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3년 2월 1일, 독일의 신학자•철학자•사회학자로 종교사학파의 대표자 에른스트 트뢸치 / 트뢸취 (Ernst Troeltsch, 1865 ~ 1923) 별세
에른스트 트뢸치 / 트뢸취 (Ernst Troeltsch, 1865년 2월 17일 ~ 1923년 2월 1일)는 독일의 자유주의 신학자, 철학자, 그리고 사회학자이다.
아우구스부르크에서 태어났으며, 1894년 하이델베르크 대학교 신학 교수, 1915년 베를린 대학교 교수를 지냈다. 트뢸치의 학문 영역은 다채로워 신학, 종교학, 윤리학, 역사철학, 문화사, 정신사, 종교사회학 등에 관한 방대한 저서가 있다. 그의 학문적 관심은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현대의 문화적 · 종교적 전체상황을 인식하기 위해 근대세계 형성의 여러 원인을 찾고, 또 그리스도교와 일반문화 상황과의 역사적 관련을 결정하기 위해 고대까지 고찰을 소급시켰다.
둘째는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 영원히 절대적 가치와 일시적 가치를 구별하는 초역사적 가치를 추구하여 역사의 흐름에 방향과 규범을 주려고 하는 이상주의적 · 실천적 입장이다.
알버트 리츨과 막스 베버에 의존하여 자신의 종교사학 이론을 체계화하였다.
– 에른스트 트뢸치 / 트뢸취 (Ernst Troeltsch)
.출생: 1865년 2월 17일, 독일 아우크스부르크 Augsburg-Haunstetten
.사망: 1923년 2월 1일, 독일 베를린
.정당: 독일 민주당
.학력: 괴팅겐 대학교
.영향을 준 인물: 빌헬름 빈델반트, 막스 베버, 알브레히트 리츨
에른스트 트뢸치 / 트뢸취 (1865 ~ 1923)는 독일의 신학자, 철학자로 부친은 의사였다. 1883 ~ 88년 괴팅겐, 베를린 등 여러 대학에서 복음주의 신학을 공부, 특히 괴팅겐에서 리츨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1894년부터 21년 간 하이델베르그대학에서 신학과 철학 강의, 1915년 베를린대학에서 종교철학 • 윤리학 • 일반문화철학 • 철학개론 • 현대철학사 • 역사철학 등을 강의했다.
트뢸치는 1891년 박사학위를 받고 게팅겐 대학과 본대학에서 강사생할을 잠시 했다. 그후 1894년 29세에 하이델베르그 대학 교수로 취임하여 21년 동안 조직 신학을 가르쳤다. 수많은 저서를 남겼으며 베를린 대학 교수로 초청받았고 1923년 옥스퍼드 대학에서 강의를 목적으로쓴 논문이있었으나 그의 사망으로 직접 발표하지 못했다. 그의 조직 신학 강의록이 사후에 ‘신앙론’이란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19세기아 20세기 신학 사상의 중요한 연결 고리중 하나가 트뢸치이 신학이다. 그는 슐라이에르마허와 리츨의 전통을 이어받아 자유주의 신학과 사고의 틀 속에 활동하는 한편. 트뢸취는 19세기 자유주이 신학의 “종착점” 또는 가장 위험한 대표자로 취급된다.
그는 19세기 마지막 10년간 독일에서 발전했던 종교 사학파의 대표적 조직 신학자였다.
특별 계시에 근거하여 종교 문제를 해명하는 초자연주의적 입장을 거부하고 역사적 연구에 이해 종교를 이해하는 상대주의적 입장을 취했다. 기독교의 절대성 문제는 그의 일생의 관심사였다. 그의 사상은 치근 들어 종교 철학, 역사 철학, 종교 사회학 등의 분야에서 재 발견되고 있으며, 종교 다원주의 의 태동가 함께 기독교의 절대성에 관한 그의 견해가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의 신학 방법론은 역사적 방법이었으며, 그의 신학은 종교사의 신학이었다.
○ 생애 및 활동
에른스트 트뢸치 / 트뢸취 (1865 ~ 1923)는 아우구스부르크 근방에 있는 하운스테텐에서 태어났다. 의사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칸트, 피히테, 슐라이에르마허에 대해 열심히 연구하였고 신앙과 지식간의 화해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그는 칸트, 피히테, 슐라이에르마허를 집중 공부했으며 신앙과 지식의 화해의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리츨로부터 지식과 신앙을 구별하는 방법을 배웠으며 많은 학자로부터 공부했다. 한편 그는 괴팅겐에서 구약성서 학자 궁켈, 신약성서 학자 브레데 등과 깊은 친교를 가졌다. 종교를 역사의 발전 과정으로 이해하려 했으며 기독교이 기원 역시 고대 종교들, 특히 후기 유대교의 관점에서부터 연구했다. 따라서 그들은 성경의 외적 환경과 배경에 관심을 갖는 비교의 학적이며 사회학적인 방법으로 성서를 연구했으며 전통적 성서 연구를 유대교와 초기 기독교의 종교사로 전환시키려 했다. 이들 학파가 종교사학파였다.
트뢸치는 에를랑겐, 베를린 그리고 괴팅겐 대학에서 신학 과정을 마쳤다. 1891년 뮌헨에서 목사 후보생 수련과정을 끝낸 후에 괴팅겐 대학에서 교수생활을 시작했으며, 본 (1892), 하이델베르크 (1894) 그리고 베를린 (1915)에서 철학부 교수를 지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1919년에서 1921년까지 프로이센 문화부 산하 개신교사업부의 차관보를 부수적으로 맡았다. 그의 문제제기에 따라 얻은 결과에서 보듯이 풍요로운 주제에 있어서 다양한 학문적 가치를 지닌다.
에른스트 트뢸취의 주저로는 1891년: J. 게르하르트와 멜랑히톤에게 있어서 계시와 이성, 1902년: 기독교의 절대성과 종교사, 1904년: 칸트의 종교철학에 있어서 역사적인 것, 1906년: 근대의 개신교적 기독교와 교회 근대세계 형성에 대한 개신교의 의미, 1911년: 기독교 신앙을 위한 예수의 역사성의 의미, 1912년: 기독교적 교회들과 공동체들의 사회론, 1913년: 종교적 상황, 종교철학, 윤리를 위하여, 1915년: 어거스틴, 기독교적 고대와 중세, 1922년: 역사주의와 그의 문제들, 1924년: 역사주의 그의 극복 (사후 출판), 1925년: 종교사와 종교사회학을 위한 논문들 (사후 출판), 독일의 정신과 서유럽(사후 출판), 신앙론 (게르트루드에 의한 필사본) 등이 있다.
○ 기독교에 대한 관점
리츨은 종교와 과학을 전적으로 서로 분리시키려고 했지만, 트뢸치는 이 양자를 조화 혹은 화해를 시도했다. 그래서 종교사학파 운동의 대표적 중심 인물로 등장했다. 그는 역사 • 문화 • 종교의 모든 철학이 통일된 전체적 체계에 따라서 해석하고 그 체계 위에서 통일되는 것이라고 믿었기에 특별계시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의 신학에 있어서는 계시보다도 역사가 중요한 기본 개념이 된다. 또한 그의 역사란 사물의 인식과 해석의 한 방법이 아니라 모든 사유와 가치판단의 근거이며 존재의 근원이 되었다. 그는 기독론에서는 그의 역사적 상대주의 때문에 전통적인 신학이 주장하는 절대적인 그리스도 중심주의는 찾아볼 수 없다. 예수는 위대한 종교적 천재이며, 우리가 따르기에 충분한 훌륭한 모범자이나 유일한 분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트뢸치는 하나님의 계시가 모든 종교에 동일하게 적용됨을 강조하였다. 즉, 기독교의 계시의 독점성을 부인한 것이다. 이것은 기독교가 다른 종교보다 절대적이다는 생각을 부인하는 결과를 낳았고, 기독교는 상대적으로 우월성과 규범성은 인정하였다. 이러한 그의 태도가 타종교에 대하여도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는 결론을 가져오면서 자유주의신학의 정체성을 가져오게 하였다. 이런 그의 관점은 정통주의 기독교로 부터 그리스도 없는 기독교라는 평을 받았다. 하지만 종교다원주의자들에게는 환영을 받았다.
○ 종교다원주의의 역사적 문화적 배경 : 에른스트 트뢸치
기독교를 포함한 모든 역사적 종교들은 부분적이고 불완전하며 한계가 있고 진리와 실재를 바라 보는 하나의 길이기 때문에 상대적이라는 인식을 정직하게 한 기독교의 종교 사학자는 트뢸치 였다 (1865 ~ 1923). 그는 본 대학, 하이델베르그 대학, 베르린 대학에서 신학을 가르쳤던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의 가장 위대 했던 종교 사학자 중의 한 사람이었다.
트뢸치는 종교적 역사적 다원주의의 실체를 인식하고 그러한 다원주의의 실재가 자신이 그리스도교의 본질에 관해 배운 바와 어떻게 충돌하는가를 실감했던 최초의 인물이었다. 그는 그리스도교가 “시대의 징조”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에 응답해야 한다고 느꼈다. 만약에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 그리스도교는 부적합성과 맹목적 신앙의 위험 속으로 빠져들고 말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트뢸치는 그의 시대의 역사적 의식과 그가 자기 자신과 모든 사람들 속에서 인식할 수 있었던 바, 흔들리지 않는 종교적 위임 및 가치들에 대한 필요성, 이 양자 사이의 갈등과 주로 씨름 하였다.
한편으로 19세기의 지적 계시 및 혁명이라고 할 수 있는 역사적 의식이 있었다. 인간은 단지 이성적, 사회적 존재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또한 “역사적” 존재 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여러 분야의 학자들은 점점 더 분명하게 인식하기에 이르렀다. 이것은 인간의 모든 것과 인간이 생산해 내는 모든 것은 그의 역사적 콘텍스트에 의하여 한계 지워지며 역사적 발전의 법칙에 종속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역사적 콘텍스트는 하나로 획일화되지는 않으며 항상 변화하고 있다. 그러므로 역사적 콘텍스트 내의 모든 것들은 -인간의 문화와 지식 전체를 포함해서- 제한적이고 동시에 변화 한다. 한 역사적 상황 가운데서 이러한 것은 다른 역사적인 상황 가운데서는 그와 다를 수 있다. 그러므로 인간의 모든 인간적 업적들의 역사적인 성격은 모두 절대적인 것들, 즉 “하나이며 유일한” 혹은 불변의 진리를 배제한다. 그렇다면 복음의 확실한 불변적 진리는 역사적 의식 및 그것이 부과하는 상대성과는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이 트뢸취의 마음을 어지럽혔던 갈등이었다. 이러한 그리스도교의 절대성과 역사적 상대주의 상이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신과 세계 사이의 관계성에 대한 그의 이해에서 찾아 볼 수 있다.
트뢸치는 신은 실로 초월적이며, 유한자 보다 크시고 유한자와는 동일시 될 수 없다고 보았다. 그러나 신적 현존은 유한한 역사의 전개 속에서 발견 될 수 있으며 그 속에서 그의 생명을 갖고 있다고 본다. 신성 혹은 절대자는 역설적으로 역사를 초월한 동시에 역사 안에 존재한다. 무한자와 유한자 사이에는 참여, 연속성, 그리고 공유의 형식이 있다. 트뢸치에게 있어서 신은 “역사와 인접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트뢸치는 이것을 인간의 정신적 내부에 있는 “종교적 아프리오리”-인간 본성 속에 새겨져 있는 바 신성에의 선천적 정위 또는 신적인 경험-라고 부르고 있다.
그러나 트뢸치에게 있어서 이러한 종교적 아프리오리, 즉 신성한 것을 향한 타고난 충동은 단지 개인의 내적 경험 속에서만 -다시 말해 오로지 개인과 신 사이의 관계성 속에서만- 인식되고 실재되는 것은 아니었다. 트뢸치는 개인의 중요성을 고창한 것 못지 않게 우리는 본질 적으로 오직 역사 내에서만 존재 할 수 있고 또 자기 자신을 경험 할 수 있는 “역사적 존재임을 또한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종교적 아프리오리는 오로지 역사적 과정 안에서, 역사적 과정을 통해서만 살아 있을 수 있고 경험 될 수 있었다. 바로 여기에서 종교들이 등장한다. 종교들은 그것을 통하여 인간의 신에 대한 느낌이 역사 내에서 구체적인 형태를 띄게 되는 바 매개체들이다. 종교들과 종교적 아프리오리 사이에는 상호 의존 관계가 있다. 모든 종교들은 인간의 본질에 내재 되어 있는 종교적 아프리오리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또 종교적 아프리오리는 종교들 없이는 구체적으로 존재할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트뢸치의 입장은 세계의 모든 종교들은 모든 인류 속에 작용하고 있는 보편적 계시의 구체적이며 독립적이고 다양한 현현인 것이다. 트뢸치의 주장에 의하면 모든 종교들은 공통적인 그 무엇, 즉 신의 현존 또는 신의 계시를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각 종교는 그 현존의 서로 다른 역사적 현현이기 때문이다.
트뢸치에게 있어서 그리스도교와 다른 종교들의 관계는 그의 저서 ‘그리스도교의 절대성과 종교사’에서 잘 나타난다.
“그리스도교는 결코 절재적 종교가 아니며, 어떤 주어진 시점에 그것의 환경을 구성하는 역사적 조건들로 부터 자유로운 전적으로 유일회적인 종류의 것도 아니다. 그리스도교는 결코 종교의 보편적 원리라고 생각되는 것의 불변적, 최종적, 무조건적 실현이 아니다. 다른 위대한 종교들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교도 그 역사의 매 순간에 있어서 철저히 역사적인 현상이며, 모든 개별적 역사 현상이 직면하게 되는 모든 제한에 종속되어 있다”
트뢸치는 이렇게 종교의 상대성을 말하였는데 그러면서도 그리스도교의 우월성 내지는 규범성을 주장 하였다. 트뢸치가 주장하는 종교의 우월성의 기준은 두 가지 였다. 첫번째 기준은 그 종교가 인간의 마음을 얼마나 사로잡는데 성공 하였는가를 살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두번째 기준은 영성과 관계있는 것이었다. 이 기준을 적용 함에 있어서 트뢸치는 원시 종교와 윤리적 영적 위대성을 가진 종교들로 나누 었다. 트뢸치는 전자는 최고의 종교적 가치들의 문제와 무관한 것으로서 무시해 버렸다. 그리고 후자의 범주는 다시 구분하여 궁극적 존재를 다시 비인격적 존재로 보는 종교들 (동양종교들, 힌두교, 그리고 특히 불교)과 인격적으로 보는 종교들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로 나누었다. 이 두가지 중에서 어느 것을 선택하느냐는 개인적인 신앙의 문제임을 분명히 인정하면서도 그는 또한 대담하게도 종교사 속에서 인격주의적 종교들의 보다 우월한 가치를 가리키는 충분한 증거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걸음 더 나아가 ‘인격주의적 구원 종교인 그리스도교는 우리가 알고 있는 바 최고의 그리고 가장 의미있게 발달된 종교적 삶의 세계이다’라고 했다.
종교의 상대성을 인정하는 트뢸치의 견해를 따를 경우 기독교의 핵심적인 확신 가운데 하나인 그리스도, 즉 나사렛 예수는 역사 내에서의 신의 유일회적 성육신이요 모든 인류의 유일한 구세주라고하는 확신과 상충함을 알 수 있다.
트뢸치는 모든 종교적 보편성을 인정하면서 주로 윤리적인 면에서 종교의 우열을 주장하였다는 것을 볼 수 있다.
○ 역사적 방법과 종교사의 신학
1. 역사적 방법
트뢸취는 인간사에 대한 역사적 견해란 역사적 방법의 원리들에 의해 상세히 진술될 수 있으며 종교 문제 역시 역사적 연구에 이해서만 이해될 수 있다고 보았다.
– 역사적 방법의 기본 원리: 비평, 유비, 상관관계
비평은 모든 자료르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모든 결론을 새로운 증거의 조명에 의해 검사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비평의 원리는 역사의 영역에는 단지 개연성의 판단만이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유비는 모든 역사적 사건들은 동질성을 지니고 있다는 원리를 전제로 한다.우리가 직접 경험한 사건들은 과거의 사건들과 본질적으로 유사하기 때문에 그와 비슷한 결과를 예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역사적 비평과 판단을 가능하게 하는 수단이 유비의 사용이다. 유비는 역사적 비평의 단서를 제공해 준다.
상관의 원리는 모든 역사적 사건들은 이전의 다른 사건들과 인과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말한다. 전체 역사는 이런 내적 관계의 조직을 통해 형성된다. 따라서 모든 역사적 구조와 사건들응 다른 것과의 관계, 더 나가서 역사 전체와의관계에서만 이해될 수 있다. 그러므로 역사적 방법의 특징은 모든 것을 상대화 시키는 것이다. 역사적 상대주의는 트뢸취의 결정적인 사상을 이룬다.
그의 방법론은 철저하게 역사적 사고와 역사적 방법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는 기독교 역시 전체 역사의 일부로 간주하고 모든 종교 및 문화현상에 적용용된다고 언급했다. 기독교의 본질은 단순히 그 기원을 관찰함으로써가 아니라 그 전체 역사적 발전을 관찰함으로써 결정된다. 트뢸취는 전통 신학의 교의학적 방법을 역사적 방법과 전적으로 반대되는 것으로 취급했다. 교의학적 방법은 특별계시와 기적에 근거한다. 그것은 역사적 사건들의 동질성과 기독교와다른 종교들의 유비를 부정하며 기독교를 유일하고 절대적인 종교로 간주한다. 반면 역사적 방법은다른 종교를 구별하기 보다는 오히려 동질적인 현상으로 본다. 모든 종교가 초자연적이며 구속적이며 계시에 기초한 것으로 간주한다. 모든 종교들은 종교적 직관 또는 신적계시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는 일반적인 학문과 구별되는 기독교 신학 특유의 방법을 주장하는 교의학적 사고를 거부하고 모든 학문에 통용되는 보편화된 방법을 주장하는 종교사적 사고를 신뢰했다.
2. 종교사의 신학
종교사학파는 성서적 종교가 다른 종교들과의 접촉을 통해 형성되었다는 것들 입증하려 했으며 종교사의 보편적 발전 내에서 기독교의 타당성을 확립하려 했다. 따라서 종교사학파는 종교의 절대성을 부정한다. 한편, 종교다원론적 입장에서 역사적이며 비교 종교학적 방법으로 종교들을 탐구하려고 했다.
○ 기독교의 절대성 논쟁
트뢸취는 하나님의 계시가 모든 인간과 종교에 보편적으로 주어졌다고 생각했다. 기독교가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위대한 계시인 것처럼, 다른 종교도 하나님의 계시라는 것이다. 이처럼 다른 종교이 상대적 진리성을 인정한다면, 기독교는 다른 종교에 대해 어떤 타당성을 주장할 수 있는가? 트뢸취에 따르면, 기독교이 타당성은 기독교가 모든 종교들 가운데 “인격주의적 종교이해의 가장 강력하고 가장 농축된 계시”라는 데에 있다. 그는 기독교의 절대성은 부정했으나 우월성과 규범성은 인정했다.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강연하기 위해 집필한 기독교와 세계종교 (1932)에서 그는 기독교가 철저히 역사적, 상대적 현상이라는 것을 재확인 했다. 또한 모든 종교는 제각기 진리의 요소를 가지고 있으므로 어느 종교가 다른 종교보다도 더 훌륭하다고 말할 수 없다고 보았다. 따라서 기독교는 서구인들에게는 훌륭하고 유일한 종교이다. 마찬가지로 힌두교는 인도인들에게 훌륭한 종교이다. 타종교들 연구는 절대적 타당성에 대한 그들의 주장 역시 참되다는 것을 나에게 점점 더 확신시켜 주었다. 나는 특히 불교와 힌두교가 참으로 인도적이며 영적인 종교이며 기독교와 같이 그 신봉자들의 내적 확신과 헌신에 호소할 수 있는 종교라는 것을 발견했다. 그가 주장하기를, 모든 종교가 알려지지 않은 어떤 피안의 세계에 공동적인 목적을 두고 같은 방향으로가고 있으며 신적인 정신안에 공동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이것은 그가 기독교 절대주의를 완전히 포기하고 종교적 상대주의를 철저히 신뢰했다는 것을 명시해준다. 타종교에 대해 관용적인 태도를 취한 자유주의 신학이 도달하게되는 막다른 골목이 트뢸치의 입장이다. 기독교의 절대성에관한 트뢸치의 견해는 종교사적 관점의 학자들이나 20세기 종교다원론자들에의해 크게 환영받았다. 반면 정통주의와 신정통주의 신학자들로부터는 그의 규범을 “그리스도없는 기독교”라고 비판했다.
그가 제기한 기독교의 절대성 문제는 20세기 후반들어 종교 신학 또는 종교 다원주의란 명칭아래 아직도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따라서 트뢸치는 기독교와 다른 종교의 관계에 대한 신학적 논쟁의 불길을 당긴 사람으로 평가된다.
○ 트뢸치의 사회학적 방법
트뢸취의 사회학적 방법은 오늘날까지 역사와 세계, 기독교와 사회, 신학과 사회학의 관계를 바라보는 관점을 유의미하게 제시하고 있다. 이 연구 결과는 기독교인으로서 가져야 할 역사관, 세계관, 사회관, 학제적 사유방식 등에 대해 깊이 성찰할 여러 소재를 제공하고 있다.
첫째, 역사와 세계는 상호관계적이다. 기독교의 역사는 하나님 계시의 역사이다. 하나님의계시는 역사적이다. 유일회적이고, 원천적이고, 비합리적인 신적 현현이다. 기독교 역사는 정신의 역사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은 당시 팔레스타인의 사회적, 자연적 정황과 결부되어있다. 역사 속에서 기독교의 이념만이 발전하는 것이 아닌 여러 종교이념과의 관계 속에서발전하고, 사회학적 조건에 의거 다양하고 복잡한 형태로 발전하게 된다.
둘째, 종교와 사회는 상호관계적이다. 독립변수로서 종교는 사회에 영향을 미친다. 종교는그 자체로 독자성을 가진다. 그러나 종교는 사회에서 독립변수로만 존재하지 않고, 사회로부터 영향을 받는 종속변수 또한 갖고 있다. 사회 역시 그 자체로 독립변수의 성격을 갖고, 종교에 강력한 영향력을 미친다.
셋째, 신학과 사회학 역시 상호관계적이다. 모든 학문은 학제적인 교호관계를 가진다. 신학이 역사학과의 관계가 있었듯이, 사회학과의 관계를 부정할 수 없다. 사회학은 역사학처럼신학의 보조학문이 된다. 신학의 내용은 한편으로 독립변수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학적방법으로 학문적 교류가 가능하다.
○ 자유주의 신학의 완성
슐라이에르마허와 알버트 리츨에 이어 트뢸치는 자유주의 신학의 완성을 이루었다. 그의 종교사학적인 접근방법은 성경의 본문을 떠나, 역사적 연구만을 보는 단편적인 연구라는 평가를 받았다.
슐라이에르마허, 리츨, 트뢸취로 이어지는 자유주의 신학의 마지막 주자였다. 그는 종교사학파의 대표적인 조직 신학자로서 역사적 방법에 근거하여 신학적 과제를 재구성하려고 했다. 그의 신학은 철저하게 역사적 사고와 역사적 방법에 기초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그의 신학을 종교사의 신학이라 불린다.
○ 저서들
에른스트 트뢸치의 주저들은 다음과 같다.
1891년: J. 게르하르트와 멜랑히톤에게 있어서 계시와 이성
1902년: 기독교의 절대성과 종교사
1904년: 칸트의 종교철학에 있어서 역사적인 것
1906년: 근대의 개신교적 기독교와 교회
근대세계 형성에 대한 개신교의 의미
1911년: 기독교 신앙을 위한 예수의 역사성의 의미
1912년: 기독교적 교회들과 공동체들의 사회론
1913년: 종교적 상황, 종교철학, 윤리를 위하여
1915년: 어거스틴, 기독교적 고대와 중세
1922년: 역사주의와 그의 문제들
1924년: 역사주의 그의 극복 (사후 출판)
1925년: 종교사와 종교사회학을 위한 논문들 (사후 출판)
독일의 정신과 서유럽 (사후 출판)
신앙론 (게르트루드에 의한 필사본)
On Historical and Dogmatic Method in Theology (1898)
The Absoluteness of Christianity and the History of Religions (1902)
What Does the ‘Essence of Christianity’ Mean? (1903)
Religion and the Science of Religion (1906)
The Significance of the Reformation for the Rise of the Modern World (1906)
Faith and History (1910)
The Significance of the Historical Existence of Jesus for Faith (1911)
Protestantism and Progress (1912)
The Social Teachings of the Christian Churches (1912)
Der Historismus und seine Probleme (1922)
Historiography (1922)
My Books (1922)
The Place of Christianity Among the World Religions (1923)
The Christian Faith (1925)
참고 = 위키백과, 나무위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