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 이집트 방문기 (6)
시드니인문학교실에서는 지난 2023년 10월 11일~21일 (이집트·이탈리아, 10박 12일), 10월 22일~24일 (강릉 오죽헌·설악산·남양주 다산생가, 2박 3일)에 “아는 만큼 보인다” (“I Can See As Much As I Know”)라는 주제로 제2차 인문학여행을 33인이 동행해 실시했다. 가서 보면 알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막상 가보니 오히려 더 알 수 없는 신비함에 압도되어 한동안 방문기를 어떻게 써야하나 생각하다가 몇 개월이 지났다. 그러나 희미한 기억보다는 기록으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에 용기내어 기록해 본다. _ 편집자 주.
이집트 카이로 (Cairo)에서 룩소르 (Luxor)로
– 카이로 일정을 마치고
2023년 10월 14일과 15일 이틀동안 카이로에서 묵으며 세라피움 신전 (폼페이 기둥), 마가 기념교회, 카이트베이 요새,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기자 (Giza)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파피루스 제조 공장, 나일강변에서 점심, 나일강 범선 체험, 국립 이집트 문명박물관 (The National Museum of Egyptian Civilization), 모카탐 동굴교회 방문 일정까지 마쳤다. 빠듯한 일정이었다.
639년 이슬람 왕조에 의해 건설되고 이집트의 중심지가 된 카이로는 나일강을 중심으로 신화와 역사, 종교, 문화가 어우러져 여전히 신비와 비밀을 품고 있다.
카이로를 떠나며 마치 신비의 샹그릴라에 다녀온 듯한 착각이 들었다.
15일 저녁 8시에 예약된 야간 기차는 예정보다 30여분 늦게 도착해 침실칸에 올랐다.
16일 오전 7시, 룩소르에 도착하면 멤논의 거상, 왕가의 계곡, 핫셉수트 장제전, 카르낙신전, 룩소르신전 방문으로 일정이 빼곡하다.
– 슬리핑기차를 이용해 룩소르로
카이로에서 룩소르까지는 650여Km거리로 교통수단으로는 비행기, 기차, 버스, 배편, 자가용 등이 있는데 우리 일행은 슬리핑기차를 이용했다.
기차 침실칸 2층에 누워 밖을 보니 점점 어두워지더니 도시를 벗어나자 짙은 어둠만이 가득했다.
좁은 침대칸이지만 피곤한 몸으로 곧 잠이 들었다.
이집트 남부에 위치한 룩소르 (Luxor)는 고대 이집트 시대부터 존재해 왔으며 인구는 40만명 정도이다. 룩소르 도시 전체가 박물관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룩소르신전, 카르낙신전, 멤논의 거상 등을 포함한 유적들이 위치해 있고 서안지역에는 왕가의 계곡과 왕비의 계곡이 있다.
이집트의 도시들은 대부분 나일강을 따라 늘어서 있다. 그렇기 때문에 도시들은 자연스럽게 남북으로 흐르는 나일강을 중심으로 서안과 동안으로 나누어진다. 룩소르도 예외는 아니다. 기차역이나 공항 같은 시설과 여행객들을 위한 숙소들 대부분은 모두 동안에 있고, 카르낙 신전이나 룩소르 신전 같이 유명한 유적지들도 동안에 있지만, 그렇다고 서안에 유적이 없는 것은 아니다. 룩소르에 도착해 첫 일정인 멤논의 거상이 서안에 위치해 있다.
– 룩소르에 도착해 멤논의 거상 (Colossi of Memnon)으로
10월 16일 오전 8시가 다되어 룩소르에 도착했다. 카이로에서 거의 12시간을 이동한 것이다. 조식 후 잠시 쉬니 도착시간이 가까웠다. 사실 도착시간을 착각해 누워 있다가 도착 5분전이란 소리를 듣고 급히 일어나 준비해 정신없이 아침을 맞았다. 어찌하든 내려야 하니 옷만 갈아입고 짐을 챙겼다.
룩소르 기차역에 도착하니 우리 일행을 위해 대형버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버스에 올라 친절한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멤논의 거상으로 행했다. 무슨 교통수단을 선택하더라도 서안에서 처음 만나게 되는 고대의 유산은 ‘멤논의 거상’이라고 한다.
버스 창밖으로 보이는 룩소르 일대의 전경은 카이로와 다르게 중형도시 정도로 도시 중심을 벗어나자 나일강물을 끌어들여 농작물을 가꾸는 농장들이 많이 보였다. 룩소르 지역 주민들의 피부톤도 카이로 시민들보다는 더 짙어보였다.
룩소르 기차역에서 30여분을 이동하니 멤논의 거상에 도착했다. 기원전 1351년에 완공된 멤논의 거상은 높이 18m, 780t에 이른다. 조각상 2구는 실제로는 아멘호테프 3세를 묘사한 석상이지만 고전기 그리스인들이 트로이 전쟁 신화에 나오는 아이티오피아 왕 멤논의 조각상으로 오해했는데, 아마 이름이 비슷해서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 조각상은 오랜 세월에 걸친 풍화작용에 의해 금이 가 있었다.
고대 이집트 제18왕조 제9대 파라오 아멘호테프 3세 (Amenhotep III, 기원전 1401년/1400년 ~ 기원전 1353년/1351년)는 후대에 등장하는 람세스 2세에 묻힌 감이 있지만 이집트 신왕국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명군으로, 많은 업적을 남겼기에 이집트인들은 그를 ‘아멘호테프 대왕’이나 ‘아멘호테프 대제’로 추앙해 부르기도 했다.
아멘호테프 3세는 약 39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재위하며 많은 업적을 남겼다. 투트모세 3세, 아멘호테프 2세 등을 포함해 전임 파라오들이 연이어 활발한 정복 활동을 펼치며 이집트의 강역을 넓게 확장한 것과 달리, 아멘호테프 3세는 정복 전쟁보다는 내치와 내수 번영에 집중했다. 평화를 추구했던 아멘호테프 3세의 시대에 이집트에서는 역사상 최대 규모의 왕궁을 신축하거나 나일 강변에 거상을 세우는 등 수많은 대규모 건설 프로젝트가 열렸고, 문화적으로는 빠른 발전을 이룩하였으며 경제 역시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바빌론 등을 포함해 부유한 메소포타미아의 대도시들과 교역하며 막대한 양의 물화들이 양국 사이를 오갔으며 이집트는 아멘호테프 3세의 재위 기간 내내 평화를 구가했다. 또한 혼자서 사자 100마리를 잡았다는 기록이 남아있을 정도로 일신의 무력도 굉장했기에 여러모로 위대했던 파라오로 기록된다.
아멘호테프 3세를 묘사한 조각상은 현재 약 250여 개가 남아있다고 한다. 모든 이집트 파라오들 중 가장 많은 수의 조각상들을 후대에 남기는 데에 성공한 것인데, 심지어 신왕국 최고 황금기를 이끈 람세스 2세보다도 많은 조각상들을 남겼다. 아멘호테프 3세는 재위 기간 내내 아문을 모시는 대신관들에게 막강한 권한을 실어주었고, 수많은 재물을 신전에 기부하며 그들의 지지를 이끌어냈다.
그러나 그의 뒤를 이어 즉위한 아케나텐은 아문 신앙을 혐오했다. 아케나텐은 아문 신앙을 부정하고 유일신이자 태양신인 아텐 종교를 새로운 국교로 정하고 널리 포교했는데, 워낙 종교에 대한 열정이 강했던지 자신의 이름이었던 ‘아멘호테프’마저도 개명했을 정도였다.
아케나텐은 이름을 바꾼 후 전국에 있는 아버지의 석상에 새겨진 아버지의 이름들을 열심히 지우고 다녔다. 때문에 이름이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조각상들까지 포함하면 아멘호테프 3세의 조각상은 더욱 많을 것이다.
아멘호테프 3세는 멤논의 거상들을 포함해 테베의 카르나크 대신전을 대대적으로 개축했다. 당시 카르나크 신전에는 사다리꼴 모양의 탑문이 이중으로 서있었는데, 이 앞쪽에 탑문 한쌍을 더 세워서 삼중으로 세웠다. 새로운 탑문과 기존의 탑문 사이에는 수많은 아름다운 열주들을 세워 회랑을 만들었고 오벨리스크를 세워 태양신 아문, 달의 신 콘수, 그리고 무트 등을 새겨넣었다. 그 외에 카르나크에 600개에 달하는 세크메트 여신의 석상들을 기부했으며 자신을 묘사한 여러 조각상들을 카르나크 곳곳에 박아넣었다. 또한 테베에 룩소르 신전을 세우는 업적을 남겼다.
그 외에도 나일 강 서안에 거대한 장제전을 만들어 제 위엄을 자랑하기도 했는데, 안타깝게도 나일 강이 홍수가 날 때마다 물에 잠기는 지역에 세워서 아멘호테프 3세 사후 200년도 되지 못해 완전히 버려졌다. 이후 신전의 석재들은 후대 파라오들이 자신 이름으로 신전이나 궁전들을 세우기 위해 제각기 떼어가면서 하나하나 사라졌고, 현재 남아있는 유일한 장제전의 흔적이 바로 위의 ‘멤논의 거상’들이다.
동명 (同名)의 멤논 (Memnon)은 새벽의 여신인 에오스와 티토노스 사이에 태어난 아들 중 하나로 트로이아 전쟁 당시 아이티오피아의 왕이었다. 고전기 그리스인들은 이집트 룩소르 서쪽에 남아있는 파라오 아멘호테프 3세의 조각상 2구를 멤논의 조각상으로 오해했는데, 아마 이름이 비슷해서였을 것이다. 멤논의 거상은 오래전 로마인들과 그리스인들이 이집트에서 보길 원하던 유적 중 하나였다. 실제로 밑부분에는 로마인, 그리스인들이 남긴 낙서가 남아 있다.
거상 중 북쪽에 있는 조각상은 기원전 27년 지진으로 (일설에는 풍화작용에 의해) 금이 가 기온이 갑자기 올라가는 사막의 새벽 시간에 금간 곳에 차있던 공기가 팽창하며 소리가 났는데, 그 소리가 마치 인간이 흐느끼는 소리 같아서 그리스인들은 멤논이 매일 새벽마다 어머니인 새벽의 여신 에오스에게 자신의 원통함을 호소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170년 셉티미우스 세베루스가 조각상을 복원하면서 소리는 더 이상 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후대에서 건물을 지을 때 조금씩 거상을 잘라 사용하면서 많이 훼손됐다.
우리 일행은 멤논의 거상 앞에서 기념촬영 후 거상의 주위를 돌며 가이드의 설명도 듣고 개인시간을 가졌다. 3,300여년 전에 세워진 거상이 여전히 남아 이야기를 역사로 환기시킨다.
멤논의 거상을 둘러본 우리일행은 세계적인 유적지 왕가의 계곡으로 향했다.
오늘 일정은 멤논의 거상, 왕가의 계곡, 핫셉수트 장제전, 카르낙신전, 룩소르신전 방문까지 일정이 빼곡하다.
임운규 목사 (시드니인문학교실 회원)
호주성산공동체교회 시무, 본지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