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전체 지식론의 기초 (Grundlage der gesammten Wissenschaftslehre, 1794-95)
J.G. 피히테 / 서광사 / 1996.9.30
본서는 독일의 철학자 피히테가 1794년과 1795년에 출판한 책이다.
원서명은 Grundlage der gesammten Wissenschaftslehre이다.
피히테가 예나대학교의 철학 교수로 한 강의를 기반으로 하며, 여러가지 판본으로 저술되었다.
표준적인 지식학은 1804년이 출판된 것이나 다른 판본이 피히테 사후에 나타났다.
피히테는 칸트 철학을 독단론이라고 하는 비난을 막기 위해 칸트가 뜻한 바를 철저히 하고 칸트가 닦은 기초를 체계화하려 했으며, 그것은 최초로 자신의 철학적 체계를 전개한 것이며 동시에 칸트가 남긴 문제의 정통적 계승자로서 철학사상 (史上)에서의 위치를 확립시키는 셈이 되었다.
피히테가 그것을 ‘지식학’이라 부른 것은 “어떻게 해서 지식이 성립되는가” 하는 질문에 답한다는 의도였기 때문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각각 체계를 구성하고 있는 여러 학문의 가장 기초가 되는 원칙, 더구나 여러 학문의 전부에 공통된 원칙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 목차
1.전체 지식론의 원칙
2.이론적 지식의 기초
3.실천적 지식의 기초
○ 저자소개 : 요한 고틀리프 피히테 (Johann Gottlieb Fichte)
피히테 (Johann Gottlieb Fichte, 1762년 5월 19일 – 1814년 1월 27일)는 독일 철학자이다. 헤겔, 프리드리히 셸링과 더불어 독일 관념론을 대표하는 사상가다. 철학사적으로는 지식학 (Die Wissenschaftslehre)을 주로 하였으며 칸트의 비판철학의 계승자 또는 칸트로부터 헤겔에로의 다리 역할을 한 철학자로 인정되고 있다.
– 요한 고틀리프 피히테 (Johann Gottlieb Fichte)
.출생: 1762년 5월 19일 작센 선제후국 라메나우
.사망: 1814년 1월 27일(51세) 프로이센 왕국 베를린
.배우자: 요한나 란 (1794 ~ 1814년)
.학력: 라이프치히 대학교 (1781 ~ 1784년), 프리드리히 실러 예나 대학 (1780 ~ 1781년)
.영향을 준 인물: 이마누엘 칸트, 르네 데카르트, 바뤼흐 스피노자, 장자크 루소
단지 일반적으로는 통속철학의 저작이 유명하게 된 경우가 많아 당시 나폴레옹 1세에 점령되어 있던 베를린에서 행한 교육 등에 관한 강의록 의 강의자로서 유명하게 되었다.
피히테는 가난한 삼베직인의 아들로 태어나 예나 대학 신학과에 입학하였다. 그 후 라이프치히 대학으로 전학하였고, 졸업 후 가정교사 시절에 저술한 ‘종교와 이신론(理神論)에 관한 아포리즘'(1790)은 B.스피노자의 결정론의 영향을 받았으나, 1791년에 칸트 철학을 알게 됨에 따라, 특히 그 실천이성의 자율과 자유 사상에서 결정적인 영향을 받았다.
그 후 쾨니히스베르크로 임마누엘 칸트를 찾아 그의 주선으로 ‘모든 계시의 비판 시도'(1792)를 익명으로 출판하였는데, 사람들은 처음에 칸트의 저서로 알고 있었으나, 칸트 자신의 정정과 천거에 의해 피히테의 명성이 널리 알려졌다.
1792년에 예나대학의 교수가 되었고, 1793년 한(Johaanna Hahn)과 결혼하고 1797년에 ‘지식학’에 대해서 몇 가지 중요한 논고를 발표하였다. 1798년 철학잡지에 포르베르크의 논문에 서문으로 발표한 ‘신의 세계지배에 대한 우리들의 신앙 근거에 관하여’라는 논문이 무신론이라는 의혹을 받아, 유명한 무신론 논쟁을 야기시켰으며, 결국 1799년 예나대학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그 후 베를린에서 슐레겔 형제를 비롯하여 낭만파 사람들과 교유하였고, 사상적으로는 신비적·종교적 색채를 더해 갔으나, 동시에 시국 정치문제에도 활발한 발언을 시도하였고, 특히 나폴레옹 전쟁에서 패한 프로이센의 위기에 처하여 행한 “독일 국민에게 고함”(Reden an die Deutsche Nation, 1807년 ∼1808년)이란 강연은 너무나 유명하다. 종군간호사가 된 부인에게서 옮은 발진티푸스에 감염되어 죽었다.
– 생애
수공업자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780년부터 예나, 비텐베르크, 라이프치히 대학 등에서 신학과 법학을 공부했다.
이후 가정교사 생활을 하면서 스피노자의 결정론에 영향을 받았으나, 1791년에 칸트 철학을 접하고 칸트의 영향을 크게 받게 된다.
1792년에 익명으로 ‘모든 계시의 비판 시도’라는 논문을 출판했는데, 이것이 칸트의 종교철학 논문으로 오인되면서 유명해졌다.
이후 예나 대학에서 교수가 되었으나 1798년에 출판한 논문이 무신론 의혹을 받아 무신론 논쟁을 야기했고 결국 1799년에 교수직에서 물러난다.
이후 저술과 강의 활동을 하다가 1810년부터 베를린 대학에서 활동했다.
이후 나폴레옹 전쟁으로 인해 종군간호사가 된 부인에게서 옮은 발진티푸스에 감염되어 죽었다.
대표작은 《전 학문론의 기초》이며, 대중적으로는 《독일국민에게 고함》이 유명하다.
평생에 걸쳐 ‘학문론’에 대해서 글을 쓰고 강의를 했는데 대부분의 책이 학문론과 관계되어 있다.
데카르트로부터 칸트에 이르기까지 경험에 대한 ‘인식론’이 학문의 주된 방향이었으나, 피히테에 이르러 ‘지식 (Wissen)’ 그 자체에 집중하는 학문론 (Wissenschaftslehre)이 학문의 주된 흐름이 된다.
‘지식’에 집중하는 이러한 경향을 ‘관념론’이라고 하며, 이후 셸링과 헤겔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 철학
칸트로부터 촉발되어 발전해나간 근대 독일 관념론의 대표적인 철학자들 중 한 명으로 그의 사상의 정수는 주관적 관념론(주관속에서 모든 것이 가능)이다. 그에 이어 쉘링은 객관적 관념론(객관속에서 모든 것이 가능)을 내세웠고, 헤겔은 피히테와 쉘링의 철학을 정리하여 절대적 관념론을 내세워 근대철학의 하나의 완결된 형태의 것을 창출해내었다.
피히테는 칸트의 오성과 이성에 대한 개념 구분이 애매하다고 생각했고 필연성의 세계를 다루는 순수이성과 자유의 세계를 다루는 실천이성이 모순적인 관계에 있다고 생각하였다. 피히테의 철학은 그것을 해결하려는 데서 출발하게 되는데, 그는 이성이 윤리의 세계뿐만 아니라 필연성에 관계하는 학문의 영역에 적극적으로 관계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피히테에게 있어 경험은 대상에 대한 경험이 아니라 앎(Wissen)에 대한 경험인데, 이에 따라 그는 앎을 대상으로 하는 철학인 지식학(Wissenschaftslehre)을 정초하였다. 그에게 있어서 자아는 앎의 출발점인데 이는 더이상의 전제를 가지지 않는, 모든 앎이 이끌려나올 수 있는 원칙으로서, 데카르트의 것과 유사한 면모가 있다. 자아는 단순히 사유하는 주관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자아아며, 자아는 절대적으로 독자적으로 활동하며, 자아의 활동은 무한한 것이다. 자아는 결코 외부의 어떤 것에 의하여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자신의 끊임없는 활동에 의해 나타나는 것이다.
피히테의 자아의 본질은 하나의 고착화된 사실이 아니라 끊임없이 자신을 드러내는 역동적인 작용인데, 이를 사행(Tathandlung)이라 한다. 사실이라는 것은 이러한 자아의 적극적인 행위, 즉 사행의 결과이며, 자아는 자기의식(Selbstbewußtsein)으로 표현된다. 사행은 판단, 추리하는 이론적인 힘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정립하는 실천적인 힘이다.
사행을 근본적인 존재특성으로 가지는 자아엔 지식학을 가능케 하는 근본적인 도구로서의 세가지 원칙이 있다. 첫째로, 자아는 스스로를 정립한다.(동일률의 근거) 이것은 범주의 하나로서 실제성을 유도한다. 둘째로, 자아에 대하여 비아가 정립된다.(모순율의 근거) 이것은 범주로서 부정성(Negation)을 유도한다. 셋째로, 자아는 나눌 수 있는 자아에게 나눌 수 있는 비아를 정립한다.(근거율의 근거) 이것은 자아에게나 비아에게만 머무르는 정립이 아니라 양자를 모두 포괄하는 정립으로 제한(Limitation)의 범주를 유도한다.
자아(Ich)는 자신을 정립하면서 세계와 관계하고, 자아의 정립하는 활동에 거스르는 비아(Nicht-ich)가 다가오는데, 비아는 자아에 속하지 않으면서 자신이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으로서, 사행을 통한 자아의 자기정립에 거슬러 자아에 대해 반정립한다. 비아의 반정립은 이미 자아의 정립을 전제로 하기에 첫번째 원칙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자아와 비아는 갈등관계이다.
피히테의 철학을 종합하자면, 자아의 정립과 비아의 반정립이 대립하는 구도에서 절대적 자아가 그 대립을 지양시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비아가 자아를 제한 또는 규정하는 것은 이론적인 것이며 이론적 학문을 성립시키고, 자아가 비아를 규정하는 것은 실천적인 것이며, 자아의 정립을 통해 대상인 비아를 규정하고 제한하는 실천적 학문을 정립시킨다. 그런데 이 구분은 자아가 비아와 관계하는 방식을 통해 구분되는 것일 뿐이다.
피히테는 자아의 정립하는 행위를 근본적으로 긍정하였고, 실천적 자아의 우월성을 강조하였다. 그는 이를 통하여 칸트의 철학에 있어서의 이론이성과 실천이성간의 갈등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비아는 모든 대상들의 전체를 의미하며 자아의 적극적인 활동에 의해 생기고, 자아의 존재는 궁극적인 출발점이 되는데 여기서 ‘궁극적 자아’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궁극적 자아는 비아에 의하여 생기는 부정과 갈등을 넘어 자신의 존재를 궁극적으로 정립하는 탁월한 자아이다. 피히테의 철학은 자기 자신만을 정립하는 유한한 자아가 비아의 저항과 부정을 제거하고 자신을 정립시키는 절대적인 자아로 나아가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절대적인 자아는 실체로서 스스로를 정립하는 자아, 즉 절대자인데 이는 신과 같은 존재이다. 그러나 이것은 신비주의적인 개념이 아니고, 자아의 사유활동과 능동적으로 자신을 정립시키는 도덕적인 행위를 통해 드러나는, 자아 속에 숨은 신이다. 여기서 사행은 변증법적인 것으로서 자아와 비아의 갈등을 거쳐서 자기자신을 무제약적으로 정립시키는 탁월한 능력이다. 자아의 자기정립은 비아와의 대립을 넘어 절대적 자신을 정립하는 것으로서, 절대적인 자아를 논리적으로 전제해야 한다. 즉 이미 자아 속에 비아의 반정립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내재되어 있어야 한다.
저서로는 프러시아 학사원에서 행한 연설을 책으로 묶은 ‘독일 국민에게 고함’이 단연 유명하다. 이 책에서 그는 나폴레옹 전쟁에서 독일이 패배한 근본적인 원인은 이기심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국민 교육이 중요하다고 주장하였다.
– 역자: 한자경
이화여자대학교 철학과를 거쳐 동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에서 서양철학(칸트)을 공부하고, 동국대학교 불교학과에서 불교철학(유식)을 공부하였다.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칸트와 초월철학』, 『자아의 탐색』, 『자아의 연구』, 『유식무경』, 『동서양의 인간 이해』, 『일심의 철학』, 『불교철학의 전개』, 『칸트철학에의 초대』, 『불교의 무아론』, 『나를 찾아가는 21字의 여정』, 『명상의 철학적 기초』, 『한국철학의 맥』, 『불교철학과 현대윤리의 만남』 등이 있다.
○ 출판사 서평
독일 관념론의 장을 연 철학자로 평가되는 피히테의 원전. “지식론”으로 대변되는 피히테의 철학 체계 전반을 이해하기 위해 필수 불가결한 책으로, 칸트와 헤겔의 교량 역할을 하는 피히테의 사상이 심도 있게 전개된다.
원서명은 Grundlage der gesammten Wissenschaftslehre이다.
⟪전체 지식학의 기초⟫(Grundlage der gesammten Wissenschaftslehre)는 독일의 철학자 피히테가 1794년과 1795년에 출판한 책이다. 피히테가 예나 대학교의 철학 교수로 한 강의 강의를 기반으로 하며, 여러 가지 판본으로 저술되었다. 표준적인 ⟪지식학⟫은 1804년이 출판된 것이나 다른 판본이 피히테 사후에 나타났다.
피히테는 칸트 철학을 독단론이라고 하는 비난을 막기 위해 칸트가 뜻한 바를 철저히 하고 칸트가 닦은 기초를 체계화하려 했으며, 그것은 최초로 자신의 철학적 체계를 전개한 것이며 동시에 칸트가 남긴 문제의 정통적 계승자로서 철학사상(史上)에서의 위치를 확립시키는 셈이 되었다. 피히테가 그것을 ‘지식학’이라 부른 것은 “어떻게 해서 지식이 성립되는가” 하는 질문에 답한다는 의도였기 때문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각각 체계를 구성하고 있는 여러 학문의 가장 기초가 되는 원칙, 더구나 여러 학문의 전부에 공통된 원칙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어떤 대상을 사유할 때 반드시 그와 동시에 자아를 사유하고 있으며, 더구나 사유하는 자아와 사유되는 자아로 나뉜다. 자기 의식은 그처럼 대립되는 자아의 일체적인 관계로서 그것은 단순한 사실이 아니라 ‘사행(Tathandlung, 定立의 활동과 存在의 사실과의 同一)’이다. 따라서 가장 확실한 첫째 원리는 “자아(自我)는 자아를 정립한다”는 것이 된다. 그와 마찬가지로 자아가 자아 이외의 타자(他者)를 사유함으로써 “자아에 대해 비아(非我)가 정립된다”고 하는 제2의 원리, 또한 두 가지 원리를 조정하기 위한 상호한정(相互限定)으로서 “자아는 자아에 있어서 가분적(可分的) 자아에 대해 가분적 비아를 반정립(反定立)한다”는 제3의 원리가 설정되어, 이 원리를 바탕으로 해서 ‘이론적 지식의 기초’와 ‘실천적 학문의 기초’가 탐구되고, 전자에서는 칸트의 범주가 조직적·동일적으로 고찰되고 후자에서는 실천적 자아가 그 노력에도 불구하고 영원히 충족되지 않는 동경으로서 그려진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