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오늘
1996년 10월 19일, 대한민국의 신학자로 ‘민중신학의 창시자‘ 안병무 (安炳茂, 1922 ~ 1996) 별세
안병무 (安炳茂, 1922년 6월 23일 ~ 1996년 10월 19일)는 대한민국의 신학자이며 한신대학교의 교수였다. ‘민중신학의 창시자’로도 불린다. 호는 심원 (心園)이다.
1922년 평안북도 안주에서 태어났으며, 간도에서 청소년기를 보냈다. 서울대학교에서 사회학을 전공했고, 하이델베르크대학교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 안병무 (安炳茂)
.호: 심원 (心園)
.출생: 1922년 6월 23일, 북한 신의주시
.사망: 1996년 10월 19일 (74세), 서울 금호동
.학력: 하이델베르크 대학교
.배우자: 박영숙
.부모: 부) 안봉직 (安峰稷), 모) 정원숙 (鄭元淑)
.대표저서: 역사와 해석, 갈릴래아의 예수, 우리와 함께 하는 예수, 공관복음서의 주제 등
1822년 평안남도 안주 출신으로 안봉직 (安峰稷)과 정원숙 (鄭元淑)의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간도에서 유년시절을 보내고, 용정중학교에서 김재준 (金在俊)의 가르침을 받았다.
1967년 여성운동가 박영숙과 결혼했고, 박영숙과의 사이에 아들을 두었다. 1973년 한국신학연구소를 설립하여, 한국의 민중신학 연구에 몰두했다. 한국신학연구소는 계간지 《신학사상》 (神學思想)와 신학서적들을 간행했으며, 진보적인 기독교출판사 중 한 곳으로 평가받는다.
안병무는 1953년 5월 17일 한국기독교장로회 향린교회를 홍창의 등 12명의 형제들과 함께 ① 생활공동체, ② 입체적 선교공동체, ③ 평신도교회, ④ 독립교회라는 네 가지 창립정신을 가지고 설립하였다.
저서로는 성서연구서 《역사와 해석》 (1981년作, 대한 기독교 출판사 刊), 《갈릴래아의 예수》 등이 있다.
○ 생애 및 활동
1938년 일본으로 유학, 다이쇼대학 예과에 진학하였으며, 1942년에 와세다대학에 입학하여 서양철학을 공부하였다. 학병 문제 때문에 학업을 중단하고 간도로 돌아왔다. 8·15광복 이후 월남하여 1947년 서울대 사회학과에 진학하였다.
대학시절 평신도 중심의 공동체 조직과 평신도 지성운동에 앞장섰다. 1951년 잡지 『야성』을 출간하였으며, 이듬해 서울 남산 밑에서 평신도 중심의 신앙공동체를 조직하였는데 이 공동체가 오늘날 향린교회의 모체가 되었다.
1956년 독일로 유학, 하이델베르크대학에서 불트만의 수제자인 보른캄의 문하에서 ‘역사적 예수’를 탐구하였다. ‘공자와 예수의 사랑에 관한 윤리의 비교’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65년 귀국하여 중앙신학교 교장직을 맡아 학생들을 가르쳤다. 1967년 후일 평민당 부총재를 역임한 박영숙과 결혼하였다. 1969년 신학잡지 『현존 (現存)』을 창간하였다. 『현존』은 그의 신학의 출발점이었다.
그는 현존의 구조와 의미를 밝힘으로써 인간의 구원을 묻고자 하였다. 1970년 한국신학대학 교수로 취임하였다. 1973년 독일교회의 재정적 후원을 얻어 ‘한국신학연구소’를 설립하고, 계간 신학잡지 『신학사상』을 발간하고 구미신학의 흐름을 소개하여 한국신학을 형성하는데 기여하였다. 1970년대에 들어 그의 삶은 중요한 전환을 겪게 되었다. 한국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돌파하기 시작한 것이다.
1972년 3선개헌 반대 100만 명 서명운동에 발기인으로 참여하는 등 민주화운동에 앞장서다가 1975년 3월 긴급조치 위반으로 구속, 옥고를 치렀다. 그 과정에서 대학교수직을 내어놓기도 하였다.
1976년 3월에는 이른바 ‘3·1 구국 선언’ 사건으로 다시 구속, 옥고를 치렀다. 그의 이와 같은 일련의 민중 체험은 그의 신학의 전환점을 제공하였다. 1970년대 한국의 정치·경제적 상황에 직면하여 그의 신학은 ‘현존’에서 ‘현장’으로 이동하였다.
그는 민중의 실체를 신학함의 주요 텍스트로 삼는 민중신학의 한 모델을 제시하였다. 그는 민중의 성서적 전거를 「마가복음」의 ‘오클로스 (Ochlos)’에서 찾았다. 그는 민중의 시각에서 「마가복음」에 나타난 오클로스를 재조명함으로써, 민중이 역사를 담지해온 주체이며 구원과 해방 사건의 주체임을 역설하였다.
그는 수많은 저서를 통해서 민중신학운동과 민주화운동에 혼신을 다하다 1996년 10월 19일 향년74세로 별세하였다.
○ 약사
1922. 6. 23 평남 안주군 신안주면 운송리에서 아버지 안봉식 어머니 정원숙의 맏아들로 출생
1940.12.15 (간도 용정) 은진중학교 졸업
1943. 8.10 (일본) 대정대학 문학부 예과 3년 수료
1950. 5. 5 서울대학교 문리과 대학 사회학과에서 문학사 학위 받음
1965. 7. 5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교 신학부에서 신학박사 학위 받음
1950.5-1970.4 중앙신학교 (현 강남대학교) 교수
1951 월간지 『야성』 창간, 발행인
1953.5 평신도 교회 설립 (현 향린교회의 모체)
1965.9-1966.3 대전 감리교 신학대학 (현 목원대학) 강사
1965.9-1969.2 중앙신학교 교장
1966.9-1969.9 연세대학교 연합신학 대학원 강사
1968.9-1970.4 한국신학대학 및 대학원 강사
1969.3-1971.3 숭실대학교 강사
1969.7-1980.8 월간 『현존』 창간, 발행인
1970.5-1975.6 한국신학대학 교수
1973.5-1991.6 <한국신학연구소> 설립. 소장으로 봉직
1975.6 교수직 강제 해직 (제1차)
1976.3-1977.2 “3.1민주구국선언” 사건으로 옥고를 치름
1980 개신교 수녀회인 <한국디아코니아 자매회> 설립
1980.2-1980.5 한국신학대학 교수 (제1차 복직)
1980.8 교수직 강제 해직 (제2차)
1984.7-1987.8 한신대학교 교수(제2차 복직), 대학원장, 평화연구소 소장
1987.8 한신대학교 정년 퇴임
1988.-1996. 10 한신대학교 명예 교수
1990. 한국기독교장로회 통일연구위원회 위원장
1994.6.10-1996.7.10 재단법인 <천원> (현 재단법인 <아우내>) 이사장
1996.7.10-1996. 10 재단법인 <아우내> 명예 이사장
1996.10. 19 오전 1시 서울풍납동 중앙병원에서 심장질환 (심근경색)으로 별세. 향년74세.
○ 저서들
대표저서로《역사와 해석》, 《갈릴래아의 예수》, 《우리와 함께 하는 예수》, 《공관복음서의 주제》등 많은 저서와 역서가 있다.
– 저서
『역사와 증언』, 대한기독교서회 (1972)
『해방자 예수』, 현대사상사 (1975)
『성서적 실존』, 한국신학연구소 (1975)
『시대와 증언』, 한길사 (1978)
『신약성서개론』(공저), 대한기독교출판사 (1982)
『역사와 해석』, 대한기독교서회 (1982)
『진실 때문에』, 샘터사 (1982)
『옳은 민족 옳은 역사』, 한길사 (1982)
『역사의 예수』, 전망사 (1983)
『역사 앞에 민중과 더불어』, 한길사 (1986)
『민중신학 이야기』, 한국신학연구소 (1987)
『민중사건 속의 그리스도』, 한국신학연구소 (1989)
『갈릴래아의 예수』, 한국신학연구소 (1990)
『사랑에는 연습이 없습니다』. 베틀 (1993)
『그래도 다시 낙원에로 환원시키지 않았다』, 한국신학연구소 (1995)
『선천댁』, 범우사 (1996)
『너는 가능성이다』, 사계절 (1996)
『공관복음서의 주제』, 한국신학연구소 (1996)
– 역서
M. 마코비취, 『무신론자가 본 예수』, 한국신학연구소 (1974)
H.콘첼만, 『신약성서 신학』, 한국신학연구소 (공역, 1982)
– 기념논문집
『역사와 현』(회갑 기념 논문집), 대한기독교서회 (1982)
『예수·민중·민족』(고희 기념 논문집), 한국신학연구소 (1992)
– 일본어판
『解放者 イェス』 新敎出版社 (1976)
『現存 の 神』 新敎出版社 (1980)
– 독일어판
Das Verstaendnis der Liebe bei k”ung-Tse und bei jesus,
Heidelberg Universitaet (Dissertation), 1965.
Draussen vor dem Tuer, Kirche und Minjung in Korea, Goettingen, 1986.
※ Andreas Hoffmann-Richter, Ahn Byung-Mu als Minjung-Theologie, Guetersloher Verlagshaus, Gerd Mohn, 1990. (이 책은 독일 신학자 Andreas Hoffmamm-Richter가 안병무 박사의 민중신학을 주제로 쓴 박사학위 논문임)
– 논문
“수난사에서 본 마가의 신학”, 『신학사상』 3집 (1973)
“민중신학”, 『신학사상』 34집 (1981)
“민중과 예복”, 『신학사상』 38집 (1982)
“예수와 오클로스”, 『민중과 한국신학』(1982)
“마가복음에서 본 역사의 주체”, 『한국신학』(1982)
“마르코복음에 대한 사회학적 이해”, 『사회학적 성서해석』(1983)
“예수사건의 전승모체”, 『신학사상』 47집 (1984)
“예수와 민중”, 『신학사상』 50집 (1985)
“민중의 교회”, 『신학사상』 53집 (1986)
“민중의 하느님”, 『신학사상』 54집 (1986)
“민중의 예수”, 『신학사상』 55집 (1986)
“정의와 평화”, 『신학사상』61집 (1988)
“민중공동체의 인식”, 『신학사상』 66집 (1989)
“민중운동과 민주신학”, 『1980년대 한국민중신학의 전개』 (1990)
“예수운동과 物”, 『1980년대 한국민중신학의 전개』 (1990)
“예루살렘 성전체제와 예수의 대결”, 『1980년대 한국민중신학의 전개』 (1990)
“한국적 그리스도인 상의 모색”, 『1980년대 한국민중신학의 전개』 (1990)
“희년선포와 통일헌법”, 『신학사상』76집 (1992)
“성서의 희년사상, 그 가능성과 한계”, 『신학사상』 87집 (1994)
“세계 한 민중의 새 지평”, 『민중신학』 (1995)
– 기타
이밖에도 야성, 『현존』, 『신학사상』, 『살림』, 『사상계』, 『씨알의 소리』, 『기독교사상』, 『기장회보』, 『세계와 선교』, 『사목』, 『성서와 함께』, 『창작과 비평』, 『문학사상』, 『월간중앙』, 『신동아』 등의 잡지에 기고한 논문과 수필이 모두 500여 편에 이른다.
참고 = 위키백과, 안병무기념사업회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