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7년 1월 30일, 일본의 제122대 왕 메이지 (明治, 1852 ~ 1912) 등극과 메이지 시대 (明治時代, 1868 ~ 1912) 도래
메이지 (일: 明治)는 일본의 제122대 왕 (재위: 1867년 1월 30일 ~ 1912년 7월 30일)의 이름으로 ‘메이지 시대’는 메이지 유신 이후의 메이지 왕의 통치를 가리키는 이름이다.
메이지 시대 (일: 明治時代, めいじじだい)는 메이지 유신 이후의 메이지 왕의 통치를 가리키는 이름으로, 1868년 1월 3일 왕정복고의 대호령에 의해 메이지 정부가 수립된 후 1912년 7월 30일 메이지 왕이 별세할 때까지 44년 간으로, 쇼와 다음으로 긴 연호이다 (메이지 왕의 즉위는 메이지 유신 1년 전인 1867년 2월이다).
일본 제국의 전반기에 해당되는 시기이며, 메이지 유신부터 신해 혁명 종결까지의 시기하고 일치한다. 메이지 (明治)는 ‘역경’ (易經, 說卦傳 4장)의 성인남면이청천하, 향명이치 (聖人南面而聽天下, 嚮明而治; 성인은 남쪽을 향해 천하의 의견을 듣고, 밝은 것을 향하여 다스린다)에서 따온 글자이다.
메이지 덴노가 재위했던 시기에 사용한 일본의 연호이자 시대 구분이다. 서력으로는 1868년 ~ 1912년으로, 유럽의 벨 에포크 시대 (1871 ~ 1914)와 기간이 거의 일치한다. 한자로는 明治 (명치), 전각 문자 한 글자 공간에 넣으면 ㍾이다.
이 시절부터 일세일원제 (一世一元制)가 채택되었기 때문에 무츠히토 덴노의 재위기간을 메이지 시대라고 부르며, 무츠히토 덴노를 가리켜 메이지 덴노라고도 부른다. 메이지 유신이 이 때 일어났다.
사실 메이지 덴노 즉위 이듬해인 1868년까지 선왕인 고메이 덴노의 연호인 게이오 (慶應)를 그대로 썼기 때문에 엄밀한 의미에서의 일세일원제는 아니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본래 동아시아권의 연호는 군주가 사망하더라도 당해년까지는 전황의 재위년으로 계산하기 때문에 1867년까지 게이오 연호를 썼다면 정상적으로 제대로 연도를 센 게 맞다. 하지만 메이지라는 연호가 채택된 것은 1868년 9월인데, 사망한 전임 덴노의 연호를 1년 넘게 사용했다는 점은 확실히 드문 예라고 할 수 있다. 여하튼 메이지로 개원함과 동시에 연호를 1868년 1월까지 당겨서 소급적용했기 때문에 일세일원제가 확립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다만 태음력에서 태양력으로의 변환도 동시에 진행했기 때문에 이 해의 날짜를 세는 건 약간 복잡하다.
즉 1868년 음력 9월 8일 (양력 10월 23일), 연호를 ‘메이지’로 개원하면서 게이오 4년 1월 1일부터 9월 8일까지의 날짜를 삭제하고 이를 메이지 원년 1월 25일부터 10월 23일로 고쳤다. 그리고 ‘일세일원의 조’를 발표해 이제부터는 한 덴노에 하나의 연호만을 쓰도록 공포했다.
실질적으로는 1868년 10월 23일에 메이지 연호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근대 일본은 연대를 셀 때 서력기원을 병기하지 않고 연호만을 표기했기 때문에, 메이지 20년대와 30년대는 각각 1887년부터 1896년, 1897년부터 1907년이 되어 우리에게 익숙한 서기연도와 대응시켜 이해하기가 힘들다.
○ 정치
메이지 년간의 정치 체제는 크게 전반기와 후반기로 나뉜다. 전반기는 메이지 정부의 시기 (1868 ~ 1890년), 후반기는 일본제국 헌법 시행 이후 (1890 ~ 1912년)이다. 메이지 정부는 일본 제국의 초기 정부이다.
○ 대외 관계
메이지 시대의 대외 관계에서 특징적인 요소는 불평등 조약의 철폐에 집념을 불태우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의 제국주의 외교의 시작은 메이지 유신의 일본제국의 성립이다. 1868년부터 1911년까지 (즉 메이지 시대)은 도쿠가와 막부가 체결한 불평등 조약을 상속했다. 또한 불평등 조약이 전폐되었다. 1911년 중국에서 신해 혁명이 발발한 해이기도했지만, 쑨원과 장제스 등 대륙시기 중화민국의 지도자들은 메이지 년간의 일본제국에 유학 하고 있었다.
불평등 조약의 철폐를 지향하는 정부의 활동은 1880년대의 “녹명관을 외교”가 상징적이다. 또, 메이지 정부는 국력을 강화하기 위하여 “외국인 초빙사”을 초청하였고, 그들은 서양 문명의 보급에 의한 일본의 발전에 크게 공헌했다.
○ 일본의 산업 혁명
일본의 산업 혁명 이 메이지 시대에 일어났다. “외국인 초빙사”의 초빙을 비롯해 서양식 산업이 대량 신속하게 수입되어 일본화되어 갔다.
산업 혁명 시대의 일본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일본 최초의 철도 개업 (1872년), 토미오카 제사장, 국내 권업 박람회 (1877년), 일본에서 전화 개통 (1900년), 야하타 제철소 (1901년 개관) 등이 대표적이다.
○ 이 시대의 주요 사건
1년 (1868년) – 에도 막부 붕괴.
2년 (1869년) – 보신 전쟁 종료. 판적봉환.
4년 (1871년) – 폐번치현, 청일수호조약, 단발령으로 일본식 상투인 촘마게가 폐지됨.
5년 (1872년) – 그레고리력을 도입.
6년 (1873년) – 징병제 실시. 메이지 6년 정변(사이고 다카모리, 이타가키 다이스케등이 하야)
9년 (1876년) – 강화도 조약, 폐도령으로 무사계급이 칼을 차고 다니지 않게 됨.
10년 (1877년) – 세이난 전쟁. (~ 1878년)
12년 (1879년) – 오키나와현을 설치 (류큐 처분)
22년 (1889년) – 일본제국 헌법 공포.
27년 (1894년) – 청일전쟁 발발. ( ~1895년)
28년 (1895년) – 시모노세키 조약.
37년 (1904년) – 러일전쟁 발발. ( ~1905년)
42년 (1909년) –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함.
43년 (1910년) – 한일 병합 조약으로 대한제국을 병합함.
45년 (1912년) – 메이지 왕의 서거로 45년 만에 막을 내림 (쇼와 다음으로 긴 연호로 기록됨).
○ 이 시대의 주요 인물
가쓰 가이슈
구로다 기요타카
고무라 주타로
기도 다카요시
나쓰메 소세키
나카에 조민
노기 마레스케
다카스기 신사쿠
도고 헤이하치로
마사오카 시키
메이지 왕
사이고 다카모리
시부사와 에이이치
쓰다 우메코
야마가타 아리토모
에토 신페이
오쿠마 시게노부
오쿠보 도시미치
요사노 아키코
이노우에 가오루
이와쿠라 도모미
이타가키 다이스케
이토 히로부미
김옥균
이완용(매국노)
후쿠자와 유키치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