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어 이해
아비투스 : Habitus (사회학)
아비투스 (프: habitus)는 인간 행위를 상징하는 무의식적 성향을 뜻하는 단어로, 피에르 부르디외가 처음 사용하였다. 이런 아비투스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교육이다. 즉, 아비투스는 복잡한 교육체계를 통해 이루어지는 무의식적 사회화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으며, 교육을 통해 상속된다.
아비투스는 구조와 행위자를 혼융시키는 촉매로, 문화적 자본과 연결되며, 이런 문화적 자본을 가지고 부르디외는 현대사회의 사회관계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 하지만 상류층 행세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계급 구분이라는 것은 아주 잔인한 메커니즘이다. ‘졸부’는 아무리 많은 돈을 벌게 된다 하더라도 자손 대대로 물려받은 무산계급의 촌티를 쉽사리 벗어버릴 수 없다. 그래서 그는 생선용 포크와 나이프를 사용할 줄도 모르며, 자기의 페라리 뒷유리창에 원숭이 인형을 매달아둘 것이고, 전용 제트기의 계기판에는 성 크리스토포로의 조각상을 올려 놓을 것이다. 또 모국어인 이탈리아어를 하면서 <매니지먼트> 같은 영어 단어를 서툰 발음으로 섞어 쓸 것이다. 그 때문에 그는 게르망트 공작부인 같은 고상한 사람들에게서는 절대로 초대를 받지 못한다 (그는 다리만큼이나 긴 요트를 가지고 있는 자기 같은 사람이 왜 초대를 받지 못하는지 모르겠다며 속이 끓을 것이다).” — 움베르토 에코,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中, ‘휴대폰을 사용하지 않는 방법’ 중에서
– 개요
개인의 취향은 배경과 환경, 가치관, 분위기, 종교, 사상, 권력이나 계층과 같은 사회문화적 환경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 혹은 그런 것을 모두 포괄하는 용어. 가장 상위의 개념인 권력이 아비투스의 절정에 해당된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가 만든 단어. 원어는 ‘Habitus’인데 프랑스어 발음대로 읽으면 ‘u’가 전설 원순 고모음 /y/으로 발음되어 ‘아비튀스’에 가깝지만, 외래어 표기가 복잡해져서 라틴어식 표기인 ‘하비투스’와 짬뽕이 되어 무슨 언어의 어휘인지도 모를 어정쩡한 표기가 되어버렸다.[1] 한국에서는 보통 ‘아비투스’라고 하며, 영어 발음은 ‘해비터스’에 가깝다. 습관을 의미하는 habit과 같은 어원임을 알 수 있다.
아비투스는 하루아침에 형성되지 않고 짧게는 20~30년, 길게는 수세대간 내려온 경험과 문화가 축적된 것이기 때문에 쉽게 바꾸거나 극복하기는 어렵다.
– 교육사회학에서의 아비투스
아비투스는 특정한 환경에 의해 형성된 성향이나 사고, 인지, 판단과 행동 체계를 의미하는 것으로, 계급 구성원들의 문화적 상징이나 행동특성을 나타내는 개념이다. 아비투스는 개인이 차지하는 사회적 지위와 개인이 속한 사회구조에 의해 산출되고 내면화된다. 그러나 아비투스가 구조의 산물이나 구조의 작동기제이지만 완성된 규칙이나 법칙은 존재하지 않는다.
교육행위는 아비투스를 생산해내기 위해 지속적으로 문화적 자의성을 주입하며, 아비투스는 문화적 자의성을 내면화한 것이므로 교육행위를 통해 지속적으로 문화적 자의성이 주입되어야 문화적 유전자인 아비투스가 형성된다고 본다. 따라서 교육행위는 지속적으로 아비투스를 생산하는 일이라고 본다.
– 사례
한국은 8.15 해방과 6.25 전쟁을 겪으면서 전 국토의 황폐화 및 경제재건 등 극심한 사회변동으로 계층간 갈등이 완화되는 모습을 보였지만 1987년 6월 항쟁 이후 민주화가 조금씩 진전되면서 상류 계층이 아닌 계층도 다양하게 분화하게 되고 1999년을 전후해서 각 가정마다 컴퓨터와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되게 정보가 자유롭게 유통되면서 중산층-상류층간, 중산층-저소득층간, 빈곤층 상호간의 아비투스 차이가 널리 알려지자 상호간 갈등이 다시 나타나고 있다.
이런 갈등은 단순한 경제적인 차이로 인한 갈등, 대립, 질시가 아니라 몇세대에 걸쳐서 형성된 가치관과 환경적, 문화적 차이이다 보니 쉽게 극복하기 힘들다는 문제점이 있다. 한국에서는 독재 정권 하에서 이른바 “총화(總和)”를 강조하였고 한동안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사회가 안정되고 계층이동이 어려워지는 21세기 들어 이로 인한 갈등이 점점 사회에서 빈번히 나타나고 있다. 각종 매스 미디어에 묘사되는 트렌드에서도 금수저, 올드머니 등의 신조어가 떠오르며 보다 ‘수준 높은’ 아비투스를 숭상하는 풍조가 짙어지고 있다.
일례로 동두천, 인천, 안산, 시흥 등지의 수도권 서민밀집지구나 지방 광역시의 서민 지구 출신으로, 나름 지역에서 우등생이 되어 서울의 중위권 또는 상위권 대학에 진학한 사람이 그 대학의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고[10] 되려 서민층인 초중고 동네 동창들과 어울리다가 9급 공무원이나 어릴때 살던 동네의 학원 강사, 공인중개사 정도에서 진로가 마무리되는 등 학벌을 제대로 써먹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근래에 SKY문과에서조차 9급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 자세히 살펴보면 이 사례와의 일치도가 1에 수렴하고 있다.
채널A의 서민 갑부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대표적인 모범사례인데, 자수성가해서 돈은 많이 벌었지만, 긴 노동시간과 강도높은 육체노동,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가족이나 친척들이 진로를 포기하고 가업을 돕거나, 지가가 낮은 시골지역이나 지방에서 계속 살거나 서민적인 생활양식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면 이러한 아비투스의 차이를 적나라하게 엿볼 수 있다.
드라마 등에서 흔히 나오는 ‘못 배운 티 내지 마라’, ‘이래서 근본 없는 것들은…’ 등의 대사도 아비투스와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겠다.
– 기타
소위 행복지수가 높다고 알려진 나라들이 언급되는데 이러한 나라들은 대부분이 절대적으로 빈곤하다. 이 나라들의 전반적인 사회상을 곱씹어보면 국민들의 절대다수가 가난한데다 그만큼 아비투스의 차이가 많이 나지 않아서 상대적 박탈감이 덜해 행복지수가 상대적으로 높아 보인다.
다른 예로 사람의 몸매도 아비투스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는데 예를 들어 비만인 사람이 다이어트를 하지 않는 것도 그 주변인들도 비만체형인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이 다이어트를 결심하게 되는 계기가 물론 성인병 등에 대한 위협도 있겠지만 그보다도 주변 환경이 갑자기 바뀌면서인 경우가 많다.
서로 다른 가정환경에서 만나서 결혼했다가 시집, 처가와의 갈등을 겪거나, 이혼, 가정폭력을 당하거나, 동질혼이 성행하는 것도 아비투스 문제가 크다.
대중문화도 아비투스가 반영되어 있다. 예를 들어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 즐기느냐에 따라 고급 문화와 저급 문화로 나뉜다. 예컨대 클래식 음악이나 미술 작품 감상이 상류층의 고급 문화로 인식되는 한국에서 이런 일도 있었다. 한 대학의 미대 교수가 학교 노천 작업실에서 조각 작품을 만들다가 놔두고 집에 갔다. 그런데 다음날 와 보니 감쪽같이 사라져 있었는데 알고 보니 청소부가 고철더미인 줄 알고 고물상에 팔아넘긴 것이었다. 이 교수는 손해배상을 받아낼까 고민하다가 이 “무지한 사람” 에게 예술을 가르쳐 주고자 그의 조수로 고용하기로 했고 이게 신문에 “미담” 기사로 실렸다. 즉, 무식한 경비원에게 ‘예술’이 뭔지 알려주겠다는 것인데 이런 시각을 통해 예술과 문화에 대한 계급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세계시민의식과 세계시민주의도 상류층의 아비투스 중 하나다. 일단 재벌, 정치인 가문, 연예인 등이 자신의 자녀를 보딩스쿨이나 영미권 등 선진국 대학이나 MBA로 유학보내기도 하고, 국내에서 학교를 보내도 제주도 등지의 국제학교로 진학시킬려고 하는 것이 그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참고 = 위키백과, 나무위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