽과 아메리카 사람들이 기독교 신앙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구속되어 있는 점을 이용해, 지배계급이 그를 사회에서 매장시키기 위해 ‘무신론’이라는 이른바 ‘죄’를 만들어 씌웠다. 그 수법은 대체로 잘 들어맞고 토마스에게도 예외 아니었다. 결국 나머지 평생 가난하게 살면서 손가락질 받았다.
1802년 다시 미국으로 건너갔으나 그곳에서도 지난날의 독립전쟁의 영웅으로서가 아니라 “추악한 무신론자”로서 비난을 받았다. 빈곤과 고독 속에서 파란 많은 생애를 마쳤다.
이신론적 입장에서 쓴 ‘이성의 시대’ (The Age of Reason) 제1부 (1794) · 제2부 (1796)가 무신론이라는 오해를 받는다. 이신론은 계시를 인정하지 않으므로 종교를 인정하는 건 말이 안된다. 유럽과 아메리카 기독교인은 당연시 이신론도 비난한다. 무신론까지 갈 필요도 없이 이신론 만으로도 종교계의 배척을 받게된다. ‘무신론이라는 오해’는 사실을 잘못 이해하게 할 문장이다.
○ 평가
1777년에 외무부 의회 위원회의 서기로 임명되었다. 그 당시 존 위더스푼은 같은 위원회 소속회원으로 그의 임명에 대해 반대하였는 데, 그 이유는 그가 원죄교리외에 여러 성경적 교리들을 페인의 저서 ‘상식론’에서 조롱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가 잘못된 인성과 삐뚤어진 애국심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위더스푼은 페인의 반기독교 정서에도 불구하고, 그가 종교와 정치를 구별할 줄 안다고 칭찬하였다.
페인의 펜이 없었더라면 조지 워싱턴의 칼은 쓸모없었을 것 — 존 아담스
○ 어록
그런 일이 가능했다고 한다면, 우리가 모세, 여호수아, 사무엘 성경의 선지자들과 같은 가짜와 괴물이 자기 말을 하나님의 말인 것처럼 하면서 우리에게 다가와서 우리 가운데서 신용을 얻게 된 것보다는 수천의 귀신들로 하여금 이리저리 다니게 하면서 귀신들의 교훈들 – 만약 그런 것들이 있다고 한다면 – 을 공적으로 전파하도록 허락했다면 훨씬 좋을 뻔 했다.
모든 전쟁을 보라. 그 전쟁들이 어디에서 비롯했는가? 이 불경건한 계시종교라는 것에서부터, 그리고 하나님이 인간에게 말씀하셨다는 이 괴상한 믿음에서 비롯되지 않았는가? 성경의 거짓말들이 그 원인이었다. … 성경이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 약탈과 잔인함과 살인이다. 신약 성경이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 약혼한 한 여인을 꾀어 방탕한 짓을 한 전능자를 믿으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난봉에 대한 신앙이 믿음이라고 일컬어지고 있다.
현실적인 종교는 선을 행해야 하며, 신을 섬기는 유일한 방법은 신의 창조물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애쓰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문명 상태가 시작된 이후 살아갈 때의 조건이 문명 이전에 살아갈 경우보다 더 나쁘지 않아야 한다.
○ 저서
– 주요저서
상식론
위기론
인간의 권리
이성의 시대
토지 분배의 정의
– 상식론
상식 (常識, Common Sense, 1776)은 토머스 페인의 소책자 형식의 저서이다. 미국 독립전쟁 시기의 성전(聖典)이라고 불린다. 미국 식민지 주민들이 렉싱턴 콩코드 전투(1775)에서 승리한 다음에도 의연히 자치의 확대를 주장하고 독립에 대한 결단을 주저하고 있을 때,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이제 독립은 상식이 되었다’라고 주장했다. 정착민이 독립을 주저했던 가장 큰 이유는 영국 국왕 및 영국의 민주적 정치 제도에 대한 존경심과, 독립하면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없을 것이라는 불안감이었다. 페인은 이 책에서 자연권의 입장에서 세계적으로 상찬(賞讚)되고 있는 영국의 정치 형태는 세습(世襲)군주와 비민선적(非民選的)인 귀족원(貴族院)의 존재로 인해 반드시 민주적이 아니라고 비판하고, 독립에 의해서 진정 자유롭고 민주적인 국가를 건설할 것을 주장했다. 또한 당시의 미국 식민지의 경제를 분석하여 독립 후에도 충분히 자립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책은 익명으로 출판되었으며, 당시 300만명에 불과한 미국 식민지 주민들 사이에서 순식간에 50만 부가 팔린 점으로 보아 그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다.
– 위기론
미국 혁명때 출판한 팜플렛 시리즈로, 시민의 전투 의지를 끌어올렸다.
– 인간의 권리
《인간의 권리》는 토머스 페인이 쓴 31개의 글을 모은 책으로, 이 책에서 페인은 정부가 국민들의 자연적인 권리를 보호하지 않을 때 대중 정치 혁명이 허용될 수 있다고 논하고 있다.
참고 = 위키백과 교보문고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