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오늘
1897년 11월 20일, 독립협회가 서대문구에 독립문 건립
서울 독립문 (獨立門)은 조선 후기의 건축물로 1896년 11월에 착공되어 1897년 11월 20일에 완공되었다. 독립협회가 중심이 되어 조선이 청나라의 책봉 체제에서 독립한 것을 상징하기 위하여 영은문을 무너뜨리고 그 터에 지은 문으로 서재필의 주도로 건립되었으며, 서재필의 원작을 배경으로 아파나시 세레딘사바틴 (Sabatin, 흔히 사바틴)이 설계했고, 심의석이 시공 감독하였다. 현판은 김가진의 작품이다.
조선의 중국에 대한 사대의 상징인 영은문을 헐고 그 뒷편에 건립되었으며, 독립문 전면에는 영은문이 서 있던 기둥돌이 함께 남아 있다. 1963년 1월 21일 대한민국 사적 제32호로 지정되었다.
서재필은 1896년 7월 4일에 발행된 ‘독립신문’에 게재한 자신의 논평에서 조선이 청나라의 책봉 체제에서 독립한 것을 상징하는 건축물의 필요성을 시사했다.
“조선이 몇 해를 청나라의 속국으로 있다가 하나님 덕에 독립이 되어 조선 대군주 폐하께서 지금은 세계의 제일 높은 임금들과 동등이 되시고, 조선 인민이 세계에서 자유로운 백성이 되었으니, 이런 경사를 그저 보고 지내는 것이 도리가 아니요, 조선 독립된 것을 세계에 광고도 하며, 또 조선 후생들에게도 이때에 조선이 분명하게 독립된 것을 전하자는 표적이 있어야 할 터이요. 또 조선 인민이 양생을 하려면 맑은 공기를 마셔야 할 터이요, 경치 좋고 맑은 데서 운동도 하여야 할지라.”
1895년부터 서재필은 독립문 건립을 위해 백성들의 성금을 모금하였고, 스위스계 우크라이나인 세레딘 사바틴을 영입해왔다. 서재필은 직접 독립문을 스케치하고 이를 토대로 공사를 시작한다.
청일 전쟁에서 일본이 승리, 시모노세키 조약에서 조선의 독립이 국제법상 확정된 후, 건설이 시작되었다. 1896년에 공사를 시작해 1897년에 완공되었다. 높이는 14.28미터, 폭 11.48미터이다. 약 1,850개의 화강암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프랑스 파리의 개선문을 모델로 삼아서 만들었다.
현판은 김가진이 썼고, 현판 바로 아래에는 대한제국 황실을 상징하는 문양인 오얏꽃이 장식되어 있다. 앞쪽의 기둥 두 개는 옛날 영은문의 기둥으로서, 철거 후에도 남은 부분이다. 독립문의 기공식 때는 대한제국 고종을 비롯한 황족과 고관들이 모두 참여하였다. 이 중 김가진은 삼전도(정축하성)와 병자년(병자호란), 정묘년(정묘호란)의 굴욕을 이제서야 깨트렸다며 크게 기뻐하였다 한다.
1979년에 성산대로 공사로 인해 본래의 위치에서 북서쪽으로 70미터 정도 이전하였고, 2009년 10월 28일에 서대문 독립공원의 재조성 공사가 완료되면서 동시에 독립문은 일반인에게 개방되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