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 이집트 방문기 (24)
시드니인문학교실에서는 지난 2023년 10월 11일~21일 (이집트·이탈리아, 10박 12일), 10월 22일~24일 (강릉 오죽헌·설악산·남양주 다산생가, 2박 3일)에 “아는 만큼 보인다” (“I Can See As Much As I Know”)라는 주제로 제2차 인문학여행을 33인이 동행해 실시했다. 가서 보면 알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막상 가보니 오히려 더 알 수 없는 신비함에 압도되어 한동안 방문기를 어떻게 써야하나 생각하다가 몇 개월이 지났다. 그러나 희미한 기억보다는 기록으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에 용기내어 기록해 본다. _ 편집자 주.
로마 베네치아 광장과 베네치아궁, 엠마누엘 2세 기념관
10월 21일 (토) Ergife Palace 호텔에서 조식 후 우리 일행은 로마행 버스에 올라 첫 행선지인 트레비분수로 향했다. 이날 일정은 트레비분수를 시작으로 베네치아광장과 엠마누엘 2세 기념관, 고대로마 공화당 터, 대전차경기장, 콜로세움과 포로 로마노 일대를 방문하고 로마국제공항에서 출발해 인천국제공항으로 향하는 일정이다.

약간 비내리는 가운데 버스로 트레비분수를 향하다 보니 어느덧 비는 멈추고 창밖으로 보이는 로마시내 풍광은 놀라웠다.
로마의 일곱 언덕중 하나이며 핵심적인 언덕인 ‘팔라티노 (Palatino) 언덕’을 보는 순간 고대 로마의 역사속으로 빨려들어가는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초기 로마 도시형성이 팔라티노 언덕과 주변 언덕들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로물루스와 레무스 형제도 팔라티노 언덕 위에 주거지를 건설했고 로물루스가 도시의 주도권을 차지한 후 로물루스는 자기의 이름을 따서 도시 국가의 이름을 로마라 했다고 한다.
우리 일행은 로마시에서 첫 일정으로 트레비 분수를 둘로보고 삼삼오오 모여 티타임을 갖은 후 베네치아 광장과 엠마누엘 2세 기념관을 향해 이동했다.

로마의 심장이자 배꼽, 베네치아 광장
베네치아 광장 (Piazza Venezia)은 이탈리아 로마에 있는 광장이다. 1871년 이탈리아 통일을 기념하기 위해 조성되었다.
일명 ‘로마의 심장’, ‘로마의 배꼽’으로도 불린다.
베네치아 광장은 이탈리아 반도와 발칸반도 사이에 있는 아드리아 해의 여러 섬들로 구성된 ‘물의 도시’ 베네치아 공화국이 1861년 이탈리아 통일 전까지 로마에 설치했던 대표부 건물인 베네치아궁이 있어서 붙여진 명칭이라고 한다.
광장이라고해서 넓은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리 넓지는 않았고 큰 도로들이 모여 로타리 같은 느낌이 컸다.

베네치아 광장에는 매년 봄과 여름에 ‘공화국 건국 기념일’ (매년 6월 2일), ‘로마 제국 탄생일’ (매년 4월 22일) 등 여러 행사가 열려 근위병 교대식, 퍼레이드 행렬 등 다양한 행사들이 진행되는 곳이라고 한다.
현재는 테르미니 역과 함께 교통의 중심지 역할을 하며 광장 안에는 베네치아궁 (이: Palazzo Venezia)과 이탈리아를 통일한 비토리오 엠마누엘 2세를 기리기 위한 기념관이 있다.
베네치아 광장에서 남북으로 이어지는 길이 로마의 메인 도로인 코르소 거리이다.
사실 로마의 주요 유적들은 바로 이 길을 양쪽으로 하여 진열되듯 이어져 있다.
코르소 거리에서 스페인 광장으로 가는 코도티 거리는 로마의 최대 상업지구이자 최고급 쇼핑가이다.

베네치아궁
지중해를 통한 해상무역이 발달했던 베네치아 공화국은 800년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기독교를 전도하다가 죽은 예수의 12제자 중 한 사람인 산마르코 (Saint Marko, 영어식으로는 Mark)의 유해를 모셔 와서 베네치아의 수호성인으로 삼고, 베네치아 중심지에 산마르코 성당을 지었다.
그런데, 1455년 산마르코 성당의 피에트로 바르보 (Pietro Barbo) 추기경이 바티칸의 베드로 성당의 주임사제로 부임하게 되면서 거주하던 저택을 그가 1464년 교황 바오로 2세 (Pope Paul Ⅱ)가 되자 더욱 크게 확장해서 ‘베네치아 궁’이라고 불렀다.
그 후 100년이 지난 1564년 베네치아 궁의 일부를 베네치아 공화국의 대사관으로 사용하게 되면서 궁전 앞을 ‘베네치아 거리’라고 불렀는데, 베네치아 궁은 1925년 2차 세계대전을 저지른 이탈리아의 독재자 무솔리니 (1883 ~ 1945)가 20년간 살았던 공관이기도 하다.

대장장이의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자신의 비천함을 내세우고 ‘인민의 아들’을 자처하면서 뛰어난 대중연설로 군중을 휘어잡아 최연소 이탈리아 총리에 올랐으며, 1936년 베네치아 궁 3층 발코니에서 2차 세계대전의 개전을 선언하여 베네치아 궁이 더욱 유명해졌다.
베네치아 궁은 현재 르네상스시대의 유물을 전시하는 국립 베네치아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4세기부터의 순수 종교 미술품, 고대 독일 나무 조각상, 프란체스코 솔리메나의 카나에서의 혼례, 도나토 크레티의 님프의 춤 등의 캔버스화를 모은 전시실까지 다양한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두 개의 더 작은 궁전도 있다. 제네랄리 궁전과 보나파르테 궁전 (프랑스 황제의 어머니 이름을 따서 지음)이다.
베네치아 궁 길 건너에는 건물의 색깔만 달리하였을 뿐 베네치아 건물과 똑같이 지은 건물이 현재 은행으로 사용되고 있다. 베네치아 광장의 명소는 베네치아궁과 함께 이웃에 위치한 비토리오 엠마누엘 2세 기념관이다.

엠마누엘 2세 기념관
이탈리아는 1860년 초까지 사분오열되었다가 가리발디가 남부지역을, 비토리오 엠마누엘 2세가 북부지역을 각각 통일한 후 1861년 마침내 두 영웅이 협상 끝에 비토리오 엠마누엘 2세가 통일왕국의 첫 황제가 되었는데 엠마누엘 2세 기념관은 그의 사후인 1885년에 착공하여 25년만인 엠마누엘 3세때인 1911년 통일 50주년에 맞춰서 준공된 건물이다.
기념관은 포로 로마노 쪽의 가파른 비탈지대를 다듬어서 수십 계단을 만들어서 지었기 때문에 한층 더 높은 성벽처럼 보인다고 한다. 첫 인상은 참으로 경이롭기까지 했다.
하얀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이곳은 그 광활하고 호사스러운 디자인 때문에 중세 로마 시대 때의 모습을 간직한 대부분의 지역이 철거되었어야만 했다.

때문에 로마 시민들의 빈축을 사기도 했지만 레오나르도 비스톨피와 안젤로 자넬리를 비롯해 이탈리아 예술가들이 이 작업을 위해 보여준 천재적인 작품성을 본다면 위로가 된다.
기념관 앞에는 높이 12m인 에마뉴엘 2세의 기마상이 우뚝 서있고, 옥상 양쪽에는 승리의 여신 빅토리아 여신 (Goddess of Victoria)이 네 마리의 말이 이끄는 마차에 탄 기마상이 있다.
왼쪽은 노동의 승리 (Triumph of Work), 오른쪽은 애국심의 승리 (Triumph of Patriotism)를 상징한다.
엠마누엘 2세 기마상 아래의 대석 벽면에는 이탈리아의 유명한 조각가 안젤로 자넬리 (Angelo Zanelli)가 로마의 여신 (Goddess Roma)을 음각하였으며, 계단 아래의 분수대는 오른쪽이 ‘티레니아 해’, 왼쪽이 ‘아드리아 해’를 상징한다.

로마의 여신상 앞에 병사 2명이 지키고 있는데, 이것은 기념관 지하에 2차 대전 중에 전사한 무명용사 무덤이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는 일 년 내내 꺼지지 않는 불을 밝히고 있다.
기념관에는 무명용사의 묘 이외에 이탈리아 통일역사 연구소, 통일박물관, 도서관 등이 있다.
베네치아 광장에서는 매년 6월 2일 통일 기념행사를 거행한다.
비토리오 엠마누엘 2세의 거대 기마상 뒤로는 이탈리아 통일박물관이 있다.
이탈리아의 통일과 함께 이탈리아 역사의 중요한 순간들을 전시하고 있다.
베네치아광장 일대를 둘러본 우리 일행은 걸어서 인근에 위치한 로마의 일곱 언덕중 하나인 ‘캄피돌리오 언덕’으로 향했다.
영어로 수도를 뜻하는 ‘Capitol’이 바로 이 캄피돌리오 언덕의 이름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참고 = 위키백과, 나무위키, 정승일의 세계속으로

















임운규 목사 (시드니인문학교실 회원)
호주성산공동체교회 시무, 본지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