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과 신학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을 통해 본 신과 인간이해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어거스틴은 그의 고백록에서 “저는 주님과 제 영혼을 아는 것이 제 소원입니다. 그 이상은 알고 싶은 것이 없습니다”라고 고백한다. 이것은 인생과 인간에 대해 깊이 고민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간절히 찾고 싶은 인생의 근원적인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실존적인 질문들은 결국 종교로 환원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처절한 인간실존에 대한 고민없이 재단되어 있는 교리들을 아무 생각없이 되내이고 암송하는 것이 인간에게 참다운 구원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것일까?
빅터 프랭클은 나치 강제 수용소의 죄수들이 어떻게 수많은 고통을 견디어 내는가 하는 것을 죄수의 한 사람으로서, 정신과 의사요, 철학자의 관점에서 경험하고 발견한 실존분석이다. 그는 매일 곁에 있는 사람이 죽어 나가고, 그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실제 아우슈비츠 가스실에서 밤하늘의 연기로 사라지는 상황속에서, 인간실존의 처절한 경험을 하였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이 보다 더 처절하고 실존적인 경험을 한사람이 누가 있을까? 그리고 빅터 프랭클은 살아야 할 의미를 찾은 사람은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실존적인 진리를 죽음의 수용소에 발견했다. 그것이 바로 로고테라피, 즉 의미요법이다.
랭던 길키 역시 2차 세계대전 당시 중국 베이칭의 옌칭대학에서 영어를 가르치다가 일본군에게 붙잡혀 산둥수용소에 갇히게 된다. 거기에는 다행히 일본군에 의한 육체적 고문이나 굶주림, 정신적인 고통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그 수용소에서 가장 견디기 어려웠던 것은 우리를 구금한 일본군 때문이 아니라 우리 자신들의 행동에서 초래된 상황들 때문이었다. 랭던 길키는 이곳 산둥수용소의 공동생활을 통해 인간의 본성과 심연을 보았다고 고백한다. 인간사회의 근본적 구조를 여실히 드러내는 공간, 그곳에서 랭던 길키는 인간실존에 대한 본성을 보게 되었고 인간심연의 밑바닥을 체험하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분명 종교의 출발은 인간의 실존이다. 그러나 처절한 인간실존을 고민해 보지 않은채 종교적 법문이나 뇌까리고 자신이 속한 종교의 교리에 매몰해서 그것을 이해했다고 인간의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일까? 이번 시간에는 처절한 인간이해를 바탕으로 그가 평생 고민해 온 숙제를 소설로 용해한 도스토예프스키와 그의 작품을 통해 인간과 신(神)이해를 찾아보고자 한다.
도스토예프스키
도스토예프스키는 1821년 11월 11일 모스코바의 마이런스카야 구제병원 관사에서 7남매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 미하일 안드레예비치는 모스코바에서 의과대학을 졸업한 구제 병원 의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아버지는 화를 잘 내고, 성격이 난폭하고 괴퍅하였으며 시기심이 강한 사람이었다. 그런 시기심 때문인지 그는 그의 아내에 대한 의처증이 심해 아내와 가족을 괴롭혔다. 도스토예프스키는 후에 아버지의 의심병은 도스토예프스키에게도 여러 영향을 끼쳤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도스토예프스키의 어머니 마리아 표요드로부나는 교양과 품위를 가진 여자였다. 남편의 의처증에 시달리면서도 그녀는 쉬운 성경이야기책을 통해 자식들에게 읽고 쓰는 법을 가르쳤다. 도스토예프스키가 16세때 그의 어머니 마리아는 서른일곱의 젊은 나이로 폐결핵으로 사망했다. 어머니의 죽음은 가족에게 큰 충격이었으며, 1837년 아버지는 장남 미하일과 열여섯 살이 된 차남 도스토예프스키를 공병학교에 입학시키기 위해 상트 페테 르부르크로 보냈다.
아버지 미하일은 의심병 때문에 공연히 화를 잘내고 난폭하여 농사일을 하는 농사꾼이 인사를 하지 않는다고 야단을 호되게 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반복되자 1839년 앙심을 품은 농노들이 한꺼번에 달려들어 아버지 미하일 안드레예비치를 죽였다. 상트 페레르부르크에 있던 형제는 큰 충격을 받았으며 이 시기에 도스토예프스키를 평생 괴롭힌 간질 발작이 처음 나타났다.
도스토예프스키의 가정은 참으로 비극적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아버지는 술주정뱅이에 정신병자였고, 맏아들 미하일 역시 알코올 중독자였으며, 막내아들 니콜라이 역시 알코올로 폐인이 되었다. 맏딸인 바라바는 부유한 사람에게 시집갔으나 모든 고용인을 해고 시키고 추운 겨울에도 불기를 없애고 대신 집안에서 두터운 털외투를 입고 지낼 정도의 구두쇠로 나중에 근처에 사는 젊은 농사군 문지기에 맞아 비극적으로 죽었다. 그리고 그녀의 아들은 불행하게도 정신박약아였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상트 페테르부르크 공병학교에 입학한 후 5년 동안 사관학교 생활을 마치고 1843년에 소위로 임관하였다. 그는 사관학교에 재학하는 동안 발자크, 유고, 호프만, 괴테, 호메로스, 그 밖에도 프랑스의 고전주의의 비극 등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그 바람에 학교를 일년 낙제하기도 했다. 이것은 도스토예프스키가 얼마나 문학을 좋아했는지를 알 수 있는 단편적인 예화라 할 수 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육군공병학교를 졸업하고 소위로 임관하자 공병국 제도부에 근무했으나 하는 일이 적성에 맞지 않자 1844년 중위로 승진하자 곧 제대를 해버린다. 그리고 도스토예프스키는 낭비벽이 심해 물려받은 유산을 모조리 탕진하고 말았다. 1845년 늦은 봄 어느날 그는 한 해 겨울 동안 정열을 쏟아 완성한 처녀작 ‘가난한 사람들’을 출판한다. 그리고 그의 러시아의 대표적 평론가 베렌스키에게 큰 격려를 받게 된다.
도스토예프스키는 계속해서 ‘백야’, ‘분신’, ‘이중인격’ 등을 발표했으나 평론가들로부터 혹 평을 받고 심지어 자기를 칭찬했던 베렌스키마저도 등을 돌린다. 이 때부터 그는 서구주의 사상에 끌려서 사회주의 사상을 연구하는 페트라셰프스키 모임에 가담하였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미아일 페트라셰프스키를 중심으로 작가 등 젊은 지식인들이 모여 “공상적 사회주의”를 신봉하는 급진적 정치모임에 참가하였다. 당시 차르 니콜라이 1세는 첩자를 보내 정치모임들을 감시하였는데, 도스토예프스키는 모임에서 절대왕정의 입장을 신봉했다는 이유로 고골을 비난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불온문서로 간주되었던 벨린스키의 ‘고골에게 보내는 편지’를 낭독한 것이 원인이 되어 1849년 4월 23일 당국에 체포되었다. 니콜라이 1세는 체포된 지식인들을 사형에 처할 생각은 없었으나, 당시 확산되고 있던 급진주의 정치 모임들에 대해 경고하고자 직전에 특별사면할 계획으로 사형을 선고하였다. 도스토예프스키를 비롯한 회원들은 이 사실을 알지 못하였고, 총살형이 집행되기 직전에 형 집행이 중지되고 시베리아에 유형을 가는 것으로 감형 되었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살아온 이 경험으로 인해 몇몇 사람은 공포와 충격으로 인해 머리가 백발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도스토예프스키도 ‘백치’ 등의 작품에 사형집행직전의 심정을 묘사하는 등 그가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사건은 그의 작품세계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 그때 겪은 죽음의 극심한 고통과 체험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속에 강한 인상으로 작용하고 있다.
“살인자를 처형한다는 것은 범죄 자체보다 비교할 수 없이 가공할 만한 처벌이다. 처형된다는 것은 강도에 의해 죽게 될 사람, 이를테면 밤에 숲속에서 그의 목이 잘리게 될 사람도 마지막 순간까지 죽음을 면할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 이보다 더 큰 고통이란 세상에 없다 … 미치지 않고 이 고통을 이길 수 있는 인간이 있다고 누가 말했던가?”(E.H.카, 도스또예프스키, 김병익·권영빈, 서울: 홍성사, 1979, 57-58).
계획대로 사형의 집행은 중지되었지만 도스토예프스키는 발에 족쇄를 채운채 시베리아 강제 수용소에서 4년의 징역과 4년의 시베리아 파견부대에서 병역의무를 언도받고 시베리아로 끌려간다. 떠나는 일행들에게 죄수들의 아내들이 신약성경을 줄 수 있었다. 죄수들에게 공식적으로 허용된 유일한 책은 성경이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평생동안 이 책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가 죽음직전 머리맡에서 지키고 있던 안나에게 그 성경에서 한 구절을 읽어주라고 부탁했다.
지옥같은 시베리아 수용소에서 도스토예프스키는 인간의 밑바닥을 보고 체험하며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실존적으로 들여다 볼 수 있었다. 4년간의 강제수용소의 생활은 험하고 지옥처럼 고통스러운 생활이었다. 악취와 혼란, 먼지와 벼룩, 낙인, 매질, 원망과 분노, 족쇄를 차고 사는 세월속에서 겪은 체험을 쏟아 부어 적어 놓은 책이 바로 ‘죽음의 집의 기록’이다. 감옥은 지옥같은 곳이었지만 인간은 혼자만의 생각을 갖게 되기를 원하며, 선인과 악인이 동시에 존재하는 곳임을 도스토예프스키는 배우게 되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감옥에서 그동안 사회에서 말하는 선과 악은 배타적인 것이 아니며, 인간의 법과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도덕률이 얼마나 모순덩어리인 것을 깊이 깨닫게 된다.
양면성이란 단순히 인간의 위선이 아니라 성숙한 인간 속에 있는 본질적인 요소이다. 그것은 삶 차체의 한 부분이다. 인간의 감정속에는 그 감정과 반대되는 씨앗을 가지고 있다. 사랑에는 증오가, 쾌락에는 고통이, 겸손에는 자만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와같은 인간이해는 그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과 ‘죄와 벌’에 고스란히 용해되어 소설로서 꽃을 피우게 된다.
도스토예프스키는 항상 음산한 분위기를 좋아했고 질투심이 강했다. 그는 광신적인 도박가요, 간질병 환자요, 변태성욕자였다. 도스토예프스키와 처음 결혼한 마리아 드미트리예프나는 폐병에 걸려 죽기까지 4년간 만성병자가 되었다. 그는 고백하기를 아내를 사랑했지만 행복한 결혼 생활은 아니었다고 회상한다. 사랑했지만 행복한 결혼생활이 아니라는 그의 모순성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인간적으로 보면 비극적인 가정에서 자랐고 광신적인 도박가요 간질병 환자요, 변태성욕자인 도스토예프스키가 러시아의 대문호가 되었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러나 그에게도 헌신적인 아내가 있었다. 속기사 안나는 21세의 젊은 나이에 46세의 도스토예프스키와 결혼했다. 안나의 헌신적인 사랑과 보살핌이 없었다면 그가 러시아의 대문호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1879년 1월 그의 나이 58세에 대작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을 러시아 통보에 연재하기 시작해서 1880년 11월 8일 탈고했다. 인생 말년에 도스토예프스키는 소설가로 서의 명성을 얻게 되었다. 1881년 1월 28일에 아내 안나에게 자기가 평생 지니고 다녔던 신 약성서를 펴서 주면서 읽어달라고 했다. 그 구절은 바로 마태복음 3장 2절이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도스토예프스키가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을 쓰기 시작한 것은 1878년 여름이지만 그는 오래전부터(일반적으로 10년 전인 1868년부터 작품을 구상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작품을 구상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처음에는 ‘무신론’ 또는 ‘위대한 죄인의 생애’라는 이름으로 대하소설을 쓰고자 했지만 결국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이라는 이름으로 1879년 1월부터 “러시아 통보”라는 잡지에 연재하다가 1880년 11월에 연재가 끊어졌다. 그리고 도스토예프스키가 죽은 후에 단행본으로 출판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은 미완성 작품인 것이다.
후에 살펴보겠지만 사실, 도스토예프스키에게는 그를 평생 따라다닌 실존적인 고민이 있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그것을 그의 친구인 마이코프에게 고백한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내 모든 생애를 괴롭혀 온 거대한 문제는 신의 존재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도스토예프스키를 평생 따라다니면서 근원에서부터 그를 괴롭혀 왔던 문제는 바로 “신의 존재”에 대한 문제였다. 그도그럴것이 도스토예프스키는 ‘시베리아 강제 수용소에’ 수감되었을 때 그곳에서 경험했던 인간의 모순된 양면성들을 뼈아프게 경험하고 나서 나온 인간에 대한 실존적인 물음이었던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그 곳에서 석방된 후에 자기를 도와 준 폰시나부인에게 편지를 통해 자신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이렇게 표현했다.
“많은 사람들이 당신은 아주 종교적인 분이라고 내게 말해줬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종교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내 자신이 그렇게 느끼고 또 체험했기 때문에 나는 때때로 사람이란 ‘목마른 풀’ 처럼 신앙을 갈망하고 불행속에서 진리가 빛을 발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당신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내 자신에 대해 말한다면 나는 불신론과 회의론 시대의 아들입니다. 지금까지 그래왔고 아마 무덤에 들어 갈 때까지 그럴 것입니다. 신앙에 대한 이런 갈망의 고통이 수도없이 나를 괴롭혀 왔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내가 그것을 강하게 거부하면 거부할수록 그것은 내 영혼에 더욱 강하게 솟구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가 완전히 고요해지는 순간을 주시며, 그런 순간에 나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또 그들로 부터 사랑받는다고 느껴집니다. 그런 순간이면 내 가슴속에는 모든 것이 내게는 밝고 선하게 보이도록 하는 신앙의 상징을 품습니다. 이 상징은 단순합니다 … 그렇습니다. 나는 질투어린 애정을 갖고 다른 존재는 있을 수 없다고 스스로에게 말합니다. 그 이상으로 나는 누군가가 그리스도가 진리속에 있지 않다고 증명해 보인다 할지라도 나는 오히려 진리보다 그리스도와 더불어 있을 것이라는 점입니다”(E.H.카, 도스또예프스키, 282-283).
이 고백을 통해 볼 때 도스토예프스키는 인간의 실존적 물음을 통해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신앙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관점으로 본다면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은 어쩌면 신의 존재와 모순된 인간의 문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신과 모순된 인간이 어떻게 신과의 화평을 이룰 수 있을까? 어떻게 모순된 인간의 구원을 말할 수 있을까?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은 카라마조프의 가정사를 소개함으로 시작된다. 카라마조프가는 몰락한 시골귀족의 후예인 아버지 표도르가 가장으로 등장한다. 그는 방탕하고 무자비한 호색한이다. 그의 유일한 인생의 목적은 술과 여자뿐이었다. 이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돈이 필요하니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모으려고 한다. 표도르에게는 네 아들이 있다. 큰 아들인 드미트리는 부친의 방탕한 피를 이어받아 음탕하지만 한편으로 시적 감수성이 뛰어나 영원한 것에 대한 순진한 동경심을 품고 있는 아들이다. 둘째아들인 이반은 철저한 무신론자요 합리주의자이다. 그의 왕성한 지적 욕구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백치이자 미치광이 여자에게 낳은 서자 스메르자코프이다. 스메르자코프는 비열한 인간으로 자신의 출생성분과 형편때문에 원망과 적개심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고, 차남 이반의 심오한 이론에 대해 자기 나름의 비속한 해석을 내리고 유산을 차지하기 위해 부친살인을 결행한다. 그리고 셋째아들이자 막내인 알료샤는 순결하고 온화한 사람으로 종교심이 강하고 그의 맑고 선한 마음은 타인에 대한 무한한 사랑과 동정으로 늘 충만했다.
아버지 표도르는 고리대금업으로 돈을 번 졸부이지만, 탐욕스럽고 방탕하게 살면서 3명의 아내에게서 4명을 아들을 낳는다. 그런데 서자 스메르자코프는 집에서 하인으로 일하면서 아버지로부터 받는 차별때문에 아버지 표도르를 증오한다. 또한 장남 드미트리와 아버지 표도르는 그루셴카를 사이에 두고 애욕의 투쟁을 벌인다. 그러면서 드미트리는 동생 이반과 함께 두 여성 카테리나와 그루셴카와 사랑과 질투의 관계를 형성한다. 어느날, 드미트리는 돈 문제에 쪼들리게 되면서 아버지 표도르와 몸싸움까지 하면서 크게 다투게 된다. 그리고 아버지 표도르는 누군가에 의해 살해된 채 발견되는 것이다.
신은 존재하는가?
도스토예프스키는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을 통하여 인간 실존의 본질과 신의 존재에 대해 고민한다. 신의 존재 문제는 카라마조프가의 아버지와 아들간의 반목과 질투, 형제간의 대화, 예수의 화신같은 삶으로 감화를 주고 있는 조시마장로의 삶과 메시지, 스메르자코프의 친부 살해와 차남 이반이 양심의 가책으로 정신분열증을 겪는 것들을 통해 묘사되어 진다. 도스토예프스키에 의하면 신의 존재 문제는 인간이해와 맞물려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질문은 모순된 인간의 양면성에서 보여진다. 그리고 이것은 나중에 이반의 신관에서 명료하게 나타난다.
인간의 모순된 양면성은 한 애인을 두고 음탕하고 탐욕적인 아버지 표도르와 큰 아들 드미트리 사이에서 나오는 반목과 질투 가운데 드미트리가 수도사 동생 알료샤와의 대화를 통해 묘사된다.
인간의 양면성
표도르의 장남 드미트리는 러시아적인 야성과 정열 그러면서도 순진성을 가지고 있다. 한편으로는 그는 세상적인 인생을 살면서도 그 안에 인간의 순진성이 있다. 드미트리는 자기의 동생 알료샤에게 인간의 양면성을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벌레에겐 정욕을! 알겠니 알료샤!! 내가 바로 그 벌레란 말이다. 그건 특히 나를 두고 하는 말이야. 우리 카라마조프 일가는 모두 그런 인간들이지, 그래서 천사 같은 너의 내부에도 그런 벌레가 살고 있어서 네 혈관 속에서 폭풍을 일으키는거야. 암 폭풍이고 말고, 욕정은 곧 폭풍이니까! 아니 폭풍보다 더 하지! 미(美)라는 것은 소름이 끼칠정도로 무서운 거야! 그것이 무섭다는 건,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정의를 내릴 수 없기 때문이야, 하느님은 수수께끼만을 던져주고 있는 거야! 아름다움속에는 양극단이 함께 존재할 뿐더러 온간 모순이 함께 존재하고 있거든 … 아! 미(美)라는 것은 정말! 그리고 내가 참을 수 없는 건 고상한 마음과 뛰어 난 지혜를 지닌 인간이 마돈나의 이상을 품고 출발했다가도 결국 소돔의 이상으로 끝나고 만다는 사실이야. 아니 더욱 무서운 것은 이미 소돔의 이상을 가슴속에 품고 있는 인간이 마돈나의 이상을 부정하지 않고 마치 순결무구한 청년시절처럼 그 이상을 동경하며 진심으로 가슴을 불태우고 있다는 사실이야 …”(도스토예프스키, 카라마조프가 형제[상], 박호진 옮김, 서울: 혜원출판사, 1993, 149).
드미트리에 의하면 인간이란 선한 것도 아니고 악한 것도 아니다. 인간 속에 선과 악이 공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서운 것은 악이 선속에 가려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평소에는 거룩한 천사와 같은 인간이지만 어떤 때에는 소돔과 고모라 같은 감추어진 악이 폭풍처럼 터져 나오는 것이 인간이다. 그래서 인간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런 모순된 양면성을 모두 가지고 있다. 인간이란 포장된 상품의 색깔처럼 다양한 색깔을 가지고 있지만 그 안에는 악의 성향이 도사리고 있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색깔이 다르기 때문에 인간은 다르다고 말하는 것은 모순이 아닐까?
수수께끼 같고 신비스러우면서도 모순투성이인 존재가 하느님의 피조물임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신의 존재는 인간 마음속에 일어나는 선과 악의 투쟁속에서 보여지는 것은 아닐까?
차남 이반의 신관
신의 존재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은 대학을 졸업하고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머리를 가진 차남 이 반을 통해서 제기된다. 이반은 박애주의자인 그의 동생 알료샤에게 고백하기를 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는다고 했다. 왜냐하면 험난하고 불안한 세상에서 희망을 갖고 살기 위해서는 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반에게 신이란 인간의 필요성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이반을 고뇌케 한 것은 신의 존재 여부가 아니라 신이 창조한 세상을 믿을 수 없는 것이 문제였다. 그것은 신이 창조한 세상에 너무나도 많은 모순과 고난이 있기 때문이다. 신이 창조한 세상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신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신이 창조한 세계에 있는 악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신을 믿을 수 없다. 이것은 일종의 신정론의 주제이다. 만약에 신이 존재한다면 왜 이세상은 이렇게 부조리와 모순으로 가득차 있는가? 이 많은 악과 선한 자들의 고통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
신이 창조한 세계에서 벌어지는 모순성은 이반의 이야기를 통해서 신랄하게 제기된다. 19세기초 농노제도가 지배하던 시대에 장군이자 지주에게 하인이 있었다. 이 하인의 아들이 어느 날 돌팔매질을 잘못하여 지주의 사냥개의 발을 다치게 한 것이 화근이 되어서 어머니가 보는 앞에서 장군지주는 아이의 옷을 발게 벗긴 후, 달리게 하며 자기 사냥개들이 물어뜯어 죽게 한다. 과연 이런 무자비한 사건이 인간이 사는 세계에 존재할 수 있는가? 만약 아이의 어머니가 신자라고 한다면 자기 아들을 사냥개에게 물어 죽게 한 지주를 용서할 수 있을까? 과연 아이 어머니는 아이의 고통을 용서해 줄 권한을 가지고 있는가? 신의 뜻은 어디에 있는가? 아이는 그렇게 죽도록 예정되어 있는가?(도스토예프스키, 347-352) 아니면 그 아이의 타고난 운명인가?
종교지도자들의 외식과 대심문관
그렇다면 종교지도자들은 어떠한가? 차남 이반은 자신이 지은 극시 “대심문관”을 통해서 당시 교회의 타락상을 고발한다. 활활 타오르는 장작더미 위에서 이단자를 불태우면서 “오직 하느님께 영광(Soli Gloria Dei)!”을 외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이 광경을 지켜보기 위해서 내려오신 주님을 민중들은 알아보는데, 민중을 예수에게 인도해야 할 대심문관은 예수를 알아보지 못한다. 오히려 이단자를 태우라고 소리소리 외친다. 하나님의 영광을 빙자해서 이단을 불에 태운 종교지도자의 위선과 분노에 대한 아이러니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대심문관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너는 그리스도냐?”라는 질문을 했다. 주님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 대신 시기와 오만으로 가득차 시꺼멓게 굳어있는 대심문관의 입술에 키스를 했다. 이것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
이반은 결국 신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모든 것이 허용된다는 소름끼치는 사상을 갖게 되며 급기야는 살인까지도 허용된다고 믿었다. 이 사상은 이복동생 스메르자코프에게 영향을 끼치게 되어 결국 이복동생은 자신의 아버지 표도르를 죽이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한다. 서자이기는 하지만 친부를 죽인 스메르자코프는 양심의 가책을 받아 결국 목맹 자살하게 되고 스메르자코프를 사주한 이반은 양심에 가책을 받아 정신병자가 된다.
이러한 것을 통해 도스토예프스키는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일까?
부패하고 부조리하며 모순으로 가득찬 이 세상과 인간들에게 구원의 희망이 존재하는가? 죄악으로 물든 세상을 회복할 가능성은 없는가? 사랑과 질투, 불신과 신뢰, 고난과 쾌락의 심성을 가진 모순된 인간을 회복하는 가능성을 없는가?
존재의 이유: 나는 존재한다, 고로 나는 사랑한다.
조시마 장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화신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설교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이야기로 서술한다. 조시마 장로에 의하면 그리스도의 핵심 메시지는 사랑이다.
“형제들이여! 인간의 죄를 두려워 말라. 죄악에 물든 사람일지라도 그를 사랑하라. 그것은 이미 하느님의 사랑에 가까운 것으로 지상에서 가장 고귀한 사랑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느님의 모든 창조물을, 그 전체와 모래 한알 한알에 이르기까지 사랑하라. 나뭇잎 하나, 빗방울 한줄기라도 사랑하라. 동물을 사랑하고, 식물을 사랑하고, 모든 사물을 사랑하라. 여러분이 만물을 사랑한다면 그 만물 속에서 하느님의 신비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
겸허한 사랑은 모든 힘 중에서 가장 강력한 무서운 힘이며, 이와 비길만한 강력한 사랑은 없다”(도스토예프스키, 460-461).
인간은 시간과 공간이라는 과학을 통해서 정의되는 존재가 아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이 세상에 사랑을 실천하며 살도록 능력을 부여 받았다.
“지옥이란 무엇인가? 나는 그것을 ‘더 이상 사랑할 수 없는 한계에서 오는 고통’이라고 해석한다. 시간적, 공간적으로 한계를 가늠지을 수 없는 무한의 세계에서 어떤 정신적인 창조물이 이 지상에 출현했을 때 그에게는 ‘나는 존재한다. 고로 나는 사랑한다’라고 말할 능력이 주어진다 … 그에게는 활동적인 ‘생명있는’ 사랑의 한순간이 한 번 꼭 한 번 부여되었는데, 그것을 위해 부여된 것이 지상의 생활이다”(도스토예프스키, 465).
조시마 장로에 의하면 이 지상의 생활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장소이다. 그것도 여러번 기회가 주어진 것이 아니라 단 한번의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때가 되어 이 세상을 떠나게 된다 면 그 기회마저도 없어지고 마는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조시마 장로의 입을 빌어 인간의 실존적이고 심오한 인간이해를 표현한다. 그가 이해하는 인간의 존재이유는 사랑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랑하지 않는다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인간 존재의 의미는 말과 혀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는데 있다(요일 3:18). 그리고 성경은 하나님은 사랑(요일 4:8)이라고 묘사되고 있다. 이것은 다른 측면에서 살펴본다면 하나님은 누구신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나님은 누구신가? 사랑이시다. 그렇다면 인간의 사랑속에 하나님이 발견된다는 이야기이다.
알료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셋째 아들 알료샤는 예수님의 화신인 조시마 장로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탐욕, 오만, 시기와 질투의 화신인 카라마조프가에 알료샤의 직무는 중보자 예수님처럼 화해와 사랑을 실천하는 사랑의 메신저로서 행동한다. 그는 예수님의 사랑을 덧입어 실천하는 수도사로서 어느 누구에게나 편파성을 갖지 않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누구나 도와주고 누구나 믿어주는 사랑의 수도사이다.
알료샤는 전에 자기에게 돌팔매질을 한 것이 인연이 되어 알게 된 소년 일류사의 장례식에 참석했다. 그는 자기를 반기며 에워싼 많은 소년들에게 긴 작별인사를 한다. 많은 추억중에서도 가장 신성한 추억의 중요성을 강조한다(그 신성한 추억은 살아생전에 선한 일을 하고 사랑의 추억을 많이 간직하고 있는 것은 가장 값진 교육이라는 것이다).
“과거에 그러한 추억을 많이 간직하고 있는 사람은, 한평생 구원의 손길이 끊임없이 계속 뻗칠 것이다. 그리하여 그런 아름답고 거룩한 추억이 단 한가지라도 너희들의 마음속에 남아 있다면, 그 추억은 언젠가는 반드시 마음의 구원으로 큰 구실을 하게 될 것이다 … ‘우리는 악인이 되어서는 안돼, 내가 그런 말을 한것도 다 그것이 두려워서야’ … ‘무엇보다도 우린 선량한 인간이 되어야 한다. 또한 우리는 성실해야 한다. 나는 이것을 거듭 강조하고 싶다. 얘들아, 난 맹세코 말할 수 있어, 너희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영원히 잊지 않겠다고 말이야”(도스토예프스키, 608).
알료샤는 고별인사를 하면서 선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성실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이러한 선하고 사랑의 추억을 간직하는 것이 언젠가는 반드시 마음의 구원으로 큰 구실을 하게 될 것이라고 설파한다. 그러한 추억은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게 함으로 현재 악으로부터 지켜주기 때문이다. 알료샤는 고별사를 하면서, 죽은 일류사의 부활을 확신하면서 장례식에 모였던 사람과 영원히 서로 손을 잡고 살기를 소원하면서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의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나가면서
사실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은 인간을 관조함으로 분석하거나 객관적으로 정의를 내림으로 인간실존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카라마조프가’의 음울하고 어두운 내용들의 얽히고 섥힌 이야기들을 중심으로 인간이해에 다가간다. 어떻게 보면 ‘카라마조프가’의 이야기는 도스토예프스키 자신의 가족사와 그가 시베리아 수용소에 겪은 이야기들인지 모른다.
이 길고도 음울한 이야기들을 통해 도스토예프스키가 말하려고 하는 것은 무엇일까? 인간은 죄악되고 부조리하며 모순된 양면성을 가진 희망이 없는 존재라는 것인가? 그리고 러시아 종교를 비롯한 로마 가톨릭교회의 부패와 성직자들은 또 어떤가? 그들의 위선을 통해 보았듯이 종교는 위선의 탈을 쓰고 민중을 착취하는 것에 불과한 것인가? 그러나 도스토예프스키는 조시마 장로와 얄료샤를 등장시켜 그가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있다. 그것은 종교가 아니라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도스토예프스키가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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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다음은 필자의 폐북친구인 캐나다 VIEW 대학원의 최종원교수의 글이다.
양파 한 뿌리와 구원
1. “옛날에,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사악했던 한 여인이 죽었다. 그녀는 이 땅에서 단 하나의 선행도 하지 않았다. 악마는 그 여인을 잡아 화염의 호수에 던져버렸다.
그녀의 수호천사가 불쌍한 마음이 들어 이 여인이 하나님께 은혜를 구할 선행을 한 것이 있는지 기억했다. 마침내 천사는 이 여인의 생애 동안 했던 단 한 가지 선행을 기억했다. 그것은 바로 양파 한 뿌리를 뽑아 구걸하는 여인에게 준 것이었다.
수호천사의 말을 들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 양파 한 뿌리를 가져와 불타는 호수 속의 여인에게 던져주어라. 여인이 그 양파를 잡으면 그 줄기를 끌어 당겨 여인을 호수에서 건져내라. 그러면 이 여인은 낙원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 말씀대로 천사는 불타는 호수 속에서 고통당하고 있는 여인에게 양파 한 뿌리를 던졌다.
‘여인이여, 여기 이 양파 뿌리를 잡으시게. 내가 그대를 끌어 낼 터이니.’
그 말에 여인은 간절한 마음으로 양파 뿌리를 힘껏 끌어안았다. 천사는 줄기가 끊어질 세라 조심스레 양파 줄기를 끌어올렸다. 이제 거의 호수밖으로 끌어올려질 때, 그 여인이 끌려올라 가는 것을 본 불의 호수 속의 다른 죄인들이 그녀의 다리와 온 몸에 필사적으로 매달려 같이 빠져 나오려고 했다. 그 때 이 사악한 여인은 있는 힘껏 발로 차고 몸을 비틀어 매달린 사람들을 떨어뜨렸다.
‘밖으로 빠져나가야 할 사람은 너희들이 아니라, 바로 나야! 이건 내 양파야. 너희 것이 아니야. 저리 가!’
여인이 이 말을 하자 그 즉시로 양파 줄기가 끊어졌다. 여인은 다시 불의 호수 속에 던져져 지금까지 불타고 있다. 이에 천사는 울며 떠나갔다”(도스토예프스키, 508-509).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나오는 짧은 이야기이다.
2. 이 짧은 문장들 속에는 인간과, 죄, 구원의 문제를 고민했던 도스토예프스키의 사유가 집약되어 있다. 칼뱅이나 웨슬리와 관계없는 그의 사유를 굳이 서구식으로 해석할 의도는 없다. 만약 서구 신학의 잣대로 이 여인을 이해한다면 우스꽝스러운 논쟁이 벌어질 것이다.
보편의 상식으로 볼 때 그녀에게 구원의 손길을 베풀 꼬투리가 된 것은 양파 한 뿌리의 선행이지만, 하나님이 그 선행의 가치를 인정해서 구원하려고 했던 것은 아닐 터이다. 도리어 선행이라고 할 수 없는 양파 한 뿌리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은, 구원이 전적인 은혜로 인한 것임을 역설적으로 웅변하고 있다.
이것이 그녀가 구원 받을 마지막 순간에 구원을 상실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녀의 양파 한 뿌리의 선행이 구원의 꼬투리였다면, 자신에게 매달린 다른 죄인들을 발로 차서 떨어뜨리던 말던 불웅덩이에서 건져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전적인 신의 은총으로 구원의 기회를 얻었음에도 그 은혜를 잊고 ‘내 양파’에 타인이 같이 매달려 구원 받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에 공멸한 것이다.
구원은 우리의 공로가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총으로만 얻어지기에 인간의 의는 무익하다고 주장한다. 원칙적으로 누가 이를 부정할 수 있을까. 기이하게도 인간의 전적인 타락과 신의 전적인 은혜를 소리 높여 외치는 개인들이나 신학부류가 이 땅에서 행하는 모습은 마치 이 여인과 흡사할 때가 많다.
구원이 우리의 공로로 주어지는게 아니라면 우리가 감히 누구를 차별할 수 있을까. 정말 구원이 은혜로 주어진다는 걸 믿는다면 다른 이를 정죄함으로 자기 구원을 정당화하는 행위는 모순이다. 그런데 누가 감히 어쭙잖은 심판대에 올라서서 가느다란 양파 한줄기의 은총을 나누고자 매달리는 이들을 발로 밀어낸단 말인가.
모르긴 해도 그 여인이 그 때에서라도 자신의 악함을 회개하고, 자신에게 매달려 함께 불웅덩이에서 빠져나오고자 했던 이들을 끌어안았다면 모두 구원의 기쁨을 누렸을 것이다.
3. 구원의 배타성은 구원이 배타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구원 받았다고 주장하는 자들의 배타성에 기인한 것인지도 모른다. 구원은 배타함으로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나눔으로 성취되는 것이다. 심판은 우리의 몫이 아니다. 우리의 몫은 서로 영접하고 사랑하는 것이지, 구별하고 배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자신이 맞고 다른 것은 틀리다고 올곧게 주장하는 이들이야말로 구원을 헛되게 하는 것이다.
철저한 죄인임을 고백하고 오직 은혜의 구원을 주장한다면, 어찌 감히 자신의 구원을 자랑하며 타자를 아니라고 심판할 수 있을까. 이런 것은 구원이 아니다. 구원이어서는 안 된다. 그러한 도식적인 구원관이 오늘 한국 교회를 이 지경으로 만든 주범이 아닌가. 신학적으로 타당하다고? 그렇다면 그건 옳은 것이 아니다.
짐짓 신령한 이들은 구원이 행위로냐, 은혜로냐를 따지겠지만 놓치는 것이 하나 있다. 구원이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공동체적인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구원의 공동체는 어떻게 유지될까? 양파 한 뿌리의 가르침에서 보자면 구원은 배타함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가치 없는 자들도 포용할 때 유지되는 것이다. 나도 죄인이지만, 나만 이 구원의 자격이 있고 다른 이에게는 없다고 외치는 순간, 그 여인처럼 다시 나락으로 떨어진다.
배제함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강화하고자 하는 것은 전체주의이다. 그들이 머무는 곳은 천국일 수 없다. 전체주의는 그 자체가 불타는 호수일 뿐이다.
주경식 교수(호주비전국제대학 Director)
전) 웨슬리대학 · 시드니신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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