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 이집트 방문기 (5)
시드니인문학교실에서는 지난 2023년 10월 11일~21일 (이집트·이탈리아, 10박 12일), 10월 22일~24일 (강릉 오죽헌·설악산·남양주 다산생가, 2박 3일)에 “아는 만큼 보인다” (“I Can See As Much As I Know”)라는 주제로 제2차 인문학여행을 33인이 동행해 실시했다. 가서 보면 알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막상 가보니 오히려 더 알 수 없는 신비함에 압도되어 한동안 방문기를 어떻게 써야하나 생각하다가 몇 개월이 지났다. 그러나 희미한 기억보다는 기록으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에 용기내어 기록해 본다. _ 편집자 주.
이집트 카이로의 파피루스 제조 공장, 나일강 범선 체험, 이집트 문명 박물관, 모카탐 동굴교회 방문
– 기자 (Giza) 피라미드 (Pyramid)와 스핑크스 (Sphinx)를 목격하고
2023년 10월 15일 (주일) 첫 일정은 기자 (Giza)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방문이었다. 대피라미드와 대스핑크스를 목도하니 어안이 벙벙했다.
무엇이 이토록 대규모 공사를 일으키게 했는지, 왜 온 집단이 달려들어 대공사를 하고, 또 무엇을 기대했는지… 여러 생각들이 끝없이 일었다.
오늘 일정은 기자 (Giza)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방문 후 파피루스 제조 공장, 나일강변에서 점심, 나일강 범선 체험, 국립 이집트 문명박물관 (The National Museum of Egyptian Civilization), 모카탐 동굴교회 방문 등 일정이 많다.
심지어 밤기차로 룩소르에도 가야한다.
– 파피루스 제조 공장 방문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를 둘러본 후 버스에 올라 기자를 뒤로하고 다음 일정인 파피루스 제조 공장으로 향했다.
공장으로 생각했던 곳은 파피루스 공예점이나 갤러리에 가까웠다.
파피루스 체험장으로 들어서니 파피루스 원재료의 가공과정을 설명해 주며 체험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었다.
파피루스 (papyrus)는 종이가 발명되기 이전의 종이와 비슷한 매체로, 같은 이름의 갈대과의 식물 줄기를 압착하고 이를 얇게 발라내어 만든다.
파피루스 식물의 학명은 Cyperus papyrus으로서 보통 2~3m의 크기로 자란다.
나일강 삼각주에는 이 식물이 풍성하기 때문에 고대 이집트인들이 최소한 초대 왕조 이전에 발명했다.
이 파피루스를 매개로 한 고대의 문서로 책의 이전 형태인 코덱스를 만들었기 때문에, 이러한 고대의 문서들도 파피루스라 부른다.
Papyrus라는 단어는 영어 단어 paper의 어원이 되었다.
파피루스 줄기를 세로로 얇게 잘라 만든 일종의 종이 대용품으로 고대 이집트에서는 각종 문서 작성에 이용하였다.
이집트의 제5왕조 시대부터 시작하여 약 3000년 이상 쓰였으며, 이집트어로 된 파피루스 문서는 피라미드의 왕조 고분 등지에서 출토되었다.
파피루스 문서로는 의학서, 연대록, 사자 (死者)의 서 (書) · 시문 (詩文) 등 이집트 문화와 역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파피루스 제작과정을 체험하고 우리 일행은 파피루스 아트실을 둘러보고 파피루스로 제작한 작품들을 구입하기도 했다.
이른 아침부터 나선 일정으로 출출할 즈음 우리일행은 점심 식사할 나일강변 이집트식당으로 이동했다.
나일강변에 위치한 식당의 메뉴는 훌륭했다. 우리일행은 삼삼오오 모여앉아 담소로 즐거운 오찬을 나눴다.
– 나일강 범선 ‘펠루카’ 체험
오찬 후 우리일행은 나일강 범선을 타기위해 나일강변으로 이동했다. 나일강변 도로를 따라 가다보니 조그마한 선착장이 나왔다.
나일강변에는 이집트 전통 범선인 펠루카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펠루카는 이집트의 삼각 돛을 단 소형범선이다.
우리 일행이 펠루카 두 척에 나눠 올라타자 나일강 물결과 바람을 따라 향해 유유히 나아갔다. 동력없이 순전히 바람으로만 가는데 예전에는 이 펠루카를 이용해서 아스완에서 카이로로 돌을 실어 날랐다고 한다.
이집트의 젖줄인 나일강 (Nile)은 아프리카 대륙의 동북부를 흐르는 강이다.
빅토리아호와 에티오피아 고원에서 발원하여 북쪽으로 흘러 이집트의 지중해로 유입된다.
보는 관점에 따라 세계에서 가장 긴 강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총 길이는 6,600여km에 이른다.
이집트를 흐르는 나일강은 정기적으로 범람하기 때문에, 범람이 끝난 후 농지를 원래대로 복구하기 위해 고대 이집트 문명에서는 측량과 기하학이 특히 발달했다.
1970년에 준공된 아스완하이 댐은 수단 국경지역까지 형성된 거대한 인공호수인 나세르 호를 만들었다. 댐 건설로 나일강 하류의 유량 변화는 상당한 정도로 안정되었다.
나일강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거주하고 출애굽하기까지 관련 성경역사 가운데 자주 등장하는 강이다.
애굽왕 바로가 요셉에게 꿈 설명 중 나오는 하수 (창 41:1, 7), 모세가 버려졌던 곳 (출 2:3),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나일강 물을 피로 변하게 하는 이적을 행하신 곳 (출 7:17), 하나님께서 영적인 이방 애굽을 심판하실 것에 대한 예언 중 나일강도 심판받을 애굽에 속한 장소로 기록 (사 19:7~8) 하는 등 여러 곳에서 언급된다.
언급했듯 나일강은 아기 모세가 버려졌던 슬픈 장소이다. 애굽에서 고난받는 히브리인들, 바로의 유아학살 명에 따라 어린 아이 모세를 나일강에 띄워야했던 어미의 마음을 나일강 범선에서 생각해본다. 핏빛으로 변한 나일강도 생각해 보았다.
이집트에 오면 이 펠루카 체험을 꼭 해보길 권해본다. 1시간 정도 범선을 즐긴 우리일행은 다음 행선지인 이집트 문명 박물관으로 이동했다.
– 국립 이집트 문명박물관 (The National Museum of Egyptian Civilization)
페루카를 체험한 후 나일강변을 산책하듯 걷다가 버스에 올라 국립 이집트 문명박물관 (The National Museum of Egyptian Civilization, NMEC)으로 이동했다.
사실 이집트는 국가 전체가 살아있는 뮤지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국에 고대부터 현대까지 다양한 역사의 증거물 같은 신전과 사원과 무덤들이 즐비하다.
지금도 땅만 파면 유물이 나온다는 나라다.
그런 이집트에 뮤지엄의 역사도 새로이 세워지고 있다.
오랫동안 국립고고학박물관이 이집트 유물의 보고 역할을 해왔으나 늘어나는 유물을 수용할 공간 부족과 건축 노후화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면서 대규모 뮤지엄 건립 프로젝트가 시작된 것이다.
대표적으로 피라미드 옆의 대이집트박물관 (Grand Egyptian Museum)이 전면 개관을 준비 중이며 오늘 우리일행이 방문한 국립이집트문명박물관 (National Museum of Egyptian Civilization, 이하 NMEC)도 2017년 부분 개관에 이어 2021년 전면 개관하여 전 세계 관람객을 맞고 있다.
‘문명’이라는 주제는 ‘민속’의 확장된 개념이다.
최근에 새로 개관한 이집트문명박물관 1층에는 고대 이집트의 전통문화 (문명) 전반을 전시했고, 지하에는 미이라갤러리가 위치해 있었다.
5만여 점의 유물을 소장한 NMEC는 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 이집트가 걸어온 역사의 여정을 연대순으로 소개한다.
상설전의 세부 주제는 ‘문명과 여명’, ‘나일강’, ‘문자’, ‘국가와 사회’, ‘문화’, ‘신앙과 사고’로 구성돼 있다.
전시공간은 주제별 구획 없이 거대한 홀에 개별 부스 형태다.
우리일행은 입장권을 구입해 실내로 들어섰다.
1층 전시실에는 선사시대 유적이 우리를 맞았다.
돌도끼, 돌망치, 돌화살촉, 선사시대 주거 구조, 그리고 파피루스, 도장, 신들의 그림, 전통복장, 가구, 스톨과 침대, 관, 제단, 스핑크스와 석상 등 각종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지하에는 디지털 영상실을 거쳐 미이라홀로 이어졌다.
이 박물관의 보석으로 여겨지는 미이라홀에서는 카메라 촬영을 금지했다.
이 미이라들은 무덤에서 발견된 것이 아니고, 도굴된 상태로 고고학자들에게 발견된 미이라들이라고 한다.
룩소르에서 우연히 도굴꾼들이 숨겨놓은 2군데의 미이라 은닉처를 발견했다고 한다.
미이라홀에서는 람세스 2세, 세티 2세 등 역사속의 유명 인물 20여구 (여왕 4구) 미이라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름을 새기며 미이라를 마주하는데 기분이 묘했다.
박물관의 수천 수만 년의 유물들을 둘러본 후 우리네 인생의 찰라 같음을 생각해본다.
– 모카탐 동굴교회
이집트문명박물관을 뒤로하고 우리 일행은 모카탐 동굴교회로 향했다.
가는 도중 올드카이로공동묘지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지하는 묘지이면서 지상은 빈민들의 주거지가 되기도 한다 하니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곳이다.
모카탐 동굴교회는 모카탐 지역을 거쳐 가게 되어있다.
카이로 ‘모카탐’ 지역은 ‘쓰레기마을’로 알려졌다.
이 마을은 카이로에서 나오는 쓰레기들을 분리수거해 생계를 꾸린다.
그래서 악취와 쓰레기들이 난무하다.
이 마을사람들은 콥틱교인들로 기독교인들인 것이다.
이 마을을 곡예 운전하듯 좁은길은 양방향으로 오가며 목적지인 마을 윗쪽 언덕에 이르니 거대한 바위산이 보이고 가파른 돌산에는 글씨들과 그림, 돌조각들이 새겨져 있었다.
유심히 보니 암벽에는 예수님의 삶과 사역, 부활과 재림의 거대한 성화와 성구들이 새겨져 있었다.
가이드는 동굴교회에 들어가기 전 전해지는 이야기를 전했다.
이집트는 주후 640년경 이슬람에 의해 지배를 받게 되었으며, 이후 300년간 기독교의 암흑기라 할 만한 큰 핍박들이 있어 왔다.
기독교에 대한 핍박이 절정에 이르렀던 주후 979년, 칼리프인 ‘알 무즈’는 기독교를 말살시키기 위해 당시 콥틱 교회 수장인 ‘아브라함’을 불러 다음과 같이 말했다.
“너희 기독교인들이 믿는 성경에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란 말씀이 있지 않느냐? 일주일 안에 저 건너편에 있는 바위산을 옮겨 놓아라. 만일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모든 기독교인들을 죽이겠다.”
이 말을 들은 ‘아브라함’은 근심하며 돌아와 하나님께 이 어려움을 헤쳐나갈 수 있도록 기도했다. 사흘 후, 아브라함은 기도 중에 밖으로 나가 지나가는 이에게 도움을 청하라는 음성을 듣게 되었다.
아브라함은 밖으로 나가 길을 지나던 큰 물병을 지고 다니는 한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이 사람은 ‘시몬’이라는 이름의 구두수선공이었는데, 어느날 구두 수선을 위해 찾아온 한 여인의 허벅지를 보고는 음욕을 품은 자신을 회개하며 성경의 말씀과 같이 자신의 눈을 찔러 한쪽 눈을 잃은 사람이었다.
또한 시몬은 물동이를 지고 다니며 고아와 과부, 노인들과 같은 약하고 병든 사람들을 돌보는 선한 사람이었다.
‘아브라함’은 성령의 음성을 따라 ‘시몬’에게 상황을 설명하며 도움을 청하였다.
그러나 ‘시몬’은 자신은 평범한 기독교인일 뿐이라며 몇 번이고 그의 청을 거절한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간절한 청에 결국 시몬은 전 기독교인들의 금식을 선포하며 함께 기도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일주일이 지나고 칼리프는 모든 기독교인들을 죽이기 위한 군대와 함께 진을 치며 기다리고 있었다.
한편, ‘아브라함’과 ‘시몬’ 그리고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을 죽이려는 군대를 마주한 채 하나님께 부르짖고 있었다.
죽음의 긴장이 감도는 곳에 간절한 기도 소리가 채워지고 있을 때, 흔들림없이 서 있는 큰 바위산이 굉음과 함께 공중으로 날아 옮겨졌다.
바위산이 큰 소리를 내며 움직이는 모습은 사람이 뚜벅뚜벅 걸어가는 모습을 연상케 하였고 ‘뚜벅뚜벅’ 걷는 모습의 의성어인 ‘까땀’이란 말을 통해 지금의 모카탐이란 지명이 생겼다고 한다.
이 사건을 통해 이집트의 기독교는 극심한 박해 가운데 신앙을 인정받을 수 있었고, 많은 무슬림들이 개종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고 한다.
돌산 사이의 좁은길을 따라가다보니 움푹들어간 동굴교회가 보였다.
동굴교회는 두 곳에 위치해있었다.
동굴 교회는 크고 하얀 돌산의 파인 곳에 예배 장소를 만든 15,000명이 수용가능한 중동 지역 최대의 교회라고 한다.
바위의 형태를 원형으로 넓게 계단형태로 둘러 강단을 향하게 했다.
강단에는 십자가와 성화, 촛대가 있었으며 누구나 기도할 수 있도록 열려있었다. 우리일행은 함께 기도하고 헌금을 모아 전달했다.
동굴교회를 둘러보고 나오는 길에 성구가 적혀있는 푯말을 보았다.
이사야 19장 25절 말씀이었다.
“전능하신 여호와께서 그들을 축복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실 것이다. 내 백성 이집트야, 내가 창조한 앗시리아야, 내가 택한 백성 이스라엘아, 너희에게 복이 있을 것이다.”란 말씀이었다.
이사야 19장 말씀은 애굽 (이집트)를 향한 심판과 구원 약속의 말씀이다.
동굴교회 곱틱교인들은 이 말씀을 푯말에 적어놓고 오가며 보고 또 보고 기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되어 팔레스타인과 이집트, 소아시아, 중동에 이르기까지 퍼져나갔던 기독교는 7세기 이슬람의 확장과 함께 지금은 모두 소수만이 남아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집트만은 이슬람권에서 유래를 찾기 힘들 정도로 많은 기독교인이 믿음의 뿌리를 지키고 있다.
이 신앙은 구두수선공 시몬과 쓰레기 속에서 소망을 키우는 모카탐 마을의 콥틱교인들처럼 이집트에서 그렇게 의연히 흘러오고 있는 것이다.
– 카이로를 뒤로하고 룩소르로
10월 15일 하룻동안 기자 (Giza)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파피루스 제조 공장, 나일강변에서 점심, 나일강 범선 체험, 국립 이집트 문명박물관 (The National Museum of Egyptian Civilization), 모카탐 동굴교회 방문 후 저녁식사 일정까지 마쳤다.
이제 기차를 이용해 룩소르로 밤새 이동하는 일정이다.
침실칸으로 이동하는 오늘밤과 내일도 만만찮은 일정이 될 듯하다.
룩소르에 도착하면 멤논의 거상, 왕가의 계곡, 핫셉수트 장제전, 카르낙신전, 룩소르신전 방문으로 일정이 빼곡하다.
임운규 목사 (시드니인문학교실 회원)
호주성산공동체교회 시무, 본지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