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현구 목사의 목회단상

계엄(戒嚴), 계몽(啓蒙), 격몽(擊蒙) 그리고 견몽(犬夢)을 가진 자들에게 …
필자는 조지 오웰(1903~1950)의 소설<1984>에 나오는 ‘빅 브라더’라는 절대 권력자가지배하는 오세아니아라는 가상의 국가, 독재자의 주인공을 빙의(憑依)하여 윤석열을 3 번이나 탄핵한 적이 있다. 조지 오웰을 소환한 것은 살아오면서 반국가 군부 독재 세력들이 3 번의 쿠데타로 역사를 되돌려놓은 패악질을 경험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극우 포퓰리즘뿐만 아니라 전체주의 망령이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었다. 이건 국내외적으로 마가(MAGA)의 깃발을 내세운 트럼프 1, 2 기 정부의 폭력성 앞에 전 세계적으로 소설 <1984>는 또다시 베스트셀러가 됐다는 것이다.
‘빅 브라더’ 용산 대형 윤석열이 12.3 내란 쿠데타를 통해 오세아니아 대한민국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윤석열 정권 비판적 보도를 가짜뉴스로, 불리할 때마다 시대착오적 이념 전쟁으로 몰고 가며 헌정을 파괴하는 파시스트의 참모습을 목도할 때 법의 외피를 입은 궤변과 정치적 의도가 담긴 선전•선동이 통하지 않자 급기야, 야만의 쿠데타로 국민을 총칼로 겁박했던 계엄(戒嚴)을 계몽(啓蒙)이라며 국민을 격몽(擊蒙)으로 몰고가는 파렴치(破廉恥)까지 보였다.
성서 마태복음 (22:36~40)에서 “선생님이여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수직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수평적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십자가 사건이고 상징이다. 이것이 기독교인의 삶의 과녁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성서에서 일반적으로 죄를 뜻하는 단어는 ‘하마르티아(hamartia)’다. 이 단어의 동사형인 ‘하마르타노’는. 호메로스 이후에 ‘과녁을 빗나가다’, ‘잃어버리다’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그렇다면 기독교에서 말하는 죄는 사랑이 없는 상태가 죄라는 뜻이 된다.
이 복음으로 돌아보자면 사회적인 죄를 범하면 감옥에 얽매이지만, 복음의 죄인 사랑에서 벗어나면 자아에 얽매이게 된다. 그래서 주님은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 복음에서 배우는 것은 사랑과 평화는 결국 동전 앞뒷면과 같다는 사실이다.
얼마 전 필자에게 시드니의 ‘진리의 전당’인 한 대학의 책임자가 광고지 중의 광고지인 극우 유튜브 소식을 열심히 보내며 윤석열의 계엄을 통해 계몽(啓蒙)되라고 권면하고 있다.
몇 년 전 성시화 모임 카톡방에 정치적 글을 올리던 한 대학의 책임자도 성시화 대표가 되어, 또 다른 성시화 모임 카톡방을 설치하곤 잠시 후에 돌아오겠다는 한마디 남긴 채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다. 전언에 따르면 또 다른 성시화 카톡방에서 윤석열
계엄(戒嚴)이 계몽(啓蒙)이라며 선전. 전동에 열심이라는 소식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신학을 전공하고 기독교 상담학을 전공한 전문가들이다. 신학과 상담학의 목적은 무엇인가? 하나님 앞에 인간 내면 깊이 성찰하게 하고 자신을 하나님마음에 붙들려 살게 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복음으로 돌아가 겸손히 경청한다면 그것은 사랑이다. 그래야 자유하고 평화롭다. 이것이 복음이다. 우리가 한쪽에 서는 것은 매우 쉽다. 그러나 주님 앞에“예”와 “아니오”를 분명히 하되. 갈라치고 줄을 세워 폭력을 일삼는 행위는 가장 저열하고 위험한 행동이다. 사도바울은 로마서에서 율법과 할례를 강조하던 유대인(극우)과 그런 것 필요 없이 자유롭게 구원받을 수 있다는 이방인(극좌)들에게 제시한 제 3 의 사람인 십자가의 사랑으로 살아가는 사람,곧 그리스도인이라고 호칭했던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주님의 사랑을 전하는 공인이다. 공인이란 역사의식, 공적인 책임 그리고 종교적 사랑이 있어야 한다. 구원이란 어떤 자격이나 신분이나 상태가 아니라 삶의 과정을 말하는 것이다.
필자가 윤석열을 탄핵한 이유는 이런 세가자 자세가 없어서다. 공인 의식이 없다는 얘기다. 2 년 10 개월 동안, 아니 내란 계엄 123 일 동안 온 국민이 얼마나 치를 떨며 밤잠을 설쳤는가? 계엄을 계몽이라 거짓으로 변명하고 합리화하는 모습은 등골이 오싹하다. 총칼로 통치하려는 무법자의 끝이 보인다. 내일(4/4) 헌재가 어떻게 결론을 내든 시간이 걸리겠지만 윤석열은 내란 죄로 자유! 자유! 자유! 울부짖으며 감옥에서 평생 지낼 것이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그랬다. 주님은 그런 삶을 사시기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셨다. 필자가 먼저 견몽(犬夢)에서 깨어나 사순절 기간에 미워하는 마음을 삭이고 성찰하는 시간이길 두 손 모아 빈다.
03/04/2025
시드니 교회 서재에서 전현구

전현구 목사 (시드니조은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